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

 

 

사랑의 기억은 왜 이렇게 단편적인지, 아니 기억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단편적인 것이겠지. 사랑할 즈음엔 그것에 몰입하느라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을테니 그 사랑이 끝난 후에야 주섬주섬 기억의 옷을 입으려해도 완전하지가 않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나'가 프란츠를 만나기 위한 운명적 계시였다. 그게 아마 오십 년 전 쯤인가, 아님 사십 년 전쯤인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프란츠르르 만났던 것의 전후관계도 확실하지 않지만  프란츠를 사랑했던 마음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딱히 인생에 풍랑이라곤 없었지만  죽기 전에 뜨거운 '사랑'만큼은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차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프란츠를 만났다. 젊지 않은 나이에 남은 생을 '사랑 이야기'로만 가득 채우려고 했던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무모해 보이지만 결국 그녀는 남은 생을 '사랑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사랑'이 아닌 '사랑의 이야기'로.

 

  동독에서의 삶은 어땠을까? 지금 북한의 삶보다는 나았을 테지만 무척이나 차가운 삶이었을 것 같다. 그런 삶을 뜨겁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중년의 여인에겐 '사랑'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행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는데, 이건 동독에 살던 사람이 통일된 독일에서 살게 될 경우의 심리와 유사할 것 같다. 뭔가 자신감이 없고, 피해자인 것 같고 위축되는 듯한 느낌을 그녀는 서독 출신의 프란츠를 만나는 내내 갖고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택했는데 상대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을 때의 상황에서 그녀는 절대적으로 열등하다. 그가 그녀에게 구체적 사랑을 주기까지의 시간이 그녀에겐 고통이었고, 그것을 돌이켜보는 수십 년 후의 지금도 그가 준 구체적 사랑의 결과물보다는 그 사이의 슬픔과 아픔이 더 큰 이야기가 된다. 결핍된 사람은 어느 한 순간도 구체적이지 않은 사랑에 배고픈 육식 동물이 된다는 것을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녀 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랑에 미쳐 본 사람은 안다. 상대를 얻기 위해 나 자신도 납득이 안되는 행동들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당신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데 당신은 나를 추상적으로만 사랑한다는 느낌을 가질 때의 불안함이 불러온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말이다.  돌이켜 보면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은 명백한 장면들이 분명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매우 용감하다.  그 사랑의 이야기를 오십 년, 혹은 사십 년 혹은 삼십 년 동안 반복해서 되새김질하다니. 어쩌면 지독한 사람이다. 지독한 사랑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날, 그녀는 죽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죽음을 택하지도, 평온을 택하지도 않은 채 고통스럽게 과거를 되새김질한 것일까. 그렇게 확실하지도 않은 기억들을 부풀리고 변형시켜가면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라는 말을 그렇게까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확인시켜야 했을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이지만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프란츠가 되어 곁에서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고,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고 싶다. 그녀가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으로 남은 생을 다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