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주부터 남편과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는 그룹전이 대전 시내(? 대흥동을 지금도 시내라고 불러도 좋을지?)의 한 갤러리에서 하고 있다.
최근 개인과외를 하게 된 중2의 남자아이가 11시 30분쯤 문자를 보냈다.
갤러리 앞에 와 있는데 언제 오픈하냐고?ㅜㅜ
갤러리 문이 보통 10시 30분 정도 열리는 걸로 알기 때문에 좀 늦은 시간이라
관장님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어제 전주에 가서 밤 늦게까지 술 마시고 얘기하느라 늦게 일어나시게 되었다시며
거의 다 왔으니 다른 갤러리 구경하다가 오라고 전해달라신다.
학생에게 전화하니 엄마와 함께 왔단다. 엄마를 바꾸라고 하고선 관장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사실 남편의 전시회 오프닝 날이 그 학생을 처음 가르치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두 군데 다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학생의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프닝에 참석했는데 지나가는 말을 기억하시고 아들과 함께 전시회를 찾아주신 거다.
개인전도 아니라 막 알리고 그럴 것도 아니었는데,,,좀 미안하기도 하다.^^;
2. 우리는 교회가 끝나고 아이들 다 끌고서 갤러리로 갔다.
갤러리 안에 모르는 얼굴을 한 사람이 앉아 있어서 관장님의 친구인가?하고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더니 갑자기 영어로 말한다.
인사를 나누며 그 사람이 함께 전시회를 하는 일본인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전에 좀 배웠던 일본어로 다시 인사를 했다.
엉터리라도 일본어로 인사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일본인이 내 일본어가 엉터리라고 말할 리는 없다.
어쨌거나 일본어 대화는 인사에서 그치고 우리는 영어로 대화할 수 밖에 없었다.ㅜㅜ
그는 일본인치고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 그의 배경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꽤 열심히 작품활동을 하고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를 연 사람이었다.
영국에서 살았다며 아이패드에 저장해 놓은 영국에서 살던 집과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딸이 하나 있는데 아빠와는 달리 귀엽고 통통하면서 생기발랄해 보였다.
영국에서 25년 전에 부인과 함께 살았는데 25년 후인 작년 겨울에 그 집을 찾아 가 보니 그대로였다며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 일본은 그나마 영국처럼 개발을 잘 안 할 것 같은데,,,
한국이었다면 흔적도 찾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3. 우리가 그 일본인과 사진도 찍고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후줄근한 모습의 관장님이 3층에서 내려오셨다.
지금까지 갤러리에 계셨던거였다!!!ㅎㅎㅎㅎㅎㅎㅎ
일본인에게 갤러리를 지키게 하고선 본인은 3층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던거다.ㅎㅎㅎ
정말 나 같은 사람으로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손님 접대이다.ㅎㅎㅎㅎ
어떻게 머나먼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 더구나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에게 갤러리를 맡겨 놓고
자기는 2층도 아닌 3층 사무실에서 작업하고 있을 수 있을까???ㅎㅎㅎㅎ
정말 관장님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 웃었다. 내가 막 웃으니까 쑥스러우셨는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셨다고 여러 번 말씀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더 크게 웃었다.
관장님의 잠자고 나온 것 같은 머리와 옷매무새가 더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암튼 우리는 올해 11월에 그 갤러리에서 남편의 개인전을 하기로 했었는데
남편의 작업이 길어져서(워낙 꼼꼼한 사람이라 일 년에 2~3개 하는 게 어렵다.ㅠㅠ)
목원대 계시는 어느 교수님이 하시기로 결정 났다는 말씀을 하시며
올해는 전시회 일정이 꽉 찼다는 말씀을 하셔서
내가 "어머, 그럼 이제 갤러리가 흑자로 돌아서는 건가요? 직원도 구하시고??ㅎㅎ"라고 했더니
관장님 말씀이, "제 갤러리는 늘 노른자에요. 문제는 제가 작가의 그림을 팔지 못해서 작가들에게 폐를 끼쳐서 그렇지."
그 순간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내가, "어머 안타까워요. 저라도 그림을 팔아 드리면 좋겠어요."
정말 관장님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안타까워서 한 소리인데
갑자기 관장님이 그 순수한 눈을 반짝이시며
"그럼 사모님이 저희 갤러리 큐레이터가 되어 주시겠어요?"
그러시더니 갑자기 의자에 앉으라시며 서랍을 열더니 중이와 펜을 꺼내 주시며
이름, 한자 이름, 영문이름,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를 적으라신다.
"왜요?"하니까 "큐레이터를 하려면 명함이 있어야 하잖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농담을 하시는 분이 아녀서 정말 진지하게 부탁하시는 건데,,,난 정말 그런 일 못해요.
남편도 옆에서 "이 사람 그런 일 정말 못해요. 다른 일도 못해요."라고 말했는데도
나를 예전부터 점 찍어 놓으셨는데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셨던 것처럼 막무가내 시다.
이름 등을 적어 놓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명함 나오면 정말 큰 일이다.
큐레이터에 관련된 책이라도 찾아서 읽어야 하는 건지.ㅠㅠ
4. 그제부터 마이클 더다 아저씨의(정말 내 아저씨였으면 좋겠다. 오픈북 때문인지 그에겐 엄청 친근감을 느낀다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읽고서 40 자평 달았던 것을 찾아보니
"고전의 강렬한 재미를 제대로 알려주는 기막힌 책!"이라고 달아놨다. 내가.
다시 읽으면서 느낀 느낌도 그 40 자평과 다르지 않아서 그랬는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내가 정말 마이클 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마이클 더다의 이 책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정말 감동한 것은 이 아저씨는 언제 그렇게 많은 책을 다 읽었을까?
클리프트 패디먼의 [평생독서계획]을 12살에 거의 훔치다시피 해서 습득한 후 거기에 나온 책들을 다 찾아서 읽었다고 하고 자신의 책을 [평생독서계획]의 속편으로 생각해 달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다.
물론 전공이나 직업이 늘 읽는 거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마이클 더다 보다 더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 사람만큼 읽은 책을 잘 정리해 놓은 사람은 패디먼말고 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투성이니까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 어딘가 구석구석 박혀 있겠지.
어쨌거나 마이클 더다가 패디먼보다 더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책의 내용도 더 친절하다.XD
5. 박경철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봤는데
한 동안 잠을 20분 정도 잔 적도 있단다!!!!@@
바쁘게 사는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사는 줄은 정말 몰랐다.
사람이 어느 정도 잠을 못 자도 겉모습에 잘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매일 보는 사람이 아니니까 신문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을 신경 써서 보지 않은 까닭도 있겠다.
암튼 기사에는 최근 출판하는 책에 대한 언급이 살짝 되었는데 오늘 알라딘 <새로 나온 책>을 살펴보니
그의 책이 제일 최근 책으로 올라와 있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20분 정도의 수면을 취하고 산 적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쓸 만한 책의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라딘 책 소개를 보면
이 책은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후회를 담은 시행착오의 기록’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그의 치열했던 고뇌의 기록인 동시에, 청년들과 나눈 소통의 흔적이며,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아인식, 사회비판, 책읽기, 글쓰기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이 책은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들과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박경철과 같은 사람도 시행착오를 했고 하고 있다니 좀 마음이 놓인다.
아직 그의 책을 읽지 않았고 또 앞으로 읽게 될지도 의문이지만
그가 20분을 자고 생활했다는 기사를 읽은 뒤로 베개에 머리를 뭍을 때마다 20분이 떠올라 불편했다.
하지만 어쩌면 박경철이나 안철수나 마이클 더다나 클리프트 패디먼, 스티브 잡스,,등등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분명하니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겨우 잠이 든다. 나는 그저 그 사람들이 쓴 책이나 읽어 줘야겠다. 다는 못 읽더라도 읽을 수 있는 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