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출간 20주년 기념 초판본 헤리티지 커버)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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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김영하 스타일의 소설은 아니나 가장 많은 인정을 받은 소설이다.  나 역시도 이 소설이 김영하 베스트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이 소설이 영화화되는 순간을 꽤 오랫동안 기다려왔었다. 처음 읽은 책이 초판본이니 꽤 오래 전의 일이고 당시 나는 이 소설을 읽은 후 이름 모를 감정에 매우 벅차올랐었다.  거기엔 작가에 대한 찬탄도 있고, 이종도에 대한 분노도 있고, 연수와 이정의 엇갈린 사랑에 대한 서글픔도 있었다. 꼭 다시 읽어야지 마음을 먹었었는데 드디어 몇 번의 개정을 거친 후에야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여전히 이 소설은 단단했지만 그때와는 조금은 다른 후감을 가졌다. 


어린 나이에 나는 연수가 피해자라는 생각에 많이 몰입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이자 황족인 이종도에 대한 분노가 너무나 커서 연수의 삶 상당 부분은 그녀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다시 읽은 [검은 꽃]에서 연수는 자신이 삶이 나아갈 방향을 비록 어긋나기는 했지만 이해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지금과는 분명 다른 삶이 될 것이라는. 이정과 얽히는 순간 그 이후에 일어날 인생의 변화도 예상했고, 권용준을 따르고 버리는 기회비용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뼛속까지 황족인 상태라 아들딸, 아내는 더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 또 이종도가 미워지지만 이번에는 이종도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을 테니까.


[검은 꽃] 이전에 [제시의 일기]를 읽었었는데 그래서인지 [검은 꽃]을 읽으면서 그 시대 우리나라 사람은 조선 땅에서 살든 중국땅에서 살든 멕시코에서 살든 피폐하긴 매 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슬퍼졌다. 얼마 전 아들 덕에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영화를 보았던 생각이 스며들면서 그게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는, 그 시대에는 소수의 나쁘거나 운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모두가 힘든 삶을 살았다는 데에 더 슬퍼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금의 이 지옥이야 그때에 비하면 천국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 기운이 좀 나기도 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된 것인가,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긍정적인가?


누구나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원하지 않는 부분의 비율이 얼마인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지금의 나도 어떤 부분은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의 영역이 있다. 그 영역에서 살 때는 썩 행복하지 않지만 그래도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검은 꽃]의 인물 중 스스로가 원해서 그런 삶을 산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시대에 노예로 팔려가는 삶에서 그런 삶이 있을 리가 없다.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무너졌다. 그 두 방향 모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삶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원치 않는 삶에서 아주 작은 부분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런 시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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