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꿈의 뉘앙스 민음의 시 268
박은정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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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에서 멈추었다.

 

그런데 선생님, 저는 이미

잃을 것도 없고 얻고 싶은 것도 없는

시간들을 투약한 지 오래예요

                                  -<영원 무렵> 중

 

이 시에서 '이미'라는 부사가 어찌나 슬픈지. 나의 시간들은 투약된 것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어떤 이는 '이미' 저 시간들을 투약한 스스로를 보며 그런 삶이 나뿐은 아니노라 위안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이미'라는 부사를 거부한다. '아직은' 투약하지 않겠다고, 투약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시집에 실린 시들은 슬픔을 넘어 아픔이 그득하다. 그런데 그 슬픔과 아픔이 아름답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하다. 여러 시들에서 느낄 수 있는 고독의 색깔을 밤이라고 부르고 그 안에 그려진 사랑을 꿈이라 부르는 뉘앙스랄까?

 

시인의 모든 경험과 기억과 감정을 관통하고 낳아졌을 모든 시어들은 느낄 때마다 함께 울고 아프다. 내 경험과 기억과 감정과는 분명히 다른데, 오히려 부정하고 싶은 감정들이 많은데 왜 나는 함께 슬프고 저릴까? 해석하기 쉽지 않아 때때로 이게 무슨 뜻이지 하며 곤란한 순간에서조차 시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게 된다. 왜 그럴까?

 

<산책>이라는 시를 보면 습관처럼 서로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연인이 등장한다. 아마 거기서 끝났다면 나는 이 시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았을 거다. 시는 두 연인의 습관을 해체하고 서로를 거칠게 마주 보며 길을 걷게 한다. 이런 현실직면의 요구를 읽으며 시인의 시가 슬픔을 관조하거나 아픔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로 보고 예민하게 바라 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나의 해석이지만. 

 

시인의 시를 완전히는 해석하지 못했지만 슬픔에 빠져 아이고 나 아프다 징징대는 것이 아니라 '모래를 무너트려서 모래를 쌓는 슬픔(<모래언덕슬픔>)'이랄까 <한 아이가 한 아이를 지우며>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아름답고 황홀했다. 시집의 제목처럼.

 

첫 시에서 가슴 한 방 세게 맞으며 도리질쳤던 그 마음이 유지될 거라 믿으며 시들을 읽어내려가면 어떤 땐 난해하게 느껴져 그 한 방이 그리워질 수도 있겠지만 책장을 덮고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읽어보면 그 한 방이 두 방 세 방 네 방 자꾸만 내 가슴을 건드릴 것이다.  시인의 '마음은 모래알처럼 사소하여(<라니아케아>)' 건드려야 하는 위치는 모조리 건드려버리니까 말이다.

 

달빛이 어룽거리는 얼굴이 있고

흩어지는 몸부림이 그린 선율이 있고

불가능한 철옹성이 무너지는 섬광이 있는

살아갈수록 경이로운 인생이에요.

                             -<고독의 첫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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