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반다나 싱 지음, 김세경 옮김 / 아작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도 소설에 성공한 적이 없었던 지라 사실 이 책을 보고도 큰 관심을 갖진 않았다. 더구나 SF소설이지 않는가? 그런데 최근 나는 [스테이션 일레븐]이라는 종말 소설을 읽었던 참이라 하드한 SF가 아니라면 더구나 그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면 읽어도 좋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유명한 SF작가들의 이름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지라 이 책의 추천사에 실린 '어슐러 K. 르귄'이라는 이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인도의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하니 이는 어쩌면 현실을 비판한 페미니즘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첫 단편은 그런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줬다. 본격 SF소설은 아닌, 오히려 페미니즘 소설에 가까운, 어쩌면 작가 자신이 SF 소설을 쓰게 된 당위성을 보여준 이야기로 보였다. <허기>라는 제목도 그런 그녀의 갈망을 고스란히 느끼기에 좋았다. 다음의 구절은 그런 느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상이 매우 기이하다는 그녀의 깨달음을 SF는 그 어느 때보다 잘 반영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SF 소설은 무척 난해한 방법으로 위대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는 걸, 문학에 심취한 속물들을 속이고 무심한 독자들을 불러 세우기 위해 설계된 일종의 암호라는 걸, 그녀는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36쪽)

표제작인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에서도 그렇고,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 델리의 삶을 냉소적으로 그려낸 <델리>에서도 그렇고 작가의 SF 소설은 무척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SF적인 상황들은 그러한 현실을 대체할 안식처로 제안되기도 한다. 인도의 여성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넘어 이 세상을 사는 모든 비합리적이고 불평등적인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SF 소설은 낯선 장르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에 낯설다는 말이 지금의 상황에서 적합한 말은 아닐 것이다. 순수 문학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반다나 싱의 소설에서 현실을 벗어난 많은 인물들을 보며 그 비현실이 과연 진짜 비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사면체>에서 마야가 오빠에게 쓴 편지에 '만약 사면체가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벗어난 거라면? 경험해 보지 않고서 어떻게 그걸 이해할 수 있지?'(285쪽)라는 말이 나오는데 비합리적이고 불평등한 현재의 삶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말로 읽혀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알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이 소설이 SF소설이라고 하는데 과학적이기 보단 수학적인 지식이 더 인상에 남을 정도로 작가의 수학적 지식이 인상깊었다. 그 결정판이 <무한>일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단편들의 인물들이 가지는 특별함이 왠지 타당성이 있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만 아직은 내가 SF에 완전히 적응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작품들은 집중하기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으로 볼 때 이 소설집은 참 아름답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슬프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멈칫하기도 하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