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I LOVE 오다기리 죠 4色 영화 특별전!!

 

 

관련 홈페이지 :  www.mirospace.co.kr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히피드림~ 2007-03-2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치기 재밌게 봤었죠^^
좋은 정보 감솨!

urblue 2007-03-2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다기리 죠는 볼 때마다 이미지가 바뀌어서 좋죠.
전 박치기랑 유레루를 봤고, 이번엔 밝은 미래가 보고 싶네요. ^^

chaire 2007-03-2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저는 클럽진주군만 못 봤는데, 보러 가야겠네요. 근데 오다기리 군이 어떻게 나오려나..^^ 참. 밝은 미래, 재미나요. 꼭 보셔요.^^

urblue 2007-03-2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밝은 미래, 꼭 볼게요. ^^

비로그인 2007-03-30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이런 꽃미남이 나오는 영화를 단 한 편도 본게 없다니 ㅠㅠ

urblue 2007-03-3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꽃미남 나오는 영화는 꼭 봐줘야 합니다. ㅠ.ㅜ
 
 전출처 : 로드무비 > 우리들의 한글나라 - 2007 동아일보 단편소설

2007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 우리들의 한글나라’
[동아일보   2007-01-01 03:00:00] 
[동아일보]

유아용 한글 카드다. 콘크리트 칸막이 기둥마다 붙어 있는 네모난 카드는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이다. 엽서 크기만 한 카드 왼쪽에는 굵은 명조체로 ‘가’가 써 있고, 그 옆에는 가위가 그려져 있다. 글자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단어와 연상되는 그림이 짝지어 있는, 유아용 한글 학습 카드가 분명하다. 싱글과 커플만 사는 원룸에 아이가 있을 리 없고 아이가 있다 해도 어둑한 주차장에서 놀게 할 부모는 없다. 까막눈의 노인이 살 만큼 관리비며 주위 상가의 물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투명테이프로 반듯하게 붙여놓은 걸로 보아 누군가 한글 공부를 하나보다. 어둑한 주차장에서 한글을 공부하는 사람은 누굴까? 글자만 보면 솔깃해지는 내게 한글 카드는 묘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가’를 지나고 ‘나’ ‘다’를 지나 ‘라’ ‘마’ 앞에서 후진을 하여 자동차를 주차시킨다. 차 문을 열려고 하는 사이 ‘가’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일정한 간격과 박자, 웅얼거리는 음성,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라본다. 어렴풋한 형체가 색으로 먼저 눈에 띈다. 푸른색 상의와 갈색 하의, 청소원 복장의 여자다. 나는 고개를 뒤로 빼고 운전석에 등을 밀착시킨다. 여자와 나의 거리에는 자동차 일곱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여자는 기둥에 붙여놓은 한글 카드를 느릿느릿 떼어내며 카드에 적혀 있는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다. 여자의 한국어는 어설프다. 하지만 여자의 억양에는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가 들어 있다. 살짝 등을 떼고 여자를 염탐한다. 여자는 큰 소리로 글자를 반복하여 말한 후 카드를 툭 떼어내 한 손에 모아 쥐고 한 번 더 말한다. 여자는 여러 번 크게 소리 내어 ‘마’ 카드에 써 있는 ‘마술’을 읽는다. 마수, 머슬, 마슬을 발음하다 가까스로 ‘마술’이라 말하고는 ‘바람’으로, ‘사과’로, ‘아가’로 이동한다. 여자가 카드를 다 떼어낸 뒤 콘크리트 기둥 뒤로 사라진다. 웅얼거리는 소리도 멀어진다. 운전석에 얼굴을 파묻는다. 얕은 한숨이 새나온다.

“아, 마샤? 그 여자 이름이야. 나이는 한 스물 넷? 미니슈퍼 아줌마한테 들었어. 꽤 친절하고 유능하대. 남의 나라에 와 있어서 그렇지, 자기네 나라에선 선생님이었다나 봐. 왜 그런 경우 많잖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깔보고 함부로 해도 자기네 나라에선 한 자리 했던 치들이 돈 벌러 오는 거잖아. 그런데 넌 주차장에서 그걸 다 지켜본 거야?”

샤워를 끝내고 나온 정연이는 조금 전 주차장에서의 일을 듣자마자 여자를 알은척 한다. 뉴스에서 고용주에게 억울하게 임금 체불을 당하고 핍박받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안됐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가까운 곳에 있는 그 여자를 봤을 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외려 나는 여자가 불편하다. 까만 피부에 덩그마니 쌍꺼풀 진 큰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피할 때면 의뭉스러워 보였다. 마샤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외모였다. 이름 따위 아무려면 어떤가. 주차장에서 홀로 한글 공부를 하는 걸 보면 의지의 한국인 못지않은 것 같다.

언젠가 광화문에서 까만 피부의 남자가 나를 쫓아온 적이 있다. 버스에서 내리려는 찰나였다. 남자는 함께 서 있던 사람들에게 서툰 한국어로 “여기가 광화문 맞습니까?” 하고 물었다. 남자와 가까이 서 있던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폈다. 가을비였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남자는 빗물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내게 간절히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우산을 남자 쪽으로 기울였다. 남자가 내 우산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남자는 고맙다는 말 대신 대뜸 시간이 있느냐 물었다.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빗물에 젖은 남자의 까만 피부에선 꿉꿉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자 남자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는 마음대로 하라는 투로 남자를 빤히 쳐다보고는 거래처 사무실로 향했다. 두어 시간 쯤 지났을까. 일을 보고 나오는데 불쑥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비가 멈춰 있어 남자는 말끔한 차림새였다. 정확히 두 시간 삼십분이 지나 있었다. 나는 앞장서서 남자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자세히 보니 까만 피부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더듬더듬 한국말로 내 이름을 묻고 직업을 물었다. 나는 고분하게 말해주었다. 남자는 커피를 벌컥 마신 후 내게 영어를 잘 하느냐고 물었다. 간단한 회화 말고는 영어를 못 한다고 했다. 남자는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기 위해 각종 한국 방송과 책들을 섭렵했다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나는 빙긋 웃었다. 남자가 갑자기 테이블을 탁 내리쳤다. 왜 영어 공부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한 개 국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며 남자는 애정 어린 충고를 했다. 한국에 와서 라면으로 때우며 살았던 나날을 회상하던 남자는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머뭇거리다 사무실 호출이 와서 일어나야겠다고 말했다. 갑자기 남자는 일어서려던 나를 제지하며 대뜸 자신이 나의 영어 선생님이 되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프리토킹, 완벽한 원어민 발음, 전화로 영어 통화 수시 가능이 적혀 있었다. 두 시간 동안 고객을 기다린 남자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싸게, 싸게 해드려요!”

나는 선풍기 앞으로 가 앉아 땀을 식힌다. 주차장에서 송 선배가 거절한 내 폰트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정연이의 컴퓨터를 올려다본다. 정연이는 머리의 물기를 떨어내며 다가와 웹 폰트 작업 중인 컴퓨터를 천천히 꺼버린다.

“전기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미안.”

전기세 때문이 아니라 내가 모방할까 두려워서라는 걸 나는 안다. 말을 삼키듯 선풍기 풍향을 한 단계 높인다. 미니홈피에서 정연이가 단독 개발한 한글은 잘 팔린다. 벌써 두 번째 한글 폰트를 개발 중이다. 내 폰트는 언제쯤 네티즌들에게 공급될까. 아니, 내 폰트는 언제쯤 한반도를 강타하는 폰트가 될까. 정연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선풍기 풍향을 낮춘다. 매몰차게 모니터를 꺼버린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정연이의 지루한 자기변호다.

“마샤가 재활용 창고 운영하는 거 알아? 누구한테 무엇이 필요한 지 알아뒀다가 가져다준대. 덕분에 오피스텔 사장이 구의원 나올 때 도움도 되고 해서 계속 놔둔다나봐. 그래서 매트리스 하나 부탁했어. 번갈아 가며 침대에서 자는 거 좀 불편하지 않니? 미니슈퍼 아줌마한테 슬쩍 운을 떼어 놨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선풍기를 정연이에게 내어주고 땀에 전 티셔츠를 벗는다. 장미꽃 피는 계절인데 날씨는 초여름이다. 앙가슴 사이로 땀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화장대에서 머리 끈을 집어 긴 머리를 틀어 올려 묶는다. 정연이는 부러 고개를 돌리고 머리의 물기를 떠는 데 집중한다. 내가 옷을 입을 때까지 정연이는 그러고 있을게 분명하다. 2년째 같이 살면서 정연이는 자신의 속살을, 속마음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 우리 우정은 미니슈퍼 아줌마와의 친분보다 못하다. 제 것을 드러내면 내가 움켜쥐기라도 할까봐 정연이는 조심, 또 조심한다. 내가 벌거벗고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정연이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말리다 박제가 될지도 모른다. 동거인을 박제로 만들 수는 없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매트리스가 필요해? 여긴 너무 좁아.”

정연이는 내가 옷을 입었다는 걸 알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얘기한다. 정연이가 폰트 개발에 성공하는 이유는 사방에 눈을 심어두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연이는 안 보는 듯 하면서 다 보고 있다. 그게 정연이의 필살기일까.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저 테이블을 현관 쪽으로 옮기면 돼. 테이블에 잡동사니뿐이잖아.”

정연이는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남은 물기를 떨어낸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 필요하면 우리 생활비에서 하나 사지 그래?”

청바지를 벗어 침대에 던질 뻔 한 팔을 재빨리 거둬내고 바닥에 던져놓는다. 정연이와 내가 함께 산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물과 기름이 합쳐지기도 하느냐고 물었다. 정연이와 나는 함께 출발한 신입사원이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학원을 수료한데다 집 떠나 살고 있는 동향인이라는 것까지, 닮은 데가 많아 쉽게 친해졌다. 신입사원 시절 윗사람의 횡포를 묵묵히 받아내며 서로를 위로하다 보니 함께 살자는 말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튀어나왔다. 물과 기름이 교묘하게 일치하는 정점, 생활비를 절약하자는 모토가 우릴 한 곳에 몰아넣었다. 동료로서 뿐만 아니라 동거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살면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 살던 사람들이 내놓는 거면 웬만큼 쓸 만 할 거야. 좀 기다려보자고. 이사 가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조만간 매트리스 하나 나올 거야.”

호기로운 정연이의 말 꼬리를 덮치듯 현관 벨이 울린다. 인터폰에 얼굴 하나가 떠오른다. 한글 공부를 하던 여자, 마샤다. 마샤의 동공은 사물을 움켜쥐고 있는 듯 팽팽하다. 앙 다문 두터운 입술, 자두알처럼 동그란 얼굴형과 옴폭 파인 턱, 질끈 묶어 올린 머리 아래로 야생초처럼 듬성듬성 흘러내린 잔머리. 마샤는 두 눈을 껌벅거리며 응답을 기다린다. 정연이가 일어나 인터폰 수화기를 든다.

“무슨 일이세요?”

“매트리스, 왔어요.”

“네? 아, 매트리스? 고마워요. 금방 갈게요.”

정연이는 마샤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팽팽했던 마샤의 풍선이 푹 꺼져버린 느낌이다.

“거봐. 내가 뭐랬니? 금세 하나 생겼잖아.”

정연이는 싱긋 웃어 보이며 컴퓨터 앞에 풀썩 앉는다. 다리를 꼬고 턱을 받친 채로 모니터를 켠다.

“참, 송 선배 만났지? 뭐래? 니 폰트 사겠대?”

정연이는 생각보다 인내심이 많다. 내가 원룸에 들어서던 순간 궁금했을 텐데 지금까지 참은 걸 보면 정연이의 인내심은 칭찬할 만하다. 나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천천히 뚜껑을 연다. 건조대에 있는 컵을 바라보다가 주스 병째 벌컥 마셔버린다. 내 등에 생채기를 낼 것처럼 정연이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동거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정연이는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금세 대답하지 않는 내 침묵으로 미뤄 알고 있다. 때로는, 최소한의 예의를 잊어버릴 때도 있다.

“잘 안 됐구나? 나도 처음엔 그랬어. 송 선배가 오죽 까다로워야 말이지. 그래도 송 선배가 틀린 말 하는 사람은 아니더라고.”

정연이의 폰트 ‘천사체’는 미니홈피에서 베스트 상품이다.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가 활성화되면서 자신의 글에 어울리는 향기처럼 독특한 글씨를 선택하는 사용자가 늘어났다. 몇 년 전 함께 일하던 송 선배가 한글폰트디자인 사무실을 차리면서 좋은 폰트를 사들이고 있었다. 정연이는 회사에서 팀장 역할도 똑 부러지게 해내면서 개인적으로는 송 선배에게 자신의 폰트를 팔고 있다. 먼 훗날 제 이름을 내 건 회사를 차리기 위해 정연이는 여러모로 준비를 하는 중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를 수석 디자이너로 써먹겠다고 하지만 며칠 전 K기업 로고디자인 프로젝트팀에서 정연이는 내 이름을 빼버렸다.

“조금만 더 고쳤으면 좋겠대.”

마지못해, 자기 위안처럼 정연이에게 말한다.

“어떻게?”

호기심 많은 정연이, 쓸데없는 관심은 싫은 나. 침대에 걸터앉아 내 포트폴리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연이는 내 시선을 쫓아 집요하게 묻는다.

“내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

“괜찮아. 내일부터 생각할래.”

“넌 그게 문제야.”

“뭐가?”

“금방 좌절하는 거. 쉽게 좌절하고 쉽게 절망하는 거 말이야. 그리고, 폰트를 무조건 팔겠다고 생각하면 안 돼. 거기엔 디자이너의 혼과 집념을 쏟아야 돼. 무조건 팔려고 하면 그게 상품이지, 예술작품이니? 그래, 상품인데 예술작품 다운 면모를 갖춰야 팔린다 이 얘기야. 내가 회의 시간마다 누누이 강조하잖아. 디자인이 경쟁력이고, 디자이너가 상품이다. 언더스탠?”

정연이는 입 꼬리를 올리며 회전의자를 돌려 앉는다. 회사에서 내 직속상관인 팀장 정연이는 이젠 집에서도 팀장 행세를 하려든다. 팀장과 동거인의 위치를 망각해버리는 정연이를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 걸 구분할 줄 알면 사람이 아니지. 정연이는 팔을 뻗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가지런하게 제자리에 올려놓는다. 책상 밑에 놓아둔 가방에서 안경집을 꺼내 안경을 꺼내 쓴다. 사감선생 같다고 놀려도 정연이는 뿔테 안경을 바꾸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이 더 위악적으로 보이길 바란다. 그것이 자신의 경쟁력이고 상품이라는 듯이. 팀장 정연이는 오늘 바닥에 요를 깔고 자야 한다. 그래서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놓고 작업을 할 작정인 것 같다. 번갈아가며 싱글 침대에서 자는 방법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연이는 자신이 바닥에서 자야 하는 날에는 밤새 불빛을 어른거리게 하여 내 잠을 망친다.

얼핏 잠이 들었을까. 뜨거운 샤워가 온몸을 녹지근하게 만들었다. 현관벨 소리에 눈을 뜬다. 정연이가 뿔테 안경을 위로 치켜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연이는 팔짱을 끼고 선 채로 모니터 속의 얼굴을 바라본다. 마샤다. 다시 현관 벨이 울린다. 모니터 속의 마샤는 주위를 둘러보며 원룸의 동정을 살피듯 현관 문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정연이가 낚아채듯 인터폰 수화기를 든다.

“무슨 일이죠?”

정연이는 한참 골몰하고 있던 중이었나 보다. 날 선 목소리가 날아가는 새 깃털이라도 잘라버릴 것만 같다. 모니터 속의 얼굴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줍은 웃음을 짓는다. 머리를 긁적인다. 어색한 상황일 때 머리를 긁적이는 버릇은 온 지구인의 공통점인가.

“매트리스요. 안 가지세요?”

한 겹 철문 밖이라 마샤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린다. 정연이가 한숨을 내쉬며 인터폰이 붙어 있는 벽에 등을 기댄다.

“알았어요. 나중에 갈 테니까 보관 잘 해놓으세요.”

“아, 안돼요. 그냥 두면, 나 없으면, 누가, 가져버려요. 지금, 가져야 돼요.”

마샤의 어설픈 한국어가 툭, 툭 분주하게 튀어나온다. 가위를, 마술을, 사과를 발음하던 음색과는 딴 판이다.

“그럼 그렇게 해요. 하나 사면 되니까 그대로 두세요.”

정연이는 인터폰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는다. 모니터 속의 마샤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듯 사라진다.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

“안 잤어? 지금 막 중요한 타이밍이었단 말이야. 그깟 매트리스 사면 되지 뭘 그래.”

내가 이불을 조심스레 거둬내고 일어나는 사이 정연이는 오만 상을 찡그리며 책상 앞에 앉는다. 다시 잠들기 어려울 것 같다. 침대 옆에 있는 가방을 끌어당긴다. 담배를 꺼낸다.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연다. 찬 바람이 훅 얼굴을 덮친다. 담배에 불을 붙인다.

“윤서영. 나 작업하는 거 안 보이니?”

“어, 미안.”

나는 담배를 창밖으로 내던진다.

“야! 불나면 어쩌려고 그래? 담뱃불 끄고 버린 거야?”

“아, 아니….”

“얼른 나가봐. 얼른!”

정연이가 큰일이나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바지와 카디건을 집어준다. 뭔가 내키지 않지만 방화범이 돼버리는 극단적인 상상에 떠밀려 옷을 걸치고 신발을 꿰어 신고 나온다. 엘리베이터가 맨 꼭대기 층에 있어 할 수 없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다. 5층에서 1층까지 단숨에 뛰어내려와 담배를 던진 화단으로 향한다. 가느다란 흰 연기를 뿜고 있는 담배를 찾아 발로 비벼 끈다. 위를 올려다본다. 정연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담배를 들어 보인다. 정연이가 말없이 고개를 뒤로 빼고 창문을 닫는다.

발로 비벼 끈 불이 내 가슴으로 옮겨온 것처럼 식은땀이 난다. 허기가 진다. 뭔가 먹고 싶다. 그러고 보니 저녁도 걸렀다. 카디건 주머니를 뒤진다. 만 원 짜리 한 장이 잡힌다. 어쩐지 당한 느낌이다. 이 카디건은 장 볼 때 입는 ‘마트 전용 카디건’ 이다. 여분의 돈을 넣어둔 것도 정연이의 아이디어였다. 담배를 꺼낸 건 자발적이었지만 당황스러운 깜짝 각본은 떨떠름하다.

테이크아웃 식품을 들고 가는 손들, 아무 곳에도 시선을 주지 않는 마네킹들이 사는 오피스텔 근처, 샐러드 바로 들어간다. 샐러드 바에는 서너 명의 여자아이들이 생과일주스를 홀짝이며 자기들만의 이야기에 빠져 있다. 뉴에이지 피아노 연주곡 속으로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캐스터네츠처럼 부딪쳤다 흩어진다. 단골이라고 결코 알은척을 하지 않는 샐러드 바 주인이 목례를 하고 진열대를 응시하며 조용히 주문을 기다린다. 늦은 저녁이라 메뉴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먼저 토마토 주스를 주문한다. 주인은 발 빠르게 밀폐용기에서 토마토를 꺼내 믹서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누른다. 믹서 소음이 샐러드 바를 휘젓는다. 주인이 토마토 주스를 내 쪽으로 건네고 진열대 앞으로 와 선다. 아스파라거스와 데친 새우, 양상추를 가리키자 주인은 집게로 적당량을 집는다. 계산을 하고 나서 샐러드 접시와 토마토 주스를 들고 빈 테이블에 앉는다. 열 평 남짓한 샐러드 바, 조금만 집중하면 옆 테이블의 사소한 정보쯤은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여자아이들은 진로 문제와 남자친구 이야기를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뜨린다. 흘린 이야기들을 다시 또 주워 담느라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양상추에 새우를 포개 파인애플 소스에 찍어 한 입에 넣는다. 새콤한 소스가 혀에 착착 감겨든다.

샐러드 접시를 거의 다 비웠을 때쯤 샐러드 바 문이 열리는 동시에 후끈한 바람이 먼저 들어온다. 푸른색 상의에 갈색 바지를 입은, 마샤다. 그녀의 옷은 색상뿐만 아니라 신분에 대한 상징이기도 해서 얼굴색과는 상관없이 고단해 보인다. 마샤가 신호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자아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여자아이들은 마샤와 닿지 않고 좁은 테이블 사이를 빠져나간다. 마샤가 내 옆을 지난다. 샐러드 바 주인이 유난한 목소리로 여자아이들을 배웅한다. 뒤돌아 마샤를 본다. 마샤는 샐러드 바 앞에서 메뉴를 고르고 있다. 주인은 냉담한 표정으로 마샤를 훑는다.

“이거, 이거, 주세요. 칼로리 없어요?”

마샤가 손가락으로 메뉴를 고른다. 주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답하며 천천히 접시와 집기를 집어 든다. 외려 마샤는 주인의 표정에도 담담하다. 그런 일쯤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유가 느껴진다.

“우리 샐러드바 메뉴에는 명찰마다 칼로리가 적혀 있습니다.”

주인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낚시라도 하는 듯 마지못해 메뉴들을 집어 접시에 올려놓는다.

“아, 맞다, 여기, 써 있어요. 고마워요.”

“양상추와 새우 드릴까요?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없습니다.”

마샤는 반듯하게 선 채로 또박또박 말한다.

나는 샐러드 접시를 들고 카운터로 가 반납한다. 주인은 와중에도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깍듯하게 내게 인사한다. 주인이 마샤가 고른 샐러드를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을 가늠한다.

“삼천 팔백 원입니다.”

주인은 마샤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내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빈 주스 잔이 눈에 띈다. 주스 잔을 들고 다시 카운터로 간다. 마샤가 주머니를 뒤적인다. 천 원짜리 석 장을 꺼내 보인다.

“팔백 원, 없어요, 빼주세요.”

마샤는 얼버무리며 말한다. 주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친다.

“미안합니다. 빼주세요.”

마샤가 다소곳하게 한 번 더 말한다. 주인은 신경질적으로 집게를 집는다. 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지폐를 만지작거린다. 주인의 행동을 참을 수가 없다. 대놓고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지켜볼 만한 구경거리는 아니다. 주인이 마샤가 고른 샐러드 접시에서 새우 조금, 양상추 조금을 덜어내려 할 때, 나는 주인에게 손을 들고 말한다.

“여기, 천 원 있어요. 거스름돈은 됐어요.”

천 원짜리 한 장을 들어 보인 후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뒤돌아 나온다. 오월의 밤에 여름의 전조가 풍긴다. 카디건을 벗어 허리에 두르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다. 아그작, 이 밤을 깨물어 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심호흡을 한다.

담배 냄새가 자욱한 피시방에는 축 늘어진 채로 손가락만 움직이는 군상들이 모여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포털 사이트에서 내가 처음으로 커버 디자인한 책 ‘비즈니스 브리지’를 검색한다. 경영학과 수업 듣는데 비즈니스 브리지 요약 좀 해주세요, 비즈니스 브리지 읽고 리포트 써야 하는데 도와주세요…. 책 내용과 관련된 질문 맨 밑에 그해의 베스트 북커버 디자인으로 뽑혔다는 기사가 짤막하게 실려 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시상식 사진이라든지 내 신상명세서 등의 정보는 없다. 이 책은 나 혼자 디자인했다. 저자의 얼굴 윤곽과 부리부리한 눈이 돋보이도록 세피아의 농담을 조절해 모노톤 기법으로 그렸다. 활자는 세로로 배치했다. 고딕체와 명조체를 결합하여 특이한 폰트를 그려낸 것도 비즈니스 브리지만의 특징이다. 기존의 폰트가 아니어서 따로 조판과 필름 작업을 거쳐 찍어야 했다. 인쇄공들에게 간식을 사다 나르며 비위를 맞췄고 밤샘 작업을 거듭했다. 구매욕을 북돋우며 지적인 이미지를 갖췄다는 평을 받아 경영학 서적 커버 디자인의 전형이 될 정도였다. 비즈니스 브리지는 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다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스테디셀러 같은 삶, 내가 추구하는 삶의 형태였는지도 모른다. 꾸준히 사랑받는 한 권의 책처럼,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안온함.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정상 체온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환절기에는 감기에 걸렸고 불규칙한 계절의 본성을 버거워했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잘 지낸다는 안부가 새삼 귀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 한 번의 성공을 기억한다. 독특한 폰트라며 한글 서체로 개발하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나는 실패를 생각하지 못했다. 국제표준 폰트인 유니 폰트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동원하여 사용빈도가 높은 한글 2350자의 웹 폰트를 만든다. 홀로 작업해야 글꼴의 분위기와 개성이 고르게 나타난다. 근육통과 관절염은 액세서리처럼 따라붙는다. 외로움과 인내의 싸움이다. 송 선배는 보기 좋게 늘 나를 넘어뜨렸다. 그건 겨우 단 한 번의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며 꿈을 깨라고 했다. 명품 넥타이를 바투 조이며 송 선배는 내 폰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영 씨 폰트는 너무 안이해. 폰트야말로 디자이너의 감각적인 마인드를 표현하는 거라고. 자음은 명조의 느낌이 많이 나고 특히 ‘ㅡ’ ‘ㅜ’ 는 가로획이 너무 짧아. 모음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느낌이 나. 다른 자음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균형미도 떨어지고. 확 튀어버리니까 다른 글씨체와 섞여 있는 것 같아서 독창성이 없어. 다시 한 번 해봐. 영혼을 넣어보라고, 영혼을.”

송 선배는 매번 똑같은 소리만 반복한다. 그걸 누가 모르나. 영혼을 넣고 디자이너의 마인드를 살린 감각적인 폰트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폰트를 만들고 싶다. 균형미를 갖추되 개성을 담고 있으며 독창적인 이 세상 단 하나의 폰트를, 내가 만들고 싶다. 내 영혼은 어디에서 헤매고 있는 걸까. 헤매고 있을 만한 영혼이 내게 있었던가. 아. 이 지독한 패배 의식. 그래도 만약 영혼이 있다면 부디 내 손으로 스며들기를. 스며든 후엔 결코 사라지지 말기를.

피시방에서 나와 한달음에 원룸에 도착한다. 현관 벨을 누른다. 기척이 없다. 열쇠를 갖고 나오지 않아 난감하다. 정연이는 벌써 잠이 든 걸까. 현관 문 틈으로 원룸의 동정을 살핀다.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인터폰 스피커로 정연이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어디 갔다 와?”

“… 피시방.”

“나간 김에 매트리스 좀 갖고 와. 오늘부터 매트리스에서 자도록 하자. 내가 치워놓을 테니까 얼른 다녀와. 응? 부탁한다, 친구야.”

정연이는 일 년에 한두 번쯤 내게 친구라고 부른다. 자기 생일과 내게 간절히 도움을 요청할 때. 올해는 그 소리를 다 들었으니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오피스텔 후문을 통과해 재활용 창고로 향한다.

재활용 창고에 드리워진 비닐 발로 불빛이 새나온다. 고요하고 스산하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말한다.

“저기, 계세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빛 옆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커진다. 비닐 발을 들추고 마샤가 나온다.

“무얼 찾으세요?”

“저기, 매트리스 가지러 왔어요.”

“503호? 잠깐만요. 아, 샐러드바!”

뒤돌아서던 마샤가 나를 알아보고 환호성을 지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거스름돈, 여기, 있어요.”

마샤가 주머니에서 동전 두 개를 꺼내 내게 내민다. 나는 겸연쩍어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감사합니다.”

마샤는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동전을 주머니 속에 넣는다. 엉거주춤 선 채로 나도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두 사람이 맞절이라도 하는 품새다. 고개를 들자 어색한 웃음이 동시에 새나온다.

나는 마샤를 따라 재활용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스탠드, 테이블, 전기밥통까지 재활용 창고는 잡동사니 천국이다. 벽에는 마른 꽃다발까지 걸려 있어 이국의 카페 같기도 하다. 백열전등 아래 자그마한 탁자 위에 노트와 연필, 한글카드가 널려있다. 주차장에서 보았던 그 한글카드다. 마샤는 창고 구석에 쌓아놓은 폐휴지 더미들을 한 덩어리씩 옮겨놓는다. 마샤의 키만큼 폐휴지들이 쌓인다. 그 뒤에 매트리스가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게 보인다.

“이렇게 안 하면, 누가, 가져요.”

마샤가 씨익 웃으며 말한다. 마샤가 매트리스를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나는 마샤를 도와 매트리스 한 귀퉁이를 나눠 잡고 발을 맞춰 옮긴다. 한쪽에 세워놓은 매트리스에 마샤가 마른걸레질을 한다. 나는 뒤돌아서다 쌓아놓은 폐휴지 더미들에 걸려 넘어진다. 동시에 폐휴지 더미들도 쓰러진다.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폐휴지 종이들은 직소퍼즐 조각처럼 흩어져버린 후다. 마샤는 개의치 않고 매트리스를 정리한 후에 폐휴지 더미들을 정리한다.

“미안해요.”

마샤는 너그러운 미소로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폐휴지 더미를 모은다.

“같이해요.”

나는 마샤처럼 쭈그리고 앉아 흩어진 폐휴지들을 모은다. 폐휴지들은 연극 포스터, 의류 대 방출 바겐세일, 신장개업 북경반점 등 크기가 다른 광고지 일색이다. 무조건 눈에 띄도록 디자인은 무시하고 커다란 글씨로 써 있어 공해처럼 여겼었다. 누군가가 정성스레 모아놓고 있었다는 느낌 때문일까. 구겨지거나 발밑에 깔려 누추하게 삶을 마감해버리는 폐휴지들과 달리 서로의 등을 껴안고 있었을 폐휴지들은 마니아의 소장품처럼 귀중해 보인다.

“이걸 모은 거예요?”

“…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한글, 공부해요. 재밌어요.”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2년, 됐어요.”

마샤가 검지와 중지를 세우고 말한다. 승리를 기원하는 표시 같아 괜스레 웃음이 난다.

“이사 가고, 오면 재활용 많이 버려요. 좋은 거 없어져요. 금방 없어요. 아까 909호, 이사 갔어요. 안 쓴대요, 버렸어요.”

“고마워요. 덕분에 잘 쓸게요. … 꽤 늦었는데, 집에 안 가요?”

“여기, 지하에, 내 방, 있어요. 잠깐, 방 구할 때까지만, 살아요.”

마샤는 얼추 폐휴지 더미들을 정리하여 네 개의 덩어리로 분류한다. 덩어리들을 들고 한쪽으로 갖다 놓는다. 바닥에 초등학생 노트와 철제 필통이 눈에 띈다. 노트 겉장에는 마샤의 이름이 비뚜름히 써 있다. 마샤가 다가와 머리를 긁적인다. 어색하고 쑥스러울 때 머리를 긁적이는 버릇은 마샤의 성격인 듯하다. 나는 마샤의 손에 노트를 건네준다.

“아, 미안해요. 글자만 보면 습관적으로 쳐다보게 돼요.”

마샤가 두 손으로 노트를 들고 내게 내민다.

“한글, 가르쳐주세요. 배우고, 싶어요.”

뜻밖의 부탁이라 나는 조금 당황스럽다. 지하주차장에서 마샤는 홀로 한글을 깨쳤다. 한글 카드를 보고 배울 정도라면 내가 가르쳐 줄 단계는 지난 게 아닐까. 어설프지만 제 의견을 말하는 것만 봐도 마샤의 한국어 능력은 상당하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게 끝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더 배우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해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듯 마샤는 입술을 오므리고 지그시 웃는다. 한국에 돈 벌러 왔으니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배우느냐는 내 질문은 어리석었을지도 모른다. 마샤의 한글 노트를 펼쳐 유심히 살펴본다. 모음과 자음이 가지런하지 않고 제각각 놓여있는 글씨부터 모음 자음을 바짝 붙여 쓴 글씨까지, 삐침이 있는 명조도 둔탁한 고딕도 아닌 마샤만의 글씨다. 길쭉한 자음과 작은 알갱이처럼 붙어있는 모음은 그 하나만으로도 독특한 분위기가 난다. 한글로 메워진 노트를 멀리 놓고 보니 한 폭의 그림 같다. 머릿속으로 마샤의 글씨를 그린다. 각 진 모음의 글꼴에 명조의 삐침을 넣어 자음을 만든 내 폰트의 이름은 ‘서영체’다. 오랫동안 군림해온 두 개의 폰트를 합친 이유는 익숙한 친근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명조의 삐침을 여리게 하고 고딕의 딱딱함을 부드럽게 공 굴려도 여전히 두 개의 서체는 너무나 달라 조합될 수 없었다. 조금 모양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오랜 세월의 무게를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이름을 그려주세요, 써주세요. 예쁜 글씨, 쓰고 싶어요. 한글, 이뻐요. 그림, 같아요. 한국말 잘하면 다른 사람, 될 것 같아요. 나는 내 나라 사랑하지만 한국도, 사랑해요.”

마샤가 노트를 내민다. 노트를 받으며 마샤의 푸른 상의를 들여다본다. 늦은 밤까지 제복을 입고 있는 마샤. 물음표를 남발하는 것 같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다.

“제복 입고 있으면, 제복이 유니폼이에요, 알죠? 제복 입고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요?”

“편해요. 이거 입어야 사람들, 내가, 누군지 알아요. 괜찮아요. 난 좋아요. 지금은 오피스텔 청소하지만, 난 달라질 거예요. 다른 사람, 될 거에요.”

“왜, 이름이 마샤예요? 좀 특이해서요. 마샤의 나라에서 보통 쓰는 이름이 아니잖아요?”

“우리 아버지, 선생님이에요, 러시아, 이야기 좋아해요, 많이 읽었어요, 마샤는, 모스크바에 가면, 다를 거라고 믿는, 여자 이름이에요, 아버지 나한테, 그랬어요. 나처럼, 살지 마, 안 돼, 더, 좋은 세상, 가, 그랬어요.”

마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더 좋은 세상에 와 있을지도 모를 마샤는 울면 더 약해진다는 금기사항이라도 새긴 것처럼 금세 눈물을 닦고 방긋 웃는다. 노트를 빤히 보며 자신의 이름이 쓰이기를 기다린다. 나는 푸른색 상의에 흘림체로 수놓은 마샤의 이름을 노트에 쓴다. 아니, 마샤의 말대로 마샤의 이름을 그린다. 쓰는 게 아니라 그린다, 이다. 마샤의 미음(ㅁ)은 아득한 평원에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울타리 같다. 시옷(ㅅ)은 한자의 ‘사람 인’ 자 같기도 하고 자음의 ‘ㅑ’ 와 만나 보드라운 느낌도 든다. 마샤는 내게서 노트를 받아 주의 깊게 본 후 내 글씨와 비슷하게 자신의 이름을 그린다.

마샤가 한글을 쓴다. 마샤의 글씨는 명조체도, 고딕체도 아닌 이 세상, 단 하나의 글씨처럼 보인다. 연필을 쥔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가 있고 마샤는 자신의 이름에 들어 있는 모음과 자음을 천천히 써내려간다. 마샤의 미음(ㅁ)은 어디에나 내걸어도 좋을 창이다. 시옷(ㅅ)은 평원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의 걸음 같고 자음의 ‘ㅑ’와 만나 씩씩한 느낌이 난다. 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처음 한글을 배웠던 시절, 나는 다섯 살이었다. 또래아이들보다 일찍 한글을 떼었고 내가 쓴 글씨는 모든 아이들이 흉내내고 싶어 할 만큼 예뻤다. 새로운 글씨체들을 마구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내 글씨를 모방했다. 그러나 간혹은 아이들의 외면을 받은 글씨들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찬사를 받지 못한 글씨를 원망하며 망설임 없이 휴지통에 버렸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누군가 그랬다. 즐기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고. 그러므로 나는 이길 수 없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마샤에게 주문한다.

“잘했어요. 다시 써 봐요.”

마샤는 연필을 다시 모아 쥔다.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고 중지로 연필을 받친다. 두 글자를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마샤의 눈빛은 진지하고 섬세하다. 마샤에게 한글은 더 좋은 세상의 창이 되고 있는 걸까.

제 이름을 써놓고 마샤는 무릎걸음으로 폐휴지 더미로 다가간다. 종이 한 장을 꺼내와 내 앞에 내민다.

“여기, 이 글씨처럼 써주세요.”

마샤가 내민 두툼한 아트지는 어떤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다. 독특한 서체로 디자인한 숫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것이 마감일이 멀지 않은 폰트디자인 공모 포스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글씨, 너무 예뻐요, 그림, 같아요. 똑같이 안 돼요, 될 것 같아요. 아, 될 거예요.”

콘테스트 제호를 아라베스크 문양과 결합시키고 보라색으로 농담을 조절한 ‘폰트디자인콘테스트’는 글자 하나하나 독립돼 있고 어울려 있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다른 글자들과의 어울림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나는 머리에 둔기를 맞은 것처럼 새로운 창을 발견한 느낌이다. 언젠가 내 글씨와 똑같이 쓸 거라는 확신에 찬 마샤의 말이 주문처럼 들린다. 마샤가 정성들여 글씨를 쓴다. 한글을 그림이라 생각한 마샤, 울타리를 치지 않고 창을 만든 마샤의 눈썰미는 아름답다. <끝>

이은조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딸기야놀러가자 > 마사이 마을에서.

어릴 적 보았던 소년잡지의 동물만화에는 마사이족이 곧잘 등장했다. 특유의 유선형 날이 달린 긴 창을 휘어잡고 사자를 좇는 마사이족은 야성의 상징이다. 케냐의 동서 고원을 가르고 있는 거대한 협곡은 모두 마사이족들의 땅이다. 개발의 길을 택한 다른 부족들이 나이로비와 뭄바사 같은 대도시에서 번잡한 현대인의 생활에 적응한 반면 마사이족들은 여전히 광활한 구릉과 협곡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케냐 남쪽 탄자니아 접경지대 암보셀리의 마사이 마을을 찾아갔다. 이 마을에는 182명이 살고 있는데 모두 4개 집안 사람들이다. 소, 양, 염소, 당나귀 따위를 키우고 세공품을 관광객들에게 팔고 집 구경을 시켜주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마사이의 소들은 건조기후에 적응해, 신기하게도 낙타처럼 등에 혹이 달렸다.
전형적인 마사이 마을에서 남자들은 울타리를 치고 여자들은 집을 짓는다. 하루 식사는 아침저녁 두 끼만. 우기와 건기에 맞춰 두 개 마을에 집을 지어놓고 연중 절반씩 거주하는데, 암보셀리에 지내는 동안 마사이족 아이들은 한국인 선교사가 지은 사마리아선교회 교회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한다.


암보셀리 공원 안에 마사이 마을이 있는데,
공원 입구에서 마사이족 소녀들이 목걸이랑 팔찌 따위를 들고 다니며 팔아요.


마사이 마을가는 길, 저렇게 돌로 된 표지판이 있어요


여기가 마사이마을이랍니다





흙벽에 초가지붕을 얹은 마사이족 야곱의 집에는 2개의 침실이 있었다. 하나는 부모 방, 하나는 아이들 방이다.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는 캄캄한 집안에 손바닥만한 창이 나 있고, 소가죽 침상에서 야곱의 가장 젊은 아내가 목걸이 구슬을 꿰고 있었다.
병원이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킬리만자로 숲의 약초에 의지해 살아간다. 중병에 걸려도 약초 뿐. 말라리아에는 에레미트라는 풀을 달여먹이고, 산모에게는 오르크콸라라는 것을 먹인다고 했다. 몇몇 남자들이 아카시아 나무와 백향목 줄기로 불을 피워 코끼리똥 말린 것에 불붙이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마을 구경의 마지막 순서인 마사이 장터에서는 여성들이 하루 종일 어두운 흙집에서 꿰어 만든 목걸이와 팔찌 같은 장신구들을 흙바닥에 늘어놓고 판다.
집집마다 여자들이 만든 물건들을 가마니 위에 `진열'해놓고 있지만 `자유시장'은 아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남자들 몇몇이 나서서 거간꾼이 되어 관광객들에게 강매하다시피 물건을 팔면 그 돈을 비교적 고르게 나누는 것 같았다.

마사이마을까지 동행한 레인저(안내원) 딕은 키쿠유족인데, "지금도 사자들은 마사이를 만나면 도망을 친다"고 했다. 설마 싶겠지만 사자들도 마사이는 알아본다는 것이다. 마사이의 빨간 옷, 그들이 몸에 바르는 독특한 향료가 있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마사이 사내아이들은 어른이 되려면 통과의례로 사자를 한 마리 씩 잡아야 했다. 암사자는 안 되고, 숫사자만 의미가 있다. 그러니 동물의 왕 사자들에게 마사이족은 그야말로 천적이었던 셈이다.
"사자들이 키쿠유족을 보면 도망 안 가나요?"
"어림도 없지, 우린 당장 도망가야지."
딕은 "사자들은 오직 마사이족만 구분한다"고 했다. 서양 식민세력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마구잡이로 `사냥'해가던 시절에도 노예화하지 못한 것이 마사이족이다. 노예상인들이 붙잡기만 하면 `죽거나 죽이거나' 둘중 하나를 택해 결국 끌고 가지 못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 마사이 전사들이 관광객들 앞에 문을 열어주고 춤을 보여주며 돈을 벌지만, 국경도 국적도 그들에겐 여전히 의미가 없다. 킬리만자로 일대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은 군데군데 열려있는데, 동물들과 마사이족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철따라 그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국경을 오간다.
마사이마을을 나와 다시 초원에 들어서니 톰슨가젤(영양의 일종)과 그란트가젤이 뛰어다녔다. 딕이 내게 물었다. "저기 타조 있네. 검은 것은 숫놈, 회색은 암놈. 알아요?" 야생동물은커녕 참새도 사라진 아파트촌에서 사는 내게 그런 상식을 기대하다니요. 그날 하루 종일 딕에게서 `동물 수업'을 받았다. 치타 두 마리가 얼룩말 떼를 쫓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먼지구름이 시야를 가렸다.

저녁이 되자 멀리 구름 낀 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킬리만자로! 눈 덮인 산 킬리만자로, 조용필의 노래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산에 로망을 갖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 땅에 있지만 국경 아주 가까이 있어서 암보셀리에서도 자태를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철에는 낮 동안 내내 구름 모자를 쓰고 있다. 레인저(사파리 안내원) 딕이 "저녁이 되면 산 꼭대기가 보일 것"이라고 했는데, 거짓말처럼 낮 동안 하늘을 덮었던 뿌연 구름들이 걷히고 푸른 산이 보였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인 킬리만자로는 열대의 만년설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그 눈마저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녹고 있다고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잡지나 다큐멘터리필름 속 모습보다 `눈 모자'는 확실히 작았다.



저 산이 킬리만자로랍니다.


코끼리가족은 엄마가 맨 앞 아빠가 맨 뒤, 단란하게 다녀요
생후 2주 된(딕의 말에 따르면) 아기코끼리도 보았어요. :)


어둑어둑해진 초원을 코끼리 가족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 나들이를 마치고 킬리만자로 기슭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레인저 차량들은 모두 멈춰 코끼리 가족의 퇴근을 기다려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이매지 > 초현실주의의 거장,르네 마그리트전

초현실주의의 거장,르네 마그리트전









전시개요
서울시립미술관은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공동으로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이자 초현실주의의 거장인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대규모 회고전을 2006년 12월부터 2007년 4월 까지 총 103일 간에 걸쳐 개최한다. 1898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마그리트는 1967년 작고하기까지 자신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창조하였고, 미술 뿐 아니라 다양한 대중문화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20세기 미술계의 거장 중 한 사람이다.

3년 여 간의 준비 기간 끝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마그리트 재단을 비롯해 뉴욕, 런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그리트의 걸작들과 세계 저명 컬렉터들의 소장품이 대거 출품되며, 초기작부터 작고 직전에 제작된 말년 작에 이르기까지 마그리트의 예술세계 전반에 걸친 대표작들이 두루 소개되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마그리트 회고전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2007년 가을 벨기에 왕립미술관 내에 개관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마련되는 이례적인 대규모 해외 전시로, 마그리트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접하기 힘들지 모를 마그리트의 마지막 대규모 해외 전시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빛의 제국> <회귀> <신뢰> 등을 비롯한 마그리트의 유화 대표작 70여점과 과슈, 드로잉, 판화 50여점 등 총 120여점에 달하는 회화 작품과 사진, 희귀 영상작업 및 친필 서신 150여점 등 총 27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작품과 자료들이 소개되어 마그리트의 삶과 예술을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한국에 오다!
3년 동안 숙성된 국내 최대의 전시가 될 것 서울시립미술관은 르네 마그리트의 예술적 전모를 살필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을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공동으로 개최한다. 지난 3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마련된 국내 최초의 이번 전시는 브뤼셀의 벨기에 왕립미술관, 마그리트 재단은 물론, 뉴욕, 런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마그리트의 걸작과 전 세계 저명 컬렉터들의 비장품을 대거 포함하는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시가 될 것이다.



진정한 마그리트 컬렉션, 작품가 6,000억
“빛의 제국”,“회귀”,“신뢰”등 유화, 과슈, 드로잉을 포함하는 회화 120여점과 친필 서신, 사진 등 총 270 여점에 달하는 마그리트의 주옥 같은 작품들이 희귀 영상자료들과 함께 소개되는 이번 한국에서의 회고전에는 지난 2006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마이욜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마그리트의 드로잉전과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파리의 유럽 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마그리트의 사진전에 소개되었던 작품들이 대부분 출품된다. 특히 함께 소개되는 영상작업의 경우, 그가 10대 때에 탐닉했던 에드거 알란 포우나 로버트 스티븐슨 원작의 판타지영화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마지막 해외 나들이
이번 회고전은 마그리트가 그의 작품에서 집요하게 차용ㆍ인용해온 사과, 돌, 새, 중절모, 벨, 담배 파이프, 여인의 특정 신체 부위 등과 함께 우리에게 몇몇 주요 회화작품 위주로 알려져 있는 마그리트와 그의 작품세계를 종합적,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이 2007년 가을 왕립미술관내에 개관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이례적으로 해외에 마그리트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전용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아마도 접하기 힘들지 모를 마그리트의 마지막 대규모 해외 나들이가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누구인가?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체념, 인내, 직업적 영웅주의, 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 민속학, 광고, 발표하는 목소리, 공기역학, 보이스카우트, 방충제 냄새, 순간의 사건, 술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마그리트-

‘그는 특히 미술가라는 이름을 거부하면서 자신은 ‘생각하는’사람이며 다른 이들이 음악이나 글로 생각을 나누듯이 자신은 회화를 통하여 사고를 교류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수잔 개블럭‘르네 마그리트’ 제1장 중-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흔히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 일컬어진다.
20대 초반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르네 마그리트는 초기 한때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며 살바도르 달리와 후앙 미로, 시인 폴 엘뤼아르 등 여러 초현실주의 화가, 시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마그리트는 당대의 초현실주의자들이 주로 탐닉했던 자동기술법이나 꿈의 세계에 대한 편집증적 탐구와는 다르게, 현실의 신비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적 태도라 할 수 있는 시적(詩的)이미지를 창조해 나간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논리를 뒤집는 이미지의 반란과 배신, 상식의 틀을 깨는 마그리트의 예술적 도전은 언제나 새롭고도 매혹적이며,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화법으로 초현실주의 화가로서의 그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독특한 시적인 창조 작업은 일상의 물체들을 화면 속에 기묘하게 병치시키거나 매력적으로 결합하는 방법에 있었다. 밤의 신비나 꿈의 세계,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혹은 그 경계에 존재하는 어떤 환상들을 주요 모티프로 활용하여,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하지만, 화면 속 대상들은 그와는 반대로 매우 사실적으로 정확히 묘사되어 있는 점이 이채롭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일상적 소재에 대한 기발한 발상으로 실재와 이미지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에게 관습적 사고의 거부와 시적 비전을 제시하며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현실 속의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과 의문을 던진다. 이로써 우리가 확신하는 일상 사물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그 만의 독특한 조형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마그리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의 작품은 아무런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은 가시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조형세계는 인간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기성과 현실의 경직된 질서 체계를 정확하고 세밀한 이미지를 통해 회화적으로 꼬집고 뒤집는 기묘하고도 야릇한, 비평적인 예술창작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그리트는 광적인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시도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냉혹함을 보이는 비개성적 초현실주의자이지만, 그 의도에 있어서는 마그리트 역시 초현실주의와 궤를 함께 하고 있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예술세계
1898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마그리트는 1916년부터 브뤼셀의 아카데미 데 보자르(Academi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하면서 미술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10여 년간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제작한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경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고, 1927년부터 3년 간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파리에 머물기도 했다.

1924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인 앙드레 브르통의「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결성된 초현실주의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했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벨, 담배 파이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 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처럼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 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산 속의 거대한 유리잔처럼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1940년대에 들어서 마그리트는 기존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식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vache) 시기의 작업이 그것이다. 인상주의 작가, 특히 르누아르의 영향을 반영하는 주제와 화려한 색채, 표현적인 붓 터치로 특징지어 지는 마그리트의 인상주의 시기 작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바슈 시기는 1947년 단 2주에 걸친 예외적인 실험으로 프랑스의 야수주의에 대한 영향과 동시에 풍자를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를 제외하면 마그리트의 작업은 193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주제와 이미지(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단어의 사용, 인간의 조건, 중절모를 쓴 남자)가 평생의 작업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뿐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로 대표되는 말과 사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의 2차원 공간 간의 모순을 다룬 ’인간의 조건‘ 등 마그리트의 예술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마그리트의 면모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 욕망의 세계에 보다 경도되었던 것에 비해 마그리트의 작품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진다. 실제로 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는 그의 그림은 시대를 초월하고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즈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 사의 사과모양 로고), 영화(매트릭스 시리즈), 문학(김영하의 <빛의 제국>), 교육(대학 입시 논술 고사 문제 및 어린이용 창의력 교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전히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면모가 바로 마그리트를 초현실주의의 거장에서 더 나아가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칭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마그리트의 대표적인 회화 작품 뿐 아니라 2006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마이욜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마그리트의 드로잉전과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파리의 유럽 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마그리트의 사진전에 소개되었던 사진 및 영상작업 등이 대부분 소개되어, 마그리트의 삶과 예술을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나의 그림을 상징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작품의 진정한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회화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하여 의지할만한 것을 원한다.......상징적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본질적인 시적 요소와 이미지의 신비함을 간과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신비감을 감지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떨쳐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물음으로써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만약 신비함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다른 반응을 할 것이다. 다른 것을 묻게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완벽한 지적 능력을 요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술가의 미적, 회화적 관심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자의 탐구의 대상이다. 무미건조하고 사실적인 그의 양식은 종종 비회화적이고 아카데믹하다고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명확한 사고를 보여 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생각을 눈에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 사고는 관념이 아닌 이미지와 함께 나간다. 이러한 회화의 의미는 기존의 어떠한 문학적인 설명이나 해석으로도 설명되지 않지만, 우리의 상식적인 믿음을 끊임없이 연구, 분석하고 존재의 모순을 조정하기 위하여 애쓴 철학자의 기질을 나타낸다.’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홈페이지 발췌 http://www.renemagritte.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merced > Praha 프라하와 무하미술관

Alphonse Mucha (1860-1939)

체코 화가, 장식화가. 모라비아 출생.  프라하의 미술학교 입시에 실패한 뒤 빈으로 나가 무대미술 공방(工房)에서 일하였고, 그 뒤 뮌헨에서 수업하다가 1888년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쥘리앵에서 공부하였다. 1894년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린 것이 크게 히트하여 명성을 떨쳤다. 사라와 계약한 6년 동안에 그린 포스터, 꽃과 여자의 화려한 무하 양식은 아르누보의 대명사가 되었다. 1904년 이후 몇 차례 미국으로 가서 그림도 그리고 교편도 잡았다. 1910년에는 조국으로 되돌아가, 18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면서 그린 대작 <슬라브서사시>를 완성하였다. 국장(國章)·우표·지폐도 디자인하였다.  --야후 백과사전--

사라 베르나르 공연 포스터. 무하는 Gismonda 석판화로 처음 유명해졌다.
나는 MEDEE 가 마음에 든다.

         

Gismonda, 1894, Poster (74.2 x 216 cm)      Medee, 1898, Lithograph (76 x 206 cm)


Dance, 1898, Decorative panel (38 x 60 cm)


Princess Hyacint, 1911

Moet & Chandon Cremant Imperial, 1899, Poster (23 x 60.8 cm)

무하 미술관 말고도 프라하의 여기저기에서 무하의 석판화를 전시하고 있다.
직접 본건 아니지만, <네개의 별> 연작 (1902) 이 좋다.
[저녁별, 달, 아침별, 북극별]

       

         

무하의 그림이 더 보고 싶다면 아래 사이트 추천!
http://www.artrenewal.org/asp/database/art.asp?aid=598&page=6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 한 면도 무하의 작품이다.


프라하 성> 성 비투스 대성당



프라하 성> 황금소로.  저기 파란집은 옛날엔 카프카의 작업실.

길쭘한 바츨라프 광장

구시가 광장의 얀후스 동상

구시가 광장과 만나는 지점의 첼레트나 거리. 광장 맞은편으로 보이는 건 구시청사 건물.

구시청사 종탑에서 내려다 봄

틴 성모 교회

멀리 언덕 위엔 프라하 성

까렐 다리의 해저물녁.
양 옆으로 성인들의 동상이 줄줄이 있는 다리. 프라하의 상징.

낮에도 저녁에도 복작복작하던데.... 이른 아침엔 이런 풍경을 볼 수도 있겠구나...  프라하 환상.


www.pragia.cz/en/tours.html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의 클래시컬 돈죠반니를 보고 싶었는데,
살짝 꼬여서 프라하 오페라 마리오네트 극장의 코믹하게 만든 돈죠반니를 보게 되었다. 어... 이게 아닌데....

프라하에서 데려온 친구. 요즘 열심히 춤 연습을 하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6-11-3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이미 한 번 다녀왔지만 그래도) 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후훗

urblue 2006-11-3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언제나 갈 수 있으려는지... 부러워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