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처음부터 욕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범인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검찰에 잡혀가는 장면부터 봤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가장 큰 당위성은 커다란 스크린인데, 초반 약 3분 가량을 보지 못한 것이다. 타이틀 올라가는 것도 당연히 못 봤다.
보기 싫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서 날짜를 골라서 예매한 건데, 늦다니... 이건 예의가 아니다. 숨 헐떡거리며 극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자리를 열심히 찾는데, F열을 J열로 잘못 보고 들어가서 또 한참을 헤맸다. 정신이 없으면 F를 J로 잘못 볼 수도 있구나. T.T J열의 친절한 남자분께 매우 죄송하다.
1달쯤 전, ㄴ님께 드리는 페이퍼에도 썼듯이 이 영화는 원래 연극이다. 연극을 하려고 장진이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여 LG아트센터 개관기념 공연으로 2000년에 상연한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살을 많이 붙였다. 그 때는 신하균이 벨보이로 나와 마지막에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줬었고, 검사 역할이 이렇게 크지도 않았었고, 여검사는 있지도 않았던 것 같고. 그 당시 반응이 좋았던 거짓말 탐지기 장면은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대사가 고스란히 생각나는 걸 보니...
이 영화는 얼핏 <혈의 누>와 비슷한 구성이다. 범인을 잡으러 왔는데, 계속 살인이 일어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검찰은 괴로워하고, 그러다가 굿판을 벌이고... 그러나 감독이 관객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천지차다.
범죄자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하는 검사는 의기양양하다. 심증만으로도 감방에서 몇 년은 썩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그 기세라니... 장진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 이번엔 영화가 대단히 언어적이어서 능수능란한 언어망을 가지고 있는 배우를 원했다. 설경구를 캐스팅하고 싶었지만, 얼마 전 제작기에도 썼듯이(<씨네21> 514호), <공공의 적2> 이후여서 “에이씨, 또 검사야? 나 안 해!” 그러더라. 한석규에게도 시나리오를 넣었었고. 차승원은 차선이었고 이 정도 다이얼로그를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다. 내 바람 이상으로 해주어서 너무 고맙다.
차승원은 믿음직하지 못한 배우였다. 그도 이러한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을까? 그는 정통 연기수업을 받지 않은 모델 출신 몸짱 배우니까... 다른 데서 굴러먹다 온 사람은 참 인정받기 힘들다. 어쨌든, 요즘 차승원은 시원한 머리모양으로 라면 선전도 하던데... 이 사람은 눈빛이 강렬하다. 뭐랄까? 그 강렬한 눈빛으로 "나한테 이 영화 배역 안 주면 나 정말 서운해요." 라며 감독을 설득할 것 같다. 차승원 같은 사람은 별로다. 솔직히 그랬다. 예전에 <세기말>이란 영화를 찍은 후 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내심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타는 거 보더니 박수도 안 치고 좀 있다가 그냥 나가버리는 걸 보고 '저 사람 보통이 아닌데? 그렇다고 저따위 매너로 반응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했었다.
영화는 액면 그대로다. 그 안에 숨어있는 내용은 그저 장면을 하나하나 따라간 관객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력한 용의자인 그는 죽은 그녀의 친동생인 것이고, 누나가 기업 회장과 놀아나는 것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동생이 정작 누군가한테 살해당했다는 것 때문에 한편으론 죽은 것이 기쁘면서도 이미 죽은 누나에 대한 쓸쓸한 감정, 가족이었으므로 밀려드는 그 슬픈 감정을 그렇게 표현한 거라고 생각한다.

신하균 가슴이 어찌나 크던지.. 정말 여자가 아닌가 살짝 의심했다. 풋~
차승원과 신하균의 투톱 영화지만, 확실히 차승원이 좀 뒤진다. 신하균의 시원한 발성(거짓말 탐지기 장면)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6자회담하는 뽕팔이들과의 미팅에서 할리 데이비슨 점퍼를 입어준 센스는 역시... 누가 골랐는지 멋졌어!
1998년 장진이 첫 작품 <기막힌 사내들>을 선보였을 때 흥행엔 참패했고, 평단의 반응은 골 때렸다. 난 비디오로 빌려봤는데 뮤지컬처럼 다함께 노래부르는 장면, 그림자놀이를 하는 다분히 연극적인 장면 등등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맥을 이어오는 장진식 코미디도...
그 때 박평식이란 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 잡탕이 덜 끓었다. ★★★ (별점은 내 기억력에 따른 것임)
그럼, 지금의 평은 어떨까? 익어가는 장진표 잡탕. 남은 과제는 화력의 조절 ★★★☆ (별점이 반 개 늘었다)
장진은 재능이 매우 뛰어난 것 같다. <개같은 날의 오후> 시나리오로 영화계에 데뷔해 장진 사단이란 별칭(본인 입장에선 그리 기분좋지 않을 것 같지만)을 들으며 많은 배우들(학교 선후배들이 대부분)을 연기하게 했고, 김정권이라는 감독을 데뷔하게 했으며, 그렇게 순항하던 중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서 처음으로 쓴 맛을 보고, 이번에 다시 두 편으로 널리 자신을 알리는 그.. 여전히 난 장진의 영화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