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이야기
이명옥 지음 / 명진출판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지금쯤 나왔다면 그럭저럭 판매부수를 올리며 재판을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했는데, 미술투자 붐이 일고 있는 2007년. 지금보다 7년이나 전에 나왔던 책이다. 이 책은 대중과 미술의 거리 좁히기라는 화두를 걸고 1996년 오픈한 갤러리 사비나의 대표이자 큐레이터인 이명옥씨의 저서이다. 갤러리 사비나는 개관초부터 독특한 전시회와 독특한 작가 발굴에 힘써 유명해진 화랑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큐레이터가 되고 싶고 갤러리를 하고 싶은데 아무 정도도 알 수가 없어서 고전하던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큐레이터의 꿈을 꾸고 화랑운영의 꿈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글을 모아 내 본다고 전했다.

우리가 아는 화랑이란, 고고하고 우아한 직업일 것이다. 몇 몇 드라마에서 보여진 큐레이터나 화랑의 모습들은 우아하고 돈 많은 귀부인들이나 하는 직업이지만, 나름대로 노동일 못지 않으며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열한 직업이기도 하다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노희경의 거짓말에서 배종옥이 화랑에서 일했고,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의 모친과 약혼녀가 화랑주와 큐레이터를 맡기도 했다. 하지원은 거기서 청소일을 잠시 했었다) 이 책은 요즘 불고 있는 미술붐과 얼마전 추적 60분에 나왔던 비열한 화랑들의 행패에 대해서 잠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전해줄 수도 있다. 책은 미술에 대한 열정과 큐레이터의 보기에 그럴싸해보이는 직업의 어려운 점을 편안한 수필로 이어가고 있으며 전문 작가라기에는 모자라지만 아마추어라기엔 조금 더 수려한 문체를 지닌 예전의 시인지망생 화가 지망생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책은 갤러리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 전시회의 뒷모습, 작가들에 대한 에피소드, 화상과 애호가 관람객 큐레이터 평론가의 전시기사 작품판매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의 생상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전하고 있으며 저자가 사비나 관장이 되기까지의 간단한 이력, 갤러리 사비나에서 전시했던 기획전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글의 형태는 스포츠 신문 2면에 실리는 연예기자들의 숨은 연예계 이야기 같은 사담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단순한 구경거리를 떠나서 후배들에게 또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되도록 친절하게 이야기를 전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인 이명옥씨는 이후에도 그림에 대한 책을 한 권 더 내기도 했으며 갤러리 사비나는 지금도 실력있고 열정있는 작가들의 데뷔를 돕고 미술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화랑이다. 얼마전 추적 60분에 소개된 김훈과 연화랑의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가족중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는데 미술작업이라는 것이 그 얼마나 피말리고 어려운 일인지, 끊임없이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최소한의 종이와 물감값만해도), 그래서 고달픈 직업이다. 집안뿌리 금방 뽑으려면 음악을 시키고 (악기값이 워낙 고가이므로) 집안뿌리 천천히 뽑으려면 미술을 시키라는(작업을 계속하는 이상 돈은 끊임없이 들어간다) 농담아닌 이야기도 있는 것처럼 미술작가로 산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화랑계는 아직도 그 투명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다행이 요즘 불고 있는 미술투자에 대한 붐이 좋은 작용을 많이 해 작품의 매매이력서만이라도 만들어지는 풍토가 된다면 순수예술에 열정을 품고 있는 저자 같은 사람들의 좋은 글들 역시 더 많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그림을 단순히 돈으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길 막연한 희망을 가지며 갤러리에 몸담고 있는 많은 분들의 좋은 글들이 미술붐을 타고 출판계도 같이 일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2007.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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