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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그는 정치가이기 전에 작가다. 나는 정치를 하는 그보다 작가인 그가 더 좋지만, 그의 책 속엔 정치가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부터 시작된 그의 책은 무엇이든 읽어 나가는데 어렵지도 않았고, 재미있었다. '청춘의 독서'나 '후불제 민주주의' 또한 그랬다. 이제, 그는 국가에 대해서 말하고 싶을 때인가 보다. 참을 만큼 참기도 했겠지. 하지만, 난 그를 작가로서 더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고, 솔직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그의 이야기는 허접스레기 같은 어떤 책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는 그의 책에 자신만의 성찰과 사유를 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그의 책에는 또 어떤 사유와 성찰이 담겨져 있을까? 

 

  

  

 

 길 위의 인문학. 

한다하면 한다 하는 사람들이 모여 인문학을 논하는 것 같다. 그것도 길 위의 인문학.  
정민, 한승원, 함성호, 구효서 등등등 그들이 말하고 싶은 인문학은 무엇일까? 역사와 문화 그 사이의 경계를 아우르는 인문학.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는 인문학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면서 많이 읽힐 인문학이면 좋겠다. 세상은 인문학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인문학에 대해 시시껄렁하고, 식상한 이야기는 싫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조금은 궁금하다. 어떤 이야기를 쏟아낼 것인지. 

 

 

 

인문학의 싹 

싹이 있어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하지 않았던가? 여럿이 모여 인문의 고전을 탐구해 본다고 하니, 어렵기는 하겠으나 흥미로운 작업이 아닌가 싶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나늘 알아야, 왜 그런 것인지, 어떻게 그런 것인지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인문학의 시작, 역사의 교실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책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지식들이 무척 탐스러워 보인다. 

 

  

 

 

세상을 바꾼 자본 

자본은 무척 탐나면서도, 무섭고, 잔인하면서도, 가혹하며, 부러우면서도, 냉혈한 같다. 인간이 만들어낸 자본은 이미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으며, 자본 앞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기 일쑤다. 자본, 그것은 무엇인가? 세상을 뒤흔들고, 한 사람을 짓밟기도 하며, 국가를 비굴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절대권력을 소유할 수 있게도 한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자본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언제 눈덩이처럼 커져 사람들의 목을 졸라댔을까? 새삼 자본이 궁금하다. 그 힘과 그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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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1881 함께 읽는 교양 9
조슈아 아바바넬.제프 스위머 지음, 유자화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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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침대의 집먼지 진드기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침대가 싫어졌다고 할까? 완벽하게 청결한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그 곳에서 자고 싶지 않다는 생각.  

어릴 때, 같은 반 친구에게 '이'와 '서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이가 튀어서 옮을 수 있으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셨다. 과연, 옆에 앉아 있는 짝꿍에게 옮아버린 '이'. 도대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것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바퀴벌레는 죽기 직전 알을 쏟아낸다고 한다. 여기저기 약을 깔아놔도 그걸 먹고 죽는 순간까지 알을 낳는다니 이것이야 말로 강력한 번식의 소유자 아닌가.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집단이 너무 많아지면 집단 간 압력을 줄이기 위해 서로 잡아먹는다고 하니 정말 무서운 녀석들이다. 생과 사를 이익에 맞춰 조절하고 있지 않는가. 다 죽어도 바퀴벌레만은 살아남는다는 끈질긴 생명력. 으악이다. 

지구 대기 메탄가스의 30퍼센트는 흰개미의 방귀 때문이라니, 얼마나 많은 흰개미들이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까? 소리 없이 침투하고 눈에도 띄지 않는 흰개미가 갉아대는 나무. 나무 집에 사는 사람이라면 흰개미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세상에, 점보다 작은 개미들의 집단 파괴력은 어디까지 일까? 

얼굴에서 뭔가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든다면 모낭진드기와 옴진드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만다. 내 얼굴의 간지러움이 벌레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인가. 몰라도 되었을 법한 사실에 온 몸이 근질거리는 느낌. 이 은밀한 동거에서 도망치고 싶을 만큼 악소리가 난다.  

아~ 이 벌레들이여 어쩌란 말이냐. 그것들에 대한 정보도 좋지만, 무한대로 확대해 놓은 부분 부분 그들의 모양새가 무서움을 넘어 끔찍함까지 전달해준다. 이러다간, 방바닥에 앉을 때도 어떤 것들이 기어다니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풀 밭에는 무서워서 앉기나 하겠어? 내 이불 위에서 활개를 치는 것들을 상상하다간 잠은커녕 발끝으로 서 있어야 할 지경이다. 

잠시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도, 같이 있을 이것들은 무엇이라고 해야할까? 몰라도 되었을 법한 사실과 맞딱드리고 나니, 무섭다. 하지만,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적을 알고 나면 적과 조금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불이 꺼진 방. 그들만의 소리없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자, 적을 만나보시라. 적이 무엇을 하는 지 알고 나면 적과 멀어질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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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어의 감옥에서 

서경식, 그의 아픔.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지켜봐왔다. <고뇌의 원근법>,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의 기행> 등을 읽으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가. 그리고 얼마나 반성했던가. 유영하는 정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경험하지 못한 이는, 그가 겪은 아픔에 관해 아무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한 쪽이 아니라 두 쪽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그림으로 풀어왔던 이야기가 이번엔 언어인가보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할 지 귀를 기울이고 싶다. 

 

 

  

 2.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디자인하는 남자,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이 영국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사회 혁신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영국 사회를 요리하는 사람들. 방대한 자료 수집과 경험과 분석으로 언제나 명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벌써부터 그가 전해줄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 혁신의 조각들. 그 조각들이 우리에게 하나 둘 영향을 주고, 우리 사회의 혁신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울까?  

 

  

 

3. 디지털 보헤미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라면 디지털을 감히, 함부로,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그것은 편리해서라기 보다는, 쉽게 통하는 구석구석의 유혹이 아닐까 생각한다. 디지털은 편리함도 주지만, 자유로움까지 덤으로 주고 있으니, 디지털로 먹고 사는 보헤미안들. 디지털 보헤미안이라는 말씀. 조직과 회사가 내게 주는 미래는 불투명할 수록,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자신을 알리고 커리어를 쌓는 이들이 많아진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암시되어온 사회 현상. 디지털 보헤미안들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전략으로 디지털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 커뮤니케이션도, 비즈니스도 디지털에서 해결하는 디지털 보헤미안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4. 대학 주식회사 

대학은 반성해야한다. 학교가 아닌 기업이 되어가는 것에. 수많은 기업들에게 기부금을 받고, 학교 건물에 기업의 이름을 붙여주고. 심지어, 개인의 이름까지 박아주는 이 이상한 세상. 대학이 학생들에게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고 강요하며 부추기고 있다. 과연, 아이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돈 없으면 서럽다는 깨달음? 돈이 없으면,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며 겨우 겨우 대출을 받아서 졸업하고 나면 빚더미에 앉아 또 다른 꿈을 꿀 수 없다. 대학은 돈을 달라고 입을 벌리고 있고, 수많은 적립금과 기부금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진 채 장학금도 가뭄에 콩나듯... 과연 이런 대학에서 아이들은 제대로된 꿈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5.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우리는 매일 거짓말을 한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 회사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크고 작은 거짓말들로 상황을 모면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기쁘게도 하며, 나의 화를 감추기도 한다. 도대체 왜, 왜, 정직한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해지는 것일까?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거짓말이 우리를 더욱 윤택하게 해서? 의식적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마음 속 비밀은 무엇인지. 과연 나도 그런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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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대학 주식회사 

대학은 수천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도, 매해 등록금을 올린다. 대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빚쟁이가 되고, 빚을 갚느라 허덕인다. 대학은 큰 학문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경쟁의 장이 되어 가고 있다. 대학교는 배를 불리고, 대학생들은 가난해지며 과연 대학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기업보다, 더 큰 기업이 되어가는 대학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2.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돼지가 살처분되고 구제역의 공포보다는 매장되는 돼지를 보고 끔찍했던 기억이 있다. 육식을 반대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서, 육식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해도 쉽사리 육식을 놓지 못하며, 가죽 가방에 침을 흘리는 나날들. 육식을 하면 많은 물이 소비되고, 환경이 오염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를 낱낱이 밝혀주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3.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개인적으로 정민 선생님을 좋아한다. 한국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쉽게 풀어주시는 분이라, 어떤 책이든 읽기 어렵지 않았다. 이번엔 한국학이 그림과 만났다.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그림으로 숨겨진 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거기다, 한국학이 더해진다니, 어쩐지 설렌다. 

 

 

 

 

4.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얼핏 제목만 읽는다면, 어쩐지 마음을 위로해줄 것만 같은 책이다. 허나, 이것은 곤충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생물들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하고 있는 작은 것들의 이야기란다. 하하. 흥미롭다. 내 옆에 있는 무엇인가에 대해 듣을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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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딸 2011-03-1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주식회사>에 관심이 갔는데 안타깝게도 출판월이 3월이라서 추천못했어요.

청춘의반신상 2011-03-16 17:49   좋아요 0 | URL
아이쿠 이런, 출간 월을 잘못봤네요.... 죄송. ^ ^;
 
<반자본발전사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반자본 발전사전 - 자본주의의 세계화 흐름을 뒤집는 19가지 개념
볼프강 작스 외 지음, 이희재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근 3년간 수많이 들었던 단어는 바로 '발전'. 4대강도 그,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시작되었고, 지금 이나라의 대통령을 뽑았던 것도 발전이 이유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발전'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모든 일에서 '발전'을 말한다. 개인도 '발전'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돈을 투자한다. 여기도 저기도 '발전' 때문에 때려 부시고, 다시 세우고, 돈을 더 받고. '발전'의 늪은 빨아들이는 속도가 강해 빠져나오려 하기 전에 묻혀버린다. 사람들은 '발전'의 광신도가 된 것처럼 그것이 최고인 줄 안다. 자문한다. 그 '발전'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 너? 국가? 전 세계? 

'발전'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돈'이다. 바로 '자본'. '발전'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돈'이 많으면, '발전'하기도 쉽다. 그것이 무슨 공식이라도 되는 냥. 사람들은 '발전'이라는 말로 곱게 포장된 '돈'에 침흘리고, 세계 나라들이 '발전'하고 싶은 이유는 '돈'이라는 이익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거기다 덤으로 '힘'도. 

이렇게 '발전'의 늪으로 빠져드는 길목 앞에서 <反자본 발전사전>은 '발전' 안에 숨겨진 개념들을 끄집어내며, '발전'의 모순과 파괴력, 비인간적인 면을 낱낱이 파헤친다.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일지도 모를, 무서운 진실들이 눈 앞에 드러난다.  

발전, 환경, 도움, 시장, 요구, 한 세계,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자원, 과학, 사회주의, 국가, 기술.  

이 19가지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좋다고 생각하냐고 묻고 있고, 하나의 기준으로 봐왔던 세상을 다르게 보라고 부추기고 있다. 1949년 트루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발전의 시대가 열렸다. 그는 "우리가 누리는 과학 진보와 산업 발달의 수혜가 저발전 지역의 향상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새롭고 과감한 사업에 착수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굉장히 위험하면서도 자기들 중심적인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이 맞는 것처럼 인식한다.  

말은 인식을 정의한다.그렇게 해서 말은 다시 대상이 되고 사실이 된다. 저발전이라는 개념이 실재하는 현상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보인다. 저발전은 이 세상이 하나이고 동질적이고 단선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지극히 서양적이고 수용 불가능하고 증명 불가능한 전제를 지지의 발판으로 삼는 비교급 형용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 - 48p 

누군가가 나서서 인식의 프레임이라도 짜준 듯, 우리는 '발전'에 목말라 있었다. 그것도, 수십년간 미치도록. 하지만. 그 '발전' 속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생각해본다. 결국, 다툼과 죽음, 미움과 시기, 거짓과 위선들이 아니었던가. 자연은 점점 황폐해지고, 환경은 점점 파괴되어 간다. 지구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을 아무렇지 않게 부시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마저 돈으로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저발전 국가'에서 사는 사람은 낮게 보기 시작했고,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것은 경제 자원이나 서비스의 생산이 아니다. 그런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이나 다음 세대를 살찌운다. 가난한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경제학자들이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달리 자기가 사는 향토에서, 고장에서 자원을 조달하는 실요적 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 350p 

'발전'으로 충만한 강대국들은 도움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약소국'들에게 '인류의 구원과 평화'라는 아름다운 모토 아래 도움의 손길을 뻗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주는 '도움'은 그리 순수한 도움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분명, 그 도움의 손길 아래 깔린 '요구'는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그들이 더 높은 '발전'을 위해 이루어진다. 그들의 '자원'이나 '환경'과 '인력'을 값사게 사용하면서 그것이 구원의 손길인 것인냥 생색을 부리기도 한다. 자기들의 기준에 맞춰 '부'와 '가난, 빈곤'의 개념을 나누고,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그 개념을 세뇌해 '발전'하지 못하면 불행하게 사는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마약에 손을 댄 듯, '발전;의 형편없는 의미를 알아버린 사람들은, 늪에서 나올 수 없다. 

지혜를 가르치는 여러 학파에서는, 특히 불교처럼 아직도 융성한 종교에서는 존재의 목적을 자각의 획득으로 규정하며, 쾌락을 절제하고 절대로 하나의 가치만을 무한정 쌓지 않고 다양한 가치 사이의 균형에 주목하는 것을 행복한 삶의 비결로 본다. 물질적 결핍을 우리는 창피스러운 가난의 유일한 기준으로 여기지만 전통 사회에서는 그것은 다른 유형의 결핍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소한 측면에 불과했다. 사람을 정말로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외로움이라고 세레르족은 믿는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입을 옷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다." 세레르 속담은 그렇게 못 받는다. - 533p 

트루먼 대통령이 '저발전'이라는 개념을 내세웠을 때부터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 그들의 말대로라면 발전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행복해져야 하며, 윤택해져야 한다. 그것도 모두가 함께 말이다. 하지만, '발전'이라는 단어는 이제 듣기만 오싹하고 냉정하고, 무서운 개념이 되어 가고 있다. 강대국이 더욱 강해지려는 욕망을 뜻하며, 부를 가진 이가 더욱 부를 갖고자 몸부림치는 개념으로 생각된다. 이 책을 읽게 되면, 그러한 공포는 더욱 더 커질 것이다. '발전'이라는 이면에 감추어진 많은 진실들은 알면 알수록 불편하지만, 알아야 한다.  

'발전'이라는 말을 내세운 우리나라의 지도자는 '발전'이라는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받게 하고, 죽일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줬다. 얼마나 많은 자연이 파괴되고 우리의 터전에 망가져가는지 깨닫게 해줬다. 그 확신 없는 '성장'에 믿음을 가졌던 우리는 크나큰 배신을 당하지 않았던가? 이래도 '발전'만을 믿는가?  

어제 MBC에서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다큐를 방송했다. 사람에 상처받은 이들, 도시의 바쁨에 넌더리가 난 이들, 자본이 싫어 떠나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작가였고, 사람이었고, 이웃이였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목욕탕 나들이가 행복했고,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배운 글 한 구절에 행복했다. 함께 모여 노래부르는 게 행복했고, 봄을 알리는 새싹에 행복했다. 그들은 '발전'을 떠나온 이들이었다. 부유하진 않아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이 있었고, 궁핍하긴 해도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허망하게 쫓아온 '발전'이라는 늪에서, 당당하게 빠져나가 행복을 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를 고통받게 하고 이루어낸 '발전'은 '성장'은 온전히 행복할 수 없다. 모두가 파괴되어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그 늪에서, 걸어나올 수 있는 사람만이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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