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역성(非可逆性)
불행 중 다행이야 얼굴뼈에 금이 가지도 않았고
이가 부러진 것도 아니잖아 동생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렇게 말하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만 어째 그게 쉽지가 않다 찢어져서
꿰맨 입술에는 봉합사가 너덜거리고 있고, 얼굴에는
듀오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철사로 이어 붙여놓은
치아는 계속 욱신거린다 그냥 가만히 정류장에서
버스나 기다릴 것이지, 뭐하러 좀 걸어간다고 길바닥에
넘어져서는 이렇게 고생을 하나, 그 생각부터 해서
땅바닥에 찰떡같이 들러붙는 운동화 때문이다, 하는 생각,
아니다, 거지 같은 SUV 차량을 피하려다 넘어졌으니
그걸 운전한 놈이 웬수다, 까지 오만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돌아가고 싶다, 그 재수 없는 사고 이전의 시간으로,
그렇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군, 인생의 많은 것들은 결코 되돌릴 수가 없어
흰머리를 아무리 뽑아도 검은 머리는 나지 않고,
눈꺼풀은 시간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하지 어쩔 수 없는 것 투성이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로 하자 아스팔트 바닥에
되게 넘어지고도 얼굴이 부서지지 않은 것을,
아직까지 앞니가 붙어있는 것을, 마침 큰 병원이
가까이 있어서 응급실에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을,
젠장,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냥 혼자
잘근잘근 화를 씹게 된다 인생의 그 빌어먹을
비가역성(非可逆性) 따위, 그렇게 회한과 분노와 안도가
뒤엉킨 침울한 성탄 전야에 캐럴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