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대혁명의 새로운 영화적 변주, Crossing The Border - ZhaoGuan(2018)

  영화 'Crossing The Border - ZhaoGuan(2018)'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중국 노년의 세대에게 경의와 고마움을 표시한다. 분명 그들의 세대는 스러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삶의 지혜와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감독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추억한다고 썼다.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으로서 감독 Meng Huo는 비극과 공포로 점철된 중국 현대사를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포용한다. 이 영화는 마오쩌둥과 그의 정치적 오점인 문화대혁명이 지금의 세대에서도 여전히 영화적으로 변주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6/crossing-border-zhaoguan2018.html


2. 관계와 삶에 대한 응축된 편린, Return to Seoul(2022)

  영화 'Return to Seoul'은 관객을 한국인 입양 여성의 지난한 내적 여정으로 초대한다. 모든 관계에는 고통이 따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관객은 그 생경한 여행 속에 관계와 삶에 대한 응축된 편린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5/return-to-seoul2022.html


3. 기후 변화가 가져올 묵시론적 미래, Utama(2022)


  영화 'Utama'는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전지구적 파고에 스러지는 개인의 삶을 관조한다. 기후 변화는 거친 산악 지대에서 유목을 하며 살고 있는 원주민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들에게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Utama'는 환경파괴를 가속화하고 있는 인류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묵시론적 미래를 펼쳐놓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4/utama2022.html


4. Jerzy Sladkowski 감독의 다큐멘터리 2편: Bitter Love(2020), Vodka Factory(2010)

   'Bitter Love'는 사랑과 외로움, 관계에의 열망을 피상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Jerzy Sladkowski는 볼가강 유람선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의 러시아인들이 직면한 내적 공허함을 드러낸다.

  'Vodka Factory'를 보는 관객들은 타티나아와 발렌티나 모녀와 같은 삶의 여정을 지금도 누군가 걸어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마치 잘 연출된 한 편의 영화 같은 이 다큐는 주변부 여성의 삶이 인습적 사회 구조와 충돌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4/jerzy-sladkowski-2-bitter-love2020.html


5. 소녀의 어린 시절이 끝나갈 때, Children Of The Mist(2021)

  감독 Ha Le Diem은 이 다큐가 마음 속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Diem도 베트남의 소수 민족 출신으로 Diem의 주변 사람들 가운데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한 이들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Diem은 3년의 시간을 Di의 가족과 함께 했다. 거기에 더해진 1년의 시간은 촬영한 영상의 편집과 번역에 소요되었다. Diem은 몽족의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을 했고, 신뢰를 쌓으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다큐를 인내심과 탐구심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하겠다. 이 다큐를 통해 관객은 낯선 땅 소수 민족 소녀의 삶을 날것 그대로 마주한다. 무엇보다 이 다큐는 감독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Children Of The Mist(2021)'에는 여성 감독이 마음 속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있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4/children-of-mist2021.html


6. 경외와 관조, Haulout(Выход, 2022)

  러닝 타임 25분의 이 간결한 다큐는 관객에게 관조와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우리들 대다수는 먹고 사는 일에 매여서 산다. 하지만 차킬레프처럼 자연과 진리에 매혹된 이들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 길은 돈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멀다. 다큐 'Haulout'은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열정을 지닌 이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3/haulout-2022.html


7. 사설 구급차 뒷편에서 바라본 도시의 심연, Midnight Family(2019)

  Luke Lorentzen은 오초아 가족의 '사설 구급차'를 타고 거대 도시 멕시코 시티의 심연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의 다큐멘터리적인 모험은 성공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그가 다큐 제작자로서 오초아 가족과 맺은 견고한 신뢰에 있다. 무려 3년 동안 Luke Lorentzen은 오초아 가족의 구급차 뒷편에서 시간을 보냈다(기사 출처: www.npr.org). 이 다큐에 드러난 불법과 합법의 미묘한 회색지대는 오초아 가족의 관대한 허락이 없이는 담아낼 수 없다. 'Midnight Family'는 관찰 대상에 대한 신뢰와 이해, 거기에 더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 의식도 보여준다. 구급차에서 밤을 보내는 오초아 가족을 찍기 위해 감독은 스스로 그 가족의 일원, 도시의 일부분이 되었다. 'Midnight Family'는 좋은 다큐멘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 답안으로 손색이 없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3/midnight-family2019.html


8. 전후 미국의 필름 느와르 1: Raoul Walsh 감독의 'White Heat(1949)'

  전후 미국 여성들은 주부,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요청받았다. 'White Heat'의 Ma의 캐릭터에는 가정에 안착하지 못하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에 대한 비난이 내포되어 있다. 영화는 Ma의 모성을 범죄자의 파멸적 최후와 병치시킨다. 그렇게 영화 'White Heat'는 안온한 가정을 만들어낼 수 없는 어머니와 모성을 단죄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2/1-raoul-walsh-white-heat1949.html


9.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ive, 1946-1955) 1편: 은빛산의 끝(銀嶺の果て, Snow Trail, 1947)

  GHQ는 일본 국민이 침략 전쟁을 일으킨 과거를 참회하며 전후 재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길 원했다. 미군정 치하에서 제작된 영화 '은빛산의 끝'은 영화가 정치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문화 전략임을 입증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post-war-japan-moive-1946-1955-1-snow.html 


10. 전후 일본 영화(Post-war Japan Moive, 1946-1955) 2편: 어느 멋진 일요일(素晴らしき日曜日, One Wonderful Sunday, 1947)

  희망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부터 마음으로 무언가를 건져 올려내는 일이다. '어느 멋진 일요일'에는 폐허의 잔재 위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의 초상이 아로새겨져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암울한 청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을 드리우는 일을 잊지 않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post-war-japan-moive-1946-1955-2-one.html


11. 비밀과 거짓말, The Quiet Girl(2022)

  영화 'The Quiet Girl(2022)'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선물한다. 그것은 근원적 정서의 교감(交感)이다. 9살 소녀 카이트가 느끼는 외로움과 슬픔, 기쁨, 그리고 아스라하게 감지되는 생의 의미까지 관객은 그 모든 것을 함께 한다. Colm Bairéad 감독은 아일랜드의 평화로운 풍광 속에 한 소녀의 내적 여정을 아로새겨 넣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quiet-girl2022.html


12. 12년의 기다림, Emily the Criminal(2022)

  감독 John Patton Ford는 자본주의의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 그 생존의 의미를 묻는다. 영리하고 치밀한 이 스릴러 영화는 관객에게 재미와 함께 쓰디쓴 성찰을 가져다 준다. 에밀리 역의 Aubrey Plaza는 뛰어난 현실 밀착형 연기로, 그리고 이 영화의 제작자로서 'Emily the Criminal(2022)'에 놀라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12/12-emily-criminal2022.html


13. 실패한 부성(父性)의 서사, Guillermo del Toro's Pinocchio(2022)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원작의 세계를 과감하게 해체해 버리고 그 자리에 실패한 아버지들의 서사를 이어붙였다. 이 새로운 '피노키오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어른들로 하여금 현재 자신이 맺고 있는 부모-자식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을 요청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guillermo-del-toros-pinocchio2022.html


14. EO(2022): 당나귀 EO,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의 풍경으로 들어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맺고 있는 관계가 매우 이기적이고 야만적임을 보여준다. 영화 'EO'는 떠돌이 당나귀의 눈을 통해 인류세의 어둡고 파괴적인 이면을 폭로한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3/01/eo2022-eo-anthropocene.html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토마 형제의 소식을 들은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나는 박사 학위를 받고 몇몇 대학에 시간 강사로 나가고 있었다. 내가 교수 채용 공고를 안본 것은 꽤 오래 되었다. 대학의 교수 자리는 인맥으로 얼키고 설켜 있었다. 친화력도 정치력도 없는 나는 그런 자리와 동떨어져 있었다. 나는 강의 외에 이런저런 잡지에 글을 썼다. 그렇게 나오는 돈으로 겨우 생활비를 메꾸어 나가고 있었다. 공부가 좋아서 여기까지 오기는 했다. 하지만 때로는 나 자신이 책 보따리 들고 지식을 파는 떠돌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은 전주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가 있었다. 오후 3시로 예정된 강의 시간에 맞추려면 용산역에 12시 전에는 도착해야만 했다. 어제는 새벽 4시에 잠이 들었던가?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시계를 보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충 뭐라도 먹고 나가야만 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낸 후, 식탁의 씨리얼 상자에서 씨리얼을 덜어내 그릇에 조금 담았다. 그리고는 TV  리모컨을 찾아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채널은 늘 케이블 방송의 뉴스 채널에 맞추어져 있었다. 뉴스 채널에서 나오는 소리는 나에게는 일종의 배경음이었다. 나는 그 채널의 뉴스나 정치 토론을 주의깊게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밥을 먹거나 설거지를 할 때, 그리고 빨래를 개킬 때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는 백색 소음과도 같은 방송이었다.

  TV 화면 속에서는 최근에 개정된 정치 자금법에 대한 시사 토론이 한창이었다. 여자 앵커는 패널들에게 발언 기회를 배분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 평론가들, 그리고 변호사가 나와서 이런저런 소리를 쏟아내었다. 입맛도 없는데다 버석버석한 씨리얼은 목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았다. 나는 저렇게 TV 패널로 나오면 회당 출연료가 얼마나 될지를 생각했다. 내가 진이 빠지게 강의하고 나서 받는 돈 보다는 많을 것 같았다. 정치 평론가 둘이서 말로써 치고박는 동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변호사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두 분 평론가님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번 법안에 대해 박 변호사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데요."

  그 변호사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개정안과 이전 법안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잘 정돈된 외모에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가지고 있었다. 방송이 체질에 맞는 사람이군. 나는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은색 무광테 안경을 쓴 그 변호사의 얼굴이 웬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내가 전에 저 사람을 본 적이 있었나?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법조계 사람이나 변호사를 만나본 적은 없었다. 이상한 기시감(旣視感)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나는 식탁에서 일어섰다. 반쯤 먹다말은 씨리얼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부어 넣었을 때, 마침내 내 머릿속에 전등불이 켜지듯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수도원에서 만났던 지원자 요한 형제였다.

  요한 형제는 사법 고시를 패스하고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가끔 그 형제가 수도원에서 계속 살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이제 TV 화면에서 변호사란 직함을 달고 나온 그의 모습은 내 궁금증에 답을 주었다. 마침내 TV 토론이 끝났다. 패널들의 이름이 화면의 하단 자막에 뜰 때 나는 그 형제의 이름을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요한 형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 그랬던 거구나. 결국 저렇게 수도원 밖에서 살아갈 거면서 그는 왜 수도원에 들어간 것일까? 그에게 수도 성소란 한때의 바람, 객기 같은 것이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강의 자료를 챙겨서 집에서 나오는 동안 나는 요한 형제의 과거와 현재를 냉소적으로 가늠해 보았다.      

  목요일, 한낮의 용산역은 한산했다. 탑승 시간까지는 아직 15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책을 꺼내어 읽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나는 담배라도 피우고 오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어디에다 두고 챙겨오지 못한 것인지 담배는 외투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 앞에 있는 대형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대의 TV에서 한쪽은 뉴스가, 다른 한쪽에서는 의학 정보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의학 정보 프로그램이 나오는 채널 쪽에 귀를 기울였다. 정형외과 전문의로 소개된 이는 오십견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나는 오른쪽 어깨가 자꾸 뻑뻑하고 아팠다. 그 의사가 나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것도 같았다.

  "오십견은 노화로 인한 관절의 퇴행성 변화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오십견에 여러가지 원인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지요."

  노화라... 참으로 서글프게 들리는 단어였다. 쑤시고 아픈 어깨만 나의 나이들어감을 증명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희끗희끗해지는 앞머리를 어찌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중이었다. 염색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TV 속 의사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내 나이 또래의 그는 선명한 화질의 TV 화면 속에서 매꼬롬한 얼굴로 비춰졌다. 주름살도, 흰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태도와 목소리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베어있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오십견은 노화에 따른 자연적 증상이 아니라 질환입니다. 그 점을 시청자 여러분께서 명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가서 치료를 잘 받으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저 의사의 말투는... 분명 언젠가 내가 들어본 적이 있는 말투였다. 뭐였지?

  "특이체질이 아니라면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내가 수도원에서 벌에 쏘였을 때,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참으로 이상한 날이었다. 나는 놀람상자에서 튀어나온 스프링 글러브에 연타를 맞은 사람 같았다. TV 화면의 정형외과 의사는 지원자 아오스딩 형제였다. 그가 수도회에 입회하던 날에 그의 부친은 수도원 정문에 드러누웠다고 했었다. 오래전, 아오스딩 형제의 부친은 그런 쇼를 할 필요가 없었다. 병원장집 아들은 부친의 뜻을 잘 이어받았다.

  "12시 3분에 출발하는 전주행 ktx 열차에 탑승하실 승객께서는 5번, 5번 승강장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타야할 기차의 안내 방송이 두어 번 나간 후 나는 대합실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객차 안에서 내 자리를 찾아서 앉고나서야 멍해진 머리가 좀 나아진 것 같았다. 때로 아주 오래된 일기장을 들여다 보노라면 나는 얼른 덮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서른 살, 겨울 수도원에서의 기억은 나에게 그런 일기장의 이야기로 남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열차 안에서는 연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하릴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 늦게 잠이 들어서였는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형제님!"

  나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다 보았다. 갈색의 수도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서있었다. 그의 팔목에는 어린 아기 콘도르가 얌전히 앉아있었다. 형형색색의 실들로 뿔을 장식한 알파카와 라마 무리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토마 형제였다. 토마 형제는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토마 형제에게 서둘러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토마 형제는 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빠앙, 짧은 기적 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토마 수사는 페루에서 선종(善終)했습니다. 작년 10월에요."
 
  한참의 침묵 끝에 마르코 수사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그리 된 건가요?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요?"
  "글쎄요. 그 일을 사고라고 해야할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나는 토마 형제에게 불운이 겹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운이요?"
  "그래요. 토마 수사는 빈민촌 사목을 위해 리마 외곽의 가난한 동네를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방문했던 어느 집에서 손님이 왔다고 음식을 내놓았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게 상한 음식이었던 게지요. 처음에는 가벼운 배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패혈증으로 악화가 되었어요. 현지 병원에서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서... 수도회에서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지요. 게다가 페루는 직항편도 없어요. 여기 수사님이 리마에 도착하고 나니 장례 미사까지 끝나 있었다 하더군요."
  "아..."

  나는 마르코 수사님의 이야기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묘비에 새겨진 생몰년(生歿年)을 보니 토마 형제가 세상을 떠날 때의 나이는 스물 여덟이었다.

  "그곳 수도회에서는 사목을 나갈 때 신자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고 들었어요. 위생 상태라던가 문제가 있는 음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토마 수사는 그 음식을 거절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음식에 손을 대지 않으면 그들에게 성의가 무시당했다는 인상을 줄까 걱정했던 것 같아요. 결국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바보 같은 사람 같으니.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분별력이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토마 형제는 현지 수도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이제는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린 토마 형제에게 화가 치밀었다.

  "형제가 토마 수사 안부를 물었을 때, 사실대로 이야기 해야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알았던 누군가의 이른 죽음은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알게 되었으니 형제가 토마 수사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면 좋겠네요."
  "토마 수사에게는 키워주신 친할머니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분께 소식이 전해졌을까요? 충격이 크셨을 텐데."
  "토마 수사의 조모님은 수사가 수도회에 입회하던 해에 돌아가셨어요. 알고 보니 토마 형제는 혈혈단신이더군요. 수도회에서 토마 수사의 일가친척에게 연락을 해보려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왜냐하면... 토마 형제의 유골함을 전해주어야 했으니까요."
  "이렇게 수도회 묘지가 있는데도요?"
  "형제님, 수도회에는 규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곳은 종신 서원한 수사님들을 위한 장소입니다.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토마 수사는 그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요."
 
  그 말을 하는 마르코 수사님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렇군요."
  "결국 원장 신부님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토마 형제를 무연고 묘지에 묻히도록 할 수는 없었어요. 수도회 안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지만 나도 그 일만큼은 원장 신부님의 뜻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토마 형제의 묘비에 손을 얹어 보았다. 이렇게 토마 형제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안내실의 비오 수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오게 된 것도 하느님의 뜻일 수 있다고. 그랬다. 정말로 그러했다. 나는 진심으로 토마 형제의 안식을 기원했다. 그는 그곳에 묻힌 수도회의 형제들과 평화를 함께 누릴 자격이 있었다.

  "형제님의 평화를 빕니다. 박사 과정도 잘 끝마치세요."
  "수사님,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르코 수사님과 나는 수도원의 정문 앞에서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내딛던 나의 등뒤로 수도원의 두꺼운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차르르륵 쿵. 그것은 이제까지 열려있던 내 청춘의 문이 닫히는 소리이기도 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마지막으로 수도원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안녕. 나는 사라져가는 청춘의 뒷모습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5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숲길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저기에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이름이 복순이였구요. 그런데 안보이네요."
  "아, 복순이요. 작년 여름 무렵이었나? 밥을 줘도 안먹고 잠만 자길래 좀 이상하다 했었지요. 그러더니 시름시름 앓더군요. 결국 가을이 오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복순이가 토마 형제를 잘 따랐던 기억이 나네요."
  "그랬죠. 우리들끼리는 토마 형제가 떠나고 나서 개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 그런 이야기도 하고. 복순이도 참 불쌍하지요. 나름 사연도 있고."
  "사연이요?"
  "버려진 개였으니까요. 녀석을 발견한 건 수도원 문 앞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인근 마을의 개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을 어르신에게 혹시 개를 잃어버린 집이 있냐고 물었죠. 근데 없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떠돌이 개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하더군요. 마을 근처에 지방 국도가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종종 개를 내버리고 간다 들었습니다. 아마 그런 개들 가운데 하나일 거라고... 하는 수 없이 우리가 복순이를 거두기로 했지요."

  나는 외진 산골의 수도원에 왜 저리 큰 개가 목줄에 묶여서 지내나 궁금했었다. 그 의문은 5년 뒤에야 풀렸다. 토마 형제가 복순이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안좋겠구나 싶은 생각도 얼핏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마르코 수사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복순이는 토마 형제와 정이 많이 들었을 거에요. 내 생각에는... 그 정이라는 거, 애착이 복순이를 죽게 만들었다고 봐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건 참 좋은 겁니다. 하지만 수도자에게는 그 좋은 가치가 걸림돌이 됩니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일년에 한 번, 회원들의 방을 다 바꾸어 이사하게 합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물건도 최소한의 개인 용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놓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도록 하지요. 어느 공간, 물건에 익숙해지면 정이 듭니다. 그 안온함은 긴장을 풀게 만들고요. 수도자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시선을 두어야 해요. 칼날 위를 걷듯 늘 자신의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나에게 마르코 수사의 말은 토마 형제를 에둘러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다. 토마 형제가 복순이한테 너무 잘 대해주었고, 그 길들임 때문에 토마 형제가 떠난 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개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수도 생활의 본질이란 어쩌면 인간적인 애정에 대한 결별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독함, 모질음과도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 기억 속 토마 형제는 분명 그러한 수도자의 모습에는 부합되지 않았다.

  마르코 수사님과 나는 마침내 정원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다양한 꽃들이 조화를 이루어 피어있었다. 분홍색의 작은 고깔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초롱꽃, 자줏빛 꽃잎의 작약, 흰색의 철쭉, 한 무더기를 이룬 노란색의 금계국, 주황색의 큰나리꽃, 그리고 가장 화려한 붉은 장미가 정원의 울타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정원의 중앙에는 작은 성모상이 있었다. 마르코 수사님은 그 성모상 앞에서 잠시 무릎을 굽히고 인사했다.

  "우리 수도회의 창립자 신부님께서는 수도회를 성모님께 봉헌하셨습니다. 모든 회원들은 첫 서원 때 자신의 영세명 앞에 '마리아'라는 이름을 새로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제 이름도 마리아 마르코가 되었지요. 어쩔 때는 서로를 마리아 수사님이라고 불러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르코 수사님은 웃음을 보였다. 나는 언젠가 토마 형제를 만나면 '마리아 토마 수사님'으로 불러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수사님과 함께 찬찬히 정원을 둘러보던 나는 정원 끝에서 작은 팻말을 발견했다. 그 팻말에는 '기억의 공간'이라는 이름과 함께 붉은색 화살표가 위로 향하는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억의 공간이라... 이 팻말은 어떤 곳을 가리키는 건가요?"
  "수도회의 묘지입니다. 먼저 주님 곁으로 떠난 수도회 회원들이 잠든 곳이지요."

  내가 5년 전, 수도원에 머물렀을 때에는 수도원 안에 묘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강원도 산골의 매서운 추위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만 보냈던 기억이 났다. 마르코 수사님은 나에게 그곳에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수도원의 묘지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해졌다. 한편으로 그것은 종교학 전공자로서의 학문적 관심이기도 했다. 잘 정돈된 작은 오솔길을 한 10여분 정도 걸었을까? 얕은 둔덕이 층을 이루며 자리한 묘지가 눈에 들어왔다.

  "수도회가 세워진 후, 스물 일곱 분의 수사님들이 영면하셨습니다."

  묘지의 제일 상단층에서부터 아랫부분은 가장 자리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그 계단을 따라 위에까지 가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화창한 5월의 봄날인데도 묘지라는 장소가 주는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대신 아랫부분을 살펴보기로 했다. 윗부분의 무덤에는 잔디가 보기좋게 잘 자라고 있었지만, 아래쪽은 최근에 만들어진 곳이라 잔디 보다는 봉분의 붉은 흙이 도드라져 보였다. 특이하게도 초록색 천테이프로 네 귀퉁이를 둘러 표시를 해둔 곳이 있었다.

  "여기는 왜 이런 표시가 되어있나요?"
  "베드로 수사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요. 수사님은 부산으로 떠나기 전에 이곳을 둘러보고 가셨어요."

  나는 자신의 삶이 다한 후에 자신이 묻히게 될 곳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한없이 쓸쓸한 마음으로 그 앞에 서있던 나는 바로 옆 묘소의 비석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기에는 내가 아는 이의 이름이 있었다.

  '변성식 마리아 토마, 주님의 착한 종이 여기에 잠들다'

  도대체 왜, 토마 형제의 이름이 여기에 있는가? 마르코 수사님은 토마 형제가 페루로 떠났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마르코 수사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사님은 마치 돌기둥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굳은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베드로 수사님이 성소자 담당이셨을 때 알고 지내셨다구요. 수사님이 그 사도직을 7년인가 하셨을 겁니다. 저는 작년부터 수사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요. 형제님은 성소자 시절에 수도원에 와본 적이 있던가요?"
  "네, 베드로 수사님이 저를 여기서 열흘 동안 머물도록 해주셨습니다. 벌써 5년 전이네요."
  "열흘 동안이나요? 보통 입회를 앞둔 성소자들은 수도원에서 사나흘 머물도록 허락하기는 합니다. 길어야 일주일이지요. 그런데 열흘이라니, 좀 놀랍네요. 아마도 베드로 수사님이 형제를 각별하게 생각했던 것 같군요."

  그런 것이었나? 나는 수도원에 머물렀던 마지막날 아침, 입회 제의를 거절하는 나를 바라보던 수사님의 표정을 떠올렸다. 수사님은 겉으로는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당황스러움과 실망이 미묘하게 포개어져 있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제가... 베드로 수사님의 기대를 저버린 셈이지요."
  "수도 성소는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무수한 소명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베드로 수사님도 형제님의 선택을 기꺼이 축복하셨을 겁니다. 그래, 지금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대학원에서 종교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5년 만이라...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수사님이 부산에 계셔서... 사실, 수사님은 지금 건강이 많이 안좋으십니다." 
  "수사님께 무슨 문제라도..."
  "베드로 수사님은 암투병 중이세요. 말기암이라 호스피스 병동에 계십니다."

  베드로 수사님은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좀 마르기는 했어도 강건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분이다. 갑작스런 병마에 수사님이 그리되었다는 이야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수사님께는 제가 나중에 형제님 이야기를 전하지요. 소식 들으면 분명히 반가워하실 겁니다."

  마르코 수사님은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보더니 제안을 하나 했다.

  "형제님, 오랜만에 왔으니 수도원이라도 좀 둘러보고 가는 건 어때요? 새로 들어온 지원자 중에 조경을 전공한 형제가 있습니다. 그 형제가 수도원 정원을 열심히 가꿔놓은 덕분에 그곳이 아주 보기좋아졌어요. 오늘 날씨도 좋고, 형제님이 괜찮다면 함께 나갑시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견실을 나오면서 나는 비오 수사에게 커피 잘 마셨다고 인사를 했다. 비오 수사가 앉아있던 안내실의 책상에는 묵주알과 매듭실이 놓여있었다.

  "손님들에게 선물로 드리려고 틈날 때마다 조금씩 만들고 있습니다. 5단 미니 묵주를 하나 드릴게요. 여기 오신 기념으로 가져가세요."

  푸른색의 묵주알로 엮은 작은 묵주가 수사의 손에서 나에게 건네졌다. 나는 비오 수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마르코 수사님을 따라 수도원의 정원을 향해 걸어갔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곳의 풍경은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나는 토마 형제의 이야기를 듣던 그 겨울의 풍경을 떠올렸다. 토마 형제는 이곳 수도원에 있을까? 아니면 첫 서원 후 새로운 사도직을 받고 다른 분원으로 떠났을까? 토마 형제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것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수사님, 수도원에서 지낼 때 기억나는 지원자 형제가 있었습니다. 토마 형제라고. 참 마음씨가 따뜻했던 형제였어요. 그 형제는 잘 지내고 있나요?"

  나보다 서너 발자국 앞서서 걷던 마르코 수사님이 걸음을 멈추었다. 수사님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토마 수사를 아시는군요. 토마 형제는 작년 봄에 첫 서원을 했습니다. 선교 사도직을 받고 페루로 떠났지요."
  "페루요?"
  "그렇습니다. 우리 수도회의 가장 큰 사명은 선교에 있습니다. 리마에 관구 수도회가 있는데, 토마 형제는 그곳에서 수련을 이어가는 걸로 결정이 났어요."

  나에게 '페루'는 거친 암벽 너머 드높이 날아다니는 콘도르와 털이 보글보글한 알파카가 있는 풍경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토마 형제는 지금 그 먼 곳에 있다. 나는 그가 유기서원자로 무사히 첫 서원을 한 것에 안도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토마 형제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 반가웠다. 그렇게 마르코 수사님과 정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복순이가 지내던 우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