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이 금지된 세상에서 초콜릿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어린이 전사들의 얘기다. 좀 식상하다. 국민건강당의 파시즘적 통제에 맞서 어린 전사들과 동적적인 노인들과 몰락한 부랑자가 힘을 합쳐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인다. 역시 식상하다. 기발한 재치와 노력으로 초콜렛을 몰래 만들면서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초콜릿의 기억을 되살리며 혁명을 이끌어낸다. 정말 식상하다. 초콜릿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이 맞서는 파쇼세력은 채소와 과일과 무가당 등의 건강한 먹거리를 강조한다. 이건 황당하다고 해야 하나?
청소년 소설의 힘 중의 하나는 청소년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세상을 변화하려는 힘이 조금은 모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청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무진장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청소년들의 정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정말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시선이었다. 뜻은 좋지만, 왠지 모르게 교훈적이다.
한 건축가가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짧은 서평을 모아서 책을 냈다. 좀 식상한 방식의 책이기는 하다. 하지만 글쓰기는 깔끔하다. 자신의 다독을 자랑하려고 하지도 않고, 전공분야를 지나치게 부각하지도 않고, 잘난 척 힘을 주지도 않는다. 짧은 글 속에 만만치 않은 내공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과 인문 등에 집중된 지식인의 책읽기는 대중적 책읽기와는 많이 다르다.
유명한 작품의 원작을 읽다보면 원작만의 힘에 압도되는 경우가 많다. 괜히 고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3권짜리 원작 삼총사 역시 기대를 갖고 보게 됐다. 처음에는 돈키호테를 모방하려다 약간 모자라는 수준인가 했더니, 나름대로의 빠른 진행과 흡입력을 잠시 보여주더니, 막장 소설로 치달려서는 완전 막장의 끝을 보여준 소설이었다. 원작 삼총사에 비하면 요즘의 막장 드라마는 장난이다. 삼총사를 읽으려면 원작이 아닌 청소년판을 강하게 권한다.
식민지 시절을 살아가다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죽어간 소설가 이효석의 자취들은 지식인의 한 모습을 대변한다. 사회적 문제를 대변하면서 소설쓰기를 시작한 그는 일제의 탄압은 점점 심해지고 동료들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점점 지식인의 고민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일제의 제국주의 전쟁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 그의 소설은 서구를 동경하면서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적극적 친일과 소극적 친일은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