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故 송인득 아나운서가 후배에게 남긴 것
2007년 05월 23일 오후 14:28
김용운기자 woon@joynews24.com

23일 새벽 MBC 송인득 아나운서가 향년 49세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사인은 간경화에 따른 위정맥류 파열이었다.

1981년 MBC에 입사한 송인득 아나운서는 특히 스포츠 중계로 일가를 이룬 아나운서로 유명하다.

시청자들은 송인득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투구에 환호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월드컵의 아쉬움과 영광의 순간을 송인득 아나운서와 함께 했다.

송 아나운서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송 아나운서의 부고 기사마다 수백 수천개 댓글이 달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그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다른 길로 외도 없이 20여 년 간 아나운서 외길을 걸어온 고인의 삶이 특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근 각 방송국에서는 아나운서를 연예프로그램에 전진 배치해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를 종용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은 아나운서 몇 몇은 거액의 전속금을 받고 방송국을 떠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나운서가 연예인이냐고 비난하는 시청자들도 늘었고 그들의 변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시청자들도 늘었다.

결국 아나운서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 세미나를 여는 상황까지 왔다. 송 아나운서가 별세하기 하루 전인 22일 오후 아나운서연합회는 '아나운서, 그는 누구인가'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 '아나운서 프리랜서 경향과 대안모색'이란 주제로 발제를 맡은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김현주 교수는 "최근 몇 몇 아나운서가 재벌가와 결혼한다거나 고액의 계약금을 받고 연예기획사로 자리를 옮기는 현상을 보고 아나운서에 대한 시청자들의 시선이 선망에서 질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KBS의 강성곤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는 언론인이다"며 "후배들 가운데 이런 모습과 배치되는 경우가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전규찬 교수는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이면서 동시에 연예인이자 스타이면서 교수이기도 한 분열적 다중인격체"라며 "현실적으로 변화된 아나운서들의 활동형태를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논의를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송인득 아나운서의 부고와 아나운서 정체성 모색 세미나를 겪으며 '아나운서는 누구인가'는 질문이 기자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아나운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단언할 수 없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교수의 말처럼 모든 것이 해체되는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직종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끼고 있는 현실인 까닭이다.

23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송인득 아나운서는 요즘 말하는 '스타아나운서'는 아니었다. 그는 20여 년간 묵묵히 스포츠 현장에서 아나운서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책임을 다했을 뿐이다. 스포츠 중계라는 자신의 전문영역을 개척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결국 송인득 아나운서는 국내 처음으로 스포츠 전문아나운서라는 명함을 가지게 됐다.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아나운서 한 길을 걸어온 덕분이다.

송 아나운서는 생전 MBC 아나운서 커뮤니티 언사운사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에 스포츠 중계에 매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얼굴이 되고 주목을 받는 것과 스포츠 캐스터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송 아나운서 역시 입사 초기 인기를 얻고, 돋보이고 싶은 신입 아나운서 중 하나였지만 이내 자신의 길을 정하고 그 길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런 송인득 아나운서를 잊지 않고 있었다. 방송이 아무리 달라져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한 길을 걸어온 ‘스타가 아닌’ 아나운서를 시청자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변화된 방송환경에서 아나운서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새롭게 정의내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나운서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시청자를 향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 아닐까?

삼가 송 아나운서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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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7-05-23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야구 캐스터 중에 가장 좋아하는 분이었는데...너무 마음이 아프다...스포츠 중계란 것이 2-3시간씩 하는 생방송이기 때문에 간혹 말실수도 나올 수 있는데 송 아나운서는 그런 실수가 거의 없었고, 냉정함과 감성을 적절히 배치해서 참 맛깔나게 방송을 했었다고 생각한다...50살도 안된 나이에 가시다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홍수맘 2007-05-2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팠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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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가 나타나면 책의 윗쪽을 접고 중간에 책을 읽다 잠깐 놓을 일이 생기면 책의 아랫쪽을 접습니다.

이 시집은 책의 윗쪽을 참 많이 접었습니다.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억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싸전다리

 쌀 됫박이나 팔러  싸전에 왔다가  쌀은 못 팔고 그냥 저

냥 깨나 팔러 가는 게 한세상 건너는 법이라고 , 오가는

이 없는 싸전다리  아래로 쌀뜨물같이 허연 달빛만 하냥

흐른다

 

야 이놈아,  뭣이 그리 허망터냐? 

 

 

건망증

깜박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 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엔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 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뒤척이는 밤, 돌아눕다가 우는 소릴 들었다

처음엔 그냥 귓밥 구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누군가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다


부질없는 일이야, 잘래잘래

고개 저을 때마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 소리,

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가 명명하게 들려왔다

고추는 매운 물을 죄 빼내어도 맵듯

마른 눈물로 얼룩진 그녀도 나도 맵게 우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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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소녀'의 시는 수업 시간에 쓰여졌다
[인터뷰] '그날'의 정민경씨 "난 시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고생"
홍성식 기자
▲ '그날'을 쓴 경기여고 정민경씨.
ⓒ 광주일보 안현주 제공

백준(song2100)
어린아이의 글을 읽고 눈물이 나네. 젊은 시절 5·18에 가슴 아려하며 눈물콧물 흘리던 시대정신을 이십여 년이나 잊고 살아왔는데. 어린 녀석이 삭아있던 내 양심의 찌꺼기를 들춰내며 눈물을 밀어내네. 눈물이 나네.
천지창조(earthnsky)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 그 때 원한이 살아 꿈틀대어 나에게 점점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오월 광주는 우리 역사 속에 길이 살아 남을 생명수입니다.
- <오마이뉴스> 독자의견 중에서.

유미자님 생각
훌륭한 작품이네요. 5·18 묘역의 수많은 이름 모를 님들의 '넋'을 다시 한번 위로해 드리고 싶네요.
아라봐님 생각
지금도 겁은 없어지지 않고, 때때로 삶 속에서 비겁한 나를 본다. 이제부터 자전거를 제대로 보기 어렵겠다.
scorpion rock님 생각
소름이 쫙 돋아오르는 이 느낌! 대체 얼마만에 제대로 된 감동을 주는 시를 만난 건지!
- <미디어다음> 독자의견 중에서.


5·18민중항쟁 기념 제3회 서울 청소년백일장 대상 수상작인 경기여고 3학년 정민경씨의 시 '그날'을 읽은 후 네티즌들이 보인 반응이다.

관련
기사
5월 광주, 열여덟 소녀 천재시인을 낳다

심사위원들로부터 "1980년 5월 광주 그날의 현장을 몸 떨리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 '그날'.

열여덟이라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빼어난 시적 형상화와 역사인식 수준이 기자 역시 놀라웠다.

그 놀라움은 시를 쓴 학생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했고, 그 호기심은 결국 정민경씨와의 인터뷰로 이어졌다.빼어난 시적 재능을 지닌 범상치 않은 소녀와의 만남에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5·18민중항쟁서울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난 정민경씨는 '시 읽고, 시 쓰는 것을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그 평범함 속에서 어떻게 그토록 비범한 시가 나온 것인지 궁금했다.

아래는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정민경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지난해 5월 18일 광주광역시 살레시오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선배이자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했던 윤상원 열사를 참배했다. 이들 학생들은 매년 윤 열사에게 종이학 1천마리를 접어 선물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언제부터인가?
"유치원 때부터 동시 읽는 걸 좋아했다. 책을 읽고 그 느낌을 글로 남기는 것도 좋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땐 독후감을 써서 당선돼 상품권 20만원 어치를 받기도 했다. 엄마가 좋아하더라(웃음)."

- 특별히 영향받은 작가나 좋아하는 시인이 있는지.
"이상 시인의 시는 매력적이다. 이어령 선생의 책도 많이 읽었다. 하지만, 책 읽는 것 이상으로 음악도 좋아한다. 피아노와 첼로·기타 연주하는 걸 즐긴다."

- '5월 광주'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시적 형상화가 힘들지 않았나?
"일단 쓰기 시작하면 상상을 많이 한다. 그 상상으로 시의 뼈대에 살점을 붙인다. '그날'의 경우 첫 구절은 친척 어른이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다."

- '그날'에서 보여지는 질박한 호남 사투리 구사에 놀라는 독자들이 많은데.
"1989년에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온 6살 때까지 광주에서 살았다. 유치원 시절까지를 광주에서 보낸 것이다. 게다가 나주에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그 분의 말투를 어릴 때부터 들어온 때문이 아닌가싶다."

"내 꿈? 소외받는 사람들 위해 무료 법률상담소 여는 것"

- 쓴 시를 보면 '5월 광주'와 '통일' 등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는가?
"평소 대학에서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오빠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턴 한국 현대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박노자의 책도 좋아하고…. <한겨레신문>도 매일 보긴 한다. 그런 것들이 종합돼 관심사가 그런 쪽으로 간 것 같다."

- '5월 광주' 때문에 고통받는 친척이 있는지. 또, 시인이나 소설가 친척이 있나?
"없다. 그림을 그리는 분은 있는데, 문학을 하는 친척은 안 계신다."

- 앞으론 뭘 하고 싶은가? 시인이 될 생각인지.
"현재로선 시는 취미에 가깝다. 법학이나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싶다. 내 꿈은 소외 받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법률상담소를 여는 거다."

- 적지 않은 네티즌이 "대단한 시적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부끄럽다. 난 그저 시 읽고, 시 쓰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여고생에 불과하다."

- '그날'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해준다면.
"담임선생님이 ' 5·18 관련 백일장이 있다' 걸 조례 때 알려줬다.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수업 시간에 살짝살짝 몰래 썼다(웃음). 완성까지 40~50분쯤 걸린 것 같다."

- 광주 5·18묘역에는 가봤는지.
"아직 못 가봤다. 대학생이 되면 가보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항쟁의 피해자들을 만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역사적 진실을 들어보고 싶다."

- 시 쓰는 것 외에는 어떤 걸 좋아하나?
"록음악을 자주 듣는다. '자우림'의 김윤아가 좋다. 그의 앨범 모두를 가지고 있다. 악기 연주하는 것도 재밌다."

- 어려운 질문일 수 있다. 시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마음으로 느낀 것을 마음으로 전달하는 게 아닐까."

열심히 읽고, 깊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것... 감동 주는 시 만드는 힘

인터뷰를 통해 의문은 풀렸다. 정민경씨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3가지 조건, 즉 '열심히 읽고, 깊이 생각하고, 많이 써본다'는 불변의 대원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생 오빠와의 토론과 부지런한 독서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려는 노력까지.

'천재 소녀시인'을 만난다는 기대는 '비범함은 평범하고도 성실한 노력 속에서 태어난다'는 보편적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실망스럽지 않다. 정민경씨가 그랬듯 다른 중고생들도 열심히 읽고, 깊이 생각하고, 많이 써본다면 누구나 사람들을 감동시킬 빼어난 시를 써낼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래, '통일'을 노래한 정민경씨의 또 다른 시 '니얄 봄'을 올린다. '그날'을 통해 선물 받은 눈물과 가슴 찡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앞날이 더 기대되는 한 소녀시인의 시 2편이 '감동하는 가슴'을 잃어버리고 살았던 우리의 감수성을 깨운다. 한없이 부드럽지만, 그 안에 역사가 남긴 상처와 교훈을 담고있는 5월 바람 같다.

▲ 2005년 8월.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이뤄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니얄 봄

큰마니 죽지마오.
니얄 봄 곱게 화장해
내 저 리북 보내줄테니
죽지마오.

내 저 가시난 쇠붙이 위 새에게 물어보았소.
-너는 어드메서 왔네.
-내레 큰마니 아들 뒷뜰에서 왔시오.
-울 큰마니 아들 잘 살고 있드나.
-그렇디요. 니얄 봄 큰마니 뵈러 온다 했수다.

내 저 약수 같은 강물에게 물어보았소.
-너는 어드메서 왔네.
-내레 큰마니 딸 앞뜰에서 왔시오.
-울 큰마니 딸 잘 살고 있드나.
-그렇디요. 니얄 봄 큰마니 뵈러 온다 했수다.

큰마니 죽지마오.
니얄 봄 곱게 화장해
내 저 리북 보내 줄테니
죽지마오.

2007-05-14 19:03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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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올해 18세로 경기여고 정민경 양의 시라고 한다...정희승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비견되는 천재시인의 탄생이라고 흥분했다는데...과연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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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7-05-1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생이요? 진짜 후덜덜이네요, 우와...

고니 2007-05-1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평도 올려주삼
 

 

    

 

 

 

 

 

다시 봄이 왔다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루 세 그루 갈라진 밑동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

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착지근한 혀,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었다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 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며 아우성치며 울고불고 머

리칼 쥐어뜯고 몸부림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돼지 목 따는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풀잎 아래 엎드려 숨죽이면 가슴엔 윤기나는 石灰層(석회층)

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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