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때늦은 공부와 요즘은 마눌도 새벽반 수영때문에 밤 9시만 넘기면 우리집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수면모드로 접어든다.

어젯밤, 일찌감치 자러들어간 연두와 마눌...

근데 10분쯤 후에 마눌이 불러서 안방에 들어가 보니 연두가 침대위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니 침대위에서 연두랑 이것 저것 얘기를 나누다 10년후, 20년후의 미래모습까지 이야기가 발전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세월이 흘러 엄마 아빠가 늙으면 죽게된다는 마눌의 말에 갑자기 연두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아주아주 먼 옛날의 얘기라고... 엄마 아빠는 연두를 두고 죽지 않는다고 '급 진화'에 나섰으나 한 번 터진 울음보는 그칠줄을 모르고...

겨우 진정을 시키고 잠자리에 들었는데...오늘 아침 마눌왈 "연두가 너무 꽉 껴안고 자서 힘들었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연두만한 나이에는 엄마가 죽거나, 떠나면 어떡하나 하는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늙으면 죽는다'는 명제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어지는 때가 '어른'이라는 정말 매력없는 단어에 접어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미얀마와 중국의 수많은 죽음들...무기력을 넘어 무관심해지는 내 생각의 끝을 따라가 보는 잠시 잠깐의 시간이었다.

 

제국주의적 속성의 세계화는 당연히 반대해야 겠지만, 저항세력의 연대와 구호적 성격의 세계화는 너무나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발달된 매체는 전쟁을 뉴스로 생중계도 하지만, 미얀마의 싸이클론과 중국 대지진의 피해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튼튼한 민족이란 울타리와 국경의 장막을 헤치고 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지구보다 귀한 한 사람의 인간, 인간들이 고통받고 있다.

마음 씀을 넘어 어떻게 해야 구체적 도움이 될런지 고민하는 하루이길.....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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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엔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 한구석엔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본연적인 기능이 탑재되어 있을 것 같다.

사실 남녀를 불문하고 술자리나 사석에서 남들의 부정적인 면들..즉 뒷담화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는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 책이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현실을 한가하게 뒷담화나 하는 수준으로 만들어 진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고매한 지성의 소유자로만 인식되던 지식인사회, 특히 대학교수 사회의 현 수준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에 동참(?)하는 기분은 꽤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너무나 미국중심적인 유학 풍토와 학제간 동종교배, 공부하지 않는 교수들, 더 나아가 선거때마다 광풍처럼 휩쓸고 다니는 '폴리페서'무리들, 왜곡된 학술진흥재단의 기능, 문화권력의 일그러진 모습들...

이 정도면 오늘 저녁 술안주 거리로는 너무나 풍부하지 않은가?

그러나 술안주거리로 삼켜버리기에는 너무나 아픈것이 그 대상이 바로 '지식인'이라는 사실이다. 인문학이란, 사람에 대해 사람 정신 본연의 모습과 나아갈 바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어설피 정의한다면 기업맞춤형 인재양성에 매몰되어 버린 오늘날의 대학의 기능과 거기에 충실히 복무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참담한 인문학의 자리매김을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의 말미에는 이러한 우울한 지식인 사회의 대안을 일반 대중에게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인터넷 각종 사이트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서평사이트와 개인이 운영하는 인문학 블로그 등은 이미 어지간한 제도권 학자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고 한다.

하긴 각종업무에 너무 바쁘신 일부 교수님에 비하면 그네들의 순수한 인문학적 열정이 훨씬 더 전문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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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힘들것 같은 외유인지라 재미있다는 서평이 많아서 덥석 가방에 집어넣고 갔는데...하루일정이 끝나고 책읽을 시간이 기다려 질 정도로 이야기의 흡입력이 대단한 책이었다.

같이 간 분이 인도여행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 들려주신 얘기와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서 현실과 책 사이의 경계가 이국땅의 실존과  머릿속의 경계를 간간히 허물어 뜨렸다.

다소 동화같은 이야기 얼개이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인도의 현실들은 작가 특유의 비틀기에 잘 버물려진 느낌이었다.

과연 우리나라의 현실을 모티브로 해서 12가지 문제를 낸다면 어떤 퀴즈쇼가 만들어 질 수 있을까?

문제야 많이 낼 수 있겠지만 이 책 'Q&A'보다는 좀 더 비루한 생활문제가 펼쳐지지 않을까하는 자조섞인 한숨이 나왔다.

재미있다....더욱이 인도를 명상과 수도자들의 나라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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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연두를 자전거 트레일러에 태우고 동네를 돌았다.

어줍잖게 해외로 열흘이나 갔다온 뒤라 딸아이에게 잘해줘야 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고....

오랜만의 마차(트레일러)탑승이라 좋아라 하는 녀석을 보니 덩달아 나도 기분좋고...

중간에 자전거를 세우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게 해줬더니 제법 잘 타는 것이 대견하다.

헬멧과 보호장구를 갖추고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니 어느새 훌쩍 커버린 느낌이 든다.

세상이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는 가운데 너무나 빛나는 연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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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전의 이야기지만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고등학생 시절이란 것이 있었다.

혹자는 그리운 학창시절 운운하며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고등학교 3년 동안을 다시 생각해 보면 참 어떻게 그러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몸서리가 쳐진다.

입학하는 날부터 밤 10시 30분까지 계속된 야간자율학습은 명절과 개교기념일(이 날은 이른바 성공한 선배님들께서 밴드를 불러서 운동장에서 개교開校를 너무나 열성적으로 기념하셨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공부가 도저히 안 된다.)을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다.

시간을 아껴 공부하라는 학교 측의 ‘친절한’ 배려로 청소는 아침에 주번이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책상사이를 물걸레로 대강 한번 바르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을 묵혀온 먼지로 인해 항상 기관지 염증과 감기 증세에 시달리는 다수의 학생들은, 흔들어서 소리가 나지 않아야 진품이라는 진해거담제 ‘용**’이란 약을 늘 가지고 다녔다.

대학입시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의 수업은 3년을 통틀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시간만 수업을 했고, 당연히 음악과 미술, 체육 수업시간은 2학년 이후로는 공식 국, 영, 수 자율학습시간이 되어 버렸다.

짧은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에 저항하는 투사형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건 언제나 선생님들의  몽둥이 질이었고 지난밤 ‘자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유’를 찾아 내달음질 쳤던 야간자율학습 탈주학생들에 대한 몽둥이질 역시 매일아침 거의 모든 반마다 계속되었다.

그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수많은 이름 모를 나의 후배들은 학교정문을 나가자마자 이번에는 온갖 사설학원에서 마중 나온 승합차에 실려 가서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책걸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08년 4월 15일, 정부가 우열반 편성, 0교시, 심야보충수업에 대한 규제를 푼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는데, 정부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학교 자율화’를 통해 그동안의 부작용을 막겠다는 나름의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이 누구를 위한 자율인지에 대해서는 애써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의 교육정책 안에 학교의 당당한 구성원이라 할 수 있는 학생에게 진정한 자율이 존재했었던가?  교장으로 대표되는 학교 내 권력의 자율이 모자라서 이 땅의 교육현실이 오늘날처럼 팍팍해 졌을까?

며칠 전 서울에서 있은 ‘학교자율화반대 청소년 촛불문화제’에 청소년들이 들고 나온 피켓에는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구호는 ‘공부’를 ‘일’로 바꿔 놓으면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했을 시기, 노동자들의 주장이었다. 1970년대의 대한한국, 밀폐된 다락방 같은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씩 미싱을 돌렸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자기 몸을 내던졌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었다.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모르쇠에 가깝게 일관하며, 갑자기 튀어나온 정부당국의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이 청소년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과는 별 연관이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학생들의 참 행복을 위해 그들에게 진정한 자율을 줘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다면 118년 전의 노동절에서나 들었을 법한 노동자들의 구호를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서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들을 수 있음을 정부당국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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