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박쥐, 방랑자, 도둑의 눈에 황혼은 아침식사 시간이다.

비는 관광객에게는 저주이나, 농부에게는 희소식이다.

현지인의 눈에 관광객은 그림처럼 보일 뿐이다.

카리브 해 섬의 인디언들 눈에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붉은 우단 망토를 입은 콜럼버스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앵무새였다.







목욕하기 싫어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엄마들은 “안 씻으니 꼭 인디언 같네.” 또는 “너한테 흑인 냄새가 나.”라고 말한다. 그것도 인디언이나 흑인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들에서 말이다. 그러나 신대륙 정복사가들은 인디언들이 자주 목욕하는 것을 보고 정복자들이 놀라 혼미한 상태에 빠졌다고 기록했다. 처음에는 인디언들이, 좀 더 후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캐나다에서 칠레에 이르는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도 위생 습관을 전해 주었다.







체사레 롬브로조(Cesare Lombroso)는 인종차별을 범죄학의 문제로 둔갑시켰다. 이탈리아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유대인인 그는 원시 미개인의 위험성을 증명하기 위해, 반세기 후에 히틀러가 유대인 배척운동을 정당화할 때 사용한 것과 대단히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범죄자는 범죄자로 태어나고, 그들의 생김새는 몽골 인종의 후손인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흑인과 똑같다는 것이 롬브로소의 주장이다. 살인범은 광대뼈가 넓고 머리카락은 검은 곱슬머리이고 수염이 적으며 송곳니가 크다. 또 도둑놈은 코가 납작하고, 강간범은 입술과 눈꺼풀이 두툼하다. 범죄자는 미개인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여자들은 얼굴을 붉히곤 했지만, 롬브로조는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여자들까지도 범죄자의 용모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혁명가에 대해서도 “나는 균형 잡힌 얼굴을 지닌 무정부주의자를 본 적이 없다”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견해를 나타냈다.







1997년, 관용차 한 대가 상파울루 대로를 규정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출고한지 얼마 안 된 그 비싼 차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경찰 한 명이 차를 세웠다. 경찰은 그들을 차에서 내리게 한 뒤, 한 시간 가량 손을 위로 든 채 뒤돌아서 있게 하고, 어디에서 그 차를 훔쳤느냐고 연신 추궁했다.

세 명 모두 흑인이었다. 그중의 한 명인 에지발두 브리투(Edivaldo Brito)는 상파울루 주정부의 법무장관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법무부 직원들이었다. 브리투에게 이 사건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같은 일을 다섯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을 제지했던 경찰도 흑인이었다.







인디언은 바로 이래서 열등하다 (16~17세기 정복자들의 생각)

- 카리브 해 제도의 인디언들이 자살하는가?

나태라고, 일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 몸 전체가 얼굴인 것처럼 벗은 몸으로 활보하는가?

야만인은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 소유권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며, 부에 대한 욕심이 없는가?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주 몸을 씻는가?

마호메트 종파의 이교도에 가깝기 때문인데, 종교재판소의 불구덩이에서 활활 타오를 것이다.

- 꿈을 믿고, 그 소리에 복종하는가?

사탄의 영향이거나 단순히 우둔하기 때문이다.

- 동성애가 자유로운가? 처녀는 순결을 전혀 중요하지 않는가?

난교(亂交)의 습성이 있고, 지옥문 바로 코앞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절대로 어린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두는가?

벌을 줄 능력도 가르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 먹어야 할 시간에 먹지 않고, 배고플 때 먹는가?

본능을 통제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을 어머니로 여기며, 자연은 신성하다고 믿는가?

종교를 가질 능력도 없거니와, 우상만을 숭배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일이 없는 사람들은 평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배고픔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먹는 것을 두려워한다.

운전자는 걷는 것을 두려워하고, 보행자는 차에 치일까 봐 두려워한다.

민주주의는 기억을 두려워하고, 언어는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민간인은 군인을 두려워하고, 군인은 무기가 바닥날까 봐 두려워하며, 무기는 전쟁이 부족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이제는 공포의 시대다.

남성의 폭력에 대한 여성의 공포,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 도둑에 대한 공포, 경찰에 대한 공포

자물쇠 없는 문, 시계 없는 시간, 텔레비전 없는 아이, 수면제 없는 밤, 각성제 없는 낮에 대한 공포

군중에 대한 공포, 고독에 대한 공포, 지난 날에 대한 공포, 앞날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공포







라틴아메리카 군부는 1959년 쿠바 혁명을 기점으로 하여 방향을 전환했다. 전통 임무인 국경 수비에서 게릴라의 국가 전복 음모나 무수한 게릴라 양성소 같은 내부의 적을 소탕하는 것으로 담당 임무가 바뀌었다. 자유세계와 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명분에 힘입은 군인들은 거의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살해 버렸다. 1962년에서 1966년까지 불과 4년 사이에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아홉 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고, 이후 군인들은 국가안보라는 교리를 맹신하며 시민정부를 무너뜨리고 양민을 학살했다. 세월은 흘렀고, 문민질서는 회복되었다. 적은 여전히 내부에 있지만, 더 이상 과거의 그 적은 아니다. 군부는 이제 일반 범죄자들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공공안녕을 외치는 히스테리가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밀어내고 있다. 군인들은 자신들을 단순한 경찰의 지위로 깎아내리는 것을 털끝만큼도 달가워하지 않지만 현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약 30년 전까지만 하더라고 기성 권력기구의 적(敵)은 밝은 분홍색에서 강렬한 빨강색까지 다채로웠다. 변두리 칼잡이와 좀도둑 사건은 사건․사고면을 읽는 독자들이나 잔인함을 탐독하는 사람들, 범죄 전문가들만의 관심을 끌 뿐이었다. 이젠 상황이 바뀌어 이른바 일반범죄가 보편적 강박관념이 되어 버렸다. 범죄도 민주화되어 누구라고 손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모든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는다. 범죄는 철권통치와 사형제도를 부르짖는 정치인과 언론인에게 강력한 자극의 원천이 되고, 영외(營外)에서 거두는 성공에 목을 매는 일부 군 장교들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일부 라틴아메리카 장군들은 정치 캠페인에서 민주주의를 혼란과 불안으로 동일시하는 이 집단적 공포를 대단히 그럴싸한 구실로 활용하여 한몫 단단히 챙겼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피비린내 나는 독재 권력을 행사하거나 독재의 전면에서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이후엔 국민들의 놀랄 만한 반향을 등에 업고 슬그머니 민주주의 투쟁에 끼어들었다.







1997년 4월, 브라질리아를 방문 중이던 인디언 지도자 갈디노 헤수스 도스 산토스(Galdino Jesús Dos Santos)는 버스 정류장에서 자고 있다가 산 채로 타 죽었다. 좋은 집안 출신의 십대 다섯 명이 술을 마시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그에게 알코올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들은 이렇게 변명했다. “거지인 줄 알았어요.” 1년 후 브라질 법원은 살인 의도가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가벼운 금고형에 처했다. 연방직할지 법원의 기록관은 이렇게 말했다. 소년들은 가지고 있던 알코올의 반밖에 사용하지 않았고, 바로 그 점이 “살인이 아니라 즐기려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걸인들을 불태워 죽이는 것은 브라질 상류층 자제들이 심심찮게 즐기는 스포츠지만, 그런 기사는 대체로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







1997년, 미국의 죄수는 총 180만 명이었는데 10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수치는 가택에 연금된 사람, 가석방이나 보호감찰 대상인 사람들까지 합하면 세 배나 폭증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전개했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이 최악의 상황에 달했을 때의 수감자보다도 흑인은 다섯 배가 많고, 전체 수감자는 덴마크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 투자가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 것은 이렇게 엄청난 고객 리스트였는데, 바로 이는 감옥이 민영화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운영하는 감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식사는 형편없고 학대가 다반사로 이뤄진다지만, 그것은 사설 감옥이 국영 감옥에 비해 싸지도 않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는 증거다. 비용을 절감해도 이익은 과도하게 늘어난다.

17세기경, 영국의 간수들은 죄수를 보내달라고 판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곤 했다. 석방시간이 다가오면 죄수들은 빚에 몰려 생을 마칠 때까지 간수들을 위해 노동을 하거나 구걸을 하곤 했다. 20세기 말 현재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라는 미국의 한 사설 교도소 회사는 뉴욕 증시 상위 5위 내에 랭크돼 있다. 이 회사는 캔터키프라이드치킨(KFC)에서 나온 자금으로 1982년 설립되었는데, 치킨 팔듯이 감옥을 팔아댈 것이라고 광고했다. 1997년말, 이 회사의 주가는 무려 70배나 뛰어올랐고,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푸에르토리코에도 감옥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내수시장이 사업의 기반이었다. 미국의 죄수는 나날이 늘어만 가고 감옥은 언제나 빈 방이 없는 호텔이다. 1992년에는 100여 개가 넘는 회사가 감옥을 디자인하고 건설하고 경영했다.

1996년, 이렇듯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월드리서치그룹(World Research Group)의 후원으로 전문가 회의가 열렸다. 회의 개최 알림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체포하고 구형하는 일이 늘어나면 수익도 늘어난다. 그 수익은 범죄 수익이다.” 사실 미국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범죄는 줄어들었지만, 시장은 더욱 많은 죄수를 공급하고 있다. 수감자 수는 범죄 건수가 늘어날 때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로 감옥에 가기 때문이다. 범죄 통계 때문에 한창 잘나가는 사업을 망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게다가 이 방면의 경영 간부인 다이안 매클루어(Diane McClure)는 1997년 10월, “우리의 시장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라는 희소식을 전하며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백정 가운데 하나인 알프레도 아스티스(Alfredo Astiz) 대위는 진실을 발설한 죄로 파면되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은 모두 해군에서 배웠다면서, 직업적 박식함을 자랑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정치인이나 기자들을 없애는 데는 기술적으로 가장 제대로 준비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와 또 몇 명의 아르헨티나 군 간부들은 에스파냐,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사람들을 암살한 혐의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재판에 회부되었거나 기소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이 수천 명의 자국민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지난 일은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취지의 법에 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러 형태의 불처벌법 역시 같은 기계에서 찍어 낸 듯 닮은꼴이다.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는 외채 상환과 범죄 망각이라는 선고를 받고 소생했다. 마치 민선 정부가 군부의 노력에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군부의 공포정치는 유리한 해외투자 환경을 조성했고, 이어 뻔뻔스럽게도 나라를 헐값에 팔아먹을 수 있는 길을 잘 닦아 놓았다. 국가 주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노동권을 유린하고, 공익사업이 와해된 것은 바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였다. 모든 것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행되거나 파괴되었다. 1980년대에 민권을 회복한 사회는 최상의 기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였고, 거짓과 공포에서 살아남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며, 너무도 낙담하고 쇠약해져서 창조적 활력을 필요로 했다. 창조적 활력은 민주주의가 약속한 것이긴 하지만, 줄 수도 없었고 줄 방법도 몰랐다.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정부는 정의를 보복과 동일시하고, 기억을 무질서와 혼동했으며, 국가 테러리즘을 자행한 자들의 이마 위해 성수를 부었다. 민주주의의 안정과 국민화합이라는 이름 아래에 정의를 추방하고 과거를 묻어 버리며 기억상실을 찬양하는 불처벌 법안들을 공포했다. 그중 어떤 법은 세계 역사상 가장 잔인무도했던 여러 선례를 훨씬 더 능가하기도 했다. 1987년에 공포된 아르헨티나의 지당한 복종법은 10년이 지나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자 폐기되었다. 지당한 복종법은 어떻게든 사면해 주려는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명령을 따랐을 뿐인 군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명령을 내린 사람이 상사든 대위든 장군이든 신이든 명령에 따르지 않을 군인은 없으므로 형벌의 책임은 신(神)들의 나라에나 부려지곤 했다. 히틀러가 자신의 정신착란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1940년에 완성시킨 독일 군법은 당연히도 훨씬 신중했다. 예를 들면, 제47항에서는 “상관의 명령이 일반 범죄나 군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행동의 책임 소재가 부하 군인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그 외의 라틴아메리카 여러 법은 지당한 복종법만큼 격하지는 않았지만, 군부의 오만함에 국민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또한 그 법들은 국민의 공포를 이용하여 대학살은 정의가 닿지 않는 곳에 모셔두고, 최근세사가 남긴 모든 쓰레기는 양탄자 밑에 숨기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폭력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융단폭력 식 홍보를 접한 뒤에 대부분의 우루과이 국민들은 1989년의 선거에서 불처벌을 지지했다. 공포가 승리했고, 무엇보다도 공포가 법의 원천이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에서 공포는 때로 물밑에 가라앉아 있고, 때로는 눈앞에 보이기도 하는데, 권력을 살지게 하고 정당화한다. 그리고 권력을 민주주주의 선거의 리듬에 맞춰 들어서고 나가는 정부보다 더 깊은 뿌리와 더 끈질긴 구조를 지니고 있다.







세기말의 높은 하늘, 미국은 지구상에서 자동차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곳일 뿐 아니라, 무기도 가장 많이 몰려 있다. 6, 6, 6. 보통 시민이 지출하는 6달러당 1달러는 자동차에 들어간다. 살아가는 여섯 시간마다 한 시간을 차 안에 있거나 차 값을 지출하기 위해 일한다. 알자리 여섯 개당 한 자리는 직간접적으로 자동차와 관련되어 있고, 또 다른 한 자리를 폭력이나 폭력 연계 산업과 관련되어 있다. 자동차와 무기가 더 많은 사람을 살해하면 할수록, 자연이 더 많이 황폐해지면 질수록 국민총생산(GNP)은 늘어난다.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위한 부적인가 아니면 범죄를 부추기는 것인가? 자동차 판매량은 무기 판매량에 비례하는데, 무기 판매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동차사고는 화기, 총포에 의한 사망률을 누르고 젊은층의 사망 원인 1위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 중에 전사하거나 부상한 미국인보다 더 많은 미국인이 교통사고로 매년 목숨을 읽거나 다친다. 그리고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든지 자동소총을 구입해서 동네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요리해 버릴 수도 있다. 운전면허증이 그 용도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수표로 지불을 하거나 수표를 현금으로 찾을 때, 어떤 수속을 하거나 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도 쓰인다. 운전면허증이 주민등록증을 대신한다. 다시 말해,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해 준다.







현대화, 자동차화. 당신의 자유를 훔친 후 나중에 당신에게 되팔고, 당신의 다리를 자른 후 나중에 자동차나 운동기구를 사라고 강요하는 문명의 저의를 고발하는 소리는 엔진의 굉음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자동차가 지배하는 도시의 악몽이 세상에서 유일하고도 가능한 삶의 모델로 강요된다. 라틴아메리카 도시들은 800만 대의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로스앤젤레스와 비슷해지기를 꿈꾼다. 창조 대신에 똑같이 찍어 내는 훈련에 돌입한 지 500년이 된 우리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그 현기증 나는 상황의 기괴한 복사본이 되길 갈망한다. 운명이 모방자로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무엇을 모방할 것인가를 선택할 때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낭비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조용하게 살 수도 없고, 조용함을 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나는 법을 잊어버린 암탉의 날개처럼 걷는 법을 잊어버린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쓰레기를 먹으며 마치 음식이라도 되는 양 돈을 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마치 공기라도 되는 양 10원 한 장 내지 않고 똥을 먹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텔레비전 채널 두 개를 놓고 하나를 택할 자유 외에는 아무런 자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기계와 함께 열정적이고 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항상 다수지만 항상 외로운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1983년, 독일 작가 권터 발라프(Günter Wallraff)가 주유소들 중 한 군데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함부르크에 있는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는 회사가 맥도날드라는 이름으로 어떤 일을 자행하는지는 순진할 만큼 알지 못했다. 그는 끓는 기름방울을 맞아 가면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일했다. 해동된 햄버거는 10분 동안만 먹을 만하다. 10분이 지나면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그전에 지체 없이 철판에 던져야 한다. 감자튀김, 채소, 고기, 생선, 닭고기 등의 모든 음식 맛이 똑같다. 그것은 화학 산업이 지시하는 대로 만들어 낸 인공의 맛이다. 게다가 고기에 포함된 지방 함량이 25%나 된다는 사실, 그것도 색소를 첨가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데 온힘을 다한다. 이 불량식품은 세기말에 가장 성공을 거둔 음식이다.







전문가들은 물건을 외로움을 달래는 마술사의 주문으로 바꿀 줄 안다. 물건은 인간의 속성을 지녔다. 쓰다듬고, 같이 있어 주고, 이해해 주고, 도와준다. 향수는 당신에게 키스해 주고, 자동차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 친구다. 소비문화는 고독을 시장에서 가장 수지맞는 품목으로 만들었다. 가슴에 뚫린 구멍은 그 구멍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거나 가득 채우는 꿈을 꾸는 것으로 메워진다. 그리고 물건은 껴안을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물건은 신분상승의 상징이 될 수도 있고, 계급사회의 세관을 통과하기 위한 허가증이 될 수도 있으며, 출입 금지된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흔하지 않을수록 더 좋다. 물건이 당신을 택하고, 군중의 익명성에서 당신을 구한다. 광고는 판매하는 물건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는 예외도 있지만 말이다. 정보 제공이야말로 제일 하찮은 일이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절망을 보상하고 환상을 심는 일이다. 당신은 이 면도용 로션을 사면서 어떤 사람으로 바뀌고 싶습니까?







세계가 커다란 TV 화면으로 변하려 한다. TV 속 물건은 바라보는 것이지 만질 수는 없다. 판매되기를 기다리는 상품은 공공의 공간을 침략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남의 장소였던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은 이제 상업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모든 쇼윈도의 쇼윈도라 할 수 있는 쇼핑센터나 쇼핑몰은 자신의 위압적 존재를 억지로 주입한다. 군중은 소비의 미사가 열리는 이 대사원에 순례자가 되어 참석한다.







지구의 주인들은 지구가 마치 일회용인 것처럼 사용한다. 태어나자마자 바닥나는, 잠깐 사용하고 버리는 물건, 텔레비전에서 기관총처럼 쏟아내는 영상들, 잠시도 쉴 틈 없이 광고가 토해 내는 유행과 우상들. 그러나 우리가 어느 다른 별로 이사해 살 것인가? 신께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지구를 사유화하기로 결심하시고, 몇몇 기업에게 지구를 팔아넘기셨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가? 소비사회는 바보 사냥을 위한 함정이다. 칼자루를 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하지만,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자연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적게, 아주 조금 소비하거나 혹은 전혀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회의 불의는 시정해야 하는 잘못이나 극복해야 할 단점이 아니라 절대 불가결한 필수품이다. 지구 크기의 쇼핑센터를 먹여 살릴 만한 자연은 없다.







도시의 담벼락에 적혀 있는 것

- 나는 밤이 너무도 좋아. 그래서 낮에는 밤 위에 차양을 칠거야.

- 그래, 매미는 일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개미는 노래할 수 없어.

- 우리 할머니가 마약은 안 된다고 하셨어. 그리곤 돌아가셨지.

- 인생은 저절로 치유되는 병이야.

- 이 공장은 새들을 연기로 내뿜네.

- 우리 아버지는 정치가라도 된 것처럼 거짓말을 하셔.

- 행동은 이제 그만! 우린 소망을 원해!

- 희망은 가장 마지막으로 읽어버린 것.

- 세상에 오기 위해 아무도 우리에게 길을 물어 본 적 없지만, 이 세상에 살기 위해 우리에게 길을 물어봐 주었으면 해.

- 다른 나라가 있을 거야. 어딘가에.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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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의 생각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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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가 출소한 이후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인권운동은 비전향 장기수로서 자신의 몸으로 당해온 반인권 상황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해서 조금씩 사회의 여러 문제로 넓어진다. 그래서 그의 인권은 생생하고 처절하다. 그런 인권에 대한 글들이기에 글들도 생생하고 처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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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 최서해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
최서해 지음, 곽근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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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를 실아가야했던 식민지 민중들의 삶을 그린 소설 중 가장 단순하고 단호한 소설은 최서해의 소설일 것이다. 그렇다고 도식적이지도 않다. 숨막히는 삶은 그냥 숨막히게 그리면 된다. 치떨리는 상황을 읽고는 치떨리게 만들어야 한다. 지식인들처럼 이것저것 고민하면서 어정쩡하게 살지말고, 단순하고 단호하게 살자. 식민지 조선이 뭐 그리 복잡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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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다면 적응하라”
- 『10년 후, 한국』 (공병호, 해냄, 2004년)


공병호의 글은 아주 쉽습니다.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신자유주의자 석학들의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학식이 높으며, 국내 굴지의 전경련 부설 연구소 소장까지 역임한 화려한 경력에 상관없이 그의 글을 아주 대중적입니다. 어렵고 복잡한 얘기도 대중의 눈높이에서 아주 쉽고 간결하게 풀어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그의 책을 접하게 되고, 그래서 쉽게 그의 얘기에 고개를 끄떡입니다.

공병호의 글은 현실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신자유주의가 무엇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 만큼 명쾌하고 자신감 있게 지적한 사람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는 전공인 경제분야만이 아니라 정치, 교육, 문화, 외교, 노사관계, 세대갈등 등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인용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 문제점을 명쾌하게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강조합니다.
“살아남고 싶다면 이제 현실을 직시하라”

공병호의 글은 아주 비타협적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더욱 진취적으로 상황을 타개해나가야 하는데, 대중의 원시본능을 자극하면서 감성적인 대중선동을 일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사회에 아직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는 이런 시대착오적이며, 한국사회를 침몰로 몰아가는 소위 ‘진보진영’과는 일고의 타협도 없다고 강변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소수의 선각자들이 이론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럼 그가 지적하는 한국사회의 문제들에 한 가지를 들어봅시다.

현대적 의미로 좋은 시절이란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곳을 향해 분출되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시장에서 기회를 읽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며 사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가 좋은 시절에 해당할 것이다. 그들이 감수한 위험의 대가로 여러 사람들이 혜택을 나누어 갖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그런 사회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반대로, 좋지 못한 시절이란 어떤 때일까? 행동한 적도 없고, 행동하고 있지도 않으며, 다만 입으로 선해(善行)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절이 그런 때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어려움을 감내할 만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축적한 부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사람들은 '욕먹어가면서 누구 좋으라고 사업을 하나'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지 모른다. 생산적인 활동 대신 투기 열풍이라 부를 만한 일들이 반복, 순환될 것이며 돈을 안전한 곳에 넣어둘지는 몰라도 사업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안정 지향적인 성향은 사업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직업 선택에도 나타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의대나 한의대를 최우선으로 친다. 나는 가끔 공급 과잉 때문에 한 집 건너 개인병원이나 한의원이 즐비한 동네는 상상하곤 한다. 정년이 보장되는 교사나 공무원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고시와 자격증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우리 사회가 안정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의미다.
안정이란, 부를 나누어 갖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많은 변호사가 있다 해도 그들이 새로운 부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들은 존재하는 부를 나누어 갖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정신이 위험을 피해 안정을 취하는 쪽으로 간다면 그 사회는 정체를 벗어날 수 없고, 나는 향후 10여 년 간 이런 추세가 계속 되리라고 본다.

정말 너무 분명하고 날카롭지 않습니까?
사회가 끝임 없이 부를 창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모두들 현실에 안주하면서 부를 나누어 가질 생각만 하니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기업가정신’을 활성화해서 사회의 창조적 동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가 무엇이 문제인지 그가 적어놓은 소제목을 살펴봅시다.
‘주력산업이 흔들린다’ ‘떠나는 기업들, 사라지는 일자리’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약진하는 진보진영’ ‘제대로 된 시대정신이 없다’ ‘위험한 민중주의의 유혹’ ‘약진하는 노동조합’ ‘한국의 교육, 희망은 있는가’ ‘악화되는 재정적자’ ‘대미 외교, 감정만으로는 안 된다’ ‘시대를 거스르는 민족주의’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 ‘세계화, 결코 피해갈 수 없다’ ‘한국 경제를 뒤흔드는 차이나 쇼크’ ‘길어가는 세대간 갈등’
어떻습니까? 한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 선명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한때 ‘한강의 기적’이니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니 하면서 칭송받던 한국사회의 현실이 왜 이 지경이 되어버렸을까요? 그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들어봅시다.

이성의 힘이 부족하고 감성에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원시 본능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문명화된 나라라 하더라도 역사의 어느 기간은 사회주의화를 실험할 때가 있다. 바로 원시 본능이 집단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때이다. 시장경제와 관련된 지적 인프라가 척박한 이 땅에서 우리는 원시 본능의 화려한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 생각처럼 우아할 수는 없다. 그곳에는 번잡함과 혼란스러움, 불평등과 비열함 등 온갖 종류의 악행들이 널려 있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세상은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더럽기만 하지도 않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을 벗어나 완벽한 세계를 꿈꾼다.
그 같은 동경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상상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대개 단번에 모든 것을 일소하는 '싹쓸이'의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점진적인 개량이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이상향을 향해 조급하게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성향은 결코 시장경제와 함께 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체제에 감사하기보다는 상대적인 불평등에 불만을 터뜨리기 쉽다. 원하는 조건이 만족되지 못하면 그 원인인 제도는 타도의 대상이 된다.
부란 천부적인 권리가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체제 변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비롯해 보통 사람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고민하고, 문제 해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기 때문에 실용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반면 사회주의는 명분과 함께한다. 실용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직접 행동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나타낸다. 명분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행동보다는 토론이나 담론을 즐기는 편이다.
......
주자학은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천보다 말이 무성하고,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상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쿠바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났지만, 그보다 훨씬 발전된 교조주의와 명분주의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북한을 봐도 알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는 집단주의적 색채가 곳곳에 배어 있다. 타인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이성에 바탕을 두고 다른 의견을 비판하기보다는 폭력적 언어로 타인을 비방하는 일이 예사롭지 않게 일어난다. 때로는 집단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 특정인을 ‘왕따’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
그렇다면 왜 개인주의가 중요한가?
시정경제는 개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삶의 방식이 자리 잡지 않는다면, 집단적 의사결정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피해에 이미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의 완전한 결별이란 쉽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갖추는 젊은 시절에 심취했던 사상과 세계관을 버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연하게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거나 찬양하지는 않지만 그들 중 다수는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언론에 전해지는 발언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 사용하는 용어들을 보면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누구나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좌파 지식인들은 몰락한 사회주의를 보면서도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론 사회주의가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기만 한다면 멋진 세상이 펼쳐지리라고 여전히 믿는 것일까.

성장이 정체되고 세계화가 급속해지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정의로운 분배를 실천할 수 있는 조직화된 권력에 대한 욕구도 점점 커질 것이다. 그것은 정치 지형도 변모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좀더 분배 위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성장 동인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축소지향형 악순환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심리에는 ‘이웃이 잘살기 때문에 내가 못산다’는 생각이 깔리게 된다. 그러니 ‘있는 자에게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준다’는 생각은 언제든 제도화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는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면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할까요?

나는 세계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가능성의 문을 열어둔 세계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다만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지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지던 경쟁은 점점 더 세계적인 규모로 확장되고 있다.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세계 어느 곳에 내일 당장이라도 유력한 경쟁자가 등장할 수 있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적응하고, 혁신하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으면, 지구의 또 다른 곳에서 누구든지 그런 삶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무 급변한다고 불평하고 저주해도 그것은 한순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 변화를 되돌려놓을 수는 없다. 함께 모여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고 고함도 치면 동지애를 굳히거나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자본과 세계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
이런 저런 이유로 보호되었던 거의 전 영역이 개방에 노출될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변화의 불가피함을 받아들인다. 경쟁이란 개방과 경쟁 속에서만 곷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필요한 변화를 추진한다. 반면 우둔한 사람들은 애써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 믿고 싶은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믿듣지 세상의 흚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바꿀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중요한 삶의 철학을 얻었습니다.
“바꿀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한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끝임 없이 현실에 적응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 일자리가 있는 분들은 그 일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현실에 적응하십시오. 기능도 끝임 없이 향상시키고, 시장의 변화에 따라 회사의 성과와 자신의 성과를 끝임 없이 일치시키고, 변화되는 작업조직에 끝임 없이 적응하십시오. 현실을 바꿀 수 없으면서 대중을 현혹하는 노동조합이나 정치인들에게 현혹되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헬스도 하고, 보약도 먹으면서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입니다. 과로사니 근골격계니 하는 것은 모두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를 노동조합에서 부풀려서 그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설혹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더라도 그런 현실에 한탄이나 하면서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거리의 노숙자처럼 삶을 포기하는 무능력자가 되지 말고, 자기 사업을 벌이거나 다른 직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전하는 삶의 자세를 보인다면 위기는 기회가 됩니다.
이런 삶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당신은 만 명 중의 빛나는 한 명이 될 것입니다.
그게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빛나는 삶의 자세입니다.
다시 한 번 삶의 철학을 가슴에 새겨두십시오.
“변화시킬 수 없다면, 철두철미하게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성공한 ‘만 명 중의 한 명’을 뺀 나머지 ‘만 명 중의 구천구백구십구 명’은 가슴에 새로운 철학을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적응할 수 없다면, 철두철미하게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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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 소년이 고아원을 탈출하여 미군 나이트클럽에 취직해서 밑바닥 생활을 하고,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소녀와의 사랑이 현실에서 굴절되다가, 밑바닥 생활을 청산하면서 그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정말 진부한 얘기를 400쪽이나 늘어놓고 있습니다. 환타지 소설도 아닌데 신화나 설화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사건전개들이 무수히 나타나고, 그렇다고 리얼리즘 소설처럼 시대적 상황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철지난 진부한 얘기를 이상한 방식으로 늘어놓는 이 소설은 이상한 소설입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시대에 이런 이상한 소설을 읽는다는 것도 이상한 짓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나온지가 1년이 넘었지만 잘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밑바닥 인생들의 얘기를 늘어놓는 소설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 유명한 ‘인간시장’을 비롯하여 과거 80~90년대 넘쳐났던 리얼리즘 소설 등 정말 진부할 정도로 많은 소설들이 밑바닥 삶을 얘기했습니다. 너무 진부해서 이제는 얘기하지 않는 그 얘기를 다시 끄집어낸 작가는 그 진부하고 구질구질한 삶을 정말 진부하고 구질구질하게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몸서리가 쳐집니다.


나는 바로 이튿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나는 소주에 취해 걸레조각처럼 쓰러져 잠든 어미를 생각했고, 그녀가 들려준 얘기를 떠올렸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지네였다. 화장실로 들어서는 미군 병사의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나는 채 문이 열리기도 전에 목청껏 고함부터 질렀다.

“굿 이브닝, 써어!”

선수를 빼앗긴 제임스 박이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검둥이 미군 병사가 들어왔다.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빙긋 웃으며 유 토킹 투 미, 하고 말하더니 소변기 앞으로 가 바지 지퍼를 열었다. 나는 양복솔을 들고 그의 등 뒤로 다가가 손을 한껏 뻗어올려 보잘것없는 스웨터를 걸친 그의 어깨에서부터 먼지를 털어내는 시늉을 시작했다. 미군 병사는 말했다. 유 돈 해브 투 두 댓 투 미, 보이. 유 돈 해브 투.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이런 짓 말라는 뜻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대꾸할 것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계속해서 양복솔로 그의 엉덩이와 바지자락을 털어 내려갔다. 그가 자리를 옮겨 세면대 앞으로 가자, 나는 얼른 구둣솔을 집어 들고 그의 발 뒤로 가 쪼그리고 앉아서 구두의 먼지를 맹렬히 털어냈다. 오, 보이. 돈 두 디스 투 미. 아이 해브 나씽. 그가 손을 씻고 돌아서자 나는 그의 눈앞에 타월을 들이밀었다. 손의 물기를 닦으며 그는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젖은 타월을 받아들자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접시에 떨어뜨렸다. 25쎈트짜리였다. 그것은 드문 선심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미군 병사들이 떨어뜨리는 동전은 5쎈트나 10쎈트였다. 나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쌩큐, 써어!”

그 순간 문득 목이 메었다. 울먹임 같은 것이, 그와 함께 알 수 없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마침내 내가 그 짓을 하고 말았다는 자괴감과 혐오감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으나 나는 꿀꺽 그것을 삼켜버렸다. 나는 지네다, 하고 생각했다. 내 아비는 도둑이다. 내 어미는 주정뱅이다. 그리고 나는 지네다. 사람으로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네는 할 수 있다.


이렇게 구질구질한 삶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더 구질구질해야 이 세상이 얼마나 구린 세상인지를 알게 되는 법입니다. 세상은 이 진부하고 구질구질한 고아들을 자근자근 짖밟고 씹어제꼈습니다. 정말 개같은 세상입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가 단순히 밥벌이를 어떻게 하느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병식이형의 말은 나에게만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역시 가혹한 진실이었다. 태창 나염공장은 이듬해 1월 문을 닫았다. 소규모의 수공업 나염공장은 기술의 발전과 기계화 대형화 추세로 전반적으로 몰락하고 있었다. 그것이 막상 돈벌이가 되기 시작하면서 큰 자본이 투자되기 시작했고, 소규모 나염공장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병식이형은 실업자가 되었고, 그때부터 그의 술버릇은 더욱 사나워졌다. 술집에서나 골목에서나 아무하고나 붙들고 싸움을 벌여 코가 터지고 입이 찢어지고 눈자위에 멍이 들어 돌아왔다. 더욱 자주 순금이를 두들겨 팼다. 같은 동네의 십장 덕분에 그가 막노동을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

그들 부부는 나의 아비 어미와 비슷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충격으로 멍해졌다. 나의 영웅, 그리고 나의 미녀, 그들 부부가 나의 아비 어미와 비슷하다니. 어떻게 이렇게 되고 만 것인가? 때리고 맞고 깨고 부수고 남편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오랜만에 다시 나타나면 부부는 다시 싸우고 남편은 아내를 때린다..... 정말 똑같았다. 아아, 나의 영웅 부부가 나의 아비 어미와 같다니.

아이들은 밥상머리에서 숨 한번 쉬지 않고 고깃점을 허겁지겁 입안에 쑤셔넣고 있었다. 언젠가 이 아이들이 고아원에 맡겨진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과연 고아는 고아를 낳는 것일까. 나는 나의 영웅과 나의 미녀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들의 사랑을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지금의 그들이 이런 꼴이 되고 만 것은 더욱 놀라웠다.


“너도 알잖아. 우리 같은 것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놈의 세상에 지불해야 하는 게 뭔지.”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치욕, 우리 같은 것들이 가진 지불수단이란 그것뿐이었다.

그렇다. 영순이에게는 그녀 몫의 치욕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어미의 치욕만으로도, 나의 치욕만으로도 벅차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일어났다. 그녀가 나를 붙잡으며 힐난했다. 나도 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조금은 알아. 여기 여자들이랑, 제니랑 패티랑 무슨 파티를 벌였는지 알아. 넌 스스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난 아니야. 언제나 강요당했어. 어쩔 수 없었어. 아버지, 아버지가...... 하지만 이런 생활 곧 청산할 거야. 나 돈 많이 모았어. 곧 가게 하나 마련할 거야. 우영아, 제발, 제발...... 조금만, 조금만 관대하게 생각해줘.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그렇게 엄격하게 굴지 말고. 나는 그녀를 뿌리쳤다. 뭘 어쩌자고? 고아와 고아가 만나서 또 고아나 만들자고? 밀수꾼 범죄자와 매춘부 출신 밀수꾼 범죄자가 만나서 또 범죄자나 만들자고? 너나 나나 누굴 만나더라도 좀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지 않냐? 말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영순이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듣지 않았으나 알아들었다.

또다시 우리 앞을 막아선 것은 아비였다. 나와 영순이에게, 우리 같은 고아들에게 아비 어미는 단순한 아비 어미가 아니라 어쩌면 저주,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나는 그녀가 내가 아는 것 외에 또 무슨 얘기를 꺼낼 것인지 두려웠다. 또 하나의 나의 아비, 또 하나의 나의 어미와 마주치게 될 것이 뻔했고, 그것이 소름끼치도록 지겹고 혐오스럽고 무서웠다. 나는 소리쳤다. 그것밖에 몰라? 얼마든지 더 있는데. 애니도 있고 캐시도 있고 재클린도 있고 수잔도 있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매춘부들의 이름을 늘어놓으며, 나를 붙자는 그녀를 뿌리치며, 그녀의 흐느낌을 등 뒤로 들으며, 돌아서서 그녀를 껴안으려 고집하는, 마음속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짐승을 짓누르며 그녀의 집을 나섰다.

만일 지금 내가 영순이를 받아들인다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놈의 세상은 나나 영순이의 계획이나 임의대로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덫에 빠진 것이요, 그리하여 더욱 참혹하게 박탈당하고 말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듯 선명하게 나는 또 하나의 아비, 또 하나의 어미가 되어 있는, 혹은 또 하나의 나의 영웅과 미인이 되어 있는 나와 영순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너무도 잔인하게 고아들을 짖밟는 세상은 결국 그들의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미련 없이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거고,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덤벼들고, 기회만 되면 ‘달러의 나라’ 미국으로 가기위해 별별 짓을 다합니다. 그런데 정신 나간 미군 탈영병이 나타나서 “꿈깨!”라고 얘기를 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은 허구다. 아메리카의 정의라는 것도 허구요 위선이다. 그 허구와 위선을 한꺼풀만 벗기고 들여다보면 거기 잔인성과 야만과 이기주의와 탐욕이 구정물처럼 악취를 풍기며 아메리카라는 하수구에 콸콸 흘러넘치고 있다. 아메리카에서는 허구와 위선이, 탐욕과 야만이 전통과 문화가 되어버렸다. 거기에다가 골목대장의 영웅심리를 더하여 이루어진 거대한 개미탑 같은 나라, 거기에 자유의 여신상이라는 위선을 덧씌워놓은 나라, 그것이 바로 아메리카다. 아무도 위선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아무도 탐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미 문화가 되어버렸으니까. 가정에서부터, 학교에서부터 그르치고 배우는 교육의 중요한 커리큘럼이 되어버렸으니까. 참으로 우습고 무서운 일이다. 하기야 그 골목대장은 60년대 이래 쿠바에서, 남미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베트남에서 덩치도 보잘것없는 제3세계 아이들에게마저 연이어 형편없는 패배를 맛보고 있지만. 뭐 하러 그런 놈의 데로 이민을 간단 말이야? 난 내가 아메리카 시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데, 1년의 근무기간이 지나 아메리카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 지긋지긋해지는데, 그래서 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갈까 생각중인데,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궁리중인데.


진부하고 구질구질한 삶을 살아가면서 끝임 없이 짖밟히는 고아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은 정말 사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밥이나 해주고 때로는 창녀처럼 몸도 허락하는 밥어미이기도 하고, 주민등록이라는 것에 서류상의 이름으로는 윤작은년이기도 하고, 열고야라는 이상한 나라의 스파이 이름으로는 꽃실이이기도 한, 몇 백 년 묵은 여자와 그의 동료 스파이가 나타납니다. 그들의 공작수법은 참 특이했습니다.


나는 밥어미가 알돈사가 되어 그의 앞에 서서 부르짖는 것을 보았다. 난 공주도 둘시네아도 아니에요! 난 창녀예요.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비한 곳인지 난 잘 알아요, 하지만 그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부드럽고 착한 마음이야말로 나에게는 고문이라구요. 당신은 나에게 하늘을 보여줬지만, 늘 땅바닥에 엎드려 걸레질이나 하고 사는 벌레 같은 저에게 그 하늘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나는 싼초 빤싸가 되어 그에게 말했다. 그 여자는 공주님이 아니라 여인숙 부엌데기에다 창녀에 불과합니다. 그건 적들이 아니라 풍차라구요. 이 미친 늙은이야. 그게 황금투구라구요? 천만에요. 그건 이발사가 가지고 다니는 깨어진 세숫대야예요. 그러나 돈 끼호떼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대야를 뒤집어 쓰고 풍차를 향해 덤벼들었고, 그것은 공주 둘시네아에게 그 승리를 바쳐 그녀를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곳 사람들을 상상할 수는 있었다. 작은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이 어떤 곳일지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말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넌 이미 알고 있어. 어릴 때부터 넌 이곳이 니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냐?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곳은 나를 고아로, 지네로 만드는 땅일 뿐이었다. 언제나, 지극히 작고 사소한 희망마저 어김없이 빼앗고 짓밟았다. 그런 곳이 내 나라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니 나라는 어딘데?”

그가 다시 물었다. 내 나라는 어디일까? 내 나라는..... 없었다. 어디에도 내 나라는 없다. 택이 아비는 말했다. 니가 이곳이 니 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때 니가 갈망하는 모든 것, 그리워하는 모든 것, 열고야국이 그런 곳이다. 니 나라는 거기다.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의 나라가 사실은 거기다. 까마득한 옛날 세상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강으로 뛰어든 백수광부가 도달한 곳이 거기다. 사랑마저 금지된 노예 생활을 견디다 못해 아사달과 아사녀가 물속으로 들어가서 이른 곳이 또한 거기다. 수로부인이 왕들에게 백 번을 사로잡혔다가 백한 번을 탈출하면서도, 백성들을 이끌고 동해바다까지 쫓겨가면서도 끝내 들어가고자 했던 곳이 바로 거기다. 예술로, 정치로, 가끔은 치사하고 비굴한 짓까지 해가며 이루려던 것을 끝내 하나도 이루지 못한 최치원이 금강산으로 들어가 이르고자 했던 곳이 거기다. 양반네들 앞에서 그네들 조롱하는 소리와 술로 세상을 견뎌내려 했으나 결국 더이상 견뎌낸다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갑자기 목청을 잃어 소리를 할 수가 없다고 핑계대고 종적을 감춘 송홍록이 떠난 곳도 거기다. 모든 존재와 아름다움과 그리움의 근원이다. 기이한 일이지. 이곳에서 태어나 살다 그곳을 발견한 사람은 종종 그곳으로 건너가기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 이곳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이곳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늘 가장 비천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발광을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처형당하고 만다. 그는 쓸쓸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정 이곳이 니 나라가 아니라면 니 나라는 거기여”


정말일까. 정말 사람이 그리워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일까? 정말, 틀림없이 그러하기를, 꼭 존재하기를. 그런 곳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나는 기어이, 끝내 그곳으로 건너갈 것이다. 나는 그 갈망으로 가슴이 메었다. 나의 거지 어미도, 나의 도둑 아비도, 내가 그리워하기만 한다면 죽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적어도 열고야국에서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간절히 그런 나라가 존재하기를 바랐다. 그런 나라가 정말 존재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몸이 더워졌다. 그러나......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가. 그런 생각에 골몰하는 나 자신이 두려고 어처구니없었으나 나는 간단히 부정해버릴 수가 없었다. 그 나라의 주민들이, 작은년과 택이 아비가 있지 않은가?

물끄러미 작은년의 우물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는 구덩이로 내려가 택이 아비가 내던지 삽을 움켜쥐고 삽질을 했다.

그렇게 나는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작은년의 슬픔을, 어쩌면 내 가슴을. 그녀가 5년 동안 끊임없이 내 가슴을 향해 걸어오기를 바라며. 어쩌면 나 역시 이렇게 삽질을 함으로서 그녀의 가슴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아니, 그보다는 열고야국을 향하여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우물을 통하여 지구덩이의 반대쪽으로 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지난 여름 파병철회투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시들해질 즈음 청와대 앞에서 정말 죽을 각오로 조용히 단식을 하던 지율스님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파병철회투쟁을 목소리 높여 외치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지도자분들은 노무현하고 제대로 맞짱도 뜨지 않고 적당한 명분 속에 단식을 시작하고, 적당한 명분 속에 단식을 접었습니다. 그래서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던 지율스님은 “천성산이 내게로 왔다”면서 투쟁 속에 죽음을 준비하였습니다. 결국 청와대는 승복을 하였습니다.

지율스님의 비타협성 속에서 천성산의 아픔이 스님의 아픔이 되었기에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지도자분들의 타협성 속에는 김선일씨의 절규가 자신의 절규가 되지 않았기에 간절함이 없었습니다.

나는 “대중이 아프면 그 아픔을 자기 스스로가 느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왔습니다. 그리고 얼마전부터 노동보건운동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제는 큰 목소리를 좀 죽여야겠습니다. 내가 아프면 이 아픈 것을 고치기 위해 마음속으로부터 정말 간절하게 빌고 빌어야겠습니다. 비타협성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대중이 요구하는 것을 비타협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전투성이 발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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