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내 아침 식사는 호빵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것으로 끝난다. 나이가 드니까 끼니때마다 밥을 챙겨 먹는 것도 귀찮고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소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정해진 식사량에서 더 먹거나 하면 속이 부대낀다. 그러니 뭐든 조금만 먹고, 육류는 피하게 된다. 그런 나에게 호빵은 겨울나기의 필수 식량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호빵을 안 사 먹으려고 했다. 작년에 있었던 호빵 회사의 계열사 재해 사고 때문이었다.

 2022년 10월 15일, 평택 SPL(SPC 계열사)에서 20대 직원이 배합기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소식을 글로만 읽어도 마음이 참담해지는 사건이었다. 그 일로 제조사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었다. 불매 운동의 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잠잠해졌다. 올해 2023년 8월에 같은 공장에서 또다시 끼임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왜 그 제조사에서는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가? 그러한 중대 재해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작년의 사고로 사망한 직원은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남자 친구에게 자신이 해야 할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문자 메시지로 토로하던 아가씨는 결국 그 일 때문에 죽었다. 사건 이후로 나는 그 회사의 제품은 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회사 제품 대신에 살 수 있는 대체재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빵으로 세워진 촘촘하고 거대한 산처럼, 그 회사는 식음료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과점의 빵이나 커피는 사 먹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호빵은 이 회사가 거의 유일한 제조사나 다름없었다.

  냉장고에는 세일할 때 사둔 호빵이 한 무더기나 있다. 나는 매일 아침 호빵을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느낌과 이상한 죄책감이 혼합된 감정을 느낀다. 얼굴도 모르는 젊은 아가씨의 죽음이 내가 먹는 이 호빵에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나는 절대로 부인하지 않는다.

  '아니, 사람 하나 사고로 죽었다고 그 회사 제품을 불매한다느니 하는 게 우습네요. 그런 행동을 하면서 무슨 대단한 도덕군자인 양 굴어요. 물건이 좋고 자신에게 필요하면 사는 거지.'

  이 회사 제품을 불매하고 있다는 사람에 대해 누군가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그렇게 썼다. 그것이 그 댓글을 쓴 사람에게는 그렇게 우스웠던 모양이다. 타인의 윤리적 소비를 자신만의 잣대로 폄하하고 비웃는 그 사람은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주범인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을 아직도 불매한다. 최근 들어 그 회사는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홈쇼핑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그 회사의 제품이 올라온 것을 보고서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한 배상 책임을 여전히 회피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호빵의 대체 상품이 없다는 사실은 젊은 나이에 죽은 여성 노동자에게 내가 느끼는 연민과 기묘한 병치를 이룬다. 그 처참한 사고의 기억은 호빵을 먹을 때마다 자동으로 소환된다. 나는 호빵 조각이 목으로 넘어갈 때마다 이 호빵을 끊지 못하는 나에 대한 자책감도 함께 삼킨다. 아마도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나는 언젠가 호빵을 먹지 않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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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좋아하는 간식은 핫도그이다. 거의 매일 핫도그를 하나씩 챙겨드린다. 케첩을 좀 넉넉히 뿌리는데, 가끔 옷에다 음식을 흘리실 때가 있다. 그래서 턱받이를 하나 사려고 알아보았다. 어른용 턱받이는 대개가 비닐 소재로 되어 있다. 관리의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턱받이를 행주로 쓱 닦아주면 끝나니까. 하지만 나는 그 비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이 영 싫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턱받이를 주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턱받이'에 대한 지난글 링크: https://blog.aladin.co.kr/sirius7/14884197

  지난주에 다**에 혹시 턱받이 같은 것이 있나 둘러보았다. 그런 건 없었다. 대신에 턱받이로 쓸만한 손수건을 하나 사 왔다. 약간 큰 손수건인데, 소재가 뻣뻣한 옥양목이다. 가격은 천원. 중국이 원산지인 이 손수건은 오버로크로 가장자리가 마감되어 있었다. 아주 조악한 박음질이었다. 만약에 실이 어디 한군데에서 풀리면 마치 도미노 무너지듯 주르륵 다 풀린다. 그럼, 손수건 가장자리는 삐죽삐죽 올이 다 나오게 된다.

  그런 사태를 막으려면 시접을 두 번 접어서 감침질을 해주어야 한다. 미싱이 없으니 손바느질로 했다. 무려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목에다 걸기 편하게 고무줄도 천에다 이어주었다. 아, 뭔가 만들어 놓고 보니 뿌듯하다. 모양새는 좀 빠지지만. 

  어제, 엄마한테 간식 챙겨드리면서 이 턱받이를 걸어드렸다. 엄마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턱받이를 처음 쓴 날에 턱받이에 케첩을 흘리셨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비닐 턱받이보다는 천으로 된 것이 뭔가 정감이 느껴진다. 물론 천이라 따로 손빨래하는 것이 번거롭기는 할 것이다. 노인을 보살피는 일은 이렇게 신경 쓰고 손이 가는 일이 많다. 매일 나는 '늙음'에 대해 하나씩 무언가를 배워가고 있다. 


*손수건으로 내가 만든 턱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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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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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이야기가 가득한 책. 이 책의 내용을 내가 요약해 보면 그렇다. 종양의학과 의사는 자신이 18년 동안 보고 들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놓는다. 저자가 진료실에서 만난 많은 환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통스럽게 서성이고 있다. 중간중간 희망을 주는 사례도 있지만, 대개는 힘든 투병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각양각색의 사연을 지닌 암 환자들의 이야기가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마치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편 영화들을 이어서 보는 것 같다. 아마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1시간 반 정도면 이 책을 완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흥미진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이 책이 지닌 흡인력은 상당하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 책에는 익명으로 등장하는 여러 암 환자들과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과연 이 책의 저자는 그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도 된다는 동의를 받았을까? 물론 각각의 일화들만 보고서 독자는 그들이 누구인지 결코 특정할 수 없다. 종양의학과 의사로서, 또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저자에게 진료실의 환자들은 흥미로운 글감의 원천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자는 대단한 행운을 지닌 셈이다.

  그렇다면 그런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익명성의 테두리 안에서 이렇게 책으로 펴내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에 내가 이 책에 나오는 환자, 또는 그 환자의 가족이라면 나는 상당히 놀랍고 불쾌할 것이다. 그들은 주치의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출판할 수도 있고, 거기에 대해 충분히 인지한다는 사전 동의서를 작성했을까? 그랬다면 조금은 문제가 다를 수도 있다. 요즘 TV에 넘쳐나는 무수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은 제작 과정에서 초상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단 한 컷의 화면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출연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나는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저자가 의사로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수필'이라는 문학적 틀에서 자유롭게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차라리 저자가 자신이 진료실에서 만난 이들에 대해 소설적인 변형을 통해 글을 써냈다면 어땠을까? 소설이라고 해도 저자의 직업이 '의사'라는 점에서 환자의 개인 정보에 대한 보호 의무가 전적으로 면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저자의 글, 그것이 수필이든 소설이든, 그것을 읽는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글에서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정확히 떠올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문득 나는 재일 교포 소설가 유미리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유미리는 자신이 쓴 소설로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유미리는 자신이 알고 지낸 지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냈다. 그것을 알게 된 지인은 유미리의 소설을 읽는 이들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에 대해 알게 될 수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유미리는 강변했다. 작가는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소설적인 가공을 통해 써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재판부는 유미리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인물의 외모가 실제 유미리 지인의 모습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유미리는 그 재판에서 패소했다.

  나는 나를 치료하는 주치의가 언젠가 자신이 쓰게 될 글에서 나의 질병과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감으로 써먹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라면 그런 의사에게는 절대로 진료받고 싶지 않다. 이 책은 겉으로는 휴머니즘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개인적인 편견과 냉소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가깝다.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상당히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나마 이 책에서 내가 진정성을 느꼈던 부분은 저자가 써 내려간 자신의 개인사에 있었다. 저자는 고등학생 때, 폐암으로 부친을 잃고 어렵게 의대에 입학했다. 부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가는 대목에서는 저자에게 '종양의학'이 숙명이 될 수 밖에 없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 단편적인 글에서 느끼는 아주 작은 진정성 말고는, 나는 이 책에서 어떤 대단한 미덕을 찾지 못한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지닌 암 환자들의 이야기가 상점 진열대의 상품처럼 놓여있을 뿐이다. 

  과연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느끼게 될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기는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의사의 고뇌가 아니라, 저자가 의사로서 지닌 권위와 특권 의식이 미묘하게 내포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이런 책 읽기의 경험은 결코 감동적이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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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동네 소아청소년과에서 2023-2024 절기 코로나 백신을 맞고 왔다. 귀찮아서 그냥 안 맞을까 하다가 고령의 모친을 생각해서 주사를 맞았다. 오전의 병원은 한가했다. 대기실의 놀이기구에서 놀고 있는 작은 아이는 이제 서너 살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외모가 특별하다는 인상을 준다. 아이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이 엄마를 보니 동남아시아 사람이었다. 작은 체구의 여성은 조용히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료실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와 보호자인 엄마가 나온다. 접수하는 간호사가 아이에게 비타민맛 사탕을 주었다. 아이는 집에 있는 오빠도 주고 싶다고 하나 더 달라고 한다. 간호사가 비타민 맛 사탕이 다 떨어졌다고 말한다. 초콜릿 맛 사탕이라도 줄까? 아이는 대답 대신 머리를 끄덕인다. 그럼, 초콜릿 맛 사탕 2개 줄게. 그러니까 우리 **는 사탕 2개 먹는 거야. **는 오빠를 잘 챙기는구나. 오빠는 병원 와서도 자기 사탕만 받아가던데.

  오빠를 살뜰히 챙기는 여동생이 엄마와 함께 병원을 떠났다. 그 사이에 다문화 가정의 꼬마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아이 엄마는 수납하고 나서 아이에게 간호사 누나들에게 인사하라고 시킨다. 조그만 아이가 배꼽이 땅에 닿도록 인사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내 차례이다. 그런데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간호사에게 내가 들어갈 차례가 아니냐고 물으니, 원장님이 진료 의뢰서를 쓰고 있단다. 뭐지? 기껏해야 환자는 나, 그리고 독감 백신 맞으러 온 영감님 둘인데 그냥 환자 먼저 보고 진료 의뢰서 쓰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대기실에서 15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작년 겨울 이맘때쯤 여기서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나서 1년 만이다. 중년의 여의사 선생은 하나도 나이 먹지 않은 것 같았다. 의사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건넨다. 다른 병원과는 달리 여기 의사 선생은 주사를 자기가 직접 놓는다. 환자 응대도 정말 잘한다. 뭐랄까, 의사 선생이 참 영업을 잘한다고나 할까? 주사 맞고 나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진료실에 들어오라는 말이 없어서 좀 기다렸다고. 그랬더니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발달 지연 아동 환자가 있는데, 보호자가 대학병원 진료를 먼저 예약하고서 급하게 진료의뢰서를 부탁했다고. 그래서 그걸 작성하느라 시간이 걸린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저렇게 환자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의사 선생은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늦은 오후에 나는 일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글을 쓰는 일은 매번 쉽지 않다. 그것이 매일 써 내려가는 하잘것없는 일기일지라도. 대개는 하릴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 십여 분 지나고 나서야 일기를 쓴다. 오늘도 나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 내 졸업 논문 제목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몇 년 전에는 누가 내 논문의 전문을 pdf 파일로 전환해서 올려놓았었다. 이걸 누가 했을까 궁금하기는 했다. 나는 그 논문 파일이 검색 결과에 나올 줄 기대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나는 희한한 결과물을 발견했다. 어떤 쓰레기 같은 인간이 자신의 리포트에 내 논문을 표절해서 리포트 판매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미리보기로 본 리포트의 2쪽 분량은 그냥 내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놓은 것이었다.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일단 그 사이트의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해당 사용자의 리포트는 표절이니 사용자에게 리포트를 내리라는 요청을 해달라고 글을 썼다. 웃긴 게, 그걸 베낀 머저리는 내 논문과 내 선배의 논문을 정확히 반씩 베껴서 아수라 백작 같은 결과물을 내었다. 내 느낌에는 아마 모교의 후배 떨거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누가 되었든 그 인간이 쓰레기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새삼 내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논문을 15년 만에야 다시 찾아서 보았다. 이걸 쓸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그 당시 머리는 반백이 되었고 폐렴에 걸리기까지 했다. 지금 보면 좀 엉성하기도 하고 누가 인용할 것 같지도 않은 구닥다리 글이다. 그래도 이 논문에는 내가 영화 공부하면서 보낸 6년의 세월이 들어있다. 갑자기 나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일단 RISS(학술 연구 정보 사이트)에 이 논문을 올려보기라도 하자. 그런데 여긴 석사와 박사 논문만 게재가 된다. 학사 학위 논문은 취급도 안 한다. 내가 영상원에서 취득한 예술사는 학사 학위에 해당한다.

  고작해야 학사 학위를 따자고 그 세월을... 나는 내 논문을 표절한 등신이 선배 L의 논문도 표절한 것이 생각났다. 도대체 L은 뭘 하고 살고 있는 걸까? 그는 한동안 모교의 행정 조교로 일했었다. 원래 L의 꿈은 영화 감독이었다. 어째 L의 이름은 아무리 인터넷을 뒤적거려 봐도 나오지 않는다. 동명이인의 교수 이름만 주르륵 뜰 뿐이다. 생각난 김에 나는 M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보았다. 나와 L, M은 1학년 단편 영화 제작 실습 때 같이 5분짜리 단편을 찍었었다. 구글은 M의 현재를 바로 알려주었다. M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에 번역과 영화 기획 일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나는 H의 얼굴도 떠올렸다. 몇 년 전에 H는 장편 영화를 찍었다.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도 모르는 망해버린 상업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찍고 싶었던 영화를 찍었다는 게 어디냐.

  다들 열심히들 산다 정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영화 '부당거래(2010)'에서 류승범이 했던 대사를 뇌까리는 내 입맛은 썼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표절 잡범에게 분노하면서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15년이나 지난 내 논문을 RISS 사이트에 올린다 한들 이거 읽을 사람이나 있을까? 백신을 맞은 왼쪽 팔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소모적인 자기연민은 그만. 그래도 오늘은 이걸로 글감 하나는 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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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불쌍한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보고 싶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이제 팔순이 가까운 노모가 우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엄마는 육이오 전쟁통에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친조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외적인 상황만 보자면 뭔가 외롭고 슬펐을 것 같지만, 3명의 고모와 삼촌이 있었다. 엄마의 집안은 꽤 크게 농사를 지은 부농 축에 속했다. 집은 늘 친척들의 왕래로 붐볐다. 어린애라고는 엄마 혼자여서 엄마는 언제나 가장 대접받았다. 당시에 여자들은 따로 식사했는데, 엄마는 유일하게 할아버지와 겸상했다.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할머니는 아들 셋이 전쟁통에 모두 소식이 끊기는 변고를 당했다. 그러니 부모 잃고 혼자 남은 어린 손녀가 유독 눈에 밟혔을 것이다.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 친정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의 할머니는 꽤나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시켰다. 남편, 그러니까 나의 부친은 그런 면에서 좀 무심할 때가 많았다. 애 셋을 키우면서 시집살이에 엄마가 몸도 마음도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그러던 중에 엄마의 할머니가 세상을 뜨셨다. 내가 어렸을 적의 일이다. 내 증조모께서는 아흔이 넘게 사셨으니 나름 장수하신 셈이다. 그렇다 해도 엄마는 할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셨을 것이다. 그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애도의 감정이 이제 노인이 된 엄마의 마음에 흘러넘친다.

  "아이고, 엄마 울지 좀 말어.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은 거야?"

  나는 엄마한테 크리넥스 티슈를 두어 장 뽑아서 준다. 그러고 나서 유튜브로 엄마가 들을 만한 노래가 뭐가 있나 찾아본다. 그래, 배호 노래나 듣자. '누가 울어'가 이상하게도 이 상황에 잘 맞는 노래 같았다. 배호(1942-1971)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비운의 가수이다. 이 가수의 노래는 듣다 보면 슬픔과 이별, 고통의 정서가 진하게 베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지병을 가지고 있던 데다가 가수로서 한창 잘 나갈 때에 무리한 탓에 배호는 서른도 되기 전에 삶을 마감했다. 나는 아빠의 차에 있었던 배호의 골든 히트송 테이프를 기억한다. 그 테이프 겉면의 사진 속 배호는 전혀 이십 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병색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배호가 사십 대의 중년 가수라고 생각했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엄마는 울면서도 배호의 노래를 한 소절씩 따라 불렀다. 나는 우는 엄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노년의 어느 날에 우리 엄마를 보고 싶다고 울까? 영화 'The Father(2020)'에서 치매 노인 앤서니(앤서니 홉킨스 분)는 요양원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앤서니의 곁에는 요양원의 직원이 있을 뿐이다. 엄마는 걸핏하면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내가 알던 사람들, 하나 둘 다 갔어. 이젠 내 차례야."

  엄마의 인지능력은 요즘 들어 더 빠르게 손상되고 있다. 상업 고등학교를 나와서 그 누구보다도 셈에 빨랐던 엄마는 11 빼기 4가 얼마인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을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나는 손가락을 세어서 엄마에게 답을 알려준다. 매일, 나는 최선을 다해서 엄마의 인지학습을 함께 한다. 그림 그리기, 오리기, 퍼즐 맞추기, 숫자 계산 등등. 나는 나중에 내가 치매 환자들을 위한 학습서라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엄마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공부는 더 오래 하지 않았다. 엄마는 공부가 끝났다는 말에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았다. 휴지에다 코를 탱, 하고 풀더니 배가 고프다고 하신다. 나는 간식을 좀 챙겨드렸다.

  "엄마, 인제 그만 울기다. 할머니 보고 싶다고 또 울지 말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울었어? 왜 울었지? 난 기억도 안 나는데? 참 이상하네."

  나는 속으로 엄마의 광속 같은 망각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때로 어떤 상처나 괴로움을 저렇게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쩌면 엄마의 머릿속에는 노년에 곱씹을 회한과 고통의 기억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눈물을 짓게 만드는 누군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엄마가 생의 마지막까지 지니고 사셨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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