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소설
1.
툭, 툭, 툭.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에는 마치 가느다란 붉은 실을 토해내듯 노을이 걸려있었다. 저건 노을이란다. 루미는 자신에게 노을을 알려준 이강에 대해 생각했다. 노, 을. 루미는 이강의 약간 느리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를 다시금 떠올렸다. 이강의 목소리는 어떠했지? 루미는 기억저장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강의 목소리를 꺼내 왔다.
"루미야, 이건 노을이야. 노, 을. 하늘이 흘리는 눈물 같은 것이지. 난 그렇게 생각하거든."
눈물. 루미는 눈물이라는 단어를 알고는 있지만, 자신은 그것을 흘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K-Centennial No.1657. 구산 센테니얼 공장에서 찍어낸 1657 모델의 안구(眼球). 그것이 루미였다. 이강은 공장에서 직배송된 인공 안구에 기꺼이 이름을 붙여주었다.
2.
새벽에 꿈을 꾸었다.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린 꿈. 열쇠는 팔찌 모양의 것이었는데, 칩이 들어있어서 그걸 현관문에다 대면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데 그 팔찌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건물 안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가 문이 열려진 어떤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열쇠를 찾아볼 셈이었다. 왜 알지도 못하는 남의 집에서 열쇠를 찾으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꿈이란 원래 말이 되지 않는 그런 것이니까. 그렇게 남의 집에 들어간 지 5분이나 되었나, 현관문이 열리고 그 집의 식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놀라서 얼어버린 나는 집주인에게 내가 도둑이 아니며, 단지 열쇠를 찾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인이 나를 신고했는지는 모른다. 그때쯤 꿈에서 깼다.
기분 나쁜 꿈이다. 열쇠를 잃어버린 데다가, 도둑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하루 종일 그 꿈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들은 신화학자의 꿈 강의가 생각났다. 그는 자신이 들었던 어떤 꿈 이야기를 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아주 늙은 할머니가 그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발을 잃고 맨발로 거리를 떠돈다는 꿈이었다.
"그 꿈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나 슬펐어요. 정말 슬픈 꿈이기 때문이죠. 신발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신발을 잃어버리고 헤맨다는 건, 자신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그 나이까지 살아왔다는 것이니까요."
노인의 꿈속 신발이 나에게는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열쇠를 잃어버리고 어떻게든 찾으려는 그 꿈의 의미는 너무나도 명백해서 오히려 시시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그 꿈에 들어있었다. 어떤 면에서 이제 글쓰기는 미로이며, 혼란과 괴로움의 여정 같기도 하다. 이미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SF 단편은 놀랍게도 한 단락만 써진 채로, 한 달째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에서 잠들어 있다. 인공 안구(眼球) 루미의 여행은 시작도 전에 멈춰버렸다.
3.
홍상수의 영화 '물안에서(In Water, 2023)'의 주인공은 배우 지망생 승모이다. 승모는 자신의 영화를 찍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300백만 원을 가지고 섬에 간다.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과 함께였다. 그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승모의 지인들. 그런데 놀랍게도 승모는 시나리오도 쓰지 않았고, 어떤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도 머릿속에 없다. 승모는 과연 자신의 첫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러닝타임 61분의 그리 길지 않은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이런 것이다. 왜 배우 지망생 승모는 뜬금없이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을까? 승모와 같이 섬에 온 지인들이 묻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영화를 찍기로 생각한 거야? 승모는 아주 솔직하게 대답한다.
"명예지, 명예...... 명예를 원하는 거지. 명예를 얻고 싶은 것 같아. 얻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 그 알량한 명예. 그럼에도 눈물나게 간절한 명예. 홍상수의 영화는 아주, 매우, 너무 솔직하다. 나는 그 솔직함을 내심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때론 경멸의 눈길을 보낼 때도 있었다. 그 솔직함에는 이상한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잊을만하면 챙겨보게 만든다. 승모는 영화감독이 되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승모가 원하는 건 단순명료한 그것, '명예'이다.
작가가 된다고 해도 자신의 글로 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한 팍팍한 현실은 장강명의 에세이에 잘 드러나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작가의 삶을 기술한 장강명의 에세이는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글에서조차 짠내가 진동한다. 장강명은 '작가'라는 직업에 드리워진 아우라를 인정사정없이 해체해 버린다. 강의와 강연, 기고와 단행본 출판으로 채워진 중견 작가의 일상은 나름대로 치열하다. 장강명의 그 글을 읽다보면, 직업인으로서의 작가가 지닌 삶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작가라는 이름의 그럴듯한 명예에는 돈이라는 괴로운 목줄이 여느 직업들처럼 단단하게 채워져 있다.
"자, 이걸 보세요. 여기 연필과 종이가 있습니다. 누구든 글을 쓸 수가 있죠. 하지만 그 글로 다 작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다큐멘터리에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 1946-2025)가 했던 그 말을 기억한다. 디지털 시대, 영화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는 답변에 린치는 그렇게 명료하게 답한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 AI등장 이후, 국내 문학 공모전의 응모 편수는 미친듯이 늘어나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으며, 언젠가 우리는 '작가'라는 직업을 재정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의 협업으로 문학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자. 어쩌면 그런 정의조차 불필요한 좀 더 먼 미래, 그 직업 자체가 사라진 시기가 올 수도 있다.
그렇게 '작가'라는 단어가 물에 가라앉으며,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오늘도 나는 본다. 여름의 초입에 쓰다 만 SF 단편도 마치 그 직업의 미래처럼 물 안에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지 못한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물속의 소설 '루미의 여행'을 붙잡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 '물안에서(In Water, 2023)'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4/01/in-water-2023.html?m=1