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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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잉을 하는 트위터리안의 상당부분이 문인들이다보니 그들의 트윗에 많은 영향을 받곤 한다. 하지만 나도 나름 줏대 있는 인간인지라 아무리 그들이 황현산 평론가의 [밤이 선생이다]를 격찬해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면 그저 모르는 사람의 범주에서 평등하므로 그냥 미뤄두었다.

 

외출을 앞두고 지하철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시간이 있다. 책의 무게, 성향, 공공장소에서 읽기 적합한가를 고려하여 한 5분 정도 책꽂이 앞에 머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보내고 이 책이 가방에 들어갔다. 첫 글부터가 침이 꿀꺽 넘어갔다. '아니 이 분 내 스타일이잖아?'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문인이라도 죄다 팔로잉을 하지는 않을 터, 내 스타일에 맞는 글을 쓰는 분들을 팔로잉하니 그분들이 격찬하는 글이면 일단은 내 취향에 어느 정도 가깝다는 뜻이 될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첫 글에서 보여준 사회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태도는 1부 내내 계속 되었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첫 글에 쓰인 '자기 안의 무력한 분노'를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었다. 그는 불문학자이고 문학평론가이지만 그 이전에 이 시대를 사는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1부는 비교적 최근의 글이기에 이런 목소리는 요즘 많이 들어온 터라 이것이 지식인으로서 그의 됨됨이에 반하게 되는 계기는 되지만 아직 사랑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다 2부를 읽었다. 2부는 사진 작가 강운구의 사진을 찬찬히 분석하면서 그것을 사회의 문제로 확대하기도 하고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기도 하는 그의 유려한 글이 돋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진이나 그림에 관해서 너무 세세하게 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함이 반감되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문제는 3부이다. 3부를 읽으며 멀리는 1986년의 글과 가깝게는 2012년의 글이 있지만 대개는 2000년대 초반의 글이다. 그 글들이 어쩜 이리도 생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스스로가 책머리에 '결과적으로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고 하였지만 타인이 보기에도 참 신기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마침 이 책을 읽던 중에 철도노조 파업과 민주노총에 대한 정부와 경찰의 탄압에 대한 기사와 트위터들이 폭주하던 터였는데 책을 넘길 때마다 현재의 상황과 딱딱 맞는 것은 그의 글이 시대를 초월한 절대 진리라는 뜻인지 우리 나라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답답함을 연출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 둘 다 이리라.

 

그러나 영화는 80년대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이런 은유를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범죄를 감시하고 범인을 체포해야 할 경찰력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엉뚱한 곳에 배치된다. p203-204

 

정치는 자유로워야 하고 문화는 엄숙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이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아왔다. -「밤이 선생이다」p215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폭력이 폭력인 줄을 알지 못한다.-「밤이 선생이다」p231

 

글은 시간의 나열도 아니고 딱히 눈에 보이는 선명한 기준에 의해 나뉘어진 느낌도 아니지만(2부는 제외) 순서가 참 잘 어우러졌다. 황현산 평론가가 30년 전에 이런 책을 내고자 기획해서 쓴 것일리가 없을 테니 이 기획력 없는 글들을 추려 모아 [밤이 선생이다]라는 멋진 제목을 붙이고 이렇게 멋지게 배열하고 편집한 편집인들의 능력이 돋보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황현산 평론가의 글이 더 힘을 얻게 되고 나처럼 전혀 알지 못했던 독자도 앞으로 챙겨 읽도록 만들었다. 좋은 글이 좋은 책이 되었을 때의 기쁨을 알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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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3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셨을 책에서
즐거운 넋과 사랑을 얻으셨겠지요

그렇게혜윰 2013-12-23 21:43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이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