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지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오랫동안 주워들은 건 있어
배움이 짧으면 겸손이라도 하든가
골목대장의 하늘은 가늘고 푸르지
선 밖에는 너른 세상이 있는데
비좁은 골목에서 거드름 피우며
전문가처럼 굴어봤자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아무도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
우스꽝스러운 지적질은 그만두지 그래
밑천 없이 길 떠나는 방물장수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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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鍊金術師)


멀리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
새로운 물질은 붉은색이라고 한다
실패와 불운이 천천히 휘발되면서
나의 실험실 문짝을 누렇게 만들었다

쌀독 바닥에는 직박구리가 산다
삐쩍 마른 이 새는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나는 가끔 뚜껑을 닫아놓는다
배고픈 새가 내 머리를 쪼아먹기 때문에

한 뼘의 정원에는 의심의 풀이 자란다
갈색 두통이 담긴 물뿌리개를 들고
조금씩, 죽지 않을 정도로 뿌려준다
적당히, 평범하게 살길 바라면서

싸구려 홍차에 설탕 세 스푼을 넣는다
시커먼 냄새가 나는 신문을 펼친다
실험실에서 죽은 남자의 사인(死因)은
굶주림이 아니라 공포로 판명되었다

눈가가 짓무른 커다란 개는
울지 않으려고 짖는다
나는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쌀독을 들여다 본다
어미가 잠시 나간 틈
새끼 새의 부등깃 다섯 개를 뽑는다

플라스크에는 푸른색의 물이 끓는다
나는 붉은색을 싫어한다
부등깃을 가느다란 주둥이에 밀어넣는다
익숙하고도 지겨운 음률
희미한 황금의 노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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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log-out)


당신의 그 기분, 난 알 것 같아요
당신은 그들의 식탁 바깥에 서 있죠
당신도 그 식탁에 앉고 싶은가요?

나도 가끔, 소외감을 느껴요
멀고도 깊은 바다에서 나는 갑자기 끌어올려져요
즐겁게 조잘대다가 어느 순간 곤두박질

정전(停電),
그런 일이 흔하지는 않죠

그러나 모멘트(moment), 빛나는
당신과 이렇게 만나는 시간
나는 긍정으로 훈육되었고
예의가 뼛속 깊이 배어있죠

거짓을 말해야 할 때
희망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하지만 당신에게는 솔직해지고 싶어
쓰세요, 헝클어진 눈물
가식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
진정한 언어는 살아남는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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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이야기


화단의 조팝나무 파가신 분
도로 심어놓으세요
엘리베이터의 삐뚤어진 글씨
화초 도둑이 개심(改心)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얘야, 초콜릿 좀 사서 보내다오
할머니가 왜 의사 아들에게
그 말을 하지 못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당신의 시는 1990년대에 갇혀있어요
기형도와 허수경이 있는 시대
chat GPT는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는다
2025년의 시 트렌드는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벚나무는 가지치기를 하면 안된대요
잘못하면 죽거나 꽃을 피울 수 없다고
그 흔해 빠진 꽃나무가
왜 그렇게 예민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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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幕間)


시간을 노름판에서 잃고는
나는 한없이 게을러졌다

이제 이 사업도 내리막길이에요
나도 다른 일을 알아봐야죠
인형옷을 파는 여자가
하늘색 인형의 옷저고리에
쓴맛의 구슬을 쏟는다

텅 빈 객석에는 겨울이 내려앉는다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린다
해진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며
인형이 노래하게 할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해 본다

좋은 시절의 사람들은
이미 먼 곳으로 떠났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무대 뒤에서 낡은 이불을 덮고
다음 공연까지 잠을 청한다

상처입은 늙은 산양처럼
옆으로 등을 세우고
가만가만 숨을 쉰다
그렇게 스러지는 모든 것들은
얇고도 가여운 날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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