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속도가 책 사는 속도를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고, 책은 날로 쌓여가는데도 책은 또 사고 있다. 4월에 산 책들 소개. 그러나 4월은 아직 절반도 가지 않았고, 또 사려고 담아둔 책도 또 있다능.

    


이 박람강기 프로젝트는 작가들이 글을 어떻게 썼나에 초점을 맞춘 책들을 시리즈로 내고 있다. 예컨대 레이먼드 챈들러의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같은 책. 이 시리즈 지난번 출간 책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인데, 이것도 무척 흥미가 당긴다. 암튼 사라 파레츠키의 이 책은 나오자마자 닥치고 살 정도로 열광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남성 작가들이 팜므파탈 아니면 집 안의 천사로만 그려내던 소설 속 여성상을 바꾸기 위해 강인한 여성 탐정 ‘V. I. 워쇼스키’를 창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즐겨 읽었던 파레츠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슬립>을 읽으며 그의 여성 묘사에 화가 나서 “소설과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범죄 소설을 쓰겠다”고 맹세하고 그런 인물을 창조했다. 너무나 멋지지 않은가. 게다가 미스터리와 범죄소설을 쓰려는 여성들을 돕는 조직 ‘시스터스 인 크라임’을 설립하기도 했다. 진짜 너무 기대되는 책.



    
일본 배우 중에 단연 존재감 있는 이가 키키 키린아닐까. 마음 산책 이 말 시리즈는 좋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종종 있어서 살까말까했는데, 지은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인 걸 보고 믿고 구매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인터뷰어로 나선 키키 키린 인터뷰집으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2008년부터 키키가 세상을 떠난 2018년 사이 나눈 여섯 번의 대담이 실려 있다. 두 사람의 깊이 있는 대화가 기대된다.




국내 초역작인 데다가 명성이 자자한데 읽지 않고 베길 수 있는가. ‘실존주의, 부조리, 마술적 사실주의가 녹아든 이탈리아 문학계의 기인이 쓴 20세기 환상문학의 고전’이라는 말이 한껏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소싯적인 십대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죄와 벌>. 언제고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는데, 이 문학동네 번역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드디어 이 책으로 다시 읽기 도전.   




4월 초에 사서 읽고 리뷰까지 마친 책. 극찬이 많아서 궁금했는데, 리뷰대회도 있어서 겸사겸사 읽었다. 극추천. 중고로 되팔면 2만원 넘게 받을 수 있지만, 책꽂이에 고이 모셔둠.




요즘 읽고 있는 책. 내용 전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가 의외의 전개에 처음엔 깜짝 놀랐다. 흥미진진하다. ‘여성의 삶과 인생관을 가장 우아하게 그려내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시 버튼의 세 번째 장편. 런던과 뉴욕을 배경으로 삼십 년이라는 시차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 “여성들에게 바치는 나의 러브레터”라는 띠지 문구가 책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아, 여러분 이 책도 리뷰대회 있습니!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은 최근 읽은 어떤 책에서 인상 깊게 이야기해, 꼭 읽어봐야지 싶어서 메모해뒀는데(정작 이 책을 알게 해준 그 책이 뭔지 생각이 안남;), <피에 젖은 땅>에서도 또 쾨슬러가 언급되어서 드디어 구매. 혁명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동지를 지키고 헌신했던 이들이 혁명 이후 왜 서로를 의심하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게 되었는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와 더불어 공산주의 정치제제에 대한 20세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게 프리모 레비는 쉽게 읽을 수 없는 작가 중 하나이다. 읽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달까. 그의 죽음도 그렇고. 이 책은 그래서 출간 당시 차마 사지 못했는데, 이번에 <피에 젖은 땅> 읽고 나니 자, 이제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의 자서전. 그에 대해서도 어떤 책을 읽다가 알게 되어 호기심이 생겼는데.... (역시 그 책은 기억이 안 난다;) 세계 지성사의 페이지들을 장식하고 있는 학자들에 견줄 만한 성취를 보였음에도 생전엔 이름을 떨치지 못했던 비코. 난 이렇게 약간 소외자 같은 인물에 관심이 좀 많다. 인류 문명 전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하고도 방대한 사유는 놀라웠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조차 영어, 프랑스어 등의 번역본을 통해서야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난해하다는 꼬리표가 언제나 따라붙었다고.




중남미 환상문학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중남미 작가 작품을 다양하게 읽지 못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도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인데(여태 이 작가 작품 하나도 안 읽음), 드디어 읽기로 결심. ‘바르가스 요사가 직접 꼽은 대표작’이자 ‘1950년대 뻬루 독재 정권하의 사회상을 나락으로 추락한 인물들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골라봤다. 마술적&환상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게 중요함.


중고로 구매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 우아, 절판된 이 책이 알라딘 중고에 떠서 6천 원에 구매. 그런데 여러분, 이 책 어떤 출판사에서 작년에 판권 사갔다고 합니다. 곧 새 책 나올 듯요.


    


아껴둔 엔도 슈사쿠의 <침묵> 이제 드디어 읽으려고.




델핀 드 비강 작품은 아주 강렬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계속 손이 간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성장소설. 지적 조숙아 ‘루’와 홈리스 소녀 ‘노’ 두 소녀의 만남을 통해 찬란한 성장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고. 성장소설다운 애틋함과 묵직한 메시지를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평.




앨리스 먼로의 유일한 장편 소설. 이 작품도 어떤 책에서 극찬해서 더 흥미가 생겼음(르 귄 여사 책이었나....?). 1940년대 온타리오주 시골 마을에서 주인공 델 조던이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델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짐.
    



타임 패러독스 SF의 영원한 고전, 상대성 이론의 쌍둥이 역설을 소재로 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숨은 걸작, 25년만의 새 번역판.




순전히 사라 파레츠키 <세 점박이 포> 읽으려고 구매. 사라 파레츠키의 ‘V. I. 워쇼스키’가 활약하는 작품들은 <블랙 리스트>를 비롯해 다 절판임. 누가 좀 다시 내주시라~!




폴스타프 님이 ‘뜻과 내용은 별개로 하고 활자를 다 읽었다는데 의의를 두겠다’고 말한 이 작품. 그러나 르 귄 여사는 극찬한 이 작품.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이거 배지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선물용으로 샀는데, 나도 갖고 싶으네요.... 그냥 내가 가질까...?

내가 산 건 피너츠인데, 상품 이미지로는 둘리가 나오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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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4-13 1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히히. 잠자냥님과는 당최 겹치는 책이 없는디 이번엔 우주만화 당첨!! ^^ 저도 르귄 언니 땀시 저 책 구매했는데, 폴스타프님 평을 보니, 일단 모셔만 놓을 확률이 높네요^^;;;

잠자냥 2021-04-13 12:24   좋아요 0 | URL
르 귄 님이 낚은 분이 또 여기 계셨군요. 저도 일단 읽을 책이 밀려서 잠시 모셔두기로....ㅋ

coolcat329 2021-04-13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제목에 ‘우주‘가 들어가면 심하게 거부감이 드네요 ㅋㅋ
타타르, 침묵은 저도 읽고 싶은 책이구요, 요사는 단 한 권 만 읽어봤지만 팬이 되고 싶었어요.

잠자냥 2021-04-13 12:25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도 우주~ 이런 거 좀 안 좋아했는데요, 요즘은 SF도 꽤 재미나더라고요.
단 한 권으로도 팬이 되고 싶어진 요사의 그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도 다음에 읽어보게요. ㅎㅎ

coolcat329 2021-04-13 12:34   좋아요 1 | URL
아 잠자냥님 읽으셨을거 같은데요, <새엄마 찬양>입니다. 발칙한 소설이죠 😆😆😆

잠자냥 2021-04-13 13:16   좋아요 0 | URL
요사는 이제 첫 도전입니다! 다음에 그 책도 읽어볼게요~

새파랑 2021-04-13 1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키키키린 예전에 나온 책 말고 새로 나왔나 보내요 ㅋ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ㅎㅎ 그리고 반가운 죄와벌~! 이런 글은 너무 재미있네요^^

잠자냥 2021-04-13 12:26   좋아요 2 | URL
네, 올해 4월에 나온 아주 따끈한 새 책입니다. 아마 이 책은 인터뷰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란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남들 책 산 이야기 정말 재밌죠? ㅎㅎ

미미 2021-04-13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지우개만이 아니라 배지가 있었네요!!!(그런 줄도 모르고 주문할때 떴는데 선택안함ㅠ)올려주신 책들 잠자냥님 리뷰 기대되요.😆
일단 저는 ‘패러독스‘에 끌려 <별을 위한 시간>담아갑니다.ㅎㅎ

잠자냥 2021-04-13 12:27   좋아요 3 | URL
지우개만 있었음 저도 선택 안했을 텐데 그 배지가 그만 너무나 매력적이라... ㅎ
네, 열심히 읽고 리뷰 남기겠습니다.

Falstaff 2021-04-13 12: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고난 다음에 알았는데요, 쾨슬러는 (친한)이웃의 아내와 딸을 강간했거나 시도한 것이 나중에 들통나 문제가 된 인물이라고 그러더군요.
<우주만화>는 중고로 사시기 잘했습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4-13 13:17   좋아요 2 | URL
으이그 쓰레기인간이었군요. -.-

Conan 2021-04-13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부지런히 읽고 있습니다만 읽는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기는 역부족입니다.....

잠자냥 2021-04-13 13:27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그 속도가 반대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syo 2021-04-13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는 속도보다 읽는 속도가 빠르기는 한데,
사 놓은 거 안 읽고 자꾸 다른 거 빌려보고 하는 바람에 결국 안 읽고 쌓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잠자냥 2021-04-13 14:23   좋아요 1 | URL
syo님은 정말 읽는 속도 놀라움. 책을 눈으로 씹어드시는 것 같아요.
어쩜 그렇게 빨리 많이 읽는지 부럽사옵니다.

다락방 2021-04-13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이런 페이퍼 진짜 너무 좋고 싫어요. 막 또 장바구니 쓸어담고 그래야 되니까.. 후후
어제도 책 샀는데, 저도 컨페션 샀는데 아직 안왔어요.
리뷰대회는 아무거나 하나라도 참가해보고 싶지만 저 이번달 여성주의 책도 이제 막 시작한터라(글씨가 너무 작지 뭡니까!) 제가 도대체 뭘 읽고 쓰기나 할 수 있을지 ㅠㅠ
저 지우개는 너무 귀여워서 저도 혹했지만 쓸 일이 없기 때문에 패쓰했어요. 나름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입니다. 엣헴- (정말?)
죄와벌 저는 열린책들로 읽었는데 문동으로 다시 살까요? (대체 왜..)

그럼 이만.

잠자냥 2021-04-13 16:50   좋아요 0 | URL
너무 좋고 싫다는 말 거참 뭔지 알겠네....ㅋㅋㅋㅋㅋ
4월은 아직 많이 남았어요. 리뷰 대회 열심히 읽고 도전하세요~~
지우개는 조카 주지 ㅋㅋㅋㅋ
죄와벌은 사지 마요! 냉철한 이성 차려욧!!!!

stella.K 2021-04-1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맨 첫번째로 소개하신 책은 저도 읽고 싶네요.
정말 작품에서 남성이 여성을 그릴 때 어쩌면 개같이 그려 놓던지
화가 나더군요. 또 그건 생각 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특히 영화 <롤리타>를 보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뭐 이렇게 말하면 여성 작가도 남자들 제대로 알고 그리는 건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서로 배울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암튼 작가가 참 멋있군요.

저도 <죄와벌>을 오래 전에 읽긴 했는데 지난 주 동서문화사 걸로 사 봤습니다.
일전에 박균호님이 책에서 번역자를 극찬을 하시길래 어떤가 싶어서.
마음으론 문동판을 사고 싶긴했습니다만.
암튼 잘 보고 갑니다.^^

잠자냥 2021-04-13 20:38   좋아요 0 | URL
넵! 첫 번째 책 기회되신다면 읽어보세요~ 저도 아직 읽기 전이라 뭐라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작가의 생각만큼은 극공감합니다.

<죄와 벌> 동서문화사 번역이 그렇게 좋군요! 궁금해지네요. ㅎㅎ
 
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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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은 처음 몇 쪽만 읽어도 상처투성이가 된다. 너덜너덜해진다.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역사책은 무수히 많다. 많은 사람들이 2차 대전에 대해서라면 알만큼 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참혹한 전쟁을 다룬 책은 아주 많다. 어디 책만 그러할까, 영화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이 전쟁은 즐겨 쓰는 소재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주로 히틀러와 나치스가 벌인 유대인 대학살이 중심을 이룬다. 최근에는 급기야 히틀러를 희화화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조조 래빗> 같은 영화). 그런데 정말 2차 세계 대전은 미치광이 히틀러와 그를 신봉한 나치스, 그에 부역한 독일국민에 의해 이루어진 홀로코스트, 그것도 아우슈비츠 같은 집단 수용소에서 일어난, 유대인 대학살이 전부였을까. 물론 오늘날 아우슈비츠는 홀로코스트의 대명사이며 20세기 악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그런 시선을 경계해야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2차 세계 대전은 히틀러와 스탈린,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러시아 사이에 끼어있었던 블러드랜드, 즉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들에 이른 넓은 땅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났다. 그 희생자 수는 무려 1400만 명에 이른다. 스나이더의 주장에 따르자면, 2차 세계 대전의 비극은 우리가 잘 아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트레블린카, 헤움노, 베우제츠 등 몇몇 집단학살 수용소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라 동유럽의 저 넓은 땅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 기간도 스탈린주의와 국가사회주의가 세력을 굳히던 시기(1933~1938), 독일과 소련의 합동 폴란드 침공(1939~1941), 독소 전쟁(1941~1945)에 이르며, 희생자들은 주로 유대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발트 연안국가들로 그 땅에 살고 있던 평범한 주민들이었다. 1400만 명이 1933년에서 1945, 겨우 12년 동안 학살되던 때는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의 집권기이다. 스나이더는 전쟁보다는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의 잔혹한 정책 때문에 희생자가 대량 발생되었다고 본다. 그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성, 어린이, 노인이었다. <피에 젖은 땅>을 읽기 전, 나는 스탈린의 실체는 이렇게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피의 대숙청쯤은 알고 있었어도 스탈린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토록 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빼앗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히틀러의 범죄 행위는 그래도 많이 알려졌는데, 그에 비해 왜 스탈린의 범죄 행위는 은폐되고 때로는 긍정적인 평가까지 나오는 것일까.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동부 전선에서 나치 독일을 꺾었고, 그리하여 스탈린은 수백만 명으로부터 감사와 함께 전후 유럽 질서에서 중요한 축을 얻었다. 나치 독일, 파시즘을 꺾은 영웅 신화가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스탈린이 저지른 대학살량은 히틀러의 그것과 맞먹는다. 비 전시 학살만 따져보면 오히려 한수 위이다. 스탈린은 소련을 지키고 현대화한다는 명목으로 1930년대에 수백만 명을 인위적으로 굶겨죽이고 75만 명의 총살을 지휘했다. 히틀러가 다른 나라 국민을 죽인 정도에 전혀 뒤지지 않을 강도로 자국민을 죽였다. 1933년에서 1945년까지 블러드랜드에서는 1400만 명이 타살당했으며 그 가운데 3분의 1은 소련 땅에서 숨졌다. 이 희생자들은 모두 소련 또는 나치의 살육 정책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그 둘 사이의 전쟁으로 숨진 것이 아니다. 스탈린의 범죄는 흔히 러시아에 지은 죄악으로 여겨지며 히틀러의 범죄 또한 독일에 대한 죄악으로 불린다. 그러나 소련의 가장 심한 만행은 비 러시아 변경지대에서 저질러졌고, 나치 또한 폴란드처럼 독일 바깥에서 살육의 대부분을 자행했다. 하지만 20세기 대량학살은 몇몇 집단수용소에만 일어난 일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국가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희생자 대다수를 낳은 곳은 집단수용소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생생히 증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량학살의 장소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20세기를 보는 시각을 오도할 수 있다고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그 잔혹함과 끔찍함 때문에 읽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지는 구절들이 많다. 정말이지 이것이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중에서도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잔혹 그 자체이다. 스탈린은 집단화정책을 통해 통제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비옥한 땅이었던 우크라이나에 인위적인 기아를 일으킨다. 굶주림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이런 굶주림은 마침내 식인 행위를 불러온다. 소련 령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족이 그 가장 약한 식구를 잡아먹었다. 보통 그 대상은 어린아이들로, 자기 자식을 죽이고 먹은 부모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어머니는 자신과 딸의 식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잡아서 요리했다. 친척들에 의해 목숨을 건진 여섯 살짜리 소녀는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모습이었다. 어떤 가족은 며느리를 죽이고, 그녀의 머리통은 돼지밥으로 준 다음 몸뚱이는 구워서 잔치를 벌였다’(102~103). 1932년에서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최소한 2505명이 식인 행위 혐의로 처벌받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대기근, 대학살은 여전히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우크라이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식인 이야기를 숨기려고 한다. 모스크바 통신원이자 1932년 퓰리처상을 받은 월터 듀런티는 수백만 명이 굶주려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소련의 기아 사태에 대한 내용을 어이없는 괴담이라고 일축하면서 실제로 기아 따위는 없고” “다만 영양부족 때문에 전염병이 번져서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라면서 소련 쪽 주장과 비슷한 왜곡된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아가 더 큰 목표를 위한 과정이라는 입장을 고집했다.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113). 한편 히틀러는 우크라이나 기근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활용해, 마르크스주의의 폐단을 증명하는 증거로 사용한다. 스탈린의 정책은 히틀러에게 득이 된 것이다.

 

이렇게 1933년에서 1945년까지 블러드랜드에서 살육된 1400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 중 절반 이상은 식량을 배급받지 못해 죽었다. 홀로코스트 다음가는 두 가지 최대 대량학살, 1930년대에 스탈린이 시행한 의도적 굶주림과 1940년대 초 히틀러의 소련 전쟁포로 굶기기는 이런 식의 학살이었다. 굶겨죽이기 다음에는 총살, 그다음은 가스실이었다. 1937년에서 1938년까지 스탈린의 대숙청 때 거의 70만 명에 이르는 소련 시민이 총살되었다. 소수 민족이라면 무릎을 꿇리고 미친개처럼 쏴 죽여야 한다.”는 말은 스탈린의 대공포 시대에 민족 박멸 작전을 실행하던 공산당 지도자의 말이었다. 1930년대 후반 소련은 그 어느 곳보다 민족적 박해가 심한 곳이었다. 스탈린은 소련을 구성하는 민족 가운데 다수를 대량 살육하라고 지시했다. 게다가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공동 침공 이후 21개월 동안 독일인과 소련인들은 각각 폴란드의 절반을 지배하면서 비슷한 이유와 비슷한 숫자의 폴란드 민간인들을 죽였다. <피에 젖은 땅>은 이렇듯 폴란드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러시아 서부,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들에 이르는 넓은 땅에서 스탈린과 히틀러에 의해 이뤄진 대량학살의 면모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런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스나이더는 나치와 소련의 집권은 우리가 세계를 평가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나치의 범죄가 역사적으로 몹시 심각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스탈린의 그 참혹한 범죄는 새로운 근대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정책을 쓰든 그 방향과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수단과 과정 또한 모두 정당할까?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잔혹한 방법을 써서 닭을 잡든, 달걀을 깨든 오믈렛만 만들면 그 모든 방법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소련 지지자들은 소련이 나치 독일의 적이기 때문에 스탈린을 비판하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1936년 즈음 유럽에서는 소련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은 파시즘과 히틀러를 옹호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이 전쟁을 유대인 해방전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한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소련. 미국, 영국의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고통은 독일 점령의 사악함의 한 측면으로 여겨져야지, 그 자체로 주목받아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으기도 한다. 반유대주의의 결속이 역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탈린에게는 증오스러운 파시스트 침략자들에게 가열 차게 저항함으로써 조국의 영예를 지켰노라단합된 소련 국민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진다.

 

전쟁이 끝난 뒤 유럽의 유대인들의 오랜 고향은 대부분 공산 국가의 영토가 되었고, 새로운 종류의 반유대주의를 세상에 선보이면서 스탈린은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축소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국제적인 집단 기억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주로 독일과 서유럽 유대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희생자 가운데 소규모 집단들인 아우슈비츠에 집중되었다. 서구와 미국 역사가와 기념운동가들은 스탈린주의적 역사 왜곡을 시정하려 하면서도 아우슈비츠 동쪽에서 희생된 거의 500만 명에 가까운 유대인과 나치에게 죽은 거의 500만 명의 비유대인 희생자는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홀로코스트는 많은 유대인을 공산주의로 이끌었으며 소련을 해방자로 여기는 이념을 따르도록 한다. 스탈린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지도적 유대 공산주의자들이 홀로코스트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공산당이 유럽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분위기에서 홀로코스트는 그 실체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었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동방에서 특히 유대인들이 많이 죽어간 사실과 서방에서의 지리적 조건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홀로코스트는 유럽사에서 제자리를 찾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스탈린과 히틀러, 소련과 나치 독일 모두는 유토피아를 꿈꿨다. 이상적인 세계가 비전으로 제시되고, 그 비전은 현실과 타협하면서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고 스나이더는 주장한다. 이데올로기는 대량학살의 도덕적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살해하는 사람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범죄자를 단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따라서 그의 존재가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는 편리하다. 스나이더는 악은 선에 의존한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한다. 모여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헌신적이며 그 일이 옳다고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힘러도, 괴링도, 괴벨스도, 아이히만도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었다. 스탈린주의 또한 정치뿐 아니라 도덕 체계였다. 많은 스탈린주의자와 그 동조자들은 대기근과 대공포가 빚은 희생이 정의롭고 안전한 소련 국가를 세우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대량학살에 대한 정당화도 당장의 악이 미래의 선이 되리라는 이야기도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큰 고통이 큰 진보와 연관되리라 믿는 것은 일종의 미신적 마조히즘’(705)이라고 일축한다.

 

<피에 젖은 땅>은 이렇게 축소, 은폐되었거나 때로는 왜곡된 스탈린-히틀러의 2차 세계 대전의 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공포와 두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어떤 역사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술 방식이다. 희생자는 대개 죽은 다음 숫자로 알려질 뿐이었다. 그런데 스나이더는 희생자가 살아있던 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왜 이렇듯 희생자의 삶에 주목했을까. 그에 따르면 희생자들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과 진정으로 동일시되고 싶다면 그들의 죽음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봐야 한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내세우며 어떤 정책을 미화하거나 스스로 희생자를 동일시하기는 쉽다.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도덕적 위험은 누군가가 희생자가 될 때보다 범죄자나 방관자가 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히틀러나 스탈린을 인간이 아닌 악마라고, 그 부역자들을 인간이 아닌 인간 이하라고 부르면서 악()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다른 인간을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신이 인간 이하라고 단호히 말한다.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부인해버리면 윤리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그런 유혹에 굴복해 다른 사람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일은 나치의 입장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이해를 포기하는 일, 다시 말해 역사를 버리는 일이다.(703)

 

희생자 수는 부풀려지거나 축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가 없어지면 숫자는 부풀려지고 기억이 억눌려지면, 공포스러운 상황이 찾아오기 쉽다. 희생자는 애도자의 뒤에 가려져 있다. 살육자는 숫자들 뒤에 숨어 있다. 그저 막대한 죽음의 숫자를 읊조리는 것은 익명성의 흐름에 숨어버리는 일이다. 개별적인 삶을 부수적으로 다루는 숫자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개인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정확한 숫자가 전부는 아니라고 스나이더는 주장한다. 우리는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 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나치와 소련 체제는 사람들을 숫자로 바꿔버렸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단지 추정치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인간의 마음을 가진 우리로서는 그런 숫자들을 사람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은 우리의 인간성마저 개조했다는 뜻이 될 것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 말은 또한 이 책에서 언급된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의 윤리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각자가 타인의 고독을 떠올리는 것’(506)이라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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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1-04-12 11: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이 너무 좋습니다.이 책에 대해 말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저게는 어렵고 무거운 분야인데, 이렇게 잠자냥 님의 리뷰로 읽고 배우네요.

잠자냥 2021-04-12 11:57   좋아요 5 | URL
이 책을 읽고 나니 스탈린이나 히틀러보다는 동유럽을 예전의 눈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휴... 폴란드 사람들과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견디고 살았을까, 살고 있을까 대단하고 심정적으로 참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꽤 긴 책입니다만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꼭 읽어보세요.

미미 2021-04-12 1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국민을 죽인게 가장 비난받을 지점이라 생각해요. 관련된 다큐 보면서도 (대역인데)왜그렇게 잔인하게 보이던지.. 이 책 영향인듯.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 이 책에 더없이 적합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잠자냥 2021-04-12 11:59   좋아요 3 | URL
그런데 그 자국민들이 스탈린을 요즘 다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게 참 역설적입니다. 하긴 더 멀리 갈 것도 없지요. 우리나라도 그런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으니까요. 그래서 역사책을 읽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ㅠ_ㅠ

다락방 2021-04-12 1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어보려고 샀는데 이 리뷰를 읽고나니 과연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싶네요. 다 읽고 이렇게 리뷰 쓰신 것에 대해 고생하셨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독서는 고생했다는 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잠자냥 2021-04-12 12:03   좋아요 5 | URL
어떤 책은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지요. 이 책이 그런 것 같아요. 이 책은 읽단 들고 읽기도 참 무겁.... 누워서 읽다가 졸면 큰일납니다. ㅋㅋㅋㅋ 얼굴 위로 떨어지면 캭-!

mini74 2021-04-12 1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뭉클합니다. 전쟁관련 통계 등에서 매번 몇만 희생 등 숫자로만 볼 때 그 끔찍함이 잘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 통계나 숫자가 참상을 잘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왜곡하는 면이나 개개인을 감추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잠자냥 2021-04-12 14:15   좋아요 3 | URL
네, 희생자를 숫자로 기록하고, 숫자로만 기억될 때 비극의 참상은 흐려지고, 그런 역사가 또 되풀이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숫자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 개개인을 한 사람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케이 2021-04-21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크라이나 이야기는 진심 너무 충격적이네요. 어렸을 때 마리퀴리 위인전을 읽는데, 폴란드어로 수업을 듣다가 러시아 교육관이 온단 소식에 학생들 선생님 모두 급히 폴란드 책 다 숨기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마리 퀴리가 울면서 왜 내 조국 폴란드는 힘이 없나 라고 우는데 우리나라 일제시대랑 비슷했구나.. 했거든요. 현재 유태인들은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계속 추모하고 있는 반면 동유럽은 여전히 낙후지역이라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별 얘긴 아니지만 고등학교 시절 국제 펜팔을 했는데 그때 매칭된 사람이 폴란드 소년이었거든요. 나중에 자기 사진을 보냈는데 굉장한 꽃미남이었어서 저에겐 폴란드가 좋은 나라로 남아있어요.ㅋㅋ 그리고 강간범에게 거세형을 내리는 아주 바람직한 국가 중 하나기도 하고요.책과 관련없는 댓글이지만, 외롭고 치열한 육아 중에도 올리신 글 잘 읽고 있다고 소식 전합니다.

잠자냥 2021-04-21 10:12   좋아요 1 | URL
저는 좋아하는 축구 선수 중에 우크라이나 선수가 있었어서 ㅎㅎㅎ 그래도 좀 관심이(?) 있는 나라였는데, 스탈린의 인위적 기아정책으로 극심한 굶주림을 겪으면서 인육을 먹는 지경까지 간 것은 정말 저도 이번에 거의 처음으로 알았어요. ㅠㅠ 학계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해서 거의 파묻혔던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번에 자세히 살펴보니 폴란드는 지정학적으로 정말 최악의 위치에 있더라고요. 하필이면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서... ㅠ_ㅠ 만일 포르투갈 정도의 위치에 이 나라가 있었다면 2차 대전에서 그렇게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ㅋㅋㅋㅋㅋㅋ 강간범 거세형 ㅋㅋㅋㅋ 폴란드가 그런 바람직한 국가였군요. ㅎㅎㅎㅎㅎ

외롭고 치열한 육아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저는 육아를 해본 적은 없지만 제 동생들을 보니 정말 외롭고 치열하고... 잠도 못자는 극강의 고문(?)을 받고 있더라고요. 화이팅입니다!
 
시골 생활 풍경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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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일란이라는 가상의 마을에 사는 여러 사람들의 삶이 섬세하고 조용하게 그려진다. 그들 모두는 제 나름대로 아픔도 있고 말못할 비밀도 있고 고독하고 쓸쓸하니, 사람 사는 풍경이 다 그렇지 싶어진다. 아모스 오즈, 내겐 좀 지루한 작가였는데 이 단편집 읽고나니 다시 읽어도 괜찮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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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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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에 대해 그래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간의 내 믿음을 깨버린 책. 2차대전은 왜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만 집중되었을까? 그에 비하면 스탈린의 끔찍한 만행은 너무 축소되어 왔다. 이 책은 그 진실을 밝힌다. 책을 읽고 나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도 진심으로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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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4-08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으셨군요. 스탈린과 2차대전 궁금했었는데 잠자냥님 통해 우연히 알게되서 좋았네요. 저도 조만간 살 거 같습니다.

잠자냥 2021-04-08 22:01   좋아요 0 | URL
네 흥미진진해서 금방(?) 읽으실 거예요.

다락방 2021-04-09 15: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이 비싼 책에 땡투... 재벌 되세요!

잠자냥 2021-04-09 15:18   좋아요 1 | URL
헐 이럴수가 이렇게 기쁜 일이... 덩더쿵~
 
고양이와 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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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들에게 살아있는 쥐를 줘본 적은 없다. 쥐 모양 장난감을 던져준 적은 있는데, 녀석들은 처음에는 흥미를 보이다가 곧 싫증을 낸다. 그러다가 내가 쥐를 움직이게 하면 다시 흥미를 보인다. 녀석들이 살아 있는 쥐를 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쥐가 움직이지 않으면, 또는 애초에 죽은 쥐라면 고양이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만일 내가 내 고양이들을 즐겁게 하고자 살아 있는 쥐를 녀석들 앞에 가져다준다면,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가 문제일까, 그 쥐를 가져다 준 내가 문제일까? 귄터 그라스의 <고양이와 쥐>는 제목과 달리 고양이와 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고양이와 쥐가 등장한다. 아니, 고양이는 등장해도 쥐는 등장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쥐와 비슷한 무언가가 등장할 뿐이다. 쥐와 비슷한 그것은 ‘요아힘 말케’의 비정상이리만치 큰 ‘울대뼈’이다.

작품은 풀밭에 누워 잠든 요아힘 말케의 모습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작중 화자인 ‘나’, 즉 ‘필렌츠’는 때마침 그 옆에서 이를 앓고 있다. 그때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고양이는 연습하며 다가온다. 말케의 크 커다란 울대뼈가 고양이의 눈에 띈 것이다. ‘그것은 크고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그림자를 드리웠으므로’ 검은 고양이가 쥐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쥐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사냥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한 것이다. 고양이는 ‘나’와 말케 사이에서 몸을 웅크려 뛸 자세를 취한다. 말케와 나, 그리고 고양이는 삼각구도를 이뤘고 그새 나의 이빨은 침묵하며 더 이상 아픔을 호소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드디어 말케의 후두에 뛰어오른다. 그 장면을 필렌츠는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 중 누군가 고양이를 들어 말케의 목에 올려놓았던가, 아니면 이가 아팠거나 그렇지 않았던 내가 고양이를 들어 올려 말케의 쥐를 보여주었던가.’ 이윽고 말케는 비명을 지른다. 다행히 대수롭지 않은 찰과상을 입을 뿐이다. 그러나 필렌츠는 이렇게 말한다. ‘나, 너의 쥐를 한 마리의 그리고 모든 고양이의 눈에 띄게 했던 나는 이제 써야만 한다. 자꾸만 너의 울대뼈를 손에 쥐고 그것이 승리했거나 패배했던 모든 장소로 데려가라고 강요한다.’(9쪽)

말케와 나, 고양이가 삼각구도를 이루었을 때 ‘나’는 고양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두 관찰한다. 고양이가 나타난 것부터 말케의 커다란 울대뼈에 호기심, 아니 정확히는 그것을 사냥감으로 인식하고 ‘연습’하는 것도 알고 있으며, 웅크려 뛸 자세를 취하는 것도, 이윽고 후두부에 뛰어오르는 것도 모두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무료한 오후에 일어난 이 일은 하나의 사건이고, 이 사건은 이를 앓던 ‘나’가 아픔을 잊을 만큼 흥미롭다. 그때 ‘나’는 혹시 이 재미난 장난이 우리 중 누군가가 일부러 말케의 울대뼈 위로 고양이를 집어올린 게 아닐지, 아니 그게 혹시 자기 자신은 아니었는지 의심하며 말케의 울대뼈를 ‘모든’ 고양이의 눈에 띄게 했던 자신의 죄를 반성하며 이제 써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이하게 큰 울대뼈를 지니고 잠든 말케, 그래서 고양이에게 느닷없이 공격당해 찰과상을 입은 말케.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찰과상에 그쳤으니 그저 아이들 장난쯤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을 말케를 향한 자신의 최초의 죄처럼 여기면서 일종의 참회의 글을 쓰고 있다. 울대뼈를 손에 쥐고 ‘승리’했거나 ‘패배’한 모든 장소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어린 시절의 장난 하나로 조금 지나친 반응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이 고해성사가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말케가 단지 울대뼈만 큰, 그래서 특이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케는 외동이었다.
말케는 반고아였다.
말케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말케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구식 목구두를 신었다.
말케는 검정 목구두의 끈에 드라이버를 매달아 목에 걸고 다녔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말케는 드라이버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목에 뭐든 걸고 다녔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드라이버였다. (14쪽)


외동이며 아버지가 없는 아이. 지나치게 큰 울대뼈를 가리려고 드라이버든 뭐든 여러 가지 이유로 목에 무언가를 걸고 다니던 아이, 말케. 말케는 태생적으로 마을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이모와 함께 살던 말케는 필렌츠와 그 친구 또래보다 한 살 많다. 말케의 어머니와 이모 말을 빌리면 몸이 약하고 병치레가 잦아 초등학교를 일 년 늦게 들어갔다고 한다. 이 또한 마을 아이들과 조금 다른 지점이다. 그런데 말케는 선하다. 누구나 자기 것을 베껴 쓰라고 놔두고, 고자질하는 법도 없다. 8, 9학년생들이 흔히 해대는 추접한 짓거리에는 유독 혐오감을 보이고 그런 불결한 장난에는 동참하지 않았기에 또다시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된다. 이런 이유들로 때로는 월등하게 때로는 부자연스럽게 갈채를 받는다. 그는 박수를 받으면 기뻐했고, 펄떡거리던 울대뼈는 차분해졌다. 마찬가지로 박수를 받으면 그는 어쩔 줄 몰라 했고, 울대뼈는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말케는 대부분 박수를 사양했는데 그래서 또다시 박수를 받는다.

말케는 아이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조금 다른 점들 때문에 놀림감,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아이들은 말케를 별스러운 존재로 인식하고는 말케가 버터 바른 빵 하나만 먹어도 웃어댄다. 그 웃음은 쉽게 전염되는데 다들 웃다 보면 의아해지곤 한다. 자신들이 왜 그렇게 웃는지 이상한 것이다. 하루는 선생이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묻는다. 그때 말케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언젠가 광대가 되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겠습니다.” 이 말에 교실 안 누구도 웃지 않는다. 도리어 ‘나’는 섬뜩해진다. 왜냐하면 말케가 서커스단에서든 어디서든 광대가 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하며 너무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만일 말케가 장난처럼 웃으면서 광대가 되겠다고 말했다면 ‘나’를 비롯해 아이들은 다들 낄낄 웃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말케는 진심으로 진지하다. 왜일까? 여느 아이들과 다른 존재라 놀림에도 따돌림도 익숙해진 말케에게 사람들이 즐겁게 웃으며 주목한다는 것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으리라.


“재, 왜 저래?”
“자식, 머리가 돈 거 아닐까.”
“쟤네 아버지 돌아가신 거랑 상관이 있을지도 몰라.”
“목에 저 잡동사니들은 뭐야?”
“허구한 날 기도드리러 가는 건 또 어떻고.”
“믿음이라곤 없는 것 같은데.”
“그러기엔 너무 현실적인 녀석이지.” (35쪽)


말케를 향한 주변의 이렇듯 늘 곱지 않다. 특별히 잘못한 점이 없는데도 그렇다. 그저 자기들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철부지 소년들에게는 재미난 장난감이자 심술을 부리기에 알맞은 사냥감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말케는 아이들과 어울리고자 수영을 배우고, 잠수 솜씨를 선보이며 무리 안에서 인정받기를 갈구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큰 울대뼈가 아닌 다른 것을 봐주기를 바란다. 울대뼈는 말케에게는 숨기고 싶은 그 무엇이다. 가뜩이나 남과 조금 다르다고 따돌림과 놀림을 당하는데, 울대뼈까지 비정상적이다. 그러기에 말케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드라이버나 은 목걸이 등을 목에 걸어서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잘 되지 않자, 주위를 환기할 방법을 생각해 낸다. 다른 곳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다. 말케는 먼저 배지에 집착한다. ‘우글거리는 물고기 떼와 조용히 날아가는 갈매기들, 야광 꽃다발’ 모양 배지들을 처음에는 외투 깃에 그리고 목도리에 꽂는다. 이모에게 부탁해 형광물질로 만든 단추 여섯 개를 외투 위부터 아래까지 달아달라고 해서 스스로를 ‘광대’로 만든다. 말케는 그렇게 곰팡이가 슨 듯한 초록색 야광단추를 외투에 달고 길을 따라 내려온다. ‘그 초라한 유령은 기껏해야 아이들이나 노파를 놀라게 할 뿐’인데도 말케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어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쓴다.(70쪽)

말케의 이 처절한 노력, 그러니까 놀림이나 따돌림의 대상을 벗어나고, 진정한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독자는 초반부터 감지할 수 있다. 때문에 말케의 노력은 점점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광대가 되어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했던 말케는 사람들이 칭송하고 우러르는 존재, 군인이 되길 기꺼이 선택한다. 애초에 말케는 군대나 전쟁놀이, 군인다움을 강조하는 것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느 틈엔가 ‘아직 기회가 있는 건 이 병과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군대에 자원한다. 말케가 생각한 그 ‘기회’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제대로 대우받는 것이리라. 웃음을 주고 싶던 사람에서 전쟁광이 되어버린 말케. 말케를 그렇게 몰아간 고양이들 가운데 자신들이 그렇게 몰아갔다는 것을 깨닫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필렌츠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고양이가 애초에 말케의 울대뼈를 쥐로 인식했을 때 만일 말케를 깨워 일어나게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순간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켜보았다. 필렌츠는 그나마 죄의식을 갖고 말케의 음울한 변화를 회상하지만, 대다수의 고양이들은 쥐가 움직이기에 사냥을 했듯이, 쥐가 자기보다 약하기에 사냥을 했듯이 자기의 죄가 죄인지도 여전히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된 1939년부터 패전한 1945년 무렵까지이다. 작품 속 아이들은 전쟁과는 동떨어진 듯 침몰한 적군의 배에서 노획물을 건져 올리거나 하면서 한가로이 지낸다. 때문에 작품 속에서는 나치스의 집단 광기가 직접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말케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고 끝내 파국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그 과거를 회상하는 필렌츠의 고백을 지켜보노라면 말케의 울대뼈(쥐)를 놀이삼아 고양이가 사냥하도록 몰아간 아이들의 놀이 자체가 그 시대의 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신체적 결함이 있는(실은 결함도 아닌, 생김새가 조금 다를 뿐인), 남들과 조금 다른 말케는 히틀러와 나치스가 말하기를 ‘신체적으로 열등한 인종’이었던 유대인, 아니 순수한 아리아인을 제외한 여러 인종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을 결국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유형지로 몰아간 그 시대에 침묵을 비롯하여 어떤 식으로든 동참한 독일 국민들 모두가 쥐를 노린 고양이는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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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06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 죄가 죄인지도 알지 못한다‘ 어려운 책인거 같은데 읽고 싶어지네요. 독일 작가가 쓴 2차대전의 독일의 행동을 비판한 책 이라니 더욱 흥미가ㅎㅎ

잠자냥 2021-04-06 17:58   좋아요 2 | URL
네, 언젠가 기회되시면 읽어 보세요. 귄터 그라스는 책 좋아하는 분들이 안 읽고 지나치긴 어려운 작가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1-04-06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년에 다른 부대도 아니고 나치 친위대
에 복무한 경력을 드러낸 걸 어떻게 받
아 들여야 할지...

그가 작가 초창기 시절에 그런 경력을
드러냈다면 과연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을 지 그것이 궁금하더라구요.

잠자냥 2021-04-06 22:03   좋아요 0 | URL
ㅎㅎ 아마도 평생 자기를 괴롭힌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 초창기에 그 경력을 밝혔다면 절대 그 상을 받지는 못했겠지요.

coolcat329 2021-04-06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리를 잘해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고양이 목에 나치 목걸이가 이해가 가네요.

잠자냥 2021-04-06 22:04   좋아요 0 | URL
저도 쓰다 보니 이 어려운 작품이 조금은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서 리뷰 써두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