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일 년에 한 번 쯤은....... 

 

  1년에 한 번 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일, 그 안부는 마침 서로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의 이야기, 그러나 내용의 거의 모두는 보내는 사람이 지어낸 하얀 거짓말. 나는 그래도 좋으니 일 년에 한 번 쯤은 그런 편지를 받고 싶다고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이야기는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1년~3년에 한 통 씩 보낸 편지와 화자인 은미의 이야기가 교차로 배열되어 있다. 고모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를 그렇게 은밀히 전해왔고,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그것을 신성한 비밀처럼 간직해 왔다. 그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그것을 신성하게 여기는 할머니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인데 그것은 그녀가 '노모(老母)'의 모습이 아닌 그녀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여느 처녀들처럼 새 삶에 적응하고 살아가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색깔이 있었다. 그것은 할아버지와는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색이었다.

  할머니가 환상과 꿈, 아름다움, 비극, 무지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할아버지는 적금과 등산, 단골손님, 소갈비, 독감예방주사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본문 52쪽)

 

고모의 편지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할머니는 고모로 인해 잃어버린 자신을 찾았고, 다시 잃을 뻔한 그 상실감을 편지로 고스란히 보상받았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고모는 나면서부터 그런 할머니의 상실을 보상해주어야하는 의무감을 직감하고 이제껏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의무를 수행해오고 있다. 우리에겐 누구나 나면서부터 누군가의 상실을 보상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나의 상실을 보상받고 있는지도. 어쩌면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상실을 보상하고 보상받는 그런 채무 관계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찬이가 고모의 상실감을 채워줄 날도 머지 않았다는 기대가 드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은미와 민아의 이야기는 심사평에서 여러 번 다루어지듯 고모의 편지에 비해 밀도가 약하다. 그런데 그 약한 밀도 덕분에 은미와 민아의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독자에게 스며드는 면도 있다. 고모의 촘촘한 편지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촘촘함을 무너뜨리는 것은 은미가 말하는 헐거운 이야기들이다. 그 헐거움이 나의 여백을 하나하나 채운다고나 할까? 은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실존적 인간으로서가 아닌 현실 세계의 사람으로서 꿈을 꾸게 한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은미와 여자가 되고 싶은 민이의 꿈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부딪치는 아주 일상적인 문제이지만 결국 그 끝은 고모의 편지처럼 촘촘한 문제와 다르지 않기에  이  교차서술 속에 나타난 밀도의 차이가 심사위원들의 우려와 달리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안녕을 말하며 고모는 할머니에게 달의 바다를 소개한다. 실상 달의 바다는 비와 습기와 폭풍우의 바다이며 밝은 노랑이 아닌 회색빛 투성이인 곳이지만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를 떠올리라고 당부한다. 그런 바다라면  할머니는 영원히 자신의 상실감을 채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고모는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처럼 사실 인간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을 테니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를 떠올리며 꿈을 꾸는 것만이 가장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 1년에 한 번쯤 내가 회색빛 달의 바다를 떠올릴 즈음, 촘촘하게 짜여져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도록 그렇게 나를 꿈꾸게 해 주면 좋겠다.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저 바라볼 뿐이죠. 하지만 이 세계가 오해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면 분명히 신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분을 향해서 큰 소리로 노래라도 불러드리고 싶어요. 지구를 벗어나면 우주, 또 우주를 벗어나면 무엇이 있을지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거든요.

(본문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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