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그렇게 뭘 자꾸 흘려요?"
  "먹다 보면 좀 흘릴 수도 있지. 얘는 그걸 가지고 그러네."

  요새 들어서 엄마가 음식을 옷에 흘리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임시방편으로 가제 수건을 엄마의 목에 둘러주었다. 엄마는 처음에는 좀 어색해하시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한 작은 가제 수건을 두르고 엄마는 매일의 간식인 핫도그를 맛있게 드신다. 문득 노인 관련 다큐나 프로그램에서 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요양원 같은 시설의 노인들은 식사 시간에 모두들 턱받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식판 옆에는 늘 작은 물병이 있다. 그것도 빨대가 있는 물병이다. 나이가 들수록 씹거나 삼키는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밥을 먹을 때 물을 조금씩 마시면 음식물을 삼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물병은 식사하다가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도구라고도 할 수 있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엄마에게 간식을 챙겨드릴 때 꼭 물컵을 같이 놓게 되었다.

  가제 수건을 매번 옷에다 고정하는 일은 불편하다. 어제는 생각난 김에 엄마의 턱받이를 하나 사야겠다 싶었다. 쇼핑몰의 검색창에 '턱받이'라고 써넣으니 두 종류가 뜬다. 하나는 유아용, 또 다른 하나는 어른용이다. '성인용 턱받이'로 다시 검색어를 입력해 본다. 그렇게 했더니 얇은 천 턱받이와 실리콘으로 된 제품이 나온다. 실리콘 턱받이는 내구성은 좋아보이는데, 나름 무게감이 있어보였다. 아랫부분에 길게 홈이 패인 그 턱받이는 마치 소의 목에다 거는 여물 주머니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방수처리가 된 폴리에스테르천 턱받이가 나을 것 같았다. 나는 그 턱받이를 클릭하고서는 상품평을 주욱 읽어보았다.

  '요양원에 있는 엄마에게 필요해서 사보냈어요. 요양보호사가 좋아하네요.'
  '한꺼번에 넉 장 샀습니다. 번갈아가면서 쓰면 좋아요.'
  '부모님 간병할 때 이거 쓰면 정말 편합니다.' 

  그 상품평들을 읽고 있노라니 뭔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턱받이를 하고서 식사를 해야하는 노인들은 대개가 고령에, 몸이 아프고 불편한 이들이다. 나는 알록달록한 무늬의 턱받이를 한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상품평을 쓴 이들 가운데 누군가 이런 글을 남겼다.

  '너무 길어서 진짜 환자용 같아요. 괜히 샀어요.'

  그렇구나. 내가 원한 건 그 정도 사이즈는 아닌데, 그보다 좀 작은 건 없을까? 그런데 이 제품에는 선택할 수 있는 사이즈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단일한 사이즈만 있을 뿐이다. 나는 체크 무늬가 있는 턱받이 2개를 골랐다.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나름 무난해 보이는 색이었다. 나는 그 2개를 장바구니에 넣고는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려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고 나서는 그냥 주문 화면의 창을 닫아버렸다.

  어떤 감정의 파고가 잔잔하게 밀려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서글픔'이었다. 단지 엄마에게 턱받이가 필요해졌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늙음'이란 단어가 던지는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이었다. 왜 늙는다는 것은 슬픔과 괴로움을 안겨주는가?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에 있을 것이다.

  식사를 하다가 자꾸만 음식을 옷에다 흘린다. 화장실이 급해서 갔는데 생각지도 않게 속옷에다 실수를 해버린다. 잘 걷고 싶은데 허리는 아프고 다리는 질질 끌게 된다... 그렇게 노인들은 신체능력이 떨어지면서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힘들게 된다. '늙음'은 인간을 무력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연약한 아기들을 보살피는 일은 수고로워도 가치있는 일인 반면, 아픈 노인을 보살피는 일은 대개는 무의미한 중노동으로 여겨진다. 물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돌봄 노동(care work)'도 돈으로 충분히 치환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나는 엄마의 턱받이 하나를 주문하려다가 '늙음'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서글프고 괴롭고 싫은 것. 그 늙음을 어떻게 잘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을까? 내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없다. 그건 마치 폭풍우 속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걸어가는 방법을 찾는 일과도 같다. 그저 이 악물고 젖은 옷으로 비바람 맞아가면서 신발 잃어버리지 않고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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