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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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두번째 소설이다. 어릴 때 어떻게 손에 들어온 세월이라는 소설은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으나, 작년에 읽은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버지니아 울프의 깊이에 탄복했다고나 할까. 그녀의 소설은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주인공들의 심리묘사에 탁월한데,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소설전체의 흐름을 잃고 길을 헤매게 하는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등대로는 댈러웨이 부인을 출간한 해에 구상을 시작해 1927년에 출판한 소설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의 심경과 그 주변인물들의 심리묘사를 이어지듯 해 내는 단 하룻동안의 일이라면 등대로는 조금 더 긴 시간을 묘사한다. 주인공으로 보였던 램지부인이 전반부 “창”
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후 2,3부에서는 릴리라는 주변인물이 주인공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을 릴리라는 인물로 설정한 듯 한데, 평론가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일종의 버지니아 울프의 부모에 대한 살풀이 굿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사춘기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평생을 신경쇠약과 정신병에 시달렸던 그녀에게 부모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이 소설을 통해 남성중심의 가족제도가 폭정과 억압이라는 강렬한 비판을 전개한다. 그리고 오롯이 홀로였던 주인공 릴리의 심경을 통해 여성의 독립이 얼마나 위태롭고 어려운 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음침하나 햇빛이 잘 드는 우거진 정원을 가진 시골의 한적한 저택을 떠오르게 한다. 아침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닷가의 집같고, 늘 손님들이 북적여 그 뒷치닥거리로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시골 유지 집의 마나님과 그 하인들의 바쁜 손놀림을 연상케 한다. 티 테이블에 모여 시간을 축내며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사람들의 매캐한 담배연기 속에서 뒤켠으로 물러난 그 집의 많은 아이들이 계단에 앉아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내가 전문적인 영문학 평론을 할 수 있는 깜냥이 되지 않으니 이 소설에 대한 평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녀의 소설은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찾을 것이며, 그리고 그녀의 소설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 스스로 많은 자료를 찾아볼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평범한 독자인 내가 느낀 것은 이렇게도 잘 쓰는 작가가 20세기를 살다가 갔다는 것과 이렇게 치열하게 글을 쓰던 그녀가 신경쇠약과 정신병을 앓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 정도라고나 할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매 순간의 폭풍들을 이다지도 치밀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녀의 시도와 용기에 나는 탄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역자의 말대로 출판사의 경제적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만한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을 출판한 솔 출판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댈러웨이 부인은 이미 빌려 읽은 책이지만, 솔 출판사에서 펴낸 것으로 한 권 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버지니아 울프인가 라는 말이 이 책의 머리말에 적혀있다. 문학이란 쓸모없는 것이라던 대학 때 현대소설과목의 선생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러나 그 쓸모없는 문학들이 얼마나 많은 양분들을 우리 영혼에 쏟아부어주는지는, 피와 땀으로 쓴 작품들을 읽어내는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 양분들을 영혼에 부어주기 위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오늘도 열심히 읽는 것 뿐이다.



200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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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이야기
이명옥 지음 / 명진출판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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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쯤 나왔다면 그럭저럭 판매부수를 올리며 재판을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했는데, 미술투자 붐이 일고 있는 2007년. 지금보다 7년이나 전에 나왔던 책이다. 이 책은 대중과 미술의 거리 좁히기라는 화두를 걸고 1996년 오픈한 갤러리 사비나의 대표이자 큐레이터인 이명옥씨의 저서이다. 갤러리 사비나는 개관초부터 독특한 전시회와 독특한 작가 발굴에 힘써 유명해진 화랑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큐레이터가 되고 싶고 갤러리를 하고 싶은데 아무 정도도 알 수가 없어서 고전하던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큐레이터의 꿈을 꾸고 화랑운영의 꿈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글을 모아 내 본다고 전했다.

우리가 아는 화랑이란, 고고하고 우아한 직업일 것이다. 몇 몇 드라마에서 보여진 큐레이터나 화랑의 모습들은 우아하고 돈 많은 귀부인들이나 하는 직업이지만, 나름대로 노동일 못지 않으며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열한 직업이기도 하다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노희경의 거짓말에서 배종옥이 화랑에서 일했고,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의 모친과 약혼녀가 화랑주와 큐레이터를 맡기도 했다. 하지원은 거기서 청소일을 잠시 했었다) 이 책은 요즘 불고 있는 미술붐과 얼마전 추적 60분에 나왔던 비열한 화랑들의 행패에 대해서 잠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전해줄 수도 있다. 책은 미술에 대한 열정과 큐레이터의 보기에 그럴싸해보이는 직업의 어려운 점을 편안한 수필로 이어가고 있으며 전문 작가라기에는 모자라지만 아마추어라기엔 조금 더 수려한 문체를 지닌 예전의 시인지망생 화가 지망생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책은 갤러리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 전시회의 뒷모습, 작가들에 대한 에피소드, 화상과 애호가 관람객 큐레이터 평론가의 전시기사 작품판매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의 생상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전하고 있으며 저자가 사비나 관장이 되기까지의 간단한 이력, 갤러리 사비나에서 전시했던 기획전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글의 형태는 스포츠 신문 2면에 실리는 연예기자들의 숨은 연예계 이야기 같은 사담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단순한 구경거리를 떠나서 후배들에게 또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되도록 친절하게 이야기를 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인 이명옥씨는 이후에도 그림에 대한 책을 한 권 더 내기도 했으며 갤러리 사비나는 지금도 실력있고 열정있는 작가들의 데뷔를 돕고 미술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화랑이다. 얼마전 추적 60분에 소개된 김훈과 연화랑의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가족중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는데 미술작업이라는 것이 그 얼마나 피말리고 어려운 일인지, 끊임없이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최소한의 종이와 물감값만해도), 그래서 고달픈 직업이다. 집안뿌리 금방 뽑으려면 음악을 시키고 (악기값이 워낙 고가이므로) 집안뿌리 천천히 뽑으려면 미술을 시키라는(작업을 계속하는 이상 돈은 끊임없이 들어간다) 농담아닌 이야기도 있는 것처럼 미술작가로 산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화랑계는 아직도 그 투명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다행이 요즘 불고 있는 미술투자에 대한 붐이 좋은 작용을 많이 해 작품의 매매이력서만이라도 만들어지는 풍토가 된다면 순수예술에 열정을 품고 있는 저자 같은 사람들의 좋은 글들 역시 더 많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그림을 단순히 돈으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길 막연한 희망을 가지며 갤러리에 몸담고 있는 많은 분들의 좋은 글들이 미술붐을 타고 출판계도 같이 일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2007.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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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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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 초판 2000년 8월 1일

여수 돌산도 향일암 – 남해안 경작지 – 석영정, 소쇄원, 면앙정, - 광주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 – 만경강 하구 갯벌 – 안면도 – 전라남도 구례 – 화개면 쌍계사 – 강원도 고성 – 여수의 무덤들 – 선암사 – 도산서원과 안동 화회 마을 – 경주 감포 – 소백산 의풍 마을 – 부석사 – 영일만 – 진도 소포리 – 진도대교 – 덕산재에서 물한리까지 – 도마령 조동 마을 – 하늘재, 지름재, 조소령 , 문경새재 – 관음리에서 – 양양 선림원지 – 태백산맥 미천골 – 섬진강 상류 여우치 마을 – 섬진강 덕치마을 – 마암분교 – 암사동에서 몽촌까지 –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 여의도에서 조강까지



2권 : 초판 2004년 9월 13일

조강에서 – 김포평야 – 김포 전류리 포구 – 고양 일산 신도시 – 중부전선에서 – 파주에서- 남양만 갯벌 – 남양만 장덕 수로 – 선제도 갯벌 – 서해안 염전 – 경기만 등대 – 광릉 숲에서 – 광릉 수목원 산림박물관 – 광릉 숲 속 연못에서 – 가평 산골마을 – 남한 산성 기행 – 여주 고달사 옛터 – 양수리 – 광주 얼굴 박물관 – 모란시장 – 수원 화성 – 안성 돌미륵



20대를 다 보내고 난 뒤 간절하게 소원하던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었다. 그것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해보지 못한 것이며, 자전거를 타고 먼 곳을 여행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전거를 오래도록 타고 싶다는 소망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4년 반을 보내면서 6개월은 자전거 없이 지낼만큼 물리도록 타 보았지만, 요즘들어 한국 관광공사에서 내보내는 CF처럼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녀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가슴 한 구석에 남아 나를 놀린다. 한 때 어느 제약회사 드링크제의 이름을 딴 국토순례가 인기를 끌었었다. 20대의 창창한 체력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힘을 가지고 내 나라를 한바퀴 둘레둘레 돌아본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오랜 여행은 사람을 지치게 하기도 하고 회복할 수 없는 피부껍데기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땅의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질투가 나서 쉽게 읽지 않는 남의 기행문들, 그러나 김훈이라는 작가의 문체는 나를 그의 여행속으로 끌어들였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재고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에세이집이다. 머리가 희끗해진 전직 기자출신 소설가의 자전거 여행. 듣기만 해도 매력적이고 상상만 해도 부러움뿐이다.

오래된 한지의 느낌을 낸 책의 디자인은 책의 내용과 문체에 잘 맞아떨어진다. 김 훈의 자전거 여행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다.

우리가 패키지 여행 5박 7일로 일본전체 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여행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사진을 찍었는가는 어렵게 기억해 낼 수 있어도, 가슴속에서 느낀 것들은 금새 사라지고 만다. 여행을 잘 하는 방법은 지도위에 나타난 유명사적들을 게으르게 팽개치고 어느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사람과 풍경을 구경하다 오거나 어딘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오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이런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중간에 몇 군데 건너뛰기도 하고 걷다가 아무데나 들어가 밥을 먹고 아무데나 주저앉아 가져간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은 바람이 많이 불던 닝보라는 중국 해안가의 도시애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강변에 앉아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듣다가 졸던 순간과 그 곳의 방금 문을 연 커피숖에서 마셨던 콜롬비아 커피였고, 랑무스라는 외진 마을의 언덕위에 올라 온 마을에 울리는 불경 외는 소리를 들으며 해가 지는 것을 멍청하니 바라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자전거로 이 곳 저 곳을 다니는 늙어가는 작가는, 강하게, 그러나 고요하게, 그의 눈으로 본 치열한 삶의 현장들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그가 말하는 여행지들은 모두 사연이 있고, 모두 살고자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추억해내고 또는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대단한 칭송도, 대단한 찬양도 없다. 그는 그저 그 곳엔 그렇게 많은 것들이 흘러가고 변하고 사람들이 살았고 또 살고 있다고 말 할 뿐이다.

그의 자전거를 따라 한 곳을 머물다 떠나면 잠시 책을 덮고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그의 다음 여행지를 따라간다. 이 책은 빨리 읽지 않는 편이 좋다.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고 다시 한 번 떠올려 읽어야 더 좋다. 그가 늘 책마다 만경강에 바친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된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그의 글을 읽으며 부석사가 그리웠고 진도 앞바다가 그리웠다. 마이산의 쓸쓸하던 봉우리가 생각났고 대포항의 분주함이 아쉬웠다. 나도 김훈만큼의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인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치열한 삶을 이해한 사람에게 더 값지게 다가올 것이다.



2007.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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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냐 아기냐 아무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여자
베티나 뮌히 지음, 이홍경 옮김 / 글담출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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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소개했던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엄마가 되라에 후속타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책의 날개에 있는 여성학 서적 중에 한 권을 고른 것인데, 이 역시 독일에서 출판되었던 책이며, 앞 서 소개한 아이의 미래를 위해.. 와 상통하는 고민을 가진 엄마들을 위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와 같다고 볼 수는 없고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주는 일종의 묶음서처럼 느껴지는데, 이 책의 저자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의 저자 레기네를 종종 언급하기도 하며 직장 여성에 대해서만 국한하지 않고 임신 전부터 출산 후 양육에 이르기까지의 긴 기간 동안 우리가 꼭 해야 할 일들, 우리가 꼭 체크했어야 하는 것들, 알면서도 생각해보지 못하고 무사유로 시간을 보내버렸던 것들에 대해서 꼼꼼히 지적한다.

물론 이 책의 결론도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라는 것이긴 하지만.

이 책은 독일사람이 쓴 책이라 독일의 사회적 환경이 많이 반영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독일이나 유럽에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새롭기도 하다. 유럽구경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유럽선진국들은 남녀평등과 가사분담을 당연시 할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이 책에 따르면 독일남자들이나 한국남자들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런 서구사회에서 남자들은 더 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해서 아이를 갖고자 하는 욕구는 여성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남편들은 그에 대해 반대를 하지 않을 뿐이지 가사와 육아에 대해선 분담하려는 생각도 노력도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아이를 갖기 전에 여자들은 아이들이 너무나 예뻐서, 자식을 갖고 싶어서 라는 환상 속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단순한 욕구에 의해서 진행되어서는 큰 실수에 빠질 수 있고 그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고 이혼에 이르기까지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실로 첫 아이가 5살무렵, 둘째 아이가 있다면 둘째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무렵 부부간의 위기가 최고조가 되고 이혼에 이르는 커플도 가장 많다는 통계가 있다. 이 때쯤이 되면 여자는 육아에 지칠 대로 지쳐있고 남편에게 분담을 요구하지도 않는 포기 상태가 되어버리며 남자들은 아내가 아이에게만 신경을 쓰고 자기는 뒷전에 물러나 돈 버는 기계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둘 사이의 위기는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가 되면 부부간의 대화는 “애 좀 씻겨”, “이것 좀 해”, “내가 놀아?” 이런 식의 공격성 발언밖에 이어지지 않는데, 이는 임신 전 상호간의 충분한 대화와 분담, 상호간의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그 중심에 떡 하니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나란히 누워 자던 부부 사이에 아이가 누워서 자게 되고 혹은 남편은 따로 잠을 자고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자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활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집은 온통 아이의 놀이터가 된다. 부부의 대화는 아이들의 사소한 이야기로 옮겨지고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여자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려 하지 말고 계획적인 임신과 출산으로 남편의 협조를 이끌어내어 현명한 부부, 행복한 가족이 되길 권유하고 있다. 여자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늘 아이의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아이를 둔 남편들은 친구들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여자만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는 여자 혼자 키우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으며, 특히 이런 사고방식은 직장여성들인 경우 커다란 불안감과 우울증으로 변모될 수 있다. 아내가 손을 내밀어 남편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서로 살 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 요지이다. 육아는 절대 엄마 혼자서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고 스스로 행복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진정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염치불구하고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보고 올 수 있어야 하며,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아이를 친척이나 조부모에게 맡길 수 있는 뻔뻔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불행한 여자는 아이에게 묶여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라고 생각하는 여자라는 것.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를 위해 스스로 행복해 질 것, 외모도 가꾸고 취미생활도 갖고 먹고 싶은 것도 먹는 그런 엄마만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한 큰 아이를 혼자 두게 할 수 없어서 둘째를 갖는다는 미련한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직장을 가진 여성이라면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가며 생활 속에 실천한다면 정말 유용할 책이다. 책은 친절하게도 각 장마다의 요점정리까지 해놓아 육아로 바쁜 엄마들이 다시 한 번 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선입관, 엄마라는 존재의 죄책감에 대해서도 저자는 아직 이 사회 속에서 투쟁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하나씩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어느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 장래희망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아이는 엄마와 아빠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다. 아빠는 어릴 적 장래희망에 가까워졌거나 이루었던 사람이었고 엄마는 이미 그 꿈을 버린 지 오래된 사람이었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지. 라고 했던 엄마에게 아이는 말한다. 근데 왜 이러고 있어? 라고.

이 책에 비슷한 에피소드가 하나 나온다. 어느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교실에서 장래희망에 대해서 묻는 선생님에게 “엄마가 되고 싶어요” 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얘야, 엄마는 직업이 아니란다. 하는 몰상식한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

만일 당신의 아이가 당신에게 혹은 당신의 아내에게 엄마는 꿈이 뭐였어?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혹은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위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유하지 않는 삶은 죄악을 저지르기도 한다. 나는 책을 덮고 깊은 숨을 내 쉬었다.



2007.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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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아직 침팬지에요
하비 카프 지음, 오민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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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마, 나는 아직 뱃속이 그리워요,를 썼던 UCLA 의과대학 교수인 하비 카프의 또 다른 육아서이다. 베이비 위스퍼가 1, 2로 앙팡과 토들러 단계로 나뉜 것처럼 이 책은 엄마, 나는 아직 뱃속이 그리워요의 속편으로 돌이 지난 아기의 육아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돌이전의 내아이는 얼마나 기르기 편했는가.

가끔 아이가 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아이가 울면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배를 채워주거나 안고 흔들어주면 그만이었다. 아이의 근육은 미처 발달하지 않아서 그저 누워서 하루를 보냈고 상당히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2시간마다 깨어서 젖을 먹여야 하는 일 외에는 별다르게 어려운 일이 없었고 단순한 장난감 하나만 가지고 움직일 수 없는 아이는 엎드려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보행기에 태워놓으면 빠져나오지 못해 엄마는 설거지도 할 수 있고 빨래도 돌릴 수 있고 10KG가 넘지 않는 가벼운 몸무게 덕에 업고 어딘가를 다니는 것도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가 10KG를 넘으면서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이후 곧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엄마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지켜봐야 한다. 몸무게가 적지 않아 많이 업을 수도 없고 아기띠를 이용해 앞으로 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눕혀서 메고 다녔던 슬링은 신생아를 출산한 후배에게 넘겨야 했고 보행기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고 서랍을 열기 시작하는 순간 아버지가 돈 벌러 간 사이 집안에서는 엄마와 아기의 육탄전이 시작된다.



이 책은 돌이 지난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하고 아이의 다양해진 욕구를 어떻게 해소시키며 어떻게 규율을 알려주고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는 침팬지 정도의 수준, 유인원이나 네안데르탈인 정도의 원시인으로 생각하고 엄마 자신은 그 원시인에게 파견된 막강한 국가권력을 뒤로 업은 외교사절, 특사 정도로 생각을 하고 행동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아이는 수백만년동안 인간이 겪어온 진화라는 과정을 단 몇 년만에 해내는 존재이니 그의 단순과격무식함을 잘 이해하고 그에 대해서 우아한 자세로 응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12-18개월, 18-24개월, 24-36개월, 36-48개월로 나누어 아이들의 변화를 살펴보고 아이를 가르치고 훈육하는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 흥분한 아이들을 가라앉히는 법등을 여러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매우 유용한 방안들이 많다. 예를 들어 마구 흥분한 아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엄마와 마주앉아 숨고르기 연습을 평소에 한다거나 지나치게 흥분한 아이의 얼굴에 후 – 하고 바람을 불어주면 아이가 금새 진정이 된다거나 (아이들은 이런 예기치 못한 작은 자극에 그 전에 있었던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아주 유용한 패스트푸드 룰 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패스트푸드 룰이라는 것은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점)에서 뭔가 물건을 주문했을 때 점원은 바로 가격(아이가 원하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주문한 내용(아이가 무엇을 원한다고 종알거린 내용)을 반복하여 확인시켜준다는 것이다. 아이가 뭔가를 원한다고 정확하지 않은 발음과 신체언어로 말을 했을 때 엄마는 유아어로 비슷하게 반복을 해주면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이해했다는 안도감에 지나친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 실로 이 꼬마원시인과의 문제는 아이는 뭔가를 원한다고 계속해서 어른들에게 요청을 하는데 어른들은 그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들은 다 알아듣던데 하는 말은 사회가 만들어 낸 신화에 불과하다. 엄마는 심령술사가 아니다. 엄마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할애하기 때문에 아이의 음조와 표정, 전후 상황을 파악해 대강의 유추를 해 내는 것 일뿐, 아이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끊임없는 관심과 존중이라는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더 절실히 느낀다. 아빠가 TV를 보고 있으면서 놀아주지 않으면 괜히 엉뚱한 데에다가 짜증을 부린다거나, 책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른이 책을 읽어주는 그 과정에서는 온전히 자기에게 몰입하게 된다는 것을 즐기며, 조근조근 설득을 하는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이 자기에게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금방 고분고분해 진다는 것,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리 아프게 넘어져도 벌떡 일어난다는 것등이 그러하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관심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원시인을 길들이는 데 장애물이 되는 한 살 배기들의 골 부리기, 떼쓰기, 수면문제, 깨물기와 두 살 배기들의 분리불안, 까다로운 식성, 배변훈련, 세 살배기들의 공포, 말 더듬기, 약 먹기, 동생에 대한 문제들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나에게 약 먹기에 대한 하비 카프 박사의 특별한 지시법은 시사하는 바가 아주 컸다. 다행히 아이들은 개성이 있지만 대부분의 행동양식들은 비슷한 모양이다. 이러한 육아서는 그런 이유로 엄마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아이가 걷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전쟁에 나설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때 당신의 부엌 한 켠에 이 책이 한 권 있다면 괜찮은 무기 하나는 구비해 둔 셈이다.



2007.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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