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8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체사레 보르자 : 내 기억에선 존재하지 않는 인물. 성별도 시대도 업적도 삶도 그 어느 것도 몰랐던 상태.

시오노 나나미 : 내 기억에서 그녀의 서양사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친다. 하지만 그녀의 에세이에서는 왠지 모르게 허풍과 자기 과시가 느껴져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던 상태.

 

이런 상태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를 읽었다. 인물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이름의 사내의 이야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이 제목을 누가 지었을까? 우아한 냉혹, 이 말은 체사레 보르자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야망이 있되 경망스럽지 않았고, 행동하되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그의 냉정함을 새삼 알게 해 준다.

 

서로가 속이고 있는 판인데, 상대편이 속고 있지 않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p158

 

교황의 아들로 태어나 그 보살핌 속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체사레 보르자는 과감히 선택하였다. 편안과 평화보다는 지배와 군림을 원했던 그의 삶은 그가 원했던 대로 누군가에겐 군주였고 누군가에겐 약탈자였으나 편안하거나 평화롭지 않았다.어쩌면 그의 삶과 죽음이 편안하고 평화로웠다면 그의 이름이 더 많이 알려졌을 수는 있되, 비극적 아름다움을 갖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 점을 시오노 나나미는 애정을 가지고 연구한 듯 하다.

 

어디선가 시오노 나나미가 체사레 보르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왜곡되게 쓴 것이라고 비판한 글도 있었지만 아무런 지식을 갖지 않은 내가 보기에 시오노 나나미는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여 쓴 것 같았다. 오히려 최근에 나온 책들보다도 더 깔끔한 글의 투가 돋보였다. 이 책이 1937년생인 시오노 나나미가 30살에 쓴 책이니 이미 45년도 넘은 책이라니 그녀의 생명력만큼이나 이 책의 생명력도 놀랍다.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체사레 보르자라는 인물을 45년이 넘게 전 세계에 기억하게 한 그녀의 필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서양사책은 매우 박진감이 넘친다. 복잡한 이름이 정말 많이 나오는 로마사의 이야기 세계에서도 책장을 열면 기필코 다 읽을 수 밖에 없는 그녀의 힘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에세이에서 적지 않은 실망감을 본 터라 그녀의 에세이를 더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남자들에게>는 좋았음) 그녀가 오랜 시간 공들여 쓴 서양사 이야기엔 다시금 빠져들 것 같다. 한길사에서 르네상스 저작집으로 나온 시리즈를 찬찬히 다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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