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거야. 그 수세미가 도대체 어디로 갔냐는 거지. 내가 그걸 찾으려고 2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었어."
  "엄마가 어디 딴 데다 두거나, 떨어뜨리거나 그런 거 아냐?"
  "아니래도. 청소 도구 바구니가 있어. 빨간색. 파견 업체에서 거기에 세제랑 수세미, 이런저런 도구들 함께 넣어서 줬다고. 그걸 1층 우편함 아래에다 두고 잠깐 밖에 쓰레기 버리러 갔거든. 와보니까 수세미가 없어. 그거 하얀색. 매직 블럭 있잖아. 때 잘 닦이는 거. 새것이라고."
  "엄마. 그거 누가 가져갔으면, CCTV 보면 알 수 있거든. 우편함 앞이니까 거기 출입구라서 잘 보일 거야. 관리사무소에 가서 얘기해 보세요."
  "에휴, 그런 걸 뭘 말해. 괜히 분란만 일으킬지도 모르는데. 내가 조심하지 뭐."

  홍 여사는 참으로 수세미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족히 30억이 넘는 강남의 아파트에서 정말로 누군가 수세미를 훔쳐갔을까? 아픈 영감의 약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청소일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일주일째였다. 그런데 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것으로 받은 청소 물품을 잃어버린 것이 아주 찝찝하고 기분이 나빴다. 분명히 내부인의 소행이었다. 하지만,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이 아파트에서 기껏해야 돈 천 원 하는 매직 블럭 수세미를 훔쳐갔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모르지. 부자라도 도벽(盜癖)이 있을 수 있으니까. 홍 여사는 집으로 가는 길에 천 원 마트에 들려서 매직 블럭을 하나 샀다. 쓰지 않아도 될 돈 천 원이 나갔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리고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여사님, 내가 여사님이 우리 어머니 같아서 충고 좀 할게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나아요. 여기서는 그저 조용히 있는 게 답이에요.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웬만하면 눈에 띄지 않게, 그래요. 유령처럼 왔다갔다하는 거죠. 지금 여사님 이야기는 입주민을 도둑으로 생각하고 하는 말이잖아요. 그 수세미가 얼마라고 했죠? 내가 잡비 지출로 해서 천 원 내어드리죠. 어떤 면에서는 여사님이 물건 간수 잘하지 못한 잘못도 있는 거에요."

  관리사무소의 경리가 딱딱거리는 말투로 홍 여사에게 말했다. 홍 여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CCTV를 확인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경리 주임에게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경리의 얼굴이 일순 차갑게 싹 바뀌었다. 홍 여사는 이내 곧 자신이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천 원 가져가세요. 다음에 이런 일 또 있으면, 이렇게는 못해요. 청소 도구 관리는 전적으로 여사님 책임입니다."

  홍 여사는 쭈뼛거리면서 경리가 책상 모서리로 밀어낸 천 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넣었다. 돈 천 원이 그렇게나 더럽고 굴욕적으로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여사님이라는 호칭도 웃기는 말이었다. 진짜 부잣집의 여사님은 이런 곳에서 천 원을 아쉬워하며 주머니에 쑤셔 넣지는 않을 터였다. 홍 여사는 낡은 수세미처럼 쭈글쭈글한 표정으로 미화원 휴게실로 돌아왔다. 홍 여사의 얼굴을 보고 동료 박 여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홍 여사는 매직 블럭 수세미를 잃어버린 일을 짧게 이야기했다.

  "홍 여사 말을 들으니 딱 그 생각이 나네. 내가 본 이야기를 해줄게. 지난주 화요일 아침에 관리사무소 회의실을 청소하러 갔었더랬지. 그런데 관리사무소 앞에 경찰차가 와있어. 대체 뭔 일인가, 우리같이 늙은 사람은 경찰차만 봐도 뭔가 심장이 오그라들고 그러잖아. 그래서 조심조심하면서 회의실 있는 2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휴, 난리도 아냐."
  "난리라니,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어?"
  "아이고, 큰일은 큰일이지. 내가 회의실로 가려면, 관리사무소 사무실을 지나가야 하잖아. 경찰 두 명하고, 머리 허연 영감하고 큰소리로 싸우더만. 소장은 그냥 막대기처럼 멀뚱히 서있고. 열린 사무실문 뒤편에서 가만히 서서 뭔일인가 들어봤거든."
  "그래, 그래서?" 

  홍 여사는 좀 전에 수세미 때문에 기분 나빴던 일은 싹 잊어버리고는 박 여사의 말에 집중했다.

  "여기 아파트 오다 보면 코엑스라는 데 있잖아. 커다란 행사 같은 거 자주 하거든. 경찰 말로는 그 영감이 거기를 자주 돌아다니면서 기념품 같은 걸 훔쳤다는 거야. CCTV에 다 찍혔다고 하면서."
  "이 부자 동네 사는 영감이 정말로 그걸 훔쳤을까?"
  "아휴, 그 영감 뻔뻔하게도 오히려 더 악을 쓰는 거야. 나 정도면 가져갈 만해서 가져갔다, 그러던데. 너희들이 뭔데 나한테 도둑이니 뭐니 하냐고 하면서. 얼마나 당당한지 몰라. 자기 아들이 국정원 다닌다, 너희들 싹 다 잡아넣을 거야, 이러는데 그건 진짜인가 몰라."
 
  홍 여사는 박 여사의 말을 듣고, 수세미를 훔쳐간 사람도 그 영감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이런 거 하나쯤은 내가 가져가도 괜찮다. 난 이곳에 사니까. 그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홍 여사는 그 뻔뻔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날 저녁, 홍 여사는 오늘 관리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을 전화로 딸에게 늘어놓았다.

  "내가 엄마한테 괜한 말을 해서는..."
  "아니다.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니? 내가 진짜로 물건을 실수로 어디다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훔쳐간 인간이 나쁜 거지. 그런 말조차 못하고 살면 그건 그거대로 얼마나 분하냐."
  "그래, 엄마. 이제 수세미 생각은 그만해. 엄마만 기분 나쁘고 속상하잖아."
 
  다음 날, 홍 여사는 으슬으슬한 감기 기운을 느끼며 일어났다. 일을 나가기 전에 동네 약국에 들러서 쌍화탕 한 병을 샀다. 천 원이었다. 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아파트에 나와보니, 엘리베이터 옆에는 아무렇게나 내버린 흰색 마스크와 담배꽁초가 보였다. 우편함 아래는 갈색의 가래침이 눌어붙어있었다.

  "더러운 것들."

  홍 여사는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청소 도구함에서 새 수세미를 꺼내어 눌어붙은 가래침을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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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복


  "당신 주식은 좀 올랐어?"
  "조금. 그냥 용돈벌이 수준이지."
  "옛날에 반도체 주식이나 사놓지 그랬어. 그게 그렇게 올랐다며?"
  "그러게. 사람이 앞일을 알 수 있어? 그거 한 주에 15만 원 할 때, 그냥 팔아치웠거든. 그게 지금 220만 원이야."

  남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연수는 침울한 남편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괜히 말을 건넨 것 같았다. 만약에 남편이 그 주식을 지금까지 계속 들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17평 2층 빌라에서 이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무당의 유튜브를 보는데 그러더라. 돈복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싶어."
  "돈복 없는 사람은 평생 거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네."

  빨간색의 화살표가 가득한 주식 앱의 창을 닫으면서 남편이 그렇게 말했다. 연수는 자신이 위로를 한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남편의 속을 긁었나 싶어졌다. 마지막 오거리, 목적지까지 5분 남았습니다. 렌터카의 네비게이션이 집 근처 오거리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아버님은 전보다 더 나빠지신 것 같지?"
  "그래 보여. 이렇게 병원 가는 일도 올해까지가 아닐까 싶고."

  연수는 남편과 함께 2주에 한 번, 시아버지가 입원한 요양 병원을 방문했다. 1년이 좀 지났나? 아직 봄이 오지 않았으니 1년을 채우지는 못했네. 그러니까 작년 3월의 일이었다. 시아버지는 요양원 화장실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MRI를 찍어보니, 미세한 뇌출혈이 있었다. 골절에다 뇌출혈 후유증까지, 시아버지는 병원 침대에서 거의 누워있다시피 하면서 지냈다.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 엄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거든. 이름이 엄석구. 오래전에 투자한 주식이 대박이 나서 무려 300억 수익을 거둔 거지. 그게 20년 전이야. 그 양반은 그거 종잣돈으로 계속 굴리면서 잘 먹고 잘 살더라고."
  "그러겠지. 돈이 돈을 버는 시대잖아."
  "수도꼭지 하나에 삼백만 원짜리가 있다면, 당신은 믿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남편은 차에서 내리면서 뜬금없이 수도꼭지 이야기를 꺼냈다. 연수는 삼백만 원짜리 수도꼭지가 있다면 어떻게 생겼을지 가만히 상상해 보았다. 진짜 금으로 도금이라도 한 모양인가 보네.

  "고급 부동산을 탐방하는 유튜버가 있어. 그 유튜브 방송을 보니까, 엄신이 사는 로터스(Lotus) 타워가 나오는 거야. 엄신이 리모델링한 자기 집을 보여주는 거지. 글쎄, 그 집의 욕실 수전의 수도꼭지가 삼백만 원이라는군."
  "그건 좀 낭비 같은데. 어차피 물을 트는 것뿐이잖아."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말이야, 나 원 참 웃겨서."

  남편은 갑자기 뭐가 생각이 났는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집 인테리어 소품에 수프 캔 바구니가 있는 거야. 당신도 알지? 앤디 워홀의 팝 아트, 그거 있잖아. 캠벨 수프 같은 깡통 쌓아놓은 거. 커다란 대바구니에 외국 수프 캔이 여러 개 담아져 있는 거지. 그게 천만 원짜리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낙찰받은 현대 예술 작품이라나 뭐라나. 하하..."
  "부자들의 취향이란 게 참 독특하네. 당신이나 나나 그런 건 거저 줘도 안 가질 것 같은데."
  "맞아. 돈복 있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지."

  마침내 부부는 비좁은 빌라 주차장에 겨우 차를 대놓고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1시간 넘게 운전하느라 피곤했는지 소파에 털썩, 소리를 내며 앉았다. 그리고는 늘 하던 대로 주식 분석 유튜브 방송을 틀었다. 연수는 전자레인지에 뎁히기 위해 냉동해 놓은 밥과 즉석 국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언제부터더라, 요리를 하지 않게 된 것이... 문득, 돈복이 있는 사람들의 식탁은 자신들과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 오늘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먹는 음식이 여러분을 만든다고요. 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사는 주식이 여러분의 일생을 놀랍게 바꾸어놓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냉동 밥과 즉석 미역국, 공장에서 만든 김치를 먹는 자신과 남편의 인생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돈복이라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백날 주식을 사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닌가. 땡땡땡. 조리가 끝났음을 알리는 전자렌지의 알림음이 경쾌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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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나는 너무나도 오래 살았다. 정말로 오래 살아서 그런 것으로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오래 살았다고 느낀다. 나의 주인은 얼마 전에 죽었다. '얼마 전'이라고 쓴 것은 나도 주인이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파서 죽었을 것이다. 요양병원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일 수도 있겠지. 주인의 딸은 나와 함께 침대 매트리스도 함께 버렸다. 주인, 그러니까 영감이 쓰던 매트리스. 영감은 중풍을 오래 앓았다. 매트리스에서는 지독한 소변 냄새가 진동했다. 이 추운 겨울에도 그 지린내가 내 몸에 옮겨붙은 것 같다.

  중년의 여자가 선풍기를 버리고 간다. 이상하게도 선풍기 날개가 보이지 않는다. 날개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여자가 선풍기를 버리면서 중얼거린다. 아까워, 아까워, 너무 아까워. 나는 여자가 가버린 뒤로 선풍기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보았다.

  "넌 어쩌다가 여기 온 거야?"
  "저 여자가 청소하다가 나를 넘어뜨렸어. 그런데 그만 날개가 부러지고 말았지. 사실 내 모터는 멀쩡하거든. 날개가 부러지니까 쓸 수 없다고 버린 거지. 여자는 날개를 접착제로 붙이려다가 실패했어. 말도 안 되는 짓이지. 선풍기 날개를 본드로 붙이려고 하다니."
 
  모터가 멀쩡한 그 선풍기는 고물 가전을 수거하는 업자가 오더니, 냉큼 집어서 들고 가버렸다. 안녕, 잘 가렴. 어떻게든 너는 다른 날개를 달고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냄새나는 매트리스 바로 옆에서 코를 틀어막으며 숨을 겨우 내쉬었다.

  "왜 이건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거야?"

  대머리 경비가 와서는 나를 쳐다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어. 영감의 딸은 돈을 아끼려고 나한테는 폐기물 스티커를 붙이지 않았거든. 나는 어쨌든 멀쩡해 보이니까, 누군가는 가져가지 않을까 싶어서였겠지. 그런데 사람들은 나한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 태권도복을 입은 조그만 아이가 나한테 와서는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코딱지를 붙여놓고 가더군. 내가 팔이 있었다면, 그 녀석 머리를 쥐어박아 주었을 거야. 추접스럽게 이게 뭐람. 요새 젊은 것들이 애들 가정 교육을 도무지 안시키기 때문에 그래. 아이들은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고, 욕하고, 악다구니를 쓰지. 세상이 말세야, 말세.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니까 무서워."

  오줌 자국이 선명한 매트리스가 오그라든 입으로 중얼거렸어. 그럴 거야. 넌 아무래도 갈가리 다 찢겨서 버려지지 않겠니. 널 누가 데려가겠어. 난 그래도 어디 흠이 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겠지.

  "그래서, 그만 끝내겠다는 거야?"

  중학생으로 보이는 계집애 하나가 내 앞에 서서 그렇게 말했다. 여중생은 통화중이었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연애질을 하는 모양이군. 나는 혀를 끌끌 차면서 무어라 더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어.

  "야, 너 같은 건 널리고 널렸어. 웃기고 있네."

  끝났나 보군. 잘 된 거야. 잘 된 거지. 나는 전화기 너머의 알지 못하는 어떤 녀석, 아니 계집애일 수도 있잖아. 세상이 변했으니까. 아무튼 여중생의 파트너랄지, 연애 상대에게 박수를 보냈어. 틴트 하나도 제대로 바르지 못하는 저런 칠칠하지 못한 애하고는 사귀지 않는 게 나아.

  "뭐야, 병신같은 게."

  계집애는 발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세게 찼어. 젠장. 그게 내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거지. 정말로 나는 병신이 되어버린 것 같았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 말았지. 조금 전까지는 멀쩡한 거울이었는데, 깨어진 거울이 되고 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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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


  처음에는 그것이 그냥 막대기인 줄 알았다. 아주 기다란 막대기. 그런데 다가가서 보니 아니었다. 무지막지하게 큰 가시가 덕지덕지 붙은 엄나무였다. 아파트 출입문 뒤편, 응달진 곳에 1미터 높이의 엄나무를 누가 심어놓았다. 희주는 그 막대기, 아니 엄나무가 눈에 거슬렸다.

  "왜 저런 곳에다 심어놓은 거지?"

  아마도 가시가 있어서 위험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엄나무는 심어보고 싶고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동네에는 도무지 상식과 교양이 없는 인간들이 메뚜기처럼 출몰한다. 창문 밖으로 담배꽁초를 계속 내던지고, 물티슈를 비롯해 음식물 쓰레기도 내던진다. 화단에 온갖 화분이며 돌멩이를 모아다가 쌓아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일 것이다. 희주는 관리사무소에다 그것들을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치워져서 다시 시간이 지나면 화분과 돌들, 항아리까지 화수분처럼 생겨났다. 아마도 그 사람에게 아파트 화단은 자신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원인 듯싶었다.

  희주는 엄나무의 밑동을 발로 툭툭 쳐보았다. 자신이 쓰러뜨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찌나 단단하게 심어놓았는지 막대기 같은 그 나무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쇠막대기 같았다. 그런데 그 쇠막대기의 맨 꼭대기에 보라색 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추운 겨울에 나무는 치열하게 사는 중이었다.

  "6호 라인 출입구 뒤쪽에 1미터 정도 되는 엄나무가 있어요. 아파트 공유지를 개인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처리해 주면 좋겠습니다. 제거하든지, 다른 곳에 옮겨 심든지요."

  집으로 돌아온 희주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무언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아마도 그 보라색 새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나무는 살아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궁금해졌다. 그 나무를 그냥 거기에서 자라게 내버려두는 편이 나았을까?

  "당신은 해야 할 전화를 했을 뿐이야. 오히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자라면, 나중에 거칠게 뿌리뽑힐 뿐이지."

  앞집의 노인은 죽어가고 있다. 거동하지 못한 지가 꽤 되었다. 오늘 낮에는 전동 침대 대여회사의 설치 기사들이 다녀가는 것을 보았다. 노인의 나이는 구십을 훌쩍 넘겨서 백 살에 가까웠다.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병간호를 한다. 늙은 딸이 데려온 개가 희주와 남편이 드나들 때마다 짖어댔다. 희주는 저 노인이 올봄을 넘길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봄과 가을에 노인들은 많이 죽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사망률이 치솟지요."

  언젠가 TV에 나온 의사가 하는 말을 들었다. 사람은 죽지만, 엄나무는 베어져도 뿌리가 있는 한 살아남을 것이다. 새순이 마치 붉은 피처럼 너무나 선명해서 희주는 그것을 차마 베어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걸 심은 인간은 엄나무 순을 잘라서 먹고, 그 가시가 있는 가지를 삶아서 몸보신이나 하려고 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은 무엇에 쓸모가 있을까? 엄나무는 쓸모가 있으니, 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희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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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


  허리가 직각으로 굽은 할머니가 장바구니 카트를 힘겹게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엄마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노인은 엘리베이터 앞의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시장에 봄동이 나와서..."

  노인은 우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몇 층 사세요?"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려고 노인에게 물었다. 하지만 노인은 대답 대신에 장애인 전용 버튼의 숫자를 얼른 눌렀다. 8층이었다.

  "말할 기운도 없어."

  노인의 카트에는 봄동과 함께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있었다. 그 무거운 것을 끌고 어떻게 온 것일까? 기운이 너무 없는지, 노인의 말소리는 물크러지고 곰팡이가 핀 귤 같았다.

  "조심해서 가세요."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를 못하는 엄마와 함께 내리면서 나는 인사했다. 집에 들어온 나는 TV를 켰다. 케이블 채널을 빠르게 돌린다. 엄마가 좋아하는 '현장르포 특종세상'이 나온다.

  "이거 좀 보고 계세요."

  "너는 어디로 가는 거냐? 넷째는 언제 온다니?"

  나는 엄마가 말하는 넷째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봄동을 보았다. 한 봉지에 3천 원이었다. 비싸지 않은 것 같아서 샀다. 그런데 나는 봄동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모른다. 엄마는 나에게 요리라는 것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봄동은 보통 겉절이를 해서 먹지. 나의 부엌에는 고춧가루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매운 것을 조금만 먹어도 속이 쓰렸다. 어쨌든 봄동의 잎을 톡, 톡 뜯어내었다.

  다음날, 엄마에게 점심을 차려줄 때 그 봄동을 식탁에 내놓았다.

  "달구나. 달아."

  나는 8층의 노인이 앞으로 봄동을 먹을 수 있는 날들에 대해 문득 생각해 보았다. 노인은 팔순을 쉬이 넘긴 것처럼 보였다. 굽은 허리로 장을 힘겹게 봐올 정도면, 분명히 혼자서 살고 있을 것이다. 16평의 이 낡은 복도식 아파트에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산다. 나는 그래서 이 아파트를 노인동이라고 부른다.

  엄마의 집을 나올 때, 아파트 앞에는 익숙한 녹색의 목욕 차량이 보였다. '효녀 심청이 목욕 서비스'라고 커다란 글씨가 박힌 차. 차에서는 희뿌연 오수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그 차를 보고는, 자신의 부모를 남한테 목욕시키게 하는 자식들이 불효막심하다면서 분개했다. 나의 오른팔은 테니스 엘보에 시달려서 고무팔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 목욕 차량을 지나오면서 아픈 오른팔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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