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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거절술 - 편집자가 투고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
카밀리앵 루아 지음, 최정수 옮김 / 톨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먼저 표지부터! 겉표지가 대놓고 거절의 편지봉투이다. 저렇게 겉봉투에 메시지가 쓰인 편지를 받는다면 어떨까? 으~~생각하기도 싫다. 겉표지를 벗기면 무척 빨간 표지가 드러난다. 피 튀기는 소설 거절의 99가지 패턴을 읽을 마음이 괜히 결연해진다. 그런데 부제의 '99가지 방법'이라는 표현과는 달리 실은 98가지 방법이다. 왜냐하면 99번째 편지는 거절의 편지가 아닌 감사의 편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99 가지나 98 가지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소설 거절술]은 소설가 카밀리앵 루아가 아마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거절의 편지 98통과 주소를 잘못 보내 원고를 받게 된 철물점 주인이 루아보다 먼저 소설가가 되었다는 편지 1통이 들어있다. 소설을 거절하는 편지들을 그저 마구잡이로 혹은 시간 순서대로 엮은 것이 아니라 루아가 직접 제목을 달아서 마치 소설을 거절하는 기술 98가지를 정리한 일종의 보고서 같은 느낌을 준다. 그 기술은 목차만 보더라도 정말 흥미진진하다.
소설이 퇴짜를 맞으면서 이토록 다양한 방법으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물론, 저자 카밀리앵 루아는 소설가가 되었고 이 책에 들어 있는 몇몇 거절의 편지들의 공도 없지 않을 것이다만 편지들을 읽고 있자니 이것을 유머와 풍자로 승화시킨 루아의 마음이 참 넓다 싶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을 내용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제 3자의 입장에서 읽다보면 굉장히 재밌는 편지도 있지만 어쨌든 당사자에게는 모두 거절의 내용이니 웃겨봐야 얼마나 웃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3자의 입장에서 인상적이었던 편지를 소개해 본다.
봉투를 열었더니 '탈락!' 두 글자 쓰여있을 때의 망연자실함이 느껴진다. 기대하고 칭찬의 말을 읽는데 돈 보내라는 요구가 이어졌을 때의 허무한 감정도 읽힌다. 게다가 어떤 답장에는 도리어 루아에게 "귀하께서는 무슨 용무로 저에게 편지를 쓰셨는지요? 아니면 제가 먼저 귀하께 편지를 보냈나요?--- 이 나이가 되니 중요한 일들을 자꾸 깜박깜박 잊어버립니다."라고 물어온다. 황당하겠다. 답장을 보내는 사람에 따라 희곡 스타일, 이야기 스타일, 시 스타일로 보내기도 하고 같은 거절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답장을 보내는 사람의 성격이 어쩌면 그렇게 다 드러나버리는지 편지의 힘에 대하여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이런 저런 내용과 형식의 편지 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흡족했던 편지가 있었는데 바로 '어쩌고저쩌고'라는 제목의 편지이다. 퇴짜에 더 이상 어떤 표현이 있겠는가 싶었고, 이 정도의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 출판사라면 그 책을 사랑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투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이런 편지는 받아본 바가 없어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읽으면서 왠지 투고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절이 달가울 리가 없겠지만 왠지 여기에 나온 패턴들을 읽다보니 이 책이 어떤 완충장치의 역할을 해 준 것만 같다.
아울러 이 책에 나온 '소설 거절술'을 비단 '소설'과 '투고'라는 범주 안에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절을 당하는지, 그리고 그 거절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거절도 어떻게 하느냐와 당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느낌도 천차만별이니 거절을 하는 기술도 한 번 익혀볼 만 하겠다 싶어진다. '거절'이 반드시 부정적인 행위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면 잘못 느낀 걸까?^^ "어쩌고저쩌고 해서 나는 너를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나의 이 어쩌고저쩌고를 이해해주길 바라~."라고 거절의 패턴을 살짝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