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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권 : 초판 2000년 8월 1일
여수 돌산도 향일암 – 남해안 경작지 – 석영정, 소쇄원, 면앙정, - 광주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 – 만경강 하구 갯벌 – 안면도 – 전라남도 구례 – 화개면 쌍계사 – 강원도 고성 – 여수의 무덤들 – 선암사 – 도산서원과 안동 화회 마을 – 경주 감포 – 소백산 의풍 마을 – 부석사 – 영일만 – 진도 소포리 – 진도대교 – 덕산재에서 물한리까지 – 도마령 조동 마을 – 하늘재, 지름재, 조소령 , 문경새재 – 관음리에서 – 양양 선림원지 – 태백산맥 미천골 – 섬진강 상류 여우치 마을 – 섬진강 덕치마을 – 마암분교 – 암사동에서 몽촌까지 –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 여의도에서 조강까지
2권 : 초판 2004년 9월 13일
조강에서 – 김포평야 – 김포 전류리 포구 – 고양 일산 신도시 – 중부전선에서 – 파주에서- 남양만 갯벌 – 남양만 장덕 수로 – 선제도 갯벌 – 서해안 염전 – 경기만 등대 – 광릉 숲에서 – 광릉 수목원 산림박물관 – 광릉 숲 속 연못에서 – 가평 산골마을 – 남한 산성 기행 – 여주 고달사 옛터 – 양수리 – 광주 얼굴 박물관 – 모란시장 – 수원 화성 – 안성 돌미륵
20대를 다 보내고 난 뒤 간절하게 소원하던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었다. 그것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해보지 못한 것이며, 자전거를 타고 먼 곳을 여행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전거를 오래도록 타고 싶다는 소망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4년 반을 보내면서 6개월은 자전거 없이 지낼만큼 물리도록 타 보았지만, 요즘들어 한국 관광공사에서 내보내는 CF처럼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녀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가슴 한 구석에 남아 나를 놀린다. 한 때 어느 제약회사 드링크제의 이름을 딴 국토순례가 인기를 끌었었다. 20대의 창창한 체력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힘을 가지고 내 나라를 한바퀴 둘레둘레 돌아본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오랜 여행은 사람을 지치게 하기도 하고 회복할 수 없는 피부껍데기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땅의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질투가 나서 쉽게 읽지 않는 남의 기행문들, 그러나 김훈이라는 작가의 문체는 나를 그의 여행속으로 끌어들였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재고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에세이집이다. 머리가 희끗해진 전직 기자출신 소설가의 자전거 여행. 듣기만 해도 매력적이고 상상만 해도 부러움뿐이다.
오래된 한지의 느낌을 낸 책의 디자인은 책의 내용과 문체에 잘 맞아떨어진다. 김 훈의 자전거 여행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다.
우리가 패키지 여행 5박 7일로 일본전체 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여행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사진을 찍었는가는 어렵게 기억해 낼 수 있어도, 가슴속에서 느낀 것들은 금새 사라지고 만다. 여행을 잘 하는 방법은 지도위에 나타난 유명사적들을 게으르게 팽개치고 어느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사람과 풍경을 구경하다 오거나 어딘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오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이런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중간에 몇 군데 건너뛰기도 하고 걷다가 아무데나 들어가 밥을 먹고 아무데나 주저앉아 가져간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은 바람이 많이 불던 닝보라는 중국 해안가의 도시애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강변에 앉아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듣다가 졸던 순간과 그 곳의 방금 문을 연 커피숖에서 마셨던 콜롬비아 커피였고, 랑무스라는 외진 마을의 언덕위에 올라 온 마을에 울리는 불경 외는 소리를 들으며 해가 지는 것을 멍청하니 바라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자전거로 이 곳 저 곳을 다니는 늙어가는 작가는, 강하게, 그러나 고요하게, 그의 눈으로 본 치열한 삶의 현장들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그가 말하는 여행지들은 모두 사연이 있고, 모두 살고자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추억해내고 또는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대단한 칭송도, 대단한 찬양도 없다. 그는 그저 그 곳엔 그렇게 많은 것들이 흘러가고 변하고 사람들이 살았고 또 살고 있다고 말 할 뿐이다.
그의 자전거를 따라 한 곳을 머물다 떠나면 잠시 책을 덮고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그의 다음 여행지를 따라간다. 이 책은 빨리 읽지 않는 편이 좋다.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고 다시 한 번 떠올려 읽어야 더 좋다. 그가 늘 책마다 만경강에 바친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된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그의 글을 읽으며 부석사가 그리웠고 진도 앞바다가 그리웠다. 마이산의 쓸쓸하던 봉우리가 생각났고 대포항의 분주함이 아쉬웠다. 나도 김훈만큼의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인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치열한 삶을 이해한 사람에게 더 값지게 다가올 것이다.
2007.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