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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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나는 팔 년 만에, 그는 수화기 저편에 나는 수화기 이편에 있다.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다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 11p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정윤의 독백이다. 윤교수님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명서의 전화를 받은 정윤. 정윤은 침묵과 아무렇지 않은 통화 사이에서 어슴프레 떠오르는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아니, 그것은 어슴프레 떠오르는 기억이라기 보다, 그녀 가슴이 박혀 절대 빼낼 수 없는 시간들과 기억들이다. 시작할 이야기에 대한 복선은 정윤의 독백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그녀의 한 마디는, 알고 보니 아픈 회한이었고, 기억이었고 상처였으나 이제 그녀를 지탱하게 해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불완전한 게 기억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억 앞에서는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의식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억일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이 왜 그렇게 힘겨웠는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왜 그리 또 두려웠는지, 그런데도 어떻게 그 벽들을 뚫고 우리가 만날 수 있었는지. - 21p

 
   


기억, 그것은 너와 나의 기억, 우리들의 기억. 하지만, 다 각기 다르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기억. 정윤, 명서, 단이, 미루는 교차되는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 돈독해진 사이다. 명서와 미루, 정윤과 단이가 각각 공유하는 기억과 그 시간 속에 살며 서로를 위로했던 기억. 정윤과 명서 사이의 미루, 정윤과 명서 사이의 단이. 그리고 미루와 단이의 소멸. 그 사이에 수많이 뿌려진 기억들. 어느 날, 전화벨이 울리고 그 기억들이 빵처럼 부풀어 올라 하나하나 떠오른다. 명서의 기억과 정윤의 기억은 그렇게 교차되며 그들의 청춘, 청춘 속의 그들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죽음의 그늘로부터 비롯된다. 그들의 청춘에 큰 자리를 차지했던 윤교수님의 위독함은 그의 죽음을 예상하기 충분하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언급들, 기억에 대한 이야기, 정윤의 독백 속에는 갖가지의 슬픔들이 내포되어 있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그녀에게 고통이면서도, 그녀를 성장하게 한 또 하나의 이유다.

   
 

 인생은 각기 독자적이고 한 번 뿐이다. 모두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고, 사랑하고, 슬픔에 빠지고, 죽음 앞에 가까운 사람을 잃기도 한다. 지금 병원에 누워 있다는 윤교수도, 팔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도, 나도,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단 한 번, 그럴 것이다. 우리에게 청춘이 단 한 번만이 아니었다면 오늘 이렇게 내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려 팔 년 만에 그의 목소리를 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 23p

 
   


팔 년 동안 봉인했던 기억을 깨운다. 모질게 잊고 지낸 시간이었다. 그 시작을 깨운 전화벨, 그리고 윤교수의 위독함. 결국, 죽음이 기억의 봉인을 해제한다. 그리고, 기억의 시작에는 죽음이 있다. 엄마의 죽음. 정윤은 엄마가 죽고, 도시로 나온다. 엄마의 죽음을 견디기 위해 도시로 나와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혼자만의 시간 말이다. <말테의 수기> 첫 문장,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모여드는 모양이다(33p)에 정윤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정윤은 엄마가 죽고, 살아보기 위해 도시로 왔다. 그 다짐, 외로움, 슬픔이 한 번에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혼자 도시를 걷고, 책을 읽고 외로움과 싸워가면서 그녀가 찾은 윤교수님의 수업. 그곳에서 윤교수, 미루, 명서, 정윤이 만난다. 책 속에서 정윤의 존재는 하나의 다리처럼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정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상처와 고통도 함께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윤이다. 

우.리.는.숨.을.쉰.다  

글자 사이 사이의 숨결들. 숨쉬지 못하는 청춘들. 숨쉬고 싶은 청춘들.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 놓인 청춘들은 지극히 사적인 일들이 시대의 사건들과 맞물려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 낸다. 미루의 화상이 바로 그런 것이고, 미루의 화상을 넘어 미루가 쫓는 것을 바라보는 명서의 고통이 바로 그런 것이고, 단이의 의문의 저항이 그런 것이고, 청춘들을 붙잡아 보려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한 고통을 느낀 정윤의 슬픔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정윤은 미루의 고통의 비밀을 듣게 되고, 명서의 고통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단이의 고통을 쓰다듬지만,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정윤을 중심에 두고 쏟아내는 그들의 고통. 정윤이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 할 때, 자신이 더 힘겨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그들의 고통을 감싸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나는 갑자기 윤미루에 대해 격렬하게 솟구치는 나의 궁금증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알게 되는 것들은 그와 나 사이를 가깝게 할까, 멀어지게 할까?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비밀을 털어놓은 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소중했던 비밀이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다른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 111~112p 

 
   


타인에 대해 더 알고 싶으나, 알고 난 뒤 느끼게 될 두려움. 정윤은 그녀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비밀을 듣게되면서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 가까워짐 때문에 큰 고통을 떠안게 되기도 한다. 그들과 함께 고통의 숲을 걸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대책없이 무너져버리는 모래성처럼 스르르 소멸하고 말았던 이들.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의 경악과 추억 속에 갇힌 그들에 대한 사랑. 그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 

미루의 가슴 아픈 고백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미루가 정윤에게 다가오면서 함께 잘 싸워낼 수 있을 거라고 여긴 순간도 있었다. 미루가 가진 죄책감, 그 안의 슬픔, 상흔. 미루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하나씩 통과해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찾아온 미루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또 다른 고통을 맞이했고, 단이의 죽음 앞에서는 기억과 현재를 혼돈하며 고통받기도 했다. 그 고통 속에서 교수직을 사표 쓰고 낙향한 윤교수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어떤 가르침을 듣게 된다.  

   
  자네들보고 잊으라고 하지는 않겠네. 생각하세,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더이상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각해. 이 부당하고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회의해. ...(중략).... 인간은 불완전해. 어떤 명언이나 교훈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복잡한 존재지.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 동안 따라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 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다.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 341p  
   

기억은 명서의 기억, 정윤의 기억으로 나뉜다. 정윤의 기억 속에는 또 다른 명서의 기억도 있다. 둘의 기억이 교차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그들은 커다란 폭풍을 지나왔고, 시간이 흐르자 그 폭풍은 잠잠해지고 폭풍은 가슴에 묻게 된다. 팔 년 동안 정윤과 명서는 각자의 삶을 산다. 한 때는 함께 살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그것은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이별을 감행한다. 그 이별은 슬픈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이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고통이 휘몰아치던 그 순간, 그들이 함께 했다면. 잊혀지지 않는 고통 때문에 서로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내며 서서히 망가져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서는 또 다른 기다림을 택했고, 기다림 뒤의 조우에는 윤교수님의 죽음이 있다. 윤교수님이 소멸하면서 봉인된 청춘의 시간들은 아름답게 묻힌다. 팔 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서와 정윤의 성장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왔다는 것. 아이들에게 윤교수님식 강의를 하며, 웃음짓는 정윤. 시위대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명서는 낯선 나라에서 포옹하는 사람들을 찍어 전시를 열기도 한다. 서서히 치유된 고통은 그들의 또다른 성장을 만들어냈다. 

상처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쓰고, 타인의 고백에 마음 아파하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려하던 그들은 그 시간 속에서 자신들을 채워나간 것이다. 다시, 함께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새로운 기억을 걸었던 팔 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며, 나를 찾는 전화벨은 우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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