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
제임스 르 파누 지음, 안종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우주 전체의 역사는 진화의 역사이다. 이말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생물학적 진화론은 한층 더 나아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인간을 비롯한) 생명의 다양성이 단일한 공통 조상으로부터 임의적인 유전적 변화의 과정을 통해 진화했을 것이라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물론 생물계와 우리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진화했을 수도 있다. 사실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와 신경과학이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결과들은 그런 기본적인 진화론을 미궁 속으로 빠뜨려버렸다. 앞서 언급했듯이, 거의 완벽한 골격의 형태로 발견된 '루시'는 과거 500만 년에 걸친 인간의 점진적인 진화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  41p

 
   

창조론 vs 진화론. 수없이 부딪쳐왔다. 신과 과학 그 사이에서 생동하는 수많은 생명들은 연구되어 왔고 발견되어 왔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수많은 허점이 있고, 그 허점이 이해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과학은 많은 것을 밝혀냈고, 인간의 집요함은 과학의 영역을 뛰어 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것이 이론이는 것이 이 세상의 만물의 변화와 탄생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우리는 너무 증거를 따르는데 급급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엥카레는 이렇게 썼다. "과학자는 유용성을 목적으로 자연을 연구하지 않는다. 과학자는 자연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자연을 연구한다. 과학자는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에 자연에서 기쁨을 느낀다. 만약 자연이 아름답지 않다면, 자연은 알 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며,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을 것이며... 친숙한 아름다움은 각 부분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질서에서 나오며, 순수한 지성은 그것을 포착할 수 있다.                -  93p  
   

 과학의 이러한 정신은 동의한다. 현상이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 과학의 중요한 목적이자 과정이지만, 우리는 너무 진화와 변화에 집착하지 않을까? 이책을 읽는 내내 여러가지 든 의문 중 하나는 과학의 집착이 모든 것을 짜맞추려 하는 것은 아닌가 였다. 포괄적인 것들을 설명하면서, 한 가지 이론에만 집착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  

   
 

다윈은 그 의미가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라고 나중에 회고했다. 가장 강하고 가장 견고한 종이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어떤 특별한 특성이나 돌연변이를 가진 종들은 같은 종의 열등한 개체를 거부하고, 또 환경의 요구에 가장 잘 적응함으로써 장점을 유지했다. 살아남은 종들과 그들의 자손은 유리한 돌연변이를 물려줌으로써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 그런 과정이 몇 세대를 거쳐 반복되면서 장점들이 점차 더 발전하고, 그것을 소유한 종들은 더 잘 적응했다. 다윈은 이렇게 썼다. "그 결과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적용 가능한 [자연선택] 이론을 수립했다" 
- 119p

 
   

 다윈의 진화론은 많은 부분에서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은 우월한 개체들이 '새로운 종'이 되었다는 것은 나 또한 납득할 수 없다.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모습도 변화할 수 있지만, 그래서 원래의 종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지만 꼭 우월한 개체들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월한 개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살아남은 것들이 우월한 개체라면 살아남은 것들의 모습이나, 특성의 다양함은 거꾸로 말해 보편적인 것이 아닌가. 

   
 

 만약 다윈의 진화론이 진실이라면 이타심을 발휘하는 존재는 분명히 사멸했거나 단명했을 것이다. 말 그래도의 의미를 볼 때, 이타심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특성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목숨만 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위험에 처한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또는 더 잘 먹이려고 자신은 덜 먹거나 좋지 않은 것을 먹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태는 분명히 자신의 생존 가능성과 재생산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따라서 이타심은 '생존 투쟁'의 환경에서 이타심의 소유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특성이다.   -   232p

 
   

 한 가지 이론으로는 모든 게 다 설명될 수 없다. 또한, 밝혀지지 않은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과학은 많은 것을 알아내고 많은 비밀을 밝혀냈다. 비밀을 밝혀내면서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까지 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근원을 파헤치고 알아가는 것을 넘어서 자연을 대적하고 자연을 수단으로 삼기까지 한다. 인간이 가장 우월한 개체라고 전제하여 인간보다 하등한 개체들을 무자비하게 실험 대상으로 쓰며 비밀을 밝혀낸다. 그런 생각과 의문은 과연 과학이 밝혀내는 이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위대하게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만 들게 한다. 과학은 호기심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욕구 충족의 요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인간이 과학의 방법과 제도 때문에 세계에 대한 물질주의적 설명을 수용한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물질주의적 원인에 집착함으로써 과학 연구의 도구와 장치를 만들고, 그에 따라 물질주의적 설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 320p  
   
 
자연계, 인간을 넘어서 과학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성찰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신비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 그 '발견'의 집착 때문에 '신비'는 '신비'로 남지 않고, 처절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말이다. 이 책을 내내 불편하기도 했고, 인간이 밝혀낸 수많은 것들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고 하니 그 속에서 벌어진 많은 무자비한 실험들과 이론의 다툼이 걱정될 뿐이다. 우리는 알아내기 위해서 알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논리적인 이론을 내세워 많은 것을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