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는 읽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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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을 좀 줄여야 할 텐데 걱정이다. 아는 건 쓰고 모르는 건 삼키면 되는데 애매하게 아는 애가 애매하다. 아는지 모르는지조차 애매한 애는 더하다.


스스로를 가끔 천재가 아닐까라고 의심해볼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인데,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_ 안녕하신가영,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우리 머리는 교향곡을 작곡하고 도시를 계획하고 상대성이론을 생각해내지만, 가게에서 포테이토칩 하나를 살 때도 무슨 종류를 살지 족히 5분은 고민해야 겨우 결정할 수 있다.
_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2
좀 오래 버텼다 싶으면 제일 먼저 봉기하는 것은 항상 눈이다. 판례를 읽는데 슬슬 플로우가 꼬이고 자꾸만 읽었던 줄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 나는 바로 방에 들어가서 타이머 30분 맞춰놓고 잔다. 왜 30분도 못 채우고 서둘러 깨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러고 나면 꼬였던 뇌는 대충 풀리는데 뻑뻑한 눈은 그렇지가 못하다. 선봉장이 끝판대장질까지 하는 것이다. 천하에 고집스런 구슬 같으니. 약을 먹든지 채소를 먹든지 하여간 얘한테 뭔가를 해줘서 좀 달래야 할 것 같다.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어허허허.
3
새벽 한 시에도 불 켜진 집이 많은 동네다. 주인 끌고 산책하는 멍뭉이도 있고, 족발을 싣고 달리는 라이더도 있고, 옥상에서 뒷짐 지고 음악 듣는 수면바지 차림의 중년 백수도 있다. 면도는 이틀에 한 번꼴로 하는 모양이다.
단무지처럼 생긴 달이 크게 밝아도 별이 다 보인다. 멀리 산등성이에서 주기적으로 반짝대는 저 붉은 점 세 개는 우리 집 정수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 비행기들이랑 관련 있겠지. 추워서 오래는 못 버티고 계단을 다다다 내려가는 중년 백수의 뻐근한 눈은 밤공기 그거 약간 발라줬다고 차도가 있다.
4
요즘 유튜브 덕을 톡톡히 본다. study with me(스윗미라고 하던데)라고 때려 넣으면, 어쩐지 힙해 보이는 시계와 귀여운 가습기를 구비한 파스텔톤의 우아한 방에서 공무원 준비하는 아가씨가 한국사 공부를 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주는 추세는 물러가고 요즘은 장작 타는 소리가 트렌드인 듯. 스윗미 채널은 요즘 유행하는 먹방이랄지 몰카랄지 일상 엿보기랄지 하는 콘텐츠가 관음적 욕망을 건드리는 것과 정반대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그러니까, 공부하다 딴짓하고 싶을 때 눈앞에서 불이라도 붙일 기세로 노트에 볼펜을 비벼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급속 자아성찰 모드에 돌입하게 되고, 무의식중에 마우스로 향하던 손가락이 부끄러이 유턴하여 다시 볼펜을 잡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옆에 뜬 채팅창에다가 인간인지 로봇인지 모를 누군가가 공부 관련 명언 1~50을 자꾸만 올려주는데, 겁나 식상한데 식상해서 더 상처다. 청년은 늙기 쉽고……. 허윽.
그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 이내 내가 쟤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쟤가 날 보고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는데, 마침내 그 인식의 내면화까지 성공한다면 이제 푸코의 규율 권력 메커니즘이 작동하면서 나는 자발적으로 나의 간수가 되고 동시에 기쁜 마음으로 나의 죄수도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시무시하게 스윗하다 스윗미.
syo가 간수로 즐겨 채택하는 사람은 동그란 모범생 안경을 써도 어쩐지 귀염상에 쉬는 시간마다 푸시업도 착착 해내는 당찬 여성 유튜버보다, 오전 9시 방송 시작할 때는 깔끔하던 코와 입 주변이 23시 방송 종료 직전에는 시꺼매지는 semi-아저씨(그래도 syo보다 어린) 유튜버다! 왜 모자를 쓰냐고 누가 물었나 본데 대답은 탈모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이보시게 젊은이…….
5
7만원짜리 민법책이 출발했다는 소식이다.
두둥
--- 읽은 ---
237.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롭 이스터웨이 지음 / 고유경 옮김 / 반니 / 2020
송파 강동 일대를 주름잡던 과외 선생으로 활동하던 시절, 아이들에게 syo가 가장 많이 했던 대사는 “야, 이거 수학 아니야. 산수지.”였다. 신랄하고 괴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표면적으로는 이것도 못 푸냐는 뜻이지만 말을 굳이 저렇게 해 버리면 아이도 기분 상하고, 산수 취급받은 수학도 기분 나쁘고, 산수는 내가 뭐 어때서! 하며 빡치는 것. 어쨌든 저 말에 깔린 전제는 “수학 >>>> 산수”인 것인데, 과연 어디서부터 수학이고 어디서부터 산수일까? 산수와 수학의 국경선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이 실은 산수 나라 국민이라는 건 명확히 알겠다.
근데 세상을 읽는 방법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구만 이노무 세상 왜 나한텐 하나도 읽히지를 않는 걸까?
단지 퀴즈 쇼와 같은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계산기나 인공지능 장치가 없어도 어림 계산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왜 그럴까?
그 주체가 사람이든 컴퓨터든, 우리 앞에 등장하는 모든 정보에 도전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계산과 결정을 컴퓨터에 맡기면 우리는 기술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_ 롭 이스터웨이,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238. 뉴욕스케치
장자크 상페 지음 /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
서울 생활이 뉴욕 생활보다 덜 척박한 것은 아니더라. 슬프다.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까 꼭 뉴욕에 살아본 것 같네. 큰 도시는 무조건 좋아하는 syo지만, 뉴욕살이 재미없겠다.
심프슨의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너무나 멋지더군. <이 집이 내 집이라면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 반짝거리는 황홀한 야경만 바라보면서 살 것 같군.> 마이클이 내 말을 받았네. <바로 그게 내 문제야.>
_ 장자크 상페, 『뉴욕스케치』
239. 휴식의 철학
애니 페이슨 콜 지음 / 김지은 옮김 / 책읽는귀족 / 2018
아무것도 안 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거창하게 가르쳐 주는 책이다.
약간 이런 느낌이다. 자연의 섭리! 자연의 섭리대로만 하면 돼! 자연의 섭리가 뭐냐 하면, 그대로만 하면 되는 바로 그것이 자연의 섭리야! 좋은 말이고 옳은 말인데, 뜻밖에 실용적인 부분도 없지 않은데, 말투가 사짜 같아서 문제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완벽한 자연의 섭리에 불응하면서 병이 생겼다. 그러니 이 섭리를 꾸준히 성실하게 따르면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자연은 더없이 친절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야 할 길을 1할만 가면, 나머지 9할은 자연이 돕는다. 항상 자연은 어디 끼어들 틈이 없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우리를 지켜본다. 그러다가 아주 살짝이라도 우리가 자연을 향해 몸을 돌리면 곧바로 우리 손을 덥석 잡는다. 그런데 우리는 자연의 단순한 법칙을 받아들여서 묵묵히 그 완벽한 길을 걸어가지 않는다. 인위적인 수단을 써서 보다 빨리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려고 무리수를 둔다. 그러다가 도리어 자연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_ 애니 패이슨 콜, 『휴식의 철학』
240. 동네의사와 기본소득
정상훈 지음 / 루아크 / 2020
개인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지역 주민으로서, 동네 의사로서 실제로 만나고 접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먼저 밑그림으로 그려놓은 다음, 기본소득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견해로 전체 그림을 완성한다. 이런 구성은 실체감 있어서 좋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가 푸코 (개론서로서도 나쁘지 않았지만) 훌륭한 책인 이유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현실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에 개념을 비비기 때문이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처음 깨닫게 된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언급하고자 다짐한 거라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출판사 <루아크>는 진짜 내 맘에 쏙 드는 책들을 많이 만든다.
이 책은 기본소득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쓴 책이 아니다. 그것은 내 역할이 아니며, 본격적인 이론서는 국내에 꽤 여러 권 나와 있다. 그런데도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나름의 욕심 때문이었다. 아직 기본소득은 사람들의 ‘운동’이라기보다는 이론가나 정치인의 ‘주장’에 머물고 있다. 제도나 정책 하나 바뀐다고 좋은 세상이 올 리는 없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정책은 도입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쉼 없이 타협과 왜곡을 겪는다. 사람들의 운동이 없다면 제도는 본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뒷걸음질 치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이 책에서 기본소득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 그리고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려 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만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_ 정상훈, 『동네의사와 기본소득』
--- 읽는 ---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 안녕하신가영
도시로 보는 유럽사 / 백승종
질문하는 법 / 윌리엄 고드윈
유행의 시대 / 지그문트 바우만
몸의 일기 / 다니엘 페나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