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의 세계 - 세계 석학 7인에게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를 묻다
안희경 지음, 제러미 리프킨 외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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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코로나 사피엔스]를 읽고도 그 안에 쓰인 의견들이 너무 옳고도 옳아 아껴가며 읽었었다. 그래서 사실 같은 주제로 인터뷰이만 달라진 이 책에 기대를 좀 적게 하기도 했다만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묵묵히 읽었다.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코로나 사피엔스]에도 실린 장하준.

책의 차례로는 세번째 꼭지였지만 [코로나 사피엔스]와 비교해보고 싶어서 가장 먼저 읽었는데 읽자 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인터뷰는 인터뷰어가 중요하구나!"였다. 사실 [코로나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가장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인터뷰를 꼽으라면 장하준 편이었다. 뭔가 옳은 말인데 당연한 말 같은 그런 말 있지 않은가?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번 인터뷰에선 꽤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는다. 내 생각엔 이것이 질문의 힘이 아닌가 한다. 질문이 구체적이니 답이 구체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닐까? 사실 [코로나 사피엔스]는 인터뷰어가 누구인지 기억나지도 않고 읽으면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이번 책의 가장 큰 완성도는 인터뷰어인 안희경이 만든 것이라고 이 책을 덮고난 지금도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제러미 리프킨. 이 사람은 나보다도 한국의 상황을 더 잘 안다. 일개 국민으로서 그저 '왜 그린 뉴딜 정책이 진행이 안되고 있지?'라고 의구심을 가졌을 뿐 그 내용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 분 인터뷰를 읽으며 우리나라의 재생 에너지는 그 양도 충분하고 그것을 발전시킬 경제적 여건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뭔가 눈 앞이 맑아지면서도 씁쓸했다. 그래, 우리 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잖아~ 그러니 태양광이 충분하겠지! 그걸 외쿡 사람한테 들어야 아는 거란 말인가? 외쿡 학자도 아는 것을 우리 나라 학자나 정치인들이 모를 까닭이 없고 다만 그것을 이익에 맞게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니 씁쓸하고 가슴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이분 참 사람을 잘 선동하겠군. 진실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들끓게 한다. 


제레미 리프킨이 그린 뉴딜 정책의 쌍두마차로 유럽연합과 중국을 치켜세우는데 이어 등장한 인터뷰이는 중국의 농업전문가 원톄쥔인데 그 역시 제레미리프킨과 마찬가지로 글로컬라이제이션을 주장했다. 지역 중심의 세계화라는 말이 알듯 모를 듯 했지만 코로나19 시국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대도시인으로 사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작은 단위의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들간의 연대가 중요한 시대가 다가왔다는 것에 괜히 조바심도 났다. 아직 우린 그렇지 못하니까. 지금 어느 나라가 준비가 되었겠느냐만 우리 나라가 K방역 말고 다른 쪽에서의 변화와 개혁은 많이 더딘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우리가 도대체 어디와 어디가 연대가 되어 있을까?


마사 누스바움은 코로나19시대의 혐오에 대하여 말한다. 혐오는 우리를 갈라놓지만 취약함은 우리를 연대하게 하여 오히려 지금 연대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일면 공감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혐오들- 신문 기사마다 달린 혐오의 글을 읽자면 정말 본인 보다 힘들지 않은 모든 대상에게 혐오를 뿜어내는 것 같다-을 보면 지금 우리의 연대는 혐오에 비해 얼마나 느슨한가 싶다. 정말 연대는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닐까? 이어지는 케이트 피킷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리 사회의 혐오는 불평등이 심해서 나타나는 불안감의 표시 같은데 이를 해소하려면 결국 기본 소득 보장과 같은 복지 시스템이 하루 빨리 마련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조급해진다.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만큼은 정말 더디고 더디니까...


지금 우리는 개혁과 변화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 속도가 예전과 같아서는 좀 곤란할 것 같다. 위기에는 위기에 필요한 일의 진행 속도가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말도 안되는 강짜를 부리는 목소리가 큰 나라이다보니 그것을 다 대응하는 것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개혁이 될 것 같다. 닉 보스트롬의 말처럼 우리가 시도한 모든 것이 배움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로부터 무조건 배워야하고(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배우듯이) 공자님 말씀처럼 익혀야 한다. 즉 써먹어야 한다. 지금의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든, 야생동물을 먹어서 그랬든 그 바탕에는 인간이 지구를 많이 아프게 했다는 죄의식을 느껴야한다. 그러므로 지구의 건강 회복을 위해 개인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획기적인 처방전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멍청한 사람은 GMO콩이 인간 몸에나 나쁜 줄 알았지 그걸 키우려고 아마존 열대우림을 다 훼손한 줄은 반다나 시바의 인터뷰를 보고서야 생전 처음 아니 개인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지금 다들 코로나19 탓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코로나19 덕분이라는 생각도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서 볶이느라 분노가 폭발하고 불특정 교사에게 다 퍼붓기도 하지만 일각에선 코로나19 덕에 내 아이의 모습이 어떤지 살펴보게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무너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어떤 자영업자들은 그간 억지로 이끌고 온 가게를 이참에 깨끗하게 정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탓만 해서 나아질 건 아무 것도 없다. 제자리 걸음도 힘들 것이다. 어차피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이다. 나처럼 어리석고 예쁜 쓰레기 많이 사는 사람은 반성해야 한다. 예쁜 쓰레기를 10%만 줄여도 지구는 덜 아플 거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만 보를 걷는 중에 목이 너무 말랐는데 편의점에 들르지 않았다. 페트병에 든 물이나 음료가 나를 엄청 유혹했는데 말이다. 그건 텀블러를 가져오지 않은 내 탓이니까 내가 힘들어도 할 말이 없다. 개인의 노력은 이런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공동체는? 개인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혁했으면 좋겠다. 내 생전 개혁이라는 말을 이렇게 기다릴 줄이야. 내가 얼매나 변화를 싫어하는데, 변화를 하지 않으려면 고산에 머물며 나물 뜯고 사람 안 만나고 살면 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건강한 개혁을 매우 간절히 바라고 있다. 건강한 인류는 건강한 지구 안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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