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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문학에 나타난 마술적 사실주의



루이스 레알/박병규 옮김



앙헬 플로레스는 「이스파노아메리카 소설에 나타난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논문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는 1935년에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같은 해 출판된 보르헤스의 작품 『불한당의 세계가』는 이스파노아메리카 소설의 새로운 경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플로레스 견해에 따르면, 보르헤스 작품에는 카프카의 영향이 보이며, 보르헤스는 이보다 2년 전에 카프카 작품을 번역했다고 한다. 플로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카프카는 초기 작품부터 -「사형 선고」(1912), 『변신』(1916)- 공들여 다듬은 적확한 문체를 사용하여 단조로운 현실과 악몽의 환상 세계를 혼합하는 어려운 기법에 통달했다. […] 따라서 참신성은 사실주의와 환상의 혼합에 있었다. 사실주의와 환상문학은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서 우여곡절 끝에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했다. 사실주의는 식민 시대부터 있었고, 특히 1880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마술적인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의 수많은 작가가-콜럼버스의 편지, 각종 연대기들, 카베사 데 바카의 무용담- 사용한 것으로 모데르니스모 시기에 문학적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플로레스는 아르헨티나의 비오이 카사레스, 실비나 오캄포, 마예아, 사바토, 비앙코와 코르타사르, 실체의 봄발, 쿠바의 노바스 칼보와 루이스, 멕시코의 아레올라와 룰포 그리고 우루과이의 오네티 작품이 마술적 사실주의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플로레스가 이들의 작품에서 발견한 특징은 문체에 대한 관심과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섬뜩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변형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시간은 일종의 무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존재하고, 비현실적인 것이 현실의 한 부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레고리 잠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 주인공이 바퀴벌레 혹은 딱정벌레로 변신한 사건도 “잠자를 제외한 나머지 등장 인물은 정상적인 사건이나 다름없이 받아들인다”고 한다.

플로레스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문학적 형식을 정의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한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은 “마치 문학이 제 길에서 벗어나거나 동화처럼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비상하는 것을 막으려는 듯이 현실에 집착한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전개되며 갈수록 강렬해져 마침내 헤아릴 수 없는 모호함이나 혼돈 속으로 파고든다. […] 모든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의 공통점은 이외에도 19세기 라틴아메리카 소설(『마리아』『쿠만다』『둥지 없는 새』등)에 만연한 어설픈 감상주의의 배척이다” 그리고 플로레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은 종종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비인간화’ 라고 일컬었던 예술과 유사하며, 정확하고 간결한 문체를 추구한다. […] 이처럼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이 빈틈없는 플롯 짜기에 고심한 이유는 아마도 보르헤스, 비오이 카사레스, 페이로우를 비롯한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이 탐정 소설을 창작했거나 번역 편집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플로레스의 논문을 자세히 인용한 이유는, 믿기 어렵겠지만, 이 글이 현재까지 이스타오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한 유일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플로레스의 글은 사막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비록 그 이후부터 이 용어는 정확한 정의도 없이 빈번하게 사용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플로레스의 마술적 사실주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플로레스는 이 경향에 속하지 않는 작가까지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또 마술적 사실주의가 1935년 보르헤스부터 시작되었고, 1940년과 1950년 사이에 가장 번성했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유를 설명하겠다.

‘마술적 사실주의’ 라는 용어는, 1925년경 발생한 후기표현주의 회화를 지칭하기 위해 예술 비평가 프란츠 로가 맨 처음 사용했다. 그는 이 용어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마술적’ 이라는 말은 ‘신비적’ 이라는 말의 반의어라고 말한다. 프란츠 로는 “신비mystery는 재현된 세계로 내려오지 않고 오히려 그 뒤에 숨어서 고동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스파노아메리카에서는 우슬라르 피에트리가 『베네수엘라의 인물과 문학』(1948)이서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 같다. “단편들을 지배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하는 요소는 인간을 현실적인 사물과 사건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존재로 고찰한다는 점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 대한 시적인 재단이거나 아니면 시적인 부정이다. 마땅한 명칭이 없으므로 이를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우슬라르 피에트리 이후, 이러한 현상에 누구보다도 관심을 쏟은 사람은 카르펜티에르였다. 카르펜티에르는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 『지상의 왕국』(1949) 서문에서 흥미 있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경이로움이 경이로움다워지려면 우선 일종의 ‘한계 상황’에 다다를 만큼 신들린 상태에서 특별히 강렬하게 현실을 지각해야함을 잊어버린다. 현실의 예기치 않은 변화(기적), 현실에 대한 각별한 계시, 미처 깨닫지 못한 현실의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예사롭지 않거나 특별한 깨달음, 현실의 층위와 범주의 확장 등을 이 ‘한계상황’에서 경험할 때 진정한 경이로움이 발현된다.


따라서 마술적 사실주의는 환상문학이나 심리 소설과 다르며 초현실주의나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한 신비주의 문학과도 다르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꿈을 모티브로 사용하지 않으므로 초현실주의와 다르다. 또한 현실을 왜곡하거나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지 않으므로 환상문학이나 공상과학 소설과도 다르다. 그렇다고 등장 인물의 심리 분석에 역점을 두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사술적 사실주의는 등장 인물의 행동을 유발시키거나 억압하는 동기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데르니스모는 세련된 문체로 작품을 창작하는 데 관심을 쏟았으므로 미학 운동이지만, 마술적 사실주의는 미학 운동이 아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창조하는 일에는 관심도 없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마술의 문학이 아니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목적은 감정 표현이지 감정 환기가 아니므로 마술의 목적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마술적 사실주의는 일종의 현실에 대한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대중 문학이나 고급 문학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조탁된 문체나 통속적 문체로 표현될 수도 있으며, 닫힌 구조나 열린 구조로 표현될 수도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는 현실과 대면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나는 앞에서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는 우리가 일상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을 보면 작가는 현실 앞에 서서 현실을 풀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사물과 삶과 인간 행위에서 신비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한다. 이것이 우슬라르 피에트리, 아스트리아스, 카르펜티에르, 노바스 칼보, 룰포, 피타 로드리게스, 기예, 그리고 그밖의 단편 작가들, 소설가들, 시인들이 작품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다. 코르타사르의 단편 소설 「비밀 무기」에서 화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침대 정리는 침대 정리와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악수는 언제나 같은 악수라고 생각하고, 정어리 통조림 한 개를 따는 것은 그것과 똑같은 정어리 통조림을 무수히 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다른 일이지.’ 피에르는 서툰 솜씨로 낡은 청색 침대 커버를 펴면서 생각한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플로레스의 주장처럼 카프카 작품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보르헤스는 『변신』의 스페인어판 서문에서 카프카 소설의 기본 특징은 “참을 수 없는 상황의 창조” 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는 이렇게 덧붙일 수도 있다. 플로레스의 지적처럼 바로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인간이 바퀴벌레로 변한 것을 정상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등장 인물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는 마술적이지 않다. 등장 인물들은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작가의 환상 문학도 그렇지만, 보르헤ㅡ 작품의 주된 특징은 수많은 층위의 창조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항 중 어느 것도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의 핵심은 상상의 존재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신비스러운 관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경이로운 현실의 존재가 일부 비평가들이 진정한 아메리카 문학이라고 주장하는 마술적 사실주의 문학의 출발점이다.

아방가르드 문학과는 달리 마술적 사실주의는 현실도피의 문학이 아니다. 영국의 비평가 콜링우드는 『예술 원리』에서 마술로서의 예술을 논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미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아주 오래된 미의식의 재등장이다. 이를테면, 어려움을 무릅쓰고 19세기 비평을 가르쳐놨더니 가르침을 뒤집는 얘기를 한다. “절대로 주제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주제란 예술가가 재능을 발휘한 대상일 뿐이므로 하찮은 것입니다. 당신은 예술가의 재능과 재능을 발휘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십시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예술가가 재능을 발휘할 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를 천착할 때뿐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새로운 미의식은 두 가지 시각을 포함하고 있다. 즉, 주제를 예술 작품의 통합적 요소로 생각하며, 주어진 예술 작품을 평가하려면 예술가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뿐만 아니라 주제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시각이다.


주제에 대한 이와 같은 관심은 마술적 사실주의의 주된 특징 가운데 하나이며, 또한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대중문학이든 고급문학이든-을 하나로 묶는 것이기도 하다.

가예고스의 소설 『칸타클라로Cantaclaro』(1934)를 보면 카라카스 출신의 젊은이가 등장한다. 이 젊은이는 베네수엘라의 대평원 야노에 매료되었다가 이내 환멸을 느낀다. 어느 의미심장한 장면에서 젊은이는 야노 주민 크리산토 바에스 노인과 마주치자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고 여긴 나머지 무례하게 대한다. 그러자 노인은 근엄하게 얘기한다.


이보게, 젊은이. 내가 제대로 설명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아들으려고 해보게. […] 젊은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네. […] 지금 윙윙거리는 벌 소리가 들리지. 젊은이가 벌 얘기를 했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지체 높은 양반이라고 위세를 떨면서 우리 얘기도 듣고 있지. 하지만 고독한 영혼의 기도는 절대로 듣지 못할 걸세. 지성이 억압하고 있으니까.


크리산토는 비현실을 현실의 일부로 보고 있으므로 비현실을 받아들인다. 후안 룰포의 소설 『페드로 파라모』의 등장 인물들도 이와 같은 일을 경험하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고통받는 영혼들의 존재를 억압하지 않는다. 그리고 룰포는 한술 더 떠서 죽은 화자의 관점에서 현실을 포착한다. 현실을 바라보는 룰포의 시적인 비전은, 민중 언어에서 차용한 말로 표현되고 있는데, 작품에 마술적 어조를 부여한다.

마술적 사실주의에서는 핵심 사건에 대해서 논리적 설명이나 심리적 설명이 없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는 주변 현실을 모사하거나 (사실주의 작가들은 모사했다) 훼손하지 않고 (초현실주의자들은 훼손했다) 사물 뒤에서 숨쉬고 있는 신비를 포착해내려고 한다. 피타 로드리게스의 작품 「옹기장이 알라리코」Alarico el alfarero에는 신비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이상한 반지를 끼고 있는데, 그가 죽자, 그의 장치들도 산산조각 난다. 카르펜티에르의 「씨앗으로 가는 여행」Viaje a la semilla 에서는 늙은 흑인 정원사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순간부터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카르펜티에르의 소설 『잃어버린 발자국』Los pasos perdidos을 보면 주인공이 밀림으로 돌아왔을 때, 이전에 현재에서 과거로-현대 문명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은 채 살다가 원시적인 아메리카의 낙원으로-가면서 지나갔던 강변의 입구를 찾아내지 못한다. 이러한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에서 작가는 환상문학 작가들과는 달리 사건의 신비를 해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환상문학에서는 초자연적인 것이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으로 침입한다. 마술적 사실주의에서 “신비는 재현된 세계로 내려오지 않고 오히려 그 뒤에 숨어서 고동친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은 현실의 신비를 포착하려고 극도로(한계상황에 다다를 정도로) 감각을 곤두세운다. 이러한 감각으로 외부 세계, 곧 우리가 살고 있는 다양한 세계의 감지하기 어려운 미묘한 국면들을 직관적으로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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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7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10-0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그쳤는데...
전시회 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