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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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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굴러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석유'. 석유라는 자원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함성을 질렀고, 석유 덕분에 우리의 삶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변혁과 혁신은 우습지만, 석유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가가 치솟기라도 하면, 모든 경제활동이 '악' 소리 나게 변하고, 유가가 내려가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있는 듯 유가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는 세계를 보면 어쩐지 슬퍼지기까지 한다. 석유에 의해 좌우되는 삶이라니. 

지키지 못하고, 떠난 후에야 잃어버린 후에야 안타까워하는 인간의 본성은 '석유'에서도 나타난다. 당장이라도 유가가 두 배로 뛴다면, 우리는 승용차를 끌고 나오기 보다는 대중교통을 탈 것이다. 석유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은 가격이 오를 것이다. 예전보다 적게 소비를 해도, 소비하는 돈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순환, 순환, 순환이 되고 종국에서는 정말 과거로 회귀해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석유 종말 시계>에서는 석유 1갤런당 4달러에서 20달러가 되었을 때까지 우리 삶의 모습을 예측하고 있다. 가상시나리오라고 하지만, 분명히 설득적인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삶이 석유에 묶여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석유가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없어서는 안 되고, 없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자원이 되었다. 하지만, 내성이 생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영원히 어디서나 뿜어져 나올 거라는 착각 때문인지 낭비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은 자원이 영원하길 바라며, 자원은 인간의 욕망과 욕심에 혀를 내두른다.  

   
 

역사상 가장 저렴한 석유가 SUV 출현과 맞물려 미국에서는 더 크고, 더 뚱뚱하고, 더 나은 것을 쫓는 경향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증가했다. 우리 사회는 아끼고 절약하는 실용주의 사회에서 과시하고, 경쟁하고, 욕망하는 사회로 진화해왔다. 미국 표준 차량의 확대는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극심한 석유 공황 사태로 인해 대부분 미국인의 차의 크기가 줄어든 후에 일어났다. 베이비붐 세대의 기억 한편에 주유소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풍경이 남아 있는데도 유가가 매우 불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솔하게 잊어버린 것이다. 
- 47p  <1갤런당 6달러>

 
   

글로벌 위기로 미국의 자동차 시장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이상 미국인이 원하는 차를 만드는 것은 힘들다. 경제도 경제지만, 석유의 치솟는 값은 그들이 편하게 차를 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유가가 쌀 때는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유가도 유가지만, 경제가 휘청거리며 많은 사람은 돈 벌 기회를 잃었다.  

유가가 8달러만 되도 항공사들은 운행을 중단하거나 값비싼 항공료를 요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공료를 올린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높은 항공료 때문에 비행기 타기를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소비하는 석유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소비를 감당하기에 유가는 착하지 않다. 그 소비를 감당하며, 탑승하기에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 또한 넉넉하지 않다.  

유가가 14달러가 된다면 월마트는 사라질 것이다. 중국에서 값싼 인건비로 만들어 배로 실어 나른 물품들은 석유값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건비보다 석유값이 그들의 사업을 좌지우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가가 높아진다고 해서 우리 삶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소비적이고, 안일한 생각들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더 친환경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없는 물품들을 여러개 사는 일도 없을 것이고, 집에 있는 물품들을 아껴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황된 소비보다는 내실있는 소비로 더욱 경제적인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유가가 16달러만 되도 지역 농장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며, 자급자족 혹은 물품교환도 성립될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사먹고, 굳이 멀리서 온 채소와 과일을 비싼 값에 사먹지 않을 것이다. 18달러가 되면 철도가 더 활성화 될 것이고, 미군은 군을 운영하는데 큰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20달러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친환경적인 물품, 소비를 지향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모두 유가의 반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가는 우리의 생활 깊숙이 들어왔기에, 유가의 변동으로 우리 삶이 크게 흔들리는 것에 대한 방책이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소비적인 사회, 소비적인 습관으로 불러드린 재앙. 유가의 폭등, 그리고 다시 회귀하는 삶. 시계는 계속 똑딱똑딱 움직이고 있다. 우리의 삶도 조금씩 변하듯이 말이다. 

자 이책을 읽고, 삶의 방식을 조금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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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
제임스 르 파누 지음, 안종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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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주 전체의 역사는 진화의 역사이다. 이말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생물학적 진화론은 한층 더 나아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인간을 비롯한) 생명의 다양성이 단일한 공통 조상으로부터 임의적인 유전적 변화의 과정을 통해 진화했을 것이라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물론 생물계와 우리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진화했을 수도 있다. 사실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와 신경과학이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결과들은 그런 기본적인 진화론을 미궁 속으로 빠뜨려버렸다. 앞서 언급했듯이, 거의 완벽한 골격의 형태로 발견된 '루시'는 과거 500만 년에 걸친 인간의 점진적인 진화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  41p

 
   

창조론 vs 진화론. 수없이 부딪쳐왔다. 신과 과학 그 사이에서 생동하는 수많은 생명들은 연구되어 왔고 발견되어 왔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수많은 허점이 있고, 그 허점이 이해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과학은 많은 것을 밝혀냈고, 인간의 집요함은 과학의 영역을 뛰어 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것이 이론이는 것이 이 세상의 만물의 변화와 탄생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우리는 너무 증거를 따르는데 급급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엥카레는 이렇게 썼다. "과학자는 유용성을 목적으로 자연을 연구하지 않는다. 과학자는 자연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을 연구한다. 과학자는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에 자연에서 기쁨을 느낀다. 만약 자연이 아름답지 않다면, 자연은 알 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며,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며... 친숙한 아름다움은 각 부분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질서에서 나오며, 순수한 지성은 그것을 포착할 수 있다.                -  93p  
   

 과학의 이러한 정신은 동의한다. 현상이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 과학의 중요한 목적이자 과정이지만, 우리는 너무 진화와 변화에 집착하지 않을까? 이책을 읽는 내내 여러가지 든 의문 중 하나는 과학의 집착이 모든 것을 짜맞추려 하는 것은 아닌가 였다. 포괄적인 것들을 설명하면서, 한 가지 이론에만 집착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  

   
 

다윈은 그 의미가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라고 나중에 회고했다. 가장 강하고 가장 견고한 종이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어떤 특별한 특성이나 돌연변이를 가진 종들은 같은 종의 열등한 개체를 거부하고, 또 환경의 요구에 가장 잘 적응함으로써 장점을 유지했다. 살아남은 종들과 그들의 자손은 유리한 돌연변이를 물려줌으로써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 그런 과정이 몇 세대를 거쳐 반복되면서 장점들이 점차 더 발전하고, 그것을 소유한 종들은 더 잘 적응했다. 다윈은 이렇게 썼다. "그 결과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적용 가능한 [자연선택] 이론을 수립했다" 
- 119p

 
   

 다윈의 진화론은 많은 부분에서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은 우월한 개체들이 '새로운 종'이 되었다는 것은 나 또한 납득할 수 없다.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모습도 변화할 수 있지만, 그래서 원래의 종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지만 꼭 우월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월한 개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살아남은 것들이 우월한 개체라면 살아남은 것들의 모습이나, 특성의 다양함은 거꾸로 말해 보편적인 것이 아닌가. 

   
 

 만약 다윈의 진화론이 진실이라면 이타심을 발휘하는 존재는 분명히 사멸했거나 단명했을 것이다. 말 그래도의 의미를 볼 때, 이타심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특성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목숨만 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위험에 처한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또는 더 잘 먹이려고 자신은 덜 먹거나 좋지 않은 것을 먹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태는 분명히 자신의 생존 가능성과 재생산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따라서 이타심은 '생존 투쟁'의 환경에서 이타심의 소유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특성이다.   -   232p

 
   

 한 가지 이론으로는 모든 게 다 설명될 수 없다. 또한, 밝혀지지 않은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과학은 많은 것을 알아내고 많은 비밀을 밝혀냈다. 비밀을 밝혀내면서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까지 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근원을 파헤치고 알아가는 것을 넘어서 자연을 대적하고 자연을 수단으로 삼기까지 한다. 인간이 가장 우월한 개체라고 전제하여 인간보다 하등한 개체들을 무자비하게 실험 대상으로 쓰며 비밀을 밝혀낸다. 그런 생각과 의문은 과연 과학이 밝혀내는 이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위대하게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만 들게 한다. 과학은 호기심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욕구 충족의 요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인간이 과학의 방법과 제도 때문에 세계에 대한 물질주의적 설명을 수용한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물질주의적 원인에 집착함으로써 과학 연구의 도구와 장치를 만들고, 그에 따라 물질주의적 설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 320p  
   
 
자연계, 인간을 넘어서 과학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성찰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신비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 그 '발견'의 집착 때문에 '신비'는 '신비'로 남지 않고, 처절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말이다. 이 책을 내내 불편하기도 했고, 인간이 밝혀낸 수많은 것들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고 하니 그 속에서 벌어진 많은 무자비한 실험들과 이론의 다툼이 걱정될 뿐이다. 우리는 알아내기 위해서 알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논리적인 이론을 내세워 많은 것을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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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프리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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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대화> 14p  
   

 사실, 참 어렵다. 이 책에 대해 설명하고, 평한다는 게 말이다. 많은 지식인에게 '사상의 은사'였던 리영희 선생님에게 바치는 책. 이 책만 읽고도 리영희 선생님을 제대로 다시 알고 싶어진다는 마음이 강렬히 든다. 그만큼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쳤고, 영향을 미치고 있고,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의 책을 읽고 큰 충격에 빠져 쥐구멍에 숨어 들어가고 싶었던 사람도 있다고 했고, 모든 생각이 무너지고 새로운 사상을 보게 되었다는 이들도 있다. 그를 존경하고 추종하는 자는 많았으나, 선생님은 패거리 문화를 질색했기에 편을 만들지도, 집단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로 존재했고, 하나로 존재하는 것조차 자율적이고 의지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써온 모든 글들에 책임을 졌던 사람이다. 

<리영희 프리즘>을 읽게 되면, 그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생각, 책 읽기, 전쟁, 종교, 영어공부, 지식인, 기자, 사회과학, 청년 시대. 그리고 다시 그. 그는 많은 젊은이를 '의식화'하게 했고, '생각'하게 했으며, '사유화'하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 취급을 받았고, 실제로 젊은이들을 '의식화'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정에 불려나가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힘', '움직이게 하는 힘' 그것은 강요된 행동이 아니었다. 그의 글만으로, 그의 말만으로 시대의 젊은이들은 하나 둘 깨어났던 것이다. 

   
 

 의식화가 일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스승은 더 이상 스승이기를 멈춘다. 그는 함께 깨어 있을 뿐이다. 스승과 제자가 구별되는 것은 한쪽이 '깨어 있고' 다른 쪽이 '잠들어 있을 때'만이 아다. 나머지 한쪽이 깨어나는 순간 그들은 사유의 동료, 해방의 동료가 되는 것이다. 결국 가르친다는 것, 더 정확히 말해서 '배우게 한다는 것'은 '깨어 있는' 동료를 늘리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명나라 말기 사상가 이탁오의 말이 생각난다. "스승이 아닌 자는 친구가 될 수 없고, 친구가 아닌 자는 스승이 될 수 없다."   - 29p

 
   

 '의식화의 은사',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렸던 그는 '범죄를 야기한 범죄', '메타 범죄'를 일으킨 주범이 되어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재판정에 서기도 했다. '간접적 주범'이 된 이유는 실제 주범이 그의 책을 읽고 방화 사건을 저지르게 했다고 해서이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힘,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각성하게 한다는 것, 어떤 행동을 이끌어 낸다는 것. 한 사람 한 사람을 움직이게 해서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이 리영희 선생님의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너희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를 알게 된, 그를 읽게 된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인다는 것 그것은 분명 큰 힘이었다. 우리가 이루어 놓은 지금, 이 현재는 그의 영향으로 세워온 것들도 많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머무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절필을 선언하며,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식화'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는 '우상'을 파괴하라고 말했다. 그 유명한 '우상 파괴론'에 의해 하나만 믿고 있었던 사람들은 둘을 알게 되고 셋을 알게 되며, 넷을 알게 된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인정하며 사는 '지금'이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맹목적으로 믿었던 사회적, 국가적 이념들이 조금씩 파괴되며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괴'를 '북한'이라고 고쳐쓰고, '빨갱이'라는 말이 낡아서 회상하는 단어가 되게 했다. 그것은 하나의 혁신이었고, 변혁이었다.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의심하는 것. 그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다. 

전쟁의 이면을 똑바로 봐야 한다는 일침, 몸소 보여준 방대한 책 읽기, 책 읽기 안에서 이루어낸 언어 능력, 언어 능력과 세계를 보는 통찰의 맞물림,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고 대중이 알아야 할 기사를 써내던 타협없던 기자 생활. 

행동하는 '사유'人이었던 그를 스승으로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70년대 대학생들을 '사유'하게 했고, '의식화'했다. 그 힘으로 세상은 변했고, 현재에 와 있다. 그가 절필을 선언한 것은 지금까지 끌어온 시대를 후세들에게 넘겨주고 싶어서 일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낡았다거나, 생각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그를 '우상화'하는 것도 거부하는 이다. 자기 생활에 주인이 되길 바라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길 바라는 이다. 치열한 싸움이 곧 변화를 만들고, 세상이 바뀌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 이.   

'Simple life, high thinking.'  그가 전하는 한 마디.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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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2>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명의 2 : 심장에 남는 사람 명의 2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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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의사에게는 전적인 믿음을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픈 내 몸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의사의 처방전 만으로도 병이 호전 되고 고칠 수 없을 것 같던 병도 낫게 된다. 감기 때문에 동네 병원만 가도 의사의 말을 추어도 의심하지 않는다. 의사는 아픈 이들에게 '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은 의사 중 의사 '명의'를 소개한다. 명의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병, 그 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마음과 방법 등을 사실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명의' 프로그램을 봤을 때, 의사들의 노고와 고통 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사람이고, 가족이 있지만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벅차다. 모든 시간은 환자 위주로 돌아가며, 한 명이라도 더 고칠 수 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낼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때마다 가족들의 고충 또한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17명의 의사들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는  사람이다. 환자의 병을 잘 고쳐내는 것은 물론,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애쓴다는 점에서 그들은 진짜 명의일 것이다. 시간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더 나은 의술로 환자의 고통과 근심을 최소화하고 싶어하는 그들이 있기에 환자들은 그들을 믿고, 자기 몸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없는 고통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간암, 췌장암부터 병이름도 생소한 크론병, 수근관증후군, 자궁경부무력증 등. 우리가 알 수없는 병들이 가지가지다. 그 병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들이 대단할 따름이다. 환자들은 병과 함께 사연도 가져온다. 첫 아이를 잃고, 다시 도전해 임신했지만, 자궁경부무력증 때문에 아이를 잃을지도 모르는 산모. 자궁경부절제술을 받았지만 쌍둥이를 출산한 산모. 사는 게 힘들어 방광암을 키워온 가족없는 청년을 수술시켜주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는 의사, 선천성 손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손가락을 만들어 주는 의사. 

의사들은 단순히 몸만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 걱정, 근심까지 모두 고친다. 몸이 좋아짐으로 인해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환자들.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게 환자들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조금 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명의. 그들의 땀과 노력이 없다면 그 수많은 병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삶의 희망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착한 사람이어야죠. 그러려면 환자한테 거짓말하지 말아야 할 거구요. 또 환자한테 항상 따뜻하게 대해야죠. 환자들이 '내가 선생님 부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냐, 그렇게 수술하겠냐' 하고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제 가족이라고 생각 안 하면 어떻게 최선의 방법을 찾겠습니까? 당연히 그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찾을 수밖에 업고, 늘 마음을 다해야죠. - 산부인과 전문의 남주현 교수

 
   

 

   
 

의사들의 노력과 과학의 발전이 지금보다 더 나은 의료 환경, 그리고 의학을 발전시킨다고 봅니다. 그런 노력들의 결과는 당연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구요. 그래서 더 많은 환자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대장외과 전문의 김선한 교수

 
   

 

   
 

 우리가 의자라든가 다른 물건을 만들 때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들면 부수고 다시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의 몸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 수술하게 되면, 그 환자를 다시 수술할 수 없습니다. 또 그 사람을 다시 만들 수도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환자 한 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비뇨기과 전문의 박영요 교수

 
   

 '명의'라고 부를 수 있는 의사들은, 단지 의술만이 뛰어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의술이 뛰어나다 하여 그곳에 머무른다면, 뛰어난 의술을 전술하지 않고 자기만 알려 한다면, 의술을 고치는 게 다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는 진정한 '명의'가 아니다.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의 아픔을 생각하고, 그의 꿈과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 그게 진정한 명의가 아닐까? 의술을 뛰어넘어 인술을 행하는 명의, 그들이 여기 한 자리에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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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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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시를 왜 읽는가? 그리고, 시를 왜 쓰는가? 시는 어째서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가? 깨닫게 하는가? 느끼게 하는가? 짧은 시에 담긴 삶에 대한 통찰, 인간에 대한 사유, 관계에 대한 의문과 정립. 시가 내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답답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화가 나거나, 마음에 안정이 필요할 때. 가슴 속이 메말라 갈 때. 나는 시를 필사하곤 한다. 좋은 시를 찾아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며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나가다 보면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곤 한다. 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주거나, 깨달음을 주곤 한다. 누구나 가슴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시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 하나 없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 

혹시라도 마음에 담아 둔 시 하나 없거나, 시를 조금 더 깊이 느끼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선택해 보는 것도 좋다. 어려울 것 같은 철학이 쉽게 다가는 것도 좋지만, 시 한편에 담긴 뜻밖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1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세상을 읽어가는 힘이 더해질 수도 있다. 난 그렇게 자신하고 싶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게 확실해지는 순간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철학이 시를 들여다보며, 시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잡아 끌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힘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네그리와 박노해,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 한나 아렌트와 김남주, 알튀세르와 강은교, 바타이유와 박정대, 벤야민과 유하, 레비나스와 원재훈, 벤야민과 유하, 레비나스와 원재훈, 니체와 황동규, 푸코와 김수영, 가라타니 고진과 도종환, 하이데거와 김춘수, 들뢰즈와 최두석, 샤르트르와 최영미, 아도르노와 최명란, 데리다와 오규원, 아감벤과 한하운, 메를로 퐁티와 정현종, 리오타르와 이상, 바디우와 황지우, 호네트와 박찬일, 박동환과 김준태 

작가의 기준대로 고른 시들은, 철학적으로 잘 맞아떨어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가장 좋은 점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작가가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궁금함을 여기 저기 뿌려 놓는다. 철학자에 대해 더 공부해 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할까? 그건 내가 철학에 무지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철학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동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김남주의 '어떤 관료'라는 시로 한나 아렌트의 사유에 관하여 설명한다.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국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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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아이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차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철저한 무사유 sheer thoughtlessness였다. (......)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74p

 
   

아렌트가 생각하는 사유는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 것. 김남주의 '어떤 관료'라는 시에서 '관료'는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아이히만'과 닮아 있다. 사유하지 않는 사람, '전체주의'라는 괴물로 변하는 사람,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 일어날 사태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은 설득적이다. 도처에 널려 있는 사람이 사유하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선, 나조차도 그럴 수 있다. 내 편의와 내 이익만 생각하고 하는 어떤 행위는 누군가에 상처를 주고 아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하는 일 마찬가지다. 이것은 모든 삶과 통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사유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성에꽃 - 최두석 

새벅 시내버스는 /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 / 어제 이 버스를 탔던 / 처녀 총각 아이 어른 /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 입김과 숨결이 /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 성에꽃 한 잎 지우고 / 이마를 대고 본다 /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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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장스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양한 이질적인 항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이 차이, 성별의 차이, 신분의 차이, 즉 차이나는 본성들을 가로질러서 그것들 사이에 연결이나 관계를 구성하는 다중체이다. 따라서 아장스망은 함께 작동하는 단위이다. 그것은 공생이며 공감이다.  <<대화>>  

다중체는 '많다'라는 뜻의 '멀티multi'라는 글자와 '주름fold'을 의미하는 '플리pli'라는 글자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글자가 바로 '플리'입니다. 새로 산 옷을 자주 입으면 이 옷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주름들이 생기지요. 이 주름들은 옷을 입은나 자신 혹은 외부로부터 받은 힘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주름이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243, 244p

 
   

 버스의 '성에꽃'은 어제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라는 시구절. 여기서 작가는 들뢰즈의 철학을 끌어냅니다. 다양한 것들의 마주침과 그로부터 생기는 흔적이나 주름을 이야기한 들뢰즈. 들뢰즈가 펼친 인간의 사유 '나무'와 '리좀'. 뿌리와 뿌리줄기, 뻗나가고 분리되고 연결하는.  
사실, 이 이야기만 듣고 들뢰즈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들뢰즈의 철학을 어렴풋이 느끼며, 시와 연결해 개념을 이해할 수는 있다. 더 나아가서는 들뢰즈에 관심이 생기고, 알고 싶어진다. 

이 외에도 펼쳐지는 시와 철학. 시를 본 철학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냐, 이런 의도가 숨겨있는 것은 아니냐. 과격하고, 직설적이지는 않다. 부드럽게 시를 배려한 풀이라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철학 이론은 '마르크스'가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으며, 철학적 사고를 모두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자만이고 욕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21개의 시와 21명의 철학자가 펼쳐주는 이야기에서 원하는 하나 만이라도 진지하고 깊게 다가가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분명, 읽다 보면 충돌이 일어나는 철학도 있고, 비슷한 이론으로 묶이는 철학도 있다. 그것에 대한 의문은 독자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철학 공부를 잠시 접어 두었던 사람에게는 또 다른 시작을, 철학 공부를 하고 싶었던 사람에게 또 다른 동기를 부여할지도 모르는 시간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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