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두번째 소설이다. 어릴 때 어떻게 손에 들어온 세월이라는 소설은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으나, 작년에 읽은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버지니아 울프의 깊이에 탄복했다고나 할까. 그녀의 소설은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주인공들의 심리묘사에 탁월한데,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소설전체의 흐름을 잃고 길을 헤매게 하는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등대로는 댈러웨이 부인을 출간한 해에 구상을 시작해 1927년에 출판한 소설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의 심경과 그 주변인물들의 심리묘사를 이어지듯 해 내는 단 하룻동안의 일이라면 등대로는 조금 더 긴 시간을 묘사한다. 주인공으로 보였던 램지부인이 전반부 “창”
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후 2,3부에서는 릴리라는 주변인물이 주인공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을 릴리라는 인물로 설정한 듯 한데, 평론가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일종의 버지니아 울프의 부모에 대한 살풀이 굿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사춘기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평생을 신경쇠약과 정신병에 시달렸던 그녀에게 부모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이 소설을 통해 남성중심의 가족제도가 폭정과 억압이라는 강렬한 비판을 전개한다. 그리고 오롯이 홀로였던 주인공 릴리의 심경을 통해 여성의 독립이 얼마나 위태롭고 어려운 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음침하나 햇빛이 잘 드는 우거진 정원을 가진 시골의 한적한 저택을 떠오르게 한다. 아침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닷가의 집같고, 늘 손님들이 북적여 그 뒷치닥거리로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시골 유지 집의 마나님과 그 하인들의 바쁜 손놀림을 연상케 한다. 티 테이블에 모여 시간을 축내며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사람들의 매캐한 담배연기 속에서 뒤켠으로 물러난 그 집의 많은 아이들이 계단에 앉아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내가 전문적인 영문학 평론을 할 수 있는 깜냥이 되지 않으니 이 소설에 대한 평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녀의 소설은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찾을 것이며, 그리고 그녀의 소설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 스스로 많은 자료를 찾아볼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평범한 독자인 내가 느낀 것은 이렇게도 잘 쓰는 작가가 20세기를 살다가 갔다는 것과 이렇게 치열하게 글을 쓰던 그녀가 신경쇠약과 정신병을 앓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 정도라고나 할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매 순간의 폭풍들을 이다지도 치밀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녀의 시도와 용기에 나는 탄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역자의 말대로 출판사의 경제적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만한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을 출판한 솔 출판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댈러웨이 부인은 이미 빌려 읽은 책이지만, 솔 출판사에서 펴낸 것으로 한 권 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버지니아 울프인가 라는 말이 이 책의 머리말에 적혀있다. 문학이란 쓸모없는 것이라던 대학 때 현대소설과목의 선생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러나 그 쓸모없는 문학들이 얼마나 많은 양분들을 우리 영혼에 쏟아부어주는지는, 피와 땀으로 쓴 작품들을 읽어내는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 양분들을 영혼에 부어주기 위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오늘도 열심히 읽는 것 뿐이다.



200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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