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를 위한 아나키즘 입문



(이 글은 1988년에 리즈 A. 하일리맨과 (지금은 없어진)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아나키스트 그룹 블랙 로즈에 의해 쓰여졌다.)


무엇이 아나키즘인가?


아나키즘은 오해로 둘러싸인 하나의 정치철학이다.이것은 대부분 아나키즘이 다양한 사고방식이어서 단순한 슬로건이나 당 노선들로써 특징지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실, 10명의 아나키스트들에게 아나키즘의 정의를 묻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10개의 각각 다른 대답들을 얻을 것이다. 아나키즘은 단순히 하나의 정치철학 이상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으로서 정치적, 실용적, 개인적 국면들을 모두 포괄한다.


아나키즘의 기본적 주장은 위계적 권위--그것이 국가이든, 교회이든, 가부장제 혹은 경제엘리트 이든--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하는데 본래적으로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은 창조성, 협동, 그리고 상호존중에 기초하여 자신의 일을 처리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권력은 원래 부패하게 되고, 권력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구집권과 권력을 늘리는데만 신경을 쓰게 되어 주민들에겐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윤리는 개인적 문제이며,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회의 안녕에 기반을 두어야지 사법부나 종교계의 압력에 의한 법제정(미국의 헌법 같은 것들)에 근거를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 철학자는 개인들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신봉한다.

가족주의적 권위자들은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을 배양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기 보다는 엘리트들이 대신 결정을 내리고, 요구를 대신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게 된다. 권위가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결정들, 예를 들어 무엇이 가치있는 죽음이고, 죽일 만한지 (군대징집 혹은 낙태 등)를 억지로 지배하려 할 때, 인간의 자유는 현격히 감소한다.


아나키스트들은 다양한 형태의 억압--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이성애중심주의, 계급지상주의, 국수주의를 포함하여--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며, 다른 억압들이 엄존함에도 단 한 곳에만 저항의 촛점을 맞추는 것이 쓸모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세계를 바꾸는 방식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과 반드시 상반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아나키스트들은 현존하는 폭력적인 제도장치들의 전복을 위한 공식적인 조직과 폭력적 행동을 포함한 전략과 전술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지만, 거의 대부분은 단순히 현존 질서를 파괴하는데가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새롭고 더욱 인간적이며 더욱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데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역사속의 아나키스트


아나키스트들은 역사적으로 혁명적 운동들에서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1798년에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강력한 원시-아나키스트적 요소를 지녔다. 피에르 조셉 프루동, 피터 크로포트킨, 미하일 바쿠닌, 그리고 에리코 말라테스타 같은 아나키스트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혁명적 아나키스트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나키스트들은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에서의 혁명적 운동에 본질적인 공헌을 하였으나, 볼셰비키가 권력을 공고히 하자마자, 아주 무자비하게, 억압당하였다. 1936-1939년의 스페인 혁명은 아나키스트 실천을 대규모적으로 드러내 보인 무대가 되었으며, 그 속에서 아나코-생디칼리스트, (무정부- 노동조합주의자) 조직인 FAI 와 CNT는 실현가능하고 비위계적인 사회, 경제적 대안을 성공적으로 창조해 내었다. 멕시코와 라틴 어메리카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노동조합 운동(예를 들어 '전세계 산업노동자들')은 아나코- 생디칼리스트의 영향을 받았다. 엠마 골드만과 알렉산더 버크만과 같은 주요한 아나키스트들은 1900년대 초반에 걸쳐 다양한 급진적 움직임들에 참여했다. 많은 사회적 변화와 1960년대의 대안적 삶의 형태 운동들(일부 페미니스트운동, 게이해방운동과 반전, 언론자유 운동 등을 포함하여)에는 강력한 아나키스트의 조류가 있었다. 비록 많은 경우에 그들은 맑스주의자/레닌주의자/마오주의자 에게 억눌렸거나 그늘에 가려졌다.


아나키즘은 무엇이 아닌가


아나키즘을 해명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무엇이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


공산주의: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공동체주의와 집산주의를 중시하는 반면, 아나키스들은 현존하는 그리고 최근에 무너진 공산주의자(더욱 정확하게는 맑스-레닌주의)국가들의 전체주의를 거부한다.

아나키스트와 맑시스트의 분열은 1870년대에 아나키스트들이 맑시스트들이 다양한 명목으로 (독재적) 권위주의를 지속시키고 있다고 인식하면서부터 심화되었다.

맑스-레닌주의 그룹들은 전통적으로 전위당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사상, 즉 기본적으로 반권위주의적이며 최대의 개인적 자유를 강조하는 아나키스트들과 정반대되는 사상을 강조해왔다.

정통 맑시즘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가는 "소멸해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반면에, 우리들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 정권들의 국가권력의 강화와 이에 따르는 억압, 순응에 대한 강조를 반복해서 보아왔다.


자유의지주의: 자유의지주의자들은 자주 아나키스트과 혼동되며, 사실 많은 점에서 중복되기도 한다.

 

둘은 모두 개인적 자유와 국가체제를 없애고 싶은 욕망을 강조한다. 많은 자유의지주의자들은 개인을 가장 중요시하며 분별있는 사리사욕추구의 원칙을 강조한다.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서로 돕고 그 지역 모든 구성원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을 보다 중요시 한다.

 

자유의지주의는 그 경제적 관점에 의해 가장 자주 특징지워지는데, 그것은 제한없는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가장 중요시하며(몇몇 옹호자들은 스스로를 "무정부-자본주의자들" 이라 부른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무력의 사용을 용인하며, 개인의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는 어떤 정부의 간섭도 반대한다. 그리고 경제적(일반적으로 금전적)용어로 판단되지 못하는 가치들은 무시해버린다.

 

자유의지주의자들이 반국가적인 반면, 그들은 자주 모든 형태의 지배와 위계질서(자유의지주의 철학은 종종 "적자생존" 혹은 "(경제적)힘이 곧 정의"를 위해 노력한다)와 모순되지 않으며, 사회의 권력관계(특히 경제적 권력에 기초한)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더욱 사회주의적인 관점을 갖는 경향이 있고, 부유한 자들은 더많은 이득을 보고, 운이 없는 자들은 불공평한 고통에 시달리게 만드는 어떤 체제라도 폐지할 것을 선호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개인적 솔선수범, 지능, 그리고 창의력을 중요시하기도 하지만, 그런 능력을 조금밖에 갖지 못한 사람들 역시 당연히 존중받고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객관주의들은 자유의지주의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자유의지당은 상대적으로 온건하며, 선거개혁, 마약법률폐지, 그리고 정부의 조정을 줄이는 문제 등에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다.

많은 자유의지주의자들은 어떤 형태의 정부는 필요하나 그것은 가능한한 최소화되고 간섭이 없어야 된다고 믿는 "중도-아나키스트"들이다.

 

아나키스트 사회에서는 어떤 형태의 경제체제가 존재할 것인가의 문제는 미해결의 문제이다. 어떤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형태의 자본과 시장경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다른 이들은 노동자소유제와 완벽한 참여민주주의를 촉진시키는 체제를 선호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아직도 서로 자신의 체제와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한 다양한 경제체제가 공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자유주의": 이 나라(미국)에 퍼져있는 정치적 관념은 아나키즘을 좌익과, 그리고 좌익을 자유주의와 같다고 생각하지만, 양에서도 질에서도 실질적인 차이들이 있다.

 

"좌익"의 생각은 많은 현대 정치학이 전통적인 좌익(자유주의)/우익(보수주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나는 경향이므로 1990년대에는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이 "진보적인" 주장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은 전통적인 정치적 스펙트럼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떤 이론가들은 경제적 권위주의의 정도와 사회적 권위주의의 정도를 두개의 분리된 축으로 바라보는 (이론적) 기반을 제안해왔다; 경제적 자유를 두둔하는 이들은 자주 사회적 자유를 적대시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현대의 진보적 정치학은 개인의 주요한 관심과 협력관계는 인종, 성 그리고/혹은 성적 성향에 기초하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비록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정체성 정치학에 많은 시간을 쏟지만, 더욱 깊이있는 아나키스트 철학은 그렇게 (인종, 성 등으로) 나누는 것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될 날을 열망한다.

 

자유주의자들은 현존하는 제도를 개혁하는 노력(투표, 로비, 조직적인 시위같은 수단들을 통해서)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나키스트들은 더욱 근본적인 관점을 갖고 있고, 썩은 사회제도들을 완전히 갈아치우길 갈망하며, 어떠한 형태의 국가주의자들의 간섭에도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을 통하여 더욱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혁명적 변화 뿐만아니라 진화적인 변화의 유효성 또한 인정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진정한 재조직을 위해서는 어디든 존재하는 위계적 지배관계를 뿌리째 뽑는 것이 필수적임을 인정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권력 자체의 구조(그것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민주적"이든 획일적이든 간에)가 문제의 근원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해결의 토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어떤 아나키스트들은 비록 소규모의 지역적인 개선이라도 가치가 있다는 믿음으로 투표에 참여하고 조직적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그런 행동들이 단지 임시적인 행보에 지나지 않으며,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행동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정부적 허무주의(니힐리즘): 니힐리즘의 신조인 "모든것에 반대함"과는 달리, 아나키스트들은 무작위적인 폭력, 파괴 그리고 "모두 자신만을 위하자" 라는 무법혼란을 조장하지 않는다(비록 이런 철학을 갖고서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부르는 부류는 항상 있지만). 아나키는 혼돈과 같다는 일반적 인식은 권력을 쥔 자들이 주입시킨 유행성 믿음에서 비롯된, 한심스러운 오해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효율적이고, 잘 조직된 그대로의 사회가 비위계질서적, 탈중앙집중적, 그리고 참여적인 원칙을 바탕으로 성립될 수 있다고 믿는다.


논쟁의 몇가지 이슈들


아나키스트들은 여러 이슈들에 관해 전혀 다른 관점들을 갖고 있다. 의견불일치의 대표적 영역중 하나는 개인 대 지역사회의 문제이다. 개인주의 아나키스트들은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시 하는 반면, 아나코-공산주의자들(그리고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사회그룹의 이익에 초점을 둔다. 상호부조론자들은 그 사이 어느 쯤엔가 존재한다. 이상적인 아나키스트의 사회에서는 전체로서 지역사회의 요구들이 개인들의 자유의지와 자기결정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고 충족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또다른 논쟁은 생태환경론과 테크놀로지 이슈들에 관련된다. 고전적인 아나키즘은 과학과 합리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맑스주의 견해들과 유사성을 보이며, 기술적 진보는 일반적으로 사회에 이로울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다. 많은 현대 아나키스트들은 기술은 본래 선하거나 악하지 않으나,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에 영향받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최대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방법으로 면밀히 조사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다른 동시대의 아나키스트들은 반-기술적, 환경중심적 시각(가장 극단적인 원시주의자들과 새롭게 등장한 기술혁신반대주의자들)을 견지하며, 아나키스트 사회는 오로지 기술적 진보를 거부하고 더 원시적이고 지역화된 환경조화적 삶을 통해 달성된다고 믿는다.


민족주의 문제 또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국제주의(혹은 그보다 '무국'주의)를 옹호하고,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국가가 인공적인 분리를 인민들에게 조장함으로써 그 권력을 증대시켜려는 시도의 명백한 표시로 인식한다. 민족국가는 인구의 하층계급은 전세계에 걸쳐 비슷한 비참한 환경에 처해 있는데도 다양한 엘리트들의 이해를 위해 복무하는 구성물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어떤 민족해방투쟁들(중동에서의 팔레스타인, 미국의 흑인민족주의자들, 그리고 전세계 억압받는 토착인민들의 노력같은 것들)은 지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작은 독립국가들은, 권위적임에도 불구하고, 착취를 자행하며 획일적인 제국들보다 더 낫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현대 아나키스트 운동의 조류들


오늘날의 "아나키스트 운동"은 더욱 정확히는 다양한 정치적, 철학적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는 서로 다른 운동들의 집합으로 볼 수 있다. 고전적 아나키즘의 원칙들을 기초로 삼는, 그리고 가끔은 그것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동시대 아나키즘의 범위를 넓히고 전통적 아나키의 견해를 재정의하는 다양한 그룹들이 있다.


아나카-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과 아나키즘의 이상을 융합한다. 아나카-페미니스트들은 고전적 아나키스트들보다 여성해방과 남성중심제의 역할에 더많은 관심을 쏟지만, (일부 페미니즘이 해왔던 것처럼) 다른 형태의 억압들을 제외하지는 않는다. 모든 여성 아나키스트들이 자신을 아나카-페미니스트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이 아나카-페미니스트가 꼭 여성일 필요는 없다 -- 그 구별은 대부분 자신의 가치들이 얼마나 "여성 중심적" 인가와 지배에 대한 어떤 관점이 강조되는가의 문제이다.

다른 많은 현재의 정치적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성분리의 문제는 미해결인 체로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위계적이고 부계적인 사회적 질서에 의해 강요되어온 인위적인 성적 역할의 분리가나키스트 운동에서도 지속되는 것은 아나키스트들이 성취하기를 바라는 진정한 평등의 창조 그리고 장벽들의 제거와 서로 상충될 수도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지배해온 운동에서 여성의 자리를 지킬 필요를 느끼며, 또한 여성문제에 대한 정당성은 반드시 연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인식되고 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나카-페미니스트들은 일반적으로 여성문제들에 대한 국가주의적 대처방안들(여성들에 대한 폭력을 줄이기 위하여 시도되는 포르노에 대한 검열 등)을 거부하고, 자기-능력발휘와 직접적 행동을 지지한다. 아나카-페미니스트 조직은 탈중앙집중화, 참여적인 의사결정, 풀뿌리 단계에서의 활동 등에 대한 강조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아나카-페미니스트 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잠재능력의 실현이 전통적인 성분리 역할들을 뛰어넘으며, 모든 인간들에서 유익한 "남성적" 이고 "여성적" 특질들의 발달과 모든 관계들에서 평등을 장려함으로써 가장 잘 성취된다는 것을 믿는다.


많은 현대 아나키스트들은 자유의지와 자기결정의 이상들을 그들의 개인적 삶에 적용시키는데 집중한다. 이런 경향중에는 성, 가족, 그리고 개인들간의 관계들의 영역에서 다양한 옵션들을 인정할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관계들은 자유로운 선택과 모든 개인들의 동의에 기반해야 하며, 정부나 종교 혹은 사회의 제한들에 제약당해서는 안된다. 많은 퀴어 아나키스트들 --게이, 레즈비언, 성전환자, 그리고 특히 양성애자 --이 존재한다; 아나키즘이 이런 전통적인 범주화 획책들을 깨부수기 위해 쏟는 노력은 특히 비관습적인 그리고/혹은 주변화된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관련되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들 처럼, 어떤 게이/레즈비언/퀴어 그룹들은 반권위주의적 원칙들과 직접 행동들(예를 들면 지하에서 주사기교환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에이즈 활동가들과 비공인 마약 판매 클럽 등)을 포용한다. 결혼, 아버지중심의 핵가족제도, 강요되는 자녀양육 등이 당연시되는 것은 권력에 있는 자들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 마련되어 온 것인데, 아나키스트들은 더 널리, 오랫동안 행해져온 이런 옵션들보다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대안적 관계의 추구, 즉 비일부일처제, 대가족, 공동육아 등을 강조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동성애관계를 (정부로부터) 승인해받기를 바라기 보다는 개인적 관계들을 인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기를 원한다. 아나키스트 동성애자들 역시 일반적으로는 군대같은 공격적인 사회기관에 게이들의 숫자를 늘리려는 시도를 반대한다.


고전적 아나키즘의 무신론적 집착(크게는 전통적, 권위적인 종교기관의 유해한 영향에 대한 반응에서 비롯된)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현대 아나키스트들은 다양한 다른 종교들과 기존 교단에서 파생한 해방신학의 영적인 성질을 강조한다. 이것은 인간 잠재력의 극대화는 인간의 이성 뿐만 아니라 그 인격과 문화의 정신적이고도 초월적 측면들까지도 필요로 한다는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도덕의 영역에서, 이런 성향의 아나키스트들은 법적, 도덕적 권위를 선언하기 보다는 개인적 책임과 타인들에 대한 배려를 더 중요시 한다. 정신적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삶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들의 믿음은 보통 환경보호적, 자연중심적 아나키스트들의 사상과 맏닿아 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는 "성스러움" 이라는 관념과 "상부명령"에 대한 의존이 전통적인 계급질서의 이념을 강화하며 완전한 자유의 충족에 적대적이라고 믿는 풍부한 무신론적 요소들이 남아있다.


펑크(punk), 대안미술, 레이브(rave), "죽은머리(deadhead)"와 급진적 학생들의 문화는 보통 아나키스트들의 이상을 신봉한다. 이런 젊은이들은 집단동거, 무단점거생활 (squatting), 정보소통같은 직접적 행동과 주체적 방법들 그리고 식량협동조합, 독립적이고 법인을 통하지 않은 음악제작, 배급같은 경제적 대안 마련 등에 기반하여 저항적 지역사회를 조직하고, 이것을 통해 소비사회에서 만연하는 부정과 삶으로부터의 소외 등을 탈피해 나가려 한다. 이런 젊은이들은 고전적 아나키즘(이라는 라벨을 붙이지는 않지만)의 많은 교리들을 받아들이는데, 이들은 일반적으로 저항적 활동과 일상생활에 있어서 반권위주의적이고 자결주의적 원칙들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적용시키는데 더욱 노력한다. 그러나 어떤 현시대의 아나키스트들은 이런 "생활방식주의(lifestylism)"를 피하며, 그대신에 더넓은 사회변혁을 위해 모양을 갖춘 그룹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더욱 집중한다.


아나키스트들은 비공식적인 한시기적 잡지에서 꾸준히 지속되는 신문과 책 출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의 출판 인쇄 계획에 참여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점점 더 많이 인터넷을 비롯한 다른 전자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사용하고 있다. 종종 인터넷은 아나키의 살아있는 예가 되어왔고, 중앙정부의 권력없이 성장하여 번영해왔다. 전자커뮤니케이션은 국가간의 경계를 초월하는 방법을 제공하며 또한 인종이나 성 같은 문화적 장벽이 갖는 중요성을 최소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증가하는 의존도는 "가진자" 와 "못가진자" 로 정보세대의 사회를 갈라 놓는 경제적 장벽들을 강화시킨다는 뚜렷한 위험을 갖고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전자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여 이벤트를 계획하고, 중요한 뉴스를 널리 알리며, 정보를 교환해왔다; 스펑크 프레스 같은 야심찬 기획 뿐만아니라 이메일 발송명단, 유스넷 뉴스그룹들 같이 아나키즘과 반권위주의에 공헌하는 것들이 있다. 명백히 정부는 인터넷의 자유를 두려워하고, 인터넷에서의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한다(음란과 테러를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아나키스트들은 전자커뮤니케이션에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중재된",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는 관계들을 거부하며, 기술이 환경에 끼치는 해악 때문이다.


결론


요약해보면, 아나키즘은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정의되는 철학으로서, 스스로를 노골적으로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지 않는 수많은 개인들과 그룹들에 의해 어떤 형식으로든 적용되어 왔다. 아나키즘은 삶의 모든 국면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자유, 자기 결정, 개인적 책임, 직접 행동, 그리고 자발적 행동의 창조, 상호보완성 등을 강조하면서, 아나키즘은 통찰력과 신축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조하기 위한 실행가능한 방법을 제공하며, 그것은 세계를 개혁할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사회변화를 위해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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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blog.naver.com/miso5622/120011928989

 

 리영희-박노자 교수의 만남 - "미군철수 15년 계획 세우자"


미국의 대북한 침략과 세계정복 야욕을 경계한다.


'한국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굽니까?'



방학을 이용해 잠시 한국에 온 박노자 교수(31, 오슬로국립대 한국학)에게,

어느 날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주저없이, 즉각 답이 나왔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리영희 교수(74, 한양대 대우교수)였다. 박 교수는 너무나 궁금한

게 많다고 했다. 한 모임에서 잠깐 인사를 드린 적은 있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며 꼭 만나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팬레터'를 보낸 뒤

답장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리영희 선생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마지막

민족주의자'라고 평했던 그는, 대담이 끝난 뒤엔 '구한말의 우국지사를 만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리영희 교수도 박노자 교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러시아인으로서

한국 국적을 얻고 현재는 노르웨이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개인사에 호기심도

보였다. 리 교수는 대담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단, 딱딱한 '인타뷰'보다는

'인간적인 만남'이 좋겠다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고 싶다고

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의 리영희 교수 자택에서 이뤄진 대담은, 그러나

한반도와 세계정세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 흐르고 말았다. 노교수는

세상문제와 인연을 끊고 내면세계에 침잠하고 싶다고 했지만, 가공할 만한

전쟁의 위기가 아직은 그를 자유롭게 놔두지 않는 듯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엔 힘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가 느릿느릿했을망정.



장마를 피하러 인도네시아 발리로



리영희 : 거 며칠 전 텔레비전에 나왔었지?



박노자 : 맞습니다. 저희 <아웃사이더> 잡지사 사장이 '병역거부'

양심선언을 하는 자리에 참석했었습니다.



리영희 : 잠시 서울에 들어와 있는 동안 그런 모임에도 가야 하고...

바쁘구만요.



박노자 :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바빠도 리영희 선생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그게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몇달 전에 쓰신 그 한시

말입니다. '부씨광폭 부지기극'(否氏狂暴 不知其極). 부시의 광폭함을

한시로 잘 규탄하신 내용... 그런데 요즘 어떻게 소일하십니까?



리영희 : 나는 하루에 세 시간쯤 산보해요. 뒷산 숲속에 아주 예쁜 공원이

있지. 근데 요새 장마가 져서 비올 땐 못해요. 장마가 져서 비가 오면

신경환자는 아주 죽어요. 온몸이 저리고 잘 때 온몸에 땀이 주르르 흘러.



기자와 박노자 교수가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갔을 때, 리영희

선생은 와이셔츠를 입고 소매 단추를 막 잠그는 중이었다. 그러나 손이

떨려서 그런지 자꾸만 엇나갔다. 장마철엔 신경통이 더욱 도진다는 그는

겨울에는 또 만성 기관지염에 시달린다고 했다. 오랜 수감생활로 얻은

병이다. 그래서 몇년 전에는 따뜻한 타이의 한 시골에서 한겨울을 난 적이

있다. 습기가 적은 동남아 지방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낀다. 올 여름에도

조만간 인도네시아 발리로 '피난'을 갈 계획이라고 들려준다. 대학 제자가

운영하는 현지의 작은 호텔에서 여름이 끝나는 8월까지 머무를 작정이다.



리영희 : 내가 중추신경이 12cc나 출혈됐었거든. 중추신경이 죽었다고.

그런 환자치고는 이만하면 아주 가벼운 겁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해요.



박노자 : 선생님이 한국에서 중국을 잘 아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쪽에 대해서도 많이 듣고 싶었습니다. 먼저, 어떻게 해서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리영희 : 625전쟁 때 우리 부대가 최전방에서 중공군하고 맞닥뜨리게

됐거든요.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지요. 제대해서 통신사 외신부 기자를

할 때는 중국 혁명이 한창 진행중이었구요. 난 소련의 스탈린식 전체주의와

미국식의 타락부패한 이기주의가 아닌 그 중간에 새로운 인류의 생존방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것이 모택동(마오쩌둥)과 그 중국 공산당에

의해서 모색되는 것이 아닌가 주시했던 거지요. 남들이 '중공'이라고 하면서

겁내던 1950년대 말부터 책도 내고 글도 쓰고 했습니다. 80년대까지

그랬어요. 그것 때문에 형무소도 갔지만. 그러나 중국에 큰 체제변화가

온 뒤에는 물러났습니다. 중국이 개방되고 자본주의화되는 과정은 누구나

공부할 수 있고 전문가가 될 수 있잖아요.



박노자 : 중국의 자본화에 대해 긍정일변도로만 평가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지 않겠습니까?



리영희 : 지금 벌어지는 중국의 내부적 변화에 대해서는 내가 연구하고

있지 않거든요. 그 대신 국제관계 속에서의 중국의 움직임 같은 것은

면밀히 지켜보고 있지요.



대통령, 미국 통치집단을 너무 모른다



박노자 : 미국은 지금 대북한 침략계획에 부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중국이 미국과 야합할 가능성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신 것을 봤습니다.



리영희 : 그럴 가능성이 일부분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대만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홍콩 마카오 다음에 남은 게 대만 아닙니까. 중국 국토

원상복구의 대단원을 이루는 거니까. 반면 미국으로서는 대륙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게 대만문제란 말입니다. 하나는 영토문제고, 둘째는 대만

군사화이고 셋째는 대만을 핵무장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죠. 중국으로서는

그 몇 가지를 미국으로부터 양보받아야 할 텐데, 자연히 북한문제에서의

미국의 요구를 대만문제와 바꾸는 방식으로 풀 수 있다는 거지요. 그게 늘

내가 걱정하는 겁니다. 역사에서 보듯이 중국 민족이 얼마나 우회적으로

술수를 쓰는 데 능한 민족입니까. 1936년 장개석(장제스)이가 모택동

팔로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만주의 군벌 장학량(장쉐량)을 불러들였단

말이에요. 근데 거꾸로 장학량이가 장개석이를 납치해서 감금한 뒤에

국공합작 항일투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박노자 : 그게 유명한 서안사변이지요. 저도 참 걱정입니다. 부시가 혹시

대통령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득표전략의 일환으로 대북한 긴장의 수위를

높이지 않을지...



리영희 : 그렇습니다. 1994년에 클린턴이 북한에 전쟁하려고 했던 그

단계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지요. 부시의 수법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전쟁까지의 과정에서 잘 드러났거든요. 이라크에 대해서 처음부터

전쟁하게끔 전부 계획 세워놓고, 세계원자력기구의 현지조사라든가

대량살상무기 조사를 시킨 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어요. 말하자면 긴장의

도를 높이고, 다음에 미국 국민들의 적개심을 높이고, 군대의 준비를 착착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맞추어서 그렇게 가는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부시는 그야말로 깡패예요. 테러리스트예요. '깡패가 누구냐' 하는 행동의

준거로 말할 때, 미국은 조건을 완전히 다 갖춘 나라지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미국 정권 지배자들의 생태적인 본질을 모르는 것이 문제야.

내가 두달 전에 기독교방송과 인터뷰를 하다가 오해를 받았는데...



박노자 : '대통령이 무식하다'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웃음)



리영희 : 그래요. 대통령의 방미외교를 어떻게 생각하냐기에 이렇게

얘기했어요. 미국을 지배하는 통치집단, 그러니까 군/정보국/군수자본/

재벌/유대인 호전세력/원리주의 기독교그룹들이 한덩어리가 돼서 전쟁을

해야 미국 경제가 돌아가고 선거에 이긴단 말이에요. 그래야 국회의원들이

자기 주에 군수공장을 설치하고 군수자본 들여와서 취업률을 높입니다.

또 그래야 표가 올라가서 다시 당선된단 말이에요. 이런 집단들의 대표가

부시인데, 그런 집단들의 생태를 전혀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참 무식하다

그런 거지. 근데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완전히 인간적으로 무식한 것처럼

얘기가 돼버렸어.



박노자 :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외교를 보시면서 민족의 생존방법으로

부적합하다는 느낌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리영희 : 그렇죠.



박노자 : 사실 미국에 굽신거리면서 살려달라는 식인데, 그 사람들이

굽신거린다고 살려주겠습니까?



리영희 : 그런 집단이 아니에요. 북한에 대해서 전쟁을 해야 할 텐데,

딴소리하면 제 아무리 굽신거려도 소용없고. 그 양반이 미국 가서 갑자기

링컨 존경하게 된다고도 했는데, 또 그게 무슨 소리야? (웃음) 인류사에

존경할 만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링컨의 이미지는 미국 애들이 조작한

거라고.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스피치에서 '포 더 피플, 오브 더 피플,

바이 더 피플'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뒤에 보면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종차별을 얼마나 했는데...



미군 철수 15년계획, 청와대서 외면당하다.



박노자 : 얼마 전 노르웨이의 유명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 선생과

전자우편으로 대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도 한민족의 생존전략으로

가장 적합한 게 뭐냐 여쭸더니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미국과 거리를 좀더 두고, 북한과의 민족공조를 더욱 공고화하고, 미군의

철수계획을 구체적으로 연도별로 세우고... '전쟁 일어났을 때 미국 편에

서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히 하면, 한민족이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영희 :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평양 가기 전에 남북문제에 관심을

가진 20여명을 초대했었어요. 그래서 청와대에 갔는데… 그때가 미국

국방장관이 미군은 통일 뒤에도 주둔한다는 소리를 하고 그럴 때예요.

나는 그랬지. 지금 한반도 위협을 조성하는 원천과 근본원인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래서 나 같으면 김정일 지도자하고 이런 식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의하겠다 말했어요. 그 방법은 이랬어요. 총 15년간의

계획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평소에 주장해온 햇볕정책을 경제사회 문화적인 차원에서

꾸준히 지속해 나간다. 꾸준히 5년을 계속하면 긴장이 낮아질 것이다.

그렇게 5년 착실하게 하면 미군 주둔의 허구성이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

말이야. 그럼 그때쯤 가서 주한미군이 맡고 있는 휴전선에서의 방위 역할을

주한미군을 포함한 국제연합평화유지군으로 교체하는 제안을 하시라.

그럼 부분적으로 그때부터 5년간에 걸쳐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킨다.

그 대신 미국이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서 주둔한다고 주장해왔으니까,

북한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전세계적으로 선언하게 하라 이거지.

그럼 미국으로서도 더 눌러붙어 있어야 할 구실이 없어지지 않겠소.

벌써 그렇게 되면 10년 아냐 그동안 상징적으로 휴전선 방위를

국제평화유지군이 맡게 되면 미군의 실체는 없어진 거다 이 말입니다.

그럼 10년 뒤 그 단계에 오면 작전지휘권과 군사관계의 결정권을 한국에

이전시켜라 이 말이야. 그렇게 해서 또 5년을 해나가는 사이에 휴전선에

외국 군대가 있을 필요가 없는 단계까지 남북한에 평화 안정정책을

정립하면 그때는 미군을 포함한 외국 군대가 5년 동안 다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죠.



박노자 : 상당히 상세한 계획을 잡으셨네요.



리영희 : 근데 김 대통령 얼굴을 보니 안 좋아하더라고.



박노자 : 아, 그랬습니까?



리영희 : 내가 옛날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 아닙니까.

그날 청와대 들어가면서는 반갑다고 악수했는데, 나올 때에는 내 앞에 두

사람 남겨놓고 악수하다 저리 가더라고. (웃음) 저~어리. 그래서

'이거 아니구나' 생각했지. 그걸 김대중 대통령이 제대로 듣고 반응하면

곧장 그 내용이 미국 정보부로 들어가거든. 미국 압력이 두려우니까,

아예 멀리하더라고. 어쨌든 난 15년을 잡는 거예요. 아마 김대중 대통령도

김일성 주석이 94년에 한 얘기를 알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94년에

카터가 평양에 핵문제 해결하러 갔을 때, 미국이 전쟁을 안 한다면 미군의

남한 주둔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길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북한도 그랬는데 우리가 미군철수니 뭐니 하는 얘기할

필요가 뭐 있나 그렇게 생각했겠지. 어쨌든 우리가 미국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15년의 기한을 두고 3단계의 그런 군사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2020년 정도에 통일은 아니더라도 남북한에 전쟁 없는 토대를

구축하고 외국군 철수를 이룰 수 있다는 거지요.



내년 초 미국이 북한 침략할 수도



박노자 : 여태까지 제안된 민족생존의 방안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생각됩니다.



리영희 : 난 내년 초쯤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미국이 착착 전쟁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박노자 : 미군을 남쪽으로 빼돌리고...



리영희 : 나는 그걸 보면서 아 북한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북한이 가진 장거리포를 미국이 제일 겁내는 거거든요.

그 장거리포의 사거리 내에 있으면 그 피해를 자기들이 보니까.

사거리 밖으로 미군을 빼고 나면 미사일 요격망, 그러니까 미사일 디펜스를

만들어놓은 거나 효과가 같은 거예요. 상대방 공격이 미치지 못하는 데에다

갖다놓으면 피해를 안 볼 수 있으니까. 미국은 대신 우월한 공군력과

미사일로 북한을 맘대로 공격할 수 있단 말이에요. 거기에 대해 북한이

반격을 하면 남한 사람들만 희생된단 말입니다.



박노자 : 그건 미국이 아랑곳하지 않는 문제 아닙니까.



리영희 : 그래서 지금 빼는 거예요. 미국의 간사한 군사전략입니다.

'2사단 평택 이남 배치' 얘기가 나왔을 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공식논평을 냈잖아요. '미국의 그런 전략으로 말미암아 남조선 인민에게

피해가 가게 될지도 모를 중대한 사태에 책임져야 한다'고. 정말 위험한

사태입니다. 그건 그렇고 난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오슬로대학은 어떻습니까. 대우는 괜찮습니까?



박노자 : 노르웨이는 고물가 고임금 나라입니다. 임금은 비교적 높지만

세율도 높습니다. 적게는 36%에서 많게는 70%까지 갑니다.



리영희 : 복지국가의 문제가 그건데...



박노자 : 대부분 노르웨이 사람들이 체제에 큰 불만이 없습니다. 그만큼

혜택을 많이 받습니다.



리영희 : 미국적 지배력이 커질수록 전통적인 서구라파 나라들이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겠지요.



히틀러 파시스트가 미국에서 부활한다.



박노자 : 요즘 유럽연합이 동구라파를 포함시키지 않았습니까. 폴란드,

체코 등의 나라들이 유럽연합에 완전히 동화되면 그 인구는 곧 4억명이

됩니다. 지금도 유럽연합의 화폐인 유로가 달러에 비해 훨씬 강세를 보이고

신흥시장에서 우세를 보입니다. 러시아 같은 경우는 지금 달러 사용이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습니다. 대신 유로화를 사용하고… 달러로 저축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이 미국에 대한 경제적

반격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리영희 : 그런데 이라크 전쟁과 함께 동구라파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이 더욱 확고해졌어요. 벌써 7개 나라가 미국의 군사기지화됐는데,

이거 호락호락 유럽연합에 넘기지 않을 겁니다. 갈등이 앞으로 심화될

거예요.



박노자 : 진짜 목적은 중국과 러시아 침략이죠.



리영희 : 그럼요. 특히 중국에 대해서 카스피아해에서 파키스탄까지,

흑해에서부터 남부 인도양까지 포위했다구요.



박노자 : 인도와의 관계를 더 강화해서 인도를 괴뢰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리영희 : 파키스탄이 미국화되니까, 인도 총리가 20년 만에 베이징을

찾아와서 우호관계를 돈독히 했다 그래요. 파키스탄과 인도는 옛날 소련과

미국 있을 때 이쪽 붙었다 저쪽 붙었다 해서 알 수 없는데, 하여간 미국은

저 발틱해에서 인도양까지 중국을 포위하는 옛 소련연방을 다 지배하게

됐으니까.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에요.



박노자 : 대륙의 큰 국가들에 대한 침략을 통한 완전한 자원지배,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리영희 : 자원은 두말할 것도 없고, 완전히 군사전략적인 포위망을 만드는

거지요. 미국이 한번 이렇게 잡으면 뿌리치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우리 한국의 어떤 지식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미국은 거머리와 같은

나라다. 거머리 알아요?



박노자 : 사람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대단히 좋은 비유이십니다.



리영희 : 한번 붙으면 배가 터지도록 뺐어먹지 않는 한은 절대 안 떨어지는

나라라는 거죠.



박노자 : 소련과 중국 바로 중간이 키르기스스탄 아닙니까. 지금 미군이

거기에다가도 주둔기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와의

관계를 강화시켜서 나름대로 미국의 장래침략을 예상하고 지금 나름대로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리영희 : 91년에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를 처부순 다음에 이른바

'신세계질서'를 선포했어요. 그러면서 몇 가지를 선언했는데,


첫째는 앞으로는 과거 소련처럼 미국에 대등한 힘을 가진 적대국가의

탄생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미국의 권위나 이해관계에 동의하지 않는 중소국가들은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처리해버린다. 그것도 싼값으로!


셋째,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세계 전체 국가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우세한 단일국가 군사력을 보유한다.


넷째는 군사적 방법이 필요할 때, 가능하면 유엔의 협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유엔이 동의하지 않을 때는 서슴지 않고 단독군사행동으로 처리한다.

이걸 지금 아들 부시가 그대로 해나가고 있어요. 그 가운데 셋은 거의

돼가고 있고. 잘못하면 1930년대 히틀러나 무솔리니, 프랑코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났던 파시스트의 세계지배 시대가 이제 미국에

의해서 진행되는 겁니다.



'난 민족주의자가 아니야'



박노자 : 거의 제3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몰고간다고 봐야 되지 않습니까.

그 서곡들이 아닙니까. 결국 결정판은 아마 대중국, 대러시아 침략이

아닐까...



리영희 : 한 20년, 30년 뒤가 되겠지만.



박노자 :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이 시대의 마지막

민족주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리영희 : 난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가치에 더 충실한

사람이에요. 난 대한민국을 무조건 추워올리고 충성 다하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 쇼비니즘과 맹목적 애국주의 참 싫어해요. 난 지난해

월드컵대회도 개인적으로 안 좋았어요. 그냥 '한국 잘한다'는 거하고

'대한민국 이겨라'라고 하는 거하고는 다릅니다. 나도 이기면 기뻐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흥분하고 감정적인 일치단결을 하는 것은 안

좋아한다고. 히틀러가 써먹을 수 있는 거지요.



박노자 : 지금 미국이 그렇게 돼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리영희 : 왜 뻘건 걸 전부 같이 입고 나오고 똑같이 박수치고 그래야

하냐고. (웃음) 제각기 옷을 입고 나와 '한국 이겨라' 하면 되는 거지.

그래야 인류보편의 평화와 인간과 민족끼리의 사랑이 생기고 그러는 거지.

개개 인간이 전부 같은 행위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위험한 거야. 게임이라는 건 져도 좋아. 한국이 져도 좋고...

(이 대목에서 옆에 있던 부인 윤영자씨의 한마디로 큰 웃음이 터졌다.

'이기는 게 좋지, 왜 지는 게 좋아요 절대 이겨야 돼, 게임은...)



박노자 : 이 위험한 전쟁의 위기시대에 남한 민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부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리영희 : 첫째는 어떻게든 대통령이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미국에

자주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보여요. 이번에 베이징 가서도

북한을 다자회담 속에 나오게끔 설득해달라고 후진타오 주석에게

이야기했다는데, 그건 미국의 대사가 할 소리지, 남한 대통령이 할

소리인가? (웃음)



둘째는 한국 사람들이 세계 지배야욕에 불타고 있는 미국 통치집단의

실체를 잘 인식해야 해요. 그중에서도 냉전시대 국가안보의 기둥이라고

했던 경찰이나 군대 같은 집단들이. 특히 군은 미국의 체제와 훈련과

멘털리티와 인간적 우호관계와 개인적 친소관계로 미국에 딱 붙어 있다고.

이런 체제를 빨리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특히 고쳐야 할

것은 한국의 보수 기독교 수구세력들이에요. 지난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국가적으로 양육된 사람들의 미국 찬양이 아주 위험합니다. 유일신끼리는

완전히 배타적인 거 아니에요. 탈레반이 그렇고 부시가 그렇습니다.

용납하고 타협하고 서로 껴안아줘야 하는데, 톨레랑스가 생길 수 없는

거예요. 국내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들, 또는 민족간의 전쟁에 박수치는

세력들이 많다는 것, 오히려 부시보다 더 걱정스러운 점이에요.



박노자 :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가진 문제는 없으신지요.



금강경〉을 읽으며 인생을 돌아본다



리영희 : 난 좀 내면적인 인생을 살고 싶은데… 자꾸 세상에 문제가 많으면

요청이 많잖아. 빨리 끊고 싶어. 난 요즘 불교경전을 봐요. 그 철학적인

사색이 참 좋아요. 불교는 생각하는 종교란 말이야. 지식인은 불교가 참

잘 맞아.



박노자 : 특별히 애호하시는 불경이나 고전이 있으십니까.



리영희 : 그저 난 '금강경'을 보지요. 아무래도 한문으로 읽어야 좋아요.

우린 한문세대니까, 한글로만 쓴 책은 굉장히 힘들어. 한자가 들어 있으면

빨리빨리 읽고. 일본책은 하루면 보는데, 한글소설은 한 사흘나흘 걸려.



박노자 : 저는 금강경에서 아주 감동적인 문구가 많았습니다. 특히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리영희 : '원래 모든 모습들이 다 바로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모습들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그것이 여래를 보는 일, 즉 깨닫는 일이다'라는

말인데, 참 깊지요.



박노자 : 리영희 선생님처럼 모든 역경과 모욕을 참으면서 한반도 주민들을

폭력의 도가니로부터 건지려고 노력하시는 것도 분명히 깨달음으로 가는 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보다 남의 몸과 마음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은, 바로 자아와 중생,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깨닫는 그

경지가 아닌가 싶어요.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리영희 : '너의 대한민국' 책 (웃음) 한 100만부 나갔나? (박 교수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노자 : 하하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안 됩니다. 선생님, 더욱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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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알렉스 캘리니코스 - 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

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
-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초청강연 내용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남한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그 투쟁의 규모와 용맹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투쟁이 일어난 이곳에서 연설하는 것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또한 저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돼있는 분들에게 연대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대통령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인권상을 받은 나라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 때문에 수감돼 있다니 망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한이 기쁜 일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한국인 민족주의를 고무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한은 오늘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1990년대 대부분의 기간에 서방 세계인 유럽과 미국에서 남한은 역동적으로 팽창하고 전진하는 경제로,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대표하는 모범 사례로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IMF 위기 전개 이후인 지난 2년간 남한은 자본주의 경제·사회체제의 모순들을 대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남한이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대표한다는 것이 참말일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1990년대의 풍조는, 특히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자본주의적 의기양양이 판을 쳤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동구권이 무너진 이래로 득의 만만한 주장은, 서방식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의기양양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인 중심인 미국에서 월가의 주식 시장이 1990년대 동안 전례없는 호황을 누려 왔다는 사실 덕분에도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의기양양은 지난 주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사람이 표현했습니다. 그린스펀은 월가의 신입니다. 그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입니다. 지난 주 '새 천 년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인들이 자유 시장에서 발휘하는 생산 능력에 대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증거를 우리가 지난 10년가 미국에서 목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린스펀은 지난해에는 더 나아간 말도 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미국 경제가 역사를 넘어, 그 동안 자신의 성장에 가해져 온 모든 전통적 제약들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포스터모더니즘이 갑자기 월가에 자리잡기라도 한 양 매우 보수적인 중앙은행 총재가 '역사를 넘는' 것에 대해 얘기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린스펀의 시각, 즉 신자유주의자의 시각에서 보면 아시아 경제의 추락과 IMF위기는 영미식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이삼 년 전에 남한 같은 경제들이 위기에 빠진 것은 '정실 자본주의;'즉 재벌과 국가 관료들 사이의 부패한 연계들이 판을 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IMF위기는 남한 같은 경제들을 좀더 자유시장 방향으로 구조조정할 기회이자 또한 서구 다국적 기업들이 이런 나라들의 값싼 생산적 자산을 사들일 기회인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이 과정에 저항하는 것은 구제 불능의 반동입니다. 경제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각 국민 국가가 자신의 경제를 통제하던 지나간 과거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묘사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우리가 세계적 규모로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을 제시하는 방식 치고는 완전히 비생산적인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화의 반대자들과 지지자들 사이의 불모의 논쟁을 피하려면 칼 마르크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모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변증법적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즉,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규정하는 모순들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예컨대<공산주의 선언>에서 매우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원동력, 즉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사회관계들에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인정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를 형성하고 부르주아지가 생산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며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한다고 마르크스가 말했을 때 그는 앤써니 기든스와 여타 세계화론자들을 150년이나 앞질렀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본래부터의 결함들을 파악했습니다. 즉, 노동착취에 바탕을 둔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는 위기로 나아가는 본래부터의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증법적 시각은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프레드릭 제임슨이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그는<공산주의 선언>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겪은 최선의 것인 동시에 최악의 것이라는 점을 이해 할 수 있는 지점으로까지 인식 수준을 어떻게든 높여야 한다." 자본주의는 원리상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어지간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는 지점까지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선의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착취, 부당함, 환경파괴, 위기와 전쟁으로 나아가는 경향 따위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악의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시각이 새 천 년에 들어서는 세계를 인식하는 최상의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먼저 세계적 규모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의 전력을 살펴봅시다. IMF와 세계은행이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 정책들을 전세계에 강요하기 시작한 지 대략 10-15년이 됐습니다. 해마다 UN이 발행하는 <인간 개발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고서가 서술하는 빈곤과 불평등 때문입니다. 세계 인구 중 최부유층 5분의 1의 소득과 최빈곤층 5분의 1의 소득 격차는 1960년 30대 1에서 1990년대 60대 1로 벌어졌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승리한 1990년대에 불평등은 훨씬 더 커졌습니다. 1997년에 그 비율은 74대 1로 올랐습니다. 1994년과 1998년 사이에만도 세계 최상위 200대 갑부는 재산이 갑절 이상 늘어났습니다. 4천4백억달러에서 1조 4백2십억 달러로 말입니다. 그들 가운데 단지 세 사람, 즉 빌게이츠와 월마트 회장 월튼과 브루나이국왕의 재산이 세계 최빈국 36개국의 소득 합친 것만 합니다. 서구의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안에서도 똑같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증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만 들면, 1973년과 1993년 사이에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실질 임금은 하락했습니다. 1997년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1985년보다 낮았고 최고 수준이었던 1978년 보다는 한참 낮았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처지에서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흔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더 빈곤해질 것이라고 충분한 증거도 없이 우겨댔다는 비판에 맞서 마르크스를 변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부국인 미국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지난 25년간 더 가난해졌음을 봅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 계급의 절대적 빈곤화라고 부른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긋지긋하고 증대하는 불평등의 세계에 직면해 불확실성과 다원성을 창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 같은 것은 제게 그저 경박하고 엉뚱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시각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세계적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이러한 현실을 다루어야 합니다. 
 

세계경제 위기


이러한 현실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장기간에 걸쳐 겪고 있는 경제적 곤란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선진 자본주의의 세 주요 지역을 봅시다. 유렵대륙은 1990년대 동안 경제가 지지부진했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 동안 악성 디플레 위기를 겪었는데, 이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로 어떤 주요 경제도 겪은 적이 없는 최악의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 있는 자본주의적 의기양양의 유일한 객관적 근거는 지난 이삼 년가 경제가 비교적 급성장한 미국입니다. 하지만 이 성장은 월 가 주식 시장 호황에 결정적으로 의존한 것입니다.  

이 호황에 대해 첫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서양식 정실 자본주의의 사례라는 것입니다. 1년 전, 금융시장에 거액의 투기를 한 롱텀 캐피틀 매니지먼트(LTCM)라는 투기성단기자금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투기 금액이 하도 거액이어서 그 회사의 붕괴는 서구 금융 체제를 파멸시킬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LTCM을 구하러 개입했습니다. 그 투기성 단기자금 회사의 대표이사가 전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고위 임원이었다는 사실과 월 가 은행들이 그 회사를 투기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면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실자본주의가 아시아의 현상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 하라고 하십시오. 세계 모든 곳에서 자본가들은 서로 속이고 또 서로 뒤를 돌보아 줍니다.  

미국 주식시장 호황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계급 사람들은 사치 소비재에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식시장에 돈을 투자했고, 주각가 올랐고, 더 부유해졌다고 느꼈고, 그래서 돈을 더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국 경제에, 또 실제로 세계 경제에 유리한 일인데, 왜냐하면 소비 증대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가가 계속해서 급상승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가는 결국 주식을 발행한 기업들의 이윤에 근거하므로 궁극적으로 주가는 이윤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현시기 경제 위기를 일으킨 것은 바로 주요 경제들의 이윤율, 즉 투자수익률의 대폭 하락이었습니다. 근래에 미국의 이윤이 회복된 것은 주로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식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한 덕분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이윤율은 현시기 경제 위기가 시작된 1970년대 초보다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식 시장이 근저의 비교적 낮은 이윤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무한정 상승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만간 월 가 주쇼螢 시장은 추락할 것입니다. 비록 이 일이 정확시 언제 일어날 것인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지난 주에 IMF는 그들이 "월 가의 중대한 조정국면"이라고 부른 증시 대폭락의 가능성이 지난 한 해 동안 급증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주식 시장 추락의 충격은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미칠 것입니다.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가 지난해 아시아의 경제추락과 금융 공황을 겪는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의 소비 지출은 나머지 세계로부터 미국의 수입을 흡수하는 데 일조했고, 그럼으로써 다른 경제들을 가라앉지 않게 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한 경제학자 말마따나 미국은 세계 전체를 위한 최후 수단으로서 소비자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월 가가 추락한다면 이 과정은 역전될 것입니다. 자기의 주가가 떨어진 중간계급 가구들은 가난해졌다고 느끼고는 돈을 덜 쓸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경제와 십중팔구 세계 경제를 경기 후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1970년대 초 이래로 세계 경제가 겪는 네 번째 세계적 불황이 될 것입니다. 단지 마르크스주의자들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의기양양의 분위기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적 경기 후퇴라는 전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결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의 해결책


지금까지 저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의기양양이 합리적 근거가 없음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잘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해결책은 뭘까요? 지금 유럽은 사회민주주의가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최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전통은 자본주의를 개혁하고자 한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남한에서 이 전통은 지금 민주노동당이라는 형태로 계승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2차세계대전 이래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한 케인즈적 국가 개입 전략을 통해 자본주의를 개혁하려 해왔습니다. 바탕에 깔린 생각은 시장이 스스로는 잘 돌아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국가가 시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 생각은 독일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의 이른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가 미국 같은 나라의 자본주의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사회적인 버전(변형)을 대표한다는 생각과 결부되곤 합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첫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원천에 대한 피상적인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케인즈주의자들은 문제가 금융시장의 불안정과 불합리함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시장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만사형통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선구적 분석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근원은 생산관계 자체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특히 그의 이윤율 저하 경향 이론으로 표현됐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은 자본가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기업은 각각 자신의 이윤을 증대시키려고 투자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윤 추구적 투장 행위들의 종합적인 효과는 체제 전체의 세계적인, 즉 일반적인 이윤율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자본가가 행하는 합리적 행위인 개별 이윤 증대 노력은 세계적으로 비합리적인 효과인 전반적 이윤율의 저하라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이윤율저하 경향이야말로 자본주의가 흔히 겪곤 하는 위기의 숨은 원인인 것입니다. 이 위기는 실수나 우연 또는 잘못된 정책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러한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작용 안에 본래부터 있는 것입니다.  

제가 논의하고 있는 전략의 수립자인 케인즈 자신은 실제로 이러한 현실을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본의 한계효율' 저하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 개념은 이윤율과 얼추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그가 '투자의 다소 포괄적인 사회화'라고 부르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달리 말해, 그는 사회가 자본가들한테서 투자에 대한 통제력을 압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의 생산적 자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지배력을 그들로부터 박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혁명을 뜻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케인즈 분석의 논리에 두려움을 느껴 뒷걸음질을 칩니다. 그들은 차라리 자본주의를 조절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처 방식의 난점들은 독일의 최근 경험이 보여주었습니다. 독일은 유럽연합의 경제적 중심입니다. 1년 전, 독일은 연방 선거를 통해 16년간의 우파 지배가 끝났습니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인 '적록연정' 이 성립됐습니다. 적록정부의 선출은 이전 우파 정부가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거부을 뜻했습니다. 이것은 정부에서 라퐁텡이 한 역할에 반영됐습니다. 사회민주당 당수인 라퐁텐은 새 정부의 재무장관에 임명됐습니다.  

그는 사회민주당내 좌파계 인사이고, 골수 케인즈주의자이며, <세계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책의 지은이입니다. 재무장관에 임명되자마자 그는 유럽 중앙은행에 반대하는 공세를 폈습니다. 그는 경기 부양과 대량실업 완화를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빈곤층에서 부유층으로 조세 부담을 이동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 대기업들은 무지무지하게 격노했습니다. 매스 미디어는 라퐁텐을 악마처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선도적인 우파 신문은 1면톱으로 상단에 크게 라퐁텐 사진을 싣고는 헤드라인을 이렇게 달았습니다. "이 사람이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인가?" 독일의 손꼽히는 기업들은 라퐁텐의 세법개정안이 실행된다면 본사를 독일 밖으로 옮기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일단의 손꼽히는 산업체와 은행 경영자들이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드에게 압력을 넣는 공작을 했습니다. 올해 3월초에 그들의 운동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라퐁텐은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패퇴에 이어 적록 정부의 급속한 우경화가 뒤따랐습니다. 라퐁텐이 사임한지 겨우 몇 주 안에 나토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독일 외무장관은 요슈카 피셔라는 사람인데, 그는 녹색당 당수로, 전에 혁명가였고 노련한 평화주의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토의 발칸 전쟁을 앞장서서 옹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겨우 몇 주 안에 슈뢰더는 일연의 신자유주의적 삭감 정책들을 발표했습니다. 이 일괄 정책들의 골자는 부유층에게는 법인세를 삭감하고 빈곤층에게는 연금을 삭감하는 것이었습니다.  

라퐁텐 사건은 두가지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 그 사건은 자기네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제거할 수 있는 순전한 자본의 권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라퐁텐은 선거로 뽑힌 정치인이고 그것도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선거로 뽑히지 않은 기업인들에 의해 직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국민이 투표하지만 기업가들이 결정합니다.  

둘째, 라퐁텐 사건은 자본이 자신의 활동에 대한 국민국가의 제한을 전보다 훨신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전체적인 시야를 갖고 이 두 번째 요점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의 정도를 크게 과장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국적 자본들을 마치 영화<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외계 우주선처럼 그립니다. 그 외계 우주선은 지구 위의 허공을 떠돌아 다니면서 파괴적인 광선을 아래로 세차게 퍼붓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본은 국가적 정박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자기네 국민 국가의 후원에 계속 의지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1년 전에 금융 시장이 심각한 공황에 사로잡혔을 때 상황을 진정시켰던 것은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EDUXK 중앙은행들이라는 형태의 국가였던 것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여타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대폭 인하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심시켰습니다. 자유로이 움직이는 금융 시장조차 국가의 후원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한 세대 동안 자본주의는 더욱 세계적으로 통합됐습니다. 이것은 수입억 달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금융시장 차원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제조업 제품 수출이 미래를 결정하는 대부분의 경제의 국제 무역 차원에도 들어 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갈수록 다국적 기업에 의해 국경을 가로질러 조직되고 있는 생산의 차원에도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본주의 기업들이 자신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국민 국가의 제한을 전보다 훨씬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각에서 보면 라퐁텐 사건은 본때를 한번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좌파의 선택


라퐁텐 케인스주의의 실패는 좌파에게 두가지 선택을 남겨 놓습니다. 첫번째 선택은 항복입니다. 이른바 제 3의 길이 이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제 3의 길 찬양자라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가 말하는 제 3의 길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제 3의 길 원조들인 빌 글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말하는 제 3의 길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꽤 어렵습니다. 제 3의 길은 국가 통제주의와 신자유주의 모두의 대안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국가 통제주의나 신자유주의 모두가 좋지 않으므로 그것들의 대안이 있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제 3의 길은 그러한 대안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외관상의 반대 이면에서 실천상으로 제 3의 길은 신자유주의적 의제를 받아들립니다. 발칸 전쟁 직후에 두 명의 지도적인 제 3의 길 유럽인들인 토니 블레어와 게르하르트슈뢰더는 정책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정책들은 일단의 신자유주의적 계획안들로서 이른바 유연 노동 시장, 사람들한테서 각종 복지 혜택들을 뺏어가는 것을 뜻하는 사회보장 ‘계혁’따위였습니다. 그러니 제 3의 길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항복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강연 앞부분에서 제가 예증한 지긋지긋한 불평등의 증대를 고려한다면 이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것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혁명적 사회주의입니다. 즉, 자본주의를 개혁 또는 조절하려 하지 말고 완전히 없애고 사회주의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즉 혁명적 사회주의 전략을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그토록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널리 퍼져 있는 생각, 특히 서구의 통념은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옛 소련과 동유럽이 이른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마르크스주의가 죽은 사상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89년 동유럽 혁명이 ‘역사의 종말’을 뜻한다고 주장한 바도 바로 이것을 가리켰습니다. 미래는 그저 끝없는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는 이 주장은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은,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련과 동유럽 또는 북한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똑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 개인의 관점이 아니라, 제가 당원으로 있는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전세계 국제사회주의 경향에 속한 자매단체들의 관점임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단지 하나의 마르크스주의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경쟁하는 여러 마르크스주의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어떻게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이어 나아갈지를 규정하려는 서로 경쟁하는 시도들입니다. 특히 스탈린주의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전통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에 주창해서 레닌과 볼셰비키 그리고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가 지속시킨 전통입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


그것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적 근거로서 유물론적 역사 이론과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단지 지적인 도구 또는 특정 세계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해석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둘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변혁의 정치적 프로젝트(계획)입니다. 그 계획의 핵심은 사회주의에 대한 특정 개념입니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자신의 일이라는 마르크스의 말로써 정의됩니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써만 이룰 수 있습니다. 당도, 의원도, 노동조합 지도자도 사회주의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변화는 대중의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의 개념이 이렇다면 옛 소련 동지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와 정반대의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질 것입니다. 스탈린주의 체제 하에서 권력은 아래로부터 행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권력은 사회의 맨 꼭대기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셋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이 포함됩니다. 오늘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부심이 충만해 고개를 반듯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소련에서 맨 처음으로 관료가 떠올랐을 때부터 레온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가 스탈린에게 도전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의 사회적 근원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스탈린이 몹쓸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관료 권력이라는 전체 사회 체제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스탈린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결정적인 발전은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창립자인 토니 클리프가 1940년대 말에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썼을 때였습니다. 클리프는 스탈린주의가 사회주의의 한 형태이기는커녕 단지 자본주의의 한 변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 말로 ‘노멘클라투라’라는 관료가 노동자 계급을 집합적으로 착취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탈린주의 체제와 서방식 자본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직 하나, 즉 지배계급이 편제되는 방식입니다. 서방에서는 사기업을 통해서, 동구권에서는 국가 권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1989년과 1991년의 격변, 즉 소련 등의 붕괴는 특정한 모양을 띠게 됩니다. 1989년과 1991년을 좌파의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부활하는 반혁명으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낙후한 사회주의에서 현대적 자본주의로 진일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어느 것도 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 형태의 자본주의에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 옆걸음질친 것이었습니다. 관료적 국가 자본주의에서 시장 자본주의로 말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러시아 사회의 현실을 설명해 줍니다.  

러시아인 자신들이 ‘노멘클라투라’자본주의에 대해 얘기합니다. 바꿔 말해, 옛 관료 지배계급이 민간 자본주의 기업가로 변신함으로써 생존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과두’에 대해 얘기합니다. 과두는 러시아 경제와 러시아 정치를 지배하는 거대 기업 제왕들을 말합니다. 이 과두는 옛 스탈린주의 관료 출신이었던 덕분에 기업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시장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주민 대중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자칭 민주주의자로 자처하지만 그들의 출신은 옛 노멘클라투라에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한 엘리트 집단에서 다른 엘리트 집단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 자신이 과거의 혁명들은 그저 한 소수파에서 다른 소수파에게로 권력을 이전시켰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란 거대 다수를 위한 거대 다수의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변혁입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 자신의 투쟁과 삶을 통해 아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저를 이 강연의 첫 부분으로 도로 데려갑니다.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함께 논의하는 것은 옳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최대 비판자였습니다. <자본>에서 그가 한 분석은 여전히 오늘날 세계 경제 모순들을 이해하는 최상의 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는 사회변혁의 주체를 규명하지도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화에 직면해 절망하기가 쉽습니다.‘초국적 자본이 얼마나 강력한가’, ‘그들이 케인즈주의자인 라퐁텐을 어떻게 쉽게 제거했는가’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세계 자본과 맞설 수 있는 세력이 세계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노동자 계급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임금 노동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넓게 이해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착취당하는 조건하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축적과정의 확산 덕분에 노동자 계급은 전세계 인구의 다수가 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노동자 계급이 여전히 사회변혁의 결정적 주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정체성 정치와 자율주의 
 

이런 맥락에서 저는 계급 문제를 다루는 잘못된 방법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정체성 정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별개인 다원적 이해관계와 투쟁으로 사회가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는 계급의 충돌같은 중심적인 충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껏해야 그 정치는 상이한 사회운동들을 불러 모은 연합체를 건설하려 애씁니다. 정체성 정치는 현대 사회의 현실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왜 마르크스가 자본-노동 관계가 사회 변혁에 그리도 핵심적이라고 주장했는지 정체성 정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이 중요한 건 유일하게 또는 가장 억압당하는 사회 집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자 계급이 중요한 건 자본주의 생산에서 그들이 착취당한다는 사실 덕분에 그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집단적으로 마비시키고 심지어 변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래에 일어난 비교적 부분적이고 제한된 변화에서조차 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왜 남한은 근래에 부분적·제한적 정치 자유화를 겪었습니까? 결정적인 이유는 첫째로 1987년의 반란이었습니다. 이 반란은 학생 운동으로 시작돼 산업의 대중 파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둘째로 1997년 1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중 파업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 계급은 정치 체제의 변화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계급문제를 다루는 두 번째 잘못된 방식은 ‘자율주의’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에 대해 저는 단지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자율주의’는 안토니오 네그리나 질 들뢰즈 같은 일부 유럽 좌파 철학자들과 연관돼 있습니다. 자율주의는 자본 노동 관계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권력 관계로 환원시킵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왜 착취가 일어나는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입니까? 단지 그가 심보가 나쁘고 탐욕스런 사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물론 매우 흔히 자본가들은 심보가 나쁘고 탐욕스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착취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다른 요인들, 특히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이 축척하고 착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내몰리는 방식을 포함해야 합니다. 달리 말해, 생산에서의 착취과정을 자본주의 체제의 동력에 관한 이론이라는 더 큰 틀 안에 자리 매김해야 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출발점에서 출발해, 안토니오 네그리는 그 다음에 이러한 권력 관계를 사회 전체로 적용합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으로 됩니다. 학생도 착취당하고, 주부도 착취당하고, 실업자도 착취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착취 개념을 희석시켜 마침내 그 개념은 더 이상 아무런 명확한 경제적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자율주의자들은 착취에 맞서는 대중의 자생적 반란에 특권적 의의를 부여합니다. 물론 자생적 반란은 아주 좋은 것이고 사실 굉장히 멋진 것이죠. 하지만 흔히 자율주의자들은 자생적 반란의 구호를 이용해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적개심을 정당화 합니다. 물론 노동조합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노동조합은 보통 보수적 노동 지도자들이 득세합니다. 노동 조합은 개량주의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노동조합니 노동자 계급대중, 즉 조직이 가장 잘 돼 있고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착취에 저항하기 위해 함께 만나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는 노동자 계급 다수의 능동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면 노동자들이 있는 곳, 노동조합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율주의는 단순히 이론상으로 큰 결함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적용된 바 있는 유럽에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빚은 잘못된 정치 전략으로 끝납니다. 
 

맺음말


저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정체성 정치와 자율주의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중요한 정치 쟁점들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 변혁에서 노동자 계급 대중이 하는 중심적 역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근래에는 이 계급, 노동자 계급이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주요한 투쟁을 치렀습니다. 앞에서 저는 1997년 1월 남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예들도 있습니다. 1995년 11∼12월 프랑스 공공부문 대중 파업은 프랑스 지배계급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이려다 실패한 주된 경험입니다. 저는 21세기는 자본과 노동이 이제 진짜로 세계적인 규모로 위대한 대결을 계속할 세기라고 믿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과제는 이 투쟁과 연계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따라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21세기에 위대한 미래를 누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원문 : http://www.reltih.com.ne.kr/reading/alex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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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06-2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이 쪽 책들을 통 안 읽어서, 좋은 정보는 다 이 서재에서 보고가나 봐요. 땡스~
 
 전출처 : 쎈연필 > [퍼온글] 숫자의 다양한 의미..

출처:http://blog.naver.com/ymlee6326/40009720792

 

0

0은 비존재, 무(無), 비현현, 무한정한 것, 영원한 것, 질이나 양을 초월한 것을 나타낸다. 비어 있는 원으로 묘사된 0은 죽음의 공허함과 원에 포함된 생명의 전체성을 동시에 나타내며, 원과 동일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타원으로서의 0은 두 개의 호가 각기 상승과 하강, 밖으로 향한 선회와 안으로 향한 선회를 나타낸다. 1에 앞서 나온다는 점에서 공(空), 비존재, 사념, 궁극적 신비, 불가해한 '절대'의 뜻이다.

도교 0은 '공(空)'과 무를 나타낸다.

카발리즘 '무한정한 것', '무한의 빛', '절대무(絶對無)'를 상징한다.

피타고라스 학파 0은 완전형, 만물의 기원이자 만물을 포괄하는 '모나드'를 나타낸다.

이슬람교 0은 신의 본질이다. 또한 0은 '우주란(宇宙卵)', 원초적인 남녀추니를 나타내고, '충만'을 상징한다.

1

1은 원초의 통일, 태초의 시작, 창조자, 주동자, 모든 가능성의 총합, 본질, 중심,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것, 배아(胚牙), 고립을 나타낸다. 또한 융기, 상승을 나타낸다.

중국 양(陽), 남성, 하늘, 길(吉)을 뜻한다.

기독교 하나님 아버지, 신성을 뜻한다.

유태교 1은 아도나이를 나타낸다. 또한 숨겨진 지식(카발라에서는 세피로스의 케텔)을 뜻한다.

이슬람교 통일로서의 신, 절대자, 모든 것을 자족할 수 있는 존재를 뜻한다.

피타고라스 학파 영(靈), 만물의 기원으로서의 신, 본질, 모나드를 의미한다.

도교 도(道)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

2

2는 이원성, 둘의 교체, 차이, 갈등, 의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정적인 상태, 뿌리박음, 변하여 균형을 유지함, 안정, 반영, 대극, 인간의 이원성과 욕망을 나타낸다. 이원성으로서 현현되는 것은 모두 서로 대립되는 쌍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1는 점(点)을, 2는 길이를 나탄내다. 2는 1에서 출발한 최초의 숫자며 따라서 최초의 선(善)에서 일탈이라는 의미의 죄를 상징한다. 또한 순간적으로 타락하기 위숨을 나타낸다.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두마리의 동물은 배가된 힘을 나타낸다.

연금술 2는 태양과 달, 왕과 왕비, 유황과 수은 등 대립물을 나타낸다. 따라서 처음에는 대립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융합되는 남녀추니로서의 통일이다.

불교 2는 '윤회'의 이원성, 남과 여, 이론과 실천, 지혜와 방법을 나타낸다. 또한 서로 도와 길을 찾고 걷는 맹인과 절름발이를 뜻한다.

중국 2는 음(陰), 여성, 뭍(지상), 흉(凶)을 뜻한다.

기독교 신성과 인간성을 겸비한 예수를 뜻한다.

유태교 생명력을 의미하고, 카발라에서는 지혜와 자기 인식을 뜻한다.

힌두교 이원성, 샥타와 샥티를 뜻한다.

이슬람교 영(靈)을 뜻한다.

플라톤주의 플라톤에 의하면 2는 뜻이 없는 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3의 요소를 도입하는 관계를 함의(含意)하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학파 2는 한 쌍, 즉 2분된 지상적 존재를 나타낸다.

도교 괘(卦)는 음과 양, 두 가지 결정요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2는 중심이 없기 때문에 음에 속하는 약한 숫자다.

    3

    3은 다수, 창조력, 성장, 이원성을 극복한 전진운동, 표현, 통합을 뜻한다. 3은 '모든'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 최초의 숫자이며, 처음과 중간과 끝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전체를 나타내는 숫자다. 3의 힘은 보편적이며 하늘, 땅, 바다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3중성을 나타낸다. 또한 인간의 육체·혼·영, 탄생·삶·죽음, 처음·중간·끝, 과거·현재·미래, 달의 세 가지 상(초승달, 반달, 보름달)을 나타낸다. 3은 천계의 숫자이며, 4가 육체를 나타내는 데 비해 3은 영혼을 상징한다. 3은 4와 합쳐져 7이라는 성스러운 숫자가 된다. 또 3과 4를 곱하면 12가 되는데, 그것은 '황도십이궁', 일년 열두 달을 의미한다. 3은 1과 2를 더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2와 1로 나누어질 수 있다. 도교에서 3은 평형을 성립시키는 중심점을 가지기 때문에 강한 숫자다. 3에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성'(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가족에게도 반영된다. 또한 3에는 중첩효과라는 권위가 있다. 즉 한 번이나 두 번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지만 세 번이 되면 확실성과 강한 힘을 지닌다.

    예를 들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3배 위대한 주(主)', '3배 행복한 섬' 등이 그것이다. 민화에서는 3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한다. 3번의 소원, 3번의 시련, 3인의 왕자, 왕비, 마녀, 또는 운명의 세 여신, 3인의 요정을 뜻한다. 이중 둘은 착한 요정, 나머지 하나는 악한 요정인 경우가 많다. 3은 다수를 의미하는데, 많은 숫자, 군집, '만세삼창'을 나타낸다. 또한 성취를 상징하기도 한다. 신들과 영적 존재의 삼위일체의 예는 무수히 많다. 삼위일체의 달의 여신이나 삼면의 여신은 특시 셈족, 그리스, 켈트, 게르만 등의 종교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하나의 신격을 가진 세 개의 상(相), 힘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3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는 제일 먼저 삼각형이 있다. 3개의 원, 또는 삼각형이 일부 중첩되어 있는 도형은 삼위일체로서의 3개의 인격의 불가분의 통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각형 외에 3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는 삼지창, 붓꽃, 세개의 잎, 3중 벼락, 괘상 등이 있다. 달에 속하는 동물들은 다리가 세 개인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달의 세 가지 모양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달에 3마리의 토끼, 또는 세 사람의 인간이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프리카 아샨티 족 달의 여신은 셋인데, 그중 둘은 흑인, 하나는 백인이다.

    연금술 황, 수은, 소금의 세 성분으로 이것들은 각기 영, 혼, 육체를 나타낸다.

    고대 서아시아 삼위일체의 신이 많다. 카르타고에서는 달을 뜻하는 '태모신'이 3개의 상징적인 기둥으로 묘사되었다.

    아라비아   이슬람교 이전에 마나트는 3인의 성처녀(알-이타브, 알-우자, 알-마나트)로 나타내지는 삼위일체의 여신이다.1) 이 여신의 상징은 돌기둥, 돌, 기둥 또는 꼭대기에 비둘기를 장식한 기둥이다.

    1) 이타브는 타이프 근교의 계곡에 있는 흰 돌에 사는 처녀신, 우자는 메카 근교의 계곡 아카시아 나무에 살고, 마나트는 메카와 메디나 사이의 쿠다이드에서 제사지내는 검은 돌에 산다.

    불교 3은 '삼보(三寶)', 즉 불교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 요소인 부처, 부처의 가르침, 승려를 나타낸다.

    켈트 브리지트 여신은 세 가지 모습을 가진다. 켈트에는 '지복의 세 여인' 외에 무수한 3인조 신들이 있다. 이 신들은 같은 신의 세 가지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다. 켈트의 전통문화에서 3은 특히 중요한 숫자다.

    중국 3은 성스러움, 길(吉)한 숫자, 가장 작은 홀수이다. 달에 사는 두꺼비 혹은 태양에 사는 새는 다리가 세 개다.

    기독교 3은 삼위일체, 혼, 인간과 교회의 영육간의 결합, 삼인의 동방박사가 '신, 왕, 희생'으로서의 예수에게 바치는 세 가지 선물(유향, 황금, 몰약), 변용된 예수의 세 가지 모습, 예수가 받은 세 차례의 유혹, 베드로의 세 차례에 걸친 부인, 골고다 언덕의 세 개의 십자가,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기까지의 날 수, 부활한 예수가 세 번 출현함, 엠마오의 순례자, 사도들에게 출현, 3인의 마리아, 신앙·희망·은총으로 이야기되는 신을 향한 세 가지 덕목을 뜻한다.

    이집트 그리스·로마 시대에 토트 신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로 불렸다.

    그리스, 로마 3은 숙명, 운명으로서 세 가지 모습을 가진 하나의 신 모이라이(라케시스, 클로토, 아트로포스)를 나타낸다. 헤카테(Hecate) 여신도 삼위일체다. 복수의 여신으로 나타나는 에리니에스(Erinyes, 알렉토, 타시포네, 메가이라)들과 메두사로 알려진 괴물 고르곤의 세 자매들(Gorgon, 스테노, 에우리알레, 메두사)도 하나이자 셋인 모습이다. 또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세 여신 카리테스들(Caritas,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시네, 탈레이아), 미의 세 여신들(graces), 3인의 세이렌(Seiren), 식물의 성장을 주관하고 자연과 사회의 질서를 상징하는 세 명의 여신 호라이들(Horae, 에우노미아, 디케, 에이레네 또는 탈로, 아우크소, 카르포),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을 지키는 세 명의 여신들(아이글레, 아리티아. 헤스펠라레투사 또는 아이글레, 아레투사, 헤스페리아), 태어날 때부터 백발을 하고 나온 그라이아이(Graeae, 팜프레도, 에니오, 데이노)도 있다. 지옥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Cerberos)는 머리가 셋이고 스킬라(Scylla)에게는 거대한 꼬리가 세 개, 키마이라(Chimaera)는 머리와 몸, 꼬리가 세 가지 다른 동물(사자, 산양, 뱀)의 모습이었다. 3,4 그리고 두 숫자의 합인 7은 3가지의 세계와 4대 원소를 주관하는 여왕으로서의 여신 아프로디테/베누스(Aphrodite/Venus)의 성스러운 숫자다. 오르페우스(Orpheus) 교의 상징체계는 '존재', '생명', '지성'이라는 3대 요소를 가진다.

    유태교 3은 무한의 빛, 성화(聖化)된 지성, 카발라에서 3은 세피로스의 비나(지성)을 나타내며, 남·녀, 통합적 지성의 삼위일체를 나타낸다.

    헤르메스 사상 지고의 힘힘으로서의 신, 즉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를 의미한다.

    힌두교 트리무르티(trimurti,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를 의미한다. 이는 창조·지속·파괴와 시작·유지·종결의 세 가지 힘을 나타낸다. 이외에도 삼신일체의 신은 많다. 달의 전차는 바퀴가 세 개 달려 있다.

    잉카 태양신에는 아버지 태양(아포인테이), 자식 태양(첼리인테이), 형제 태양(인테이카오키)의 세 가지 모습이 있었고, 이들은 삼신일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 세 가지 신기(神器)에는 거울(八咫鏡), 검(天叢雲劍), 옥(八坂瓊曲玉)이 포함되며, 각기 진리·용기·연민의 뜻을 가진다.

    마오리 족 창조신인 큰영은 태양, 달, 대지의 삼위일체 신이다. 또한 자연의 신 즉 과거·현재·미래의 신이기도 하다. 3은 세워진 세 개의 손가락으로 상징되는 정신·인격·체격이다.

    피타고라스 학파 3은 완성을 나타낸다.

    북유럽, 게르만 숙명은 세 명의 노른(마니, 니, 니시), 즉 운명의 세 여신을 통해서 나타난다. 세 자매는 순서대로 보름달, 초승달, 반달을 상징한다. 게르만 신화에서는 달이 숙명을 나타내며, 달의 여신 홀다는 두 자매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룬다. 달에 사는 토끼는 다리가 셋이다. 천둥신 토르(Thor)는 때로 머리가 셋 달린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삼각 소용돌이 무늬 또는 삼각 호 장식은 오딘/보탄(Odin/Wotan)의 상징이다. 또한 3은 행운의 숫자다. 뭐든 좋은 것은 3이다.

    슬라브 달의 신은 머리가 세 개다.

    도교 삼재는 천, 지, 인을 가리킨다. 3은 모든 것을 둘로 나누면, 중심이 남는 최초의 강한 숫자다. 3은 양. 길함을 뜻하며 다수를 상징한다.

    4

    최초의 입체는 4에서 비롯된다. 4는 현현의 공간적 구조 또는 질서, 동적인 원에 대립하는 정적인 상태를 상징한다. 4는 완전성, 전체성, 완성, 연대, 대지, 질서, 합리성, 측정, 상대성, 정의를 상징한다. 4에서 비롯되는 것으로는 4가지 기본 방위, 사계절, 4개의 바람, 정사각형의 4변, 십자가의 4개의 팔, 낙원에 있는 4개의 강, 지옥에 있는 4개의 강, 네 개의 성산(聖山), 낮과 밤의 네 구분, 달의 4현(弦), 4복음서 기록자 등이 있다. 서구에서는 세계가 4대 원소(동양에서는 5행)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성스러운 사위일체는 삼위일체와 대조적이다. '구약성서'에서는 4가 상징적인 숫자였고, '낙원'의 중심에서 네 방향을 향해서 십자형으로 흘러나가는 4개의 강(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지상 세계의 4개 지방 등 보편적인 상징이었다. 사위일체는 정사각형이나 십자가 뿐 아니라 4개의 잎 형상으로도 묘사된다.

    아메리카 인디언 4는 네 개의 기본방위, 4가지 바람 등 가장 자주 사용되는 숫자이며, 십자, 만(卍) 등의 형태로 묘사된다. 의식이나 의례에서는 같은 동작이 네 번 반복된다.

    고대 서아시아 바람의 네 신은 동사남북의 네 방위와 동일시되었다.

    불교 생명의 나무 담바에는 큰 가지가 4개 있고, 뿌리에서는 낙원의 4개의 성스러운 강이 흘러나온다. 이것들은 자무량심(慈無量心), 비무량심(悲無量心), 희무량심(喜無量心), 사무량심(捨無量心)의 4무량심1)을 나타낸다. 중국 불교에서는 4가지 기본 방위에 사천왕(四天王)2), 즉 동에는 옥반지와 창을 들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에는 비파를 지닌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에는 혼돈과 지진, 암흑의 우산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에는 채찍, 표범가죽으로 만든 자루, 용, 진주를 가지고 있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자리잡고 있다.

    1) 자무량심은 안락을 베풀려는 마음, 비무량심은 다른 사람의 고난을 덜어주려는 마음, 희무량심은 중생이 기쁨을 얻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 사무량심은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을 버리고 모두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이다.
    2) 한국에서는 동쪽에 옥반지와 검을 지닌 지국천왕, 남쪽에 용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 서쪽에 탑을 들고 있는 광목천왕, 북쪽에 비파를 지닌 다문천왕이 있다.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의 목조 사천왕 참조.

    중국 4는 정사각형으로 상징되는 '대지'의 숫자다. 불사의 강은 모두 네 개다.1) 4는 짝수이며 음(陰)의 숫자다.

    1) 사독(四瀆): 신앙의 대상이 된 4대강. 양쯔(揚子), 지수이(濟水), 황허(黃河), 화이허(淮水).

    기독교 4는 육체의 숫자, 3은 영혼의 숫자다. 낙원에서 흘러나오는 4개의 강, 4복음서, 4복음서 기록자, 4명의 대천사(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 4악마(사탄, 바알제붑, 벨리아르, 몰록), 4대 교부(성 암브로시우스, 성 히에로니뭇,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그레고리우스), 4대 에언자(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4덕(신중, 용기, 절제, 정의), 하나인 영기에서 불어오는 4개의 바람, 계시록의 4기사, 4복음서 기록자의 형상을 뜻한다.

    이집트 4는 시간과 태양의 운행을 이해하는 성스러운 숫자다. 4개의 기둥이 하늘의 궁륭을 떠받치고 있다. 사체(死體)의 네 부분(간장, 폐, 내장, 위)이 담겨 있는 4개의 카노푸스의 단지를 지키는 수호자는 4가지 기본 방위와 연관되는 호루스(Horus)의 네 자식들이다.

    그노시스 주의 바벨로(태모신)의 4를 뜻한다.

    그리스 4는 헤르메스 신의 숫자다.

    유태교 4는 측정, 은혜, 지성을 나타낸다. 카발리즘에서 4는 세피로스의 헤세트(은총)를 나타내며, 카발라의 4세계(유출 세계, 창조 세계, 형성 세계, 활동 세계), 공간의 4방위, 토라의 4가지 위계를 나타내는 숫자다.

    헤르메스 사상 헤르메스 사상에서 4는 사위일체의 신(누스, 로고스, 누스 데미우르고스, 안트로포스)을 나타낸다.

    힌두교 전체성, 충실, 완성을 의미하며, 창조주인 브라흐마는 4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힌둑 사원은 정사각형의 4변을 기초로 건축되며 질서와 완결성을 상징한다. 4개의 물질전개원리, 인간의 사지, 4자연계(동물, 식물, 광물, 정신), 4유가를 뜻한다. 4는 주사위에서 가장 이길 승산이 많은 숫자(서양에서는 7)이다. 4개의 카스트, 둘씩 대립하는 4개의 쌍이 있다.

    이슬람교 원질을 나타내는 4가지 요소는 원리(창조주), 보편적 지성, 보편 영혼, 제1질료다. 이것은 카발리즘의 4세계에 대응하는 것이다. 또한 4인의 천사, 4개의 죽음의 집이다.

    마야 천둥번개를 타고 지상계의 기본방위로 나타나는 챠크스 신이 있다. 또한 바카브 신과 4인이 교대로 1년의 1/4씩 지상계를 통치한다.

    피타고라스 학파 완성, 조화로운 균형, 정의, 대지를 뜻한다. 4는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서약의 숫자다. 4와 10는 신을 뜻하며, 테트라크티스(tetraktys, 1+2+3+4=10)의 성수(聖數)다.

    북유럽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트(Asgard)에는 젖이 흐르는 4개의 강이 있다.

    게르만 4인의 난장이가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도교 하늘을 지키는 네 사람의 수호신은 옥으로 만든 탑을 들고 있는 이(李), 검(劍)을 들고 있는 마(馬),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는 조(趙), 못이 박혀 있는 곤봉을 들고 있는 온(溫)이다. 4종류의 영적인 짐승으로 된 4신과 4령이 있다. 4신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이며, 순서대로 4가지 기본방위(동서남북)를 나타낸다. 4령은 기린, 봉황, 거북, 용이다.

    5

    5는 소우주로서의 인간을 나타낸다. 사지를 뻗어 오각형의 별 모양을 한 사람을 나타내는 숫자다. 오각형 별에는 끝나는 점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별과 마찬가지로 완전성과 힘의 상징이다. 5는 n제곱을 했을 때 마지막 숫자가 항상 5로 끝나기 때문에 순환수라고 불린다. 오각형 별은 원처럼 전체를 상징한다. 5는 중심과 기본방위를 나타내는 4점을 합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각형 별 모양은 4대 원소라는 힘을 만들어낸 중심적 창조주인 신성을 나타낸다. 5는 여성, 짝수인인 2와 남성, 홀수인 3의 결합으로서 성혼의 숫자다. 또한 5는 명상, 종교, 섭리, 다재, 오감을 나타낸다. 다섯잎 꽃, 다섯 개의 끝을 가진 잎은 소우주를 나타낸다. 별포는 펜타그램과 마찬가지로 통합된 인격을 나타내며 별표의 곡지점이 위쪽을 향하고 있을 때에는 요술과 검은 마법을 뜻한다. 사람의 다섯 손가락은 최초의 계산기 구실을 했다.

    연금술 다섯잎 꽃과 오각형 모양의 별은 제5원소를 나타낸다.

    불교 심장에는 네 가지 방향이 있고, 중심과 합해서 5라는 숫자가 되어 보편성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네 개의 섬에 둘러싸인 '성산(聖山)'도 보편성의 상징이다.1) 다섯의 선정불(禪定佛)2)이 있다.

    1) 수미산(須彌山)은 동의 승신주(勝身洲), 서의 섬부주(贍部洲), 남의 우화주(牛貨洲), 북의 구로주(俱盧洲)의 네 대륙에 둘러싸여 있다.

    2) 1. 대일여래(大日如來, 광휘의 뜻)는 법륜(法輪)과 중심과 흰색으로 상징된다. 2. 아축여래(阿축如來, 부동의 뜻)는 금강, 동쪽, 청색으로 상징된다. 3. 보생여래(寶生如來, 보탄(寶誕)의 뜻)는 보석과 남쪽, 황색에 의해서 상징된다. 4.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무량광(無量光)의 뜻)는 연(蓮)과 서쪽, 적색에 의해서 상징된다, 5 불공성취여래(不空成就如來, 아주 확실한 성공의 뜻)는 검(劍)과 북쪽, 녹색으로 상징된다.


    중국 오행(五行)1), 오기(五氣)2), 오운(五運)3), 오성(五星)4), 오악(五嶽)5), 오곡(五穀)6), 오색(五色), 오미(五味)7), 오독(五毒)8), 오진(五塵)9), 오덕(五德)10), 오복(五福)11), 오상(五常)12), 오륜(五倫)13)을 뜻한다.

    1)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2) 추위(寒), 더위(暑), 가뭄(燥), 습함(濕), 바람(風)
    3) 오행의 운행
    4) 목성(歲星), 화성(熒惑星), 금성(太白星), 수성(辰星), 토성(鎭星)
    5) 태산(泰山), 형산(衡山), 화산(華山), 항산(恒山), 숭산(嵩山)
    6) 중국에서는 참깨, 보리, 피, 쌀, 콩(또는 참깨, 보리, 피, 수수, 콩)을 오곡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오곡이라 한다.
    7)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단맛
    8) 뱀, 두꺼비, 지네, 전갈, 도마뱀의 독
    9)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는 다섯 가지 욕망. 물질(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촉감(觸)의 오욕
    10) 온화, 양순, 공손, 검소, 겸양
    11) 장수, 부유, 무병식재, 도덕을 즐기는 것, 천수를 누리는 것(또는 자손이 많은 것)
    12) 어짐(仁), 의리(義), 예절(禮), 지혜(智), 신뢰(信)의 다섯 가지 덕
    13) 부자유친(父子有親), 장유유서(長幼有序),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붕우유신(朋友有信)

    기독교 5는 타락 후의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다. 오감(五感), 십자가의 다섯 개의 점, 십자가 형을 받은 예수의 몸에 난 다섯 개의 상처(두 손, 두 발, 허리), 5천 사람을 먹인 물고기, 모세 오경1)의 숫자다.

    1)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집트 나일강에 있는 다섯 마리 악어의 숫자다.

    그리스, 로마 사랑과 화합을 나타내는 혼례의 숫자다. 5는 비너스(금성)의 숫자며, 비너스는 5년을 주기로 완성된다. 빛의 신으로서의 아폴론/아폴로는 전능, 전지, 편재, 영원, 통일의 5가지 상징물을 가지고 잇다.

    유태교 5는 강함과 엄격, 근원지의 상징이다. 카발에서 5는 세피로스의 게브라(엄격함)를 의미한다.

    힌두교 세계는 다섯 가지 요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오대(五大, 조악하고 큰 다섯 원소), 오유(五唯, 미세 원소), 다섯 가지 원색, 오감, 시바 신의 다섯 가지 얼굴이다. 비슈누(Vishnu) 신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10가지(5의 2배) 권화1)가 있다.

    1) 마즈야(물고기), 쿠르마(거북), 바라하(멧돼지), 누리싱하(사람사자), 바마나(난쟁이), 파라슈라마(도끼를 가진 라마), 라마, 크리슈나, 석가세존, 칼키

    이슬람교 실행해야 할 다섯 가지 의무인 오주(五柱)1), 신의 다섯 가지 '재림'2), 다섯 가지 기본 교리3), 다섯 가지 활동, 하루 다섯 차례4)의 예배를 나타낸다.

    1) 신앙 고백, 예배, 단식, 희사, 순례
    2) 물질세계, 이미지와 상징의 세계, 영의 세계, 신의 이름과 속성의 차원, 신의 본질의 차원
    3) 무아타지라파는 1. 신의 유일성, 2. 신의 공정함, 3. 내세에 대한 약속과 위협, 4. 중간적인 위치, 5. 윤리적 명령이고, 시아파는 1. 신의 유일성, 2. 신의 공정함, 3.예언자직, 4. 사도직, 5. 이맘직
    4) 새벽, 정오, 오후, 일몰, 밤


    파르시 교 파르시 교와 만다 교의 의식에서 5는 매우 중요한 숫자다. 그것은 성스러운 빛의 윤일이 5일이라는 사실과 결부된다.

    피타고라스 학파 5는 성혼, 즉 하늘(3)과 대지(2)의 결혼을 나타낸다. 빛, 빛의 신 아폴론과 그의 다섯 가지 특성을 가리킨다.

    6

    6은 평형, 조화를 상징한다. 6은 1에서 10까지의 범위 안에서 완전수(1+2=3=6)다. 필론에 따르면 모든 수의 중심으로서 가장 생산적이다. 6은 서로 반대되는 대극(對極)의 통일을 상징하는데, 자웅 두 개의 삼각형이 합쳐져 남녀추니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때 꼭지점이 위를 향하고 있는 삼각형은 남자와 불, 하늘을 나타내고, 역삼각형은 여자, 물, 대지를 나타낸다. 또한 6은 사랑, 건강, 아름다움, 기회, 행운을 의미한다. 서양에서는 주사위에서 6이 다른 숫자를 누르는 가장 강한 숫자다. 태양의 바퀴에는 6개의 빛줄기가 있다. 교차하는 두 개의 삼각형, 즉 '솔로몬의 봉인'이라고 불리는 6개의 꼭지점을 가진 별은 완전한 균형을 상징한다.

    고대 서아시아 창조에 소요되는 6일간을 뜻한다.

    중국 우주는 6이라는 숫자에 의거한다. 4가지 기본 방위와 하늘(위)과 땅(아래)이 6가지 방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여섯 가지 감각1)이 있다. 밤낮의 깊이는 각기 여섯으로 구분된다.

    1)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육감으로서의 마음

    기독교 6은 완전, 완성, 우주 창조에 필요한 6일간을 나타낸다.

    유태교 창조에 필요한 6일간, 명상, 지성을 나타낸다. 카발라에서 6은 창조, 세피로스의 디후엘레트(아름다움)의 상징이다.

    피타고라스 학파 기회, 행운을 뜻한다.

    7

    7은 대우주를 나타내는 숫자다. 완전, 전체성의 뜻이다. 3은 하늘과 혼을, 4는 대지와 육체를 나타내기 때문에, 7은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덧없음을 모두 포함하는 제일 작은 숫자다. 7은 완성, 보증, 무사, 안식, 풍부, 재통합, 종합 등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리고 처녀성과 '태모'를 나타내는 숫자다. 7과 연관되는 것으로는 우주의 7단계, 일곱 개의 하늘, 일곱층의 지옥, 7개의 행성과 그 행성이 나타내는 금속들(달은 은, 수성은 수은, 금성은 동, 태양은 금, 화성은 철, 목성은 주석, 토성은 납)이 있다. 우주의 일곱 개의 원, 태양의 일곱가지 광선, 인간의 일곱시기, 지혜의 일곱기둥, 일곱가지 무지개색, 1주일의 일곱 요일, 7음계, 세계의 7대 불가사의1) 등이다. 태양의 제7의 광선은 인간이 현세에서 내세로 가는 길이다. 단식과 회개는 7일간 행한다. 고대 유태인 철학자 필론에 따르면 어떤 수도 7제곱을 하면 제곱과 세제곱 모두를 포함하므로 7은 매우 중요한 숫자다.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용은 인도, 페르시아, 동아시아, 켈트, 지중해의 신화에 등장한다.

    1) 이집트의 피라밋,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터키 에베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그리스 로도스 섬의 거인청동상, 이라크 바빌론의 공중정원, 허티 할리카르나소스의 무덤, 그리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연금술 작업에서 7개의 금속이 관계된다.

    고대 서아시아 월령의 일곱 가지 구분과 1주일의 일곱 요일이다. '달이여! 그대는 뿔 모양의 빛으로 6일을 정하고 7일째에는 반쪽의 관으로 빛난다.' 이런 의미에서 음력 일곱째 날은 태양에 대립하는 어둠과 불길을 상징하며, 일곱째 날에 어떤일을 시작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그 날이 안식일이 되었다. 대지에는 일곱 개의 지역이 있다. 지구라트의 일곱 행성들로 상징되는 일곱 개의 하늘이다. '생명의 나무'의 일곱가지에는 각기 일곱 개의 잎이 달려 있다. 지옥의 일곱 개의 문, 티아마트 여신의 일곱 악령과 그 여신을 죽인 일곱 개의 바람, 7가지 색, 일곱개의 인장, 일곱 기둥의 '운명의 신'을 나타낸다.

    점성술 큰곰자리의 일곱 개의 별은 1년 중 어느 때라도 볼 수 있다는 면에서 불멸이다. 플레이아데스, 일곱 개의 큰 행성, 태양의 일곱 가지 광선을 뜻한다.

    불교 7은 상승의 숫자, 지고천(至高天)으로 올라가 중심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숫자다. 부처의 칠각(七覺, 일반적으로 팔상)은 시공을 초월하는 칠천(七天)1)을 넘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자바 섬에 있는 보루부두르 불교사원의 7층 건축물은 성산이자 우주축을 상징한다. 정상은 초월적인 북쪽을, 정상에 오르는 것은 부처의 영역에 도달했음을 상징한다.

    1) 야마천(夜摩天), 도사다천(覩史多天), 낙변화천(樂變化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범중천(梵衆天), 대범천(大梵天)

    기독교 신은 천지창조를 나타내는 6개의 광선의 한가운데 있는 일곱번째 광선으로 상징된다. 7과 관계되는 것으로는 7가지 성사1), 성령의 일곱가지 선물2), 7덕3), 일곱가지 큰 죄4), 연옥에 있는 일곱 층으로 된 산5), 중세의 자유 7과6), 행성을 포함하고 있는 일곱 개의 투명구체, 7대 예언자7), '지상'에 관계하는 일곱 대천사8), 예수에 의해서 추방된 일곱 악마, 7일간의 단식과 회개,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기쁨9)과 슬픔10), 기독교 국가의 7대 영웅11), 초대 교회의 일곱가지 충고다. 또한 천지창조의 6일이 지난 후 일곱째 날은 안식일이다. '구약성서'에서 7이라는 숫자는 바알람의 일곱 개의 제단, 제물로 바친 일곱 마리 수소와 숫양, 일곱 개의 양각 나팔,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돎, 나아만이 요단 강에서 목욕한 횟수, 또한 삼손은 '푸른 칡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이라고 말했다. 엘리사에 의해 깨어난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했다. 노아의 방주는 7개월 만에 육지에 도달했다.

    1) 성세, 견진, 성체, 고백, 병자, 신품, 혼인
    2) 지혜, 총명, 지식, 의지, 영리, 효애, 경외
    3) 3가지는 신에 대한 덕이고, 4가지는 기본 도덕
    4) 교만, 탐욕, 색욕, 질시, 폭식, 분노, 나태
    5) 일곱 가지 큰 죄를 하나씩 씻어내는 곳
    6) 문법, 논리학, 수사학, 기하학, 산술, 천문학, 음악
    7) 4대 예언자에 요나, 요엘, 자카리아 포함
    8) 4대 천사에 카무엘, 요피엘, 쟈디엘 포함
    9) 수태고지, 엘리사벳의 내방, 예수의 강탄, 동방박사 3인의 내방, 잃었던 예수의 발견, 부활, 승천
    10) 시누온의 예언, 이집트로의 피난, 예수를 잃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뭇사람에게 전시된 예수의 시신,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매장
    11) 영국의 성 게오르기우스/조지, 스코틀랜드의 성 안델레, 웨일즈의 성 다비드, 아일랜드의 성 파트리키우스, 스페인의 콤포스테라의 성 야곱, 프랑스의 성 도니, 이탈리아와 파트와의 성 안토니우스


    이집트 '운명의 여신'으로서의 일곱 명의 하토르(Hathor)와 마아트(Maat)가 있었으며, 이 여신의 여사제들은 7개의 항아리를 가지고 있었다. 라(Ra) 신의 일곱 딸은 7벌의 내의에 일곱 개의 매듭을 만들었다. 라 신의 일곱 마리 매들은 칠현인을 나타낸다. 라의 호아소와 함께 있는 일곱 마리의 암소는 풍요를 나타낸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집트 신화 해석에서는 명계에 일곱 가족이 있고 21개의 문이 있다. 7은 오시리스(Osiris) 신의 성수(聖數)다.

    그리스, 로마 7은 7현의 리라를 가진 아폴론/아폴로 신의 수이며 아테나/미네르바 여신, 군신 아레스/마르스의 수이기도 하다. 목신 판(Pan)은 일곱 개의 갈대로 만든 갈대 피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에는 일곱 명의 현인1)이 있다.

    1) 로도스 섬의 클레오불롯, 코린토의 정치가 페리안드로스, 레스보스의 정치가 피타코스, 그리스의 격언가 비아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스파르타의 정치가 케일론, 아테네의 정치가 솔론

    유태교 신비의 지혜를 뜻한다. 유태의 1년에는 일곱 번의 큰 제삿일1)이 있다. 메노라(Menorah)라는 가지가 일곱인 촛대가 있다. 솔로몬의 신전을 건축하는 데 7년이 걸렸다. 지혜의 일곱 기둥2)의 뜻이다.

    1) 신년제(로슈 하샤나), 속죄의 날(욤 피르르), 초막절 축제(수코프), 궁결제(하누카), 프림 제, 과월제(페사하), 칠주제(샤보트)
    2) 카발리즘에서 세피로스의 네시아하(영원)의 뜻이다.


    힌두교 브라흐마의 칠보, 대홍수 이전의 일곱 신과 홍수에서 구원된 일곱 현자를 나타낸다.

    이슬람교 7은 가장 작은 완전수, 일곱 개의 하늘, 일곱 가지 기후, 일곱 대륙과 바다, 일곱 색, 7인의 예언자1), 일곱 가지 활동력, 혼의 일곱 가지 상태2)를 뜻한다. 순례에서 가파 신전을 일곱 바퀴 도는 까닭은 알라가 가진 일곱 가지 속성을 상징한다. 순례에서 가파 신전을 일곱 바퀴 도는 까닭은 알라가 가진 일곱 가지 속성3)을 상징한다.

    1) 아담, 누흐(노아), 이브라힘(아브라힘), 무사(모세), 다우드(다윗), 이사(예수), 무하마드
    2) 명령을 내려 악으로 유도하는 혼, 비난하고 비판하는 혼, 영감을 받는 혼, 평온한 혼, 만족하는 혼, 기뻐하는 혼, 완전한 혼
    3) 생명, 지식, 의지, 능력, 청력, 시력, 언어


    일본 칠복신(七福神)1)을 상징한다.

    1) 대흑(大黑), 혜비수(惠比須), 비사문(毘沙門), 변천(辯天), 포대(布袋), 복록수(福祿壽), 수로인(壽老人)

    마법 주문으로 옭아매기 위해서 끈에 일곱 개의 매듭을 만든다. 주문은 일곱 번 반복한다.

    미트라교 미트라스 신전에는 일곱 개의 가로대를 가진 사다리가 있는데, 그것들은 밀의의 이니시에이션의 일곱 계단을 상징한다.

    피타고라스 학파 3은 하늘, 4는 대지를 뜻하며, 7은 이승의 '신', 완성을 나타낸다.

    8

    영적인 의미에서 8은 신참자가 이니시에이션의 일곱 단계, 칠천계(七天界)를 통과해서 도달하는 최종지점을 상징한다. 따라서 8은 '낙원'의 회복, 재생, 부활, 지복, 완전한 리듬의 상징이다. 신의 은총에 의해서 인간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제8일째다. 단식과 참회의 7일간이 끝난 8일째는 풍요와 신생의 날이다. 7+1이라는 의미에서 8은 옥타브를 나타내는 숫자, 재출발을 상징한다. 8은 8개의 꼭지점을 가진 정육면체와 결부되기 때문에 입체성을 상징한다. 동서남북의 4가지 기본 방위에 각각의 중간 방위를 다하면 8개의 방위가 되며, 바람에도 8가지 종류가 있다. 8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쌍을 나타낸다. 정팔각형은 정육면체에서 원으로서의 변형의 시작을 나타낸다.

    고대 서아시아 일설에 의하면 네보 신의 마법의 숫자다.

    불교 8은 완성상태, 모든 가능성을 나타내며 불족석(佛足石)의 팔길상인(八吉祥印)이다.

    중국 8은 전체, 모든 가능성의 현현, 행운의 상징이다. 팔괘(八卦)는 양(陽)을 나타내는 효(爻)가 세 개씩 다양하게 결합해서 8개의 조합으로 나타난 도형이다. 이들 8개의 조합은 대개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때 원주는 시간과 공간(및 그 속에서의 생성 유전)을 상징한다. 인간에게는 여덟 가지 기쁨이 있다.

    기독교 신생, 재생의 듯이다. 성수반은 대개 다시 태어남의 상징으로 8각형이다. 여덟가지 행복을 뜻한다.

    이집트 신 토트의 성수(聖數)다.

    유태교 8은 완벽한 지혜, 광휘, 세피로스의 호드(권위), 요드 헤 바브 헤(YHVH, 야훼)의 숫자, 주(主)의 숫자다. 솔로몬 신전은 8일째 되는 날 깨끗이 청소되었다.

    헤르메스 사상 8은 헤르메스 신학에는 수와 기하학의 발명자인 주신 토트/헤르메스와 그 밑의 여덟 명의 신1)이 있다.

    1) 눈, 네네트(심연), 후후, 후후트(무한), 쿠쿠, 쿠쿠트(암흑), 아멘, 아메네트(불가시성, 공기)

    힌두교 8*8는 지상에 현현된 천계의 질서를 상징한다. 사원과 '만다라'의 형태는 8*8의 상징을 토대로 건축되었다. 세계 8대 지역, 8개의 태양, 하루의 시간을 8등분함, 8개의 '차크라'가 있다.

    이슬람교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왕관은 8명의 천사가 떠받치고 있다. 이것은 공간의 8구분에 대응하는 것이다. 아라비아 어의 철자의 여덟 가지 구분1)에도 대응한다.

    1) 순(脣) 문자, 치경(齒莖) 문자, 치찰(齒擦) 문자, 설단(舌端) 문자, 구각(口角) 문자, 경구개(硬口蓋) 문자, 구개수(口蓋垂) 문자, 연구개(軟口蓋) 문자

    일본 8은 수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 주의 플라톤에 의하면 빛나는 하늘의 기둥을 중심으로 동심원상으로 색색가지 여덟 개의 천구가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 8은 연대, 안정을 나타낸다.

    도교 8은 현현된 모든 가능성을 나타낸다. 현상계의 여러 가지 힘은 팔괘로 상징된다. 팔선 또는 불멸을 뜻한다.

    9

    9는 강력한 숫자인 3의 거듭제곱(3x3)이고 '3조의 3배'다. 9는 완성, 성취, 달성, 처음과 끝, 전체를 의미하며 천계와 천사의 숫자다. (9천계, 9천사의 위계) 또한 지상낙원을 나타낸다. 9는 불후의 숫자다. 또한 9는 원주를 나타내는 숫자다. 원주는 90도 단위로 4등분되며 원주 전체는 360도이기 때문이다. 9는 2개의 삼각형이 조합된 모양으로 상징되며, 남과 여, 물과 불, 산과 동굴과 같은 대립원리를 상징한다.

    불교 9는 지고의 영적인 힘을 상징하며 구천(九天)1)의 의미가 있다.

    1)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생각된 아홉 개의 천체. 일천(日天), 월천(月天), 수성천(水星天), 화성천(火星天), 목성천(木星天), 금성천(金星天), 토성천(土星天), 항성천(恒星天), 종동천(宗動天)

    불교 8은 완성상태, 모든 가능성을 나타내며 불족석(佛足石)의 팔길상인(八吉祥印)이다.

    켈트 켈트의 전통문화에서 9는 매우 중요한 의미르르 가진다. 8가지 방위와 중심점을 더한 숫자로 9는 중심을 상징한다. '삼중의 여신'에서 삼중이란 3의 세제곱을 의미한다. 9인의 켈트 처녀, 9개의 흰 돌로 브리지트 여신의 시중을 드는 아홉처녀를 나타낸다. 9는 '벨테인 불의 축제'와 연관된다. 의식에서 9명씩 9번, 총 81명이 참가한다.

    중국 모든 숫자 중에서 3x3은 가장 길(吉)한 숫자이며, 9는 하늘의 힘을 나타낸다. 9는 명당에서처럼 8가지 방위와 아홉번째 점으로서의 중심을 나타낸다. 천하를 다스리기 위한 구법(九法)1), 구관(九官)2)을 뜻한다. 정전법(井田法)에서는 토지를 우물 정자 모양으로 아홉 구획으로 분할했다. 이때 중심에 있는 토지는 아홉번째 토지로서 최고 지배자인 상제에게 바쳤고, '신의 토지'라고 했다. 이 토지는 '공전(公田)'이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은 천자가 천제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풍수에서도 지관이 용혈(龍穴)을 찾으면 그 구멍 앞에 있는 공간(명당)을 9분할한다.

    1) 주나라 무왕에게 기자가 답했던 아홉가지 큰 법. 오행,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懲), 오복(五福)
    2) 고대의 관제에 따른 아홉 명의 대신. 사공(司空), 황직(皇稷, 농경), 사도(司徒, 교육), 사(士, 형벌), 공공(共工, 공업), 우(虞, 산림), 질종(秩宗, 제사), 전악(典樂, 음악), 납언(納言)을 뜻한다.


    기독교 기독교의 상징체계에서 9는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천사에는 3계급씩 3조, 즉 아홉 위계가 있다. 하늘에는 아홉 천구, 지옥에는 아홉 환도(還道)가 있다.

    이집트 이집트에는 아홉 신1)이 있다.

    1) 헬리오폴리스의 아홉 신에는 아톤(Aton, Ra), 슈, 테프누트, 게브, 누트,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가 있다.

    그리스, 로마 아홉 신, 후에는 9명의 뮤즈를 나타내는 숫자다.

    유태교 9는 순수지성을 나타낸다. 9는 그 배수로 다시 9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진리를 뜻한다. 카발라에서 9는 10단계의 세피로스에서 아홉번째인 '이에소드(토대)'를 상징한다.

    힌두교 불의 신 아그니의 성수다. 9의 제곱은 81개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지는 만다라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우주를 형성하고, 우주를 포함한다.

    마야 명계는 9층으로 나뉘어 있고 각 층을 다스리는 명계의 주인이 배치되어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 9는 다른 모든 숫자가 그 속에 존재하며, 그 속에서 순환하는 것으로 숫자의 한계를 나타낸다.

    북유럽 오딘 신은 인간을 위해서 지혜의 비밀을 손에 넣으려고 아홉 낮, 아홉 밤 동안 '이그드라질'에 매달려 있었다. 북유럽의 페르세포네라고 불리는 눈(雪)의 여신 스켈디는 1년 중 3개월은 산 속에서, 9개월은 니오르드(항해, 교역의 신)의 바다에서 산다. 북유럽과 게르만의 상징체계에서 9는 성수(聖數)다.

    10

    10은 우주를 타나태는 수, 창조의 패러다임이자, 모든 수를 포함한다. 따라서 모든 사물과 모든 가능성을 상징한다. 10는 모든 계산의 기본이 되는 숫자, 10진법의 전환점이 되는 숫자다. 10은 모든 것을 포함하며, 법, 질서, 지배를 상징한다. 테트라크티스(tetraktys) 형(1+2+3+4=10)은 신성(神性)을 상징한다. 이 경우 1은 점, 2는 선, 3은 면, 4는 공간을 나타낸다. 10은 완전수로 1로의 회귀를 상징한다. 10은 양 손의 열 손가락을 기초로 나온 숫자이며, 완성, 모든 계산의 기본을 나타낸다. 또한 보다 높은 범주의 완전성으로서 백(百)과 천(千)은 힌두교 우주론의 토대가 되는 숫자다. 또한 중국에서 만(萬)은 셀 수 없이 많음을 의미하고, 현현 세계 전체를 뜻한다. 10은 여행의 완성을 나타내며 기원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는 9년간 방랑을 하고 10년째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트로이는 9년간 포위를 견디다가 10년째에 함락되었다. 10은 원주를 둘러싸는 9와 중심을 나타내는 1의 합으로 나오는 숫자로 완전성의 상징이다. 우주축으로서의 1과 그 주위를 돌며, 춤추는 9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서아시아 봄 축제에서 10일째에는 신상들을 모두 등장시켜 행렬을 지어 축하한다.

    중국 10은 한자로는 종횡의 길이가 모두 같은 '십(十)'으로 나타낸다. 이것은 음과 양이라고 불리는 두 방향을 향하고 있는 자신을 상징한다. 통설로는 동서를 뜻하는 ㅡ와 남북을 뜻하는 |이 모두 갖추어져 완전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십간(十干)에 12지를 배합해 모두 60가지 조합으로 연월일을 표시한다.

    기독교 10은 모세의 십계를 나타내는 숫자다. 10개의 등불, 10인의 처녀, 10탈란트 등의 비유에 나오는 숫자다. 신에게 바치는 1/10세(십일조)다.

    그노시스 주의 충일의 세계, 이이온의 로고스(말씀)와 조에(命)에서 다시 10개의 아이온이 나왔다.

    유태교 카발리즘에서 10은 '영원세계'인 요드(히브리어 알파벳의 열번째 문자), 신(神)(요드 헤 바브 헤, YHVH)이라는 단어의 첫번째 문자에 대응하는 숫자이며, 눈부신 지성, 신의 지원, '십계', '세피로스'의 말후트(국왕), '신'의 10개의 이름을 뜻한다. 또한 카발라에서 10은 절대무에서 흘러나오는 '세피로스'의 수다. '세피로스'는 대개 '생명의 나무'에 의해서 상징되는데, 열 개 중의 첫번째 것이 모나드, 즉 다른 압홉 개의 '제1원인'이다. 또한 나머지 아홉 개의 '세피로스'는 각기 남, 녀, 그리고 둘을 통일시키는 지성의 '삼위일체'의 3가지로 구성된다. 열번째의 아도니(adoni)는 통일성으로서의 신비적 회귀를 상징한다. 솔로몬 신전에는 10개의 커다란 사제 목욕용 대야, 10개의 식탁, 10개의 촛대가 있다. '계약의 궤' 앞에는 10명의 레위 인 사제가 있다.

    힌두교 10보다 큰 범주들, 즉 백(百)과 천(千)은 힌두교 우주론의 기반을 이룬다.

    이슬람교 이슬람법에서 10분의 1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피타고라스 학파 10은 '모나드'를 나타낸다. 10은 완전의 상징이다.

    로마 로마 숫자에서 10은 X(완전한 숫자)로 완성의 상징이다.

    11

    11은 죄, 과실, 위험을 나타내는 수로 10이 완전과 법을 상징한다면, 11은 둘을 모두 넘어서는 것을 나타낸다.

    12

    12는 완전한 주기, 우주 질서를 상징한다. 3x4(3은 신, 4는 인간)로 이루어지는 12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양쪽의 질서, 밀교(密敎)와 현교(縣敎) 양쪽을 의미한다. 12는 '황도십이궁'과 1년 12개월을 나타내는 숫자며, 12를 나타내는 동물들은 자웅 각각 6마리씩이다. 12는 주야의 시간수, 우주수의 과실의 숫자 등이다. 로마의 농신제에서 세계계가 혼돈으로 회귀해서 죽은 자들이 이 세계로 돌아오는 때는 동지 전후 12일간이다. 또한 동지제 '율(Yule)'과 크리스마스 축제도 12일간 행해진다. 이와 비슷한 축제로는 베다 시대의 인도, 중국, 그리스, 유럽의 전통 문화에서 발견된다. 이 축제 12일간의 기후는 이듬해 12개월간의 기상 패턴을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고대 서아시아 '혼돈'과 '질서' 사이의 전쟁은 12일간 계속된다.

    불교 달라이 라마의 회의는 12인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다.

    켈트 칼 대제의 12인의 용사, 아서의 원탁의 기사는 모두 12명이었다.

    중국 십이지의 숫자.

    기독교 12년 '성령의 열매1)'의 숫자. 이스라엘의 부족과 예수의 12사도를 나타내는 12개의 별, '성도'의 문과 초석의 숫자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12일간이다.

    1) 사랑, 기쁨, 평안, 관용, 친절, 선의, 성실, 온화, 자제, 인내, 겸허, 정결

    이집트 태양신 라가 밤 동안에 시간을 보내는 명부에는 12개의 문이 있다.

    그리스, 로마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올림포스 산의 신과 여신들의 숫자는 열둘이다. 시인 헤시오도스는 열두 명의 티탄 거신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또한 12는 로마의 '12동판법'의 동판의 숫자다. 로마의 농신제는 12일간 계속된다.

    유태교 '생명의 나무'의 12개이 열매, 천도의 12개의 문, 신전의 식탁에 놓여 있는 12개의 빵, 아론의 흉패의 열두 개의 보석, 야곱의 열두 자식을 족장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12부족'을 나타내는 숫자다.

    헤르메스 1년 12개월과 12가지 고통을 나타내는 숫자다.

    이슬람교 초대 이맘(imam)인 알리와 열한 명의 자손이 낮 12시간 동안을 다스렸다.

    미트라교 신 미트라스는 열두 명의 제자를 가졌다.

    로마 제례에는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 대신관) 뒤에 열두 명의 폰티펙스(일반 신관)이 뒤따른다.

    13

    기독교에서 '테네브레(tenebrae)'1)에 쓰이는 촛대는 13개(보통 15개)로, 의식에서는 촛불을 하나씩 끈다. 이때 차차 실내가 어두워지는 것은 예수의 죽음으로 지상이 어두워짐을 상징한다. 13은 가롯 유다가 예수와 12사도와 함게 있을 때의 숫자로 불길한 숫자다. 또한 마녀 집회에서 마녀들의 숫자다. 마야 문명에서는 13개의 하늘이 있고, 그 하늘을 다스리는 13명의 신이 있다. 마야의 단력(短曆)에서는 1개월(위나르)이 20일, 13위나르가 1년이다. 또한 장력(長曆)에서는 13박툰(1박툰은 144,000일)을 주기로 세계의 파괴와 재생이 이루어진다고 생각되었다. 13은 또한 점에도 사용되는 숫자다.

    1) 성주간(聖週刊). 부활절 직전의 1주일간.

    20

    손가락과 발가락 숫자를 모두 합치면 20이 된다. 따라서 20은 인간 전체를 상징한다. 또한 스코어(score)로서 수를 세는 단위이기도 하다.

    40

    40은 시련기간, 시험, 아니시에이션, 죽음을 뜻한다. 4의 10배에 해당하는 수로서 40은 완전무결, 완전성의 상징이다. 40일이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 것은 바빌로니아에서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보이지 않는 기간(바람, 홍수, 태풍 등의 위험이 일어나는 시기)이 40일간이었던 데에서 비롯된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는 환희의 시간이며, 마력이 지배한 40일간을 나타내는 40개의 갈대다발을 불에 태웠다. 로마 제국의 검역정선기간(quarantine)이라는 말은 전염병이 도는 선박을 40일간(quadraginta) 격리시켜 상륙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페르시아, 고대 시리아의 바알벡(그리스에서는 헬리오폴리스), 타타르 지방에 있는 신전들, 드루이드 교의 신전, 예언자 에스겔의 신전에는 40개의 기둥이 있다.

    기독교 사순절 40일간은 예수가 황야에서 40일간 고통을 당한 기간이다. 부활절에서 승천 축일까지의 부활기간은 40일이므로 40일은 특별한, 성스러운 의미를 가지는 기간이다. 윈체스터의 성 스위딘 기념일(7월 15일)에 비가 내리면 40일간 악천후가 계속된다고 한다.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머문 기간, 엘리야의 은둔, 대홍수, 요나가 니느웨 주민들에게 준 경고기간은 모두 40일이었다. 유태인의 황야의 방랑, 블레셋인이 유태인을 지배한 기간, 다윗의 통치기간, 솔로몬의 통치기간, 예언자 엘리의 이스라엘에 대한 재판 등은 모두 40년이었다. 예언자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40일간 인내한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이 죽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40일간이 단식기간이다.

    이슬람교 40은 변화와 죽음의 숫자이면서 동시에 화해와 원칙복귀의 숫자이기도 하다. 무하마드는 40세에 이르러 알라 신으로부터 아라비아 백성들에게 전도할 소명을 받게 된다. '코란'은 매 40일마다 반드시 읽도록 되어 있다. 통설로는 30일마다 코란을 읽는다.

    미트라교 이니시에이션 의식, 축제를 뜻하며, 제물을 바치는 기간이 40일간이었다는 설이 있다.

    50

    49(7 x 7)년의 주기가 끝난 다음의 50년째는 대년(大年, great year) 또는 환희의 해(jubilee)로 불리며, 출발점, 원초로의 회귀, 재출발 등을 상징한다. '올림피아 경기 대회'는 대음월로 50개월, 즉 4년에 한 번씩 개최되었다.

    60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다. 60은 20(스코어)의 3배로 '나머지가 없는 숫자'다. 아이슬란드 전설에서는 60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하고 이집트에서는 장수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60년은 1주기, 60세는 환력(還曆, 환갑)이다. 서양에서는60년을 중국의 주기(cycle of cathay)라고 부른다.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으로 60년의 한 주기가 완성되고, 다시 새로운 주기가 시작된다. 60일의 주기가 6번 되풀이되면 티퍄력으로 1년이 된다.

    70

    유태교의 상징체계에서 메노라(Menorah)의 70개의 가지는 일곱 행성으로 이루어진 황도대의 각각을 열로 나눈 '십분각(十分角)'의 집합이고 70년은 인간의 수명으로 정해진 연수다.

    666

    666은 '짐승의 수'인 동시에 좌천사(座天使) 하같리엘의 성수(聖數)다. 기독교에서 666은 '짐승의 표시'이며 적(敵)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카발리즘에서는 대천사 미카엘(Michael)에게 적대하는 태양의 악마 소라트의 숫자다. 666은 태양에 속하는 수로 태양을 나타내는 사각형의 합계이며 신성(神聖) 기하학의 기본 수다.

    888

    히브리어의 알파벳에서 짐승을 상징하는 666에 대하여, 888은 예수를 상징하는 성수(聖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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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울보 > 매일 하면 좋은 14가지 요가--(퍼온글)

    서서등펴기 Uttanasana
    Libertacao(해방)
    이 자세는 요가의 기본자세인데, 전일적 치료효과가 아주 뛰어난 체위법이다. 다만 완전한 자세를 취할 때만 효과가 나타난다. 굴절된 다리와 척추를 수평으로 최대한 늘려줌으로서 막혀있던 경락을 풀어주고 기의 흐름을 원활히하여 신진대사활성화, 정서적 안정, 뇌의 피로회복에 많은 도움을 준다. 요가행법중 이 자세를 자주연습하면 고급요가로 들어가기 쉬워진다.

    <행법>
    1)두 다리를 붙이고 반듯이 선자세에서 숨을 마시며 양팔을 하늘로 뻗는다. 다시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상체를 쭉~ 뻗어 최대한 아래로 숙인다.
    2)무릎은 평평한 수평을 유지하며, 목과 어깨에 힘을 빼고, 손바닥은 바닥에 밀착시킨다.
    3) 이 자세를 30초간 그대로 유지한다.
    <건강효과>
    신장.간장기능을 강화하고,무릎관절염, 만성적 피로.스트레스.숙취해소에 효과적이며, 디스크,생리통,두통에도 좋다.
    <미용효과>
    대퇴부.장딴지,엉덩이 군살제거
    *모든 자세의 첫 단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가고, 자세완성후 천천히 내쉰다.
     
     
    견상체위 Adhomukha Svanasana
    이 자세는 4발을 딛고 선 개의 형상을 보는 듯하여 견상체위라 한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쭉 뻗어 몸의 전체적인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지친 몸의 에너지를 보충한다. 특히 변비와 지구력 향상에 좋다. 스탠딩 포즈의 기본 동작이다.

    <행법>
    1)서서등펴기자세에서 숨을 마시며 그대로 두 다리를 수평이 되게 뒤로 내 뻗는다..
    2)뻗은 두 다리의 간격은 두 손바닥 넓이만큼 벌리고, 양 팔과 어깨, 두 다리가 굴절없이 수평을 유지하며 몸의 형상이 측면에서 삼각형 모양을 뛰도록 자세를 유지한다.
    3)이 때 중요한것은 양 발바닥은 전방을 향하고, 발 뒤꿈치는 반드시 바닥에 밀착시킨다.
    4)이 자세를 긴 호흡과 함께 1분간 유지한다.

    <건강효과>

    당뇨.피로회복. 숙취해소.변비.측농증.비염에 효과가 있다. 어깨결림.팔.발목강화, 골다공증예방.고혈압에 좋다.
    또한 여성들의 생식기 활성화에 좋고, 두통이나, 무거운 머리를 맑게 한다.
    <미용효과>
    높은 굽으로 인한 여성들의 어긋난 발가락이나 발목을 교정하고, 장딴지 군살제거에 좋고, 기미.죽은 깨 예방에 효과적이다

    *모든 자세의 첫 단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가고, 자세완성후 천천히 내쉰다.
     
     
    스탠딩 삼각체위 Trikonasana
    삼각으로 뻗은 나무가지라는 의미의 이 자세는 전신의 사지를 좌우 균형있게 쭉~ 뻗어줌으로 써 신체부위별 막혀있던 응혈을 풀어주고, 내장기능.내분비계.신경조직의 활성화에 좋다. 또한 전체적인 몸매의 이상적인 균형선을 만들어 준다.

    <행법>
    1)기립자세에서 두 다리를 어깨의 두 배 넓이 만큼 충분히 벌리고, 양 발은 반드시 전방을 향하여 선다.
    2)다음에 두 팔을 좌우 수평으로 벌린 상태에서, 그림 a처럼 왼쪽 발바닥만을 바깥으로 90도 돌린 후, 양 발의 무릎은 수평을 유지 한 상태에서, 상체를 서서히 왼쪽으로 기울인다.
    3)이 때 함께 왼팔을 수직으로 내려, 손 바닥을 왼쪽 발 바깥의 바닥에다 지지한다. 그리고 숨을 마시며 오른 팔은 하늘을 향하여 수직으로 뻗는다.
    4)그림 2번처럼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20~30초간 이 자세를 유지한 후 다시 기립자세로 돌아와, 이번엔 반대쪽으로 같은 자세를 반복한다.
    5)그림 2번의 완전자세가 힘들면, 중앙의 작은 그림처럼 손으로 발목을 잡는 변형자세로 한다.

    <건강효과>

    위십이지장, 복부팽만, 소화불량, 변비에 좋고, 어깨통증 및 척추교정에 효과적이다. 특히 여성들에겐 월경불순예방에 좋다.
    <미용효과>
    허리비만예방, 장딴지및 허벅지 군살제거, 몸의 각선미 유지, 기미.죽은 깨 예방
    *모든 자세의 첫 단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가고, 자세완성후 천천히 내쉰다.
     
     
    사이드삼각 Parsvakon
    이 자세는 가슴을 충분히 펴주고, 허리유연성과 허리비만, 대퇴부비만,고관절교정, 소화기 계통에 아주 좋다

    <행법>
    1)전방을 향해 두 다리를 어깨넓이 만큼 충분히 벌리고 선다.
    2)왼쪽 발바닥만을 바깥 쪽 90도로 완전히 돌린 면서, 그대로 왼쪽 무릎을 “ㄱ”자형으로 구부린다.
    3)천천히 상체를 왼쪽으로 굽히면서, 왼손을 수직으로 내려 그림 a처럼 왼발 바깥쪽 바닥에 손바닥을 밀착시킨다.
    4)숨을 천천히 마시면서 그림처럼 오른손을 어깨위로 수평이 되도록 뻗는다.
    5 )이 때 시선은 하늘을 향한다.
    6 )이 자세를 10~20초간 유지한 후 좌우 교대로 한다.

    주의 할 점은 초심자는 허리를 기울였을 경우 손바닥이 바닥에 안 닿을 수 있기 때문에 팔꿈치를 무릎위에다 걸쳐놓아도 된다.

    <건강효과>

    허리통증, 무릎관절염, 소화불량, 척추교정, 고관절,어깨교정에 좋다.
    <미용효과>
    허리비만, 엉덩이 군살제거, 균형잡힌 가슴.
    모든 자세의 첫 단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가고, 자세완성후 천천히 내쉰다
     
     
    아취체위
    이 자세는 몸 전체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체위법으로 허리를 부드럽게하고 어깨와 가슴을 펴주며, 다리를 아름답게 한다.
    여성들이 이 자세를 많이하면 몸매가 좋아진다.

    <행법>
    1)마운트자세에서 오른쪽 무릎을 허리까지 올린다.
    2)이 때 오른 손은 오른쪽 다리발목을 가볕게 잡고, 왼손은 무릎을 받치면서 천천히 오른쪽 다리를 엉덩이 뒤로 내민다.
    3)연이어 왼손은 무릎에서 떼어 앞으로 쭉 뻗고, 오른 손은 오른쪽 발목을 잡고 뒤로 당기듯이 하여 상체를 숙이며 균형을 잡는다.
    4)자세를 좌우교대로 그림처럼 약10~ 30초간 유지한다.
    <건강효과>
    어깨결림, 휘어진 척추, 가슴통증, 복부비만, 변비, 좌골신경통, 발목강화에 좋다.
    <미용효과>
    대퇴부, 허리, 엉덩이 군살제거
    *모든 자세의 첫 단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가고, 자세완성후 천천히 내쉰다.
     
    좌상비틀기체위 Ardha Matsyendrasana


    이 체위법은 좌우하복부에 강한 자극을 가함으로써 좌골신경계의 혈관확장에 따른 성기능 향상과 배뇨.배변을 촉진하고 방광염을 예방한다. 특히 간장과 신장기능을 활성화하는데 효과가 있고, 좌우로 내장을 비틀기 때문에 대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하고 위장기능을 활성화한다.

    <행법>
    1)왼쪽 다리는 펴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자세로 앉는다.
    2)그림 2번처럼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지 바깥쪽에 넘겨 세우고, 왼쪽발꿈치는 엉덩이 안쪽으로 밀착시킨다.
    3)허리를 곧게 펴고 오른쪽 팔을 오른쪽 엉덩이 뒷쪽 바닥에 지탱하고, 숨을 천천히 마시면서, 왼쪽 팔을 오른쪽 무릎바깥으로 기대어 오른쪽 발등에 손이 닿도록 뻗어준다.
    4)이 때 고개를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린다. 시선도 오른쪽으로 향한다.
    이 자세를 20~30초간 유지하다 다시 교차하여 3~4차례 행한다.

    <건강효과>
    골반교정과 신장.간장기능을 강화하고, 생리불순,갑산성질환,불임,생리통.산후통증에도 효과적이다. 대장염.방광명.변비.전립선질환.위십이지장질환에 좋고. 굳어있는 목뼈.어깨뼈.척추.골반을 교정하고 유연하게하며, 디스크.류머티스.골다공증.등뼈통증.요통에도 효과적이다
    <미용효과>
    허리,복부,대퇴부비만 예방
    *모든 자세의 첫 단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가고, 자세완성후 천천히 내쉰다.
     
    나비체위 Baddhakonasana
    좌립체위에 이언 동작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앉은 자세를 교정하며, 특히 임산부에게는 순산에 도움을 준다. 여성들은 이 체위법으로 괄약근운동을 자주하면 생리계통에 좋고 남성들도 정기가 살아나고 회음부에서부터 생명에너지가 왕성하게 활동하여 내공이 쌓인다.

    <행법>
    1)가슴과 허리를 곧게 펴고 앉는다.
    2)양 쪽다리를 접어서 항문(회음)안쪽으로 바짝 잡아 붙인다.
    3)양 손은 두 발가락을 감싸 안고, 양 발꿈치가 항문안쪽으로 밀착되도록 균형을 잡는다.
    4)이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 숨마시고 항문도 함께 쪼여주며, 내쉬며 이완시킨다.
    5)시선은 코끝을 항하고, 의식은 회음부에 집중한다.
    6)이 자세를 1분이상 한다. 중요한 것은 허리와 가슴을 곧게펴고 무릎을 최대한 수평으로 유지한다.

    <건강효과>

    좌골신경통.요통.무릎의 관절염에 좋고, 소화불량, 전립선, 비뇨기질환, 탈장예방, 치질에 효과적이다. 특히 여성들의 월경분순.하복부 냉증, 요실금에 아주 좋다.
    <미용효과>
    허벅지 군살제거
    *모든 자세의 첫 단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들어가고, 자세완성후 천천히 내쉰다.
     
    영웅체위 Virasana
    이 자세는 무릎과 팔,다리,어깨,늑골.척추등 굳어있거나 어긋난 뼈마디를 펴줌으로써 전신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몸의 자세를 바르게 하며, 깊은 호흡을 통한 산소흡입량 증가로 호흡기질환에도 좋다. 그리고 이 자세를 자주하면 매사에 자신감이 생긴다.

    <행법>
    1)그림 1번처럼 엉덩이는 뒤로 빼고, 허리는 곧게 펴서 무릎자세로 앉는다.
    2)천천히 두 발등을 엉덩이 바깥쪽으로 살짝 빼서 양옆으로 밀착시킨다.
    3)두 손가락을 서로 깍지 끼며, 깊은 숨을 마시면서, 가슴을 활짝 펴고, 양팔을 머리위로 수직이 되도록 쭉~ 펴 올린다.(깍지 낀 손바닥이 하늘을 향함)
    4)이 자세를 1분이상 지속한다.
    <건강효과>
    팔목및 무릎관절염, 다리통풍, 목, 어깨결림, 허리디스크에 좋고, 천식, 늑막염, 폐렴등 호흡기 질환,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다.
    <미용효과>
    반듯한 어깨선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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