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문을 들었다.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을 선물했다.

어떤 뜻이 있었을까. 많은 뜻이 있었겠지.

내심, 쓰윽, 마음에 무엇인가가 훑고 지나갔다.

 

<82년생 김지영>은 또박또박 힘주어 쓴 글이었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로 시작되는 소설은 한 여자의 삶을 꾹꾹 눌러 쓴 르뽀 같았다.

바꾸어 써 보았다.

 

"나는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살이다. 14년 전 결혼해 삼남매를 낳았다."로 <81년생 나>를 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디테일한 삶은 다르지만, 울컥 거렸던 감정들은 다를 것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 엄마, 그리고 꿈을 꾸는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지만, 나는 아이를 낳은 후 광고회사에 문을 두드려봤지만, 유부녀 그리고 어린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기 일쑤였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최종 면접에서 들어야 했던 말은

 

"정말 뽑고 싶었는데요. 야근이나 철야가 많아서 아이 때문에 다니기 힘드실 거에요. 다른 좋은 자리에서 뵈었으면 좋겠어요."

 

경험담을 비슷한 직종의 카페에 올렸더니, 회사 이미지가 있으니 글을 삭제해 달라는 요구도 받았다. 자기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래 직원까지 아이가 있으면 본인이 곤란하다는 여자 상사도 있었다. 10년도 넘은 이야기지만, 꽤나 진한 서러움으로 남아 있다.

 

친정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경력단절녀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살림과 육아를 반복하는 하루하루를 지내다, 김지영 씨처럼 혼이 탈출하는 일이 반복되었을 지도 모른다. 매번 취업의 문터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울곤 했다.

 

'나는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거절당해야 하는 것인가. 아이가 있다는 것은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왜 아무도 나를 허락하지 않는가.'

 

많은 시간, 외로웠다. 남편과 친구들의 응원과 위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물론 아이들까지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삶, 회사가 원하는 삶을 살고 나서야 나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야속했다. 아이가 있는 여자라서 변명이 많다 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밤낮 없이 일하고 나니, 아이러니하게 아이 있는 여직원들이 불편해하는 일도 생겼다. 너무 열심히 해도, 적당히 열심히 해도 이상한 굴레에 빠지는 것 같았다.

 

10년 만에 셋째를 갖게 되면서 3개월 출산휴가를 냈을 때도 가장 바쁜 시기에 낸다고 눈총을 받아야 했고, 2개월 만에 출근하면 안 되느냐는 전화도 받았다. 육아 휴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복귀해서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을 해내야 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눈치가 보였다. 아이를 낳은 게 죄를 지은 것 같았고, 그런 마음이 들수록 더 아무렇지 않게 일했다.

아이가 있는 상사는 "나는 애가 없느냐"라는 말을 종종하면서, 힘들다는 말도 꺼낼 수 없게 입을 막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던 대표는 종종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서도, 임신을 준비하는 직원에게 가장 바쁜 연말을 피해 아이를 낳으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다.

여자 비율이 높아 '여성기업'으로 인증받은 회사의 현실이 이랬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내 삶은 나의 엄마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내가 살아내기 위해서는 마음 한쪽 구석에 죄책감을 키우며 버텨야 했다.  

 

친할머니에게는 "여자가 시집 잘 가는 게 남는 거다"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남자 잘 만나야, 여자 팔자가 피는 거다"라는 말도 들었다.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 되는 거다"라는 말도 들었다.

 

결혼을 했더니 시어머님이 그런다.

"아들이 잘 되야, 가족 모두 편안하다"

"장손이 잘 되야, 다른 애들도 다 잘 된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는 거 아니다"

라는 이상한 말들을 주문처럼 들어야 했다.

 

2005년생 삼남매 중에 둘째로 태어난 딸은 6살이던 어떤 날 엉엉 울었다.

"왜 할머니는 오빠만 더 사랑해?"

때때로 일어나던 차별의 말과 행동들이 아이의 마음을 할퀴고 할퀴어 눈물로 터졌다.

친정 엄마가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기집애가 말이야"라는 말에 화를 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기 살아야 한다.

이상한 논리를 강요받는다.

왜 차별 받아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면, 기가 세다거나 드세다는 이상한 말을 듣는다.

 

2005년생인 딸은 내가 겪었던 세상에 살지 않길 바란다.

1982년생 김지영이 살아온 삶과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

꿈을 쫓기 위해 아이나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했기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삶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워야 해서 경력을 단절되고, 독박육아를 하느라 우을증에 걸리고, 일로 돌아가려하니 자리가 없는 그런 이상한 나라의 여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런 상황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 겠다"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이 문장이, 해피엔딩으로 바뀌는, 그렇게 기록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쓸쓸하고 서럽게, 오늘의 81년생, 나에게 응원을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