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춘자야, 춘자 어디 갔어?"
저 인간은 아까부터 계속 춘자를 불러댄다. 마누라 이름이 춘자라는 걸, 이 호스피스 병실의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구 엄마나 여보도 아니고, 마누라 이름을 저렇게 불러대냔 말이다. 나는 이제까지 집사람한테 '수진 엄마' 이렇게 불렀지, '숙희야'하고 불러본 것은 손에 꼽는다. 덜떨어진 인간 같으니. 그런데 대체 춘자는 어디 간 건가?
"수진아, 춘자 씨는 어디를 갔길래 저 사람이 하루 종일 저러고 있냐?"
"추석이라 차례 준비하러 갔대요. 저 아저씨 아들이 왔는데, 휴게실에서 코 골며 자고 있고."
"아니, 그럼 저기 옆에서 좀 앉아 있기라도 하지, 저 춘자 타령을 언제까지 들어야 해?"
"아빠, 조용히 말씀하세요."
"어차피 듣지도 못할 거야. 지금 진통제 때문에 혼수 상태 같은데."
창 쪽의 저 남자는 담도암이라 했던가? 이제 거의 죽을 때가 다 되니, 그래도 마누라 생각만 간절한 모양이다. 수진 엄마는 수진이와 교대하고 집에 갔지. 내가 눈 감을 때에는 수진 엄마가 꼭 옆에 있으면 좋을 텐데. 여기서 얼마를 지내다 죽을까?
"수진아, 죽는 게 무섭다. 정말이야, 죽는 게 무서워."
"아빠, 기도문 읽어드릴게요. 수녀님이 알려준 거예요."
"아냐, 그 기도문은 실컷 들었다. 아까 잠결에도 네가 읽는 소릴 들었어."
"어쨌든 아빠가 영세를 받으셔서 다행이에요."
나는 죽은 후의 세상을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봐도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천당이 진짜 있을까? 어디든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기는 하겠지. 그리고 메리도 있을 것이다. 항상 나를 좋아하고 따르던 조그만 강아지 메리. 그 메리가 쥐약을 먹고 뒤뜰의 멍석에서 죽어 나왔을 때, 너무나도 슬퍼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메리는 내가 가면 정신없이 달려 나와 나에게 안길 것이다. 내 말을 안 들어서 야단을 치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갸웃하던 메리.
"춘자야, 춘자 어디 갔어? 날 버린 거야. 그렇지?"
마누라가 안 보인다고 울기까지 하는 저 바보는 정말이지 대책이 없다.
"우리 아저씨가요, 젊은 시절에 얼마나 의처증이 심했는지 몰라요. 내가 너무 마음고생해서, 에휴."
나는 춘자 여사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며칠 전에 들었다. 거친 쇳소리를 내며 숨을 쉬는 걸 보니, 저 사람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네. 춘자 여사가 좀 돌아와 주면 좋으련만.
"아빠, 오늘은 좀 컨디션이 어때요?"
"야, 이상하게 오늘은 아주 오래전 기억도 다 나고, 밥도 먹고 싶고 그렇다. 하나도 안 아파."
"식사는 하실 수가 없어요. 뭔 수액이 들어가고 있어서, 의사가 절대 금식을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 종양내과 의사 말이냐? 빌어먹을 놈."
내가 이렇게 화가 난 이유는 의사라는 그 작자의 돼먹지 못한 태도 때문이다. 나도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걸 대충은 알고 있다. 그러면 죽음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이라도 흔들어 반겨야 한단 말인가? 나는 어떻게든 살고 싶은데, 그 인간은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저, 선생님. 나 항암 치료 좀 받게 해주시오. 치료를 어떻게든 받으면 살 가망도 조금은 있지 않소?"
"환자분, 잘 들으세요. 환자분은 췌장암 말기입니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항암 치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구요. 통증을 덜어주는 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암 치료를 해달라느니,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저딴 게 의사랍시고 의사 노릇을 하고 있구나. 너도 죽을 때, 꼭 너 같은 의사 만나서 그런 소리 들어라. 내가 41kg 되는 몸으로 항암 치료받는 게 가능해서 그렇게 물어봤겠냐? 내가 제약회사에서 35년을 일했어. 너 같은 의사들, 무수히도 만났지. 의사라는 직업 가졌다고 얼마나 대가리 쳐들고 다니는지 아주 잘 알지. 그래, 아주 잘 알고말고. 뼛속 깊이 박힌 그 선민의식이며, 나 원 참 같잖아서.
"아이구, 우리 석구 얼굴 좀 봐야지. 이게 뭐냐, 얼굴이."
저기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네. 일가친척들이 다 모였어.
"환자분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어서, 좀 있다가 임종실로 이동할 겁니다. 가족분들, 이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어요."
생콩 같은 간호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휙 나가버린다. 쟤가 어젠가, 엊그제 후배 간호사를 쥐잡듯이 야단을 치던데.
"이 선생님. 내가 2층에서 ECG 결과 받아오라고 했죠. 그런데 이게 뭐에요. ECG가 뭔지 몰라요? 이런 것도 모르면서 여기서 일해요? 돌대가리 아닌가? 자, 말해봐요. ECG가 뭐예요? 뭐냐구요?"
내가 말할 기운만 있으면, 저딴 거 대신에 다른 간호사 좀 보내라고 항의를 했을 텐데. 죽어가는 사람들 있는 호스피스 병실에서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저 애는 왜 간호사가 되었을까? 쟤가 내 수액 줄 갈아줄 때는 몸서리치게 아주 싫어진다.
"아빠, 아빠도 저 간호사가 마음에 안 들죠?"
"그래. 정말 그렇다."
"아까, 아빠 수액에 들어가는 약이 뭔지 물어봤더니 아주 퉁명스럽게 말하더라구요."
"천성이 독살스러운 것들은 어쩔 수가 없지. 엊그제인가, 신참이 심전도 대신에 뭘 잘못 뽑아왔다고 있는 대로 악을 쓰는 거야.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아냐? 여기 수간호사라는 여자도 아침마다 간호사들한테 그렇게 소리를 질러. 어째 죄다 저런 것들만 모아놨는지."
그런데 석구라는 이름의 저 환자는 후두암이라고 했던가? 어제부터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만, 인제 진짜 가려는 모양이다.
"하잘것없는 풀도 풀씨는 남기는 법인데, 너는 어쩌자고 여자 잘못 만나서 네 씨앗 하나 남기질 못했냐? 박복한 것 같으니."
"아유, 고모님, 그만 좀 하세요."
저 사람은 이제 쉰을 조금 넘었다 들었는데, 저런 사연이 있었구먼. 그래서 그 부인이 죄지은 사람마냥 얼굴이 그랬구나. 내 자식들, 내 풀씨 세 개.
"박 서방, 사람이 괜찮아. 네가 함께 살기는 괜찮을 거다."
"그래요, 아빠. 나도 그래서 박 서방하고 결혼했지. 같이 있으면 편해서."
"그런데, 너도 있다가 가봐야하는 거 아니냐. 추석 연휴도 다 끝나가는데, 내일 출근해야지."
"저녁에 엄마하고 수민이 올 거예요. 그때 가려구요."
"회사일이 힘들지? 어떻게든 버텨봐. 먹고 사는 일이 쉽지가 않단다."
"힘들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나. 우리 아빠는 이 힘든 걸 어떻게 35년을 했을까, 하고."
"샐러리맨이라는 게 그렇지."
내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였을까? 내가 처음으로 맡았던 서울 남부 사무소가 전국 지부 통틀어 영업 매출 1위를 달성했을 때였을 거야. 그때, 정말로 발이 부르트도록 약국이며, 큰 병원 원무과 드나들며 제약 영업을 했었지. 내가 밥을 먹여야 할 식솔들이 다섯이나 되었으니까. 내 불쌍한 어무이, 수진 엄마, 수진이, 수민이, 수현이.
"자, 이제 임종실로 옮기겠습니다. 직계 가족분들만 따라오세요."
"석구야, 어찌 이리도 명이 짧으냐. 좀 더 살고 가지. 다 이게 지 서방 잡아먹은 저 모진 년 때문이다."
"아이구, 고모님도 참. 너무 하시네."
풀씨 하나를 남기지 못한 남자가 떠나간다. 떠나버린 남자의 침대를 간병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소독약으로 닦는다. 이곳은 죽음이 가득찬 곳이면서도, 죽음의 냄새를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하는 이상한 곳이다.
"춘자야, 춘자 언제 와? 응?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러냐?"
사람이 죽어가는데 뭔 명절 준비를 하러 갔을까? 저기도 희한한 집구석이네.
"아빠, 저 아저씨는 춘자 아줌마를 죽도록 사랑하나 봐요."
"그러네. 죽을 때가 되도록 저렇게나 사랑하는 모양이다."
내가 죽으면 수진 엄마는 어떻게 살까? 그래도 자식이 셋이나 되니까, 그 애들이 잘 보살펴 주겠지. 다 착하니까. 날 닮고, 수진 엄마를 닮은 내 착한 아이들.
"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자꾸만 눈이 감긴다. 수면제 같은 것도 수액에 넣은 모양이다. 얘기를 더 하고 싶은데.
"저기, 집에서 밤을 좀 삶아왔어요. 이것 좀 드셔보시라고."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밤이라니, 눈이 떠진다. 밤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 밤 한 톨만 다오."
"안 돼요, 아빠. 의사가 수액 말고 음식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어요."
"어이구, 이 자식아. 그거 한 톨만 주면 되는데. 너 나중에 후회할 거다."
"아빠, 미안해요."
깐 밤 같이 예쁜 내 아들. 어무이는 내가 어릴 때, 날 그렇게 불렀지. 그 어무이는 어디 계실까? 밤 한 톨이면 되는데, 밤 한 톨이면.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 밤 한 톨을 결국 먹지 못하는구나. 저 아이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점점 모든 것이 어두워진다. 산길 같은 곳을 나는 걷고 있다. 은회색 마고자와 한복 바지를 입고 걸어간다. 깊어지는 산 속. 뒤를 한번 돌아보고 싶은데, 주변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저걸 따라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