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타임 2시간 50분, 노래와 춤이 나오는 인도 영화는 극장 상영시 중간 휴식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긴 영화들이 많다. 라지 카푸르(Raj Kapoor) 감독의 1955년작 'Shree 420'은 7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도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영화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그가 만든 영화들은 신생 독립국 인도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감독 자신이 주연을 맡아서 노래와 연기를 소화해내는데, 이 다재다능한 영화인은 찰리 채플린을 모방한 연기로 인도의 채플린으로 불렸다. 채플린의 고유한 연기 스타일인 떠돌이, 부랑자의 이미지를 차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보여줄 것이 아주 많음을 이 영화로 입증한다.

  고향 알라하바드를 떠나 봄베이로 온 시골 청년 라지는 곧 도시의 삶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도 그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세탁소 일 뿐이다. 착하고 아름다운 비드야를 만나 미래를 꿈꾸던 라지는 클럽 댄서 마야의 유혹으로 사기꾼의 세계에 발을 디딘다. 비드야는 라지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지만, 돈의 위력에 사로잡힌 라지는 부도덕한 사업가 소나찬드의 수하가 되어 도박과 사기 사업에 손을 댄다. 큰 돈을 만지게 되었지만 불행하다고 느낀 라지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소나찬드는 라지의 이름을 팔아 봄베이 빈민들을 상대로 커다란 사기극을 꾸민다. 라지는 사기꾼 생활을 청산하고 비드야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 'Shree'는 힌디어로 호칭 '~씨'에 해당한다. 숫자 '420'은 인도 형법에서 사기와 절도에 해당하는 죄목의 번호를 뜻한다. 인도에서 'Mr. 420'이란 말은 사기꾼을 뜻하는 말로, 경멸의 의미를 포함한다. 정직함으로 메달까지 받았던 라지는 돈이 떨어져 전당포에 그 메달을 맡긴다.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는 그에게 대도시 봄베이의 삶은 라지를 돈에 목마르게 만든다. 정직을 던져버리고 유능한 사기꾼이 된 그는 소나찬드를 비롯해 사업가와 유력 인사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목격한다. 자신의 집을 갖기 원하는 빈민들에게 100루피로 집을 주겠다며 라지의 이름을 내걸어 사기극을 벌이는 소나찬드야말로 진짜 'Shree 420'이다. 귀에 착착 감기는 즐거운 노래와 춤이 있는 이 영화에는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 메시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가난한 이들이 길바닥에서 자는 봄베이의 삶.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도 없는 나라에서 정직한 젊은이는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이 사기꾼은 결국 회심(回心)한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라지는 빈민들을 상대로 단합과 연대를 호소한다. 모래알처럼 흩어져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고, 힘을 합쳐 우리의 요구를 정부에 전달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라지의 연설은 사회주의적 신념과 맞닿아 있다. 'Shree 420'이 드러낸 인도 사회의 문제점은 매우 통렬하다. 과연 오늘날의 인도는 영화 속 라지가 촉구한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냈는가? 지금의 인도가 이루어낸 경제 성장의 이면에 여전히 극심한 빈부 격차가 존재한다. 그 점은 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라지가 보여주는 도덕적 타락과 일탈은 하층 계급이 직면하는 윤리적 갈등을 보여준다. 정직한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라지는 사기꾼이 된다. 그가 나중에 마음을 돌이킨 것은 사기로 고통받게 될 빈민가 사람들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Shree 420'은 계급적 연대와 도덕적 선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영화는 진중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와 함께 영화적 즐거움을 전면에 앞세워 관객들을 유인한다. 선의 상징으로 나오는 비드야와 대척점에 선 마야가 보여주는 도발적인 춤 공연, 여러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군무와 합창, 빼어난 호흡을 보여주는 비드야와 라지의 이중창은 긴 러닝타임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Shree 420'을 만나는 오늘날의 관객들은 현재 인도 영화의 산업적 토대와 그 기원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라지는 비드야와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길을 떠난다. 인도 영화가 자국 내에서 구축한 독보적 지위는 오랜 전통과 함께 라지 카푸르 같은 재능있는 영화인들이 개척해낸 길 위에 세워진 것이다.    



*사진 출처: discogs.com




*다음 글은 월요일에 올라옵니다. 무더운 여름,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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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붉은 가막살 나무(Калина красная, 1973)'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교도소에서 합창 공연을 펼치는 재소자들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절도죄로 형기를 마치고 나온 예고르(바실리 슉신 분)는 펜팔로 알게된 여자 친구 류바를 찾아간다. 평화롭고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류바는 노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류바와의 미래를 꿈꾸는 예고르. 그러나 그는 전과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냉대와 편견과 마주하고 실망하게 된다. 과연 예고르는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바실리 슉신(
Vasily Shukshin) 감독의 1973년작 '붉은 가막살 나무(Калина красная)'는 구 소련 영화들 가운데 경이적인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개봉 첫해의 관객은 6250만명에 달했다. 소련은 국가가 영화사를 설립하고 운영했으며, 영화의 상영 및 배급도 국가의 관리하에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로 인한 수익은 모두 국고로 귀속되었는데, 소련 영화의 수익률은 대략 900%정도 였다. 당시 소련 관객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렸던 장르는 '코미디'였다. 코미디 영화의 감독들은 높은 수익을 내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대우도 남달랐다. 그런 현실 속에서 슉신의 영화가 이룬 성취는 특별해 보인다. 출소한 재소자의 귀향이야기를 담은 영화에 왜 소련의 관객들은 그토록 호응했던 것일까? 사실 러시아인이 아닌 외국인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예고르는 류바의 마을에 와서 붉은 가막살 나무 숲속을 거닐며 새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그 나무를 무척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붉은 가막살 나무는 자작나무처럼 흰색의 목질부를 갖고 있으며 작고 붉은 열매들이 열린다. 러시아어로 '칼리나 크라스나야(Kalina krasnaya, 영화의 제목이기도 함)'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러시아 민속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띤다. 특히 열매의 '빨강색'은 사랑과 아름다움, 젊음과 열정, 슬픔과 고통에 이르는 정서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영화 속에서 예고르는 붉은색 셔츠를 입고 나온다. 그것은 가막살 나무의 열매색이다. 예고르에게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의미하는 색이며, 농촌 출신인 그의 근원으로서의 자연을 떠올리는 색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붉은색은 예고르에게 슬픔이기도 하다. 그는 류바에게 자신의 별명을 '슬픔(grief)'으로 소개하는데, 이것은 범죄와 이어진 어두운 과거와 정상적인 삶의 경로에서 벗어난 이의 고통과도 맞닿아 있다. 

  그 고통은 예고르가 류바와 함께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간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는 류바에게 사회복지사인 것처럼 위장해서 노파의 안부를 물어달라고 부탁한다. 아들 세 명을 전쟁에서 잃은 노파는 나머지 아들 하나는 20년 동안 만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차마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예고르는 나중에서야 류바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흐느낀다. 원래 예고르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로 했던 배우가 있었으나, 늙은 배역의 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슉신은 마을 주민 가운데 한 명을 섭외했다. 실제로 아들 셋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노파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했고, 슉신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담았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노인의 연기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련 당국이 '애국 전쟁'이라는 명칭을 붙이며 영광스런 승리로 포장한 그 전쟁은 많은 소련인들에게 고통스러운 과거였다. 노파는 아들의 죽음으로 자신이 받는 연금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적은 액수였다. 그 장면에 대해 검열 당국은 불편한 심기를 보였고, 슉신은 편집 과정 내내 당국과 지루하고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출소한 범죄자가 착실하게 갱생의 길을 가면서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당국이 원하는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그러나 슉신은 예고르를 예정된 비극으로 이끈다. 과거 조직원들은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으려는 예고르를 응징한다. 그가 막 트랙터로 씨를 뿌린 밭의 가장자리 풀숲에서 예고르는 피를 흘리며 류바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흰색의 셔츠를 붉게 물들이는 예고르의 피는 그렇게 '칼리나 크리스나야' 열매색이 가진 또 다른 의미인 슬픔과 고통에 도달한다. 슉신의 아내이기도 했던 류바 역의 배우 리디아 페도세예바는 죽어가는 예고르를 안고 통곡하는데, 그 장면이 더 슬프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 이듬해인 1974년, 새로운 영화를 촬영 중이던 슉신이 사고로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붉은 가막살 나무'에는 전쟁의 상처, 좌절된 꿈, 거기에 국경 지대의 소박한 농촌 마을과 자연의 풍광이 더해져 있다. 슉신 자신이 각본을 쓴 이 영화는 경제 불황의 터널을 지나는 당시의 소련인의 감성과 크게 공명했다. 영화의 엄청난 흥행에는 당시 관객들의 관객성, 거기에 러시아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근원적 정서도 작용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외국인의 시선으로 단지 영화적 의미만을 분석하는 것은 피상적인 작업에 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 속 예고르를 통해 슉신이 보여주였던 자연과 땅, 농촌의 소박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은 언어와 민족성의 장벽을 뛰어넘어 전달된다. 그렇게 오늘날의 관객은 시인이며 소설가, 배우이며 감독이었던 바실리 슉신의 유작 '붉은 가막살 나무'를 통해 러시아의 정신과 만난다. 



*사진 출처: mosfilm.itcenter.pro   영화 '붉은 가막살 나무' 촬영 현장의 바실리 슉신(붉은색 셔츠)과 아내 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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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och'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속어로 쓰이는 이 단어는 남에게 무언가를 뜯어낸다는 뜻으로 쓰인다. 예를 들면 담배 한 개피 얻는 것, 빈대를 붙는 행위 같은 것들을 총칭한다. 그다지 좋지 않은 어감의 단어인데, 에릭 로메르의 '사자 자리(Le Signe Du Lion, 1959)'를 보는 내내 그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인공 피에르는 가진 돈이 다 떨어져서 어떻게든 자신의 친구와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파리 시내를 헤매고 다닌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뜨거운 한여름의 파리에 그가 빌붙을 친구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났다. 해외 출장을 가거나, 더위를 피해 휴가지로 가버렸다. 명색이 작곡가로 파리 문화계에 나름의 인맥을 갖고 있는 피에르는 노숙자로 전락한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에릭 로메르의 장편 데뷔작 '사자 자리'는 별자리의 운명을 믿는 남자 피에르의 천국과 지옥을 그린다.

  피에르(제스 한 분)의 천국은 한 장의 전보에서부터 시작된다. 후사가 없는 부자 친척 아주머니의 부고는 피에르에게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다. 조카인 자신에게 상속이 될 거라 믿는 피에르는 친구들을 죄다 불러 모아 흥청망청 파티를 연다. 그저 그런 작곡가로 파리 생활을 겨우 겨우 버티던 이 독일계 미국인은 자신의 별자리인 사자 자리가 이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고 믿는다. 술, 음악, 여자 친구, 거기다 객기 넘치는 한 밤의 총질까지 피에르의 자축 파티는 날이 새도록 이어진다. 그런데 별자리의 운명이 피에르를 배반한 것일까? 유언장에 적힌 상속자는 피에르가 아닌 다른 사촌이었던 것. 피에르는 그렇게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다. 가진 책들을 팔아 끼니를 해결하고, 나중에는 숙박비를 내지 못해 허름한 호텔에서도 쫓겨난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파리의 지인들을 수소문하며 다니는 피에르. 거는 전화마다 어디론가 떠나서 없다는 대답만 듣는다. 단벌 양복 바지에는 청어 통조림 뜯다가 흘린 기름이 묻어 있고, 수중에는 정말이지 땡전 한 푼도 없다. 그는 푹푹 찌는 7월의 파리를 무작정 걷는다. 피에르의 행색은 시간이 갈수록 그가 지나쳐가는 파리의 거지와 노숙자를 닮아간다.

  에릭 로메르는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으로 피에르의 몰락을 그려낸다. 6월 22일에 부고 전보로 시작된 피에르의 행운은 7월 13일에는 유언장 내용을 알리는 전보에 의해 끔찍한 불운으로 귀결된다. 그때부터 시작된 피에르의 처절한 파리 생존기는 노숙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로메르는 피에르가 헤매고 다니는 파리 시내 곳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회화적으로 배치한다. 나들이 나온 연인들과 가족들, 유람선의 관광객들, 카페의 여유로운 사람들... 피에르의 눈에는 자신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물건 훔치다 들켜서 망신당하고, 강가에 떠내려온 과자 봉지 건지려고 애를 쓰고, 피에르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육체 노동을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룸펜 예술가에게 몸을 쓰는 일은 생존 선택지에 없다. 피에르의 몰락은 너무나도 처절하게 그려지지만, 거기에는 로메르만의 유머 감각이 느껴진다. 로메르의 세계에서 운명과 우연의 힘을 늘 발견했던 관객들이라면 어딘가에서 터질 피에르의 인생 한 방을 기다리게 된다.

  로메르는 피에르에게 닥친 행운과 불운을 시간에 따른 이미지로 변주한다. 피에르가 노숙자가 되기까지의 행색의 변화는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땀에 절은 양복, 면도를 하지 못해 덥수룩해진 수염, 지워지지 않는 바지의 생선 기름 얼룩을 보면서 관객들은 피에르가 가진 것 가운데 그나마 온전한 것이 신발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그때, 카메라는 터벅터벅 걷고 있는 피에르의 뒷모습과 함께 구두를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가 피에르의 구두는 돌부리에 채여 터져 버린다. 로메르의 세계는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으며, 운명론이 지배하는 그 세계에서 돌발적인 변수와 일탈까지도 조화에 기여한다. 완전 거지꼴로 노숙자가 되어버린 피에르가 친구에게 발견된 것은 카페에서 자신의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때이다. 그 친구가 전한 소식은 피에르가 믿는 사자 자리의 행운이 결코 허황된 미신이 아님을 입증한다.

  이 영화에 쓰인 음악은 프랑스의 현대 음악 작곡가 Louis Saguer의 바이올린 소타나이다. 음울하고 날카로운 바이올린 선율은 피에르의 몰락을 따라가며, 그가 처한 운명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데에 기여한다. '사자 자리'는 1959년에 만들어졌으나 3년 뒤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영화는 상업적으로 철저히 실패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후 로메르가 만들어갈 거대하고 기이하며 아름다운 영화 세계의 전주곡으로 남는다. 피에르의 인생역전을 그린 '사자 자리'에는 그렇게 로메르의 영화적 세계에 대한 청사진이 담겨 있다.  
 



*사진 출처: list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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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아내(妻, 1953)'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카가와와 미네코는 결혼 10년차 부부다. 영화는 부부 각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관객은 결혼 10년 동안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서로 푸념하는 부부의 속내를 듣게 된다. 이 부부에게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들은 별다른 소통도 하지 않고 얼굴을 바라보는 일도 거의 없다. 아내에게 마음이 멀어진 남편은 사무실의 여직원에게 마음이 기운다. 무뚝뚝하며 돈에 집착하는 아내와는 달리, 여직원 사가라는 사근사근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성품을 지녔다. 아내가 아닌 새로운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나카가와. 아내는 남편의 변화를 눈치채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해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한다. 과연 이 부부는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Wife, 1953)'는 나루세 미키오의 '방랑기(1962)' 원작자이기도 했던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의 '갈색의 눈동자'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는 위기에 처한 부부를 통해 결혼 생활의 황량하고 고독한 풍경을 그려낸다.

  나카가와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먹는데, 밥에서 머리카락이 나온다. 미네코는 확실히 살림에는 별 뜻이 없는 듯하다. 그들 부부의 화해를 위해서 미네코의 친구는 장을 봐와서 식사 준비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친구가 본 미네코의 주방은 제대로 된 칼도 없고, 그나마 그 칼도 무딘 상태다. 친구는 자취생의 주방 같다고 말하고, 나카가와는 아내의 음식은 맛이 없다고 답한다. 이 아내는 그렇다고 남편의 심기를 잘 헤아리는 것도 아니다. 저녁에 책 좀 읽고 자려는 남편 옆에서 과자를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먹는다. 식사하고 나서는 젓가락으로 이를 아무렇지 않게 쑤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아내에게 나카가와는 마음이 멀어진다. 그렇다면 미네코의 삶의 낙은 뭘까? 교외에 2층 단독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세를 놓아 살림에 보태는 것을 보면 '돈'이 미네코의 주된 관심사인 것도 같다. 2층 세입자로 백수 남편 데리고 살던 술집 여종업원 에이코가 나가버리자, 미네코는 그 방을 에이코가 소개해준 동료에게 세를 준다. 새로 온 여자는 돈 많은 유부남을 꼬셔서 집에 드나들도록 만드는데, 미네코는 여자가 지불하는 높은 월세 때문에 그런 부도덕한 광경를 감수한다. 어쩌면 아이가 없고, 남편의 애정도 얻지 못한 미네코가 돈을 든든한 미래의 대비책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내에게서 나카가와는 매일 '직장'으로 도피하고 있다. 그곳에는 마음이 통하는 여직원 사가라가 있다. 사가라가 사무실을 그만두고 오사카로 떠나자, 나카가와는 출장길에 사가라와 재회한다. 그는 사가라의 어린 아들과 함께 여관에 하룻밤 머물면서 지내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와 놀아주는 그에게 사가라는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 묻는다. 그때 아이와 장난감 자동차로 놀아주던 나카가와는 장난감을 세게 밀다가 마루 밑으로 떨어뜨린다. 그냥 이 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만 말하는 나카가와에게 그 관계는 툇마루에서 굴러 떨어지는 자동차의 탈선 같은 것이다. 분명히 아내에게 마음이 멀어졌고, 결혼 생활에 대한 의지도 없지만 그는 결정을 미룬다.

  자, 그렇다면 남편의 바람을 확실히 알아챈 미네코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미네코는 남편의 배신을 용납할 수 없고,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이혼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사가라에게 편지를 써서 헤어지라고 종용하고, 나중에는 찾아가서 자신의 뜻을 밝힌다. 머리끄댕이 잡는 혈투는 벌어지지 않는다. 남편을 계속 만나면 약먹고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는 미네코를 사가라는 '구식'이라며 비웃는다. 사가라의 비웃음은 아주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에 나는 화면을 되돌려서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사가라는 나카가와에게 이별을 통보하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스스로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두 여성의 모습은 전후 일본 사회의 과도기적 변화를 보여준다. 구시대적 관습에 속한 미네코는 혼자서 꾸려가야할 생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이라는 내면의 감옥과 2층 주택의 한정된 공간에 자신을 유폐시킨다. 아버지에게서 재정적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친구와 함께 옷가게를 개업한 사가라는 미네코와는 달리 독립적인 여성의 삶을 살고 있다. 경제력을 가진 여성은 더이상 자신의 삶을 남자와 결혼이라는 틀에 끼워맞추지 않는다. 미네코의 세입자 에이코는 취업할 생각이 없는 백수 남편을 내쳐버린다. 전쟁이라는 변혁의 시기를 거치면서 전후 일본의 여성은 그렇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 나갔다.

  영화의 마지막은 첫부분에 나왔던 부부의 독백이 비슷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마치 수미쌍관을 이루는 그 구성은 그들 부부의 불모(不毛)의 비극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그 어떤 감정의 교류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매일의 삶을 이어가는 것. 남자는 매일 아침 직장으로 도피했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잠든다. 아내는 남편이 늘 하는 '피곤하다'는 말을 들으며, 맛없는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할 것이다. 나루세 미키오가 보여주는 이 결혼의 풍경은 너무나도 냉혹하고 끔찍하다. 화해도 결별도 아닌, 비극의 연장인 '아내'의 결말은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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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의 지평과 앙드레의 지평이 만났을 때,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My Dinner with Andre, 1981)


  "예전의 내 머릿속에는 예술과 음악으로 가득찼었는데, 내 나이 서른 여섯, 이젠 오로지 돈 생각만 할 뿐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궁핍한 극작가 월러스는 약간은 어색하고 불편한 저녁 식사 약속을 앞두고 있다. 연극계에서 잘 나가던 연출가 앙드레는 처자식을 내버려두고 어느날 갑자기 잠적했다. 월러스는 그가 티벳이며 세계 이곳저곳을 떠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가,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앙드레를 봤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려준 예전의 인연도 있고,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도 궁금해진 월러스는 앙드레와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한다. 1시간 5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 두 사람이 저녁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영화 속 등장인물 월러스와 앙드레는 실제 연극계 종사자로 실명으로 등장한다. 월러스는 친구 앙드레와 나눈 대화를 희곡으로 써서 연극으로 올릴 생각이었으나 영화가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소식을 들은 루이 말은 감독을 자청했고, 그렇게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가 만들어졌다.     

  월러스는 딱히 할 말도 없고, 질문을 계속 던짐으로써 앙드레가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유도한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앙드레의 말문이 터진다. 영화는 거의 앙드레의 1인극처럼 보일 정도다. 월러스는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다가, 식사가 끝날 무렵에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앙드레, 이 양반이 들려주는 방랑기가 정말 골때린다. 앙드레는 자신의 절친 그로토프스키의 연극 세미나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일반인 40명과 숲속에서 진행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연극 캠프는 하루종일 노래를 부르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일종의 실험적 연극 캠프였다. 앙드레는 계속해서 그로토프스키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째 그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예전에 연극 수업에서 들었던 이름이다. 그렇다.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는 폴란드 출신의 유명한 연출가로 일명 '가난한 연극'으로 연극 연출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사람이다.

  앙드레 그레고리는 그로토프스키가 미국에서 3년 남짓 체류할 때, 실제로 무척 가깝게 지냈고 그의 미국 정착을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수동적 관객의 존재를 배제하고, 연극의 원초적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로토프스키의 급진적 연극론은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는 미국 체류를 끝내고 이태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자신의 연극적 실험을 이어갔다. 나중에는 일반적 연극 연출은 포기하고, 자신과 가까운 친구와 연극 관계자들만을 초청한 연극 세미나를 이끌었다. 영화에서 앙드레가 말하는 숲속 연극 캠프 이야기는 그렇게 초청받아 참가한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불 없이 숲에서 지내기, 아침에 직접 빵 구워보기를 비롯해 파놓은 구덩이에 참가자를 들어가게 해서 머리만 내놓고 흙으로 덮기 등등,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기상천외한 실험 연극적 시도가 이어졌다. 영화에서 앙드레가 친구들이 자신을 구덩이에 내던져 파묻었다가 나중에 꺼냈다는 이야기도 결코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아무튼 이 특이하기 짝이 없는 연출가의 방랑은 폴란드의 숲, 스코틀랜드의 핀드혼, 사하라 사막 등등 세계 곳곳으로 이어진다. 도대체 앙드레는 왜 그런 곳을 다니며 무엇을 찾아 헤맸던 것일까? 매일매일 쌓이는 공과금 고지서와 씨름하고, 자신의 희곡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월러스에게 앙드레의 기행은 팔자 늘어진 유람처럼 보인다. 앙드레는 자신의 삶의 본질, 존재의 진정한 자각을 찾아 떠났다고 온갖 철학적인 수사를 늘어놓는다. 웨이트리스로 맞벌이하는 여자친구와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기를 꿈꾸는 월러스는 앙드레가 찾는 인생의 의미가 머나먼 나라들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녁에 마시다 놔둔 커피를 아침에 마시려는데 바퀴벌레가 없으면 만족한다는 월러스. 그가 뉴욕의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해준 전기 장판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자 앙드레의 반응은 이렇다.

  "전기 장판이 주는 안온함은 실재를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구. 그건 우리가 '추위'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지. 그런 것 없이 사는 것이 진짜 세계와 대면하는 거야."

  이미 전기 장판 없이 살 수 없는 몸뚱이가 되어버린 뉴요커 월러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앙드레를 바라본다. 월러스는 앙드레가 말하는 결정론적 세계관, 운명, 무의식 같은 것에 별로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식사가 끝나고 커피를 마실 때쯤 월러스는 앙드레의 이야기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는다. 아마 앙드레도 월러스가 말하는 일상의 행복과 과학적 합리주의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레스토랑의 손님들이 이미 1시간 전에 다 나가고 문 닫을 시간까지 이어진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 월러스는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늘 별 생각없이 바라보던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들에서 어릴 적 자신과 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린다. 어쩌면 앙드레와의 대화가 월러스의 세계를 조금은 바꾸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낯설고 기이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새삼 오래전 서양 현대 철학사를 한학기 동안 머리 아프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 강의가 결국 내게 남긴 것은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 한 조각이었다. 나의 지평과 너의 지평이 만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것, 월러스의 지평은 앙드레의 지평과 만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간다. 그건 앙드레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를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화로만 이루어진 이 이상하고 지루한 영화를 통해 자신의 영화적 지평을 넓히려는 이들은 언젠가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될 것이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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