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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 정류장 창비시선 338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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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만 보고도 구입하는 정말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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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에세이
함민복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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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수 김세환씨가 가수 조용필씨의 노래 '들꽃'을 자신만의 통키타 반주로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것을 우연히 TV에서 보고 느낌이 좋아서 결국 음반까지 산 적이 있다.

그 후에 노래 좀 한다는 선배와 그 얘기를 하는 중에 선배가 했던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지만 김세환처럼 조용필의 노래를 힘 빼고 자신만의 느낌으로 잘 부를 수 있다는 것도 정말 어려운 거야......그건 네가 불러보면 알겠지만...."


힘 빼고 노래 부르기.......

함민복의 글을 읽고 난 후에 드는 느낌이었다.

자못 치열한 삶도, 비장한 죽음도 그의 글을 통해 구경하는 세상사는 핏대를 세워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둑길 같은 곳에서 조용히 읊조리는 흥얼거림 같이 다가온다.

그런데도 나는 책을 읽으며 순간순간 울컥했고.......또 간간히 책을 덮었다.
또 어느 행간에서는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힘 빼고 부르는 노래라고 해 놓고 웬 울컥 이냐고 自問할 수도 있겠지만 조그만 일상에서 커다란 담론을, 거대한 역사에서 조그만 삶의 편린들을 끄집어내는 그의 노래는 아름답고 또 집요한 구석마저도 있었다. 
 

그의 글에 나오는 어머니, 동네형님, 친구, 마당의 개와 고욤나무, 또 산과 강과 나무가 우리 곁엔들 왜 없겠는가?

그와 같은 글쓰기 능력이야 나와 같은 범부의 입장에서는 논할 것이 되지 못하지만 같은 사람과 사물을 보면서도 그와 같은 생각의 따라잡기를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그가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크게 다쳤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랐었는데 책에는 후유증이 심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함민복과 같은 시인을 마구잡이 방패로 내려찍은 정권의 야만성에 다시 한번 고개를 떨군다. 
 

이제 그는 동네형님을 따라 숭어 잡이를 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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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3
요시다 타로 지음, 안철환 옮김 / 들녘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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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평화와 쿠바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님께서 평화라는 단어가 한자로는‘平(평평할 평)’과‘和(화할 화)’를 쓰고 있는데‘평’은 저울을 가리키는 공평하다는 뜻이 되겠고,‘화’는 벼화(禾)자와 입구(口)자를 합한 글자로서 풀이해 보면‘입안으로 먹을거리 들어가고 그것이 공평한 상황’을 곧 평화로운 상태라고 풀이 하신 걸로 기억하고 있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평화’의 한자 뜻 풀이었는데 그것은 지구상의 몇 남지 않은 평등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모습과 90년대의 식량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인민들에게 단순히 호구지책 이상의 유기농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도시 생태농업은 ‘평화’의 실현이 쉬운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거창한 형이상학적인 개념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2. 쿠바라는 나라, 그 국가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매력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쿠바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나라...그리고 담배와 설탕, 남미특유의 음악과 춤의 나라라는 것 정도였지만 2년 전 소설가 ‘유재현’씨가 쿠바를 직접 여행하고 돌아와서 펴낸 ‘느린 희망’과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이라는 2권의 책을 읽고 난 후에, 쿠바의 오랜 식민지 항쟁의 역사와 1959년 혁명이후의 사회주의 건설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카스트로의 지도력과 인민의 노력 등은 나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갈 정도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학창시절 아니 현재라도, 조금이나마 사회주의 이론의 세례를 받은 사람치고 쿠바의 역사나 사회주의 시스템, 그들의 고난 극복과정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쿠바라는 나라의 깊은 이해를 위해 쿠바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과정을 잠시 살펴보겠다.

에스파냐의 오랜 식민지였던 쿠바는 미국과 에스파냐의 전쟁 이후 1902년 독립하였지만,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책에서도 지적한 미국자본에 종속된 사탕수수 단일작물재배 경제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나 마치가지였다.

토지가 미국자본과 쿠바인 대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국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고 독재정권의 부패도 심화되어 여러 차례의 민중봉기가 일어났지만 그때마다 미국의 비호 하에 진압되고 말았다고 한다.

1953년 7월 26일 카스트로의 주도하에서 몬카다 병영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면서 게릴라전을 포함하는 독재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노선을 가진 ‘7월 26일 운동’이 결성되고, 1956년 12월 2일 ‘그란마’호로 본토에 상륙한 후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의 17명이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출발한 게릴라운동은 온갖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정권을 축출하고 민주주의혁명을 이루게 된다.

쿠바혁명이 지금처럼 출발부터 사회주의적 성격을 뛴 것은 아니었고 초기에는 토지개혁 등 민주주의혁명의 성격을 띠었으나,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1960년 후반 이후부터는 사회주의혁명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고,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단절, 이어 미국기업의 국유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단행하면서, 그해 4월 16일 카스트로가 마침내 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선언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소 길게나마 이러한 쿠바의 혁명사를 나름대로 알아보고 나열하게 된 이유는 1990년 들어 쿠바 인민에게 닥친 미증유의 위기에서 다른 나라에서 자주 보았던 그 흔한 군중폭동하나 없이 정부를 믿고 의지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위에서 설명한 혁명정부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인민의 지지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보다 실질적인 이유는 인민의 삶에 최우선을 둔 정부의 비상조치들과 이후의 도시유기농업으로 대표되는 식량증산이 이유였겠지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지도자와 정부를 믿고 의지했던 쿠바의 모습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100일도 채 되지 않아 한자리 수를 기록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버리는 불신의 지도자가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혁명후의 사회주의 건설과정 역시 초심을 잃지 않고 배후에 소련의 경제원조라는 거대한 버팀목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온전히 인민의 삶의 질 향상과 골고루 잘사는 사회건설을 위해 노력한 점은 비슷한 시기 독립한 제 3세계 국가들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1세계 국가들의 또 다른 형태의 식민지 경제정책과 독재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신음해 왔던 것을 비교해보면 쿠바체제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유기농업,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아바나

몇 년 전 내가 속한 단체의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유기농업 견학을 목적으로  충남 홍성의 ‘풀무마을’을 2-3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유기농업이 단순히 농약 안치고, 화학비료 안 줘서 작물을 키우는 농법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때 가서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유기농업이란 것이 단순히 어느 한 가구, 마을의 논 몇 평, 밭 몇 마지기를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마을단위, 그 이상의 단위가 다함께 참여해야 참다운 유기농업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유기농법으로 키운 볏단을 사료로 먹인 소의 배설물을 발효시켜 다시 논과 밭의 퇴비로 쓰는 전일적이고 순환적인 마을단위, 공동체 단위의 농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읽으면서 그때 견학했던 홍성 풀무마을이 기억났던 것은 아바나 역시 도시전체가 ‘유기농업’을 위해 도시의 사람과 기능이 복합적,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농촌인 홍성과 대도시 아바나를 직접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농촌에서도 쉽지 않은 유기농업을 인구 200만이 넘는 대도시에서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어보기 전에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바나의 유기농업에서 내가 특히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유기농업에 있어서의 군대의 역할이었다. 식량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도시농업 대책인 ‘프로젝트X'를 만든 퇴역군인인 중국계 ’‘모이세스 셔원’ 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대단했지만 그것을 전체 군대의 사업으로 받아 안아서 군대가 시민들에게 유기농업을 전파하도록 하는 과정은 우리나라의 군과 정부를 바라보는 정서와는 여러모로 다른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콘크리트 벽돌과 돌, 베니어합판과 금속 조각으로 둘레를 친 뒤 그 한가운데에 퇴비와 구비를 섞은 흙을 넣고, ‘칸테로cantero'라 불리는 묘상에 집약적으로 채소를 재배하는 생산기술인 쿠바 도시농업만의 독특하고도 창발적인 ‘오가노포니코Organoponicos’를 개발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시키는 일만을 하고 마는 복지부동형 공무원 사회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대단한 ‘인민 사랑’의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바나의 ‘녹색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유기농업의 시작은 이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구소련체제의 붕괴와 한층 강화된 미국의 경제봉쇄에 따른 고육지책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쿠바는 그러한 국가존폐의 위기를 오히려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내가 여기서 첫 번째로 주목한 것은 쿠바가 10년간의 경제붕괴 위기에서도 굴하지 않고 경제위기를 지나온 과정에서 철저하게 유기농업방식과 사회주의의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원자재와 식량을 수입에 의존해 온 쿠바 경제가 소련붕괴이후 얼마나 힘들어 졌는지를 보여주는 미국중앙정보부(CIA) 자료에 의하면 소련해체 이전에 비해 식료품 53%, 원료자재 89%, 연료76%, 화학자재 72%, 기계 88%, 일반상품 82%의 수치만큼 수입이 급락해 버렸다고 한다.

물론 초기에는 아사자도 생기는 등의 아픔이 있었지만 그 이후 쿠바의 식량위기 대응은 ‘더디 가도 우리식으로’란 말처럼 평등과 복지에 기반을 둔 쿠바 특유의 사회주의 체제와 유기농업 발전정책을 유지시켜 왔다는 것은 자유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분명히 연구하고 벤치마킹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쿠바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경제위기 이전의 쿠바사회가 전형적인 수입위주, 소비위주의 국가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식생활 또한 그 당시 미국, 유럽 못지  않은 고기위주의 식단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식생활을 전 국민이 골고루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을 폈다고는 하지만 과다한 고기위주의 식단은 필연적으로 국민건강의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과 생필품에서 원유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까지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민경제 구조가 계속 유지 되었다면 언제라도 90년대와 같은 위기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닥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그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쿠바 정부가 자급자족의 유기농업과 그에 따른 채소위주의 식단, 대체에너지로 위주의 에너지 정책 등으로 경제위기 이전과 180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경제위기 이전의 삶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카스트로를 비롯한 정부가 인민들에게 진정성을 보이고 설득, 솔선수범하는 과정이 너무나 소중했다고 생각한다.


4. 지속가능한 체제를 위하여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이라는 이 책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앞서 많이 언급했던 유기농업뿐만 아니라, 의료, 환경, 교통, 커뮤니티, NPO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현재 우리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될 가치를 이미 추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의료문제만 봐도 우리나라의 경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논의가 가열되고 있는 것이 ‘의료보험민영화’ 인 것을 보면 쿠바사회가 이룩한 질 높은, 그리고 누구나 무료 내지는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평등한 의료체제는 우리사회에서는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꿈같은 얘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바나의 도시 유기농업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90년대의 경제위기 이후의 자구책에서 연원한 것과 같이, 이 책에서 언급한 쿠바의 교통, 환경 등의 문제는 경제위기 이후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으려 하는 것처럼 자급자족과 생태계가 어우러지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중점을 두고 사회 시스템이 움직여 오고 있었다.

예를 들면 에너지 부족의 대안으로 만들려고 하던 원자력 발전소가 불가능해지자 태양열과 바이오 에너지 등의 각종 대체에너지로 시선을 돌려 그것을 현실화 시킨다던지, 교통문제 또한 적극적인 자전거 보급대책으로 오히려 국면을 인민들의 건강까지 생각하게 하는 쪽으로 바꿔 나가는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이러한 변화들은 경제위기 이후 단지 배고픔의 해결에 머물지 않고 그들이 정작 추구해야 할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이 되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결과였을 것이다.

 

5. 아바나에서 북한을 생각하다.

작년 신문기사에서 흥미롭게 읽은 기사가 있는데 다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다시 찾아보니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대북 비료지원에 유기질비료가 포함되지 않고 있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의 거부’다.

지난해 통일부가 비료지원 품목에 유기질비료를 포함시키겠다는 의사를 타진했지만 북한이 난색을 표명해 성사되지 않았다. “남측의 쓰레기를 받을 수 없다”는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기사내용에서 보듯이 북한 측에서는 남측의 유기질비료를 ‘쓰레기’로 치부하면서 그동안 받지 않아 왔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북한 식량사정이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화학비료를 선호한다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북한의 식량위기설이 거의 매년 흘러나오고 있는 이유가 위 신문 기사내용과 같은 잘못된 사회주의 특유의 경직성과 관료적인 행태가 원인은 아닐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특히 올해는 식량위기가 더욱 심각하다는 정보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듣고 있자면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다가 거의 같은 시기에 식량위기를 겪고도 쿠바와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북한의 현재 사정에 대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 분단 상황 등의 일면 이해하는 측면이 있으면서도 그러한 위기탈출의 방안을 쿠바와 같은 사회에서 찾지 않고 이웃나라 중국과 같이 거의 자본주의나 다름없는 사회주의 국가의 발전 형태를 기웃거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특별히 남한의 대북한 원조도 배고픈 이에게 직접 생선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을 노련한 어부로 만들기 위한 거시적인 대북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천해야 될 때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다행히 올해 처음으로 전북 김제에서 돼지 축분으로 만든 유기질 비료 40t이 북한으로 보내질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역시 바닥에서 출발하여 전혀 다른 그들만의 지속가능한 발전 체계를 이룩한 쿠바 모델이 그들에게 좋은 발전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6. 마치며

윗글에서 북한을 언급했지만 사실 아바나식 도시농업과 쿠바식 발전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쪽은 우리 남한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 급속하게 도시가 확장해 가면서 도시가 아닌 곳이 어딘지 모르게 변해버린 우리네 삶의 모습과 땅에 대한 개념이 곧 돈과 직결되는 개발광풍은 땅에서 우리의 먹을거리 곡식이 자란다는 얘기가 얼마 안 있으면 먼 기억속의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이후 우리사회가 죽으라고 매달려온 개념은 사실상 ‘경제발전’ 이것 하나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발전시켜야 했고, 배고픔을 잊고 나서는 너도 나도 부자가 되기 위해 ‘부자 되세요’를 외치고 다녀온 것이 지난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우리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합의 아닌 합의를 진행시켜 온 적은 있으나 정작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합의는커녕 토론조차 생략하며 살아왔지 않았나 생각된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 언저리라고는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중병에 걸린 부모님 때문에 집안이 거덜 날 위기에 처하고,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현실과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커져만 가는 자가용의 실태, 계속해서 심해지는 대기오염과 같은 주제는 여전히 ‘경제발전’과 ‘부자 되세요’에 묻혀 합의의 광장으로 나오질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서 살펴 본 쿠바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차근차근히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우리보다 단순지표상의 경제적 순위가 아래라고는 하나 위에서 언급한 몇몇 문제들조차 고려되지 않는 ‘경제발전’이 국민 개개인 한사람에게 얼마만큼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나는 쿠바가 유토피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현실사회에서 유토피아가 과연 가능하겠는가?) 물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아픔과 부조리한 현실이 상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감안하고서도 그들 쿠바 인민이 그동안 시험하고, 노력하고 또 앞으로 추구해 나갈 사회에 대한 이정표는 분명 우리가 꿈꿔왔던 사회를 가리키고 있음을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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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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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황조롱이 한 마리 공중에 떴다, 16층 창밖에 정지 상태다

내 눈썹 높이와 한 치 어김없는 일직선이다

생각하니, 허공에 걸린 또하나의 팽팽한 눈썹이다

이 높이까지 상승기류를 타고 그는 순식간에 떠올랐겠으나

엘리베이터에 휘청휘청 실려온 나, 미안하고, 또 괜히

무안하다

그는 왼쪽에서 미는 구름과 오른쪽에서 미는 구름을

양 날개 속에 숨겼다

위에서 내리누르는 바람과 아래에서 떠받치는 바람을

발톱끝에 말아 쥐었다

그는 침묵하고 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부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졌다

나는 낡아가는데,

그는 오만한 독학생 같다

세상의 책에다 밑줄 하나 긋지 않고 있다, 밑줄 같은 건

먼 산맥의 능선과 굽이치는 강물에다 일찌감치 다 그어두었

다는 듯

그는 날쌘 황조롱이, 나는 조롱 한번 해보지 못하고

쭈글쭈글해졌다

별을 따기 위해 홀로 빛나기 위해 하늘의 열매를 탐해

공중에 뜬 게 아니다 그는

벽을 치고 창을 달고 앉아 있는 나하고는 상관없이

내리꽂힌다, 시속 이백 킬로미터나 되는 속도로, 땅 위의 한

마리 들쥐 때문이 아니라

내리꽂혀야 하므로, 그는 나를 조롱하듯 내리꽂힌다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새벽 서호시장 도라무통에 피는 불꽃이 왁자하였다

어둑어욱한 등으로 불을 쬐는 붉고 튼 손들이 왁자하였다

숭어를 숭숭 썰어 파는 도마의 비린내가 왁자하였다

국물이 끓어넘쳐도 모르는 시락국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백석(白石) 생각

 

통영바다는 두런두런 섬들을 모아 하숙을 치고 있었다

밥 주러 하루에 두 번도 가고 세 번도 가는 통통배

볼이 오목한 별, 눈 푹 꺼진 별들이 글썽이다 샛눈 뜨는 저녁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아 여자 생각하던 평안도 출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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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적 가치 - 세계의 지식인 16인과 하버드생의 대화
브라이언 파머 지음, 신기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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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로버트 라이시, 하비 콕스... 미국의 대표하는 16명의 지식인이 하버드 대학에서 개설한 ‘개인의 선택과 전 지구적 변화’라는 강좌에서 학생들과 나눈 얘기들을 펴낸 책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은...) 16명의 강사들은 현재 지구촌이 겪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의 원인 축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미국의 책임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차원의 앎과 실천에 대한 노력과 특히, 대학생들에게 통상적인 것과는 다른 차원의 사회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혹은 신자유주의의 강화 때문에 우려되는 미래사회상이 고스란히 지금 미국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해야 되나...)

교육, 복지, 경제적 양극화, 시장만능주의 등에서 미국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점들은 지금 우리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하버드대 잡역부와 조리사들의 적절한 ‘생활임금’보장을 요구하며 학생 50명이 3주간이나 총장실을 점거하고 학교법인으로부터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 내용이었는데, 수많은 일용직노동자와 시간제 강사들로 꾸려가고 있는 우리의 대학들과 이러한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관심 없이 장밋빛 미래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도서관과 토플학원을 죽어라 다니고 있는 이 땅의 대학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울적해 졌다. 

   
 
 






연세대가 말하는 '진리'는 어디에?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학교 청소 노동자 외면하는 연세대
등록일자 : 2008년 03 월 28 일 (금) 08 : 08   
 


  내가 대학 정문을 처음 밟아본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다. 지방 소도시 출신인 나와 달리, 입학 동기들 가운데는 자기가 목표로 한 대학을 고교 수업을 마치고 밤이면 와봤다는 서울 아이도 있었다. 대학은 역시 소도시의 낙후된 고등학교와는 달랐다. 건물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고등학생 누구나처럼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을 그럭저럭 마치고 입학을 하고 보니 대학의 경비원만 보아도 가슴이 뛰곤 했었다.
  
  학생·교수·교직원, 그리고 '용역'
  
  모든 대학엔 교훈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대는 '진리는 나의 빛'이라고 했고, 연세대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고, 고려대는 '자유·정의·진리'라고 했다. '진리', '자유', '정의'라는 말들은 얼굴에 솜털이 뽀송했던 청춘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치들이었다.
  
  입학을 하니 대학은 세 가지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학생, 교수, 교직원이 그것이다. 대학을 다닌 지 1년이 지났을까, 또 하나의 구성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교직원으로 알고 있던 이들이 교직원이 아니라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내가 거닐던 대학 곳곳을 걸레로 훔치던 청소부가 바로 '용역'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단과대학 건물의 경비원들도 '용역'임을 알게 됐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용역'이라는 말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재화와 용역'할 때의 그 용역뿐이었다. 그 용역이 현실에서 처음으로 나와 대면한 것이다.
  
  정운영 교수의 수업과 예수님의 예화
  
  그 무렵, 훗날 <MBC 100분토론>의 명사회자로 이름을 떨친 고(故) 정운영 교수가 가르치던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을 듣게 됐다. 청바지를 즐겨 입고 구내매점 커피 한 잔에 담배피기를 즐겼던 그가 어느 날 질문을 던졌다. "대학교수의 1시간 노동과 대학청소부의 1시간 노동 가운데 누구의 임금을 더 높게 쳐주어야 하는가?" 그의 결론(사실 정 교수의 결론이라기보다 마르크스의 결론)은 둘 다 똑같이 쳐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교수 사회를 두고 '3T 교수'라는 말이 있을 때였다. 학교에 오면 차(Tea)를 마시고 테니스(Tennis)를 치다가, 퇴근해서 텔레비전(Television)을 보는 게 교수의 일과라는 비아냥거림이 인구에 회자되던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교수와 청소원의 1시간 품삯이 같아야 한다는 주장도 그럴 듯하게 들렸다.
  
  세월이 많이 흘러 깨닫게 된 것이지만, 대학교수가 1시간 일해 받는 급여와 청소부가 1시간 일해 받는 급여가 왜 똑같아야 하는지는 <신약성경>의 예수가 분명하게 가르쳐주었다.
  
  <신약성경>의 포도밭 주인과 일꾼
  
  포도밭 주인이 아침 일찍 일꾼을 찾아 나섰다. 아침에 만난 일꾼들에게 하루치 임금을 열 냥 쳐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다. 낮에 보니 시장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어 역시 포도밭에 보내 일을 시켰다. 오후에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일을 시켰다. 해 질 무렵 역시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주인이 물었다. "하루 종일 일 없이 서 있었느냐?" 서 있던 일꾼들이 말했다.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이들에게 밭에 가서 일하라고 시켰다.
  
  해가 지고 일당을 줄 때가 되었다. 포도밭 주인이 하인을 시켜 "마지막에 온 일꾼부터 처음 온 일꾼 순으로 임금을 주라"고 말했다. 해질 무렵 와서 일한 일꾼들이 열 냥을 받았다. 처음부터 온 일꾼들은 속으로 그보다 더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도 열 냥을 받자 주인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해질 무렵 온 자는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땡볕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우리와 평등하게 대접합니까."
  
  주인이 말했다. "친구여.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있다. 열 냥 받고 일하기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의 일당을 챙겨 갈 길을 가라. 내 것을 갖고 내가 바라는 걸 하는 게 불법이냐? 나는 마지막에 온 자들에게도 너희들과 똑같이 주고 싶다. 내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들 눈에는 내가 악마로 보이느냐? 그래서 나중 된 자가 처음 되고, 처음 된 자가 나중 된다고 하는 것이다. 불리어 온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 택할 사람은 적구나."
  
  예수가 바랐던 세상의 임금 체계
  
  <신약성경>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예수의 예화다. 여기서 포도밭 주인은 하늘의 왕국, 즉 천국을 뜻한다고 예수는 말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예수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하는 것을 예화를 통해 빗대고 있는 것이다.
  
  예화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의 말은 한마디로 "얼마를 주건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풀이가 가능하다.
  
  첫째는 정말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돈 주고 일꾼을 부리는 사람은 나인데 돈 받고 부림을 당하는 일꾼인 네가 왜 따지느냐는 것. 마음에 안 들면 딴 데 가서 일하면 되지 왜 대드느냐는 전형적인 한국 악덕 자본가의 논리다. 하지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속뜻이 진정 이러했을까.
  
  두 번째 뜻은 정운영 교수 수업의 결론과 이어져 있다. 11시간을 일하든, 1시간을 일하든 일꾼, 즉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1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일하려 했으나 고용하는 자가 없어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늦게나마 1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하루 세끼 먹는 것은 같고, 그들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식솔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한 예수였다.
  
  '저급' 노동, '육체' 노동은 차별해도 되나
  
  물론 정운영 교수가 11시간 일한 자와 1시간 일한 자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과격하게 결론짓진 않았다. 그는 이른바 '고급' 노동을 하는 교수의 1시간과 '저급' 노동을 하는 청소부의 1시간이 사회경제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강조했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으며 사회복지가 잘 돼 있는 선진국일수록 '고급' 노동과 '저급' 노동,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에서 대우의 차이가 작다는 점이다.
  
  2006년과 2007년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즉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심각했던 프랑스 외자기업 라파즈한라시멘트의 문제를 언론에서 다뤘을 때 네덜란드 체류 경험을 가진 이가 댓글을 올린 적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원청'이냐 '하청'이냐를 떠나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했던 수준의 일을 할 경우, 잘하면 1억 원 가까이 번다는 내용이었다.
  
  네덜란드에 안 가봤으니 시멘트 공장에 필요한 지게차를 운전하는 노동자가 1억 원을 버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원청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든지 하청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든지에 상관없이, 혹은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이든지 하청의 비정규직 노동자이든지에 상관없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이 한국만큼 사회경제 체제를 흔들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비가 하찮은 일이라면, 군대와 경찰은?
  
▲이틀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다국적기업 노동조합들을 상대로 한 토론회에 참석했었다. 토론회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의 노조 간부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회사가 흑자를 연속해서 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이틀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다국적기업 노동조합들을 상대로 한 토론회에 참석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나온 발표자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설명하면서 불가피한 외주화·하청화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핵심 사업(core business)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경비직(security)이라고 했다. 그러자 인도네시아 라파즈시멘트의 노조간부가 "경비원이나 시멘트를 생산하는 노동자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다 같은 노동자다. 경비원을 외주용역으로 돌려야 하는 이유가 뭐냐"며 따지고 나섰다.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던 필자는 라파즈 노조 간부의 주장이 일리 있는 항변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보호와 안정을 책임진 경비원이 핵심 사업이 아니라서 비정규직으로 돌린다고 치자. 그렇다면 국가 보호와 사회 안정을 책임진 군대와 경찰(national security)을 외주용역으로 돌리지 않을 이유는 뭔가.
  
  이 토론회에 참석한 독일 홀침 시멘트 회사의 중간 관리자급 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돈으로 100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했다. 1년 전 만난 인도네시아의 라파즈 루핑(roofing, 지붕자재) 회사의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돈으로 9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했다. 이 라파즈 루핑의 노동자는 생계비 걱정에 16살짜리 딸을 학교 대신 시집을 보내야 했다. 프랑스 기업인 라파즈는 세계 제1위의 건설자재 생산회사로 2007년 순이익 증가율이 35%를 넘어선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다.
  
  적자라서 비정규직 증가, 흑자라도 비정규직 증가
  
  인도네시아 토론회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의 노조 간부들이 많이 참석했다. 라파즈(Lafarge), 홀침(Holcim), 굿이어(Goodyear), 하이델베르그(Heidelberg), 아사히글라스(Asahi Mas), 엑손모빌(Exxon Moi)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회사가 흑자를 연속해서 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에서 비정규직 증가의 문제를 제기하면 사측은 한결같이 "적자를 볼 때는 적자라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야 하고, 흑자를 볼 때는 적자를 대비해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외주용역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는 누구인가
  
▲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일을 할 때 오다(job order)는 누구한테 받느냐. 하청업체나 외주업체 관리자냐 아니면 원청회사냐?" "원청회사한테서 받는다"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 왔다.ⓒ프레시안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일을 할 때 오다(job order)는 누구한테 받느냐. 하청업체나 외주업체 관리자냐 아니면 원청회사냐?"
  
  "원청회사한테서 받는다"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 왔다. 한마디로 원청회사의 관리감독이 없으면 작업이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을 외주하청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사용자성(使用者性)'의 문제가 인도네시아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사내하청과 외주업체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가 누구냐 하는 '사용자성' 문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은 물론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심각한 사회 쟁점이 되고 있다.
  
  연세대에서 일하다 임금 떼먹힌 비정규직들
  
  토론회를 진행하는 숙소에는 인터넷이 안 되어 저녁에 읍내까지 나가 어렵사리 인터넷에 연결해보니, 연세대에서 청소부와 경비원으로 일해 온 '용역'들이 용역업체의 체불임금에 대한 대학 측의 책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진 기사가 보였다.
  
  연세대에서 청소·경비 업무를 해온 '용역' 170여명이 용역업체(인력파견업체)의 갑작스러운 폐업으로 임금 3억5000만원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 업체는 지난 3월 3일 "감당할 여력이 없으니 노동부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라"며 폐업 신고를 했고, 원청회사 격인 연세대는 "용역업체와 해당 노동자들 간의 계약이라 학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연세대는 폐업신고를 낸 업체로부터 2007년 9월 대학 발전기금 명목으로 3억5000만원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돈은 '용역'들의 체불임금과 같은 규모였다.
  
  연세대가 청소·경비 업무를 외주용역으로 쓰는 것은 경비를 절감하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업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서겠지만, 연세대는 '등록금 천만 원 시대'를 도래케 한 선봉장 가운데 하나다.
  
  연세대가 말하는 '진리'는 무엇인가
  
▲ 어려움을 당한 노동자들이 그 동안 서울대나 고려대에서 경비를 서고 청소를 한 것도 아닌데 연세대가 이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항변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사진은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모습.ⓒ프레시안

  "가장 약하고 작은 자에게 잘하라"는 성경의 핵심 가르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ILO핵심노동기준, OECD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 UN 글로벌콤팩트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규율하고 있는 국제기준들은 하청·용역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청회사가 노력할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교훈으로 삼고 있는 연세대의 공식입장이 "용역업체와 해당 노동자들 간의 계약이라 학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라니 놀부도 이런 놀부가 없다 싶다. 어려움을 당한 노동자들이 그 동안 서울대나 고려대에서 경비를 서고 청소를 한 것도 아닌데 연세대가 이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항변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이 문제가 과연 미국의 기독교도가 설립했고 한국의 기독교도가 운영하고 있는 연세대만의 문제일까. 민족 자본이 설립했다고 자부하는 고려대나 "조국의 미래를 묻는 자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고 자부하는 한국 최고의 대학 서울대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
  
  진리가 자유케 하는 '너희' 안에 비정규직이 포함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비정규직을 위해서도 '자유', '정의', '진리'를 외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조국의 미래를 묻는 자'가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 언저리가 아닌 비정규직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게 될 날은 언제일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빈익빈부익부가 날로 악화되는 오늘날의 우리들을 위해 2000년 전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윤효원/ICEM 코디네이터
 


 
   


 

 

 

 

 

 

이 책에 나오는 16명은 제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원인은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 혹은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지구적 확대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 러시아에 갔을 때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한 언론인이 그들이 작성한 구조조정 문서 사본을 하나 확보했는데, 이 문서에서 통화기금은 러시아의 모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모든 수입 관세를 없애는 방법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 중간 부분에 이 언론인은 러시아가 아니라 남한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검색을 해서 남한을 러시아로 바꿨는데 일부를 미처 고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하나의 규격을 모두에 적용한다고 제가 말할 때는, 문자 그대로 남한에 대한 처방을 그대로 러시아에 적용한다는 것이고 이제는 이라크에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겁니다.” -나오미 클라인-


대상이 학생들이다 보니 강사들에게 몇 가지 공통된 인터뷰들이 있었는데 강사들의 진보적인 사상과 이타적인 직업들을 갖게 된 이야기, 그리고 올바른 사회적 진출에 대한 방법들을 학생들은 묻고 있었다.

 

 

“당신의 정열을 따라서 당신이 정말 혐오하지만 가게 될 그곳에서 배우세요. 아마 거기서 훨씬 더 많이 배울 겁니다. 당신은 비참해지겠지만, 그러나 당신이 세상 한가운데서 부서지는 동안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잘못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겁니다.”

 

“당신에게 부닥쳐 오는 것들과 당신을 앞으로 내모는 것들을 붙잡아 그 힘으로부터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지 교훈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기본 연결고리를 놓치는 겁니다.” -스와니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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