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매일 아이들을 마주하는 직업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보다는 많이 어리고 지역 특성상 아직은 세상의 때가 덜 묻은 고운 아이들이긴 하지만 10여년 전을 떠올리면 많이 변한 것이 느껴지는 '요즘 아이들'이긴 마찬가지이다.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갖고 있다는 '아몬드', 즉 편도체가 작동하지 않는 윤재가 감정을 느끼고 공감을 하며 친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서 그 '누구나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분명히 우리의 몸에 내장되어 있고, 그것은 고장이 나지 않았는데 과연 우리의 그것은 윤재의 그것보다 더 잘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10여 년전을 떠올려 본다. 그때 아이들은 지금의 아이들보다 더 거칠었다. 교실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것을 제지해도 순간적으로 제지가 안되어 몇대를 더 주고 받고도 씩씩 거친 호흡을 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가끔 PC방이나 남의 학교 운동장에서 맞짱을 뜨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잔소리처럼 들릴 주의를 주고나면 어떨 땐 눈물까지 흘리기도 하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선생님이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골골대면 안타까워하고, 친구의 진심어린 고백에는 놀리지 않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부모도 그러했다. 자신의 아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때린 자기 아이보다 다친 아이를 더 걱정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떨까? 요즘 아이들은 대체로 몸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PC방에 가는 아이도 거의 없고 게임이 하고 싶으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더 선호한다(물론 초등학생이라서). 살짝 꼬집고 꼬집힌 것으로도 얼굴을 붉히고 잘못을 했다고 인정을 하고 큰 잘못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게 진짜 감정일까? 아니면 윤재가 엄마에게 배웠듯 암기하듯 배운 반응일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끔 학교폭력이 발생할 때 오가는 공기의 무게와 혼탁함도 떠오른다. 처벌은 하지만 그것을 약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것을 강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 간의 신경전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준 것을 미안해하거나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앞서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우리의 아몬드는 제대로 작동하는 것일까?

   윤재는 본 것이다. 곤이의 아몬드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격렬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도라와 심박사, 그리고 엄마와 할멈에게서도. 하지만 지나쳐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윤재는 발견할 수 없었다 제대로 작동되는 아몬드를. 태생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편도체를 발달시키기엔 윤재가 본 사람들의 마음은 그것이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니 더 못한 그저 더 달고 다닐 뿐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곤이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리만큼 그렇게 큰 공이 들어가야 한다. 마음은 마음으로 얻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기본적인 방법을 잊고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아이를 키운다 우리가. 할멈이 愛를 쓸 때가 떠올린다. 그 한 자를 공들여 쓰는 순간을 떠올린다. 愛는 그렇게 애써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작가는 출산을 하고 얼마 안되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태어난 아기를 보며, 동시에 공중에 떠도는 '요즘 아이들'에 대한 나쁜 소식들을 접하며 내 아이가 자랄 세상에 대하여 걱정해보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커 갈수록 그 걱정은 커져만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숨만 나온다. 피하고도 싶어진다. 그럴 때 윤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믿고 싶다. 그것이 비록 비현실적일지 몰라도 그렇게 믿고 싶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른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는 데에 이 소설이 아몬드보다는 큰 역할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묵직한 구절>

 

생각해 보면 할멈이 엄마에게 바란 것도 평범함이었을지 모르겠다. 엄마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박사의 말대로 평범하다는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81쪽)

 

언젠가 공을 들여 '愛'를 쓰고 있는 할멈에게 엄마가 물은 적이 있다.

-근데 엄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예쁨의 발견.

愛의 윗부분을 쓴 할멈이 가운데 마음 심(心) 자를 써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 이 점들이 우리 셋이다. 이점은 내 거, 요건 너, 이건 재!

(160-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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