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V에서 재방해준 옛날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1996)'가 끝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엊그제 보니 그 드라마를 또 다시 틀어주고 있다. 이렇게 한 해에 같은 드라마를 두 번이나 방영해주는 경우는 드문데, 내가 편성 담당자가 아니니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편수가 적은 24부작 '청춘의 덫(1999)'이 끝난 후, 마땅한 대타 드라마를 찾지 못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옛날 드라마들을 도대체 왜 방영하느냐, 이걸 누가 보느냐, 그와 같은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러한 옛날 드라마들은 그 드라마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그 드라마에 나온 인물들의 이야기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중장년 세대들에게는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옛날 드라마들만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도 있는 것이다. KTV 같은 경우, '전원일기'를 계속 방영해주고 있는데, 이 또한 인기가 많다. KTV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오래된 드라마 방영 요청에 대한 글, 추억의 드라마를 보게 되어 좋고 고맙다는 글, 왜 결방이 되었나 항의하는 글까지, 옛날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도 나름 대단함을 느낀다.


  '바람은 불어도'는 문영남 작가의 소설 '황가네 식구들'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다. 문영남 작가에게 큰 인기를 가져다준 실질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92년에 MBC에서 방영된 '분노의 왕국'도 꽤나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배우 변영훈의 열연이 돋보이는 드라마였다. 아무튼 문영남은 '바람은 불어도'로 본격적으로 드라마 작가로 나설 수 있었고, 역시 이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손현주는 문영남 작가가 평생의 은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일일 드라마로서는 무려 245부작, 거의 1년에 가깝게 '엿가락' 늘이듯 드라마가 방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어떠한가? 인쇄소 공장장인 황정운(김무생 분)과 그의 철없는 동생 황정택(한진희 분), 그들의 어머니(나문희 역), 황정운의 세 아들과 그들의 가족을 둘러싼 바람 잘 날 없는 황씨 일가의 일상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그야말로 3대가 모여 살면서 복작거리는, 전형적인 대가족 홈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도 이 드라마를 젊은 세대가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은 섣부른 추측이다. 요새 젊은 세대들이 TV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진부하다고 외면하는 것처럼, 당시의 젊은 세대에게도 당시 드라마들, 특히 일일 드라마에서 내세우는 가족, 가부장주의, 이런 것들의 가치관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리가 없다. 여전히 일일 드라마를 비롯해 주말 드라마를 보는 세대는 중장년층이었고, 파격적인 설정은 보기 어려웠다.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 설정은 당시에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동시대에 방영되었던 MBC의 '전원일기'도 시대적인 공감성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가족의 모든 것을 묵묵히 자신의 짐으로 짊어진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와는 다른 삶의 선택들을 하는 여러 자식들, 그들의 배우자들에게 부여된 며느리의 의무, 여전히 권위를 가진 조부모 세대, 이런 전형적인 틀에 박힌 일일 드라마의 공식을 '바람은 불어도'는 답습한다. 김무생의 부인 역으로 나오는 배우 김윤경은 성깔있는 시어머니 나문희를 아주 극진히 모시고 사는데, 그 자신도 큰 며느리(박성미 분)에게는 꽤나 고루하고 까탈스러운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 박성미는 집안의 대소사를 잡음없이 해내는 큰 며느리이면서, 또 인자한 맏동서이기도 하다. 박성미야 말로 '낀 세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가 없는 위치에 있다. 


  그에 비하면 윤유선이 맡은 둘째 며느리는 삶의 방식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롭다. 우선 분가를 해서 살고 있고, 자신의 어머니도 모시고 살고 있다. 다만 힘든 점이 있다면 남편(정성모 분)이 지나친 짠돌이인데다, 자신을 항상 어린애 대하듯 가르치려 하고 나무랄 때가 있어서 속이 터지곤 한다. 이 드라마에서 윤유선은 좀 철은 없지만, 따뜻하고 감정표현에는 솔직한 둘째 며느리의 모습인데, 뭔가 '전원일기'의 김회장 댁 둘째 며느리 수남 엄마(박순천 분)의 모습과 겹치는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이 드라마는 '전원일기'의 일일 드라마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시 KBS에서는 이 드라마를 홍보하면서 김무생의 셋째 아들 내외로 나온 배우 최수종과 유호정을 무척 강조했는데, 이것은 젊은 세대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람은 불어도'에서 최수종이 보여주는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은 신세대와는 동떨어져 있다. 그도 여전히 가부장제의 수혜자로서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부인도 잘 따라주길 바란다.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드물다. 오직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 나문희만이 그러할 뿐이다. 한진희의 부인 역으로 나오는 윤미라는 그런 면에서 좀 독특한 캐릭터이기는 하다. 늦은 나이에 한진희와 인연을 맺게 되는 윤미라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은 대가족과 가부장제에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철 없고, 경우가 없다. 그래서 큰 동서 김윤경이 보기에는 고쳐야할 '버르장머리'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3대가 바람 잘 날 없는 이 집안이 그래도 굴러가는 이유는 김무생 덕분이다. 그는 노모에는 다할 수 없이 효도하고, 가장으로서 충실하며, 아버지로서 자식들의 어려움을 보살피려고 최선을 다한다. 인쇄소 공장장으로서도 그가 직원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유능한 직장 상사 보다는 자애로운 '아버지'에 가깝다. 말하자면 '따뜻한 리더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그의 방식은 새로 부임한 사장이 보기에 구시대적인 비효율성과 비합리성의 총합일 뿐이다. 김무생이 오랫동안 일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알아봐주던 전임 사장과는 달리 그 아들은 결국 해고 통보로 '구세대'인 김무생을 '퇴출'시킨다.

 

  내가 보기에 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성이 있었던 부분은 바로 그 대목이었다. '바람은 불어도'가 방영되던 그 시기는 인터넷 혁명으로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던 때였다. 기성 세대에게 그것은 새로운 변혁의 물결이었고, 거기에 적응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쇄소'라는 공간은 사회의 축소판이었고, 김무생은 그러한 기성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그가 겪은 일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닥친 현실이었다. 구세대의 지혜, 경험은 더이상 존중받지 못했고, 새로운 세대들이 배운 지식과 신문물이 커다란 파고처럼 들이닥치고 있었다.


  결국 김무생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가출'을 감행한다. 재방된 이 드라마에서 내가 다시 눈여겨 본 회차도 이 부분이었다. 여관방에서 쓸쓸히 혼자 앉아있는 김무생의 모습은 그 시대 어떤 가장의 슬픈 모습이기도 했다. 드라마는 다시 김무생이 공장장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가장들은 그렇질 못했고, 이듬해인 1997년 말에 닥친 IMF 구제금융 사태는 더 많은 이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바람은 불어도'는 그해 한국방송대상 드라마 부문, 작가상(문영남), 여자 탤런트상(나문희)을 받으며, 명실공히 최고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은 시청률에서도 알 수 있는데, 역대 최고 시청률인 '보고 또 보고(1998)'에 이어 2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평균적으로 40~50%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무리한 연장 편성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시점에서 이 드라마를 보면, 마지막 대가족 동화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시대의 시청자들도 대가족을 그려낸 이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모르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시대의 유물을 TV에서 바라보는 것과도 같았다. 가족은 점점 더 작은 단위로 해체되어 가고 있었고, 이듬해 겪게될 경제 위기를 통과하면서 드라마 속에서 이런 대가족을 보는 일은 어렵게 되었다. 물론 김수현은 꿋꿋하게 대가족 드라마를 써냈지만, 그 드라마들은 현실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설교를 이상화한 극본이었을 뿐이다. 김수현의 대가족 드라마들은 '부모 세대를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는 근엄한 훈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의 훈계를 사람들이 더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시점에서 김수현은 새로운 드라마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언급하고 싶은 중요한 연기자로는 배우 김지영이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따뜻한 할머니 역을 도맡아 했던 김지영은 중년의 나이부터 할머니 배역을 해냈다. '바람은 불어도'에서 둘째 며느리 윤유선의 친정 엄마로 나오는데, 사람 좋고 모진 구석 없이 따뜻한 품성을 잘 보여주는 연기를 한다. 이 드라마에서 허연 가발쓰고 연기한 나문희 보다 실제 나이는 좀 더 많았다. 나문희에게는 이 드라마 이후 보다 많은 할머니 역이 주어진다. 한진희는 다소 코믹한 인물 설정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다지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한진희도 영 이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다시는 그런 희극적인 배역은 하지 않겠다고 인터뷰 하기도 했다.

 

  지나간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일은 때론 먼지 쌓인 책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과도 같다. 책장을 열어보면서 내가 그 당시에 느꼈던 느낌, 생각들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놓친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먼지를 털고 보면 그런 새로운 발견의 경험이 열린다. 오래되었다고, 오늘날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쉽게 폄하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3대가 함께 정겹게 어울려 사는 대가족들이 있던 그 시대는 이제 멀리 사라져 버렸다. 다만 그저 이렇게 드라마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이 마지막 대가족 동화는 KTV에서 평일 저녁 8시 30분부터 2회씩 방영되고 있다. 지나간 시대의 정서, 추억, 그리고 중견 연기자들의 그 시절 연기들을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기억해둘 만하다.

 

 

*사진 출처: 경향신문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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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밖에 나갔다 오는 길에 보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들의 뒤편에 달력이 하나씩 묶어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근하신년()이라는 반투명의 흰색 비닐 포장이 된 새해 달력을 얻는 것이 오늘의 주요한 일과였음을 짐작케 한다. 대체적으로 많은 곳에서 12월 1일에 달력을 나누어 준다.


  최근 몇 년 동안 달력 얻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실감했다. 주거래 은행의 벽걸이 달력은 3개월이 한 장에 인쇄된, 아주 실용적인 달력이어서 오랫동안 써왔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더이상 벽걸이 달력은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난감했었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벽걸이 달력은 비용 때문인지 만드는 곳이 점점 줄어들었고, 탁상 달력들로 대체되고 있었다. 작년에는 그나마 우체국에서 얻은 벽걸이 달력이 참 좋았었다. 지역 우체국 직원들이 찍은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이 달마다 인쇄된 달력이었다.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달라지는 계절의 풍광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내년도 우체국 벽걸이 달력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내년 달력은 탁상용으로만 배부되고 있었다. 벽걸이 달력은 이제 구하기가 정말 어렵게 되었다. 얼마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이럴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그걸 느끼게 된 것은 몇 년 전부터 변하기 시작한 달력의 재질 때문이었다. 부들부들하고 약간의 두께감이 느껴지던 재질이 얇아지고, 다소 거친 질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달력의 단가를 높이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나 사진 작품 대신에 그저 그런 그래픽 디자인, 일반인 대상의 공모전에서 뽑은 그림 같은 것들이 실렸다. 예전의 화려하고 멋진 그림과 사진이 있었던 달력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뭐랄까, 달력의 몰락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는 달력은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라 구매하는 것으로 바뀌는 추세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각양각색의 독특한 디자인의 달력들이 연말이면 시장에 나오고 있다. 작년에 내가 받은 달력 가운데에는 달력에 자신이 원하는 필체로 직접 날짜를 기입할 수 있는 '창작' 달력도 있었다. 그걸 일일이 써넣는 것이 귀찮아서 누군가에게 주고 말았다. 나에게는 정말 별로인 달력이었다.


  예전에는 달력 얻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달력 인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말이면 사람들은 이리저리해서 달력을 네다섯개 얻는 일이 보통이었다. 경기가 호황이었던 시절에는 은행들도 실적이 좋았을 터이니 달력 인심도 아주 넉넉했다. 그러나 이제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은행 달력 얻는 것은 VIP 고객에게나 쉬운 일이다. 보통의 예금 잔고를 가진 이에게 은행이 배부할 달력은 없다. 없다면서 나에게는 주지 않는 달력을 바로 옆 고객에게 건네는 것을 겪어 보면, 자본주의의 그 쓰디쓴 뒷맛이 어떤가를 잘 알게 된다.


  달력이 흔하던 시절에는 명절 때 전을 부치는 채반에 흰색의 달력 종이들을 쫘악 펼쳐놓고, 그 위에 각양각색의 전들을 놓았다. 달력 종이들은 기름을 잘 먹었으므로 어머니들의 명절 필수용품이었다. 나중에는 그 종이들에 형광물질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외면당했지만, 그런 시절도 있었다. 요새처럼 요리에 쓰는 기름종이들이 잘 나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일력()'을 보는 것도 흔했다. 매일 한 장씩 뜯게 되어있는 그 달력을 걸어놓은 집과 상점들도 많았다. 일력에는 열두 간지()에 따른 동물들이 손톱만큼 작게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말(午, 십이지의 일곱째)의 날에 태어났으므로, '말'자를 넣어 이름을 지으려 했다고 가끔 지나가는 말로 웃곤 하셨다. 물론 말자, 말순이란 이름의 '말'은 '끝()'이라는 뜻이다. 아들을 낳길 간절히 바라던 시대에 원하던 아들이 아닌 딸이 태어나면 그런 이름을 짓던 시대도 있었다. 드라마 '아들과 딸(1992)'에 나오는 등장 인물인 막내딸 '종말이'의 이름도 역시 그런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일력은 최근에 다시 유행을 타면서 새로운 세대에게도 익숙한 물건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낼 때, 그 일력들이 주르륵 뜯겨나가는 클리셰가 많이 쓰였었다. 만약에 요새 그런 걸 쓰는 감독이 있다면, 관객들은 감독의 역량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시대를 거쳐온 이들에게는 그런 클리셰를 보는 것이 정겹고 반가울지도 모른다. 


  지금의 사람들에게 벽걸이 달력 보다는 책상 달력이 더 유용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책상 달력을 얻는 것이 더 수월해진 것이 꽤 되었다. 그런데 책상 달력도 받아보면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가 참 어렵다. 날짜의 크기가 너무 작으면 보기가 불편하고, 또 나에게는 필요한 음력(曆)이 없는 것들도 많다. 어떤 달력에는 '손 없는 날(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이 땅에 없는 날, 이사나 중요한 일을 할 때 이 날을 선택한다)'이 적혀 있어서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달력을 참 좋아했었다. 또한 메모할 공간이 너무 작아서도 안되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조건들에 부합한 책상 달력을 2년 전에 썼었다. 어느 출판사에서 만든 달력이었다.


  작년에 그 책상 달력을 구하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걸 건네준 이에게 물어 보니, 출판사의 사장이 바뀌면서 달력을 없애버렸다고 했다. 새로운 사장은 출판사 창업주의 아들로 유학을 다녀온 이였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공들여서 내놓았던 달력을 쓸모없는 낭비로 여긴 모양이었다. 그가 해외에서 배운 학문이 마케팅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적어도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만드는 책과 함께 달력의 의미도 아들인 그 보다는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아직 내년도 벽걸이 달력을 구하지 못했다. 그걸 구할 다른 곳을 알아 보는 대신에, 그냥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에 맞추어 사는 수 밖에 없지 하면서도, 오래전 연말이면 서로 달력을 넉넉히 나누어 주고 받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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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지인의 선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젊은 시절에 점을 본 적이 있는데, 마흔 넘어서 크게 잘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했다. 그 말은 좋은 예언이었지만, 정작 그 선배는 그 말을 믿고 뭔가를 하지 않고 지낸다고 했다. 인생에 큰 한 방이 터질 거라는 그 말에 의지하며 마흔을 훌쩍 넘기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이 참 답답하다고 했다. 그 선배라는 이에게 결국 '한 방'이 터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것도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Searching for Sugar Man(2012)'을 보고 나서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젊은 시절에 냈던 음반 두 장이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 무명가수가 이 다큐로 인해 칠순이 다된 나이에 새로운 음악 인생을 열어가게 된다. 그야말로 '인생 한 방'이란 말의 참뜻을 보여준다. 다큐의 주인공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다. 그의 노래는 인종차별이 횡행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저항의 노래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에서는 음반 프로듀서와 그 가족이 단지 6장만을 구매했다는 로드리게즈의 음반은 남아공에서 수백만 장이 팔렸다. 그렇게 그는 남아공 민주화 운동의 음악적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로드리게즈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그저 매일매일의 생계를 이어가려고 온갖 일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대부분 몸을 쓰는 일, 우리가 막노동이라고 하는 일이었다. 그런 삶을 오랫동안 이어가던 그에게 누군가 찾아와서, 남아공에서 당신과 당신의 노래는 엄청난 인기가 있으니 와서 공연을 해달라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결국 현실이 된다.


  사실 이 다큐에서처럼 로드리게즈에게 해외공연은 남아공이 처음은 아니었다. 1979년과 1981년에 호주에서 이미 성공적인 공연의 경험이 있었지만, 다큐에서 그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다큐는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영웅 만들기'에 더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남아공에서 열린 공연 장면에서 의외로 로드리게즈가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과거의 그런 공연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는 막노동꾼으로 사는 동안 음악 경력이 단절되기는 했어도, 어느 날 갑자기 꿈같은 콘서트장에 불려나온 초짜배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무튼 이 다큐는 로드리게즈의 인생 역전을 가져오게 만든 소중한 선물과도 같았을 것이다. 노년에 접어든 나이이기는 했어도, 결국 그의 인생에 '한 방'이 크게 터졌고, 그는 여러곳에서 초청받는 유명 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뮤지션(musician)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위키피디아를 찾아 보니 2018년까지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아공에서 수백만 장이 팔렸다는 음반 수익금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로드리게즈와 계약한 서섹스 레코드사의 클래런스 아반트는 이에 대해 묻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어이, 이봐. 대체 로드리게즈의 행방이 궁금한 거야, 아니면 그 음반 수익금이 어디로 샜나가 궁금한 거야? 난 그 일 그만 둔 지가 꽤 되었다고. 이제와서 그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아반트의 면상을 보면, 정말 노련하고 영악한 음악 장사꾼이 어떤지 잘 알 수 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인기 가수들을 길러내어서, 일명 'The Black Godfather'라고 불리우는 인물이다. 나중에 이 다큐의 인기로 로드리게즈의 음반이 재발매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그 수익금을 놓고 법적 다툼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제대로 정산되지는 못한 듯하다. 어쨌든 로드리게즈는 지난 시절에는 막노동으로 연명을 했을지언정, 이 다큐가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나서는 음반과 공연 수입이 막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화려하게 살기 보다는 이전의 소박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런 것을 보면 그가 나름의 삶의 철학을 가진 인물임을 짐작케 한다.

 

  이렇게 무명가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한 감독 말릭 벤젤룰의 그 뒤의 이야기는 참 슬프다. 이 다큐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를 휩쓸었지만, 그는 2014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서른 여섯,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이걸 보고 나니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 '인생 한 방'이란 것이 저렇게 있기는 있는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꿈꾸지만, 그건 복권 당첨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로드리게즈의 경우에는 그가 젊은 시절에 만들었던 음반 2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만들었던 노래를 알아주는 먼 나라의 많은 이들이 노래의 생명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이 세상의 누가 재능을 알아봐 줄 것이며 인정을 해주겠는가. 언젠가 쓸 평론, 언젠가 쓸 시나리오, 언젠가 쓸 소설... '언젠가'라는 말이 있는 한,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지금, 여기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작하는 이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언젠가'라는 무시무시한 미래 부사이다. 물론, 뭔가를 지금 쓰고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대박'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인생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인생 한 방'의 행운을 가져다 주는 여신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때로 그렇게 찾아온 행운이 어느 순간에는 불행이 되기도 하는 예를 심심치 않게 보기도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무작정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처럼, 우리 모두는 '대박'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Searching for Sugar Man'의 관객들은 어쩌면 주인공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그 대박 행운의 결말 보다는, 그가 젊은 시절에 낸 음반 2장의 실패 이후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묵묵히 살아낸 힘든 노동의 시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드리게즈는 어쨌든 자신만의 삶을 성실히 살아냈다. 비록 그가 원하던 음악의 삶은 아니었지만, 그는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나에게는 그 점이 노년의 그에게 찾아온 행운 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로드리게즈는 엄청난 행운 앞에서도 담담하고 고요하게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 한 방'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터지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는 그러하다. 다만,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그리고 매일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조금씩이라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가치가 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아주 평범한 하루가 선물이며 신비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이 다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진실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elegraph.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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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영화 보기에 대한 '기벽()'이 하나 있다. 남들 다 보는 영화는 그냥 안 보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오래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보았던 영화들을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본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천장지구(1990)' 같은 영화들. 어제 EBS 세계의 명화에서 보여준 '가을의 전설(1994)'도 그랬다. 이 영화의 음악은 라디오에서 그렇게나 많이 들었어도,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제 TV 틀다가 나오길래 보았다.


  진짜 음악이 정말 대단했다. 제임스 호너가 맡은 이 영화의 음악은 그냥 영화를 압도해 버린다. 그것이 영화에 꼭 좋기만 한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 자체는 그저 그랬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도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오몬드의 젊은 시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브래드 피트를 처음 영화에서 본 것은 '흐르는 강물처럼(1992)'에서 였는데, 로버트 레드포드의 젊은 시절을 빼다박은 모습이어서 놀랐다. '가을의 전설'에서의 브래드 피트의 얼굴은 그로부터 겨우 2년 지났을 뿐인데도, 뭔가 '거칠고 삭은' 느낌이 났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에서 그의 얼굴과 함께 연기에서 느껴지는 '폭력성' 때문에 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성 관객들이 그렇게 잊지 못하는 이 영화의 트리스탄 역에 대한 느낌과는 좀 달랐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와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안젤리나 졸리는 최대한 언론에 언급을 자제했지만, 브래드 피트가 이혼의 책임을 졸리에게 돌리는 발언을 연이어 하자 반격에 나섰다. 피트가 양아들 매덕스에게 폭력을 휘두른 일이며,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은 문제도 제기했다. 피트는 알콜 중독의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을의 전설'의 트리스탄에게서 받았던 느낌은 그런 실제적 사실과 어느 정도 중첩되는 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배우의 얼굴, 그리고 그 연기는 언제나 현실과 전혀 다르게 가공된 것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역시 최근에 본 '유주얼 서스펙트(1995)'의 캐빈 스페이시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스릴러 영화는 캐빈 스페이시를 일약 유명 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가브리엘 번을 비롯해 베니시오 델 토로의 젊은 날의 얼굴도 볼 수 있다. 나는 특히 캐빈 스페이시의 연기를 아주 주의깊게 보았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매우 교활하고 사악한 인물을 연기한다. 2017년, 배우 앤서니 랩이 자신이 미성년자일 때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스페이시의 배우 경력은 마감되었다. 그 외에도 다른 여러 건의 폭로가 이어졌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이런 일을 볼 수 있다. 미투 운동으로 여성 성악가들에게 저지른 성추행이 드러난 플라시도 도밍고도 평생의 빛나는 경력을 뒤로 하고 혹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오페라 팬들에게는 늘 최고의 선택으로 여겨지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제임스 레바인은 미성년자 성범죄가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그의 전생애에 걸친 음악 경력 자체가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레바인의 경우는 그가 지휘한 오페라들이 당대 최고의 성악가들과 했던 작업이라는 점이 오페라 애호가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가 지휘했던 오페라가 음반이나 DVD로 더이상 나오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유주얼 서스펙트'로 돌아간다. 이 영화에서 버벌 킨트가 감춘 악인의 얼굴은 실제로 스페이시가 현실에서 저지른 추악한 범죄들(그는 놀랍게도 모든 처벌에서 벗어났다)을 떠올리며 보면 더 소름이 끼친다. 심지어 캐빈 스페이시는 이 영화 촬영 당시에도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같이 출연한 가브리엘 번이 증언했다(2017년 선데이 타임즈 인터뷰 참조). 당시에 영화 촬영이 이틀 동안 중단된 일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스페이시가 어린 배우들을 상대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몇 년 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직 안본 '아메리칸 뷰티(1999)'를 언제쯤 보게 되기는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영화의 주연인 스페이시의 면상을 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괴로울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어떤 배우들은 그 젊은 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해리슨 포드가 그렇다. 다음주 EBS 세계의 명화는 '위트니스(Witness, 1985)'를 방영한다. 혹시 이 영화를 안본 이들이라면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피터 위어 감독에 주연 배우로는 해리슨 포드, 켈리 맥길리스가 나온다. 사실 대단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화 속 해리슨 포드의 젊은 날 얼굴이 참 아름답다. 포드는 액션을 주로 한 영화들이 유명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감정 연기도 섬세하게 잘 해내는 배우라는 것을 입증한다. 상대 여배우인 켈리 맥길리스도 빛나는 미모가 돋보인다. 누군가 쓴 이 영화의 리뷰 댓글을 읽다가 웃은 적이 있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아미시(Amish) 공동체의 경건한 삶을 살던 엄마는 이듬해 아들을 버리고 톰 크루즈에게 가버리는데...' 


  1986년에 개봉한 영화 '탑건'에서 켈리 맥길리스는 미모의 비행 교관을 맡았다. 댓글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어제 밤늦게 '가을의 전설'을 보고 나서 KTV를 돌려 보니, 오래된 한국 영화를 하고 있다. 대갓집 담벼락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맹진사댁 경사'인가 보네 했다. 그러자 화면 속에서는 배우 구봉서가 나오고, 왼쪽 상단에 '맹진사댁 경사' 타이틀이 떴다. 나는 EBS의 '한국 영화 걸작선'에 나왔던 오래전 흑백, 컬러 영화들은 거의 다 봤다. 간혹 못본 영화들을 KTV에서 볼 때가 있는데, 그건 그동안 영상자료원에서 새롭게 발굴한 영화나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영화들이다. 그렇게 만나는 영화들은 반갑다. 누군가는 그 구닥다리 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단지 영화 공부 때문에 그 영화들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 영화들은 정말로 재미있다. 그 지직대는 오래된 화면 속의 영화들에는 그 시대의 사람들, 그들의 생각이 들어 있고, 그것을 살펴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돌아본다.


  내 영화 공부의 8할은 EBS 영화들에 빚진 것이다. 초창기 EBS에서 보여준 '세계의 명화'들은 정말로 대단했다.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좋은 영화들을 방영해 주었다. 주로 영화 교과서에나 볼 수 있는 흑백 영화들이 많았다. 내 생각에 오래전 그 영화들을 직접 선정한 담당자는 진정한 '영화광'이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담당자에게 깊은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 영화들 때문에 나는 영화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EBS에서 보여주는 영화들은 무척 평범하다. 마치 별 특색없는 옛날 비디오 가게 같다. 그 점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제는 그 오래된 비디오 가게 같은 EBS 세계의 명화에서 '천장지구'도 보고 '가을의 전설'도 본다. 남들 다 본 영화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보는 것도 생각보다 꽤 괜찮다. 어쩌면 그 배우의 연기와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지도 모른다. 세월 속에서 변해가는 배우들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살아온 시간들도 돌아본다. 영화는 그렇게 그것을 보는 이의 삶과 함께 흐르고 있다.



*사진 출처: commonsensemedia.org (영화 'Witness'의 해리슨 포드와 켈리 맥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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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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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훈은 이 책의 '꼰대는 말한다'에서 스스로를 '꼰대'로 칭한다. 그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의 결혼식 주례사를 들은 젊은 하객들이 했던 불평 때문이다. 이른바 '꼰대의 주례사'가 되어 버린 자신의 말들을 돌아보는 김훈의 자기반성은 정말 포복절도할 정도로 유머러스하다. '신혼부부는 집밥을 꼭 해먹어야 한다'든가, '양가 부모는 공평하게 잘 찾아뵈어야 한다'든지 하는 말들은 정말 하객들이 '꼰대' 소리 나오는 게 당연하겠구나 싶다.


  '꼰대'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은 무언가 시대착오적인 모든 것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이 단어를 들으면, 지금 시대의 세대간 감정과 생각의 골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새삼 느끼곤 한다. 어쨌든 이 꼰대 노작가의 책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일산에 거주하는 작가가 호수공원을 늘 다니며 느꼈던 소회 같은 것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들은 그나마 읽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자신이 거쳐온 시대를 회고할 때는 나 또한 거리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대와 세대를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책에는 그의 대표작 소설 '칼의 노래'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덧붙이는 글들도 있고, 그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보여주는 생활 사회사적인 글도 있다. 그러나 역시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정서와 생각들을 절반 정도, 많이 잡아 보아야 60% 정도나 이해한 것 같다.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문득 이 책의 출판사 마케팅 팀에서 구매 독자 연령을 어느 정도로 잡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아래 세대인 내가 이해하는 정도가 이러한데, 젊은 세대들이 이 책을 구매했다 하더라도 그 정서를 공감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판형과 활자는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 40대 이후의 세대에게 친절하지 않다. 짜증스럽게도 작다. 이 책을 그나마 잘 이해할 수 있는 세대를 위한 배려가 없다. 한참 동안 이 책의 활자를 보고 나서 피로가 몰려왔다. 아마 마케팅 팀에서 이런 걸 결정한 사람은 '꼰대'의 나이에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서글퍼졌다. 이 꼰대 노작가는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며, 나는 그 글을 언제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작은 활자를 보느라 피곤해진 눈을 부비며, 내가 젊은 시절에 그토록 많은 책을 읽어두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늙는다는 것은 이토록 귀찮고 괴로운 일이다.


  이 책을 읽고 '꼰대'가 무시나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소통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칠순에 접어든 그의 세대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고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꼰대'들의 생각과 행동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면, 역으로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기성 세대에게는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

 

  EBS '클래스 e' 강의를 보면서 내가 받은 약간의 '문화 충격'이 있었다. 젊은 강연자들 대부분이 시작과 끝에 인사를 안한다. 말로는 인사를 하는데,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기획의 세계'를 강연한 최장순 씨만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는데, 그건 그가 만나는 대부분의 이들이 '고객'이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인사를 잘 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는 이들은 TV 시청자들을 학생으로 생각하는지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지 않는다. 인사를 제대로 하는 강연자는 '꼰대'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었다. 그들은 기성 세대로 '인사'의 예의를 차릴 줄 알았다.


  노작가의 글은 그가 스스로를 지칭하듯 '꼰대'스럽지만은 않다. 거기에는 그가 살아온 삶과 시대, 사람과 정신이 들어있다.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 조차도 끌어안을 수 있다면 우리 시대를 가르고 있는 세대간 갈등은 다채로운 사회의 바탕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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