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8월 30일)는 정희진 선생님의 북토크가 있었다. 희진쌤 북토크라고 하니 선생님의 책이 나왔나! 반가워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니고 <여전히 미쳐 있는>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강의의 정식 이름은 <여전히 미쳐 있는×정희진 북토크>였다. 당연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8월초였나, 알라딘 이벤트 소개페이지에 강연과 관련한 내용이 떴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바로 신청했었다. 기본 참가비는 1만 원이었고, 현장에서 <여전히 미쳐 있는>과 굿즈(머그컵)를 받을 수 있는 옵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까지 구매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여전히 미쳐 있는> 둘 다 북펀딩해서 책이 있으므로 참가비만 입금하고 8월 말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았고 아무튼 그렇게 8월 30일이 되었다.
 





7시 15분쯤 북토크가 열리는 장소인 합정역 디어라이프 북카페(북하우스 건물 지하1F)에 도착했다. 열혈 팬들이(어제 선생님은 광신도라 지칭하심ㅋㅋ) 앞자리를 이미 차지한 가운데 나는 애초부터 앞에 앉을 생각은 없어서 디어라이프 북카페를 좀 구경했다. 책나무 님은 내가 강연 간 것을 아시고는 나보고 ‘부지런하다’ 하셨는데 그건 아니고, 회사-집-회사-집-회사-집 무한반복 패턴에 퇴근하면 집에 가서 얼른 씻고 눕는 게 아침에 눈 뜨자 마자의 일대 소망인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 중 하나가 정희진 선생님이다. 언제나 나를 일깨우고 움직이게 하는 선생님. 그런데 생각해 보니 퇴근 후 가기 편한 위치에다가 집에서도 가까워서 별 부담 없이 신청했다. -_-;;  이 강연 신청할 때 장소를 보고는 아, 다락방은 오고 싶어도 못 오겠구나 했는데, 그렇다. 만일 이 강연이 저~쪽에서 했다면 내가 과연 갔을지;;;; 전에 리베카 솔닛이 내한 강연했을 때도 가고 싶었으나 결국 포기(건대에서 하다니)한 이유가 장소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부지런함은 선택적으로 작동할 뿐.



강의 시작 전에는 좀 비었으나 곧 이 자리가 꽉 찼습니다.



강연 시작 전 선생님은 화장실을 다녀오시려고 저 안쪽에서 일어나셔서 뒤쪽까지 걸어오셨는데, 아아 머리가?! ㅋㅋㅋㅋ 선생님 죄송합니다. 사실 어제 멀리서 보고 중년 남성이 걸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지난 1월 <정희진의 공부> 강연 때는 삭발이셨는데 어느덧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서 이제는 숏커트(희진쌤 팬들을 열심히 위해 묘사 중)인 선생님- 7시 30분이 조금 되기 전에 강의를 시작했는데, 선생님은 일단 먼저! 사진은 절대 찍지 말 것, 녹음하지 말 것을 강조하셨다. “여기 이렇게 참가비까지 내시고 오셨는데! 녹음해서 다른 분들에게까지 들려줄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경험해 보니 녹음해서 그걸 다시 듣는 일은 절대 없더라고요!”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은 사진 촬영(및 몰래 녹음)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아주 오래전부터 누차 강조하셨던 것인데, 지난 1월 강의 때 많은 분들이 선생님 사진을 찍고 있어서 좀 놀랐다..... 속으로 ‘아, 선생님이 싫어하실 텐데.....’했다는. 여러분, 앞으로 희진쌤 강의 가실 땐 절대 촬영은 금지입니다. 쌤은 필기도 “뭘 쓰세요. 그냥 들으세요.” 하시는 분이다. 맞아요. 필기하다가 중요한 이야기 놓친다니까요! 그래서 나는 필기를 하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도 필기를 하지 않아서(이건 게을러서 ㅋㅋㅋㅋㅋ) 시험 볼 때는 닥쳐서 애들 거 빌려보고는 했다. 아무튼 어제도 필기는 하지 않았고 기억에 남은 인상적인 내용들만 정리해보겠다(때문에 단어 같은 것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성학 입문서/개론서로서의 <여전히 미쳐 있는>
선생님은 먼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와 <여전히 미쳐 있는> 두 책의 특징과 차이를 말씀하셨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19세기 여성의 글쓰기에 관한 영문학적 접근이라면 <여전히 미쳐 있는>은 1950년대 이후(전쟁 이후) 미국과 서구의 페미니즘의 역사를 현재까지 개론하고 있다고. 그러므로 이 책은 여성학 입문서나 개론서로서 아주 쉽고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라고 강조하셨는데 동의한다. 현재는 ‘여전히 미쳐’있는 상태가 아니라 ‘완전히 미치겠는(totally mad) 사회, 아니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영원히 미친(eternally mad) 상태가 아니겠냐고 말씀하신 점도 인상 깊다. 그러나 이 책은 어디까지나 미국/서구의 역사이므로 한국의 현실(현재)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열변을 토하셨는데 그 지점들이 어제는 굉장히 뜨겁게 날카롭게 그러나 절망적으로(난 한국에 희망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므로) 다가왔다.

한국은 젠더의 인식론적 지위가 매우 낮고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모든 문해력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라는(이때 문맹률은 의미가 없다) 지적, 한국 사회는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쓰는데, 젠더 갈등이라는 말은 틀렸다. 이 사회는 갈등까지 가지도 못한다. 성차별이지 젠더 갈등이 아니다. 이 사회는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고, 미소지니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김건희를 비판하면 여혐이고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김건희를 비판하느냐고 지적하는 나라이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말도 한국에는 맞지 않다, 한국 남자들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데, 맨스플레인 할 게 뭐가 있느냐는 말에는 빵 터지고 말았다. 아무튼 한국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의 하락과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 대해 여러 차례 개탄하셨는데 이건 아래에서 더 덧붙이기로 하고.

다시 돌아와 <여전히 미쳐 있는> 책에서는 잠깐만 언급되거나 미처 다루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것들- 힐러리 로댐이 전형적인 공화당주의자였다가 민주당으로 돌아서게 된 사연도 흥미로웠고(토론 배틀 준비하다가 민주당에 빠져버림), 무엇보다 베티 프리단의 이야기는 좀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나는 <여성성의 신화>는 읽지 않았는데 <여전히 미쳐 있는>이나 <백래쉬>에서 그려지는 베티 프리단에 관한 묘사나 설명을 읽고는 아, 이 사람은 좀 별로네 <여성성의 신화>는 읽지 말아야겠다고 정리한 터였다. 그러던 참에 희진쌤이 그녀가 가정 폭력의 희생자-매 맞는 아내였다는 점을 언급하신 것이다, 그래서 항상 대중 앞에 나설 때면 늘 짙은 화장으로 멍을 가려야만 했던 것, 그 때문인지 나중에는 전향하듯이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것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관점에서 이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이야기도 그렇다(세 아들의 엄마,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다음 날 남편의 자살 등등). 그러니까 어떤 한 개인의 이면의 역사를 알면 더 궁금해지기도 하고 다른 관점에서 텍스트를 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여전히 미쳐 있는>의 아쉬운 점도 말씀하셨는데 일단 소소(?)한 지적이긴 하지만 생각해 볼거리. 안드레아 드워킨의 이야기가 좀 흥미로웠다. 나도 이 책을 읽을 때 안드레아 드워킨을 ‘앤드레아’라고 지칭하고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쌤은 이를 지적하면서 ‘안드레아’는 남자의 이름이다. 딸에게 굳이 남자의 이름을 지어주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딸의 입장(억압)에 관해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씀(희진쌤의 이름도 그렇다고 하셨는데 한자로 ‘진’자가 주로 아들들 이름에 쓰는 ‘진’이라고)을 하셨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안드레아’를 ‘앤드레아’라고 지칭한 것은 좀 아쉽다는 말. 그리고 이 책에서는 후기 구조주의와 탈식민주의, 다나 해러웨이 등을 다루지 않아 아쉽다고도 하셨다(쌤은 요즘 확실히 다나 해러웨이에 꽂히신 것 같다). 그러면서 모든 책이 독자를 100%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 쌤이 여러 차례 읽은 <한낮의 우울>만 하더라도 여성주의 시각은 부족하다(페미니즘과 우울증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에 비해 너무 조금 다룸), 그 점이 아쉽다는 점도 언급하고 지나가셨다.

공부하지 않는, 책을 읽지 않는 한국
앞서 언급했듯이 어제 선생님은 지적으로 하락한 이 사회,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 몹시 개탄하셨는데(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을 오히려 비난하는 이상한 사회-“니가 왜 공부를 해?” “아직도 공부를 해?” 등등),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쌤의 이 분노에 여러 번 공감했다. 책을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지식을 생산하고 보존하는 일에는 등한시하면서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매체에만 빠져 사는 한국인들은 소통 불가. 문해력은 점점 낮아져 결국 그런 지성의 하락이 현재의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아니냐.... 그리고 그 정부는 세종도서 예산 80억을 삭감해서 집행하지 않고 있다(진짜 이거 극공감 ㅠㅠ). 사람들이 우매할수록 집권 세력은 편하게 통치할 수 있으므로 그렇잖아도 공부와는 담 쌓고 사는 한국인을 더 우매하게 만들려는 이 정부의 큰 그림이 아닐까 나는 의심 중인데, 그러다가도 이 정도 큰 그림까지 그릴 수 있을 정부인가 싶어지기도 한다.

아무나 아니 모두가 글을 쓰는 시대인데 누구도 책을 읽지 않는다. 심지어 <여전히 미쳐 있는>도 <다락방의 미친 여자>보다 덜 팔렸다고 해서 의아해하셨다는 쌤. 그래요 나도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어요. 하지만 출판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셔서 빵 터졌다. 어제도 나는 자신이 투고한 원고에 왜 코멘트 해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메일을 받았고, 그런 인간들한테 절레절레 질린 참이었는데 쌤의 이런 촌철살인 발언을 듣고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쌤은 결국 안목 있는 독자가 좋은 작가가 된다, 그러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읽지 않고 글을 쓰는 것까지야 뭐라 할 수 없지만 굳이 출판까지야..... 그러다 보니 한국 출판계에서는 좋은 책이 나오는 게 아니라 편집자들이 팔릴 책을 억지로 ‘기획’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것은 곧 집단 지성 하락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아닐지.

공부하지 않는 페미니스트
결국 이야기는 ‘공부하지 않는 한국 페미니스트’로 귀결되었다. 쌤이 이 말씀을 하실 때 나는 속으로 ‘아니 쌤, 저기 알라딘에 공부하는 페미니스트들 많은데요, 저는 아니지만….’하고 항변하기도 했으나. 대체로는 쌤의 지적에 동의한다. 개인의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개인의 능력이 곧 페미니즘의 엔진이 되어 페미니즘 대중화에 불을 당기기는 했으나 이론도 운동도 대중화되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페미니즘 관련 책은 많이 나오지만 왜 팔리지 않는가? 게다가 그렇게 출판되는 책들도 대부분은 개인의 경험담(사연팔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가운데 계속해서 나오는 책들도 페미니즘 고전들(<제2의성>, <다락방의 미친 여자>, <여전히 미쳐 있는> 등등)의 재번역/재발행에 그칠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로컬 여성학 책을 직접 쓸 수 있을 정도의 시각적 훈련(결국 책 읽기)을 해야 한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공부하지 않는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만 할뿐(정체성의 페미니즘)이라는 지적에는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것은 바로 나?! 아닌가 싶었다. 페미니스트라면서 <제2의 성>을 읽지 않는 페미니스트 그건 바로 나였다. 여기 알라딘에서 페미니즘 책 읽기 모임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같이 하지 않은 이유는 책을 의무로 읽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바로 내가 페미니스트, 내 생활이 날마다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컸다. 대학생 시절 (이제는 거의 사라진) 총여학생회의 꿈나무이자 귀염둥이로 이쁨받으면서 선배들로부터 의식화교육(ㅋㅋㅋㅋㅋㅋㅋㅋ)을 받으며 수요집회니 기활이니 이런 활동을 하면서 쑥쑥 자라 선전부장으로 대자보를 쓰고 다녔던 나는 어느 순간 페미니즘은 더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내 생활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으므로(가부장제적 요소를 최대한 벗어남-가족 중 아버지를 제거함, 결혼하지 않음, 출산하지 않음, 기타 등등) 앎과 삶이 이토록(?!) 일치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잠자냥(언젠가 공쟝쟝이 물어봤을 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대답했다.........-_-)! 그런데 이렇게 방종&자만하게 살던 나는 어제 쌤이 ‘공부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만 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씀하셨을 때 온몸을 바늘로 찔린 듯한 아픔과 함께 반성이 밀려왔다.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 언젠가 읽은 조남주의 <우리가 쓴 것>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교사인 엄마가 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서 미묘하게 피해자인 여학생을 탓하는 발언을 하자 10대인 딸이 엄마를 타박하면서 했던 말로 기억한다. 나의 앎은 이십대 그 자락, 그때에서 멈춘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내가 스스로 내게 해야 할 말이 아닐까. “그러니까 자냥, 업데이트 좀 해.”

쌤이 말하셨다. 우리들의 주관성은 사연이 된다고. 남자의 주관성은 그 자체로 권력이 되지만 우리의 주관성은 사연이 되고 말기에 더 공부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점 훈련(시각적 훈련/책 읽기/공부)을 평생 해야 한다고. “정치적 올바름은 불가능하다. 다만 더 타락하지 않도록 관점 훈련을 평생 해야 한다.”고. 정상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은 여전히(Still) 미친 것도, 완전히(Totally) 미친 것도 아닌 영원히(Eternally) 미칠 수밖에 없는 이 세계에서 나의 언어가 권력이 되기 위해서, 아니 조금이라도 더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제2의성>을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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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9-01 13:01   좋아요 5 | URL
자냥님께 없는 건 은오님뿐, 단발님께 없는 건 정희진쌤 댓글뿐..!!ㅋㅋㅋ

잠자냥 2023-09-01 14:00   좋아요 3 | URL
아니 괭 이 사람아 은오는 안 갖고 싶다니까.

독서괭 2023-09-01 14:03   좋아요 5 | URL
전 그냥 없다고만 했는데여🙄

책읽는나무 2023-09-01 15:28   좋아요 4 | URL
괭 님...ㅋㅋㅋㅋ
촌철살인마!!!ㅋㅋ
그러네요.
두 분다 없는 것 그것 맞네요.^^

은오 2023-09-01 21:09   좋아요 3 | URL
이미 드렸습니다.

잠자냥 2023-09-01 21:14   좋아요 3 | URL
은오 / 반사~~~

청아 2023-09-01 0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쌤 댓글 음성지원도 되는군요ㅋㅋㅋㅋ 새벽에 남기셔서 그런지 더 청량한 느낌!

잠자냥 2023-09-01 09:22   좋아요 4 | URL
천하장사 소세지 여러 개 드시고 다신 듯한 박력!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9-01 10:2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오오, 정희진 선생님이 알라딘에도 댓글을 달아주시는군요? 흐흣. 잠자냥 님의 성실한 후기및 선생님의 댓글도 잘 읽었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잠자냥 님, 기억 잘하신 것도 대단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정리도 잘하십니까? 소제목 딱딱 뽑아서 정리하시는 거 너무 저는 못하는 영역이라 저의 오늘 최고 부러움은 그 부분입니다. 소제목 뽑고 분류 정리하는 거요. 저는 책에서 소제목 읽어도 다 휘발되어 버리고 세세한 것들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서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문제, 빅 프라블럼 입니다.

저는 평일 일곱시반 합정, 무리입니다. 몇해전만 해도 기어코 무리를 해서라도 강연 따라다녔었는데(저 강연 들으러 창원도 감 ㅎㅎ) 이제는 못하겠네요. 열정이 사그라든건지 체력이 사그라든건지. 아무튼 그렇습니다. 몇해전 그 때 저 왜그렇게 열심히 다녔는가 몰라요. 여하튼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은 좋습니다. 그리고 솔닛의 건대 강연 간 사람, 접니다. 제가 그 강연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거기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영어를 이해한다는 거였습니다. 아마 다녀오고 제가 후기도 썼던걸로 기억하는데요, 솔닛의 말과 동시에 사람들이 웃더군요. 저는 통역 들은 다음에 웃는데... 아 여기 오는 사람들 다 영어 되는 사람이었어? 라는 커다란 충격이 강타했고, 그 강연 끝나고 같이 들었던 친구랑 나와서 갈비를 구워 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정희진 쌤 강연 듣고 친구들이랑 ‘간단하게 삼겹살‘ 햇던 기억도 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님이 제2의 성 읽겠다 하시니, 공부하는 페미니스트라는 언급을 하시니, 저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더 읽어야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제2의성은 두 번 읽었는데도 지금은 내용이 별로 기억 안나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읽으면서 아니, 이미 보부아르는 다 알고 있었어!! 흥분했던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잠자냥 님의 독서도 글쓰기도 그리고 정리정돈도 응원합니다. 빠샤!!

잠자냥 2023-09-01 10:39   좋아요 4 | URL
아니 다부장 무슨 일이야. 왜케 바빠...ㅠㅠ
창원 다녀오신 거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전 그러지는 못할 거 같거든요.
건대 강연도 다락방님은 가셨을 거 같더라고요. 같은 서울에서 열리는 강연이라도 전 좀만 멀면 안 가버리는;; ㅋㅋㅋ 그런데 다부장님은 강연도 그와 관련한 먹을 것으로 기억하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열심히 공부합시다. 글도 쓰시고.... 어여 바쁜 날이 지나가길.
참 그리고 오늘도 점심 잘 드세요!

단발머리 2023-09-01 12:27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바쁘지 마시고요. 점심 맛난 거 드세요. 오늘의 당부입니다.

다락방 2023-09-01 10: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선생님이 기억력은 지식이 체화되어야 좋다 하시는 걸 보니 저는 지식이 현저히 부족한가 봅니다 ㅠㅠ 기억력이 너무 안좋아요. 책 읽은 것도 다 기억이 안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3-09-01 10:53   좋아요 5 | URL
왜 이래 다부장 이것저것 엮어쓰기 달인이. 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9-01 15:47   좋아요 3 | URL
다락방 님 오늘 왤케??!!!!
ㅋㅋㅋ
없어 보입니다. 어깨 펴세요.
지시과 체험이 체화되어 글 잘 쓰시는 분이....^^
저녁도 맛난 거 드세요. 저도 오늘의 당부입니다.

2023-09-01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9-01 21: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 “젠더갈등” 들을 때마다 발작일으키는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 특히 한남 입에서 요즘 젠더갈등이 문제다.. 젠더갈등 없던 예전 평화로운 시절 ㅇㅈㄹ 할때마다 여자들이 김치녀 보슬아치 소리 들으면서도 묵묵히 3단도시락 싸던 시절 니네나 좋겠지 그렇게 일방적으로 내내 밟아놓고 요새 기껏해야 한남 소리 듣는게 뭐 그리 억울한지 양심없는 김치남들아 소리가 절로 나옴. 그리고 요즘 젠더관련 책 다시 읽는데 여성차별 여성폭력이라는 단어가 젠더갈등 젠더폭력으로 바뀌면서 성별위계가 비가시화되고 뭉뚱그러졌다는 지적도 생각나고요
2. 인간들아!! 책을 읽자!! 재밌는데.......쓰는 것보다 읽는 게 훨씬 재밌는데..... 쓰는거 머리아프지 않나 난 읽기만 하고싶다
3. 잠자냥님이 제2의성을 읽으신다 하시니 저도 갑자기 다시 집어들고 싶어서 같이 읽자고 하려다가 아니 어차피 잠자냥님은 혼자 읽으시잖아?! 근데 아무리 잠자냥님이어도 주말 이틀컷....되려나?! 잠자냥님이라면 가능인가요? ㅋㅋㅋㅋㅋ
4. 저도 공부하겠습니다.
5. 잠자냥님이랑❤️

잠자냥 2023-09-02 02:13   좋아요 1 | URL
아 이틀 만에 끝내보고 싶은 도전욕구 생기네…. 일단 오늘 술 그만 마시고 일찍 일어나야지…

케이 2023-09-06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댓글읽다 놀랐어요. 진짜 정희진 선생님? 정희진 선생님께서도 인정하신 잠자냥님 ㅋㅋㅋㅋㅋ
짧은 댓글에서도 촌철살인이 느껴집니다.
제가 예전에도 말씀드린 꼭 홍위병처럼 구는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제발 정희진 선생님 댓글 중 2번 읽고 정신 차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도 출판하지 말란 말에 빵터지고 갑니다. ㅋㅋㅋㅋㅋ
요즘은 서점 구경도 못가지만, 책 구경하다보면 절로 나오던 말 중 하나였죠. 이런 책도 출판이 되는구나...
정희진 선생님께서도 인정하신 잠자냥님 언제나 건강하세요!

잠자냥 2023-09-06 14:3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케이 님 정희진 선생님께서도 인정하신 잠자냥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겨요. ㅋㅋㅋ
2번의 경우 제가 그게 자격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쓴 건 아니고, 페미니즘적 생각 아래 그런 삶을 선택해서 살고 있다는 거였는데 아무튼 뭐 그런 내용을 선생님께서 하신 댓글에 구구절절 설명은 하지 않았어요. 페미니스트 자격이 어디 있겠습니까. ㅋㅋㅋ
정말 재밌죠? 선생님이 정확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어요. 네, 이런 책 제목도 있더라고요. 그래요. 저도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어요. 하지만 출판은 하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이 님 요즘 날씨 갑자기 또 무더워졌어요. 건강 잘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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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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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 긍정성 과잉, 과잉활동 시대에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소진되고 결국 우울증에 빠지는 현대인의 초상. 멍 때리기. 가만히 있기. ‘쓸모 없음의 쓸모’- 우루사를 까 먹으면서 자기를 채찍질하기보다는 나는 계속 이렇게 누워서 책 읽으며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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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30 0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워서 책 읽으며 살란다, 라기에 누워서 책을 너무 많이 읽으시는 것 아닙니까. ㅋㅋㅋ 전혀 게으름과 상관없이 부지런히 책 읽는 자의 모습인데요?

잠자냥 2023-08-30 08:41   좋아요 1 | URL
성과주의는 아닌데 과잉활동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8-30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루사 효과 있나요?
이 책 오래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용 ㅎㅎㅎ

잠자냥 2023-08-30 09:56   좋아요 2 | URL
우루사 먹어본 적은 없어요. 우루사 이야기는 왜 꺼냈냐면 이 책에서 프로메테우스의 간 이야기가 나와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3-08-3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도 참 유명하죠. 두껍지도 않던데...특히 이 책은 경쟁이 극심한 우리 나라 사람이 읽으면 공감이 많이 될 거 같은데요.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잠자냥 2023-08-30 09:57   좋아요 1 | URL
네 100쪽이 안 되는 분량이라 하루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나중에 재독, 삼독해도 될 거 같아요.

은오 2023-08-30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냥오별! 역시 잠자냥님은 저랑 통하는군요...❤️

잠자냥 2023-08-30 11:27   좋아요 0 | URL
같은 책 읽고 별점 다른 경우가 더 많던데요......
밑줄도 다 다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8-30 11:57   좋아요 1 | URL
그런건 이미 다 까먹었습니다 ㅋ

은오 2025-01-02 14:09   좋아요 1 | URL
히히

건수하 2023-08-30 1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피 마시고 앉아서 책 읽겠습니다. 누워서 책 읽는 건 힘들어요 ㅋㅋ

잠자냥 2023-08-30 14:07   좋아요 2 | URL
아 그 세계 경험하면 신세계인데…. 가끔 고양이한테 책도 떨어뜨리고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30 14:07   좋아요 2 | URL
어젠 3호가 소리 지르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30 14:09   좋아요 2 | URL
또 떨어뜨리신 거예요? 불쌍한 3호 ㅠㅠ 3호야 집사2님 방으로 가렴...

잠자냥 2023-08-30 14:24   좋아요 2 | URL
음, 그 녀석 근처에 떨어뜨렸는데 꺅! 소리 지르더라고요.
녀석 오바하기는 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8-30 15:47   좋아요 1 | URL
누워있는 자냥 위에 나는 3호!!!ㅋㅋㅋ
 
엘리아스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나윤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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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나약해서 사랑을 놓치고, 자신의 인생은 물론 타인의 삶마저 망친 못난 남자의 이야기. 이렇게 답답한 캐릭터도 또 간만이다. 여성 작가이며서도 여혐적 시선이 종종 보여서 좀 그랬다. <악의 길>은 좋았는데 이 작품은...... 노벨상을 이 작품으로 받은 게 아닌 것은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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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8-29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놓치지 말아야지...

잠자냥 2023-08-29 11:58   좋아요 1 | URL
응?
학교 안 ㄱ ㅏ니~~

은오 2023-08-29 19:5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강제개강이라니!! 개강은 다음주 월요일입니다만......

잠자냥 2023-08-29 21:38   좋아요 1 | URL
낼부터 가자.
그리고 다부장 놓치지 마. 꼭 붙잡아. 이제 간단하게 먹으니까 식비도 줄어들 거야.

은오 2023-08-29 21:47   좋아요 1 | URL
나 반말 엄청 좋아하는구나.............
심장폭발
😳
😳
😳
🔥

잠자냥 2023-08-29 21:59   좋아요 0 | URL
심장 다시 꼬매~

다락방 2023-09-05 15:00   좋아요 2 | URL
간단하게 삼겹살!!

은오 2023-09-05 15: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귀여워!!

잠자냥 2023-09-05 15:45   좋아요 0 | URL
다부장 이 인간 오늘 삼겹살 먹고 싶나보네.....

Falstaff 2023-08-2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악의 길>을 쓴 사람이군요. 이름이 낯설지 않다, 했습니다.

잠자냥 2023-08-29 16:59   좋아요 0 | URL
네 이 출판사에서 최근에 이 작가의 대표작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도 나왔는데요.... 이걸 읽고 나니 읽을까 말까 기로에 서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8-2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라니 ㅋㅋㅋㅋ 제목이 겁나 웃긴대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29 21:39   좋아요 0 | URL
아 그거 제목 보니까 벌써부터 또 얼마나 우유부단하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작품의 남주가 딱 그렇거든요…
 
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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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두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빌러비드 Beloved>는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책에서 많이 언급되기에 꼭 읽어야 할 것 같았으나 두려움이 앞섰다. 이 책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이 충격적이라서 이걸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망설여졌던 것이다. 이른바 ‘마거릿 가너 사건’- 1856년 흑인 노예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두 살배기 딸을 살해한 사건이 <빌러비드>의 중심 소재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마거릿 가너가 흑인 노예였고 여성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녀가 살해한 자식의 성별이 딸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예였으므로 노동력 착취는 기본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일상적으로 성 착취의 대상이었을 테고 그런 자신의 삶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구나,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제 손으로 자식을 죽일 수 있을까, 그것은 옳지 않다고, 부당하다고, 어머니로서 자격이 없다고 미치광이 살인마나 다름없다고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부모가 자신의 삶이 힘들어졌다고 자식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분개한다. 자기들 마음대로 싸질러놓고 또 자기들 멋대로 목숨마저 가져가버리는 부모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 그 폭력에 진저리를 친다. 자식이 부모의 물건인가? 제 소유인가 싶어져서 그 어린 생명을 멋대로 가져가버린 부모라는 이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이런 나의 기준으로 마거릿 가너- 그녀의 행위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딸에게도 똑같은 삶을 대물림 해 주고 싶지 않았을 엄마로서의 선택. 그렇지만 엄마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어린아이의 목숨이 가엾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딸이 만일 그 시절 미국의 어느 주(州)- 노예제도가 아주 견고한 지역에 태어나서 마거릿 가너와 다를 바 없는 전철을 밟는다고 생각하면, 그 목숨은 과연 이 세상에서 부지해나갈 이유가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데…. 하지만 마거릿 가너는 당시만 하더라도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받지 않았던가. 그녀의 백인 주인은, 자신의 소유물이 또 다른 물건을 파괴함으로써 재산에 손해를 끼쳤다고 극노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빌러비드>를 펼쳤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의아했다. 흑인 여성 ‘베이비 석스’를 비롯해 ‘세서’, ‘덴버’ 등 여러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삶은 자못 평화로워 보여서 토니 모리슨 작품 중에서  아이를 살해한 노예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이 <빌러비드>가 아닌가? 다른 작품인데 내가 착각했나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그랬다. 작품 초반 중년의 세서는 하나뿐인 딸 덴버와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가 그들과 함께 살았는데 몇 해 전 세상을 떠나고 이제는 단 둘이 남은 모녀. 그런데 그들은 노예 신분이 아니다. 베이비 석스 또한 자유인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서의 남편이자 베이비 석스의 아들인 헬리가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어머니를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분명 헬리가 돈으로 자유를 사준 사람은 베이비 석스 뿐인데, 세서와 덴버는 어떻게 이 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오가는 이웃들도 없이 단둘이, 그렇지만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런데 아기 유령이 나타난다는 말은 또 뭔가. 아리송할 때 그들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폴 디’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세서가 오래전 그 이름도 참 얄궂기 짝이 없는 ‘스위트홈’라는 곳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때 알고 지내던 사람이다. 지금은 행방불명이 된 남편 헬리와도 가까웠던 그, 그러니까 그들 모두가 그 시절 노예 생활을 하며 고충을 나누던 사이였던 것이다. 폴 디의 등장과 함께 세서의 과거도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세서’는 실존 인물이었던 마거릿 가너의 문학적 현신이다. 그렇다면 덴버가 세서의 손에 언젠가는 죽임당할 가여운 딸인가 싶은데, 그러기에 덴버는 이미 십대의 나이를 넘어선 소녀이다. 실제 사건과는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때 불현듯 작품 초반에 세서와 덴버가 사는 집에 아기 유령이 같이 살다시피 하고 있다는 설정이 떠오른다. 게다가 이 세 사람, 세서, 덴버, 폴 디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한 처녀. 그녀의 이름은 빌러비드- 이 작품은 이렇게 유령이 등장하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리어 어떤 면에서는 스위트홈 시절, 친절한 얼굴의 백인 주인 가너 씨가 세상을 떠나고 다른 백인들이 등장하면서 망가져가는(그러나 실은 본디의 모습대로 돌아간) 스위트홈에서 일어나는, 노예를 향한 억압과 착취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이게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저런 짓을 벌일 수 있는가. 이것이 도리어 꿈이라면, 악몽이라면, 현실이 아니었으면 싶어진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 짙어.” 이렇게 말하며 그는 생각했다.
“너무 짙다고?” “사랑이 그런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지. 옅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그래. 그렇지만 아무 소용없었잖아, 안 그래? 무슨 소용이 있었어?” 폴 디가 물었다. (272쪽)


세서는 폴 디가 보기에 위험했다. 정말 위험했다. 사랑이 너무 짙어서. 한때 노예였던 여자가 뭔가를 저토록 사랑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랑하는 대상이 자식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조금만 사랑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그 대상의 허리를 부러뜨리거나 포대에 처넣는다 해도, 그다음을 위한 사랑이 조금은 남아 있을 테니까’(82쪽). 그런데 세서의 사랑은 너무 깊었다. 그 짙은 사랑 때문에 아이를 살해한다. 사랑이 덜했다면, 사랑이 없었다면 아이를 죽이지 않았을까. 이 무렵의 많은 노예 여성들이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백인 주인이나 백인에게 강간당해 낳은 자식도 많았을 것이다. 하나의 인격이 아닌 동물, 짐승, 재산으로 취급되었기에 자식을 많이 낳아서 주인의 재산을 불려주는 여성 노예는 환영 받았을 것이다. 세서는  착한 얼굴을 한 백인 주인을 만난 덕택에 헬리와 결혼할 수도 있었고, 너무나 운이 좋아서 그 남자의 아이만 낳을 수 있었다. 그건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세서의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만 하더라도 자식이 여덟인데 아이 아버지가 여섯이나 되지 않는가. 게다가 그 여덟 명의 자식 중 누구하나 그 곁에 남아 있지 않다. 넷은 빼앗기고, 넷은 달아나버렸다. 물건이기에, 재산이기에 짐승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당하면서 늘 애비가 다른 자식들을 낳을 수밖에 없는 노예 여성.

한편 폴 디 같은 흑인 남자는 백인 주인이 남성성을 인정해줄 때만 남자가 된다. 스위트홈의 좋은 얼굴을 한 백인 주인 가너 씨는 자기 농장의 흑인 남자 노예들에게 ‘너희들은 남자’라며 남성성을 북돋는다. 그런데 헬리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이름은 대게 폴 에이, 폴 디, 폴 에프이다. ABCDEFGHIJK…. 그 농장의 흑인 남성들 이름은 아마도 이렇게 이어지리라. 물건은 아닐뿐더러 짐승도 아니지만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계면쩍은 것인가? 선량한 얼굴의 백인 주인 가너는 그의 노예들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준다. 그는 피부 빛깔이 허옇긴 하지만 괜찮은 흰둥이일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그가 자신의 노예들의 남성성을 북돋아준 것도 결국 자기가 지닌 노예들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렇게 키워준 남성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폴 디의 경우만 보더라도 모순덩어리이다. 세서의 비밀을 알고 난 후, 그가 취하는 행동은 비겁하다. 그가 이제껏 주변에 뿌려온 다정하고 선한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그는 정작 세서가 필요할 때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에 집중하느라, 술이나 퍼마시며 자기연민에 빠질 뿐이다. 물론 이것이 대다수 남성의 모습일 것이다. 토니 모리슨은 같은 억압을 받고 같은 차별을 받으면서도 또 그 안에서 한 번 더 여성을 단죄하거나 멋대로 판단하는 남성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폴 디와의 관계를 지켜보노라면 제 손으로 딸의 목숨을 끊어버린 세서의 선택을 단순히 ‘모성’이라는 이름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녀가 그토록 모성이 절절한 여인이었다면 아이를 낳자고 부탁한 폴 디의 제안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또 다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두렵다. ‘그때처럼 아이를 돌볼 수 있을 만큼 착해지고, 기민해지고, 강해져야만 한다’는 생각, 또다시 ‘그만큼 더 오랫동안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진저리를 친다. 사랑하는 남자가 아이를 갖자고 하는데, 그녀는 ‘오,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서는 말한다. 모성애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뭣 때문에 그는 그녀가 임신하길 원할까? 그녀를 떠나지 않으려고? 자기가 이 길을 지났다는 표시로? 그는 아마 사방에 애가 있을 것이다. 십팔 년 동안이나 떠돌아다녔으니, 틀림없이 몇 명은 싸질러놓았겠지.’(220쪽)

세서는 여성 노예로서 이중으로 착취당했다. 노예로서 쉴 틈 없이 일했고,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는커녕 백인 놈들에게 여러 차례 강간당한다. 매를 맞고 학대당하고, 그러고도 일을 해야 했다. 남편이 사라지고 그나마 사람처럼 대우해주던 주인도 사라진 지금, 그녀가 시어머니처럼 아버지가 저마다 다른 아이를 낳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녀는 노예이므로 쾌락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들은 팔려가거나 도망가거나 그러다가 죽임당할 것이다. 그 아이들의 앞날을 알기에, 세서는 결심한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자신의 아기들을 ‘공책에 적거나 줄자로 잴 수’ 없도록 ‘애국자들이 흑인 학교에 불을 질러 부글부글 달구어진 여학생들 가운데 내 딸이 있는지, 백인 무리가 내 딸의 은밀한 곳을 침범하고 허벅지를 더럽힌 후 마차 밖으로 내던지지는 않았는지’ 괴로워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은 도살장 마당에서 몸을 팔지언정, 딸에게는 결코 그런 삶을 물려주지 않도록, 그리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딸의 특징을 공책의 동물적인 특징 목록’(409쪽)에 적는 일이 더는 없도록 그녀는 그렇게 단행한 것이다. 이것을 단지 모성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추고 살아갈 수 없다면, 그리하여 다른 인간도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면 그가 그런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돕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더 짙은 사랑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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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8-28 17: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세서가 저지른 일이 너무..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ㅠㅠ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임신한 몸을 이끌고 탈출해서 간신히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도망길에 배 위에서 태어난 내 딸이 다시 끌려가 내가 당한 짓, 혹은 그보다 더한 짓을 당할 것이 뻔히 보인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ㅠㅠ
백인들 진짜 백만번 사죄해도 마땅한 놈들이 아직도 깜둥이라며 차별하고 있으니.. 어휴.
그러고보니 이 책 너무 좋아서 더 읽으려고 토니모리슨 세권이나 사놓고 한권도 더 못 읽었다는요 ㅋㅋ

잠자냥 2023-08-28 17:22   좋아요 3 | URL
아이가 살면서 강간이 디폴트라고 생각한다면 저라도…..

덴버의 앞날도 딱히 밝지만은 않아보여 힘드네요. ㅠㅠ

근데 뭐뭐 샀어요?!

독서괭 2023-08-28 17:34   좋아요 2 | URL
재즈, 술라, 보이지않는잉크요 ㅋㅋㅋ

잠자냥 2023-08-28 17:44   좋아요 3 | URL
좋은 건 다 사둔괭 ㅋㅋㅋㅋ

청아 2023-08-28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읽다 말았는데 꼭 완독해봐야할 작품이네요.
요즘 아동살해와 당시의 상황은 분명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요.에휴..ㅠㅠ

잠자냥 2023-08-28 17:32   좋아요 2 | URL
완독 고고! <여전히 미쳐 있는> 읽기 전에 읽으세요!

유부만두 2023-08-28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모리슨 읽기 시작하신김에 “솔로몬의 노래”도 추천합니다. 자냥님의 멋진 리뷰가 읽고 싶어요.

잠자냥 2023-08-28 17:31   좋아요 2 | URL
네 이거 꺼내 읽다 보니 언제 사둔 건지 ㅋㅋㅋ 옆에 솔로몬의 노래도 있더라고요?! 깜놀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3-08-2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잠자냥님 이 책 안 읽으셨군요.
저도 사두고 몇 년을 그냥 묵히고 있는 책이에요. 역시 🌟 다섯이군요.

잠자냥 2023-08-29 11:58   좋아요 1 | URL
저 안 읽은 책 많아요!
얼마 전 쿨캣님이 극찬하신 <한밤의 아이들> 책장에서 잠든 지 어언.......ㅋㅋㅋㅋ

은오 2023-08-2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자평 보고 예상 못했는데 짙은 사랑의 대상이 자식이었다니.......!!!!!
안태어날 내 자식아 복받은줄알거라 널 너무 사랑해서 낳지않는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궁극의모성

잠자냥 2023-08-29 21:58   좋아요 0 | URL
딸자식. 세상에 안 내놓는 것이 더 큰 사랑~
이 책 <여전히 미쳐 있는> 등등에 많이 언급됩니다요.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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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보뱅은 쓰네… 늦은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이 책을 읽는다면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죽음과 상실을 절절하게 고백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삶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진정한 거처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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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8-28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연애편지st인줄알았는데 상실과 애도가 주제군요.. 아악 슬플거같애

잠자냥 2023-08-28 12:14   좋아요 0 | URL
연애편지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상대가 이미 죽음.;;; 눈물 찔금납니다만...
은오 님은..... 너무 다자연애라 이 책을 쓴 보뱅의 심정에 공감이 가능할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