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erced > 프랑크푸르트 > 슈테델뮤지엄

도서전 마지막날은 30m를 움직이는 데 10분은 걸리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책을 제대로 볼 수 있기나 한 건지.  작가님 사인회와 몇가지 마무리할 일들로 전시장에 갔다가, 반가웠어, 수고했어, 안녕, 안녕, 다음에 또 봐요, 우린 이만 간다, 인사하는 데만 또 한참.

점심을 먹고 트램을 타고 마인강 건너 미술관 거리, 슈테델 뮤지엄에 갔다.  8유로짜리 티켓을 끊으면 입장권에 미술관 카페에서 커피 한잔 케익 한조각이 포함된다 (입장권만은 5유로).  1층 다 둘러보고 나면 출출한데, 다리도 쉴 겸, 딱 좋다.



뮤지엄 입구. 날이 흐렸다.  아래 사진은 뮤지엄 웹사이트에서 퍼옴. 
오호, 맑은 날 강 건너에선 이렇게 보이는구나.



슈테델 뮤지엄에는 14-16세기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종교화가 많다 (크고, 무섭고, 어떤 것들은 잔혹하다).  17-18세기 네덜란드 작품 컬렉션이 훌륭하다.  19세기 프랑스 인상파는 기대에 못 미치게 얼마 되지 않았다.  램브란트, 꾸르베, 모네, 뒤러, 르누아르 등등 거장의 이름에 혹했으나 작가마다 한두점 정도? 


르누아르, 점심 먹은 후에, 1879. 
담뱃불을 붙이는 남자의 게슴츠레 뜨다 만 눈이 압권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다 싸이코 같다.  가까이서 보면 겹겹이 떡진 물감인데, 햇빛 찬란한 풍경, 붉은 빛이 언뜻언뜻 비쳐나는 연꽃, 하늘거리는 옷자락을 어떻게 담아내는 것일까.  맨정신일 리가 없다.


Hans Thoma, Die Oed (무슨 뜻이냐), 1883

신기하여라, 여러 작품 이런 풍경화인데, 마법사가 그림 틀 속에 인물과 풍경을 가둔 것처럼, 살아 있는 풍경 실제의 순간을 정지시켜 그림 속에 꼭 잡아 놓은 듯, 바라보면 꼭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림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마술에 걸려 그림 속에 갇힌 사연을 듣고 그 사람을 구출해 현실로 돌아오거나, 그 사람은 탈출하고 나는 갇히거나 -- 알고보니 그 사람도 원래 갇혔던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빨려들어 온건데 그렇게 당해서 그동안 갇혀 있었다 --, 더 바람직한 것은 그림 속의 세상이 좋아 나도 그냥 거기 살기로 한다).

   Hans Thoma, Auf Der Waldwiese, 1876

 


Lionello Balestrieri, Beethoven

이 그림, 마음에 들었다. 제목은 베토벤이라지만 아무도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방안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절망에 빠져 있거나 피곤에 쩔어 멍하니 있다.
베토벤과 피아노를 제외한 방의 뒤편은 이미 반쯤 어둠의 세계인양 형체들이 불분명하고 그로테스크하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더 뚜렷하다.  오른쪽 구석, 발갛게 타오르는 난로의 빛이 새어 나오는 모양도 인상적이다.  제일 뒤쪽에 허연 대머리 아저씨는 방에 들어오고 있는 사람인지 유령인지 정체를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열심히 듣는 것은 아니지만, 무념인 채로 음악이 몸 속으로 그냥 흘러들어오게들, 아주 잘 듣고 있는 것인지도...  그 음악은 또 방안의 인상을 담아내는, 쓸쓸하고 무심한 듯 하면서 가슴 아린 선율일 것 같다.


Lucas van Valckenborch, View of Antwerp with the Frozen Schelde, 1590

16-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는 스케일은 크지만 소박하고 사람이 사는 풍경이고 사실적이면서도 유머가 있다.  풍속화라 해야 할까... 브뤼겔의 그림들도 그렇고...  소재로서의 풍경은 칙칙할 것 같으나, 계절이 또 공간이 본래 가진 칙칙함도 그대로 사실적인데, 색감은 종교화나 동화의 삽화처럼 따뜻하고 몽롱하다.  

(아래 브뤼겔의 작품들은 슈테델 뮤지엄에 있지 않다) 


Pieter Bruegel, The Hunters in the Snow, 1565;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Pieter Bruegel, The Harvesters, 1565;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Pieter Bruegel, Peasant wedding c. 1568;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마음에 들었던, 꾸르베의 겨울 풍경.

  

베르메르를 만나다:

들어오는 길에 뮤지엄샵에서 본 엽서들중에 이 그림만은 어쩐지 꼭 봐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에 어떤 작품이 좋다더라, 꼭 이걸 봐야겠다 하는 것도 없었고, 뭐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일단 1층을 휘적휘적 다니며 이것저것 다 들여다보니, 뮤지엄도 꽤 크고 작품도 많다, 그러니까 다리도 눈도 아프다.  그냥 갈까도 싶었는데, 2층에서 계속 그 그림이 나를 가만 부르는 것 같다.  


Johannes Vermeer, The Geographer, c. 1668

그림을 보는 순간 (크지도 않다 53 x 46,6 cm), 어라, 가슴이 아프다.  저 남자 아는 사람 같다.  에,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던 거냐... 
유약한 듯도 하고 생각이 깊고 단호할 것 같기도 하고.   지도를 펼치고 한참 해야 할 일에 몰두하고 있었던 듯 한데,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무엇이 그를 일하던 자세 그대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만들었을까.  그의 시선은 캔버스 너머 벽을 향하고 있지만, 정신은 다른 데 가 있다.  다른 생각이 든 그 순간이 그대로 멈추어 있다.
게다가 이 정적인 분위기, 얼굴과 지도에 반사되는 저 햇빛, 어쩌자고 저런 찰나를 담아낸 것일까, 으아아.... 이렇게 몰두해 있으면서도 넋나간 그림이라니, 그리고 바라보는 나도, 넋이 나갈 것 같다. 

                                  Johannes Vermeer, 물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 c. 1662

처음엔 이 그림 때문에었다.  뉴욕 매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본 이 그림.   엽서를 보면서 언뜻, 그림 속의 남자와 이 여인이 서로 아는 사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끌리지는 않았지만, 선명한 듯하면서 뿌연 색감과 부드럽고 흐릿한 것 같으면서 분명한 선이 인상에 남았던 이 그림.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가슴을 울리지 않았던 거다.  작가가 누군지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했으니.  아닌 게 아니라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둘이 어쨌거나 친구는 친구다.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찾아보고 그에 관한 글들도 읽고 (썩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전에 서점에서 보고 읽을까 말까 망설였던 책-- 아, 이 그림도 베르메르구나, 주문했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모델이 화가는 아닐 텐데, 소설을 읽으며 난 자꾸 베르메르의 모습을 지오그래퍼의 그 남자로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베르메르의 묘한 분위기, 소녀들의 속을 전혀 읽을 수 없는 눈빛은  이렇게 깜찍한 광고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2003년 1월 뉴욕. 42번가의 대형 광고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약칭인 MET, <소녀의 초상>이 깊은 눈, 옅은 미소로
HAVE WE "MET"?
이라고 묻고 있다.  어찌 아니 만나러 갈 수 있는겠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udan 2005-12-16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내주는 그림평이네요. 인상파 화가들은 다 싸이코. 크크.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urblue 2005-12-1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지요? ^^

하늘바람 2005-12-1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드물게 보던 그림들 구경도 잘하고요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가져갈게요

urblue 2005-12-16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쓴 친구가 이야기를 잘 하지요. 근데 자주 안 써서 문제네요. ^^
 
 전출처 : happyant > [퍼옴]인권하루소식 독자와 인권활동가가 함께 뽑은 2005년 10대 인권소식

인권하루소식 독자와 인권활동가가 함께 뽑은 2005년 10대 인권소식  
 인권하루소식  
   
 [편집자주] 10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2005년 10대 인권소식'을 발표합니다. <인권하루소식>은 인권하루소식 독자와 인권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올 한해 동안 발생한 주요 인권사건(전체 51문항)에 대해 설문조사(각 10개 문항 응답)를 벌여 '2005년 10대 인권소식'을 선정했습니다. 11월 30일부터 12월 8일까지 9일간 실시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모두 104명의 독자와 인권활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1. 농민 생존권 위협하는 쌀협상 비준안 국회 가결…고 전용철 씨 등 농민 죽음 잇달아 (78.8%)

올 하반기에만 쌀 개방을 막기 위해 3명의 농민이 자결했다. 그리고 11월 23일 쌀 개방 비준 협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다음날 충남 보령의 전용철 농민은 뇌손상에 의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는 11월 15일 쌀협상 비준안 저지를 위한 여의도 농민대회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의 폭력진압 과정에서 가격을 당해 넘어져 뇌손상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쌀이 우리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26%라고 하지만, 유일하게 소비량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쌀을 제외하고 나면 식량 자급률은 2%밖에 되지 않는다. 농업문제는 단순히 교역 문제로 치환될 수 없는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식량주권 차원에서 무리해서라도 농업을 지키려고 하고, WTO 규정을 무시하고 각종 명목의 편법적인 보조금으로 농업과 농촌을 지원한다.

농업이 망할 때, 이후 곡물 메이저가 부르는 대로 비싼 돈을 주고 곡물을 수입해야 하고, 그것이 무기가 되어 다국적 기업과 자본에 대한 종속성이 더욱 심화되리라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쌀 협상을 놓고 정부는 이면협상의 내용을 숨기고 있고, 급락하는 쌀 값으로 인한 농촌소득 보전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쌀협상 비준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쌀 개방 문제는 12월 WTO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다시 한번 더 큰 위기를 맞을 지도 모른다. 농민들의 생존권은 더욱 위협받게 되고 생존권 확보를 위한 농민들의 절망적인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2. 비정규직 확대 불러올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안…노동자들 총파업 불사하며 결사 저지 태세 (55.8%)

지난해 말 회부된 비정규 개악법안이 노동자들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9월 정기국회에 또다시 상정돼 분노를 사고 있다.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은 날이 갈수록 참담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단결하고 단체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최저임금 수준을 밑도는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고 있다. 날로 교묘해지는 감시와 노동탄압은 노동자들의 건강할 권리를 곳곳에서 침해하고 있다. 비정규 개악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오히려 확산하는 법안으로 비판받고 있다.

2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된 이후 4월 14일 인권위의 의견표명으로 비정규직 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운동은 가속도가 붙었다. 인권위의 의견은 파견법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기준도 마련하지 못하는 등 한계가 있었으나 재계와 여당의 '비정규직 문제가 왜 인권이냐'는 황당한 반응으로 인해 오히려 빛을 발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10월 16일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의 출범은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기대하게 한다. 근본적인 현실진단에서 출발한 요구안을 들고 끝까지 투쟁을 만들어나갈 연대조직이 탄생한 셈이다. 민주노총 역시 12월 1일 총파업에 돌입해 정부의 비정규 개악법안을 거부하고 있다. 같은 날 발표된 '7개 시민단체 조정안'은 원칙을 저버린 타협안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온몸으로 비정규 개악법안을 막아내겠다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비정규 개악법안을 끝장내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올해 겨울에도 타들어가고 있다.


3. 세상을 흔든 '초록의 공명' - 지율과 도룡뇽의 친구들 (49.0%)

겨울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2월의 광화문, 하나둘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방방곡곡 마음을 접어 보내온, 무려 12만마리에 이르는 종이 도룡뇽들도 함께 했다. '지율스님을 살리자! 천성산을 살리자!' 손발은 꽁꽁 얼어붙어도 마음만은 뜨거웠다. 이윽고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천성산 고속터널공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민간합동으로 조사하자는 요구를 마침내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지율스님이 단식을 시작한 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율스님과 천성산대책위는 2001년부터 꼬리치레 도룡뇽을 비롯한 천성산 뭇생명들을 파괴하는 고속터널공사의 중단을 요구해왔다. 공사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정부가 등장했음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약속 뒤집기를 밥 먹듯 하는 정부에 맞서 스님은 2003년부터 모두 4차례나 단식을 결행했지만, 정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도룡뇽 소송' 역시 1심과 2심 모두에서 패배했다. 도룡뇽을 원고로 내세워 공사 중단을 요구했던 이 '자연의 권리' 소송은 그렇게 끝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도룡뇽의 친구들'은 점차 늘어나 전국 40만에 이르렀고, 2005년을 맞으면서 천성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무분별한 개발과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렇게 모아진 힘이 2월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9월 어렵사리 시작된 공동조사는 순탄치 않았다. 조사가 마무리되고 분석작업을 남겨둔 11월말,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정부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의도적으로 흘렸고 스님을 매도했다. 공동조사는 또다시 파국 위기에 몰렸다. 민간조사단은 오는 13일까지 공단이 사과하지 않을 경우 공동조사에서 빠질 계획이다. 그 사이 지난 1일부터 천성산의 심장을 뚫는 발파공사가 재개됐다.

천성산과 도룡뇽의 최종 운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초록의 공명'이라는 울림은 요식절차로 전락한 환경영향평가와 무분별한 개발에 경종을 울렸다. 인간의 존엄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자연의 존엄'을 주장한 이 운동은 인권운동에도 생태주의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4.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 '활활' (41.3%)

이라크에서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더욱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결정권도 미국에 넘겨줄 수 없다는 저항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은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을 통해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 재편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한강 이북의 용산 미군기지와 미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전면 후방 배치하겠다는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주요한 군사적 압박정책이다. 실제로 주한미군의 '작전계획 5030' 등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대북 선제공격 군사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한반도 평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더군다나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 재편은 주일미군의 재편과 함께 중동 지역에서 미군의 군사적 전선이 형성된 것과 더불어 동북아 지역에도 한-미-일 합동 군사력을 중심으로 북-중을 대상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거대한 군사적 화약고로 만드는 치명적인 평화 위협 요소가 될 전망이다.

한편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을 통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팽성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땅을 일궈온 농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낼 것으로 예상되어 더욱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예상지역인 팽성 주민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토지 수용정책에 격렬히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 의한 토지수용 절차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토지 강제수용이 실시되면 강제철거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1년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팽성에서 촛불을 밝혀온 농민들과의 거센 충돌이 우려된다.

지난 7월 10일 팽성 대추초등학교에서 1만2천여 명이 모여 '한반도 평화와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한 1차 평화대행진'을 성공적으로 마친데 이어 12월 11일에는 평택역 앞에서 2차 평화대행진이 대규모로 진행돼 '미군에게 한반도 평화의 결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전민중적인 의지를 모을 예정이다.


5. 배아줄기세포연구를 둘러싼 논란… '국익과 영웅이면 다 돼(?)' (40.4%)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연구에 연구원의 난자 사용이 밝혀지면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윤리문제는 정점에 다다랐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난자를 기증한 여성은 난자채취 과정의 고통이며 부작용을 알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매매된 난자가 황우석 연구팀에게 제공됐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대부분 여론의 쟁점은 여성의 몸을 위협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아니라 '별것도 아닌 일을 드러내는 언론'으로 맞춰졌다.

문제가 불거지면서 언론에서는 '황우석 효과로 벌어들이는 수익'과 기술 '특허' 위기 보도가 연일 계속되었고 황 박사 쫓기에 여념이 없었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한 국익론의 시작은 제기된 인권문제에 대한 검증과 언급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여론으로 자리잡으며 전체주의 양상마저 띠고 있다. 단지, 일부 언론과 단체, 종교계에서만 여성의 인권, 난자 매매를 우려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연구 문제를 보도한 <문화방송>(MBC) PD수첩이 취재윤리 위반으로 중단되면서 애초 제기된 의혹과 문제까지도 거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매매된 난자의 사용, 연구원 난자 사용의 과정, 기증자의 동의과정, 연구성과의 진위 등에 대해 황우석 연구팀은 여전히 속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6. 헌재, 호주제 헌법 불합치 결정…"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 (38.5%)

올해는 여성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악법으로 불리는 호주제가 폐지되고, 대안적인 신분증명제도가 공론화 됐다는 점에서 인권운동은 한걸음을 내딛었다. 1957년 민법제정부터 호주제는 '부가 입적' '호주 승계시 남성 우선' 등의 규정으로 가정 내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남아선호 사상을 유지·강화시켜왔다. 또한 호주를 정점으로 가(家) 단위로 편제되는 신분등록제인 호적제는 호주와의 관계를 통해 개인의 신원을 증명해 왔다. 한마디로 호주제와 호적제는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이 사회에서 부계중심성, 가부장성을 대표해온 제도이다.

지난 50년간 여성단체를 비롯하여 인권단체에서 끊임없이 호주제 폐지를 주장해왔고, 드디어 올해 그 성과가 가시화 됐다. 출발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2월 4일 헌법재판소가 호주제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조항들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 헌법재판소는 호주제가 성(性)에 기초해 가족구성원의 법적 지위를 차별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라고 결정했다. 이에 3월 2일 국회는 재적 296명 가운데 235명이 투표해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로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호주제 폐지는 법률적으로나마 '남성이나 가족'을 통하지 않고도 여성이 자신의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점, 가족 내 평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가족해체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현실과 부합하지 않은 가족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점,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부성원칙주의를 따르고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11월 호적을 대신할 신분증명제에 대해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 취지에 어긋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 이에 대한 반대의 흐름도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다. 호주제 폐지의 성과는 인권의 원칙에 부합하는 '개인기준 목적별 편제방식'으로 입법활동이 이루어져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7. 두발자유화, 인권을 향한 청소년들의 힘찬 비상 (37.5%)

2000년 온라인에서 시작한 두발자유화 운동이 올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강제로 머리를 깎이는 등 두발규제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심각해지자 학교 홈페이지에 항의문을 올리고, 일명 '락카 시위'를 하는 등 두발자유화를 향한 청소년들의 외침이 봇물처럼 또다시 터져 나온 것.

청소년들의 이같은 외침은 머리를 조금 더 기르게 해달라는 요구를 뛰어넘어 머리조차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저항행동이었으며, 자유를 향한 힘찬 비상이었다. '두발자유학생운동본부', '두발자유법제화를위한연대', '학생인권수호네트워크' 등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조직을 만들기도 했으며 촛불집회, 거리축제 등 온라인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청소년들의 직접행동이 이어졌다.

그러자 학교측은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을 징계하거나 자퇴를 권유하는 등 처벌로 일관했다. 교육부와 교육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소년들의 정당한 요구에는 눈과 귀를 막은 채 '학생집단행동 예방대책' 등을 꾸리며 청소년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저항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청소년들은 학내 두발규제에 대한 인권침해를 조사해줄 것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7월에 "학생두발자유는 기본권으로 인정되어야한다"는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철옹성 같은 학교를 무너뜨리기에 청소년들의 저항이 미흡해 두발규제라는 인권침해가 여전히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고, 마치 5년 전을 답습하는 듯이 보이지만 청소년 스스로 인권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2학기 들어 잠잠해졌던 두발자유화 운동이 수원을 중심으로 지난달부터 다시 일렁이고 있다. 아직 두발자유화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8. 경찰, 강정구 교수 글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천정배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에게 불구속수사 지휘 (36.5%)

한 교수의 학문적 주장이 또다시 마녀사냥에 걸려들었다. 지난 8월 맥아더 동상 철거 논쟁이 한창일 당시 강정구 교수가 한 인터넷 매체에 "한국전쟁은 북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 전쟁"이라고 주장한 것이 매카시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글이 발표된 후 자유개척청년단 등 23개 보수 시민단체 회원 820여명은 '북을 고무 찬양하고 내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고발했고 경찰과 검찰은 이에 화답하듯 강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중이다. 또한 2001년 이른바 '만경대 방명록 사건의 재판'까지 2년 11개월 만인 이달 23일 재개된다. 이 사건의 이적성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재판부는 한국정치연구회와 한국역사연구회에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역사연구회는 강 교수의 행동은 '다양한 학문적 견해'라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이다.

강 교수의 주장이 하나의 의견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국가의 심판과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하는 현실은, 학문이라는 한정적인 영역에서조차 표현의 자유가 자유롭게 숨쉴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불온한 사상'일지언정 말하고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권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사람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되찾아오기 위해서 갈 길은 험난하다.


9. 첫 이주노동자 독자 노조 출범…정부, 아노아르 위원장 표적연행하고 노조설립신고서 반려 (34.6%)

첫 이주노동자들의 독자적인 노동조합,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4월 24일 출범했다. 2001년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의 한 지부로 시작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지난해 380일 동안의 명동성당 농성을 거쳐 단속추방반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노동허가제 도입을 요구하며 독자적인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없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주된 구성원이라는 이유를 들어 6월 3일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장에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이에 앞서 이주노조의 첫 위원장으로 선출된 아노아르 씨가 5월 14일 새벽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뚝섬역 출구로 나가던 중 출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 의해 표적연행됐다. 지난해 샤멀 타파 이주농성단 대표가 추방되었듯이 그도 강제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다.

연행과정의 폭력과 출입국사무소장의 직인도 없는 보호명령서로 이뤄진 '보호'가 불법이므로 즉각 석방해야 한다는 이주노조의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출입국사무소가 적법절차를 위반한 것은 맞지만 법정시간인 48시간이 지나 재발부된 보호명령서가 적법하다고 결정했다. 분노한 이주노동자들은 인권위원 전원사퇴와 아노아르 위원장 석방을 요구하며 12월 5일 인권위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자본의 질서는 여성과 남성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나누는 것도 모자라 외국인과 내국인을 나눈다. 엄연히 이 땅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출입국관리법이 합법과 불법으로 나눠도 이들이 노동자인 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결사의 자유는 노동권 확보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10. 사회보호법 25년 악명을 끝내고…… (33.7%)

이중처벌, 인권침해로 악명을 떨치던 사회보호법이 6월 29일 폐지되었다. 1980년 전두환 군사반란 정권의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들어진 이래 25년, 2002년 청송 피보호 감호자들이 집단단식을 한 지 3년만의 일이다.

범죄자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 사회보호에 대한 막연한 필요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지만, 사회보호법은 인권침해 당사자들의 끈질긴 몸부림과 어깨 걸고 함께 했던 인권단체들의 행동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인권신장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송감호소에 수용되어 있는 피보호 감호자들 그리고 감호가 병과된 채 징역형을 살고 있는 수형자들! 이들에 대한 감호집행은 사회보호법이 폐지된 이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10년여간 사회보호법의 망령을 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정신장애인들을 격리 수용해 온 '치료감호'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것도 문제다. 인권단체들이 사회보호법 폐지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천명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반인권 악법을 폐지해 본 경험이 일천한 한국사회에서 사회보호법 폐지는 가히 기념비적인 일이라 하겠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노동악법들이 더욱 개악될 위기에 있는 오늘날, 사회보호법 폐지는 인권보호를 위한 법(률)의 제ㆍ개정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밖에 △철군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 국회 제출(30.8%)이 11위였으며 △'국정원 엑스파일' 폭로로 드러난 도청실태와 물꼬 터진 국정원 개혁논의(28.8%)와 △기륭전자·신세계이마트·하이텍공대위 등 이중의 굴레 안고 투쟁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28.8%)이 공동으로 그 뒤를 이었다. 또, △성매매방지법 1년, '성매매는 범죄라는 인식 확산', '실효성 없다' 평가 엇갈려…성노동자운동 제기되기도(26.9%) △공급확대·규제완화 골자 '8.31부동산 종합대책'…시장중심 주거정책에서 주거공공성 확보로 방향틀어야(26.0%) △병역거부 수감자 1000명 넘어서…국회 대체복무제도 논의는 지지부진(25.0%) 등이 올해 주목을 받은 주요 인권소식이다. 

------------------------------------------------------------------------------------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에서 퍼옴.

이런 ' 소식'이 '10대 가수상 수상자 명단'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읽힐 날은 언제나 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조선인 > 몰래 산타가 되어주세요.


몰래 산타가 되실 분은 여기로 ->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_m.aspx?pn=051208_sant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숨은아이 > ㅍ/고흐의 그림을 자수로... 초대권 있음

고흐 붓터치까지…섬세한 자수 작품들

유화물감 듬뿍 찍어 화폭 위 내달린 흔적 오로지 손 자수로 재연
사간동 빛갤러리 ‘전통자수로 만나는 반 고흐 걸작전’ 열어

미디어다음 / 고양의 프리랜서 기자

해바라기, 밤의 카페테라스 등 특유의 이글대는 듯한 붓 터치로 유명한 반 고흐의 명작을 한국 전통자수로 섬세하게 재현한 작품이 전시된다. 사간동 빛갤러리에서 다음달 28일까지 열리는 ‘전통자수로 만나는 반 고흐 걸작전’에서는 초기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부터 유작 ‘까마귀 나는 밀밭’에 이르기까지 총 20점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유화로 그려진 반 고흐의 그림을 원화 크기 그대로 전통자수로 모사한 독특한 방식이 돋보인다.

밝은 색채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마치 유화물감을 듬뿍 찍어 그린 듯 화폭 위를 내달린 흔적이 오로지 손 자수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모두 전통자수 경력 20~40여 년에 달하는 장인들이 제작한 작품들이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달 내외. 원화에서 볼 수 있는 붓 터치의 결을 살려 여러 방향에서 수를 놓아 원화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색채까지 모사함은 물론,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그림이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했다.

마치 조각도로 새기듯 작은 색면을 화려한 색실로 수놓은 화면은 전통자수의 새로운 매력을 전해준다.

주로 실을 꼬아서 수를 놓았는데 이는 섬세한 푼사수(실을 간격 없이 고루 펴서 수평으로 나란히 수놓는 기법)에 비해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화면에 입체감과 묵직한 질량감을 부여한다.

예컨대 ‘까마귀 나는 밀밭’과 같은 작품은 하늘의 미묘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 미묘하게 다른 색감의 두 가지 실을 꼬아 수를 놓음으로써 마치 물감이 팔레트 위에서 뒤섞이듯 색채가 자연스럽게 섞여 보인다.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손 자수와 역동적인 현대 회화가 어우러져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 고흐의 그림들은 평소 원화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것이어서 더욱 반갑다.

비록 모사작품이기는 하지만 색다른 방식으로 재현된 고흐의 명작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전시 관람료는 2000원이며, 초대권(링크)을 인쇄해 가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12월 10일까지). 포토존 이벤트에 참여한 관람객을 대상으로 반 고흐 문화상품을 추첨 선물하는 이벤트도 실시한다. 자세한 문의는

 

 ivangogh.com, 02-720-2250.

 

http://photo-media.hanmail.net/daum/featureOnly/200511/29/20051129120720.22.jpg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udan 2005-12-0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아. 저게 자수란 말입니까..

2005-12-01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12-0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신가보다 했어요. 괜찮아요. ^^
저도 요 며칠 좀 바빠서, 지금 책 주문하려고 잠깐 들어왔어요. 에휴.

sudan 2005-12-0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바쁜 와중에도 책을? 크크.
어째 요즘 안 보이시더라구요. 연말 잘 보내세요.(너무 이른 인사인가?)
 
 전출처 : merced > 와인 컨츄리 – 영화 Sideways에 부쳐

어쩌다 이 훌륭한 영화를 극장에서 놓쳐서 컴퓨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 보게 되었다. 집에서 보게 된 것의 좋은 점은, 보다보니 와인이 마시고 싶어졌는데, 음,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는 것.

이 영화가 나온 후 와인 판매량이 10%가 늘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선지 미국에서만이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 와인의 특징이라면, 와인 종이 곧 단일 품종의 포도여서, 와이너리마다 기후가 다른 해마다의 포도맛의 차이를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햇빛 찬란한 기후, 영양 풍부한 신대륙의 토양은 맛있는 포도를 길러낸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호주의 와인은 싸고 맛있고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와인의 대중화를 주도했다.

미국 와인은 캘리포니아에서 거의, 오레건에서 조금, 그러니까 서부 해안 인근에서 주로 생산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40분쯤 북쪽으로,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주요 생산지이며 와인농장들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다. 차로 한시간을 달려도 양옆으로 계속 포도밭이다.

두 곳 다 한번씩밖에 안 가보았지만, 괜히 소노마 카운티 더 마음이 간다. 굳이 비교하자면 나파 밸리는 어쩐지 포도밭과 와인만 있는 대량생산공장 같고, 소노마 카운티는 뭐랄까, 좀 더 농원 같고, 사람이 사는 것 같고 그렇다. 소노마 카운티의 와이너리들에는 포도밭 체험, 도자기 만들기, 요리 경연 같은 이벤트들도 다양하고 워낙에 관광지로 잘 개발해서 스파가 많다. 그러니까 와이너리 돌아다니며 시음하다가 마사지 좀 받다가 해변에 가서 또 노닥거리다가, 라벤더 향도 좋고 (와인 컨츄리엔 라벤더가 지천으로 자란다)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웰빙도 겸하여 잘 놀고 잘 마시고 잘 쉴 수 있는 곳이다.
(와이너리들의 크기로 보나, 브랜드로 보나, 소노마 카운티의 와이너리들이 나파 밸리보다 소규모라거나 할 수는 없다. 그냥 두 지역에 대한 내 멋대로의 인상이다)



소노마 카운티 알렉산더 밸리, 겨울 풍경



여러 와이너리 이정표

그 다음으로 유명한 와인 컨츄리가 사이드웨이의 배경인 중부 캘리포니아이다. 산타바바라와 솔뱅에서부터 북쪽으로 산 루이스 오비스포 즈음까지 해안의 약간 안쪽을 따라 펼쳐진 포도밭 언덕들과 파란 하늘의 경치가 일품이다. 와이너리를 들르지 않더라도 오른쪽에 포도밭 언덕과 바위산, 왼편으로 푸르고 아름다운 태평양 해안을 엇갈려 보게 되므로 기분이 좋아지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면 공짜로 또는 5달러 정도를 내고 그 와이너리의 최근 5-7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5달러를 내는 곳은 대부분 잔값이라고 한다. 다 먹고 잔을 갖고 오면 된다)



4월의 산타바바라, 와이너리에서 바라본 풍경

와인이란 섬세하여 빛도 보고, 액체의 질감도 보고, 그냥 냄새를 맡아보았다가 잔을 돌려 냄새를 맡아보고 혀를 굴리며 맛을 보고, 그래야 한다고 한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재미난 법이지만 법도에 좀 어긋난다고 해서 즐거움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감각에 닿는 것 아닌가? 좋은 것은 좋은 줄 알게 마련. 설교하듯 가르치듯 와인을 따라주는, 또 잔의 모양과 와인의 온도 먹는 순서 등등을 안 지키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아는 와인웨이터는 딱 질색이다. 그런 잔소리를 듣다가 제일 중요한 입맛과 기분이 상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말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어느 와이너리에 들렀다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빠져나오는 장면이 있다. 마일즈처럼 뭘 좀 알아도, 기분이 잡치면 병나발을 불 수도 있고 아끼던 고급 와인을 햄버거 가게에서 콜라잔에 따라먹을 까닭도 있는 것이다. )

들은 말로 와인에 관한 영화라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 보아서 그랬는지, 막상 영화는 그저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지극히 일상적인, 리얼리스틱한 사람들이다.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동양여성을 만난다면 꼭 스테파니 같을 것이고 (입양되어 자랐고 18살이 되자마자 집을 뛰쳐나왔고, 흑인 또는 백인 남성 사이에서 나은 혼혈아가 있고, 이혼했거나 미혼이고, 활달하고 긍정적인 성격) , 로스엔젤레스 인근에 많이 사는 아르미니언 이민자들은 가업을 일구고 (틀림없이 보석 가공업이다) 저택 같은 집을 소유할 만큼 한자리 잡고도 사업 물려줄 아들이 없을 땐 별볼일 없는 영화배우인 잭 같은 백인 남성과 기꺼이 딸을 결혼시키기도 한다. 음악과 함께 찬란한 포도밭, 잠깐 스쳐가는 풍경이었지만, 포도를 따고 나르는 사람들은 모두 히스패닉이고, "좋아하는 와인에 묻혀 푹 쉬겠노라"는 우아한 휴가 계획을 가진 남자는 아직도 어머니의 쌈짓돈을 슬쩍 하고 분위기는 지독히도 못 맞추며, 그놈의 휴가 계획은 자꾸 어긋나고, 또 따지고 보면 뜻한 바에서 크게 벗어난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영화의 배경은 산타바바라 카운티 와인 컨츄리이고 주인공들은 이래저래 와인과 관련이 많다.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 또는 직업에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듯, 결함 많은 인물들의 사는 이야기, 삶에 대한 태도가 와인에 녹아들고 와인잔에 비쳐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교훈은 "남자들이란 하여간…"이다.)
그러니까 다시, 이 영화가 와인 소비량의 증진에 기여한 까닭을 생각해 보건데, 비싼 와인 창고를 들여다 보거나 수백 달러짜리 빈티지 와인들을 선보이며 신비하고 오묘함을 강론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 맛의 섬세함이란 다양한 가치관과 일상을 담아낼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어서이지 않을까. 지독하게 리얼리스틱한 사람들의 사고 뭉치 여행을 따라가다 보니 아름다운 포도밭 사이로,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별한 진심이 저렇게 열올리며 묻어나는 이런 저런 와인 맛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왜 피노를 그렇게 좋아하세요?" (대단히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하면서 물었다)
"글쎄요. 기르기 어려운 포도죠. 껍질도 얇고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고 일찍 익고…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죠. 항상 돌봐주고 관심을 가져야 해요. 사실은 감춰진 조그만 구석에서만 자랄 수 있어요. 정말로 인내심과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기를 수 있죠. 피노의 잠재력을 이해하려고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피노의 진정한 맛을 끌어낼 수 있어요. 그리고 나면 그 맛은, 가장 빛나는, 소름끼치는, 미묘한…"

오호, 나는 피노라면 오레건 피노느와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멜로처럼 달지 않고 까베르네나 시라처럼 무겁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맑고 섬세한... 원래 맛이 그런 줄로만 알아서 나중에 캘리포니아 피노 맛을 보고는 "피노 치곤 너무 달고 자극적이야" 하고 말았는데, 이런 매력이 있다면 소노마와 산타바바라의 피노도 그 차이들을 비교해 보며 마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번에는 마야처럼, 이 피노가 자라는 캘리포니아의 햇빛은 어땠을까, 2001년의 산타바바라에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오레건의 피노는 비도 많이 맞았겠지... 생각하면서.

화면은 좀 뿌옇다. 그게, 카메라를 그렇게 잡은 것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와인 컨츄리의 햇빛이 그렇다. 영화의 첫장면부터, 아, 저 해살, 하면서 아득해지고 말았다. 

어느 독일어 웹사이트에서 그새, 피노느와 홍보용으로 이 영화를 써먹고 있다.
(이미지를 찾기 귀찮았는데, 한데 잘 모아두었길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5-12-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뜨끈뜨끈한 방 고마워유,
구들장 뜨끈뜨끈한 한옥 방 사진도 하나 찾아주면 더 고맙겠구만요.
허리 아플 때 지지게......^^
요즘 많이 바쁜가봐요?
블루님 책도 빨리 읽고 반납해야 할 텐데.
테라야마 슈지 책도 그 편에 보내고.
그런데 님은 왜 영화 구운 것 안 보내주나요?
아니 뭐 급한 건 아니지만 갑자기 궁금해서...^^

urblue 2005-12-0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그게, 하루이틀 늦어지다 보니, 책 다 읽으면 같이 보낼까 싶어서 말이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