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냐 아기냐 아무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여자
베티나 뮌히 지음, 이홍경 옮김 / 글담출판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소개했던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엄마가 되라에 후속타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책의 날개에 있는 여성학 서적 중에 한 권을 고른 것인데, 이 역시 독일에서 출판되었던 책이며, 앞 서 소개한 아이의 미래를 위해.. 와 상통하는 고민을 가진 엄마들을 위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와 같다고 볼 수는 없고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주는 일종의 묶음서처럼 느껴지는데, 이 책의 저자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의 저자 레기네를 종종 언급하기도 하며 직장 여성에 대해서만 국한하지 않고 임신 전부터 출산 후 양육에 이르기까지의 긴 기간 동안 우리가 꼭 해야 할 일들, 우리가 꼭 체크했어야 하는 것들, 알면서도 생각해보지 못하고 무사유로 시간을 보내버렸던 것들에 대해서 꼼꼼히 지적한다.

물론 이 책의 결론도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라는 것이긴 하지만.

이 책은 독일사람이 쓴 책이라 독일의 사회적 환경이 많이 반영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독일이나 유럽에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새롭기도 하다. 유럽구경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유럽선진국들은 남녀평등과 가사분담을 당연시 할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이 책에 따르면 독일남자들이나 한국남자들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런 서구사회에서 남자들은 더 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해서 아이를 갖고자 하는 욕구는 여성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남편들은 그에 대해 반대를 하지 않을 뿐이지 가사와 육아에 대해선 분담하려는 생각도 노력도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아이를 갖기 전에 여자들은 아이들이 너무나 예뻐서, 자식을 갖고 싶어서 라는 환상 속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단순한 욕구에 의해서 진행되어서는 큰 실수에 빠질 수 있고 그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고 이혼에 이르기까지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실로 첫 아이가 5살무렵, 둘째 아이가 있다면 둘째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무렵 부부간의 위기가 최고조가 되고 이혼에 이르는 커플도 가장 많다는 통계가 있다. 이 때쯤이 되면 여자는 육아에 지칠 대로 지쳐있고 남편에게 분담을 요구하지도 않는 포기 상태가 되어버리며 남자들은 아내가 아이에게만 신경을 쓰고 자기는 뒷전에 물러나 돈 버는 기계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둘 사이의 위기는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가 되면 부부간의 대화는 “애 좀 씻겨”, “이것 좀 해”, “내가 놀아?” 이런 식의 공격성 발언밖에 이어지지 않는데, 이는 임신 전 상호간의 충분한 대화와 분담, 상호간의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그 중심에 떡 하니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다. 나란히 누워 자던 부부 사이에 아이가 누워서 자게 되고 혹은 남편은 따로 잠을 자고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자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활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집은 온통 아이의 놀이터가 된다. 부부의 대화는 아이들의 사소한 이야기로 옮겨지고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여자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려 하지 말고 계획적인 임신과 출산으로 남편의 협조를 이끌어내어 현명한 부부, 행복한 가족이 되길 권유하고 있다. 여자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늘 아이의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아이를 둔 남편들은 친구들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여자만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는 여자 혼자 키우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으며, 특히 이런 사고방식은 직장여성들인 경우 커다란 불안감과 우울증으로 변모될 수 있다. 아내가 손을 내밀어 남편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서로 살 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 요지이다. 육아는 절대 엄마 혼자서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고 스스로 행복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진정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염치불구하고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보고 올 수 있어야 하며,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아이를 친척이나 조부모에게 맡길 수 있는 뻔뻔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불행한 여자는 아이에게 묶여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라고 생각하는 여자라는 것.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를 위해 스스로 행복해 질 것, 외모도 가꾸고 취미생활도 갖고 먹고 싶은 것도 먹는 그런 엄마만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또한 큰 아이를 혼자 두게 할 수 없어서 둘째를 갖는다는 미련한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직장을 가진 여성이라면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가며 생활 속에 실천한다면 정말 유용할 책이다. 책은 친절하게도 각 장마다의 요점정리까지 해놓아 육아로 바쁜 엄마들이 다시 한 번 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선입관, 엄마라는 존재의 죄책감에 대해서도 저자는 아직 이 사회 속에서 투쟁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하나씩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어느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 장래희망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아이는 엄마와 아빠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다. 아빠는 어릴 적 장래희망에 가까워졌거나 이루었던 사람이었고 엄마는 이미 그 꿈을 버린 지 오래된 사람이었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지. 라고 했던 엄마에게 아이는 말한다. 근데 왜 이러고 있어? 라고.

이 책에 비슷한 에피소드가 하나 나온다. 어느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이 교실에서 장래희망에 대해서 묻는 선생님에게 “엄마가 되고 싶어요” 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얘야, 엄마는 직업이 아니란다. 하는 몰상식한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

만일 당신의 아이가 당신에게 혹은 당신의 아내에게 엄마는 꿈이 뭐였어?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혹은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위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유하지 않는 삶은 죄악을 저지르기도 한다. 나는 책을 덮고 깊은 숨을 내 쉬었다.



2007.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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