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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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연작소설이라는 용어가 내겐 낯설다. 그간 연작소설은 읽어본 적이 전혀 없었던가, 그렇다면 연작소설이란 무엇인가, 황정은 작가의 경우 사랑스럽다말한 디디가 나오는 소설이 이전이 세번째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리즈 비슷한 건가, 가령 '셜록 시즌2'처럼 이 책은 '디디 시즌3'이 된다는 말인가? 이렇게 궁금했으면서도 일단은 그냥 읽었다. 다 읽고서야 네이버지식백과를 검색하니 대충은 맞은 거 같다. 

그러고보니 황정은 작가의 목소리는 알아도 소설은 처음이다. 집에 사둔 책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디디를 몰랐던게 당연하다. 알고 있었다면 더 풍성하게 있었을텐데 무척 아쉽다. 그래서 사실 좀 어안이 벙벙하다고 할까하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냥 나도 디디를 알고 있는 양 읽었지만 그런 느낌,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d가 느끼는 dd를 느끼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요즘 내가 양자역학을 공부(?)해서 그런가 dd의 부재를 표현하는 부분이 양자역학적으로 무척 잘 이해가 되더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d>는 앞선 연작을 읽고 읽는 것이 좋았겠다는 데에선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사랑은 그리고 삶은 아름다움관 거리가가 있는 적나라함이라는 생각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오늘도 나는 안간힘으로 하루를 시작했으니.

연작소설이 아니라서였을까? 아니 이 소설도 연작이었는데 여적 나만 몰랐던 건가???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더 이해하기 편했다. 디가 디디의 우산을 펼쳐주어 그 안에서 읽어서 그런가는 혼자만의 상상이다만 회고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이 소설은 황정은 작가가 펼친 우산 그 안에서 함께 어떤 사건, 현상을 보고 겪는 느낌이 들어 더 편했다. 몇 년 전 읽은 강병융 작가의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에서 복붙기법을 원없이 봐서 그런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기사들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관습을 벗어나기 위해 저항하는 황정은 작가의 삶의 태도가 직접적으로 느껴진달까? 나는 아직 김소리에 더 가깝지만 말도 안되는 상식이 통하는 이 사회에 불만을 넘어 저항이 필요하단 걸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그런 예는 너무 많아서 말할 수 없을 정도(오늘 아침에  3~40대 독거남자 지원 어쩌구저쩌구를 보곤 어처구니거 없었는데 그 기획의 기저에 있을 우리 사회의 상식이 뭘지 알아 더 어처구니 없었다)라는 걸 아니까 이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작가가 펼친 우산을 받아 나도 누군가에게 펼쳐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이번 소설은 조금은 어색한 만남이었지만 뜻은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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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2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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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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