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적 가치 - 세계의 지식인 16인과 하버드생의 대화
브라이언 파머 지음, 신기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로버트 라이시, 하비 콕스... 미국의 대표하는 16명의 지식인이 하버드 대학에서 개설한 ‘개인의 선택과 전 지구적 변화’라는 강좌에서 학생들과 나눈 얘기들을 펴낸 책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은...) 16명의 강사들은 현재 지구촌이 겪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의 원인 축으로 미국을 지목하고 미국의 책임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차원의 앎과 실천에 대한 노력과 특히, 대학생들에게 통상적인 것과는 다른 차원의 사회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혹은 신자유주의의 강화 때문에 우려되는 미래사회상이 고스란히 지금 미국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해야 되나...)

교육, 복지, 경제적 양극화, 시장만능주의 등에서 미국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점들은 지금 우리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하버드대 잡역부와 조리사들의 적절한 ‘생활임금’보장을 요구하며 학생 50명이 3주간이나 총장실을 점거하고 학교법인으로부터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 내용이었는데, 수많은 일용직노동자와 시간제 강사들로 꾸려가고 있는 우리의 대학들과 이러한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관심 없이 장밋빛 미래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도서관과 토플학원을 죽어라 다니고 있는 이 땅의 대학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울적해 졌다. 

   
 
 






연세대가 말하는 '진리'는 어디에?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학교 청소 노동자 외면하는 연세대
등록일자 : 2008년 03 월 28 일 (금) 08 : 08   
 


  내가 대학 정문을 처음 밟아본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다. 지방 소도시 출신인 나와 달리, 입학 동기들 가운데는 자기가 목표로 한 대학을 고교 수업을 마치고 밤이면 와봤다는 서울 아이도 있었다. 대학은 역시 소도시의 낙후된 고등학교와는 달랐다. 건물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고등학생 누구나처럼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을 그럭저럭 마치고 입학을 하고 보니 대학의 경비원만 보아도 가슴이 뛰곤 했었다.
  
  학생·교수·교직원, 그리고 '용역'
  
  모든 대학엔 교훈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대는 '진리는 나의 빛'이라고 했고, 연세대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고, 고려대는 '자유·정의·진리'라고 했다. '진리', '자유', '정의'라는 말들은 얼굴에 솜털이 뽀송했던 청춘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가치들이었다.
  
  입학을 하니 대학은 세 가지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학생, 교수, 교직원이 그것이다. 대학을 다닌 지 1년이 지났을까, 또 하나의 구성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교직원으로 알고 있던 이들이 교직원이 아니라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내가 거닐던 대학 곳곳을 걸레로 훔치던 청소부가 바로 '용역'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단과대학 건물의 경비원들도 '용역'임을 알게 됐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용역'이라는 말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재화와 용역'할 때의 그 용역뿐이었다. 그 용역이 현실에서 처음으로 나와 대면한 것이다.
  
  정운영 교수의 수업과 예수님의 예화
  
  그 무렵, 훗날 <MBC 100분토론>의 명사회자로 이름을 떨친 고(故) 정운영 교수가 가르치던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을 듣게 됐다. 청바지를 즐겨 입고 구내매점 커피 한 잔에 담배피기를 즐겼던 그가 어느 날 질문을 던졌다. "대학교수의 1시간 노동과 대학청소부의 1시간 노동 가운데 누구의 임금을 더 높게 쳐주어야 하는가?" 그의 결론(사실 정 교수의 결론이라기보다 마르크스의 결론)은 둘 다 똑같이 쳐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교수 사회를 두고 '3T 교수'라는 말이 있을 때였다. 학교에 오면 차(Tea)를 마시고 테니스(Tennis)를 치다가, 퇴근해서 텔레비전(Television)을 보는 게 교수의 일과라는 비아냥거림이 인구에 회자되던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교수와 청소원의 1시간 품삯이 같아야 한다는 주장도 그럴 듯하게 들렸다.
  
  세월이 많이 흘러 깨닫게 된 것이지만, 대학교수가 1시간 일해 받는 급여와 청소부가 1시간 일해 받는 급여가 왜 똑같아야 하는지는 <신약성경>의 예수가 분명하게 가르쳐주었다.
  
  <신약성경>의 포도밭 주인과 일꾼
  
  포도밭 주인이 아침 일찍 일꾼을 찾아 나섰다. 아침에 만난 일꾼들에게 하루치 임금을 열 냥 쳐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다. 낮에 보니 시장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어 역시 포도밭에 보내 일을 시켰다. 오후에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일을 시켰다. 해 질 무렵 역시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주인이 물었다. "하루 종일 일 없이 서 있었느냐?" 서 있던 일꾼들이 말했다. "아무도 우리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이들에게 밭에 가서 일하라고 시켰다.
  
  해가 지고 일당을 줄 때가 되었다. 포도밭 주인이 하인을 시켜 "마지막에 온 일꾼부터 처음 온 일꾼 순으로 임금을 주라"고 말했다. 해질 무렵 와서 일한 일꾼들이 열 냥을 받았다. 처음부터 온 일꾼들은 속으로 그보다 더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도 열 냥을 받자 주인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해질 무렵 온 자는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땡볕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우리와 평등하게 대접합니까."
  
  주인이 말했다. "친구여.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있다. 열 냥 받고 일하기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의 일당을 챙겨 갈 길을 가라. 내 것을 갖고 내가 바라는 걸 하는 게 불법이냐? 나는 마지막에 온 자들에게도 너희들과 똑같이 주고 싶다. 내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들 눈에는 내가 악마로 보이느냐? 그래서 나중 된 자가 처음 되고, 처음 된 자가 나중 된다고 하는 것이다. 불리어 온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 택할 사람은 적구나."
  
  예수가 바랐던 세상의 임금 체계
  
  <신약성경>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예수의 예화다. 여기서 포도밭 주인은 하늘의 왕국, 즉 천국을 뜻한다고 예수는 말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예수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하는 것을 예화를 통해 빗대고 있는 것이다.
  
  예화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의 말은 한마디로 "얼마를 주건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풀이가 가능하다.
  
  첫째는 정말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돈 주고 일꾼을 부리는 사람은 나인데 돈 받고 부림을 당하는 일꾼인 네가 왜 따지느냐는 것. 마음에 안 들면 딴 데 가서 일하면 되지 왜 대드느냐는 전형적인 한국 악덕 자본가의 논리다. 하지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속뜻이 진정 이러했을까.
  
  두 번째 뜻은 정운영 교수 수업의 결론과 이어져 있다. 11시간을 일하든, 1시간을 일하든 일꾼, 즉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1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일하려 했으나 고용하는 자가 없어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늦게나마 1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하루 세끼 먹는 것은 같고, 그들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식솔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한 예수였다.
  
  '저급' 노동, '육체' 노동은 차별해도 되나
  
  물론 정운영 교수가 11시간 일한 자와 1시간 일한 자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과격하게 결론짓진 않았다. 그는 이른바 '고급' 노동을 하는 교수의 1시간과 '저급' 노동을 하는 청소부의 1시간이 사회경제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함을 강조했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으며 사회복지가 잘 돼 있는 선진국일수록 '고급' 노동과 '저급' 노동,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에서 대우의 차이가 작다는 점이다.
  
  2006년과 2007년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즉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심각했던 프랑스 외자기업 라파즈한라시멘트의 문제를 언론에서 다뤘을 때 네덜란드 체류 경험을 가진 이가 댓글을 올린 적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원청'이냐 '하청'이냐를 떠나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했던 수준의 일을 할 경우, 잘하면 1억 원 가까이 번다는 내용이었다.
  
  네덜란드에 안 가봤으니 시멘트 공장에 필요한 지게차를 운전하는 노동자가 1억 원을 버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원청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든지 하청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든지에 상관없이, 혹은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이든지 하청의 비정규직 노동자이든지에 상관없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이 한국만큼 사회경제 체제를 흔들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비가 하찮은 일이라면, 군대와 경찰은?
  
▲이틀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다국적기업 노동조합들을 상대로 한 토론회에 참석했었다. 토론회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의 노조 간부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회사가 흑자를 연속해서 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이틀 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다국적기업 노동조합들을 상대로 한 토론회에 참석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나온 발표자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설명하면서 불가피한 외주화·하청화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핵심 사업(core business)으로 간주할 수 없는 경비직(security)이라고 했다. 그러자 인도네시아 라파즈시멘트의 노조간부가 "경비원이나 시멘트를 생산하는 노동자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다 같은 노동자다. 경비원을 외주용역으로 돌려야 하는 이유가 뭐냐"며 따지고 나섰다.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던 필자는 라파즈 노조 간부의 주장이 일리 있는 항변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의 보호와 안정을 책임진 경비원이 핵심 사업이 아니라서 비정규직으로 돌린다고 치자. 그렇다면 국가 보호와 사회 안정을 책임진 군대와 경찰(national security)을 외주용역으로 돌리지 않을 이유는 뭔가.
  
  이 토론회에 참석한 독일 홀침 시멘트 회사의 중간 관리자급 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돈으로 100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했다. 1년 전 만난 인도네시아의 라파즈 루핑(roofing, 지붕자재) 회사의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돈으로 9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다고 했다. 이 라파즈 루핑의 노동자는 생계비 걱정에 16살짜리 딸을 학교 대신 시집을 보내야 했다. 프랑스 기업인 라파즈는 세계 제1위의 건설자재 생산회사로 2007년 순이익 증가율이 35%를 넘어선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다.
  
  적자라서 비정규직 증가, 흑자라도 비정규직 증가
  
  인도네시아 토론회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의 노조 간부들이 많이 참석했다. 라파즈(Lafarge), 홀침(Holcim), 굿이어(Goodyear), 하이델베르그(Heidelberg), 아사히글라스(Asahi Mas), 엑손모빌(Exxon Moi)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한결 같은 얘기는 회사가 흑자를 연속해서 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에서 비정규직 증가의 문제를 제기하면 사측은 한결같이 "적자를 볼 때는 적자라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야 하고, 흑자를 볼 때는 적자를 대비해서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외주용역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는 누구인가
  
▲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일을 할 때 오다(job order)는 누구한테 받느냐. 하청업체나 외주업체 관리자냐 아니면 원청회사냐?" "원청회사한테서 받는다"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 왔다.ⓒ프레시안

  그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일을 할 때 오다(job order)는 누구한테 받느냐. 하청업체나 외주업체 관리자냐 아니면 원청회사냐?"
  
  "원청회사한테서 받는다"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 왔다. 한마디로 원청회사의 관리감독이 없으면 작업이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을 외주하청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사용자성(使用者性)'의 문제가 인도네시아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사내하청과 외주업체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가 누구냐 하는 '사용자성' 문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은 물론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심각한 사회 쟁점이 되고 있다.
  
  연세대에서 일하다 임금 떼먹힌 비정규직들
  
  토론회를 진행하는 숙소에는 인터넷이 안 되어 저녁에 읍내까지 나가 어렵사리 인터넷에 연결해보니, 연세대에서 청소부와 경비원으로 일해 온 '용역'들이 용역업체의 체불임금에 대한 대학 측의 책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진 기사가 보였다.
  
  연세대에서 청소·경비 업무를 해온 '용역' 170여명이 용역업체(인력파견업체)의 갑작스러운 폐업으로 임금 3억5000만원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 업체는 지난 3월 3일 "감당할 여력이 없으니 노동부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라"며 폐업 신고를 했고, 원청회사 격인 연세대는 "용역업체와 해당 노동자들 간의 계약이라 학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연세대는 폐업신고를 낸 업체로부터 2007년 9월 대학 발전기금 명목으로 3억5000만원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돈은 '용역'들의 체불임금과 같은 규모였다.
  
  연세대가 청소·경비 업무를 외주용역으로 쓰는 것은 경비를 절감하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업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서겠지만, 연세대는 '등록금 천만 원 시대'를 도래케 한 선봉장 가운데 하나다.
  
  연세대가 말하는 '진리'는 무엇인가
  
▲ 어려움을 당한 노동자들이 그 동안 서울대나 고려대에서 경비를 서고 청소를 한 것도 아닌데 연세대가 이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항변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사진은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모습.ⓒ프레시안

  "가장 약하고 작은 자에게 잘하라"는 성경의 핵심 가르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ILO핵심노동기준, OECD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 UN 글로벌콤팩트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규율하고 있는 국제기준들은 하청·용역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청회사가 노력할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교훈으로 삼고 있는 연세대의 공식입장이 "용역업체와 해당 노동자들 간의 계약이라 학교에서 책임질 일이 아니"라니 놀부도 이런 놀부가 없다 싶다. 어려움을 당한 노동자들이 그 동안 서울대나 고려대에서 경비를 서고 청소를 한 것도 아닌데 연세대가 이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항변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이 문제가 과연 미국의 기독교도가 설립했고 한국의 기독교도가 운영하고 있는 연세대만의 문제일까. 민족 자본이 설립했다고 자부하는 고려대나 "조국의 미래를 묻는 자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고 자부하는 한국 최고의 대학 서울대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
  
  진리가 자유케 하는 '너희' 안에 비정규직이 포함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비정규직을 위해서도 '자유', '정의', '진리'를 외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조국의 미래를 묻는 자'가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 언저리가 아닌 비정규직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게 될 날은 언제일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빈익빈부익부가 날로 악화되는 오늘날의 우리들을 위해 2000년 전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윤효원/ICEM 코디네이터
 


 
   


 

 

 

 

 

 

이 책에 나오는 16명은 제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원인은 공통적으로 ‘신자유주의’ 혹은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지구적 확대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 러시아에 갔을 때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한 언론인이 그들이 작성한 구조조정 문서 사본을 하나 확보했는데, 이 문서에서 통화기금은 러시아의 모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모든 수입 관세를 없애는 방법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 중간 부분에 이 언론인은 러시아가 아니라 남한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검색을 해서 남한을 러시아로 바꿨는데 일부를 미처 고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하나의 규격을 모두에 적용한다고 제가 말할 때는, 문자 그대로 남한에 대한 처방을 그대로 러시아에 적용한다는 것이고 이제는 이라크에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겁니다.” -나오미 클라인-


대상이 학생들이다 보니 강사들에게 몇 가지 공통된 인터뷰들이 있었는데 강사들의 진보적인 사상과 이타적인 직업들을 갖게 된 이야기, 그리고 올바른 사회적 진출에 대한 방법들을 학생들은 묻고 있었다.

 

 

“당신의 정열을 따라서 당신이 정말 혐오하지만 가게 될 그곳에서 배우세요. 아마 거기서 훨씬 더 많이 배울 겁니다. 당신은 비참해지겠지만, 그러나 당신이 세상 한가운데서 부서지는 동안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잘못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겁니다.”

 

“당신에게 부닥쳐 오는 것들과 당신을 앞으로 내모는 것들을 붙잡아 그 힘으로부터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지 교훈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기본 연결고리를 놓치는 겁니다.” -스와니 헌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일전쟁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7
후지무라 미치오 지음, 허남린 옮김 / 소화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제독인 페리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한 일본이 이후 1868년의 메이지유신을 거쳐 1894년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산술적인 시간은 불과 40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개항당시에 경악스런 눈으로 쳐다보던, 미국의 쇠로 만든 배(군함)를 불과 20-30년 만에 건조해 내었고 성능과 규모도 당시의 동북아 전통의 강국이었던 중국을 능가한 것이었다.

중간에 메이지유신이라는 그들 나름의 효율적인(번체제보다는..) 정치적 변동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아시아의 소국에 머물렀던 일본의 변신은 놀라웠다.

당시 일본이 근대화의 방법으로 선택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천황을 비롯한 관료집단은 물론, 특히 언론이 거의 모든 사안에서 한 술 더 떠서 선동하고 있음은 오늘날에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일전쟁에 승리하고도 삼국간섭에 의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본은 이 전쟁으로 국제무대에 당당한 제국주의체제의 일원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들의 근대를 위한 첫 발걸음과 그 이후의 행보는 이후 아시아 민중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을 선사했음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헌법 개정을 완료하고 착실한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은 서북공정을 마무리하고(물론 요즘의 티벳 사태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문 어디를 찾아봐도 세계정세와 동북아 정세에 대비한 준비와 대안마련에 대해서는 찾을 수가 없다.


이 책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에 대한 기록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의 일본 관리들이 세계정세를 보는 눈은 냉철했고 그들의 준비는 무서울 만큼 치밀했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아일보>가 제 세상 만났다. MB가 대통령이 됐다고 팔에 완장을 찼다. 우스운 것은 이 완장질의 근거. '동아일보 = 고려대학교 = 이명박.' 이런 같잖은 인연의 실 자락을 붙들고 정권과 벌이는 <동아일보>의 낯 뜨거운 애정행각. 저널리즘과 포르노그래피의 결합으로 <동아>는 언론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조선일보>가 옆에서 질투를 할 정도다. 보다 못한 <조선일보>, 가끔 지면에 <조선일보> 것이라 믿기 힘든 기사나 논설을 올린다. 살다 보니, 별 꼴을 다 본다.
  
  듣자 하니, 영화계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선언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우리의 <동아일보>, 그게 영 못 마땅했나 보다. 익명의 영화인을 내세워 "영화계에 정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둥, 이상한 기사를 올리며 슬며시 시비를 걸고 나선다. 남이야 어떤 당을 지지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영화인들이 자기 개인의 이름을 걸고 지지를 선언하겠다는데, 자기들이 기분 나쁠 일이 뭐 있을까?
  
  명색이 진보신당의 홍보대사, 이 만행을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자, 다음 기사를 보자. 문제의 기사를 쓴 <동아일보>의 채지영 기자와 꼭 함께 읽고 싶다.
  
  "예능단체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장단 150여 명도 지지 성명을 내고 이(명박) 후보를 전폭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예총은 건축가협회 국악협회 무용협회 문인협회 미술협회 사진작가협회 연극협회 영화인협회 음악협회 등 회원만 수십 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단체의 이름을 걸고 지지선언에 나섰다. 상식적으로 소속 회원 수십 만 명이 일제히 이명박을 지지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이들은 버젓이 주제넘게 다른 사람들까지 무더기로 대변하고 나선 바 있다. 회원 수십 만 명을 거느린 단체에서 회장단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나서는 것. '정치 바람'이라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런데 그때 <동아일보> 채지영 기자는 어디서 뭐하고 계셨을까?
  
  예총은 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을까? 유인촌씨가 장관이 되자마자 완장질부터 하고 나선 것을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밥그릇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과거 정권 아래서는 예총이 혼자 다 해 먹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예총과 나눠먹어야 하고, 심지어 민예총보다도 덜 먹어야 했다는 불만. 아마 자기들도 부정하지 않을 게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얼마나 순수한 걸까?
  
  반면, 영화인들이 진보신당을 지지하면 뭐가 생길까? 진보신당이 지지선언 해 준 감독들에게 장관 자리를 줄 수 있나, 아니면 공공기관의 장으로 앉힐 수가 있나, 하다못해 그 흔한 각종 위원회의 위원 자리라도 마련해 줄 수 있나? 진보신당이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떡고물은 '하나도' 없다. 외려, 지지를 선언한 죄로 진보신당에 선거 치룰 비용이나 내줘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우려"할 일인가?
  
  이 기사는 또 어떤가?
  
  "가수 김건* ▲ 영화배우 김민* ▲ 영화배우 김보* ▲ 영화배우 김선* ▲ 탤런트 김원* ▲ 탤런트 김유* ▲ 탤런트 김응* ▲ 탤런트 김재* ▲ 가수 박상* ▲ 탤런트 박선* ▲ 성우 배한* ▲ 탤런트 변우* ▲ 영화배우 성현* ▲ 탤런트 소유* ▲ 개그맨 겸 MC 신동* ▲ 탤런트 겸 가수 안재* ▲ 성우 안지* ▲ 가수 겸 탤런트 에* ▲ 가수 겸 탤런트 유* ▲ 탤런트 윤다* ▲ 개그맨 겸 MC 이경* ▲ 영화배우 이덕* ▲ 탤런트 이순* ▲ 탤런트 겸 가수 이지* ▲ 탤런트 이창* ▲ 탤런트 이* ▲ 개그맨 겸 MC 이휘* ▲ 가수 겸 탤런트 전혜* ▲ 탤런트 정선* ▲ 영화배우 정준* ▲ 탤런트 차태* ▲ 탤런트 최불* ▲ 탤런트 최수* ▲ 탤런트 한재* 등 (사)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소속 연예인 35명)"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연예인들의 명단이다. (지금쯤 쪽팔려하고 있을 것 같아 한 자는 지웠다.) 명단의 끝에서 "(사)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라는 단체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그 단체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지지선언을 한 것은 아닐 게다. 그런데도 성명에는 버젓이 단체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그때 원하지 않는 사람 이름까지 집어넣었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채지영 기자는 뭐하고 계셨을까?
  
  영화인이 개인 이름 걸고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선언에 참여하는 것조차 "우려"하는 그 섬세한 감성이, 저 무지막지한 정치바람들 앞에서는 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지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다 저려온다. 남에게 얻어먹어도 떳떳한 삶이 있는가 하면, 멀쩡히 직업 갖고도 빌어먹는 구차한 삶이 있는 법. 저런 기사로 밥 먹는 것은 좋은데, 밥 먹는 자태가 그것보다는 좀 더 우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충고 한 마디. 지금 <동아일보>가 한가하게 진보신당 신경 쓸 때인가? <동아일보>에서 지금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청와대 대변인질 해야지, 한나라당 기관지질 해야지, 고려대학 동창회보질 해야지. 1인 3역을 해야 할 때다. 또 지금이 어디 한가하게 정권이랑 밀월이나 즐길 때던가. 각하 지지율 뚝뚝 떨어져 정권의 숨이 넘어가는 상황. 바야흐로 구강 대 항문 키스를 애정표현에서 인공호흡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동아>여, 폐활량을 늘려라.     <진중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생각보다...아니 생각만큼  만만치 않은 대학원 공부와 영어공부와 직장 일과 주변 사람들... 무엇하나 정리되지 않은채 황사처럼 뿌옇게 둥둥 떠다니며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사회에 대해..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다시 고개 드는 의문하나...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현상적으로 미쳐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는 따라오던지 낙오하던지를 요구하고 있고 통찰과 반성은 보이지만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시대는 다이나믹하고 나는 우울하다...

 

1년에 100권의 책을 읽자고 하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다녀왔다. 주제는 학문간의 통섭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나의 귀에는 통섭이 들리지 않았다. 부분부분 그들만의 자존감과 사회진화론적인 관점에 접근한 강의들...좌파의 상상력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100권의 책을 읽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가 보이지 않았다...밤을세워 이야기를 나눈다는 그들을 뒤로 하고 왔지만 그들은 과연 밤을 세워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200년전의 '열하일기'에서  요즘 교수사회의 살찐 권위를 비판할 수 있는 고미숙의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20년전의 책 '세계체제론'과 21세기형 '난쏘공'이라는 '완득이'와 약간의 낮잠이 행복했던 일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YE

-‘거세’당한 젊은이의 비애 같은 것이 느껴진 책이었다.

-대학 친구, 선후배들의 경우 어학연수를 당연시 하는 풍토이고 남자의 경우 이것저것 취업준비 스펙을 맞추다 보면 30대가 되어야 취업에 성공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차가운 자본주의’라는 말이 실감났다.

-대기업과 좋은 직장에 취직한  친구들을 생각하며 약간의 괴리감이 들었고 ‘이 책이 말하는 현실이 바로 내가 처한 현실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세대는 같은 지역, 같은 세대 등에 대한 그룹핑은 자연스러우나 현재의 20대는 개인적 성향이 강해 같은 세대, 또래의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이타적인 생각을 갖기란 사실상 힘들지 않겠는가?

-가난의 대물림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다가왔다.

-대학교 1학년의 경우 ‘88만원 세대’에 대해 쉽게 공감하지 않는 이유가 자기는 그 세대에 끼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자신감이 있어서일 것이다.


SM

-책을 읽고 난 첫 느낌은 ‘책이 참 독하다’ 것이었다. 어떻게 책 내용이 이렇게 부정적일 수 있을까? 충격적인 부분이 많았고 반면에 나만 이런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위로도 되었다.

-가장 강하게 다가왔던 것은 ‘인질극’을 청소년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정부와 최고권력자의 정책이 어떤 방향인가에 따라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책이었다.

-책에 나오는 ‘개미지옥’의 현실이 고졸여성에서 대졸여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래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한 한숨과 궁금증. 이런 현실에 영어교육에만 몰입하고 있는 정부의 교육정책에도 짜증이 났다.


KH

-이 책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속선상에서의 선택이란 느낌이 왔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무엇 하나 할 수없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웠고 미래세대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한국전쟁, 경제개발을 겪어오면서 기성세대들이 너무 자신들의 문제에 함몰해 있으면서 현재 후배세대들에 대한 배려를 해주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우리 직장내에서도 기성세대의 역할과 이른바 낀세대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3D직업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기타

-요즈음의 사람만나는 풍속도는 재력과, 직장이 최우선이다.

-88만원을 받을지언정 그래도 일하는 것이 낫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학등록금연대, 청소년들의 자기문제 이해 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민운동이 청소년들의 자기 현실인식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프랑스 68혁명과 같이 우리도 우리만의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가져야 한다.

우리만의 바리케이트와 짱돌은 무엇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