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문제였다. 주로 영화를 보고 글을 썼는데, 올해 초부터 그 일이 아주 버겁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는 일도 부담스러운 숙제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는 'Writer's Block'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벽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글쓰기는 막막하고 넘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해결 방법은 딱히 없다. 각자 알아서 극복하는 수밖에. 나는 Writer's Block에 대한 여러 글을 읽다가 한가지 조언에 눈길이 멈추었다. 자신이 쓰던 글과는 다른 장르의 글을 써보라는 것이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시나 수필을 쓰는 식으로.

  그렇게 해서 매일 조금씩이나마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 수필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수필을 그저 신변잡기의 소소한 글로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소재로, 어떻게 써 내려가지? 글쓰기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쓰기는 했지만, 솔직히 쉽지 않았다. 수필과 함께 쓰기 시작한 것은 소설이었다. 나는 습작이란 과정을 제대로 거쳐본 적이 없었다. 물론 영상원 재학 시절에 글쓰기와 관련된 창작 수업을 많이 듣기는 했다. 그렇지만 소설 쓰기를 끈기 있게, 집중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등장인물은 어떻게 묘사하며, 대화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그런 작업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일기장에 쓰는 끄적거림 같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글쓰기에 대한 책은 많이 읽었다. 거기에 쓴 책값만 해도 꽤 된다. 문제는 그걸 제대로 써먹어 본 적이 없다는 것. 그나마 글쓰기에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 책은 일본의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쓴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다(이 좋은 책이 절판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지만, 이야기 책으로도 아주 재미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글쓰기를 비유한 멋진 표현이 생각난다. 그는 소설을 쓰려는 사람이 '글'이라는 대상과 캐치볼을 하듯 공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저 열정적으로 따라다니거나 하면 상대방은 놀라서 달아나 버린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소설과 작가의 관계도 그러하다고 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말을 걸면서 공을 주고받는 것. 나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그 비유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멋진 소설을 쓸 거야. 내가 쓰는 소설을 반드시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말겠어. 이런 과도한 열정은 '글'이 작가에게서 멀리 달아나게 만든다. 끊임없이 공을 주고 받으며, 글이 던지는 공을 잘 받아내는 것. 소설 쓰기는 그런 훈련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내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에게 계속 말을 걸고, 그들의 생각을 뒤따라가는 일. 나에게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나름 재미있었다. 물론 내가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쓰는 것과 독자들의 반응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를 써낸다는 작업이 참으로 생산적이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 글을 올리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져도, 오랜만에 글을 올리면 꼭 찾아와서 읽어주는 독자도 있었다. 작가가 그런 열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독자를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 독자 한 명만 있어도 작가는 불모의 시기를 견딜 수 있다. 잊지 않고 이 블로그를 찾아주는 독자들에게 이 글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사회와 세계의 문제, 과학 기사, 그리고 대중가요에 대한 이야기도 썼다. 어떤 면에서 그런 글들은 잡문(雜文)으로 통칭할 수 있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글을 써 내려감으로써 글쓰기의 벽을 넘어서려고 했다는 점이다. 정말로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다. 이건 마치 마라톤으로 치면 아주 힘든 고비를 넘기고, 37km 정도쯤에 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여전히 영화 글쓰기는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영화 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진 점도 있다. 그나마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Past Lives(2023)'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 영화에 대해 글을 써야지, 하고 쓰지는 못했지만.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그 영화를 안 본 이가 있다면, 꼭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해마다 연말이면 '올해의 좋았던 일'과 '올해의 나빴던 일'에 대한 목록을 작성해 본다. 올해는 '나빴던 일'의 목록이 유독 길었다. 온갖 불운과 마(魔)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좋았던 일'의 리스트가 텅 비어있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어쨌거나 글을 썼다'가 들어있다. 또한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도 들어있다. 나는 그 목록을 그렇게 채울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 좋은 글은 사람들이 뒤돌아보게끔 만드는 미인과 같다고."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안즈코(杏っこ, Anzukko, 1958)'에는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에 휘말리게 된 아름다운 안즈코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좋은 남편감이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쪼잔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한심한 남자였다. 그는 유명한 작가인 장인의 명성을 시기한다. 장인과 같은 작가가 되겠다면서 글을 쓰지만, 이 남자가 써내는 글은 허섭스레기 같을 뿐이다. 남자는 아내에게 장인만이 알고 있는 글쓰기의 비밀이 있나 물어본다. 그러자 안즈코는 그렇게 대답한다. 그러자 남편이란 작자는 이렇게 응수한다.

  "그럼 내 글은 추녀라는 말이군."

  '미인'이라는 단어가 요새의 성 인지 감수성에는 좀 튀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미남'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어쨌든 글이란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대사를 마음에 꾹꾹 담아두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나 스스로 물어본다. 내 글은 사람들이 돌아보게 할만한 미모를 가졌는가? 아, 글이란 역시 어렵다. 내년에도 나는 그 어려운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안즈코(1958)' 리뷰

https://blog.aladin.co.kr/sirius7/1232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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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6 08:29   좋아요 0 | URL
잘 안되는 글쓰기, 그 기분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떤 날은 그냥 술술 쓰지지만 또 어떤 때는 찢어버리는 원고지만 휴지통네 가득하지요.

푸른별 2023-12-06 12:4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때로는 텅 빈 모니터의 깜빡이는 커서가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지니까요. 그래도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써 내려가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호시우행님의 행복한 글쓰기를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