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간아 > 환상과 예술적 창조-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경우 - 가르시아 마르케스
환상과 예술적 창조-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경우
가르시아 마르케스/현중문 옮김
스페인 한림원 사전에 의하면, 환상이란 “이미지를 통해 무언가를 재생하는 정신의 능력”이다. 이보다 더 빈약하고 모호한 정의를 생각해 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 뜻을 보면, 환상은 “허구, 단편이나 소설, 고상한 사상 또는 기발한 사상”이다. 이는 첫 번째 정의가 야기한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또 한림원 사전은 상상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근거가 없는 것에 대한 허위적 파악” 이라고 한다. 한편, 스페인어 어원 연구의 대가 코로미나스Juan Corominas는 모국어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카탈란어이다- 현실과 상상은 어원이 같으므로, 결국 두 단어는 동일히다고, 깊이 따져보지도 않고 얘기한다.
천학비재한 탓이겠으나 한림원 사전과 코로미나스 어원사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위압적인 한림원의 괴상한 풀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환상과 상상의 차이점을 파악하려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사전을 들춰 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전의 정의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상가상으로 그 정의가 뒤바뀌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순수한 환상적 허구, 근거가 없는 것 그리고 “chaleco de fantasía(유행이 지난 조끼, 모조품 조끼)” 라는 용례를 든 사람이 잘 알고 있듯이 예술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취향이라는 뜻이다. 한 인간이 그 누구도 카프카의 창조적 능력을 환상이라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환상은 월트 디즈니가 즐겨 사용한 수단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한림원 사전의 정의와는 정반대로, 상상이란 예술가들이 그들이 처한 현실에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상상은 내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예술적 창조이다. 이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예술적 창조에서 상상을 얘기하겠다. 그리고 환상이라는 말은 되지 못한 집단이 사용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
1. 믿어 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
중남미와 카리브 해 예술가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창조가 아니라 중남미 현실을 믿게 만드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남미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다. 중남미 문학에서 연대기 작가들보다 더 현실에 집착하면서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이들 역시-상투적이지만 정곡을 찌른 표현을 사용하면- 현실이 상상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유의 문학 가운데 최고의 작품은 바로 콜롬부스의 『항해일지』다. 콜럼부스 얘기부터 시작한 이유는 이 항해 일지가 정말로 현존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항해 일지는 라스카사스 신부가-그는 원본을 보았다고 말했다.-필사한 판본이다. 아무튼, 우리는 이 필사본을 통해서 콜럼부스가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 카톨릭 왕들이 믿게끔 놀라운 상상력으로 꾸며낸 일들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콜럼부스는 1492년 10월 12일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하러 나온 원주민들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고 쓰고 있다. 연대기 작가들도 콜럼부스와 마찬가지로 카리브 해 사람들은 나체로 생활하는데 아직 기독교적 도덕이 미치지 못한 열대 지방에서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콜럼부스가 바르셀로나 왕궁으로 데려간 원주민들은 색칠한 야자수 잎, 깃털, 진기한 동물의 이빨과 발톱으로 만든 목걸이로 치장하고 있었다. 이를 설명하기란 쉽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콜럼부스의 첫 번째 항해는 기대에 전혀 못 미치는 참담한 실패였다. 가까스로 금을 찾았을 때는 배 한 척이 침몰했다. 따라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콜럼부스 발견이 엄청난 가치가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투자할 만하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그 어떤 구체적인 증거도 없었다. 원주민 포로들에게 옷을 입힌 것은 효과적인 광고 전략이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 국수, 누에 등-화약과 나침반처럼-새롭고 명백한 증거물을 가져왔던 터이라 단순한 굳 증언만으로는 어림없었다. 콜럼부스 발견 이래 중남미 역사의 특징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역사라는 점이다. 내가 애독하는 책 중에 하나는 마젤란과 함께 세계 일주에 참여한 이태리 사람 피가페타가 쓴 『최초의 세계일주』이다. 피가페타는 브라질에서 꼬리 없는 새, 발이 없어 둥지를 틀지 못하므로 바다 한가운데서 암컷이 수컷의 등에 알을 품는 새, 배설물만 먹고 사는 새를 봤다고 한다. 그리고 배꼽이 등에 달린 돼지, 부리는 수저와 유사하고 혀가 없는 거대한 새도 보았고 머리와 귀는 노새, 몸은 낙타, 발은 사슴, 꼬리와 우는 소리는 말馬인 동물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파타고니아 지방에서는 거인을 만나게 된 내력과 거인이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기절했다는 이야기를 쓴 사람도 바로 피가페타였다.
2. 현실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믿기 어려운 모험
중남미 역사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전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엘도라도 전설이다. 이 환상적인 땅을 찾는 과정에서 헤메네스데 케사다는 오늘날 콜롬비아 영토의 절반을 정복했고,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는 아마존 강을 발견했다. 더욱 환상적인 것은 일반적으로 강을 발견하는 경로와는 정반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면서-강 어귀쪽으로 항해하면서-아마존 강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엘도라도는 아스테카 제국 마지막 황제 콰우테목의 보물처럼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았다.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의 보석금을 지불하기 위해 마리 당 10만 파운드의 금을 싣고 쿠스코를 출발한 11000마리의 야마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 세기 전, 파나마 지협에 대향 횡단철도 건설 책임을 맡은 독일 대표단이 계획은 실현 가능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서 이 지역에서 철은 구하기 힘든 광물이므로 레일을 금으로 만들자고 했을 때, 현실은 다시 한 번 멀어졌다. 이처럼 정복자들이 쉽게 믿어버린 이유는 중세의 형이상학에 흥분하고 기사 로망스의 황당무계한 얘기에 도취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카베사데 바카의 터무니없는 모험도 이런 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카베사 데 바카는 스페인을 출발해서 오늘날 미국의 남부를 거쳐 멕시코까지 가는데 꼬박 8년이 걸렸다. 600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이 과정에서 서로를 잡아먹었고, 마지막 생존자는 5명뿐이었다. 카베사 데 바카의 동기는 엘도라도가 아니라 이보다 좀 더 시적이고 고상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젊음을 준다는 “청춘의 샘”이었다.
목이 달아난 기사의 머리도 척척 붙이는 고약이 등장하는 소설을 애독했던 곤살로 피사로는 16세가 키토에서 황금 왕국이 가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 왕국은 금으로 가구를 만드는 장인만 3000 명이고, 왕궁 계단은 금괴이며, 금 사슬에 묶인 사자가 지키고 있다고 했다. 안데스에 사자라니! 발보아도 다리엔에서 그와 비슷한 얘기를 듣고 태평양을 발견했다. 곤살로 피사로는 발견다운 발견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거짓말 같은 왕국을 찾아내려고 스페인인 300명, 인디오 4000명, 말 150 마리, 인간 사냥용으로 훈련된 개 천여 마리로 원정대를 조직한 사실에서 그가 얼마나 그 얘기를 믿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3.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
광대한 규모의 중남미 현실 때문에 문학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단어의 부족이다. 중남미인이 강을 이야기할 때, 유럽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강은 2790km의 다뉴브 강 정도이다. 자세히 묘사하지 않으면 유럽 독자로선 5500km에 달하는 아마존 강의 실상을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벨렝에서 바라보면 아마존 강은 발틱해보다 넓다. 강 대안은 보이지도 않는다. 중남미인이 폭풍우라는 단어를 쓰면 유럽인은 번개와 천둥을 생각하지만 중남미인은 표현하고자 하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비雨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인 마리미에르의 묘사에 따르면, 안데스 산맥에서는 5달 동안 내내 폭풍우가 몰아친다.
이 폭풍우가 얼마나 거센지 안 겪어본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피의 폭포처럼 번쩍번쩍 번개가 내리치고, 천둥소리는 대기를 뒤흔들며, 굉음은 거대한 산에서 되울린다.
묘사가 졸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아무리 신중한 성격의 유럽인이더라도 공포에 떨만 하다.
그러므로 중남미 현실의 규모에 맞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왜 필요한지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20세기 초 아마존강 상류를 탐험한 네덜란드인 그라프는 5분 안에 계란이 익을 만큼 펄펄 끓는 물이 흐르는 시내를 보았으며, 소나기가 폭포처럼 쏟아지기 때문에 큰 소리로 얘기해도 잘 안 들리는 지역을 통과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콜롬비아 카리브 해안에서 귀에 벌레가 들어간 소 앞에서 주문을 외우며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기도를 하는 동안 죽은 벌레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 사람은 동물이 있는 장소와 생김새만 가르쳐주면 멀리서도 똑같은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1902년 5월 8일, 마르티니크 섬의 몬펠레 화산이 폭발하여 순식간에 생피에르 항구가 파괴되고, 30만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모두 용암 속에 묻혀 버렸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 섬의 유일한 죄수 실바리스는 탈옥이 불가능할 만큼 튼튼하게 지은 독방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멕시코의 경우만 해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을 표현하려면 책을 여러 권 써야만 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체류한 지도 20년 가까이 되지만, 지금도 꿈틀거리는 강낭콩을 쳐다보며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다. 합리주의자들은 콩 안에 애벌레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 설명은 너무 빈약했다. 여기서 경이로운 사실은 애벌레 때문에 강낭콩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강낭콩이 움직이고 싶어 애벌레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 이상한 경험은 아숄로틀하고 처음으로 대면한 일이다. 코르타사르는 단편 아숄로트에서 사자가 보고 싶어 찾아간 파리 동물원에서 아숄로틀을 보았다고 했다. 코르타사르는 수족관으로 발길을 옮겼고 “흔히 볼 수 있는 물고기를 흝어보다가 예상치 않게 아숄로틀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이나 쳐다보다가 속절없이 그곳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파스쿠야로에서 난 한 시간 동안이 아니라 오후 내내 아숄로틀을 들여다보았고, 문밖을 나서면서도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아숄로틀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그 집 문에 걸려 있던 팻말이었다. “아숄로틀 시럽 팝니다.”
4. 카리브 지역 : 믿을 수 없는 것의 중심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은 카리브 지역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여기서 카리브란, 엄밀히 얘기해서, 미국 남부에서 브라질의 남부에 이르는 지역을 일컫는다. 이를 팽창주의자의 헛소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사실, 카리브는 지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지리적 영역일 뿐만 아니라 매우 동질적인 문화적 영역이기도 하다.
카리브에서는 신대륙 발견 이전의 마술적 세계관과 독창적인 원시 신앙에 아주 다양한 문화가 더해지면서 일종의 마술적 종합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마술적 종합은 끊임없이 예술적 관심 대상이 되었으며 결코 고갈되지 않는, 예술의 원천이 되었다. 아프리카 문화는 흑인 노예의 수입과 착취 등 강제적이고 야비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문화에 기여했으나, 라틴아메리카로서는 행운이었다. 이처럼 세계가 한 곳에서 만남으로써 무한한 자유라는 개념, 하느님도 법률도 존재 않는 현실, 즉 각자는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리하여 도적은 하루 아침에 왕이 되었고 도망자는 제독이 되었고, 창녀는 통치자가 되었다. 물론 이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나는 카리브에서 태어나고 성장했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나라와 섬을 죄다 알고 있다. 현실보다 더 놀라운 것을 생각해내지도 만들지도 못했다는 나의 좌절감은 어쩌면 여기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현실로부터 가장 동떨어질 때는 정치적인 요소를 다룰 때이지만 내 작품에서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이라고는 단 한 줄도 없다. 이러한 현실 변형의 한 예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부엔디아 가문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들었던 돼지 꼬리다. 다른 이미지를 사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사건은 돼지 꼬리를 가진 아이의 출생을 두려워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유명해지기 시작하자마자 아메리카 곳곳에서 돼지꼬리 비슷한 것을 달고 살아가는 남녀들이 속속 나타났다. 바란키야 지방 시문에 한 청년 사진이 실렸다. 꼬리를 달고 태어난 청년은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기 전까지 숨기고 다녔다. 꼬리보다 더 놀라운 것은 청년의 설명이었다. “부끄러워서 한 번도 꼬리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또 내 자신이 소설을 읽고 난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어느 독자가 여자 아이 사진을 스크랩해서 보내왔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 돼지 꼬리를 달고 태어난 아이 사진이었다. 내가 소설을 쓸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 여자아이는 꼬리를 잘라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로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족장의 가을』을 구상하고 자료를 정리할 시기였다. 나는 10여년에 걸쳐 중남미, 특히 카리브 독재자에 관한 책은 손에 닿는 한 모두 구해서 읽었다. 내가 구상하던 작품이 도무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번 실망하고 말았다. 후안 비센테 고메스는 점쟁이를 능가하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이티의 폭군, 듀발리에 박사는 政敵 한 사람이 박해를 피해 도망다니다가 인간의 모습을 잃고 검은 개로 변했다는 말을 듣고 전국의 검은 개를 몰살했다고 한다. 철학자로 명성이 높아 칼라일이 연구하기도 했던, 프라시아 박사는 파라과이 공화국을 집으로 생각했는지, 우편물이 들어올 수 있는 창구 하나만 열어 두고 빗장을 걸어버렸다. 산타 아나는 ‘거창한 장례식’에 참석하여 다리 한 쪽을 잃어버렸다. 로페 데 아기레의 잘린 손은 며칠이고 강을 따라 흘러갔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살인자의 손이 다시 칼을 들지나 않을까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는 자기 집 후원에 동물원을 짓고 우리를 둘러 나누었다. 쇠창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맹수들을, 다른 쪽에는 정적들을 가둬놓았다고 한다. 엘살바도르의 독재자 막시밀리아노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는 홍역을 퇴치하려고 전국의 가로등을 빨간색 종이로 덮어씌웠으며, 음식에 독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진자를 만들어 음식 위에서 흔들었다고 한다. 과테말라의 테구시갈파에 가면 모라산 동상이 있는데 사실은 네이 원수의 동상이다. 모라산 동상을 구입하러 영국으로 파견된 정부 대표단은 창고에 처박혀 있는 동상을 구입하는 편이 새로 제작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다는 것을 알았다.
결론적으로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 작가들은, 한 손을 가슴에 얹고, 현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어쩌면 우리의 영광은, 겸허한 마음으로 현실을 모방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