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약도 먹지 말고, 연고도 바르지 마세요.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올해 1월의 일이다. 나의 왼쪽 엄지 발톱은 한 달 넘게 자라지 않았다. 발톱 주변은 빨갛게 붓고 아팠다. 진통제와 항생제 연고를 써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피부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발톱 무좀인지도 모른다고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무좀은 아니었다. 종종 발톱이 안자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경우 발톱이 빠질 수도 있고, 다시 자랄 수도 있으니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런데 병원에 다녀오고 2달이 지나고서도 발톱의 통증과 부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질 뿐이었다. 약이나 연고를 쓰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아플 때마다 소염진통제를 먹었고, 항생제 연고를 발랐다. 그쯤 되니 나는 이건 단순한 발톱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다시 피부과를 방문했다. 대기 환자로 미어터지는 피부과에서 2시간을 기다려서 의사를 보았다. 내가 아파서 혼자 약도 먹고 연고를 발랐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의사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의사는 내 발톱을 건성으로 들여다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의 문제는요, 의사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데에 있어요. 나는 피부과 의사로서 전문적으로 수련을 하고 오랫동안 많은 환자를 봐왔단 말입니다. 내가 소염제나 연고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환자분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자가처방으로 이거 저거 썼죠? 그냥 내버려 두면 해결될 수도 있는 거에요. 환자분이 그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네요. 자꾸 아프다고 하시니까 어쩌면 피부과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정형외과나 신경과 문제일지도 모르겠네요. 진료 의뢰서를 써드릴 테니 대학병원에 가보세요."
의사는 더이상 길게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다. 자신의 진료 컴퓨터 창에 대기 환자가 9명으로 떴다며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모멸감과 불쾌함을 느끼며 진료실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날 저녁, 빨갛게 붓고 욱신거리는 발톱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을 했다. 왜 내 발톱은 자라지도 않고 이렇게 아픈가? 나는 검색창에 입력어를 달리 해가며 검색을 해보았다. 마침내 나와 같은 증상으로 고생을 하다가 결국 끝(!)을 본 블로거의 글을 읽었다. 그 블로거도 나와 증상이 같았다. 발톱이 자라지 않았고, 통증과 부기에 염증까지 생겼다. 그는 피부과에서 내성 발톱 진단을 받고 발톱 일부분을 절제하는 시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형외과에도 가서 주기적으로 염증 치료도 받았다. 그렇게 1년 가까이 고생을 하다가 궁리 끝에 그는 대학 병원의 족부 전문 클리닉을 찾아갔다.
의사는 그에게 제대로 자라지 못한 발톱이 겹겹이 쌓인 상태라고 했다. 치료법은 '발톱을 뽑는 것' 뿐이어서, 그는 결국 발톱을 뽑았다. 1년에 걸친 고생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블로거가 쓴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새로 자라고 있는 발톱의 사진이 찍혀있었다.
아니, 발톱을 뽑아야 한다고? 정말 그 방법 밖에 없단 말인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나는 인터넷 검색을 이어갔다. 마침내 영어로 된 의학 논문들 사이에서 내 발톱의 진단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Retronychia. 우리말로 번역하면 '역행(逆行) 발톱' 쯤 되겠다. 찾아보니 이건 정확한 한글 진단명도 없다.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위로 자라야할 발톱이 발톱 뿌리 쪽을 파고 들면서 생기는 병이었다. 외상이나 다른 충격에 의해 발톱 뿌리의 성장판에 문제가 생기면, 발톱은 정체된 상태로 있게 된다. 문제는 그 발톱 밑에서 계속 새로운 발톱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마치 떡판이 쌓이듯 겹겹이 쌓인 발톱은 그 밑의 피부를 압박하며 통증과 염증을 유발시킨다.
그럼 이 Retronychia의 치료법은 무엇인가? 초기에는 발톱에 고농도의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당한 시일이 지난 경우에는 '발톱을 뽑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내가 본 블로거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Retronychia가 생기는가? 그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 것은 '외상'이다. 발톱 뿌리 부분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은 발톱의 성장판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 12월 경에 엄지 발가락에 무거운 물건이 떨어졌던 적이 있었다.
결국 발톱을 뽑는 방법 밖에 없단 말인가? 발톱 뽑는 수술은 정형외과에서나 할 텐데... Retronychia에 대한 영어 논문들을 읽고 나니 나는 무척이나 심란해졌다. 뭔가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지 나는 희망을 가지고 검색해 가며 구글신의 가호를 빌었다. 그리고 최신 논문 하나를 찾아냈다.
"Retronychia 치료의 새로운 지견: 발톱을 뽑는 것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논문은 발톱을 뽑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효과적인 치료방법이지만 환자에게 매우 큰 고통과 불편을 줄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그렇게 발톱을 뽑고 나서도 병이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논문은 Retronychia 환자들에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속적으로 발톱을 갈아내는 것이 효과적임을 입증했다.
"뽑지 않아도 된다. 갈아내라!"
그것은 내게는 마치 거룩한 계시처럼 여겨졌다. 그래, 발톱을 갈아내 보자. 나는 그 논문에 실린 환자들의 발톱 사진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발톱의 어떤 부분을 갈아낼 것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러니까 제일 겉부분의 발톱을 갈아내면 그 아래에 자라고 있는 새로운 발톱이 올라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는 무려 한 달 넘게 발톱을 조금씩 갈아내었다. 그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두꺼워진 발톱을 갈아내는 일은 처음엔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것이 얇아지면 피부와 닿게되면서 고통을 유발한다. 도구도 여러가지를 썼다. 손톱 손질용 버퍼부터 전동 네일 드릴, 나중에는 공업용 줄세트까지 사야했다. 발톱이 쉽게 갈리게 만들기 위해 티눈액도 중간중간 썼다. 사용한 기구의 소독은 철저히 했다. 그렇게 해서 발톱의 상당 부분을 갈아내었다. 그 이상은 고통스러워서 더 할 수도 없었다.
놀랍게도 나는 발톱을 갈아내면서 발톱 주변의 통증과 부기가 가라앉았음을 발견했다. 아마도 자라지 않고 피부를 누르는 상층부 발톱이 주는 압박이 덜해지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어제, 나는 발톱이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7개월 동안 자라지 않던 발톱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이지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Retronychia가 뭔지도 모르는 피부과 의사한테 갔다가 무려 7달 동안 생고생을 했다. 내가 화가 치미는 것은 환자에 대한 그 의사의 태도에 있다. 환자가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고 분명히 염증 소견이 존재하는 데도 그 의사는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임상적 경험만을 내세웠을 뿐이다. 의사가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로 환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청취하지 않을 때, 그 결과는 환자의 고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굳이 그 의사의 입장을 이해해 본다면 Retronychia가 피부과의 임상 현장에서 최근에서야 주목받고 있는 질병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 병을 보고한 영어 논문은 1999년에서야 나왔다. 그 이후에도 피부과 학회지에서는 드문드문 언급되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Retronychia는 오랫동안 오인되고 무시된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Retronychia는 발톱색의 변형을 동반한다. 노랗게 변한 발톱색 때문에 종종 이 질환은 발톱 무좀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다. 더러는 내성 발톱으로 오진된다. 그러므로 환자들은 효과도 없는 무좀 치료와 내성 발톱 치료를 받다가 발톱은 물론 발가락의 변형에 이르기도 한다.
나는 이 글을 발톱이 자라지 않는 문제로 고생하는 Retronychia 환자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자라지 않는 발톱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우선은 피부과 진료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만약 발톱 무좀도 아니고 내성 발톱도 아니라면, 외상에 의한 발톱 뿌리의 손상으로 생기는 Retronychia일 수 있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 따라야 한다. 나에게는 그 행운이 비껴갔다. 만약 그대가 Retronychia로 고생하고 있다면 부디 그 행운을 붙잡아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Retronychia에 대한 해외 피부과 학회 영어 논문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106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