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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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책의 두께에 압도당했다. 다산 정약용과 형제들, 다산 정약용과 정조 대왕의 이야기 아니면 다산 정약용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책들은 맞지만 그를 평생 따른 사람 '황상'에 대한 책은 이 책 이전에 만나보지 못했다. 사실, 황상(黃裳)이 황상(皇上) 이라고도 생각했으니 내가 얼마나 사전 지식이 없었는지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책은 철저히 다산의 제자로서의 '황상'에 대하여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물론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약용과 정학연(다산의 큰 아들)의 삶 역시 가벼이 다뤄지는 것은 아니나 '제자 황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황상은 아전의 아들로 과거를 볼 수도 있으며 과거를 볼 능력도 있는 사람이나 어쩌면 '삼근계'를 준 스승 다산보다 더 순수하게 '시'에 빠진 사람이다. 스승의 가르침에 감사해하며 자신의 입신양명이나 이득보다는 배움 자체에 대한 즐거움에 몰입한 그야말로 달인이라 하겠다.

 

이 몰입은 처음 스승과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선생님! 그런데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중략)-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중략)-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중략)-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생략)

 

황상은 열 다섯의 나이에 스승의 '삼근계'와 격려를 받고 '시'에 입문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저리 낮출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그 나이에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겸손하기도 하고 분수를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소심하기도 하였던 그에게 스승의 답은 그 어떤 가르침보다 그를 더 많이 알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황상의 이야기를 한참 읽다보면, 천민 시인 정초부가 떠오른다. 정초부는 천민이라 황상보다 더 여건이 어려웠지만 당대  양반들의 칭송을 두루 받았다. 정초부에게도 주인 여춘영에게 벗의 대우를 받으며 당시 재능이 있어도 펼치지 못한 수많은 천민들에 비해 좋은 여건을 가진 셈이었지만 그의 시와 별개로 그를 대하는 양반들의 낮은 시선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그에 비하면 황상에게는 다산과 그의 집안 사람들과의 끊이지 않는 교류로 인해  늦은 나이이기는 하나 인정을 받고 존대를 받았으니 어쩌면 그에겐 그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할만한 행복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남린의 소송으로 터를  잃고 궁핍한 삶을 면할 수는 없었지만 만년까지 당대 명사들의 서문을 받고 인정을 받았으니 겉은 궁핍했을지언정 속은 편안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정민 선생님의 한시 번역은 너무 아름답다. 번역된 부분만을 읽었지만 시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스승 다산과 제자 황상 그리고 정학연과 정학유, 혜장과 초의, 추사 형제 등등 많은 사람들의 시가 실려 있어 저마다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기울여 읽은 시는  스승이 돌아가시고 난 후 황상이 꿈에서 스승을 뵙고 나서 지은 시 몽곡(夢哭)이다. 

시를 지어도 어쭐 사람이 없는 허전함을 무엇으로 달랠까하는 먹먹함이 느껴진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사랑했고, 시를 사랑했다. 어쩌면 황상은 시보다는 스승과의 첫 대화에서부터 수많은 격려와 꾸짖음의 상황들 그 모든 상황들을 더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시는 현실을 살아가는 그만의 도구이자 그리움과 이상향을 동시에 다다를 수 있는 목적지였다는 생각을 해 본다.

 

혜장과 다산이 만나는 내용 끝부분에 이런 글귀가 있다. 이 글귀가 이 책에서의 모든 아름다운 만남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마지막으로 전해본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글에 정을 담아 편지와 시문이 오가는 장면은 참 아름답다. 혜장은 다산의 유배 생활에 잠깐 비쳐든 봄볕 같은 존재였다. (125쪽)

 

혜장은 다산에게 봄볕 같고 다산도 역시 그럴 것이요, 황상에게 다산도, 정학연도, 추사도 모두 그럴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서로의 생활에 잠깐 비쳐든 봄볕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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