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리 편지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 24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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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은 그 책의 작품성과 재미를 떠나 내게로 오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체로 비자발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 역시 그랬다. 결론적으로 흐지부지 되어 결국 두세반 정도만 이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은 2학기 들어 학년에서 정한 온책읽기 도서였다.

 아이들에게도 이 책은 익숙했다. 4학년 때 국어 시간에 일부를 읽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마 한 시간에 지나가듯 읽었으리라. 이 책을 두 달 가까이 함께 소리내어 읽으며 느낀 점은 짜임새도 좋고 이야기도 재밌어 그때 읽고 더 읽은 아이도 있을 법 하건만 씁쓸하게도 이 책을 다 읽은 아이는 없었다. 그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이 함께 읽기에는 출발선이 같아 효과적으로 진행되었지만 학교에서 발췌본이나 축약본이 아닌 온책읽기가 필요하다는 까닭을 느끼게도 되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정의공주 일화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 의견으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것과 달리 집현적 학자들이 거의 관여를 하지 않고 세종 개인의 업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 책이 출간될 당시 보다 요즘 더 공감을 얻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의 초반에 토끼 눈 할아버지로 만나 장운에게 한글을 알려주고  결말에 세종으로 다시 만나 한글을 익히고 알리는 장운에게 힘을 얻는 세종의 이야기가 가난하고 미천한 신분의 장운이 꿋꿋하게 일어서는 이야기와 맞물려 감동과 생각거리를 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인데 소리내어 돌아가며 읽고, 중간 중간 끊어가며 작은 활동들을 하며 읽다보니 그 감동과 생각이 더 길고 깊게 이어졌다.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낯선 언어를 익혔다. 소리 내어 읽다보니 엣 한글을 처음 읽을 때에는 어색한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읽을 줄을 몰라 난감해할 수 밖에 없었다. 영어보다 낯선 언어인 셈이다. 그러다 몇 번을 반복하다보니

정도는 너끈히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옛 한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왜 '여린ㅎ'을 사용하는지부터 한글을 사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며 막연하게 느끼던 한글의 위대함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신분의 차이나 친구들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흥미로워했지만 그보다 더 나아가 지식인들의 이기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기회도 가졌다.

 

 

마지막 모둠 활동을 앞두고 개인적인 독후감을 쓰는 시간을 갖는데 늘 그렇듯 아이들은 자기들이 뭔가 힘든 일을 할 때 그것을 하지 않는 선생님이 샘이 난다. 다른 때 같으면 "선생님은 준비하는 사람이지 너희들과 같이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니다."는 말로 일축했겠지만 독후감 쓰는 것이니 푸념을 듣기 전에 자발적으로 함께 쓰기 시작했다. 역시 1시간 내에 쓰는 것은 무리야. 그러니 남은 부분은 숙제로 내 주며 나 역시 남은 부분을 아이들이 가고 난 후에 마무리 짓는다. 서로 다른 판본을 가지고 소리내어 읽으며 동시에 "어, 띄어쓰기가 안 되었네?"라고 누군가가 하면 "내 책은 괜찮은데?"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표지 그림에 등장하는 소녀가 난이인지 덕이인지 묻는 말에 가운데 한 쪽을 펴서 난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기도 하고 함께 읽는다는 것의 소중함을 또 한 차례 느낀다. 아직도 '갈매기 =소르바스'를 기억하니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이 시간들이 쌓여가는 것이 좋다. 세종의 마음도 그렇게 사람들 마음 속에 하나하나 쎃여 지금의 한글이 되었으리라.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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