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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화해하기 - 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림이 건네는 말
김지연 지음 / 미술문화 / 2020년 10월
평점 :
실제로 북한이탈주민 또는 새터민이라는 단어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각자가 너무도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함께 지낼수록 '내'가 몰랐던 '너'에 대해 알게 되는 놀라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잠시 미국에 대해서 신부들이 북한에 대한 교육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북한을 여타의 다른 나라들보다도 모른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해외에 나온 이들이 과연 북한의 진실을 모를까? 그들은 비록 해외에 나와있고 고위층의 자제들이겠지만, 북한 고위층은 언제라도 숙청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마트폰을 쓰면서 유튜브와 구글,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다. 그들은 100% 미국과 유럽, 그리고 남조선이 얼마나 잘 살고, 북한은 얼마나 못 사는지 분명히 알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가는 모든 곳에서 감시받고 통제받고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남조선 동무는 중국이나 어디 제3세계 친구처럼 '위장'해야 한다.
남북간의 교류는 분명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은 북을 너무 모르고, 북은 남을 너무 모른다. 금강산도, 개성공단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 잘못인가? 민주주의 남한의 잘못인가, 파시즘 주체교 국가 북한의 잘못인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람도 자유롭게 대화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람도 자유롭게 대화하고, 미국과 쿠바 사람도 자유롭게 대화한다. 물론 본인들이 의도적으로 피할 수야 있겠지만,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 막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과 제3국에서 대화조차 할 수 없다.
이 대화를 막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인가, 아니면 자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