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ror effect
1
등짝 한가운데가 간지러워서 긁기 시작한 것이 72시간 전, 긁어서 그런가 뭔가 볼록 올라온 것을 감지한 것이 대충 48시간 전, 그리고 그게 간지러움을 넘어서 아픔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깨달은(깨닫기 싫었어) 것이 또 대충 36시간 전쯤이었다. 그래서 12시간 전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자상하게 생긴 선생님께서 syo의 등짝을 보시더니 “가려워요? 아파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다른 데도 그래요?” 하시었다. 차곡차곡 대답하고 선생님 이게 대체 뭔가요- 하고 여쭸더니 “단순한 포진이라고 봐야 되겠네요.” 하시었다. 내게 이 바이러스를 잠복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놈(三은 나와 같이 사는 동안 2주에 한 번 피부과를 다녀왔고 그때마다 약을 받아와서 등짝 부위에 찍어 발랐는데, 걔가 받아오던 약이 내가 오늘 받은 약과 똑같이 생겼다. 단순포진 전염원인1: 식기, 수건등의 공동사용), 그리고 내가 이 바이러스를 잠복시킨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단순포진 전염원인2: 키스 등)을 생각하며 잠시 멍해 있었는데, 선생님은 다시 “피곤하지 마세요.” 하셨다. 그 말씀 역시 썩 다정하여 나는 홀린 듯 네, 선생님, 결코 피곤하지 않겠어요- 라고 대답할 뻔했으나, 2021년에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요즘이 syo의 기나긴 인생사에서 특별히 피곤하거나 무리하거나 애쓰는 기간도 아닌데 포진 놈이 올라왔다는 사실이야말로 뼈아팠다. 늙었구나. 아, 노화는 피부과에서 슬픔과 아픔 속에 확인하는 거라더니만 정말이네…….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받아 돌아왔다. 약을 바르는 데는 거울 두 개가 필요했다. 큰 거울을 등지고 작은 거울을 들고 서서 등에 약을 발랐다. 해보시면 알겠지만 이중 거울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왼쪽으로 바르고 싶었는데 손은 오른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발라야지 했는데 손은 왼쪽으로 갔다. 위로 발라야지 했는데 손이 아래로 갔다. 되게 힘들었다. 그리고 생각해봤는데, 좌우는 그럴 수 있어도 멍청이가 아니라면 위아래까지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였다. 헤헤, 나 멍청한 거 나만 알아서 정말 다행이야…….
돌아오는 길에 밤식빵을 샀다. 어제 이거 사 먹으려고 온 동네를 이 잡듯 뒤졌으나 실패하고 잉잉 울며 돌아왔다. 오늘 먹었더니 어제 안 먹어본 그 맛이 안 났다. 입맛도 조변하고 있다.
2
오늘의 푸코는 목하 청춘의 환희 속에서 방랑 중이다.
1976년 티에리 뵐첼과의 대화에서 젊은 세대가 성 정체성을 체험하는 방식에 대해 물으며 그는 자기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환기시켰다. "앞 세대에서는 자신이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인생의 엄숙한 순간이었지. 세상과 단절하는 일종의 계시 혹은 환희이기도 했어.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기쁨과 함께 자신은 선택받았고, 검은 양(羊)이고, 죽는 날까지 그러할 것이라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어." 그리고 그는 동성애로의 입문이 어떤 것인지를 묘사했다. "스무 살 즈음 동성애자인 어른들과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을 때 나보다 열 살, 열다섯 살 혹은 스무 살 더 나이 많은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은 벌써 내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한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을 의미했어. 그것은 단숨에 폐쇄적이고 비밀스럽고 약간 저주받은 비밀결사대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것이나 다름 없었지." 그의 말을 열심히 듣는 젊은이의 열성에 매료된 푸코는 이렇게 덧붙였다. "자네보다 앞선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훨씬 더 단순…… 글쎄 뭐랄까 훨씬 더 분명했고, 하여튼 훨씬 더 행복한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 놀랍게 생각되네.“
_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52쪽
그런데 그 와중에 푸코는 또 공부 중이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읽었다. 고전주의 철학은 물론, 플라톤·칸트·헤겔 등, 1949년에는 헤겔을 가지고 석사논문을 썼다. 논문 제목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의 역사적 초월적 구성」이었다. 그는 맑스도 읽었음이 분명하다. 당시에는 누구나 읽었으니까. 조금 후에 후설을 읽었고, 특히 하이데거를 읽었다. 1942년에 알퐁스 드 발렝스의 책이 나와서 젊은 철학자들은 모두 그의 해석을 통해 하이데거 사상에 접근했다. 푸코는 직접 원전을 읽기 위해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이데거 강의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철학수업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헤겔을 읽기 시작했고 이어서 맑스를 읽었으며, 1951년 혹은 1952년에 하이데거를 읽었다. 그리고 1952년인가 1953년인가 니체도 읽었다. 하이데거를 읽을 때 해놓은 막대한 양의 메모를 나는 아직도 전부 보관하고 있다. 그것들은 헤겔이나 맑스를 읽으며 작성한 노트와는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나의 모든 철학적 형성은 하이데거의 독서에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니체가 그것을 압도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니체에 대한 나의 지식은 하이데거의 그것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러나 여하튼 그 두 경향의 철학은 나의 기본적인 철학 체험이다. 아마 내가 하이데거를 읽지 않았다면 니체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_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57-58쪽
저러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자기 공부가 자기 설명의 바탕이 되는 분야를 공부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푸코가 천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젊은 시절의 푸코는 이렇게 철학의 위대함 혹은 천재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완연해지면, 푸코는 그 두 위대함이 하나의 인간에 동시에 체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증거가 될 것이다.
시간이 나면, 헤겔 겉핥기를 좀 해둘까 싶다. 나는 헤겔의 철학은 거의 모르면서 헤겔의 위대함은 안다. 그건 헤겔 이후 철학자들의 전기가 죄다, 헤겔에 관해 읽고 싶은 마음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이 시간에는 푸코의 복종적 연애 스타일과 망해버린 사랑에 대해서…….
3
그나저나 『육식의 성정치』는 왜 안 읽는 걸까. 두꺼우면 두껍다고 제껴놓고 얇으면 얇다고 미루니 큰 인물 되기는 그른 것이 아닐까?
--- 읽은 ---
13.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
정희진 선생님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대부분 이 책으로 그 사랑을 시작했을 것이고, 다르게 시작한 애독자들 중에서도 이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꽤 오래전부터 다시 읽고 또다시 읽는 책인데, 그 모든 다시가 다시금 감동이다. 하도 많이 읽어서 그런가, 되게 예전에 나온 책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2014년, 그것도 꽉 채운 10월 출간이어서 깜짝 놀람. 보나마나 2023년쯤 또 읽고야 말겠지.
그렇지만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었는데 정희진처럼 읽기가 끝내 안되는 것은 도대체 우리 중 누구의 무능이란 말인가(몰라서 물어본 거란 말인가).
텍스트가 책일 때 특히 독후감이라 할 뿐이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대상과 만난 느낌의 기록을 논문, 소설, 기사, 일기 등으로 분류해 부른다. 자료와의 만남, 이후 자료의 의미와 그 의미의 정치학을 선행 이론 속에 자리매김하는 노력이 논문이고, 나의 하루가 교재가 될 때 일기가 되는 식이다. 자료는 일종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텍스트는 때때로 나의 경우 매우 자주, 상처가 된다. 일종의 인생의 짐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그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_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14. 불화하는 말들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
이성복 선생님은 그냥 입만 열면 시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느낌이라, 밥은 먹었니- 하셔도 시 같고, 골프 처음 배울 때- 하셔도 시 같고, 심지어 섹스- 하셔도 그게 시 같다(실제로 저 단어가 이 책에 나온단 말이에요……). 그래서 선생님의 시론조차 시 같다. 시론으로 시를 쓰시는 달인의 가르침은 범인에게는 오히려 더한층 어려울 따름이다. 뭔지 몰라도 굉장히 멋있는 말씀이신 건 알겠는데 역시 뭔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하라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맞는 말씀이신 건 알겠는데 역시 어떻게 하라시는 건지는 모르겠다. 으하하하. syo가 지금 선생님의 말들과 불화하는 중이다.
언제나 사소한 것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곳에 닿으려 해야 해요.
좋은 것은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이에요.
_ 이성복, 『불화하는 말들』
15. 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
오수민 지음 / 넥서스BOOKS / 2019
일상 속 음식 이야기와 철학을 버무리겠다는 기획인데, 기획 자체는 좋았지만 빼어난 책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음식과 철학이 착 붙는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나마 붙었다 싶은 부분은 철학의 함량이 고만고만했다. 독자에게 일상적 마주침 속에서 철학을 떠올리는 태도를 자체를 환기하는 방식으로 쓰자면 훌륭한 책일 수도 있겠으나, syo의 성에 차진 않았다. 나라고 딱히 철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라는 데서 짐작해보면, 함량의 아쉬움을 말하는 독자가 또 있을 수 있겠다.
이렇게 내가 덕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지각하고 나면 내 앞에 앉아 있는 나와 똑같은 인간인 저 찍먹 친구도-인간인 이상-나처럼 욕구하는 존재이며 덕을 타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어떤 것을 욕구할 때, 그 구체적인 형태는 다를지라도 친구도 욕구하는 마음은 똑같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와 동일하게 덕이라는 본성의 소유자이니, 도덕적 주체로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내가 그의 욕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소스를 부어버린다면 그는 얼마나 속상하겠으며 또 얼마나 부당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탕수육을 먹기 전에 상대방에게 묻는 것이다.
_ 오수민, 『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
16. 맹자 : 지적대화를 위한 30분고전 22
김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
음, 웬만한 맹자 책보다 좋은 점을 발견하긴 어렵다. 싸다는 게 그나마 장점이지만, 맹자 전체를 다루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뭐 싸다고 하기도.
우리는 왕조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 체제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맹자가 바라던 체제이기도 합니다. 선거제만 빼면, 맹자가 주장한 민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매우 닮았습니다. 우리는 그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문화적으로 해석해 낼 수 있을까요?
맹자는 계속 살아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문화는 벗어나기 어려울 만큼 거의 모든 면에서 맹자의 생각에 크게 빚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_ 김혁, 『맹자 : 지적대화를 위한 30분고전 22』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인데, 정말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다. 이유의 이유를 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모두들 안녕-. 아무래도 분량 제한 때문에 서두른 듯.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짐작하시겠지요.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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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1926~1984 / 디디에 에리봉
아무튼, 목욕탕 / 정혜덕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홍승은
헤겔에 이르는 길 / 미타 세키스케
법의 이유 / 홍성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 다비드 그로스만
도대체都大體 과학 / 이강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