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요란 푸른아파트 문지아이들 96
김려령 지음, 신민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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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려령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건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였죠. 참 좋은 책이에요.  그 다음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읽고 어쩌다보니 이분과 독자2명의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분 자체에 매력을 느꼈어요. 그래서 김려령의 세계에 입문합니다. 이후 [완득이], [가시고백],[우아한 거짓말] 등 청소년소설들을 찾아 읽곤 이분의 가장 매력적인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구나! 무릎을 치게 되죠. 그러다가 소설 [너를 봤어]를 읽고 몇날 며칠을 눈물바다를 이루며 먼 신촌까지 독자와의 만남을 가게 됩니다. 인터뷰한게 2011년, 독자와의 만남이 2013년이니 2년만이에요. 많이 울었다는 의미로 사인받을 때 드리려고 손수건 1장(한 세트도 아니고 ㅋㅋㅋ)을 사서 갔어요. 포장도 안한 채.....사인을 받으려고 손수건을 건넸을 때 이분이 저를 알아보시더라구요. 처음부터 알아봤다고 그 많은 독자들 사이에 있는 저를 말이죠. 아, 문학가란 이토록 섬세하구나...


이렇게 썰을 푸는 이유는 바로 저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이 동화책 [요란요란 푸른 아파트]를 꼽으셨기 때문이죠. 조회해 보면 첫 작품은 아닌데 제 기억으론 이 작품이 처음 쓴 동화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부족하긴 하지만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장담할 순 없네요.그래서 위시리스트에 항상 있었는데 그 마음 먹고 출간된 소설 [트렁크]는 읽어도 이 책은 모셔두기만 한....이래서 책은 다 때가 있다며 아무튼 이 책을 읽게 된 경로였습니다.



40년된 푸른아파트의 1,2,3,4,상가동이 화자입니다. 사람들을 지키려다 벼락을 맞고 치매가 온 1동, 주인공 기동이가 살게 된 2동, 기동이가 낙서한 3동, 주거인 못살게 구는 4동, 참견많고 잘난 척 좀 하는 상가동 그리고 주변의 새 아파트들 중 푸른 아파트와 가까운 미래1동의 대화와 관찰을 통해 동화가 진행되죠.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재개발이라는 것에 익숙할 테니 공감이 갈만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면도 잘 드러나고요.


작가는 어린 시절 물건들을 사람처럼 대했던 할머니와의 경험이 이 동화를 쓴 바탕이 되었다고 해요. 저도 물활론적 사고를 하는 편이라 공감이 갔어요. 아파트들의 대화라고 하니 왠지 우리 집 아파트도 어디선가 나를 흉볼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집이라는 게 한두해를 살아도 정이 드는데 자그마치 40년을 살았다면 진짜 사람같이 여겨질 것 같아요 기동이네 할머니가 그렇죠.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집도 죽은 집이 있고, 살아 있는 집이 있어야. 요 아파트는 살아 있는 집이여. 한 번도 빈 적이 없었다니께. 집은 사람을 보듬어 주고, 사람은 집을 보듬어 주면서 같이 사는 거여."


"음마, 너,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문 맘이 편안하지 않냐? 같은 바람이라도 우리 집에서 맞는 바람 다르고 넘의 집에서 맞는 바람이 달라야. 요것들이 그저 덩그러니 있는 거 같아도 다 보고, 지켜 주고, 챙겨 준다니께."

- 65쪽


  이 말을 들은 아파트들은 정말 행복했을 것 같네요. 더 새 아파트, 더 큰 아파트, 더 브랜드 아파트를 자랑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집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게 할 것 같아요.


이 책의 주인공인 기동이는 아빠 엄마가 돈 버느라 잠시 할머니집에 맡겨서 푸른 아파트에 입주해요. 그 전에도 전학을 많이 다녀서 시비를 거는 주환이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지만 그건 이 아이가 살아남는 방법이라 생각하니 맘이 아팠어요. 오해를 받게 되니까요. 그런 주환이의 진가를 알아보는 친구들과 달리 어른들의 모습은 참 부끄럽지만 현실적이죠. 그런 기동이에게도 꿈이 있어요. 만화가가 되는 거죠. 우연히 들른 4동의 만화가 아저씨 집이 자기가 평소에 존경하던 만화가였다는 설정은 동화니까 가능하겠지만 그 아저씨의 모습이 또 되게 현실적이죠. 돈 때문에 괴담 만화만 그리거든요. 김려령 동화의 강점은 인물들이 곱게만 그려지진 않는다는 거예요. 좀 찌질하달까? 팍팍한 삶의 무게를 이기는 인물들이 현실감이 있어요.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이 동화에선 인물+건물)들의 시선이 다양한 점도 참 좋아요. 가령 만화가가 되려는 기동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죠.


"어이구 집도 가난한 게 무슨 만화 타령이야. 할멈이나 돕지."

"가난하면 꿈도 못 가져? 쟤가 만화를 얼마나 잘 그리는데. 넌 그렇게 계산적으로만 사니까 아파트들이 싫어하는 거야."


"둘 다 그만 해. 계산이 정확한 게 나쁜 것도 아니고, 기동이가 꿈을 가진 것도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오히려 잘 됐지. 솔직히 할멈을 잘 도와주지 않아서 나도 좀 그렇지만, 이것저것 사 달라고도 안 하잖아. 그냥 연습장에 그림 그리면서 연습하는데 그게 뭐가 나빠."

-142-143쪽


전 이번에 이 책을 꺼내 읽으면서 두 번 연속으로 읽었어요. 일단 술술 읽히니까 빨리 읽어서 여유가 있었지만 다시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김려령 작가의 동화는 결코 밝고 행복하고 구김없는 내용만 나오는 예쁜 동화는 아니에요. 그래서 좀 거칠게도 느껴지고 어두울 수도 있죠. 청소년 소설은 좀 그런면이 강하고 소설은 맘 놓고 쓰실 것 같은데 동화에선 마지막엔 늘 따뜻함이 느껴져요. 유머가 있는데 그 유머를 애들이 잘 이해할란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ㅋㅋㅋ 솔직히 말하자면 어른들이 더 재밌게 읽는 동화가 아닌가 싶어요^^ 요즘 저 사는 곳 주변도 죄다 포크레인에 크레인에 허허벌판 막 이래서 그런가 전 유난히 더 공감이 가며 읽었습니다. 우리 아파트도 30살이 넘었는데 그래서 막 물 새고 그런데 아직 겉보기엔 멀쩡하네요. 아직 10살 더 먹어야 푸른 아파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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