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말미에 나오는 애니 프루의 작품 해설을 읽다가 새비지의 작품들에서 풍경이 단지 배경 장식이 아니라고 하면서 윌라 캐더, 마저리 키넌 롤링스, 월터 디 에드먼즈, 윌리엄 포크너, 플래너리 오코너, 존 스타인벡,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거의 모든 작품들에 깊이 밴 장소성에 맥을 같이 한다는 글을 읽고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대신 <윌라 캐더>의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를 먼저 읽으려고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여기 언급이 된 작가들의 책을 하나하나 읽자는 야무진 결심을 하고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를 시작했는데 번역 때문인가? 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 같아서 프롤로그 읽다 말고 <언어가 삶이 될 때>를 골라서 읽고 있다. 아무래도 <엔드 오브 타임>은 5월에 읽게 될 것 같으다.^^;;
아침 일찍 (새벽 5시 30분 정도)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해든이를 친구들이랑 낚시 여행 보내 놓고 남편이랑 다시 늦잠을 잤다. 아침을 챙겨줘야 하는 아이가 없다는 건 이렇게 늘어지게 침대에서 뒹굴어도 되는 거다. 남편은 원래가 좀 부지런한 사람이라 침대에 오래 누워있지 못하는데도 토요일이고 막내도 없고 해서 거의 9시 30분이 넘어서 일어났고 나는 오후 5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해든이 데려다주고 남편과 침대에 누워서 다시 자려고 하는데 남편이 어제 코스트코 가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준다. 어떤 아주머니가 코스트코에서 물을 샀는데 너무 무거워서 낑낑거리며 도와줄 사람을 찾으며 두리번거리는데 자기에게 부탁을 안 하더란다. 그래도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그렇잖아도 부탁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짐도 많고 그래서 부탁하지 않았다며 미안해하더란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검색을 해서 그런지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하는 거다.
나: "검색?" 그게 무슨 말이야?
남편: 응, 머리를 검정색으로 염색을 했다고.
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면 검정색으로 염색을 했다고 해야지 검색이 뭐야.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남편: 한국사람들 뭐든지 줄여서 말하잖아. 그래서 검정색 염색을 줄여서 검색으로 말해도 되는 줄 알았지.ㅎㅎㅎ
나: 기발하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면서 남편이 가끔 한국말을 이렇게 하면 너무 재밌다고 해줬다. 너무 웃기다고. 그랬더니 자기가 또 언제 그랬냐고.ㅎㅎㅎㅎ 그래서 내가 적어 논 것이 몇 개 있는데 나중에 찾아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이 들어도 즐거움을 주는 남편의 귀여운 짓. 언어를 잘 구사할 줄 알아도 언어가 삶이 되지 않아서 그런가?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도 계속 꾸준히 한국어를 사용하는 남편이 귀엽고 기특하다.ㅋㅋ
지난 19일에 내가 열심히 돈가스랑 치킨 파머자나(Chicken parmigiana)를 잔뜩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뒀는데 그거 꺼내서 에어 후라이어에 넣어서 튀겨서 먹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맛있어서 혼자 또 자뻑의 시간을 가졌었다는.ㅎㅎㅎㅎ
돼지고기 안심(?)을 저 두꺼운 망치로 고기들을 부드럽게 만든 후 계란이랑 빵가루를 묻혀서 기름종이를 사이사이에 끼워 넣고 지플락에 넣어서 냉동실에 저장하면 끝.
너무 흐뭇해서 포트레이트 기능으로도 찍어봤다는.ㅋㅋ
한국어 제법 잘하는 남편에게 파마잔(Parmesan)치즈를 사 오라고 시켰더니 언어 머리는 있어도 요리 머리 없는 남자는 갈아 논 것 안 사 오고 통째로 사 와서 열심히 갈아서 썼다.ㅠㅠ
온 가족이 두 번은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잘하면 3 번?
돈까스는 더 많이 만들었다. 우리 집 남자들이 다 좋아함.
어쨌든 이렇게 성공을 해서 그런지 자신감이 생겨서 다음번엔 피시 앤드 칩스에 도전하기로 했다는.ㅋㅋ
언어도 이런 것이 아닐까? 돈가스 잘 만들게 되면 그다음에 치킨 파머자나에 도전하고 그다음에 또 다른 것에 도전하는 것처럼?
사고 싶은 핸드백이 생겨서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었다. 내가 결정을 못 하고 있으니까 직원이 "블랙핑크의 리사가 드는 거 사람들이 따라서 들고 다니기 좋아한다."고 하는 거다. 나는 리사도 모르고 블랙핑크도 모른다고 했더니 벙찌던 직원. 도대체 블랙핑크의 리사가 누구야? 이러면서 검색해 봤다. 한국의 걸그룹이구나. 처음 봄. 하아~.
BLACKPINK - How You Like That
책 한 권을 더 샀다. 알라딘 책소개 페이지에서 읽은 이런 글에 혹해서.
왜 자꾸 열심히 하고 싶은지, 더 오래 더 멀리 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쓴다.
-알라딘 저자 소개 중
아! 나는 블랙핑크의 리사처럼 나이가 어리거나 발랄하지도 않은데 저런 이쁜 백 들고 다니고 싶고,
이 책의 작가인 염지원 씨처럼 젊은 혈기가 남아있는 사람도 아닌데 왜 자꾸 열심히 하고 싶고, 더 오래 더 멀리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왜 멈추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 왜 자꾸 이런 책에는 어떤 글이 담겨 있을지가 궁금할까? 나는 왜? 자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