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읽어본다
장석주.박연준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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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반타작인 난다의 '읽어본다' 시리즈인데 특히 최근에 기대를 많이 하고 산 근간에 대해 큰 실망을 한 터라 그 여운을 지우기 위해 구간 중에 읽지 않았던 장석주 박연준 부부의 독서일기인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를 읽기 시작했다. 읽자마자 왠지 내가 박연준 시인에게 반할 것 같다 싶더니 읽는 내내 시인의 사랑스러움을 잔뜩 느껴버렸다. 서로를 JJ와 P라고 일기엔 칭하지만 제목이 실린 장석주 시인이 박연준 시인에게 보내는 메일에선 '연준'이라고 불렀다. 처음엔 제목이 너무 사극톤이라 뜨헉했었는데 메일 읽고 나니 세상 말랑한 제목이다.

 

  독서일기의 가장 큰 목적이 어떤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고 한다면 이번 독서는 아쉽게도 그 목적은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 점을 제껴두고 읽었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한도없이 추가되는 목록에 지친 탓이다. 그렇다면 그걸 빼고도 이 책이 무엇이 좋았느냐!  거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이 리뷰의 주 내용이 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건 두 시인이 에필로그에 썼듯이 일기란 자고로 몰아도 쓰고 쫓겨도 쓰고 잡담하듯 쓰는 것인데 그것을 애써 포장하지 않고 자연스레 썼다는 점이다. 살짝 살짝 드러나는 두 사람의 토닥거리고 살가운 풍경도 읽는 맛을 더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3:7의 비율로 박연준 시인의 글이 더 좋았지만 사실 초반엔 거의 1:9였던 터라 마지막에 붙은 플래그잇을 보고는 되려 의외였다. 나중에 그것을 옮겨쓰자 보니 옮긴 내용으론 또다시 1:9의 비율이다. 장석주 시인은 정말 부지런한 작가이다. 이 일기를 쓰는 6개월 동안 내 어설픈 셈으로만도 세 권의 책을 낸 것 같은데 그렇게 자주 내면서도 낼 때마다 설렌다고 말한다. 너무 베테랑의 느낌이 많이 나는 작가라 덤덤할 거라 지레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런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앞에서 박연준 시인의 사랑스러움을 말했는데 가령 이런 부분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전 해에 샀는데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정좌해서 읽으려고 일부러 안 읽고 미뤘다고 쓴 날이 있는데 그런 생각,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해본 생각일텐데 시인의 입에서 나오니 친근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느낌이 가득 든다. 사람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에는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때라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가진 박연준 시인의 강의나 낭독회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은 시인이 꼰대와 가장 먼 지점에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듯이 박연준 시인 역시 그렇지 않을까? 두 사람의 비슷한 점을 말하자니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는데 얼마 전 오은 시인이 인용한 글에서도 발견한 '말하지 않는 상태'를 이 책에서 박연준 시인이 쉼보르스카를 말하며 언급했는데 쓴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기에 썼지만 나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고?

 

  위시리스트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었다고는 하지만 박연준 시인이 연거푸 존 버거를 읽을 땐 나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음의 결이 바뀌게 되는 글을 쓴다고 했다. 결에 예민한 내가 아니던가, 명성이 두려워 아직 한 권도 만나지 못한 작가인데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긴 해 봐야겠다.  존 버거 뿐만이 아니다. 활동하고 있는 북클럽 시즌2를 맞아 내가 진행해야 할 도서를 정하는 데에도 이 책에서 세 권 중 두 권의 책을 후보를 내놓았다.(나머지 한 권은 얼마 전 읽은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결정했고, 아마 그 책으로 하게 될 것 같다만) 탕누어라는 대만의 문화비평가가 쓴 [마르케스의 서재에서]와 박연준 시인이 일기를 훔쳐보는 죄책감을 언급했던 실비아플라스의 책이 그것이다. 정말 염두에 두지 않아도 이렇게 굵직한 작가들은 그물에 걸리기 마련이다.  위시리스트보다는 블랙리스트(?)를 얻게 된 것도 기억에 나는데 두 사람 모두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가차없이 말하는 점이 맘에 들었다.  좋아하던 작가가 최근으로 갈수록 작품의 질이 떨어지면 대실망!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요, 대가로 불리는 시인도 자기표절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할 수 있다는 건 왠지 모르게 속시원했다.

 

 이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을 따라 나도 독서일기를 써 보았다. 그 흔적이 이 서재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작업을 한 후라 그런가 그 후에 읽는 이 시리즈는 좀더 밀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잘못 쓰여진 책 같은 느낌도 더 과민하게 받게 되고 잘 쓰여진 책에는 더 깊게 공감하며 읽게 된다. 누군가와 같은 작업을 동시에 하되 그것이 이렇게 상호보완적으로 된다는 것은 무척 달콤한 일 같다. 그 달콤함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졌다. 곧이어 나올 *과 **의 일기는 어떨까? 정말 기대된다. 아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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