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거야. 그 수세미가 도대체 어디로 갔냐는 거지. 내가 그걸 찾으려고 2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었어."
"엄마가 어디 딴 데다 두거나, 떨어뜨리거나 그런 거 아냐?"
"아니래도. 청소 도구 바구니가 있어. 빨간색. 파견 업체에서 거기에 세제랑 수세미, 이런저런 도구들 함께 넣어서 줬다고. 그걸 1층 우편함 아래에다 두고 잠깐 밖에 쓰레기 버리러 갔거든. 와보니까 수세미가 없어. 그거 하얀색. 매직 블럭 있잖아. 때 잘 닦이는 거. 새것이라고."
"엄마. 그거 누가 가져갔으면, CCTV 보면 알 수 있거든. 우편함 앞이니까 거기 출입구라서 잘 보일 거야. 관리사무소에 가서 얘기해 보세요."
"에휴, 그런 걸 뭘 말해. 괜히 분란만 일으킬지도 모르는데. 내가 조심하지 뭐."
홍 여사는 참으로 수세미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족히 30억이 넘는 강남의 아파트에서 정말로 누군가 수세미를 훔쳐갔을까? 아픈 영감의 약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청소일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일주일째였다. 그런데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것으로 받은 청소 물품을 잃어버린 것이 아주 찝찝하고 기분이 나빴다. 분명히 내부인의 소행이었다. 하지만,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이 아파트에서 기껏해야 돈 천 원 하는 매직 블럭 수세미를 훔쳐갔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모르지. 부자라도 도벽(盜癖)이 있을 수 있으니까. 홍 여사는 집으로 가는 길에 천 원 마트에 들려서 매직 블럭을 하나 샀다. 쓰지 않아도 될 돈 천 원이 나갔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리고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여사님, 내가 여사님이 우리 어머니 같아서 충고 좀 할게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나아요. 여기서는 그저 조용히 있는 게 답이에요.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웬만하면 눈에 띄지 않게, 그래요. 유령처럼 왔다갔다하는 거죠. 지금 여사님 이야기는 입주민을 도둑으로 생각하고 하는 말이잖아요. 그 수세미가 얼마라고 했죠? 내가 잡비 지출로 해서 천 원 내어드리죠. 어떤 면에서는 여사님이 물건 간수 잘하지 못한 잘못도 있는 거에요."
관리사무소의 경리가 딱딱거리는 말투로 홍 여사에게 말했다. 홍 여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CCTV를 확인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경리 주임에게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경리의 얼굴이 일순 차갑게 싹 바뀌었다. 홍 여사는 이내 곧 자신이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천 원 가져가세요. 다음에 이런 일 또 있으면, 이렇게는 못해요. 청소 도구 관리는 전적으로 여사님 책임입니다."
홍 여사는 쭈뼛거리면서 경리가 책상 모서리로 밀어낸 천 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넣었다. 돈 천 원이 그렇게나 더럽고 굴욕적으로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여사님이라는 호칭도 웃기는 말이었다. 진짜 부잣집의 여사님은 이런 곳에서 천 원을 아쉬워하며 주머니에 쑤셔 넣지는 않을 터였다. 홍 여사는 낡은 수세미처럼 쭈글쭈글한 표정으로 미화원 휴게실로 돌아왔다. 홍 여사의 얼굴을 보고 동료 박 여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홍 여사는 매직 블럭 수세미를 잃어버린 일을 짧게 이야기했다.
"홍 여사 말을 들으니 딱 그 생각이 나네. 내가 본 이야기를 해줄게. 지난주 화요일 아침에 관리사무소 회의실을 청소하러 갔었더랬지. 그런데 관리사무소 앞에 경찰차가 와있어. 대체 뭔 일인가, 우리같이 늙은 사람은 경찰차만 봐도 뭔가 심장이 오그라들고 그러잖아. 그래서 조심조심하면서 회의실 있는 2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휴, 난리도 아냐."
"난리라니,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어?"
"아이고, 큰일은 큰일이지. 내가 회의실로 가려면, 관리사무소 사무실을 지나가야 하잖아. 경찰 두 명하고, 머리 허연 영감하고 큰소리로 싸우더만. 소장은 그냥 막대기처럼 멀뚱히 서있고. 열린 사무실문 뒤편에서 가만히 서서 뭔일인가 들어봤거든."
"그래, 그래서?"
홍 여사는 좀 전에 수세미 때문에 기분 나빴던 일은 싹 잊어버리고는 박 여사의 말에 집중했다.
"여기 아파트 오다 보면 코엑스라는 데 있잖아. 커다란 행사 같은 거 자주 하거든. 경찰 말로는 그 영감이 거기를 자주 돌아다니면서 기념품 같은 걸 훔쳤다는 거야. CCTV에 다 찍혔다고 하면서."
"이 부자 동네 사는 영감이 정말로 그걸 훔쳤을까?"
"아휴, 그 영감 뻔뻔하게도 오히려 더 악을 쓰는 거야. 나 정도면 가져갈 만해서 가져갔다, 그러던데. 너희들이 뭔데 나한테 도둑이니 뭐니 하냐고 하면서. 얼마나 당당한지 몰라. 자기 아들이 국정원 다닌다, 너희들 싹 다 잡아넣을 거야, 이러는데 그건 진짜인가 몰라."
홍 여사는 박 여사의 말을 듣고, 수세미를 훔쳐간 사람도 그 영감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이런 거 하나쯤은 내가 가져가도 괜찮다. 난 이곳에 사니까. 그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홍 여사는 그 뻔뻔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날 저녁, 홍 여사는 오늘 관리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을 전화로 딸에게 늘어놓았다.
"내가 엄마한테 괜한 말을 해서는..."
"아니다.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니? 내가 진짜로 물건을 실수로 어디다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훔쳐간 인간이 나쁜 거지. 그런 말조차 못하고 살면 그건 그거대로 얼마나 분하냐."
"그래, 엄마. 이제 수세미 생각은 그만해. 엄마만 기분 나쁘고 속상하잖아."
다음 날, 홍 여사는 으슬으슬한 감기 기운을 느끼며 일어났다. 일을 나가기 전에 동네 약국에 들러서 쌍화탕 한 병을 샀다. 천 원이었다. 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아파트에 나와보니, 엘리베이터 옆에는 아무렇게나 내버린 흰색 마스크와 담배꽁초가 보였다. 우편함 아래는 갈색의 가래침이 눌어붙어있었다.
"더러운 것들."
홍 여사는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청소 도구함에서 새 수세미를 꺼내어 눌어붙은 가래침을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