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 시기 소련의 흔들리는 풍경,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Трактир на Пятницкой, The Tavern on Pyatnitskaya, 1978)


  10년 동안 경찰로 일했던 그는 서른 살에 퇴직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리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구 소련의 추리 소설 작가 니콜라이 레오노프 (Nikolai Leonov)가 1977년에 출간한 소설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은 이듬해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Aleksandr Faintsimmer 감독의 이 독특한 탐정물은 1978년의 흥행작 가운데 하나였고, 5400만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련의 1920년대를 배경으로 복고적 세트, 다양한 이력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를 비롯해 차르 시대의 전직 관료와 귀족, 갱단과 거리의 소매치기가 나온다. 영화에서는 뭔가 느슨하면서도 혼란과 불안이 뒤엉킨 시대적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레이(Grey)'란 별명으로 불리는 갱단의 두목은 연이은 강도와 살인을 저지르며 모스크바 범죄수사국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수사국 신입 경관 파닌은 정보 수집을 위해 갱단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에 웨이터로 잠입한다. 한편, 그레이는 강도 현장에서 경찰과 맞닥뜨리자 조직에 첩자가 있다고 의심한다. '프랑스인'으로 불리는 갱단의 조력자, '집시'라는 별명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부하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레이는 소매치기 '파슈카 아메리카'에게 정보력을 동원해 첩자 색출에 협력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던 중에 신분이 드러날 위기에 처한 파닌을 구하려다 퇴직 경관이 목숨을 잃는다. 마침내 수사국은 갱단을 일망타진할 마지막 작전을 펼치는데...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고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그러나 볼셰비키 정권은 혁명에 저항하는 세력들과 치열한 적백 내전을 치룬다. 내전은 곧 진압되었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했다. 소련의 경제는 그야말로 파탄 상태였다. 레닌은 급격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유예하는 결정을 내린다. 1921년, 신경제 정책(New Economic Policy, NEP)이 시행된다. NEP는 부분적으로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외국 자본의 유치를 비롯해 자본주의 경제 정책을 도입했다. 그 결과 소련의 경제는 놀랄 정도로 회복된다. 농업을 비롯해 상업이 크게 성장했고,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이른바 'NEPmen'이라는 신흥 계층까지 생길 정도였다.

  영화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은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레이의 갱단은 상점을 비롯해 부유한 이들의 저택을 턴다. 갱단이 훔친 값비싼 보석과 골동품들은 'NEPmen'의 소유였다. 영화 속에서 아주 흥미있는 장면이 있다. 술집에서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이들이 질펀한 술자리를 갖는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술집의 늙은 기타 연주자에게 연주를 하라며 돈을 내던진다. 돈 있는 자들이 득세하는 시절, 그런 모욕을 받는 그레민은 차르 시대의 귀족 출신이었다. 곧 갱단의 일원인 '집시'가 나서서 모욕을 되갚아 준다. '집시'라고 불리는 이 남자의 배경도 독특하다. 그는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으로 혁명에 찬동하지 않는 아나키스트처럼 보인다. 범죄 행각으로 사회 체제에 저항하고 그것을 무너뜨리고 싶어한다.

  'NEP' 시기의 소련은 희망과 불안, 번영과 혼란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 볼셰비키들은 구 시대의 잔재들을 어쩔 수 없이 끌어안아야만 했다. 거기에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귀족과 관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사국의 책임자 클리모프는 갱단에 대한 수사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는 부하 직원 자이체프를 의심하는데, 자이체프가 제정 러시아 시대의 관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술집 연주자로 전락한 귀족이 있는가 하면, 자이체프처럼 새로운 집권 세력에 협력해서 생존을 도모하는 이도 있었다. 뒷골목을 장악한 소매치기 '파슈카 아메리카'처럼 내전에 부모를 잃고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청년도 나온다. 그가 활보하는 거리에는 전쟁 고아들이 넘쳐난다.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은 그런 'NEP' 시기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 뿐만 아니라, 추리물로서의 재미도 갖추고 있다. 과연 갱단 내부에서 수사국의 첩자로 활동하는 이가 누구인지 그레이와 함께 관객들은 끝까지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필름 느와르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선술집의 여주인 이리나는 팜므 파탈로 강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발산한다. 이리나는 그레이의 조력자로 장물을 처분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경찰 애인을 압박해 수사 정보를 빼내기도 한다. 이리나는 오직 사랑만을 바라는 술집 여가수 바르바라와는 달리 물질적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나온다.

  유예된 혁명 과업의 완수를 위해서 사회악은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했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갱단의 비참한 최후와 함께 새로운 소비에트의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한다. 소매치기의 삶을 살던 청년은 농촌 출신의 순박한 아가씨 알로냐와 함께 귀향 열차에 오른다. 과연 파슈카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NEP 시기 농업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고, 그로 인해 농부들의 삶은 윤택해졌다. 그러나 농부들과 NEPmen의 좋은 시절은 1928년까지만 지속되었다. 스탈린의 집권과 함께 NEP는 폐기된다. 스탈린은 농촌을 집단 농장으로 개조시켰고, 소련을 공업 중심의 생산국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했다.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은 추리물의 틀 안에 그러한 변화를 맞이하기 직전의 느슨하게 흔들리는 소련 사회의 풍경을 담아냈다.    



*사진 출처: vokru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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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배우는 촬영장에 늦기 일쑤였다. 정서 불안에 심한 약물 중독 상태였으므로 촬영은 힘겹게 이루어졌다. 시나리오를 쓴 여배우의 남편은 쓰디쓴 결혼 생활의 끝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에게도 이 영화는 버거운 숙제였다. 대본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고, 배우들은 촬영 당일에 '쪽대본'을 받는 일이 잦았다. 문제가 있는 것은 그 두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주연 남자 배우들 가운데 한 명은 여배우와 비슷한 처지였다. 역시 약물 중독 상태였던 그는 여배우에게 연민의 대상이었다. 여배우가 보기에 그는 자신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감독 또한 촬영에 집중하지 못했다. 촬영지 네바다 주는 도박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천국이었다. 감독은 밤이면 도박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낮에는 촬영장의 감독 의자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졸았다. 그것이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1961)'을 찍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여배우는 마릴린 먼로, 먼로가 자신 보다 걱정한 남자 배우는 몽고메리 클리프트, 쪽대본을 양산한 여배우의 남편은 극작가 아서 밀러, 도박장과 촬영장을 오간 감독은 존 휴스턴이었다. 

  리노에서 이제 막 이혼을 한 로즐린은 정비공 귀도(일라이 왈러크 분)와 그의 카우보이 친구 게이(클라크 게이블 분)를 알게 된다. 귀도는 로즐린에게 매혹되지만, 로즐린은 곧 게이와 연인이 된다. 그들이 로데오 구경을 가는 길에 떠돌이 카우보이 퍼스(몽고메리 클리프트 분)가 합류한다. 퍼스는 로데오 경기에서 부상을 입고, 그런 퍼스를 보며 로즐린은 연민을 느낀다. 귀도와 게이는 사막의 야생마 머스탱(mustang)을 잡는 일감을 맡고, 곧 그들은 말 사냥을 위해 길을 떠나는데...

  매력적인 외모의 로즐린은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이제 겨우 벗어났을 뿐이다. 영화의 도입부, 로즐린은 이혼 법정에서 진술할 증언을 외운다. 증언에는 남편의 폭행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실제로 로즐린 역의 마릴린 먼로는 전 남편인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의 폭력에 시달렸다. 먼로는 디마지오와 이혼 후 극작가 아서 밀러와 재혼했다. 'The Misfits'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넘쳐났던 밀러가 1957년에 쓴 단편이었다. 그 소설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아내에 대한 환멸과 비난이 더해진 시나리오가 된다. 게이는 로즐린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한 여자라고 말한다. 극 중에서도 꽤 나이차이가 나는 이 커플은 실제 밀러와 먼로의 관계(밀러는 먼로 보다 11살이 더 많았다)를 떠올리게 만든다.

  거친 카우보이로 살아온 게이에게는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친구 귀도가 그나마 짓다 말은 엉성한 집이 있는 반면, 젊어서 가족을 떠나 떠돌았던 게이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술에 취해 장성한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그는 로즐린에게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수 있냐고 묻지만, 로즐린은 대답을 회피한다. 연민과 애정이 뒤엉킨, 순탄치 못했던 밀러와 먼로의 결혼 생활은 이 영화와 함께 5년 만에 끝난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밀러는 영화사 사진 작가와 만남을 가졌고, 둘은 결혼했다(그들의 딸 레베카 밀러는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부부가 된다).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길을 찾아요?"

  주인공 로즐린 역의 먼로는 어두운 밤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그렇게 묻는다. 운전을 하던 귀도는 하늘의 별을 보고 가면 된다고 말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참전 군인으로 비행기 조종사였던 귀도는 자신이 떨어뜨린 폭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른다며 로즐린에게 털어놓는다. 아내를 위해서 그가 지으려던 집은 아내의 죽음과 함께 중단되었다. 반쯤 지어진 그 집에서 로즐린과 함께 하며 집을 완성하길 꿈꾸지만, 여자는 그에게 마음이 없다. 로데오를 떠돌며 번 돈으로 입에 풀칠이나 하는 퍼스는 재혼한 어머니와 계부가 싫어서 집을 나왔다. 아무런 삶의 목적도 없는 그는 마치 길 잃은 강아지처럼 불쌍하고 외로워 보인다. 퍼스 역의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경력의 한창 때인 1956년의 교통사고로 얼굴이 망가졌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약물에 의존하게 되었다.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으나 실질적으로 영화 'The MIsfits'는 그의 경력을 마감하는 마지막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The Misfits'은 도대체 무얼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채워져 있다. 인물들의 대사는 극작가인 밀러답게 연극적으로 들리는데, 사막의 야생마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영화 대신 차라리 연극으로 만드는 것이 나았겠다 싶기도 하다.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갈등의 본질 또한 그다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뇌쇄적인 외모의 로즐린에게 매혹된 세 명의 남자들은 기묘한 연대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들이 영화의 후반부에 보여주는 야생마 몰이는 극적인 긴장감과 감정의 폭발을 야기하지만, 그것은 어설프고 쉽게 봉합되며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로즐린의 하숙집 여주인으로 나온 이사벨은 로즐린과 여정을 함께 하다가 극 중반에 사라져 버린다. 원숙한 델마 리터가 연기한 이사벨은 나름대로 극의 균형을 잘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밀러는 이사벨을 중간에 퇴장시키고 인물들을 불안과 혼란 속에 방치한다. 야생마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며 절규하는 로즐린과 돈벌이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귀도와 게이, 로즐린에게 동화되어 잡은 말을 놓아주는 퍼스, 이 네 명의 인물들은 정말이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제목 'The Misfits'는 영화 내적인 부분을 비롯해, 영화와 관련된 인물들의 실제 이야기와도 뜻밖의 공명을 만들어 낸다. 밀러와 먼로의 파탄난 결혼 생활, 약물 중독 문제로 고생했던 먼로와 클리프트, 촬영을 끝낸 직후에 세상을 뜬 클라크 게이블, 도박꾼 감독의 악전고투 속 완성작은 그렇게 온갖 부조화와 맞닿아 있다. 영화는 대개의 경우 인생을 모방하지만, 'The Misfits'를 보고 있노라면 인생이 영화와 함께 흘러가는 그 어떤 무언가가 아닌가 싶은 쓸쓸한 감정이 든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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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내가 실패한 뒤에 알콜 중독자가 되지 않은 것이 자랑스러워. 왜냐하면 그건 정말 지루한 일이거든."

  남자의 이름은 마이클, 화면 너머로도 그에게서는 술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아침 10시 59분, 술집 출근 도장을 찍는 58살의 머리 허연 알콜 중독자에게 오늘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Bill Ross IV와 Turner Ross, 두 형제들의 다큐 'Bloody Nose, Empty Pockets(2020)'는 라스베가스의 술집 'Roaring '20s'의 마지막 영업일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진정한 술꾼들의 다채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을 술 취하게 만드는 희한한 다큐. 그대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즐거울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아주 흥미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술집의 터줏대감 같은 마이클을 시작으로 하나 둘씩 술꾼들이 모여든다. 서로를 잘 아는 그들은 정답게 포옹하며 인사를 나눈다. 수염을 기른 큰 체구의 바텐더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벽면의 TV들에서는 뉴스와 예능 프로그램, 헐리우드 고전 영화들이 쉴 새 없이 나온다. 때는 바야흐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 다큐는 2016년에 만들어졌다. 트럼프가 나오는 화면을 보면서 술꾼 한 명은 예언자적 통찰을 보여준다.

  "내 장담하지. 저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탄핵이 되거나, 안그러면 암살을 당할 거야."

  손님들의 면면은 참으로 다양하다. 트랜스 젠더, 흑인 노숙자, 아인슈타인 머리를 한 백발의 남자, 60살 된 늙은 여자, 호주 출신 중년 남자, 음악가 등등... 다큐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려 22명에 이른다. 그들은 모두 코가 깨질 때까지, 바의 마지막 영업을 기념하며 동이 트는 새벽까지 술을 마신다. 다큐 내내 넘쳐나는 술에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주크 박스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 나오고, 손님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춤을 춘다. 그들의 대화에서는 온갖 개똥 철학이 쏟아지고, 올라오는 취기와 함께 외로움의 눈물도 흘린다. 불쾌한 말다툼도 생긴다. 그래도 심각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술 냄새가 진동하는 'Bloody Nose, Empty Pockets'를 보는 관객들은 어느새 자신이 그 바의 손님이 되어있음을 깨닫는다. 냉장고에 맥주가 있다면 꺼내어서 들이키게 될 것이다.

  폐업하는 술집의 마지막 하루를 찍다니, 참 다큐 편하게 만드네, 라고 생각했었다. 이 다큐의 제작자들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감독의 개입을 최소로 하는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중간 중간 제작자의 각인이 들어간다. 챕터를 나누듯 시적인 소제목들이 붙어있고, 술집 바깥의 풍경들이 삽화처럼 제시된다. 러닝타임 1시간 38분 동안 관객들은 'Roaring '20s'의 구석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술꾼들의 세상을 관조한다. 만약 동네에 저런 술집이 있다면 자주 가게 될 것 같은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 그런 술집이 문을 닫는다면 많이 아쉽겠다 싶다. 아침에 첫 출근 도장을 찍었던 마이클이 마지막으로 술집 문을 나서면 다큐가 끝난다. 그런데...

  'Roaring '20s'는 라스베가스에 있는 술집이 아니라, 루이지애나 주의 테리타운에 위치한 곳으로 아직도 영업하고 있다. 다큐에 나왔던 술꾼들은 오디션을 보고 출연한 일반인들이었다. 단 한 명, 마이클은 진짜 배우였다. '아니, 대체 내가 뭘 본 거야?' 마치 뒤통수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건 다큐가 아니라 영화인가? 무려 10년 동안, 제작자인 로스 형제들의 머릿속에서는 독특한 다큐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술집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열망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다큐 제작으로 이어졌다.

  원하는 술집을 찾기 위해 곳곳의 바들을 전전했고, 서로 케미가 잘 맞는 술꾼들의 조합을 보여주기 위해 수백 명의 일반인들을 인터뷰했다(출처 mubi.com과의 인터뷰). 카메라가 돌아가고, 그렇게 모인 이들은 진짜 술을 마시며 자신들 그 자체를 연기했다. 물론 설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의 벽면 TV에서 나오는 헐리우드 고전 영화들과 뉴스 화면들은 제작자들의 의도대로 편집되어서 나온 화면들이었다. 그 영화들은 내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는 1952년작 필름 느와르 'The Narrow Margin'도 있었다. 원래 촬영 현장에서는 사운드 녹음 때문에 주크 박스를 틀지 않으려고 했으나, 술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노래 없는 술집은 있을 수 없다고 그들이 외쳤고, 결국 다큐는 술과 노래의 향연으로 채워졌다. 등장 인물들이 직접 부르는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의 노래, 호주 민요 'Waltzing Matilda'에 맞춰 함께 추는 춤은 안온하고 정겨운 술집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하이브리드(hybrid) 다큐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제법 그럴듯한 놀라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과연 술꾼들의 내면 풍경과 그들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술집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그려낸 어떤 영화나 다큐가 있었던가? 이것은 분명 이전에는 없었던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길이다.

  "난 아침해가 싫어."

  문 닫는 새벽의 바를 나온 세 명의 술꾼들은 시멘트 바닥에서 해장술을 들이킨다. 그 가운데 한 명의 여성이 밝아오는 아침을 못마땅해 하며 하는 그 말은 진정한 술꾼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Bloody Nose, Empty Pockets'는 다큐일까, 영화일까? 그런 질문에 그것이 중요하냐고 되묻는 제작자 로스 형제들은 이 작품이 '영화'라고 대답한다. 다큐이면서 극적 허구를 포함하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실제 보다 더 가까이 진실에 접근한 것처럼 보인다. 관객들은 'Bloody Nose, Empty Pockets'에서 그 오묘하고도 기이한 마법을 목격한다.



*사진 출처: mubi.com




**독자들 가운데 종종 영화를 보는 경로에 대해 문의하는 경우가 있어서 글을 남깁니다.

무료 채널:

1) 다큐멘터리- documentarymania.com  watchdocumentaries.com 2000년대 이후부터 최신작까지 다양한 해외 다큐들을 제공함
2) 러시아(구 소련) 영화- mosfilm.ru 유튜브에도 전용 채널이 개설되어 있음. 검색은 오직 '러시아어'로만 가능함.
3) archive.org- 저작권이 풀린 오래전 영상물과 텍스트 자료들이 제공됨. 단점이라면 영화들은 대부분 자막이 없음.
4) 유튜브- 헐리우드 고전 영화를 비롯해 1970년대 이후 동유럽 영화, 1980년대 이후 중국 영화들을 찾아볼 수 있음.


유료 채널:

1) amazon prime
2) criterionchannel.com- 1950년대와 60년대의 일본 영화, 각국의 다양한 예술 영화들의 목록을 검색할 수 있음.
3) 넷플릭스- 신작 영화를 비롯해 특히 자체 제작한 다큐들의 작품성이 좋음.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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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Chang의 대표작, Mambo Girl(1957)과 'The Wild, Wild Rose(1960)' 

  러닝타임 95분의 영화가 30분으로 느껴지는 마법, 이것은 1950년대와 6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Grace Chang의 영화 '맘보 걸(Mambo Girl, 1957)을 볼 때 일어났다. 영화는 시작부터 흥겨운 맘보 음악과 춤으로 시작한다. 체크 무늬의 날렵한 바지를 입은 여성이 놀라운 춤과 노래 실력을 뽐낸다. 무려 7분에 달하는 도입부의 장면은 이 여배우가 영화의 진정한 주인임을 알려준다. 중국의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어렸을 적부터 재능이 출중했던 그레이스는 1949년, 가족의 홍콩 이주로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한 MP & GI 영화사는 극장 체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를 무대로 영화 산업을 확장해 나갔다. 홍콩에 세운 자회사에서는 광둥어가 아닌 만다린(Mandarin, 표준 중국어)으로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레이스는 그 영화들의 주역을 도맡았다. '맘보 걸'은 그레이스가 24살이 되었을 때 찍은 작품으로 큰 흥행 성적을 거두며, 이 여배우의 독보적 스타 파워를 입증하는 계기가 된다. 

  학교의 퀸, 그리고 '맘보 걸'이라는 사랑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는 카이링은 남부러울 것이 없다. 번화가에서 커다란 인형 가게를 하는 부모와 귀여운 여동생, 그리고 카이링을 떠받드는 친구들과 부유하고 멋진 남자 친구까지 있다. 카이링의 20살 생일을 앞두고 남자 친구 다니안은 성대한 생일 파티를 계획한다. 한편 카이링의 집에서는 부모가 카이링의 정확한 생일 날짜를 두고 옥신각신한다. 출생증명서를 꺼내보며 확인하는데, 마침 카이링의 여동생이 그 서류를 보게 된다. 카이링은 입양된 딸이었던 것. 나중에 친딸을 얻었지만 부부는 카이링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키웠다. 그 사실을 알고 고민하던 여동생은 카이링을 시기하는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출생의 비밀은 카이링에게 가출을 감행하게 만든다. 친모를 찾아나선 카이링, 사랑스런 맘보 걸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남자 친구가 열어준 생일 파티에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카이링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날 밤, 집의 옥상에 올라가서 도시의 밤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허공에서 환영(幻影)을 목격한다. 나이들고 가난한 전통복식 차림의 여성은 오래전 헤어진 딸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른다. 카이링은 그 환영이 자신의 친어머니라고 생각하며, 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을 연상케 한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햄릿의 부왕은 유령으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카이링의 친모를 찾기 위한 여정은 결국 번화한 나이트클럽 거리에서 끝난다. 카이링은 자신의 모친이 클럽의 여가수일 것으로 짐작하지만, 늙은 종업원의 안내로 만나게 된 여성은 클럽 파우더룸에서 손님의 물건을 관리하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중년의 여성은 자신에게는 딸이 없다며, 카이링의 추측을 끝끝내 부인한다. 그러면서도 카이링의 양부모와 집안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는다.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Stella Dallas, 1937)'의 바바라 스탠윅처럼 카이링의 친모는 딸의 행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실망한 카이링은 집으로 돌아가고, 카이링은 자신을 기다리던 이들과 함께 한바탕 기쁨의 춤판(!)을 벌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기이한 뮤지컬에는 진정한 슬픔과 고통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쉽게 친엄마 찾기를 포기한 카이링은 양부모의 안온한 집과 자신의 친구들에게서 다시금 행복을 되찾는다. 그런데 그 장면을 카이링의 친모는 집앞의 열려진 문틈으로 엿본다. 함께 온 클럽의 노종업원은 딸에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자는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영화 '첨밀밀(甜蜜蜜, 1997)'이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내면에 대한 은유이듯, '맘보 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당시 홍콩의 지위를 떠올리게 만든다. 열려진 문 앞에서 서성이던 친모(중국)는 양부모(영국)의 품에 안착하는 입양딸 카이링(홍콩)을 보며 마지못해 떠난다. 이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영구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떠난 친모는 언젠가 열려진 문 안으로 들어와 딸을 찾아갈 것임을 관객들은 짐작하게 된다.

  영화 '맘보 걸'이 맛뵈기였다면, 그레이스 장의 본격적 공연은 1960년에 제작된 'The Wild, Wild Rose'에서 펼쳐진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의 '홍콩 나이트클럽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그레이스가 가진 재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경음악풍의 노래로 번안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그레이스의 놀라운 창법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도입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의 '입술은 침묵하고'와 같은 노래가 이어지며, 후반부에는 기모노를 입고 부르는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의 '어떤 갠 날'이 나온다. 그레이스는 오페라 아리아를 비롯해 재즈곡도 부르며, 플라멩코 춤 공연도 해낸다. 이 여배우에게는 소화하지 못할 그 어떤 음악 장르, 춤의 종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무려 2시간 1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느껴진다. 

  서구 오페라의 장르적, 문화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는 'The Wild, Wild Rose'는 분명히 비극임에도 영화가 온전히 한 편의 공연물로 기능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 중심에는 '그레이스 장'이라는 배우이면서 가수, 무용가인 종합 예술인이 자리한다. 당시의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성 예능인의 공연을 관람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홍콩 영화의 독특한 성취를 보여주는 일련의 뮤지컬 영화들의 인기는 영화와 함께 했던 여배우들의 은퇴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홍콩 영화사의 한 장이 닫힌다. 새로운 장을 연 것은 소씨 형제들(邵氏兄弟), 쇼 브라더스(Shaw Brothers Production)가 만드는 무협물들이었다.  



*사진 출처: no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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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계 미국인 감독 앤드류 안(Andrew Ahn)의 장편 데뷔작 'Spa Night(2016)'를 보는 동안 떠올렸던 영화는 스티븐 프리어스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My Beautiful Laundrette, 1985)'였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성애자가 주인공이다. 한국인 이민자 2세인 앤드류 안은 첫 영화로 자신의 출신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의 대사는 대부분 한국어이며,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주제의 이야기이고, 정서적으로도 잘 와닿는다. 하지만 그러한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서양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그런 퀴어 영화(Queer film)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좀 뻔한, 진부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낯선 땅에 정착하는 이민 1세대의 고군분투,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2세대, 거기에 동성애가 버무려진 'Spa Night'는 그럼에도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 내러티브의 핍진성이 돋보인다.

  창작자에게 가장 편하고, 다루기 쉬운 소재는 무엇일까? 바로 자기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이다.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세하고 치밀하게 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들은 관객들과 만나 공명을 이루어낸다.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동성애자인 앤드류 안은 첫 영화로 그것을 성취한다. 'Spa Night'는 도입부를 목욕탕에서 시작한다. 사우나실에 있는 아버지는 열기를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더 있으라고 말한다. 파랑색 이태리 타올로 아버지와 아들은 때를 민다. 목욕을 끝낸 후 휴게실에서 팥빙수를 같이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 가족에게 한국식 목욕탕은 화합과 소통의 장소이다. 부모는 아들에게 한국인 아가씨를 며느리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비춘다. 그러나 아들 데이비드는 그런 가능성에 대해 완곡히 부인한다.

  매일 조깅을 하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18살의 데이비드는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이 많다. 셀카로 몸을 찍어보며 수시로 변화를 체크한다. 이 청년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데이비드의 내면에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자각의 감정이 올라온다. 그것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몸'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다. 돈 문제로 갑자기 문을 닫게 된 식당, 부모는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 경제적인 곤궁은 데이비드에게도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한다.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 부모는 무리를 해가며 아들을 입시 학원에 등록을 시키지만, 공부에 뜻이 없는데다 부모의 곤경을 보기 힘든 효자 아들은 목욕탕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모호한 감정의 실체와 마주한다.

  열기와 습기가 어우러진 사우나 안의 뿌연 거울 앞에 선 데이비드의 모습은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게이들의 공공연한 만남의 장소인 그곳 목욕탕은 데이비드에게 혐오와 고통, 강렬한 호기심의 장소가 된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잘 알지만, 청년은 자신이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어서 대학에 갈 생각이 없고, 부모가 원하는 며느리를 맞이할 수도 없다. 미국 땅에서 유색인종, 거기에 성적 소수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약자로 더 복잡하고 불편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18살의 청년에게 그 어떤 것도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Spa Night'는 데이비드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자각하는 부분에서 멈춘다. 데이비드에게 그것이 새로운 삶을 위한 출발 지점인 것처럼, 이 영화도 앤드류 안의 영화적인 첫 목소리인 셈이다.

  2019년작인 'Driveways'는 'Spa Night'의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어서 펼쳐진다. 싱글맘 캐시는 아들 코디와 함께 뉴욕 교외에 위치한 언니의 집을 찾는다. 언니 에이프릴이 세상을 뜨자 남겨진 집을 처분하기 위해 온 것이다. 거의 왕래가 없었던 12살 차이의 언니의 집 안을 본 캐시는 놀라고 만다. 캐시의 언니는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들로 집을 채운 호더(hoarder, 비정상적으로 물건을 수집하고 쌓아놓고 사는 사람)였다. 집을 팔기 위해서는 그 물건들을 치워야 하는 상황, 캐시는 게임기만을 끼고 사는 8살 아들과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옆집에 사는 한국전 참전 군인 델은 그들 모자(母子)와 소박한 유대를 쌓아가고, 특히 내성적인 코디는 델과의 만남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백인 배우들을 기용하려던 원래의 계획을 앤드루 안은 아시안계 배우로 바꾸었다. 베트남계 미국인 배우 홍 차우(Hong Chau)는 싱글맘으로 자신의 삶과 양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캐시를 잘 보여준다. 아들 코디 역의 루카스 제이(Lucas Jaye)의 명징하고 직관적인 연기는 그 자체로 빛난다. 앤드루 안에게 아시안으로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아시안 배우들을 쓰기로 한 것이다. 'Driveways'는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캐시의 부산스러운 백인 이웃 린다와 그 손자들이 microagression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인간 관계와 소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

  세상에 그저 둘 밖에 없는 것 같은 외로운 엄마와 아들은 낯선 곳에서 인생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캐시가 언니의 집을 치우면서 잘 알지 못했던 언니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 보게되는 것, 게임기와 일본 만화에만 관심을 갖던 코디가 말년의 퇴역군인 델과 우정을 쌓아가는 것, 그 과정들은 절제되어 있으면서 따뜻한 감정의 물결이 소용돌이친다. 'Spa Night'에서 개인적 정체성의 탐구를 보여주었던 감독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Driveways'는 인종과 세대를 뛰어넘는 관계의 보편성, 그것이 갖는 삶의 의미를 잔잔하게 풀어놓는다. 늘 혼자 식사하고 잠드는, 퇴역 군인 회관에 가끔 들러 빙고 게임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노인은 8살 꼬마와 친구가 된다. 그 우정은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그에게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코디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코디는 더이상 게임기가 아니라 동네의 흑인 남매와 같이 길에서 즐겁게 논다.

  첫 장편 영화 'Spa Night'로 선댄스에서 수상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화려하게 알렸지만, 영화는 한국계 이민자 가정이라는 배경적 묘사 때문에 그다지 큰 공감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후속작 'Driveways'는 매우 소박한 영화임에도 인간 관계라는 보편적 주제를 자신만의 독자적 연출로 풀어냄으로써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끌어내었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심심하게 느껴지는 'Driveways'보다 'Spa Night'가 더 집중력있고 나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양 관객들에게는 'Driveways'가 꽤 밀도있게 다가갔던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고 울었다는 리뷰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퇴역 군인 델 역을 맡았던 Brian Dennehy의 유작으로서 가지는 나름의 의미도 더해졌을 것이다. 앤드류 안의 두 영화는 자아 탐구에서 시작된 영화적 여정이 세상과 타자로 조금씩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세 번째 영화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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