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이 끝나고


1.

  아침에 눈이 꺼끌거려서 거울로 들여다보니 눈썹 하나가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까 어떻게 뺄 방도가 없다. 사람의 안구 안쪽은 막혀있으니까, 이 눈썹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기분이 찝찝할 뿐이지. 이런 기분은 내가 공모전에 응모하고 난 뒤에 느끼는 기분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작년부터 쓴 단편들을 공모전에 냈다. '당선'이란 로또 복권보다 더한 극강의 운이 작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본심에라도 올랐으면 이건 뭐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겠다 싶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최근 연도의 단편 당선작들을 보면 내가 쓰는 글과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그건 어떤 면에서 스타일이나 소재의 차이가 아니라, 세대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그 단편들을 읽으면서, 그것들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늙어버렸다고 생각했다. 2020년대 한국 단편의 주요한 경향으로 지적되는 미문(美文)과 지나친 묘사에 대한 집착, 그리고 안온하고 다정하며 무해한 이야기(속칭 안다무)는 나에게 낯설고 짜증스러운 것이다.

  나는 그런 글을 써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공모전의 심사 위원인 소설가와 평론가들이 그런 글들이 좋다고 뽑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스타일의 범주에 내 글을 욱여넣고 어떻게든 써내든가, 아니면 그냥 내 글을 써내는 것. 이건 시를 2년 동안 썼을 때의 좌절감과 당혹스러움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지금의 현대 한국 시를 읽으면서 좋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시들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의 세계로 시 쓰기가 좋다고 무작정 직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취미로서의 시 쓰기는 가능하겠지만.

  단편 쓰기는 시 쓰기의 서사를 확장할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소설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좋은 소설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리는 그 누구도 그것을 쓰는 법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런 뛰어난 작가도 좋은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말하자면 소설 쓰기는 그냥 맨땅에 부딪히며 구르면서 자기 스스로 배워가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누군가 깨달은 그 방법은 나의 것이 아니며, 어떻게 배운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쓰다 보면 뭐가 보이는 것도 같은데, 조금 있으면 그게 뭐였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러니 그냥 써나가는 방법밖에는 달리 무슨 수가 없다. 이렇게 써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문체를 쓰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알게 된다. 길지 않은 9개월 습작 기간의 수확은 아마도 그런 것이다.

3.

  한국의 소설은 일반적으로 읽히는 대중 소설, 문예지와 문학상 위주로 돌아가는 순수 문학 소설, 그리고 압도적인 비중을 보여주는 웹소설로 대강 나눌 수 있다. 신춘문예와 유명 문학상은 순문 출판 시장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이 출판 시장은 심각하게 쪼그라든 상태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중환자인 한국 문학에 산소호흡기 겨우 달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회전문처럼 이 시장은 작가, 평론가, 교수, 작가 지망생, 문학 출판사, 국가 지원금을 관리하는 관련 단체들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돌아갈 뿐이다. 분명하게도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더이상 한국 문학을 읽지 않는다. 이것은 스마트폰의 등장이라는 시대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유튜브와 쇼츠에 빠져있고, 책은 읽지 않는다. 근원적인 이유는 한국 문학에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은 그 어떤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흥미를 잃고 너무나 먼 곳으로 가버렸고 다시 돌아올 생각도 없다.

  웹툰과 웹소설로 대변되는 시장은 철저히 경제적인 관점으로 돌아간다. 그런 즉물적인 만족감을 주는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엄청난 시장을 창출해 낸다. 언젠가 웹소설 작가가 자신의 분기별 소득을 인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억대의 금액이었다. 그걸 올린 이는 자신을 대단한 '작가'라는 이름으로 내세우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글을 읽고 감동받고 응원해 주는 독자들이 있어서 힘이 난다고 썼다.

  그런 웹소 작가와는 달리 순문 작가가 자신의 글만으로 먹고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학은 결코 돈이 되지 않는다. 잘나가는 작가라고 해도 인세 수입은 보잘것없어서, 이런 저런 강의와 기고를 하고 다른 부업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내 기억 속에 작가가 자신의 글로 먹고살았던 대표적 인물이라면 이문열이었다. 이문열의 책은 웬만한 집의 책장에 다 꽂혀 있었으니까. 이제 그런 시절은 오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더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아니, 주식 책은 불티나게 팔리지만 문학책은 더럽게도 팔리지 않는다.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소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1쇄는 1000부 정도였는데, 이제는 1쇄를 찍는다고 하면 200부에서 300부를 찍는다.

  문학 출판사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돈이 될만한 책을 펴내는 것에 대한 욕망이 없을 수가 없다. 출판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나마 한국 문학 시장을 지탱하는 것이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여성 독자들이다. 그 여성 독자들의 구매 잠재력을 보여준 것은 2016년에 발행된 '82년생 김지영'이었다. 한국 소설에서 남성의 목소리, 관점을 지워가기 시작한 분기점이 되는 소설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남성 작가들이 더이상 적극적으로 순수 문학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웹소설 시장을 대안적으로 선택하는 것에서도 입증된다.

  지난해 어느 문예지의 대담 글은 이제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을 장착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말이 지닌 강압성이 심히 우려스럽다. 페미니즘을 기본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그 어떤 글은 도태되어 마땅하다는 뜻인가? 젊은 여성 독자들의 입맛에만 맞는 글만을 일방적으로 양산해 내는 문학적 생태계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한국 문학은 다양성 측면에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약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한국의 추리 문학 시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가 거의 없다. 출판사는 일본의 추리 문학을 열심히 번역해다가 내다 팔 뿐이다. 그나마 요새 조금씩 시장이 커가는 SF 문학 시장이 희망의 빛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것은 SF 소설 공모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모전과 출판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서로 공명하는 관계이다.

4.

  이제 올해 내가 소설을 내려는 공모전은 하나가 남아 있다. 그것도 단편이다. 그 단편을 끝내고 나면, 장편을 쓸 생각이다. 그 장편도 공모전에 낼 것이고, 그것이 떨어진 다음에도 무언가를 쓰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작가 지망생이 자신의 글을 세상과 만나게 할 방법은 결국 공모전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서 투고나 자비 출판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그 방법으로 글이 독자를 만날 가능성은 영에 가깝다. 문학 커뮤니티의 누군가가 그렇게 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공모전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작가 지망생의 유일한, 그러나 절망적으로 막혀있는 출구로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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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너머의 것


  좀 오래전 TV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었다. 특별 손님으로 나온 사람은 외국 여자였는데, 동물의 마음을 읽는다는 소개말이 붙었다. 그걸 동물 심리치료사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여자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말 못 하는 동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었다. 어린이 소설 '닥터 두리틀'의 주인공 박사를 생각하면 대충 맞다. 여자는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동물의 마음을 알아듣고 풀어서 말해주었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이 왜 문제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주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고 반성했다.

  동물들에게도 마음이란 것이 있는지는 철학에서도 주요한 주제이다. 생태 철학은 이제는 더 나아가 식물의 마음까지도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의 모친은 덜덜거리면서 돌아가는 선풍기를 보면서 안타까운 듯 말씀하신다.

  "쟤가 저렇게 열심히 바람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살아있는 것을 넘어서서 기계에까지 감정을 이입하는 어머니의 상상력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애착을 갖는 물건을 때론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니까. 나는 10달째 아픈 오른쪽 팔에 감정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날부터 팔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컵을 드는 것과 양치질 같은 일상도 아주 힘들게 되었다.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였다. 손목에서 팔꿈치 바깥으로 이어지는 힘줄에 염증이 생겨서 아픈 병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팔을 많이 써서 그런 것이다. 아무튼 팔을 많이 썼다. 그래서 아픈 팔이 견디다 못해 파업한 것이다. 문제는 이게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휴식인데, 팔이란 것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발도 마찬가지다. 재작년에는 족저근막염에 1년 넘게 시달렸다. 그냥 좀 쉬면 나을 거라 여기다가, 의사를 한번 만나보기는 하자 싶어서 대학병원의 족부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의사는 푹신한 신발을 신어야 하며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었다.

  "낫기는 나아요. 그런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 1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언젠가는 낫는다. 이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어쨌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나는 테니스 엘보에 걸린 내 팔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버텼다. 그러면서 아픈 팔을 낫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했다. 통증을 덜하게 하려고 매일 압박붕대를 팔에다 감았고, 팔에 부하를 줄 수 있는 청소 방식도 바꿨다. 무거운 청소기 대신에 먼지 제거 부직포 밀대를 썼다. 물건은 무엇이든 두 손으로 잡았다. 가정용 저주파 치료기가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그것도 샀다. 그리고 매일 아픈 팔과 대화를 했다.

  "그래, 내가 너를 너무 혹사시켰다. 미안하다. 나도 노력할 테니, 너도 조금씩 나아지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팔은 나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컵 하나 드는 것도 너무 아파서, 무거운 도자기 컵은 들여놓고 플라스틱 컵을 꺼내놓았다. 제일 힘든 것이 화장실 청소였다. 화장실 청소는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을 순전하게 갈아 넣는 일이다. 구석구석 수세미와 솔로 힘을 주어 밀고 닦아야만 깨끗해진다. 팔이 아픈데,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대걸레에 전용 세제를 묻혀서 대충하곤 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드디어 손으로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청소하고 나서 팔이 다시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통증이 도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압박붕대로 팔을 감고 생활하고 있고, 청소기를 자주 돌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제는 견딜만하다는 말이 나온다.

  나도 내 팔이 어떻게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무리가 가지 않게 덜 썼으니까, 팔은 쉴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번 것인지도 모른다. 10달 동안, 나는 이 아픈 팔과 씨름하면서 그 통증의 기원과 내가 팔을 쓰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통증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성찰의 도구였던 셈이다.

  대개의 만성적인 통증에는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통증을 통해 삶의 방식을 돌아보는 작업이 내게는 나름대로 유용했다. 여전히 팔의 통증은 남아 있다. 조금만 많이 걸으면 발도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내가 무리했구나, 쉬어야지. 통증은 그렇게 몸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이다. 그 신호를 잘 알아채고, 통증과 그럭저럭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체득하는 것. 그렇게 나는 통증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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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치(咽頭齒) 12

 
  "정말 이 결말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쓰기 수업의 마지막 강의 시간, 소설가 선생이 중기에게 그렇게 물었다. 안경을 벗어놓은 선생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더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건 어쩌면 실망했다는 표현일 수도 있겠군. 중기는 선생의 질문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최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끝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
  "인물들의 죽음에는 최소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죽음은 문자 그대로 삶을 끝내는 것이니까요. 물론 소설 속의 모든 설정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공의 현실이죠.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쉽게,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괜찮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작가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 인물들 앞에 놓인 삶에 대한 책임감 말입니다."
  "제가 구만과 경주의 삶을 쉽게, 아무렇게나 다루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네, 알겠어요."

  선생과 중기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송파구 주민 미자 씨가 끼어들었다.

  "오, 이건 뭐 인물들이 죽음을 향해 직진해 버리네요. 결말을 쥐어짜 내는 게 힘들었던 건지."

  중기는 얇은 입술로 이죽거리며 말하는 여자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참으로 밉상인 여편네야. 저 여자는 부모도 저런 인간일 테지. 생전 어디 가서 귀여움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핏줄이라는 것은 질기고도 정직한 것이다. 중기는 늙은 여자가 말할 때마다 도드라져 보이는 입가의 주름이 추하다고 느꼈다. 늙음과 악의, 무지가 겹친 여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 중기는 그저 싫었다.

  "경주가 노후 파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거잖아요. 아니, 그 소설 속의 강동구 아파트 모기지 신청만 해도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좀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뭐 강동구 아파트가 강남에 비하면 좀 떨어지기는 하죠. 좀 그런 게 아니라 한참이긴 하지만."
  "그 아파트에는 대출이 5천만 원 남았으니까요. 모기지 신청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멀었죠. 서울 아파트 자가로 사는 게 어디 쉬운가요?"
  "아니, 뭐 그래도 죽을 것까지야... 아무튼 이런 결말은 너무 우울해. 우울하잖아요. 즐거운 소설을 쓰기도 모자란 인생인데."

  중기는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송파구 여편네의 말마따나 구만과 경주를 죽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대충, 적당히, 그들이 처한 현실의 창을 닫고 자신은 그냥 나오면 되었다. 하지만 중기는 아내를 죽이고도 평온한 얼굴을 한 박 차장의 모습에서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의 미래를 보았다. 그들은 비탈진 언덕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든 미끄러질 준비가 되어있는, 그리고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구만은 다시는 치열한 생계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경주는 그런 남편을 끝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서있는 중산층이라는 얇은 얼음 강이 깨어질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몰락과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즐거운 소설이라... 중기는 송파구 주민 미자 씨가 말한 '즐거운 소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자신은 즐거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중기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해 마흔 살 생일날 아침의 결심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나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미래의 그 어떤 죽음의 날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소설이 몇 편 정도 있는 것은 꽤나 괜찮은 일 같았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만들어내는 고치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듯, 자신의 인생 그 어딘가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조각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결심으로 써낸 첫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중기는 경주가 죽음을 위해 준비한 협죽도 잎사귀들을 묘사할 때, 마치 그 잎들을 자신이 질겅질겅 씹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음반 구해왔어?"
  "그래, 여기."
 
  그날 오후, 중기는 동생을 보러 용인에 갔다. 동생이 부탁한 음반이 있었다. Bill Evans 트리오의 Waltz for Debby가 들어있는 음반이었다.

  "나중에 내 장례식에 이걸 틀어줘. 난 오래 못 살 것 같아."
  "인마, 그런 말 지껄일 거면 그거 나한테 도로 줘. 어떻게든 나을 생각을 해야지."
  "글쎄. 내 정신은 어디론가 멀리 가버려서 말이지. 아주 멀리. 다시 돌아올 수 없어."

  문수는 자신의 오른쪽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중기는 저런 말을 할 때의 동생은 진짜 멀쩡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이 아주 짧은 것이 문제였다. 중기는 문수가 죽고 나면 자신의 삶이 좀 덜 무거워질까를 생각했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오른쪽 어깨에, 정신병에 걸린 동생은 왼쪽 어깨에 있었다. 하나의 짐이 사라지면, 어쩌면 자신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것만 같았다. 

  '배달 앱이 오후 9시로 자동 종료되어 배송 일정 안내 문자 드립니다. 고객님의 물품은 새벽 2시까지 순차적으로 배송됩니다.'

  아직도 배송 일에 익숙해지지 못한 건가? 새로운 여자 배송 기사로 바뀐 택배사의 물품은 늘 늦어졌다. 자정쯤에 받아보던 것이 오늘은 새벽 2시로 늦어졌다. 그때까지 배송하고 나면, 언제 집에 들어가나? 중기는 처음에는 그 배송 기사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 오늘 오기로 한 택배는 참외였다. 초여름 날씨에 문밖에 두면 아무래도 참외가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기는 아무리 늦어도 그 택배를 받아서 들여놓기로 했다.

  현관문 앞을 쓱, 하고 택배 상자가 살짝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5분이었다. 조막만 한 못난이 참외가 올망졸망 박스에 담겨있었다. 참외를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고는 냉장고에 넣었다. 박스의 테이프를 제거하고 그걸 베란다의 분리수거 상자에 넣었다. 베란다 창문이 좀 많이 열려 있어서 닫으려는데, 바깥의 불빛이 뭔가 이상했다. 내다보니 길가 가로등의 전구가 수명을 다하기 직전이었다. 번쩍번쩍, 광기를 내뿜는 사람처럼 창백한 불빛이 중기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중기는 가로등이 번쩍이며 보여주는 뜨악한 풍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창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부엌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목이 좀 말랐다. 물을 마시는데, 입 안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중기는 입안에서 걸리는 것을 손바닥에다 뱉었다. 작은 치아 조각이었다. 급하게 화장실로 가서 거울로 입안을 살펴보았다. 왼쪽 어금니에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이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마치 화산 폭발이 끝난 분화구처럼, 중기의 어금니는 시커먼 공동(空洞)처럼 보였다. 중기는 그 공동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늙음과 불운과 가난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먹는 것이 귀찮아서 끊어버린 탈모약 때문에 정수리는 휑해졌고, 동생과 모친의 병증은 심해져 갈 뿐이었다. 월세 60만 원을 달라고 말하는 주인 영감은 내년에 70만 원을 달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중기는 구멍 난 어금니를 한번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아주 정교하게 난 작은 동그라미가 중기를 향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월요일에 일찍 치과에 가봐야지. 어떻게든 이 어금니를 살릴 방법이 있을 거야. 중기는 화장실의 불을 끄고 나오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인두치 완결(完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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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치(咽頭齒) 11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바지락 칼국수라는데, 갈 거예요?"

  월요일 오전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옆자리의 신 주무관이 중기에게 물었다.
 
  "아, 그거면 안 가는 게 낫겠네요. 전번에 해감이 덜 된 바지락 나와서 아주 고생했거든요."
  "그럼, 밖에서?"
  "시장 막국숫집 있잖아요. 거기서 그냥 먹을까 하구요."
  "그럼, 나도 같이."
  "그러죠, 뭐."

  점심시간까지는 15분 정도 남았지만, 구청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기는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식당에서 줄 서는 것이 싫다고 저렇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영 마뜩잖았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15분 일찍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직 사회의 관성이란 참으로도 무섭고도 기이한 것이다. 중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들고서 동료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막국숫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중기는 막국수집 옆의 순댓국집이 좀 나은가 해서 가게 안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그곳도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침 막국수집에 두 자리가 났고, 중기는 동료와 함께 앉을 수 있었다.

  "손님은 뭐로 하시게?"
  "막국수 둘."

  서빙을 하는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인지 조지아인지 아무튼 그쪽 나라 사람처럼 보였다. 덩치가 좀 있는 외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말은 그다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하네."

  신 주무관이 남자가 가고 난 뒤에 신기한 듯 말했다. 문득 중기는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빌라 출입구에서 젊은 동남아시아 남자를 만났다. 빌라의 수다쟁이라고 할 수 있는 영천댁의 말에 의하면 이사간 박 차장네 집에 살게된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이라고 했다. 잠깐 살다 간다는데, 모르지 뭐. 영천댁은 못마땅하다는 듯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했다. 주인 영감이 깔세로 얼마나 월세를 당겨서 받았는지 중기는 궁금해졌다. 분명 자신에게서 받는 월세보다 더 많은 돈을 불렀을 것이다.

  "안녕!"

  중기는 이제 겨우 스물을 좀 넘겼을 법한 베트남 청년의 인사말에 기가 찼다. 우리말을 잘 몰라서 저러는 건가? 모른다고 해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봐, '안녕'이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고 해야지."
  "알아. 그냥 친구 하고 싶어서."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의 청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활짝 웃으며 중기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저렇게 허물없이 구는 것이 저 청년의 생존 방식인지도 몰랐다.

  "난, 네 친구가 아냐. 앞으로도 아닐 거고. 그러니 말조심해."
  "그래, 알았어. 잘 가."

  중기의 싸늘한 말을 청년은 씨익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중기는 청년의 누렇게 때가 낀 흰색 티셔츠와 너덜거리는 운동화 밑창을 보고는 기겁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강서구의 그저그런 빌라가 갑자기 쪽방촌이 되어버린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돈에 환장한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 중기는 빌라의 주인 영감을 향해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방이 하루라도 비어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저런 놈들까지 살게 하다니.

  "이모님, 3번 테이블 막국수 둘 빨리요!"
  "좀 걸려. 기다리라고."

  서빙 보는 외국인이 주방과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3번 테이블의 중기는 하릴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가게의 구석진 곳 벽에 달린 TV에서는 뉴스 채널의 정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치 뉴스와 교착 상태에 빠진 이란과 미국의 종전 협상에 대한 뉴스가 짧게 이어졌다.

  "다음은 국내의 사건 사고 소식입니다. 식물인간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저희 취재 기자가 경찰청에 나가 있습니다. 민현수 기자, 자세한 소식 전해주시죠." 

  중기는 '식물인간'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에서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다. TV 화면 속에서는 검은색 야구 모자에 마스크를 쓴 중년의 남자가 막 경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네, 체포된 43세의 박 모 씨는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에게 독극물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망자 친족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검이 이루어졌고, 경찰은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긴급 체포했습니다. 자, 그럼 용의자의 인터뷰 내용을 직접 들어보시죠."

  중기는 남자의 성씨가 박씨라는 사실에 조금은 소름이 끼쳤다. 혹시 저 사람이 자신이 아는 그 박 차장이 아닐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가던 날, 그가 보여주었던 그 평온한 얼굴 표정과 웃음이 이상하게도 잊혀지지 않았다.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합니까?"
  "난 아내를 죽이지 않았어요. 죽여달라고 한 건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 것뿐입니다."
 
  중기는 늘어지면서 뭉개지는 박 차장의 말투가 TV에서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해자는 식물인간 상태였다고 들었는데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말을 했다는 겁니까?"
  "분명히 나는 아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 의식이 돌아왔겠지요."

  TV 화면 속의 살인 용의자, 그러니까 중기가 알고 있는 그 박 차장은 아주 차분하게 기자들과의 문답을 이어갔다. 중기는 점심이고 뭐고 정신이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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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치(咽頭齒) 10


  "음, 그러니까 이건 실패한 소설 같아요."

  중기는 문득 오늘 소설 수업 시간의 합평을 생각하고는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중기의 소설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나는 송파가 좋아요'를 쓴 송파구 주민, 미자 씨였다.

  "제 소설을 그렇게 읽으셨다니, 흥미롭네요. 어느 부분이 실패했다고 보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송파구 주민 미자 씨는 톤 업 썬크림으로 희게 번들거리는 얼굴에 비해 목은 때가 낀 거 마냥 시커멓게 보였다. 거기에다 60대에 접어든 여자의 목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중기는 그 늙은 여자의 글만 아니라 외모까지도 아주 싫었다. 더더군다나 말도 안 되는 비평을 자신감 있게 늘어놓는 그 뻔뻔함은 더 싫었다.

  "자, 봐봐요. 구만이나 경주나 그냥 가만히 있잖아요. 모름지기 소설의 주인공은 움직여야 한다구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쯤 뭘 하러 돌아다닐 거냔 말이죠."

  얇고 윤기 없는 입술을 움직이며 여자는 중기의 소설을 마구 깎아내리고 있었다. 아니, 아줌마 소설에서 집 나가버린 개연성은 어쩌구요. 댁이 쓰는 게 소설이야? 그냥 돈 있고 시간 남아도는 강남 아줌마의 우스꽝스러운 수필이지. 하지만 중기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에 어제저녁에 모기에게 물린 왼쪽 팔꿈치를 벅벅 긁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 결말 부분은 생각해 두었습니까?"

  소설가 선생이 중기의 프린트물을 책상에 천천히 내려놓으며, 중기에게 그렇게 물었다. 중기는 그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그래, 결말을 쓰기는 해야지. 그런데 그 결말은 아직 중기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글쎄요, 그게 아직..."
  "우선은 결말을 먼저 생각하고 써보세요. 그러면 지금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보일 겁니다."

  기성 작가의 눈이 다르긴 다르구나. 중기는 이제 더는 자신의 소설을 써내지 못하는 작가 선생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중기에게는 저 선생의 소설집이 있었다. 선생이 처음으로 써낸 장편소설이었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던 단편소설집에 비해, 선생의 장편소설은 솔직히 별로였다. 그냥 별로가 아니라, 아주 형편없었다. 이야기는 늘어지고, 별다른 주제 의식도 없었다. 그저 분량 채우기에 급급한 소설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중기는 선생의 수업을 들으려고 그 소설책을 샀다. 그리고 선생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그러고는 그 소설책을 책장에 꽂아놓으며 다짐했다. 나는 저런 소설은 절대로 쓰지 말아야지. 저런 소설을 썼기 때문에 선생은 작가로서 실패했고 잊혀졌다. 그리고 이제는 문화센터 강의와 이런저런 강연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6월이면 이 강의도 끝나네요. 지금까지 써온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다들 궁리들 하세요."

  소설에는 끝이 있다. 중기는 이 소설을 끝낼 수 있을지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호했다. 중년 남자에게 닥친 생의 위기에 매혹될 독자가 과연 있을까? 독자는 커녕 이런 소설을 공모전에 냈을 때, 이걸 끝까지 읽어줄 작가나 평론가도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동시대성이 중요한 거겠죠.  20대 젊은 여성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내면 됩니다. 그런 게 어떻게든 팔리니까요. 그걸 못해서 나도 이 모양이지만."
  "선생님, 그런데 지금도 소설을 쓰고 계십니까?"
  "그럼요. 매일 밤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나는 밤에 글을 쓰는 게 편해서. 물론 뭔가를 써내는 날은 드뭅니다만."

  중기가 공모전에 낼 소설을 고민한다는 말에 소설가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중기는 강의실 문을 나서는 선생의 굽은 등을 바라보았다. 중기는 선생이 왜 아직도 소설을 쓰는지 궁금했다. 선생이 소설을 완성한다고 해도 선생의 책을 내줄 출판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의 글이 빛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그럼에도 선생은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었다. 설마 선생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 터였다. 어쩌면 저런 것이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르겠군. 중기는 혼자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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