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치(咽頭齒) 12

 
  "정말 이 결말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쓰기 수업의 마지막 강의 시간, 소설가 선생이 중기에게 그렇게 물었다. 안경을 벗어놓은 선생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더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건 어쩌면 실망했다는 표현일 수도 있겠군. 중기는 선생의 질문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최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끝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
  "인물들의 죽음에는 최소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죽음은 문자 그대로 삶을 끝내는 것이니까요. 물론 소설 속의 모든 설정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공의 현실이죠.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쉽게,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괜찮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작가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 인물들 앞에 놓인 삶에 대한 책임감 말입니다."
  "제가 구만과 경주의 삶을 쉽게, 아무렇게나 다루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네, 알겠어요."

  선생과 중기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송파구 주민 미자 씨가 끼어들었다.

  "오, 이건 뭐 인물들이 죽음을 향해 직진해 버리네요. 결말을 쥐어짜 내는 게 힘들었던 건지."

  중기는 얇은 입술로 이죽거리며 말하는 여자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참으로 밉상인 여편네야. 저 여자는 부모도 저런 인간일 테지. 생전 어디 가서 귀여움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핏줄이라는 것은 질기고도 정직한 것이다. 중기는 늙은 여자가 말할 때마다 도드라져 보이는 입가의 주름이 추하다고 느꼈다. 늙음과 악의, 무지가 겹친 여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 중기는 그저 싫었다.

  "경주가 노후 파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거잖아요. 아니, 그 소설 속의 강동구 아파트 모기지 신청만 해도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좀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뭐 강동구 아파트가 강남에 비하면 좀 떨어지기는 하죠. 좀 그런 게 아니라 한참이긴 하지만."
  "그 아파트에는 대출이 5천만 원 남았으니까요. 모기지 신청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멀었죠. 서울 아파트 자가로 사는 게 어디 쉬운가요?"
  "아니, 뭐 그래도 죽을 것까지야... 아무튼 이런 결말은 너무 우울해. 우울하잖아요. 즐거운 소설을 쓰기도 모자란 인생인데."

  중기는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송파구 여편네의 말마따나 구만과 경주를 죽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대충, 적당히, 그들이 처한 현실의 창을 닫고 자신은 그냥 나오면 되었다. 하지만 중기는 아내를 죽이고도 평온한 얼굴을 한 박 차장의 모습에서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의 미래를 보았다. 그들은 비탈진 언덕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든 미끄러질 준비가 되어있는, 그리고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구만은 다시는 치열한 생계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경주는 그런 남편을 끝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서있는 중산층이라는 얇은 얼음 강이 깨어질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몰락과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즐거운 소설이라... 중기는 송파구 주민 미자 씨가 말한 '즐거운 소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자신은 즐거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중기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해 마흔 살 생일날 아침의 결심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나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미래의 그 어떤 죽음의 날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소설이 몇 편 정도 있는 것은 꽤나 괜찮은 일 같았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만들어내는 고치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듯, 자신의 인생 그 어딘가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조각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결심으로 써낸 첫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중기는 경주가 죽음을 위해 준비한 협죽도 잎사귀들을 묘사할 때, 마치 그 잎들을 자신이 질겅질겅 씹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음반 구해왔어?"
  "그래, 여기."
 
  그날 오후, 중기는 동생을 보러 용인에 갔다. 동생이 부탁한 음반이 있었다. Bill Evans 트리오의 Waltz for Debby가 들어있는 음반이었다.

  "나중에 내 장례식에 이걸 틀어줘. 난 오래 못 살 것 같아."
  "인마, 그런 말 지껄일 거면 그거 나한테 도로 줘. 어떻게든 나을 생각을 해야지."
  "글쎄. 내 정신은 어디론가 멀리 가버려서 말이지. 아주 멀리. 다시 돌아올 수 없어."

  문수는 자신의 오른쪽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중기는 저런 말을 할 때의 동생은 진짜 멀쩡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이 아주 짧은 것이 문제였다. 중기는 문수가 죽고 나면 자신의 삶이 좀 덜 무거워질까를 생각했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오른쪽 어깨에, 정신병에 걸린 동생은 왼쪽 어깨에 있었다. 하나의 짐이 사라지면, 어쩌면 자신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것만 같았다. 

  '배달 앱이 오후 9시로 자동 종료되어 배송 일정 안내 문자 드립니다. 고객님의 물품은 새벽 2시까지 순차적으로 배송됩니다.'

  아직도 배송 일에 익숙해지지 못한 건가? 새로운 여자 배송 기사로 바뀐 택배사의 물품은 늘 늦어졌다. 자정쯤에 받아보던 것이 오늘은 새벽 2시로 늦어졌다. 그때까지 배송하고 나면, 언제 집에 들어가나? 중기는 처음에는 그 배송 기사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 오늘 오기로 한 택배는 참외였다. 초여름 날씨에 문밖에 두면 아무래도 참외가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기는 아무리 늦어도 그 택배를 받아서 들여놓기로 했다.

  현관문 앞을 쓱, 하고 택배 상자가 살짝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5분이었다. 조막만 한 못난이 참외가 올망졸망 박스에 담겨있었다. 참외를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고는 냉장고에 넣었다. 박스의 테이프를 제거하고 그걸 베란다의 분리수거 상자에 넣었다. 베란다 창문이 좀 많이 열려 있어서 닫으려는데, 바깥의 불빛이 뭔가 이상했다. 내다보니 길가 가로등의 전구가 수명을 다하기 직전이었다. 번쩍번쩍, 광기를 내뿜는 사람처럼 창백한 불빛이 중기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중기는 가로등이 번쩍이며 보여주는 뜨악한 풍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창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부엌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목이 좀 말랐다. 물을 마시는데, 입 안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중기는 입안에서 걸리는 것을 손바닥에다 뱉었다. 작은 치아 조각이었다. 급하게 화장실로 가서 거울로 입안을 살펴보았다. 왼쪽 어금니에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이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마치 화산 폭발이 끝난 분화구처럼, 중기의 어금니는 시커먼 공동(空洞)처럼 보였다. 중기는 그 공동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늙음과 불운과 가난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먹는 것이 귀찮아서 끊어버린 탈모약 때문에 정수리는 휑해졌고, 동생과 모친의 병증은 심해져 갈 뿐이었다. 월세 60만 원을 달라고 말하는 주인 영감은 내년에 70만 원을 달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중기는 구멍 난 어금니를 한번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아주 정교하게 난 작은 동그라미가 중기를 향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월요일에 일찍 치과에 가봐야지. 어떻게든 이 어금니를 살릴 방법이 있을 거야. 중기는 화장실의 불을 끄고 나오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인두치 완결(完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두치(咽頭齒) 11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바지락 칼국수라는데, 갈 거예요?"

  월요일 오전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옆자리의 신 주무관이 중기에게 물었다.
 
  "아, 그거면 안 가는 게 낫겠네요. 전번에 해감이 덜 된 바지락 나와서 아주 고생했거든요."
  "그럼, 밖에서?"
  "시장 막국숫집 있잖아요. 거기서 그냥 먹을까 하구요."
  "그럼, 나도 같이."
  "그러죠, 뭐."

  점심시간까지는 15분 정도 남았지만, 구청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기는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식당에서 줄 서는 것이 싫다고 저렇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영 마뜩잖았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15분 일찍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직 사회의 관성이란 참으로도 무섭고도 기이한 것이다. 중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들고서 동료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막국숫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중기는 막국수집 옆의 순댓국집이 좀 나은가 해서 가게 안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그곳도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침 막국수집에 두 자리가 났고, 중기는 동료와 함께 앉을 수 있었다.

  "손님은 뭐로 하시게?"
  "막국수 둘."

  서빙을 하는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인지 조지아인지 아무튼 그쪽 나라 사람처럼 보였다. 덩치가 좀 있는 외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말은 그다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하네."

  신 주무관이 남자가 가고 난 뒤에 신기한 듯 말했다. 문득 중기는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빌라 출입구에서 젊은 동남아시아 남자를 만났다. 빌라의 수다쟁이라고 할 수 있는 영천댁의 말에 의하면 이사간 박 차장네 집에 살게된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이라고 했다. 잠깐 살다 간다는데, 모르지 뭐. 영천댁은 못마땅하다는 듯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했다. 주인 영감이 깔세로 얼마나 월세를 당겨서 받았는지 중기는 궁금해졌다. 분명 자신에게서 받는 월세보다 더 많은 돈을 불렀을 것이다.

  "안녕!"

  중기는 이제 겨우 스물을 좀 넘겼을 법한 베트남 청년의 인사말에 기가 찼다. 우리말을 잘 몰라서 저러는 건가? 모른다고 해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봐, '안녕'이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고 해야지."
  "알아. 그냥 친구 하고 싶어서."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의 청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활짝 웃으며 중기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저렇게 허물없이 구는 것이 저 청년의 생존 방식인지도 몰랐다.

  "난, 네 친구가 아냐. 앞으로도 아닐 거고. 그러니 말조심해."
  "그래, 알았어. 잘 가."

  중기의 싸늘한 말을 청년은 씨익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중기는 청년의 누렇게 때가 낀 흰색 티셔츠와 너덜거리는 운동화 밑창을 보고는 기겁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강서구의 그저그런 빌라가 갑자기 쪽방촌이 되어버린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돈에 환장한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 중기는 빌라의 주인 영감을 향해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방이 하루라도 비어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저런 놈들까지 살게 하다니.

  "이모님, 3번 테이블 막국수 둘 빨리요!"
  "좀 걸려. 기다리라고."

  서빙 보는 외국인이 주방과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3번 테이블의 중기는 하릴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가게의 구석진 곳 벽에 달린 TV에서는 뉴스 채널의 정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치 뉴스와 교착 상태에 빠진 이란과 미국의 종전 협상에 대한 뉴스가 짧게 이어졌다.

  "다음은 국내의 사건 사고 소식입니다. 식물인간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저희 취재 기자가 경찰청에 나가 있습니다. 민현수 기자, 자세한 소식 전해주시죠." 

  중기는 '식물인간'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에서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다. TV 화면 속에서는 검은색 야구 모자에 마스크를 쓴 중년의 남자가 막 경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네, 체포된 43세의 박 모 씨는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에게 독극물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망자 친족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검이 이루어졌고, 경찰은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긴급 체포했습니다. 자, 그럼 용의자의 인터뷰 내용을 직접 들어보시죠."

  중기는 남자의 성씨가 박씨라는 사실에 조금은 소름이 끼쳤다. 혹시 저 사람이 자신이 아는 그 박 차장이 아닐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가던 날, 그가 보여주었던 그 평온한 얼굴 표정과 웃음이 이상하게도 잊혀지지 않았다.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합니까?"
  "난 아내를 죽이지 않았어요. 죽여달라고 한 건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 것뿐입니다."
 
  중기는 늘어지면서 뭉개지는 박 차장의 말투가 TV에서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해자는 식물인간 상태였다고 들었는데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말을 했다는 겁니까?"
  "분명히 나는 아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 의식이 돌아왔겠지요."

  TV 화면 속의 살인 용의자, 그러니까 중기가 알고 있는 그 박 차장은 아주 차분하게 기자들과의 문답을 이어갔다. 중기는 점심이고 뭐고 정신이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것만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두치(咽頭齒) 10


  "음, 그러니까 이건 실패한 소설 같아요."

  중기는 문득 오늘 소설 수업 시간의 합평을 생각하고는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중기의 소설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나는 송파가 좋아요'를 쓴 송파구 주민, 미자 씨였다.

  "제 소설을 그렇게 읽으셨다니, 흥미롭네요. 어느 부분이 실패했다고 보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송파구 주민 미자 씨는 톤 업 썬크림으로 희게 번들거리는 얼굴에 비해 목은 때가 낀 거 마냥 시커멓게 보였다. 거기에다 60대에 접어든 여자의 목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중기는 그 늙은 여자의 글만 아니라 외모까지도 아주 싫었다. 더더군다나 말도 안 되는 비평을 자신감 있게 늘어놓는 그 뻔뻔함은 더 싫었다.

  "자, 봐봐요. 구만이나 경주나 그냥 가만히 있잖아요. 모름지기 소설의 주인공은 움직여야 한다구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쯤 뭘 하러 돌아다닐 거냔 말이죠."

  얇고 윤기 없는 입술을 움직이며 여자는 중기의 소설을 마구 깎아내리고 있었다. 아니, 아줌마 소설에서 집 나가버린 개연성은 어쩌구요. 댁이 쓰는 게 소설이야? 그냥 돈 있고 시간 남아도는 강남 아줌마의 우스꽝스러운 수필이지. 하지만 중기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에 어제저녁에 모기에게 물린 왼쪽 팔꿈치를 벅벅 긁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 결말 부분은 생각해 두었습니까?"

  소설가 선생이 중기의 프린트물을 책상에 천천히 내려놓으며, 중기에게 그렇게 물었다. 중기는 그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그래, 결말을 쓰기는 해야지. 그런데 그 결말은 아직 중기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글쎄요, 그게 아직..."
  "우선은 결말을 먼저 생각하고 써보세요. 그러면 지금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보일 겁니다."

  기성 작가의 눈이 다르긴 다르구나. 중기는 이제 더는 자신의 소설을 써내지 못하는 작가 선생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중기에게는 저 선생의 소설집이 있었다. 선생이 처음으로 써낸 장편소설이었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던 단편소설집에 비해, 선생의 장편소설은 솔직히 별로였다. 그냥 별로가 아니라, 아주 형편없었다. 이야기는 늘어지고, 별다른 주제 의식도 없었다. 그저 분량 채우기에 급급한 소설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중기는 선생의 수업을 들으려고 그 소설책을 샀다. 그리고 선생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그러고는 그 소설책을 책장에 꽂아놓으며 다짐했다. 나는 저런 소설은 절대로 쓰지 말아야지. 저런 소설을 썼기 때문에 선생은 작가로서 실패했고 잊혀졌다. 그리고 이제는 문화센터 강의와 이런저런 강연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6월이면 이 강의도 끝나네요. 지금까지 써온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다들 궁리들 하세요."

  소설에는 끝이 있다. 중기는 이 소설을 끝낼 수 있을지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호했다. 중년 남자에게 닥친 생의 위기에 매혹될 독자가 과연 있을까? 독자는 커녕 이런 소설을 공모전에 냈을 때, 이걸 끝까지 읽어줄 작가나 평론가도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동시대성이 중요한 거겠죠.  20대 젊은 여성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내면 됩니다. 그런 게 어떻게든 팔리니까요. 그걸 못해서 나도 이 모양이지만."
  "선생님, 그런데 지금도 소설을 쓰고 계십니까?"
  "그럼요. 매일 밤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나는 밤에 글을 쓰는 게 편해서. 물론 뭔가를 써내는 날은 드뭅니다만."

  중기가 공모전에 낼 소설을 고민한다는 말에 소설가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중기는 강의실 문을 나서는 선생의 굽은 등을 바라보았다. 중기는 선생이 왜 아직도 소설을 쓰는지 궁금했다. 선생이 소설을 완성한다고 해도 선생의 책을 내줄 출판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의 글이 빛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그럼에도 선생은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었다. 설마 선생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 터였다. 어쩌면 저런 것이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르겠군. 중기는 혼자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두치(咽頭齒) 9

 

  꿈을 꾸었다. 중기는 어른 둘이 겨우 탈 수 있는 경차 안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아버지의 표정을 창백하고 침울해 보였다. 꿈속에서라도 중기는 아버지는 돌아가신 분이니 저런 얼굴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중기를 바라보는 대신에 그저 앞쪽의 어느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기도 아버지가 말을 거는 것이 무서웠다. 돌아가신 분이 꿈에 보이는 것은 어쨌든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중기는 그 말에 무어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와 동생은 손을 잡고서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중기는 자신도 차에서 내려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외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중기는 차마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아버지, 저승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중기는 그렇게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저승은 마음에 들어서 사는 곳은 아닐 테지. 전화나 자주 하렴. 분명 아버지의 입은 닫혀 있었지만, 중기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버지는 그새 복화술이라도 배운 것일까? 아버지의 얼굴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부서지는 하얀 가루처럼 조수석에 내려앉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는 빛바랜 은색의 작은 열쇠만 남았다.

  중기는 그 열쇠가 어디에 맞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 열쇠는 도무지 써먹을 수 없는 그런 열쇠일지도 모른다. 착하지만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아버지가 남겨준 것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중기는 아버지의 장례 절차를 마치고 상속받을 재산이 있는지 행정 조회 서비스를 통해 샅샅이 살펴보았다. 본적지의 선산 골짜기에 쓸모없는 70평짜리 땅이 있었다. 이듬해에 나온 그 땅의 재산세 고지서 금액은 12만 8천 원이었다. 

  "수도회에서 이 요양원을 운영하는 것이 많이 어렵습니다."

  전번에 어머니를 보러 갔을 때, 중기는 원장 수녀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수녀원에서 요양원을 건립할 때, 보증금 예치 방식으로 신청자를 받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조한 금리 때문에 운영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일부 보증금을 돌려줄 테니, 매월 이용료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중기는 처음에 예치한 1억에서 돌려받는 5천만 원으로 매달 18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는 얼마나 더 사실까? 주기적으로 기흉(氣胸)으로 고생하는 동생보다 어머니가 더 오래 살 것 같았다.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지만..."

  아버지의 꿈을 꾼 날 저녁에 중기가 분리수거하러 나갔을 때, 영천 아줌마가 중기를 보더니 그렇게 운을 떼었다. 중기는 수선스러운 그 아줌마가 영 마뜩잖았다. 원래대로라면 페트병과 일반 플라스틱을 정확히 구분해서 수거함에 넣었을 텐데, 그냥 얼른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던져넣었다. 그런 중기를 보면서 영천댁은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글쎄 5년을 누워만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숨이 넘어갔다지 뭐요. 그 양반 혼자서 애들 키우기 힘드니 뭐 나라에서 무슨 혜택이라도 받았나 봐. 시흥의 17평 임대 아파트가 거저 떨어진 거야. 죽은 마누라가 남편과 애들 살렸지."
 
  중기는 방짜 유기를 들고 어두운 복도에 서 있었던 박 차장의 음울한 얼굴을 떠올렸다.

  "방짜 유기인지 뭔지 팔러왔었는데, 공무원 선생네도 찾아갔을까?"

  영천댁이 중기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중기는 눈을 마주치기 싫어서, 맥주캔을 손에 넣고 천천히 아귀힘을 주며 우그러뜨리고 있었다. 

  "딱 봐도 바가지 씌우는 게 분명해서 난 안 사줬거든. 그런데 이젠 뭐 그런 장사 안 해도 된다 그럽디다. 나라에서 뭔 계약직 일자리도 마련해줬다는 거야. 나 원 참. 그 뭐냐, 속담에도 있잖수.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어쨌든 팔리지도 않는 방짜 유기 장사도 끝이지." 

  사람의 죽음을 유용함으로 평가하는 것은 뭔가 내키지 않지만, 분명 박 차장 아내의 죽음은 그 가족에게는 쓸모가 있었다. 일주일 후에 중기는 작은 용달차 인부들이 박 차장네의 빈한한 살림살이를 차에다 꽉꽉 욱여넣는 것을 보았다. 토요일 오후였다. 중기는 여느 토요일처럼 맥 빠지는 소설 창작 강의를 듣고 오던 길이었다. 박 차장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희어지고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중기는 약간의 소름마저 돋았다. 중기는 아주 잠깐, 저 남자가 어쩌면 아내의 죽음을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두치(咽頭齒) 8


  '이것 좀 봐봐. 어제 보니까, 왼쪽 손목에 이게 생긴 거야. 수포처럼 오돌토돌한데, 좀 가렵기도 하고. 두 군데 생겼어. 그것도 왼쪽만.'
  '올려주신 사진을 검토해 본 결과, 화폐상 습진으로 보입니다. 피부가 너무 건조하거나, 어떤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닿아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아, 이게 청소일 하면서 락스를 좀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원인을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도 피부 질환의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경주는 Gemini가 언급한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가시처럼 손톱에 콱, 하고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도무지 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 남편을 보며 안쓰러웠던 감정이 조금씩 증오와 분노, 경멸이 뒤섞여 단단한 공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경주는 습진이 생긴 왼쪽 손등을 벅벅 긁다가, 자신도 모르게 울분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소파에서 졸고 있는 남편이 커다란 애벌레 같았다. 그 애벌레는 소파에서 집을 짓고서 먹고 잤다. 남편이 늘 보는 뉴스 채널의 소리도 아주 듣기 싫었다. 지루한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다.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협상 소식을 경주는 날마다 들어야 했다. 

  중기는 경주가 구만에게 언제쯤 화를 낼지 가늠해 보았다. 경주의 왼쪽 손등은 군데군데 터져있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해도 물이 손에 닿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중기는 자신이라면 경주처럼 저렇게 몸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원체 약골인 중기는 자신이 그런 일을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며칠만 해도 그냥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중기는 어젯밤 늦게 통조림 택배를 받았다. 배송 예정 시간은 오후 5시였지만, 중기가 문 앞에서 툭, 하며 상자가 던져지는 소리를 들은 것은 자정이 되기 5분 전이었다. 새로 바뀐 택배기사는 여자였는데, 아마도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렇게 배송 시간이 늦어지곤 했다. 신소미. 배송 기사의 이름이 찍힌 운송장을 뜯어내며, 중기는 먹고 산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저 여자 택배기사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갈 것이다.  

  33%.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을 보고, 중기는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했다. 중기가 휴대폰을 충전하고 있을 때, 경주도 잔량이 25퍼센트인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했다. 낮에 일하는 동안에는 휴대폰을 들여다볼 시간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이어폰으로 듣는 오디오북이 배터리를 빨리 닳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경주가 듣는 오디오북은 늘 추리 소설이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은 범인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경주는 아파트 청소를 하는 동안에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를 계속 생각해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니, 재미라기 보다는 경주에게는 나름대로 노동의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다. 경주는 매일 화단으로 서너 개씩 담배꽁초를 내던지는 입주민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오디오북 속의 살인범은 현실의 담배꽁초 투기범으로 변모했다.

  중기는 경주가 출퇴근 시간에 오디오북으로 추리소설을 듣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중기는 경주를 '아파트 청소일을 하게 되었다'까지만 설정해 놓았을 뿐, 경주의 하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중기에게 이 소설은 방전된 상태에서 꾸역꾸역 써내는 일기 같았다. 구만은 애벌레처럼 소파에서 자신만의 집을 짓고 있었고, 경주는 무기력하게 그런 남편을 바라보았다. 물론 중기는 작가로서 자신이 과연 그들의 삶에 무슨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들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은 하고 있었다. 

  "그런 게 있잖아요. 소설을 쓰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막 살아서 움직인다니까요. 어느 순간에는 자기들이 혼자 말을 시작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해요. 그럼 또 나는 그걸 정신없이 받아서 써내고 있단 말이죠."

  그 말은 중기가 주말에 듣는 문화센터 소설 창작 강의 시간에 늙은 수강생 아줌마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몇몇 수강생들이 짐짓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기는 자신이 쓴 소설에서 인물들이 그런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별로 기억나질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가만히 있을 때가 많아서, 중기는 그들을 끌고 이리저리 다녔다. 그런 때가 있기는 했다. 인물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듣기는 들었지만, 그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빼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썼다.

  "그렇지요. 모름지기 좋은 작가란, 그런 인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써내는 사람입니다."

  소설가 선생은 그 수강생의 말에 그렇게 답했다. 그렇다면 난 좋은 작가는 아닌 모양이군. 중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중년의 소설가 선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촉망받는 소설가였던 선생은 이제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과거에 그가 써냈던 소설은 이제 문화센터와 백화점, 도서관들을 돌면서 강의할 수 있는 생계의 밑천일 뿐이었다. 중기가 생각하기에 선생이 소설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선생은 수강생들이 써온 소설들에 웬만해서는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중기의 단편을 읽고 선생이 하는 소리는 매번 똑같았다.

  "디테일이 부족해요, 디테일이."

  물론 수강생 중에서 디테일이 부족한 사람은 중기 혼자는 아니었다. 자신의 등장인물이 살아서 움직인다고 말했던 늙은 아줌마의 소설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였을 뿐이다. 1970년대 코딱지만 한 잠실 아파트를 분양받아 송파구의 주민으로 뿌리를 내리며 살아온 여자의 짧은 일대기. 그 소설의 제목은 '나는 송파가 좋아요'였다. 중기는 그 소설, 아니 자전적 이야기에 담긴 지독한 속물근성을 내심 비웃었다. 그럼에도 송파구의 38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 수강생 아줌마와 강서구의 원룸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 자신의 계층적 간극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웃을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